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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의 목사 "여성의 적은 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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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09-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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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5일 부터 17일까지 뉴저지 크리스천 아카데미에서 열린 제1회 여성목회자 오픈 콘퍼런스에서 북미주여교역자협의회 회장 김부의 목사가 "Women Leadership in the Church"라는 제목으로 한 강의내용이다.

지난 대선때 미국과 한국에서 각각 최고의 리더십을 요하는 대통령직에 도전했던 힐러리 클린톤이나 박근혜씨를 주목해 보면서 여성하면 어떤 Marginal Group 에 속한 계층 으로 간주 되었던 세월들의 괄목 할만한 변화가 피부로 느껴졌다.

급변하는 세상에 부응하여 교회 밖 모든  분야(정치 경제 학문예술)에서 여성의 활동 지경은 나날이 넓어져 가고 있는 현실이다. 과연 교회에서 여성리더들의 사역은 어떤가? 대부분의 교회에서 여성교인들이 60-70%를 차지하고 있지만 교회에서 중요 정책결정의 자리에 남녀가 같히 참여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신대원 여학생 18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가운데 84.9%가 '한국 교회가 여성 교역자들을 차별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가장 많이 차별의식을 느끼는 부분은 '평신도들의 인식'(48.2%)이었고, 부서배치, 업무배분, 설교 배제 등의 차별이 뒤를 이었다. 사역 현장에서의 부당한 차별이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이라면 우리는 참 많이 성경에서 멀어져 있는 것이다

유교에서 오는 "남존여비 남녀 유별"이라는 문화적 유산이 아직도 영항을 미치고 있는 것인가? 개인적인 배경의 차이일까?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대처 해야 하는가 라는 것이 우리 모두가 갈등하는 이슈이다.

이제는 심각하게 교회에서 여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요구되고 있다. 종전의 남성중심적 관점에서 볼 때 사회 역사 문화적으로, 특히 교회에서의 지도력을 발휘하는 데 있어 주변적인 존재로 여겨오던 여성들의 존재와 그들의 삶과 경험으로 부터 이제는 여성 자신의 입장에서 재 인식되고 해석되어야 한다.

여성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위축시킨 채, 그것이 마치 순종과 헌신의 미덕인 양 착각하게 하면서. 대표성을 지니는 것은 남성이라는 익숙한 사고를 받아들이게 하는 악순환의 반복을 종용하는 식이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이제 교회는 이러한 여성 리더십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 보다 여성과 남성의 평등한 참여가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구현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이런 자리가 마련 된줄 믿습니다. 어떤 개인적인 소수의 원망어린 목소리로는 부족하기에 여성목회자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우리가 어떻게  후배들에게 든든한 발판 역할을 할수 있을까 생각하는 자리가 되어지기를 소망하면서 주안에서의 여성 리더쉽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역사적으로 볼때 - 교회의 여성리더십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의 지도력의 체제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융통성이 있으며 그 성격은 지배적인 위계질서가 아니라 섬김을 중심으로 한 평등 질서 였다. 이는 지도력의 권위나 기능보다는 지도력을 행사하게 되는 자의 인격과 믿음, 자질을 더 문제시하는 공동체적인 기능에 관심이 집중 되었음을  볼 수 있다. 신약에서 지도력은 어디까지나 공동체를 위한 은사로써 이해되었다.

어디에서도 예수가 사도로서 남성만을 택하였다는 언급이나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지도력은 남성만이 자격이 있다는 등의 언급을 발견할 수 없다. 오히려 복음서에 나타난 여성의 사역은 예수의 메시지와 태도로 말미암아 여성들도 예수를 따르고 배우며 섬기는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

그들은 남성제자들보다 훨씬 신실하게 고난의 제자직을 수행했다. 몇몇 여성들은 예수의 생애와 선교의 절정이며 의의 깊은 십자가와 부활사건의 일차적 목격자로서의 사도적 증인이었으며 부활소식의 첫 번째 선포자로서 파송 되었다. 예수는 전통적인 관습과 고정적인 관념을 넘어서 여성의 인간적인 권리와 제자직을 인정하셨음을 성경을 통해 잘 알수 있다.

또 예언자로 활동했던 빌립의 네 딸들 (행21:8,9), 실업인으로서 바울을 집으로 청하여 선교지점이면서 최초의 가정교회를 세웠던 두아디라성의 자주장사 루디아 (행16:11~15),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았던 다비다 (도르가, 행 9:36), 사도의 ‘보호자’로 바울이 로마서를 들고 갈 사람으로 추천했던 뵈뵈(롬 16:1~2),

바울이 동역자로 불렀던 브리스길라 (브리스가, 롬 16: 3~4, 행18:26), 바울이 자신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이며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졌다고 일컬었던 유니아 (롬 16:7) 같은 여성들이 많았으며 그들은 성(性)때문에 교회의 핵심 역할로부터 배제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사도들과 동등하게 그 이름이 기록되었다. 바울의 동역자들의 이름이 약 150명 바울서신에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제 2세기 말부터는 기독교가 전형적인 위계질서를 갖게 됨과 동시에 초대교회에서와 같은 예수의 제자로서, 예수의 메시야성과 부활이라는 복음의 사도적 증언으로서, 설교자로서, 선포의 도구로서의 여성의 사역과 지도력과 역할과 위치는 기독교 역사에서 19세기 후기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무시되어 옴을 본다.

특히 4세기로 로마제국에 의해 기독교가 국교화되면서 부터. 콘스탄틴의 개종과 더불어 기독교는 엄청난 숫적 성장을 이루었고 로마제국의 조직의 도움을 받아 직위 칭호등 교인들을 관리할 수 있는 조직을 강화시켰고 교리문답과 성례전으로써 교인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들어오면서 지도력은 뚜렷하게 성직자 계급과 평신도 계급으로 분화되기 시작했다.

평신도(Laity)라는 용어는 3세기부터 사용되기는 하였지만 처음부터 구별된 개념은 아니었다. 그들은 세례받은 남성신도로 구성된 엘리트 집단으로 여성은 제외된 남성만의 집단이었다.

중세의 저명한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까지도 여성은 불완전한 인종이며 잘못 태어난 남성(misbegotten male)으로 보았다. 어거스틴, 칼 바르트 등 많은 신학자들의 잘못된 여성학 때문에 여성에 대한 성서해석에 오류를 범하였다.

특히 고전 11:2-16히에서 여자들이 머리에 수건 쓴 이슈, 고전 14:33-36, 에서는 여성들이 교회에서 잠잠하라, 창 2:18-25 돕는 배필에 대한 해석 , 딤전 2:9-15,여자들의 치장문제, 여성의 직위에 관한 신학의 논쟁거리가 되어 문자에 얽매인채 편협되고 왜곡되게 해석함으로서 여성이 성직에 임명되지 못하게 하는데 저해요인으로 작용했다.

1853년이 되어셔야 회중교회(Congregational)에서 앤토아넷 블랙웰(Antoinette B. Blackwell)에게 가장 먼저 여성에게 목사안수를 허락했다.  한국의 실정은 1955년 한국 기독교는 기독교대한감리회 교단 소속 전밀라(1907-1985)에게 명화용과 함께 목사안수 했다는 기록이 있다. 다른 교단들은 여성 목사의 임명이 1990년대에 들어서야 현실화 되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1995년부터 기독교장로회는 1974년에 여성목사가 허용되었으며, 예수교대한성결교회(예성)은 2003년 4월 여성목사를 허용했다. 기독교 대한성결교회(기성)은 2004년 6월 23일 여성 목사와 장로 안수를 허용했다. 위와 같은 교단외에 구세군, 순복음하나님의성회, 일부 군소교단 및 초교파 교단에서 여성 목사 안수를 허용했다. 대한민국의 전체 목사 가운데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5%를 넘지 않는다고 통계는 말한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가 사는 북미도 비슷함을 봅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101 에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1890년대에는 미국 7%의 교단에서 여자 목사안수를 허락했으나 실제적으로는 1970년대부터 구체화됨을 본다. 실제로 규칙은 허락했으나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 장로교교단은 1956년에 그 권리를 허락하였으나 20년이 지난 1976에 와서야 신학석사과정에 여자들이 등록 시작했고 1987년에 이르러서야 164명이 신학 석사가 탄생하였다는 통계가 있다.

몇년전만 하여도 미국 300개가 넘는 교구에는 정식 신부가 없었는데 여자 시제가 그 일을 맡아 하는데 정식 신부로 서품은 허용되지 않고 그대로 정식 신부의 역할은 100% 다하고 있는 경우도 있음도 본다.

여성신학이 본격적으로 확산 된 것은 메리 데일리(Mary Daly)가 1968년에 쓴 『교회와 제2의 성』이라는 책의 파문에 의해서 일어났다고 분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데일리는 이 책에서 가톨릭 전통 신학들이 얼마나 성차별 적인가를 파헤치는데 금서로 낙인 찍혔지만 교계의 각성을 불러오는데 기여했다고 평한다.

현실적으로 - 교회의 여성리더십

1970년대 이후로 이 북미주에는 양적으로 급속히 증가하는 추세임은 누구나 동의하는 사실입니다. 여성목회자는 1970년 당시 목회자의 3%, 1990대로 들어오면서 10%로 증가하고 신학생도 특정한 신학교 제외하고 요즈음의  대부분의 신학교의 30%가 여성으로 구성 되어있고 앞으로 계속 증가 추세임을 통계가 보여준다.

정확한 자료인지는 확인이 안되지만 인터넷에 올라간 통계에 의하면 현재 감리교에는 4백여명의 여성목사가 있으며 통합측 520여명과 기장 180여명, 성결교 20여명 등을 모두 합쳐 천여명을 조금 넘고 있다고 한다. 

제가 사역하고 있는 토론로의 상황에 대해 자기 건물을 갖고 있는 중형 교회를 상대로 조사해 보았다. 예기치 목한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교인이 40명이 못되는 교회들은 부사역자들을 둘 형편이 못되어 당회장 목사가 모든 사역을 감담하지만 출석 성도 200명 정도의 교회들을 부사역자들이 필요하기에 조사해 보았더니 남녀 사역자들의 비율이 6:4로 높은 여자 사역자들이 참여가 이루어짐에 기뻤다.

물론 부사역자가 없는 교회를 다 포함하여 통계를 내면 그 비율은 훨씬 떨어지지만 부사역지를 선택할때에는 남여의 차별이 심각하지 않음이 어떤면에 있어서는 오히려 여성목회자를 선호할수도 있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목사들이 자기교회를 갖고 당회장으로 사역하고 있는 경우는 극소수인 것을 감안해보면 저를 비롯하여 우리 여자 목회자들의 도전이 필요함을 절감했다.

결론 - 교회의 여성리더십

요즘엔 여성 목회자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듯하고, 여성 목회자들의 수도 예전보다는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여성 목회자를 남성 목회자와 동등하게 인식하려는 움직임은 아직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다. 여성 목회자가 교회라는 현실 속에서 아직도 갈 길이 멀었음을 깨닫게 한다.

이런 상황아래 여성 목회자들이 미래를 바라보면서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 짚어보고 싶다.

첫째로 우리 여자 자신들이  스스로가 문제 일수 있습니다.

"여성의 적은 여성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성들이 오랫동안 그들의 의식세계를 지배해 온 여성에 대한 편견이나 고정관념으로 인해 여성 스스로를 비하하게 되고 여성갈등을 부추기기는 않는가? 우리 여성들이 오히려 여성 지도자를 배척하고 존경하지 않는 기현상에 젖어있지는 않는가? 편견때문에 여성에 대한 자긍심이 손상된 부분은 없는가를 점검할 필요를 느낀다.

창조 기사에는 남녀 공히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다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창세기 3;16에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것이다 라는 구절을 왜곡하여 해석하는 경향에 더 이상 귀기울이지 말고 우리 스스로 내부로 부터 오는 자기변신으로 인한 성숙으로의 열매를 맺어야만 한다. 우리 여성목회자들이 먼저 신선하고 창의적인 성경적인 자아상을 가져야 한다.

여자와 남자의 "성역할의 고정관념(Sex role stereotypes)"을 넘어서 우리의 시각을 미래와 세계로의 지평으로 열어야 한다.

둘째로 여성사역자들이 스스로 실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요즈음과 같이 정보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는 여성목회자들은 교회를 위해 자신이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영역에 대하여 실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연구와 개발(R&D, Rearch & Development)에 올인 해야 한다. 즉 기독교교육, 목회상담, 사회복지, 리더십과 성서 연구, 제자훈련 등을 통한 전문성 있는 공부와 실력을 갖추는 것이 우선 되어져야 한다.

아직도 같은 조건이라면 남성 사역자를 선호하는 현실이기에 여성 목회자는  일반 목회자들의 기본적인 자질인 지성 영성 야성 플러스 여성 특유의 섬세하고 끈질긴 기도로 강력한 진을 물리칠수 있는 파워풀한 영성으로 자신의 훈련이 우선 되야 한다.

지성과 영성의 조화는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닌 땀과 수고의 소산임을 알기에 우리들 힘든 자신과의 투쟁에서의 승리가 우선 되어야 한다. 시대적으로도 새 포도주는 새 푸대에 담듯이 이제는 아나로그 시대가 아닌 디지털 시대에 서 있다. 치열한 자기 발전에 대한 열망과 함께 시대가 요구하는  유형 무형의 자기개발과 창의성있는 자화상의 수립과 비전이 필요하다.

셋째로  많은 여성지도자를 키우는 것입니다.

기독교 전래 초기의 한국 기독교 여성 지도자들의 사회참여보다 지금의 교회를 돌아보면 교회여성들의 의식이 많이 후퇴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 역사를 되돌아 보건데 3.1 운동을 비롯, 많은 여성단체들이 1920년대에 발족했음을 보면서 요즈음은 너무나 개인, 가족중심, 아니면 내 교회중심의 사고에 사로 잡혀있고 사회적 책임이나 역사의식이 결여된 신앙에 머물러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한국기독교 전체의 반성이 요구되는 점이라고도 하겠다. 뿐만 아니라 한국기독교는 아직도 여성차별의 행태를 버리지 않고 있는데 교회여성들은 이러한 여성차별에 대해서 도전정신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여성과 남성이 함께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의 존귀함을 함께 누리려는 성경적인 모습을 되찾는 일이 늦어질수 밖에 없다.

고무적인것은 연합감리교회 산하에 있는 여성국은 1869년 해외선교를 위해 평신도 6명으로 시작되었는데 139년이 지난 오늘 100 만명 가까운 회원을 자랑하는 조직으로 성장했다. 개신교 여성단체로는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로 교육훈련 장소, 회의실 및 숙박시설 등을 보유하여 영적/신학적 성장을 목표로 지도자양성과 선교참여에 많은 기여를 하는 것을 보면서 지속적인 성장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여성 사역자들을 양성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왜냐하면 사회가 다원화되고 전문화되면서 여성 사역자들의 도움 없이는 원활한 목회 사역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교회의 총체적인 역할을 남성 목회자의 손에만 전적으로 달려있기 보다는 여성 사역자들을 양성해서 교회의 질적 양적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

이를 위해 특별히 교회의 사역을 세분화해서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 효율적으로 사역을 감당하는 길이다. 70%에 달하는 여성 평신도들의 인력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특히 여성 지도력 개발이 활발히 논의되지 못한다면 교회의 성장은 하늘나라의 확장은 늦어질수 밖에 없다.

한때 "교회를 부흥 시키기 위하여서는 여자를 잡아야 한다"란 말이 유행했다. 많은 분들이 그점에 역점을 두어왔음을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그 예를 찾을수 있다. 여의도 순복음 하면 빨간가방든 여성 구역장들의 활동이 큰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중국의 모택동도 여성정책을 펴서 하늘의 절반은 여자들이 차지하므로 모든 부분에서의 여자를 인정함으로 남성 우월주의 사회에서 진보적 발전을 가져온 중국의 예를 보았다.

예수님의 지상사역도 많은 일 제쳐놓고 12 제자를 키움으로 그들로 하여금 세상을 변화 시키셨다. 우리가 리더가 된다는 것은 주위에 영향력을 주고 변화시키는 일을 주도하는 것이다. 현재에 심기워진 사역의 현장에서 맡은 사역에 총력을 다 함과 동시에 제자 특히 여성제자 의도적으로 키우기에 최선을 다할 때 남녀 공히 하나님나라에 귀히 쓰는 그릇이 될줄 믿는다.

그리고 가능하면 교회의 사경회 행사등이 있을 때 인근의 여 목회자를 세워줌으로 그 지경을 넓혀주는데 서로 협력해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끝으로 목회자들의 성서해석 관점에 변화도 있어야 한다.

교회 내에서의 남녀평등을 고양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직제개선이나 여성 평신도들의 자각 등이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목회자들의 성서해석 관점에 변화도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중 하나는 각 교단 소속 신학대학에 여성학이나 여성신학 등을 필수교양으로 선정하는 일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와 함께 각 교회에서도 Woman Ministry 라는 강좌를 가르침으로 사장되어 있는 여성 지도자들을 각성시켜 교회의 활성화를 불러 일으킬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 격변하는 세대에 하나님께서는 참 준비된 리더를 찾아 부르시고 계신다. 특히 현재 우리 남녀 목회자들이 처한 현재 신약교회는 창조의 목적을 실현하는 장이다. 타락의 죄성을 다스리는 경건 훈련장인 동시에 천국질서를  실천하는 장소이다. 무너진 성벽을 보수하고 파괴된 질서를 쌓을 일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교회 지도자들은 남녀의 구별을 넘어서 기름부음을 받았다. 이 세대를 대표하는 여성 목회자들에게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더불어 삶의 현장에서 습득한 삶의 통찰력과 분별력을 지녀야 하겠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요구하시고 필요로 하시는 이 시대의 리더,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리더가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대하며 말을 마치겠다.

하나님의 새 역사, 새 질서,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는 여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자. 성직자로서 리더쉽의 능력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남녀 모두에게 부여하신 은사이다. 우리가 적극적이고 열린 가슴으로 서로의 소명, 경험, 지혜를 나누고 신뢰, 존중할 때, 더욱 더 힘차게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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