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청년" 고(故) 김준곤 목사 뉴욕 추모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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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ㆍ2009-10-12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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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청년 고(故) 김준곤 목사 뉴욕 추모예배"가 10월 11일 주일 오후 5시 30분에 뉴저지 벧엘교회(정성만 목사)에서 뉴욕 KCCC 대표인 전남주 목사의 사회로 열렸다.
초청인의 인사를 한 강세대 목사는 1964년 김준곤 목사를 만나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다며 항상 '민족복음화'와 '세계복음화'를 외쳤지만 그럼에도 한 영혼 사랑을 희생하지 않았던 그를 그리워했다.
"말씀에 붙잡힌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한 방지각 목사(효신장로교회 원로)는 김준곤 목사가 80세 생신에 뉴욕에 왔을때도 자신이 설교를 했었다며 젊었을때 김준곤 목사를 만났었던 일과 4영리를 가지고 집집마다 전도했던 일, "복음전파는 그리스도 지상 명령이며 네 이웃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던 그의 말을 기억했다.
이어진 추모사들은 김준곤 목사가 사람들의 삶 가운데 얼마나 깊은 사랑의 흔적을 남겼는지를 볼 수 있었고, 사회자의 말대로 나누자면 그야말로 끝이 없을 것 같았다. 간단한 추모사 요약이다.
이은수 목사(동산장로교회 원로) - 대전충남대에 있을 때 특강에서 김준곤 목사를 처음 만났고 CCC학생회장까지 했었다. 그는 내 인생의 방향을 많이 바꾸어 놓았다. 미국에 왔을때도 그의 강권으로 CCC국제본부에서 사역하면서 김준곤 목사를 모시고 함께 살면서 머리도 깎아드리곤 했다. 그의 사역의 원천은 기도다. 한국에서 CCC 간사를 할 때, 자비로 학생들을 먹이느라 다들 힘들어 했다. 당시 유성호텔에서 간사 수련회를 했었는데 사표를 품에 품고 온 이들도 많았다. 온천에서 좀 쉬나 했더니 저녁식사 마치고 초저녁에 함께 돌림기도를 시작하더니 몇번이고 돌고 돌고 하다가 결국 기도회는 새벽까지 이어졌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기도를 하다 보니 결국 사표는 품에 그냥 품고 다시 돌아가 사역하게 되었다.
성백문 장로 - 60년대 대학생 시절, 인생에 대해 깊이 고민할 때 CCC를 만났고, 김준곤 목사를 만났다. 그는 꿈꾸는 사람이며 선지자, 애국자, 한국적인 사람, 반공주의자, 고통을 함께하는 자였다. 한국에서 간사로 사역할때 관심있는 여자 간사가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김준곤 목사는 우리 둘을 불러 성경에 손을 얹고 약혼을 하게 했고 지금 30년이 넘게 잘 살고 있다.
윤원길 장로 / 권만강 권사 - (CCC에서 만나 결혼한 윤장로 부부는 샘윤 보스톤 시장 출마자의 부모로 추모사는 권권사가 하였다) 대학생때 인생이 너무 덧없었다. 친구가 수양회에 가자고 해서 따라갔는데 한 간사가 기도해 주는데 나에게 '불쌍하고 죄많은' 이라고 해서 기분이 나빠 밖으로 나왔다. 밤하늘을 보는데 갑자기 너무나 깊은, 태고적부터 줄곧 있어왔던것 같은 외로움이 엄습해왔다. 다음날 예수를 아직 믿지 않는 사람들만 모이라고 해서 김준곤 목사가 직접 이야기를 했다. '한 번 사는 인생 주사위를 어디로 던지겠는가? 돈인가? 명예인가? 박사학위인가? 예수께 던지라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에 마음이 움직였는데 아무래도 내 자신이 미덥지 않아 '지금 믿는다고 하고 나중에 마음이 변해버리면 어떻게 하는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때 김준곤 목사는 '당신의 연약한 손을 그분의 영원한 손이 잡고 간다. 걱정말아라'고 했고 그 말씀에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다.
강대진 전도사 / 이희녕 사모 - 강세대 목사의 아들인 강대진 전도사도 CCC집회에서 소명을 받은 것과 김준곤 목사와 만남을 통해 그의 따뜻함과 사랑을 받았던 것을 나누었고 이희녕 사모는 영어권들을 위해 영어로 추모사를 하며 김준곤 목사가 딸을 병으로 잃는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미국에 오면 자신의 가정을 찾아 2-3시간 동안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를 나누었다며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던 깊은 관계가 되었음에 감사하며 그의 인간적인 면을 기억했다.
박종아 간사 / 팀청 간사 - 김준곤 목사를 통해 변화된 삶을 나누었다. 수만명의 대학생들이 집회에 모여 그들의 삶을 그리스도에 드리도록 하게 한 힘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지만 온전히 헌신된 한 사람, 김준곤 목사가 있었기에 그를 통해 역사할 수 있었음을 나누며 그를 추모했다.
순서에는 없었지만 뉴욕에서 추모예배가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온 김준곤 목사의 절친한 친구라는 90세의 박주헌 장로(전 전주대 총장)의 추모사도 있었다.
이어 KCCC 총순장들이 김준곤 목사의 특유의 '백문일답'이라는 모든 질문에 예수 그리스도로 답하는 순서를 참가자들과 함께 가지고, "그리스도의 계절" 찬양과 "오늘의 학원복음화는 내일의 세계복음화"라는 구호제창을 하고 안창의 목사(퀸즈중앙장로교회)가 축도하였다. 김준곤 목사를 향한 뜨거운 마음으로 진행된 추모예배는 3시간 반정도 진행되었고 끝난 뒤에도 다과를 나누며 교제의 시간들을 오래 나누었다.
이번 추모행사를 섬긴 국제도시선교회(ICM) 대표 김호성 목사는 CCC 출신인이며 "故 김준곤목사님의 사명은 우리들의 사명일 것이며 그것은 바로 세계 60억 인구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하는 것"이라 전하며 "차세대 지도자를 복음 안에서 세우기 위해 故김준곤 목사님이 시작하고 이루어져 왔던 학원 선교에 우리들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며 그것이 우리의 과업이다. 조국의 복음화를 위해 한국뿐 아니라 세계 모든 민족이 복음화 되도록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 kccc대학생 선교회를 위해 합심기도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추모예배 초청인
방지각 안창의 이은수 강용원 정성만 김현국 정경조 강세대 김종덕 성백문 전남주 김호성 김해동 김신호
ⓒ 2009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초청인의 인사를 한 강세대 목사는 1964년 김준곤 목사를 만나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다며 항상 '민족복음화'와 '세계복음화'를 외쳤지만 그럼에도 한 영혼 사랑을 희생하지 않았던 그를 그리워했다.
"말씀에 붙잡힌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한 방지각 목사(효신장로교회 원로)는 김준곤 목사가 80세 생신에 뉴욕에 왔을때도 자신이 설교를 했었다며 젊었을때 김준곤 목사를 만났었던 일과 4영리를 가지고 집집마다 전도했던 일, "복음전파는 그리스도 지상 명령이며 네 이웃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던 그의 말을 기억했다.
이어진 추모사들은 김준곤 목사가 사람들의 삶 가운데 얼마나 깊은 사랑의 흔적을 남겼는지를 볼 수 있었고, 사회자의 말대로 나누자면 그야말로 끝이 없을 것 같았다. 간단한 추모사 요약이다.
이은수 목사(동산장로교회 원로) - 대전충남대에 있을 때 특강에서 김준곤 목사를 처음 만났고 CCC학생회장까지 했었다. 그는 내 인생의 방향을 많이 바꾸어 놓았다. 미국에 왔을때도 그의 강권으로 CCC국제본부에서 사역하면서 김준곤 목사를 모시고 함께 살면서 머리도 깎아드리곤 했다. 그의 사역의 원천은 기도다. 한국에서 CCC 간사를 할 때, 자비로 학생들을 먹이느라 다들 힘들어 했다. 당시 유성호텔에서 간사 수련회를 했었는데 사표를 품에 품고 온 이들도 많았다. 온천에서 좀 쉬나 했더니 저녁식사 마치고 초저녁에 함께 돌림기도를 시작하더니 몇번이고 돌고 돌고 하다가 결국 기도회는 새벽까지 이어졌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기도를 하다 보니 결국 사표는 품에 그냥 품고 다시 돌아가 사역하게 되었다.
성백문 장로 - 60년대 대학생 시절, 인생에 대해 깊이 고민할 때 CCC를 만났고, 김준곤 목사를 만났다. 그는 꿈꾸는 사람이며 선지자, 애국자, 한국적인 사람, 반공주의자, 고통을 함께하는 자였다. 한국에서 간사로 사역할때 관심있는 여자 간사가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김준곤 목사는 우리 둘을 불러 성경에 손을 얹고 약혼을 하게 했고 지금 30년이 넘게 잘 살고 있다.
윤원길 장로 / 권만강 권사 - (CCC에서 만나 결혼한 윤장로 부부는 샘윤 보스톤 시장 출마자의 부모로 추모사는 권권사가 하였다) 대학생때 인생이 너무 덧없었다. 친구가 수양회에 가자고 해서 따라갔는데 한 간사가 기도해 주는데 나에게 '불쌍하고 죄많은' 이라고 해서 기분이 나빠 밖으로 나왔다. 밤하늘을 보는데 갑자기 너무나 깊은, 태고적부터 줄곧 있어왔던것 같은 외로움이 엄습해왔다. 다음날 예수를 아직 믿지 않는 사람들만 모이라고 해서 김준곤 목사가 직접 이야기를 했다. '한 번 사는 인생 주사위를 어디로 던지겠는가? 돈인가? 명예인가? 박사학위인가? 예수께 던지라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에 마음이 움직였는데 아무래도 내 자신이 미덥지 않아 '지금 믿는다고 하고 나중에 마음이 변해버리면 어떻게 하는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때 김준곤 목사는 '당신의 연약한 손을 그분의 영원한 손이 잡고 간다. 걱정말아라'고 했고 그 말씀에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다.
강대진 전도사 / 이희녕 사모 - 강세대 목사의 아들인 강대진 전도사도 CCC집회에서 소명을 받은 것과 김준곤 목사와 만남을 통해 그의 따뜻함과 사랑을 받았던 것을 나누었고 이희녕 사모는 영어권들을 위해 영어로 추모사를 하며 김준곤 목사가 딸을 병으로 잃는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미국에 오면 자신의 가정을 찾아 2-3시간 동안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를 나누었다며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던 깊은 관계가 되었음에 감사하며 그의 인간적인 면을 기억했다.
박종아 간사 / 팀청 간사 - 김준곤 목사를 통해 변화된 삶을 나누었다. 수만명의 대학생들이 집회에 모여 그들의 삶을 그리스도에 드리도록 하게 한 힘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지만 온전히 헌신된 한 사람, 김준곤 목사가 있었기에 그를 통해 역사할 수 있었음을 나누며 그를 추모했다.
순서에는 없었지만 뉴욕에서 추모예배가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온 김준곤 목사의 절친한 친구라는 90세의 박주헌 장로(전 전주대 총장)의 추모사도 있었다.
이어 KCCC 총순장들이 김준곤 목사의 특유의 '백문일답'이라는 모든 질문에 예수 그리스도로 답하는 순서를 참가자들과 함께 가지고, "그리스도의 계절" 찬양과 "오늘의 학원복음화는 내일의 세계복음화"라는 구호제창을 하고 안창의 목사(퀸즈중앙장로교회)가 축도하였다. 김준곤 목사를 향한 뜨거운 마음으로 진행된 추모예배는 3시간 반정도 진행되었고 끝난 뒤에도 다과를 나누며 교제의 시간들을 오래 나누었다.
이번 추모행사를 섬긴 국제도시선교회(ICM) 대표 김호성 목사는 CCC 출신인이며 "故 김준곤목사님의 사명은 우리들의 사명일 것이며 그것은 바로 세계 60억 인구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하는 것"이라 전하며 "차세대 지도자를 복음 안에서 세우기 위해 故김준곤 목사님이 시작하고 이루어져 왔던 학원 선교에 우리들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며 그것이 우리의 과업이다. 조국의 복음화를 위해 한국뿐 아니라 세계 모든 민족이 복음화 되도록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 kccc대학생 선교회를 위해 합심기도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추모예배 초청인
방지각 안창의 이은수 강용원 정성만 김현국 정경조 강세대 김종덕 성백문 전남주 김호성 김해동 김신호
ⓒ 2009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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