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흥용 목사 "큰 교회들 주위의 작은 교회들에 대한 배려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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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ㆍ2009-03-27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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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말 텍사스에서 열린 한 고등학생간의 농구 경기에서 희한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 경기에서 한 팀이 상대팀을 100 대 0 으로 대승을 거둔 것이었습니다. 큰 점수 차이로 이기는 것은 종종 있을 수 있지만 상대팀에게 한 점도 내주지 않았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그 만큼 상대팀과의 실력 차이이 컸다고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완전한 승리를 거둔 이 팀에게는 승리의 기쁨이 대단했을 것이라고 짐작해 봅니다.
하지만 이 큰 승리의 기쁨은 잠시뿐이었고, 곧 이 이긴 팀의 선수들과 코치에게는 지역 사회로 부터 비판의 소리가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진 팀에게는 많은 격려와 응원의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승리팀이 상대로 했던 팀은 전교생이라야 25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작은 학교의 농구 팀이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이 작은 학교는 모두가 집중력 결핍등의 이유로 인해서 학습 장애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욱 더 이 경기가 문제가 되었던 것 중에는 두 팀 모두가 같은 기독교 교단이 운영하는 사립 학교들간에 치루어졌었다는 점도 있습니다. 사실 이 경기도 같은 교단의 사립학교 연합체가 진행하는 토너먼트 방식의 경기중의 하나였습니다.
처음으로 하는 경기가 아니었던 만큼 승리 팀에서는 어느정도 상대방 학교와 팀에 대한 정보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상대팀에게 0점의 수모를 안겨 주면서까지 이겨야 했을까 하는 것이 모든이들이 했던 비판의 요점이었습니다. 지나친 승부욕이나 성취욕은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마저 잃어버릴 수 있음을 가르쳐준 사건이었습니다. 다행히 진 팀의 선수들은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고 현지 신문은 전하더군요.
저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왠지 이 승리 팀의 모습이 한인 교회에 만연한 목회 성공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지나친 성취욕으로 인해서 변질되어 버린 교회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목회자들에게는 언젠가 부터 큰 교회에서 목회를 해야 성공한 것으로 여겨지는 모습을 보아왔습니다. 몇 천명 모인 교회의 담임 목사는 교계 행사에서 항상 중요 순서를 도맡는 것이 일반화 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후원금 액수와도 연관이 있겠지만.)
이런 비성경적인 세상의 성공원리가 교회 안에서 까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다 보니, 큰 교회 목사님들간에는 누가 더 좋은 차를 타는지 더 큰 집에 사는지를 자랑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이런현상으로 인해서 소위 작은 교회들의 목사님들은 큰 교회들의 목사님들 앞에서 상대적으로 주눅들어 보이는 모습을 보아왔습니다.
큰 교회 목사님들의 발언권도 비중면에서 작은 교회 목사님들의 것과는 다르게 취급되는 경우가 많아 왔습니다. 그러니 목사님들중에는 큰 교회에서 청빙이 오면 자신의 사명이나 비전 혹은 역량은 돌아 보지 않고, 뒷 탈은 생각하지 않고 미련 없이 떠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집니다.
웃기는 일이지만, 부교역자들 사이에서도 우리 교회가 더 크니 혹은 작으니하는 것으로 당치않은 기싸움을 벌이는 경우도 본 적이 있습니다. 이는 성공에 대한 굴곡된 인식은 미국 목사님들에게는 찾아보기 힘든 면입니다. 언제 부터 숫자가 목회자의 성공의 잣대가 되었는지 답답합니다. 목회자의 성공은 오직 주님만이 평가하실 수 있는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큰 교회들은 작은 교회들까지 고사시키는 독식적 전도 자세를 버려야 합니다. 지금은 그래도 많이 인식하고 있는 일이지만 큰 교회에는 작은 교회의 교인들에 의한 수평이동으로 인해서 성장한 경우들이 많습니다. 이를 통한 교인 수의 증가는 어느 교회도 주님께서 하셨다고 자랑할 일이 아닙니다. 작은 교회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큰 교회의 성장은 오히려 교회의 공멸을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교회 전체의 위기이며 모든 교회들이 함께 공동으로 대처해야할 중요한 사항입니다.
지금 큰 교회들에게 필요한 것은 주위의 작은 교회들을 배려 할 줄 아는 자세입니다. 교단안에서 이루어지든지 초교파적을 이루어 지든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자세와 마음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할 수 있는 방법은 있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단 영리 목적만을 위해서, 혹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거나 책을 팔기위한 접근은 피해야 함은 당연할 것입니다.
목회자의 인식 변화와 함께 교인들의 인식 변화를 함께 요구합니다. 큰 교회를 다니는 교인들의 경우 자신들의 교회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자기 교회 목사님 자랑도 많이 하고, 교회 선전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종종 작은 교회에 출석하는 분들을 불쌍하고 열등한 사람들같이 발언 하는 것을 듣게 될 때가 있습니다. 작은 교회에 어떤 일로 참석했다가 느낀 소감일 수도 있지만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기가 찹니다. 어떻게 큰 교회와 작은 교회가 규모와 장비면에서 비교가 될 수 있을까요?
작은 교회들을 향한 격려와 지원의 필요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주님께 야단맞을 이런 비교 의식이 어디로 부터 나왔을까요? 교인들의 자기 교회에 대한 지나친 충성심속에 감추어진 미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은 반드시 바뀌어야 합니다.
주님은 자신의 몸된 교회를 교인의 숫자와는 상관없이 평등하고 소중하게 대해 주신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종들도 그리고 성도들도 다 주님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숫자의 유혹에서 막히면 숫자 뒤에 계신 주님의 마음을 읽을 수 가 없습니다. 숫자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조급한 마음을 이길 수 있고, 열등 의식을 벗어버릴 수 있는 여유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숫자나 성공이 아닌 신앙에 뿌리를 둔 진실되고, 풍요롭고, 행복한, 사랑의 교회들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 2009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하지만 이 큰 승리의 기쁨은 잠시뿐이었고, 곧 이 이긴 팀의 선수들과 코치에게는 지역 사회로 부터 비판의 소리가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진 팀에게는 많은 격려와 응원의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승리팀이 상대로 했던 팀은 전교생이라야 25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작은 학교의 농구 팀이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이 작은 학교는 모두가 집중력 결핍등의 이유로 인해서 학습 장애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욱 더 이 경기가 문제가 되었던 것 중에는 두 팀 모두가 같은 기독교 교단이 운영하는 사립 학교들간에 치루어졌었다는 점도 있습니다. 사실 이 경기도 같은 교단의 사립학교 연합체가 진행하는 토너먼트 방식의 경기중의 하나였습니다.
처음으로 하는 경기가 아니었던 만큼 승리 팀에서는 어느정도 상대방 학교와 팀에 대한 정보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상대팀에게 0점의 수모를 안겨 주면서까지 이겨야 했을까 하는 것이 모든이들이 했던 비판의 요점이었습니다. 지나친 승부욕이나 성취욕은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마저 잃어버릴 수 있음을 가르쳐준 사건이었습니다. 다행히 진 팀의 선수들은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고 현지 신문은 전하더군요.
저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왠지 이 승리 팀의 모습이 한인 교회에 만연한 목회 성공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지나친 성취욕으로 인해서 변질되어 버린 교회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목회자들에게는 언젠가 부터 큰 교회에서 목회를 해야 성공한 것으로 여겨지는 모습을 보아왔습니다. 몇 천명 모인 교회의 담임 목사는 교계 행사에서 항상 중요 순서를 도맡는 것이 일반화 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후원금 액수와도 연관이 있겠지만.)
이런 비성경적인 세상의 성공원리가 교회 안에서 까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다 보니, 큰 교회 목사님들간에는 누가 더 좋은 차를 타는지 더 큰 집에 사는지를 자랑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이런현상으로 인해서 소위 작은 교회들의 목사님들은 큰 교회들의 목사님들 앞에서 상대적으로 주눅들어 보이는 모습을 보아왔습니다.
큰 교회 목사님들의 발언권도 비중면에서 작은 교회 목사님들의 것과는 다르게 취급되는 경우가 많아 왔습니다. 그러니 목사님들중에는 큰 교회에서 청빙이 오면 자신의 사명이나 비전 혹은 역량은 돌아 보지 않고, 뒷 탈은 생각하지 않고 미련 없이 떠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집니다.
웃기는 일이지만, 부교역자들 사이에서도 우리 교회가 더 크니 혹은 작으니하는 것으로 당치않은 기싸움을 벌이는 경우도 본 적이 있습니다. 이는 성공에 대한 굴곡된 인식은 미국 목사님들에게는 찾아보기 힘든 면입니다. 언제 부터 숫자가 목회자의 성공의 잣대가 되었는지 답답합니다. 목회자의 성공은 오직 주님만이 평가하실 수 있는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큰 교회들은 작은 교회들까지 고사시키는 독식적 전도 자세를 버려야 합니다. 지금은 그래도 많이 인식하고 있는 일이지만 큰 교회에는 작은 교회의 교인들에 의한 수평이동으로 인해서 성장한 경우들이 많습니다. 이를 통한 교인 수의 증가는 어느 교회도 주님께서 하셨다고 자랑할 일이 아닙니다. 작은 교회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큰 교회의 성장은 오히려 교회의 공멸을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교회 전체의 위기이며 모든 교회들이 함께 공동으로 대처해야할 중요한 사항입니다.
지금 큰 교회들에게 필요한 것은 주위의 작은 교회들을 배려 할 줄 아는 자세입니다. 교단안에서 이루어지든지 초교파적을 이루어 지든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자세와 마음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할 수 있는 방법은 있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단 영리 목적만을 위해서, 혹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거나 책을 팔기위한 접근은 피해야 함은 당연할 것입니다.
목회자의 인식 변화와 함께 교인들의 인식 변화를 함께 요구합니다. 큰 교회를 다니는 교인들의 경우 자신들의 교회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자기 교회 목사님 자랑도 많이 하고, 교회 선전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종종 작은 교회에 출석하는 분들을 불쌍하고 열등한 사람들같이 발언 하는 것을 듣게 될 때가 있습니다. 작은 교회에 어떤 일로 참석했다가 느낀 소감일 수도 있지만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기가 찹니다. 어떻게 큰 교회와 작은 교회가 규모와 장비면에서 비교가 될 수 있을까요?
작은 교회들을 향한 격려와 지원의 필요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주님께 야단맞을 이런 비교 의식이 어디로 부터 나왔을까요? 교인들의 자기 교회에 대한 지나친 충성심속에 감추어진 미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은 반드시 바뀌어야 합니다.
주님은 자신의 몸된 교회를 교인의 숫자와는 상관없이 평등하고 소중하게 대해 주신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종들도 그리고 성도들도 다 주님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숫자의 유혹에서 막히면 숫자 뒤에 계신 주님의 마음을 읽을 수 가 없습니다. 숫자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조급한 마음을 이길 수 있고, 열등 의식을 벗어버릴 수 있는 여유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숫자나 성공이 아닌 신앙에 뿌리를 둔 진실되고, 풍요롭고, 행복한, 사랑의 교회들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 2009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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