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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춘길 목사 “고난과 선교적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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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ㆍ2016-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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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성서원이 “종말적 성도의 고난”라는 주제로 주최한 신학 심포지움이 9월 17일 필그림교회(양춘길 목사)에서 열렸다. 양춘길 목사는 “고난과 선교적 교회”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다.

양춘길 목사는 그동안 한인이민교회를 대상으로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의 전도사적인 역할을 해 왔다. 이번 강의는 심포지움의 주제대로 ‘고난’이라는 측면에서 선교적 교회를 다루고 있다. 양 목사는 한국교회와 한인이민교회의 정체 및 후퇴를 고난으로 보고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물어나갔다. 하나님의 선교를 할 때 그리고 본질적인 교회의 역할을 할때 오는 고난을 나누며 고난은 교회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편안하고 수비적인 교회에서 선교적 교회로 회복하여 세상을 향해 담대히 나가고 흩어지고 하나님나라를 세워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강의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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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성서원 신학 심포지움 단체사진

한국교회와 미주에 있는 한인교회들이 선교적 교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아무래도 현재 처한 상황에서 위기의식을 가지면서 부터 서구교회들이 먼저 시작한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교회가 현재 어떤 위기에 처해있는가 하는 것은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정리해 보면 최윤식 박사가 쓴 <2020/2040 한국교회 미래지도 2>를 보면 정체 내지는 쇠퇴라고 했다. 그리고 재정위기로 인한 파산도 문제이다. 이것이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한인이민교회도 정체에서 이제는 쇠퇴기로 접어든 것이 통계적으로 나오고 있으며 목회현실에서도 느끼고 있다. 또 실제적으로 그것이 재정위기로 이어지고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면서 잘못 나갈 때에 교회가 파산하거나 분열되게 된다. 최근에 미주에서 가장 대표적인 교회라 할 수 있던 나성영락교회에서 일어난 일이 그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민교회가 앞으로 경험해야할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교세가 줄어들면서 재정이 어려워지게 되고 책임추궁을 하는 과정에 분열의 조짐이 일어난다. 심지어서 교회파산으로 이어진다.

교회들이 위기를 겪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러면 교회가 이러한 위기를 겪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크게 두 가지이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들이 위기를 겪게 되는 것은 첫째는 죄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날 때 하나님이 절대로 방관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돌이키시기 위해 위기상황으로 이끌어 가신다. 그런 예가 많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 가는 위기상황에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을 차지할 때 큰 여리고성을 점령했지만 다음에 작은 아이성을 전쟁하다 대패하여 큰 위기상황이었다. 다 죄의 문제였다. 다윗의 죄가 있었고 아간의 죄가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에서 벗어나게 하시기 위해 위기를 지나가게 하신다.

둘째로 하나님의 섭리안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방법으로 위기를 사용하신다. 예를 들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는 것은 아브라함과 가족들에게 큰 위기이다. 요즘 한국에서 미국에 오는 것은 얼마든지 왔다 갔다 하지만 1973년 제가 한국을 떠날 때만 해도 어쩌면 친구들을 다시 못 만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떠났다. 그런데 그 시기에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는 것은 큰 문제였다. 그런데 그것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담겨져 있었다. 믿음의 조상으로 아브라함을 세우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을 만들어 가시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

또 예루살렘교회가 스데반 집사의 순교와 더불어 흩어지게 되는 것은 교회로서는 큰 위기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것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 큰 죄를 지어서 아니라 하나님이 계획하신 바를 이루시기위해 즉 그리스도의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퍼져나가는 계획을 이루시기위해 흩어지지 못하는 예루살렘교회를 흩으시는 방법으로 위기상황을 사용하셨다.

그럼으로 오늘 우리 한국교회와 한인이민교회가 위기상황에서 처하게 될 때 그 이유는 두 가지 이유가 다 있다고 본다. 하나는 우리가 죄를 지었다. 하나님 앞에서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을 감당하기 보다는 개교회주의와 말씀대로 그리스도의 신실한 제자다운 삶을 살지 못한 죄가 교회안에 그리고 흩어져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속에 많이 있다. 심지어는 교회가 세상사람들로 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는 아픈 경우도 있다.

선교적 교회 운동의 필요성

위기를 통해 우리를 계속 돌이키게 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고난의 과정을 지나가면서 한국교회와 한인이민교회를 하나님이 펼쳐 가실 새 역사를 위해 준비시키고 계심을 보게 된다. 교회들을 선교적 교회로 이끌어 가심으로 준비시키신다. 오늘날 한인이민교회들이 선교적 교회, 미셔날 처치 운동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선교적 교회에 대한 관심있는 분들은 선교적 교회는 지역사회를 섬겨야 하며 지역사회를 복음화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말한다. 맞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선교적 교회 운동이 또 다른 개교회의 부흥을 위한 수단이 된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선교적 교회가 될 수 없다.

한인이민교회들의 위기상황속에서 참 선교적 교회에 대해 물을 때, 선교적 교회는 ‘선교적(Missional)'이라는 단어가 중요하다. 모든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곳에서 선교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사명이 주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 지역사회에서 내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의 복음을 위해 살아가는 선교적 사명이 주어졌다. 우리들은 한 개교회나 한 집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왕의 왕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나라를 위해 선교적인 삶을 살도록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다.

선교적 교회의 정의는 다 비슷한데 좀 더 간단하고 쉽게 정의를 내린다면 선교적 교회란 지역교회가 있는 그곳에서 선교사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즉 필그림교회가 선교적 교회가 된다는 것은 바로 뉴저지 버겐가운티 지역에서 이 교회를 이루고 있는 성도들이 선교사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선교적인 삶이라는 것은 존재와 행동의 의미를 다 가지고 있다.

선교적 교회와 기존교회의 차이점은 어떤 것이 있는가?

기존교회도 물론 선교를 하지만 기존교회 선교라고 하면 교회의 사역, 교회의 프로그램이다. 선교적 교회라고 하면 선교가 교회의 본질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 목사가 선교적 교회라고 말하면 성도들은 ‘목사님이 선교예산을 또 늘릴 예정이구나’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것은 기존교회의 모습이고, 선교적인 교회로 변화되어 간다는 것은 교회의 본질이 선교에 있다는 것이다. 선교적 교회와 기존교회의 선교지는 어떻게 다른가? 기존교회에서 보통 선교한다고 하면 해외선교를 생각하는데 선교적 교회는 우리가 사는 지역사회가 우선적인 선교지이다. 기존교회의 선교사는 특별소명을 받은 사람을 준비시켜 파송하는 것이라면, 선교적 교회 선교사는 모든 성도가 보내심을 받은 선교사이다.

그동안 우리들은 선교하는 교회는 성장한다고 들었다. 특별히 선교사들이 와서 선교지원을 많이 받기위해 선교하는 교회는 성장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실제 선교하면 교회는 성장한다. 그런데 선교는 개교회 부흥이 목적이 아니다. 선교적 교회가 지향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선교를 하거나 하나님의 사역을 한다고 할 때 방법론에 있어 효과적인 방법, 효과적인 프로그램, 효율적인 사역을 찾았다. 그런데 선교적 교회에서는 가장 우선되는 것이 성육신적인 성도들의 삶이다. 기존교회에서 사역과 선교는 그 주체가 교회이다. 우리교회가 몇 명을 보냈다, 어디로 선교간다, 어떤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선교예산이 얼마이라고 한다. 이렇게 기존교회 선교의 주체가 교회로서 다분히 소개되었지만, 선교적 교회의 선교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보내시고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시고 그 하나님의 교회와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신다.

선교적 교회의 고난 / 고난은 교회의 본질이다

선교적 교회는 어떻게 보면 매우 당연하게 고난을 겪을 수밖에 없다. 선교적 교회의 정의에 나오는 것 같이 선교는 지역교회를 이루고 있는 성도들이 선교사적인 삶을 사는 것이라고 표현하면 성도들은 아주 싫어한다. 그리고 선교사들이 선교지에 가서 어떤 삶을 살아가는가? 한 마디로 요약하면 고난이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선교사를 파송할 때 우리는 보통 선교지에 죽으러 간다고 생각하고 가지만, 사실 선교지는 죽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 가는 곳이다.

선교지에는 얼마나 많은 고난이 기다리고 있는가? 선교사의 삶을 살지 않았어도 선교사 보고를 들으면서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겪는 어려움들을 알고 있다. 외로움, 언어와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고통, 경제적인 문제, 자녀교육, 안전성,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핍박, 영적인 메마름 등이 있다. 항상 현지인들에게 선교사 자신이 받은 은혜를 다 쏟아내기만 하고 재충전기회가 별로 없기에 영적 메마름도 고난이다.

교회도 고난이 많이 있을 것이다. 고난은 교회의 본질이다. 교회를 세우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고난에서 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선교적 교회의 키워드는 보내심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보내신 분이 누구이신가?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하나님과 동등한 신분으로 하나님과 영원부터 나누고 있는 교제에서 부터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떨어져 나갔다. 성부 하나님께 보내시는 아픔이 있는 것이다. 또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을 보내시면서 자기 제자들을 보내신다. 제자라는 단어가 점진적으로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하는 사도로 바뀌어 사용하게 된다.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행적을 적은 것인데 성령안에서 이들을 통해 교회가 세워지고 교회는 계속 사람을 보낸다. 여기에도 보냄의 고통이 있다.

성부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는 것은 얼마나 큰 고통인가? 우리는 십자가의 고통만 생각하는데 먼저 보냄 자체에 고통이 있는 것이다. 자녀를 대학기숙사로 내려놓고 돌아올때 부모의 마음이 어떤가?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고통이 있었고, 더욱이 그를 희생의 제물로 내놓으실 때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있으셨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라고 절규하실 때 보내신 뜻을 온전히 이루시기 위해 성부 하나님께서 독생자 부르짖음에 침묵하셨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시면서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마치 양을 이리 떼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예수님의 심정이 그랬다. 교회가 세상을 향해서 하나님의 사람들 보낼 때 바로 그러한 고통이 따른다.

캘리포니아에서 목회할 때 우리 교회가 한 지역에서 계속 성장하는 것 보다 지교회를 세우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교단에서 준비한 교육자료를 가지고 성도들을 준비시키고 40분 떨어진 지역에 가서 교회를 개척하는데 개척멤버로 나갈 사람은 결단하고 나오라고 했다. 12가정이 나왔는데 강단에서 보니 인간적으로 제일 의지하고 있었던 장로 부부가 나왔다. 그것을 본 순간 실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며 아쉬움이 있었다. 파송되어 나가는 사람과 더 이상 교제를 이루지 못한다는 그런 고난이 있다. 보낸다고 하는 자체에 고난이 있을 뿐만 아니라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이 겪는 고난도 있다.

교회는 선교적 교회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선교를 위해 선교사들을 보내고, 물질을 보내고, 지원사역을 했다. 우리가 선교사를 보낸다는 생각을 가졌는데 그 이전에 우리의 정체성은 이미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다. 우리교회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완전하신 계획안에 우리를 이 지역에 보낸 사람들로 이루고 있는 교회이고, 보냄을 받은 사람이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 먼저 보내심을 받은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형성하게 되어있다. 이것은 사역 이전에 우리가 이 지역에 존재한다고 하는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 역할이 될 수 있는 즉 그리스도를 나타내 보여줄 수 있는 바디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다니실 때는 육신을 입고오신 몸을 보면서 예수님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증거할 수 있었다. 세례 요한도 예수님을 보면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했다. 예수님이 아무 일도 하시기 전에 존재자체서 나타내는 증인이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여기에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자체가 이 지역사회에 예수 그리스도의 산증인의 역할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사랑의 화신으로 왔다고 말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는 그 무엇보다 사랑으로 하나 되어야 한다.

그 다음에는 보내심을 받은 우리들에게 주어진 사역이 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선교이다. 이것을 위해 우리가 보내심을 받았다. 그래서 선교는 우리가 보내고 지원하는 것 이전에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고 우리들이 지역에서 감당해야 할 하나님의 선교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라

그렇다면 우리가 이 지역에서 그리스도 몸으로서 사역을 감당한다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선교를 감당하셨다. 예수님은 가르치시고, 병을 고쳐주시고, 복음을 선포하시는 사역들을 감당하시다가 이제는 승천하셨다. 이 사역을 감당할 이 땅에 자신의 또 다른 몸이 필요해서 성령을 보내주셔서 그리스도의 또 다른 몸인 교회를 세우셨다. 그래서 교회를 이루고 있는 우리들은 바로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하셨던 사역을 지속적으로 감당함으로 하나님의 선교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그 사역이라는 것은 처음 예수님의 성육신의 사건에서부터 시작된다. 성부 하나님으로 부터 떨어져 나오는 고난이 있다. 가장 거룩하신 분이 죄악된 세상속으로 들어오는 낮아지심이 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빌립보서 2:6).” 예수님에게는 이미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은 고통이 있다. 따라서 우리가 성육신적인 삶을 산다고 하는 것은 당연히 고통이 있다. 내가 무엇을 하기 이전에 벌서 성육신적인 삶을 살겠다 하는 것, 즉 구별된 사람으로 이 세상에서 경건한 삶을 산다는 것 자체가 핍박을 고난을 초래하는 것이다. 이질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세상은 거룩하게 구별된 삶, 진리를 따라 살려고 할 때 핍박한다.

예수님이 성육신 하신 후에 섬김의 종으로 살아가셨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빌립보서 2:7).” 종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려움과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남의 수하에 있는 것 보다는 오히려 남을 다스릴 수 있는 자리에 올라가기를 원한다. 사람을 부릴 수 있는 자리에 올라가면 내가 원하는 대로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남의 수하에서 종노릇하는 것은 어렵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그런 삶을 사셨다. 사랑의 수고를 하시면서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고, 나중에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종의 모습이 되셨다. 종들이 당하는 고난이 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없고 무시당하는 섬김의 사역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사역에 참여한다는 것은 희생을 말한다. 많은 사역을 감당하시고 많은 백성들에게서 버림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심으로 화목의 제물이 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기까지 복종을 하셨다.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가. 우리들은 자존심 하나 상해도 견디기가 고통스러운데 자기 생명을 다 내어주면서 모든 것을 내놓아 섬겼던 사람들로 부터 오히려 배신을 당하고 버림받는 십자가의 수치와 죽음은 큰 고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골로새서 1:24)”라고 말하며 철저히 선교적인 삶을 살았다. 고난도 극복하면서 오히려 그 고난을 자신에게 유익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희생을 치루었다.

또한 그리스도의 사역을 감당하는 가운데 선교적 교회로서 당하는 고난이 있다면 용서를 베풀어야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죽으시면서 자기를 못박는 자의 용서를 기도하셨다. 우리들은 용서가 안되어 얼마나 고통을 겪을 때가 많은가? 이런 문제 때문에 고통하는 선교사들이 적지 않다. 현지인들을 잘 성장시켜 사역을 현지인들에게 이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던 선교사가 안식월차 자리를 비우자 가장 신임하던 현지 지도자가 도둑질을 했다. 본인은 이만큼 다 세워놓았다고 알았는데 하루아침에 다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 도둑질을 한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어떻게 주님의 하시는 사역을 우리들이 온전히 감당할 수 있겠는가.

한인이민교회의 위기상황을 극복하라

그러므로 우리 한국교회와 한인이민교회가 지금 이런 위기상황을 지나가게 만드신 것은, 탄탄대로 부흥을 이루던 교회들이 정체되고 쇠퇴되고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게 되고 더 이상 기대를 걸지 못할 것 같은 교회로 위기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은 하나님이 우리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을 회복시키기 위한 것임을 믿는다. 이를 위해 선교적 교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될줄 믿는다.

이를 위해 교회를 이루고 있는 우리의 안목이 새로워져야 한다. 1990년대 영어목회를 할 때 전도폭발 훈련을 받으러 갔다. 입구마다 ‘환영한다’는 배너가 있는데 돌아올 때 보니 그 뒷면에는 ‘당신은 지금 선교지로 가고 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제 예배가 끝났으니 집으로 가는 것이고, 새벽기도가 끝나고 일하러 가는 것이고, 방학이 끝났으니 학교로 가는 것이 아니라 미션 필드로 나가는 것이다. 우리를 모으셔서 새 은혜를 주시고 영적으로 재충전시키시고, 다시 우리를 선교지로 보내신다. 매일매일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 바로 선교지이다. 이런 관점으로 살아야 한다. 그것이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일이다.

개교회주의가 아니라 영혼구원과 하나님나라 확장을 위해 연합하는 이러한 선교적 교회 운동을 통해 우리가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다시 나타나리라 믿는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의 수평적인 이동에 의한 양적 성장이 아니라 구원의 역사가 활발하게 일어나 죽음에서 새 생명 또한 실패와 좌절과 절망에서 부터 새로운 소망과 생명으로 나오는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이 회복되어지는 일이 바로 선교적 교회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라

고난이 있지만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약속해주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라 하라 볼지어다.(마태복음 28:19)” 보내시는 주님도 마음이 고통스러웠다. 너희들을 보내는 것은 마치 양을 이리떼에게 보내는 것 같다고 하셨다. 떠나는 제자들도 두려움과 당해야 하는 고통이 앞에 놓여있었다. 그러나 주님께서 분명히 약속하셨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8:20)”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시는 전능하시는 주님이 너희와 함께하리라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선교적인 교회로 나아가는 것은 주님이 임재하심 속에서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을 감당하기위해 고난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나가야 한다. 애당초 교회를 이 땅에 세우실 때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마태복음 16:18에서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음부의 권세’라고 하는 것은 영어 번역을 보면 ‘음부의 대문(the gates of hell, KJV)’이다. 이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 대문은 공격이 아니라 수비를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는 것은 뭔가 공격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견뎌내지 못한다는 말이다.

공격하는 것이 무엇인가? 주님이 세우신 교회이다. 주님께서 내가 교회를 세울텐데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을 뒤집어 놓는 것이다. 본래 것을 되찾아야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외부에서 오는 핍박을 막아내고 서있자, 유지하자, 우리 신앙을 끝까지 고수하고자 했다. 그것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선교적 운동은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 세상을 침투해 공격해 들어가는 것이고 찾아가는 것이다. 원래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시기 전에 이 땅은 어둠의 권세가 사탄의 권세가 장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님이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가 세상을 향해 나아갈 때 음부의 대문이 견뎌내지 못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수비적인 것이 아니라 공격적인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기존교회는 오랫동안 현재를 유지하는 수비적이며 편안한 교회를 이루어가기를 원했다.

하나님은 위기상황을 우리에게 가져다 주셨다. 이를 통해 본질적인 교회를 회복하고 선교적으로 세상을 향해 담대히 나가고 흩어지고 하나님나라를 세워가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변화시켜 주실 줄 믿는다. 여기에 고난이 따르지만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늘 기억하면서 선교적 교회로 발돋움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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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관 목사 "만약 다시 목회를 시작한다면 고려할 3가지" 2009-05-31
한세원 목사 원로.공로목사 추대식 및 최호섭 목사 2대 담임목사 취임식 2009-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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