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춘길 목사가 말하는 이시대에 가장 파워풀한 목회 리더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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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09-12-15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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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회기 뉴욕목사회(회장 김종덕 목사) 성탄축하예배 및 이취임식이 12월 14일(월) 오후 6시30분 퀸즈중앙장로교회(안창의 목사)에서 열렸다. 뉴저지 교협 회장 양춘길 목사는 "끝까지 사랑하십시다(요 13:1-17)"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했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
목회하기 힘든 시대이다. 믿는 사람들 조차 모든 것이 과학적이고 계산적이고 인본주의적으로 자꾸 흘러간다. 신앙은 하나님의 전지전능 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고 그래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신비한 역사를 체험해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성적이며 계산적이 되니 목회가 힘들어진다.
더우기 한국에는 반교회적 운동이 강하다. 교회에 반기를 드는 사람이 많아졌다. 몇해전 샘물교회 아프카니스탄 사건은 그것을 표면화 시켜 주었다. 그렇게 촛불시위를 잘하는 한국사회가 좋은 일을 하러 갔다가 납치가 되었는데도 촛불시위 대신 교회를 공격했다.
이렇게 어려워진 이시대에 다양하게 교회에 도전한다. "왜 너의 개신교만 배타적이냐", "왜 개신교는 독선적이냐", "왜 개신교만 구원이 있다고 고집을 부리느냐"라고 불평한다. 오늘날 목회하는 우리는 상당히 어려운 시대에 사명을 받았다.
숙제는 그러한 현실속에서 복음의 핵심적인 내용을 절대로 변하지 않고, 어떻게 이시대에 그리스도를 전하고 세상을 변화시킬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오셔서 보여주신 방법외에는 다른 방법은 없다고 본다. 예수님은 변하지 않은 구원의 진리를 선포하시고 낮아져 섬기셨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 하셨다.
교리적인 것과 인본주의를 앞세우고 개신교를 공격하고 배타적이고 독선적이라 말하는 사람에게 교회가 낮아져서 섬기면 "그래도 저들이 있어 세상이 살만하다", "그래도 교회가 있어 세상에 소망이 있다"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오늘 나누는 말씀은 어쩌면 섬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신 주님의 복음이다.
본문에 나오는 세족의 섬김의 행위는 사랑에서 나왔고, 그 사랑은 끝까지 베푸시는 사랑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더러운 발을 씻어주는 이상한 상황이 벌여졌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세상의 왕국을 세운다는 확신을 가지고 누가 더 큰 가를 논쟁했다. 어처구니 없는 모습이었다. 그들을 바로보는 예수님의 마음은 낙심하고 안타까웠다. 그런 상황에서 제자의 발을 씻긴 것을 보면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해석이 가능하다.
예수님은 스스로 가장 파워풀한 존재임을 알았지만 가장 약한 종의 형태를 취했으며, 가장 거룩한 존재임을 알았지만 가장 더러운 인간의 발을 씻겨주셨다. 높고 파워풀하고 큰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낮은 곳에 내려와 발을 씻겨주는 효과는 크다.
뉴욕 목사회 홈페이지를 보니 회장으로 취임한 김종덕 목사의 인사가 나왔다. 김종덕 목사는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 섬기겠으며, 소외된 목회자를 돌아보며 섬기겠다"고 말했다. 참으로 중요한 결단이다.
지역사회를 섬김으로서 교회를 향해 손가락질 하는 사람조차도 "우리지역에 교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교인들이 있어 세상은 소망이 있다" 라는 소리를 들으려면, 교회문화가 섬김의 문화로 세워저여 한다. 섬김의 문화로 변할려면 교회를 이끌어 가는 목사인 우리 리더들의 모임이 섬김의 자리로 바뀌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임기동안 소외된 목회자들를 섬기겠다고 한 것은 하나님이 귀하게 세우시고 담아주신 목사님들의 마음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목회를 하다가 뉴저지에 개척하고 조금씩 목회를 배워가는 과정에서 섬김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았다. 한가지 경험한 것은 진정으로 섬기기 위해서는 모든 상황속에서 나자신을 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그 상황의 중앙에 여전히 있으면 생각이 많이 복잡해 진다.
"사태가 이렇게 진행이 되면 나는 어떻게 되나?", "이런식으로 하면 내 자존심은 어떻게 되나", "내위치는? 사람이 나를 바라보는 눈은?" 이런 복잡한 생각이 든다. 하나님의 은혜로 나는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이 교회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생각을 바꾸고 바라보면 하나님의 세계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 상황속에도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을 조금씩 깨닫아 지기 시작한다. 내가 중앙에 자리잡을 때는 그것이 하나도 보이지 않더니 나를 빼놓고 다시 보니 하나님이 원하시고 펼쳐가시는 하나님의 세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진정 섬긴다는 것은 나를 실망시키는 일이 있더라도 끝까지 품는 것이고, 내가 낮은 종의 자리에 내려가도 하나님의 뜻을 펼쳐가는 것이다.
오랫전에 읽었던 글중에 김동길 교수 에세이집에 모략속에서 백의종군하다 죽은 이순신 장군을 바보라고 한 내용이 나온다. 똑똑한 현대인들, 계산 빠른 현대인들, 인본주의를 앞세우는 그들에게 참 하나님의 복음과 사랑을 전할수 있는 길은 어쩌면 바보같은 지도자가 되는 길 밖에 없다.
사람들이 어떻게 보든지, 자존심을 어떻게 되든지 예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묵묵히 낮아져서 섬기며 필요하다면 발까지 씻어주는 섬기는 리더십이 이시대에 가장 파워풀한 목회 리더십이다.
목회하기 힘든 시대이다. 믿는 사람들 조차 모든 것이 과학적이고 계산적이고 인본주의적으로 자꾸 흘러간다. 신앙은 하나님의 전지전능 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고 그래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신비한 역사를 체험해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성적이며 계산적이 되니 목회가 힘들어진다.
더우기 한국에는 반교회적 운동이 강하다. 교회에 반기를 드는 사람이 많아졌다. 몇해전 샘물교회 아프카니스탄 사건은 그것을 표면화 시켜 주었다. 그렇게 촛불시위를 잘하는 한국사회가 좋은 일을 하러 갔다가 납치가 되었는데도 촛불시위 대신 교회를 공격했다.
이렇게 어려워진 이시대에 다양하게 교회에 도전한다. "왜 너의 개신교만 배타적이냐", "왜 개신교는 독선적이냐", "왜 개신교만 구원이 있다고 고집을 부리느냐"라고 불평한다. 오늘날 목회하는 우리는 상당히 어려운 시대에 사명을 받았다.
숙제는 그러한 현실속에서 복음의 핵심적인 내용을 절대로 변하지 않고, 어떻게 이시대에 그리스도를 전하고 세상을 변화시킬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오셔서 보여주신 방법외에는 다른 방법은 없다고 본다. 예수님은 변하지 않은 구원의 진리를 선포하시고 낮아져 섬기셨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 하셨다.
교리적인 것과 인본주의를 앞세우고 개신교를 공격하고 배타적이고 독선적이라 말하는 사람에게 교회가 낮아져서 섬기면 "그래도 저들이 있어 세상이 살만하다", "그래도 교회가 있어 세상에 소망이 있다"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오늘 나누는 말씀은 어쩌면 섬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신 주님의 복음이다.
본문에 나오는 세족의 섬김의 행위는 사랑에서 나왔고, 그 사랑은 끝까지 베푸시는 사랑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더러운 발을 씻어주는 이상한 상황이 벌여졌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세상의 왕국을 세운다는 확신을 가지고 누가 더 큰 가를 논쟁했다. 어처구니 없는 모습이었다. 그들을 바로보는 예수님의 마음은 낙심하고 안타까웠다. 그런 상황에서 제자의 발을 씻긴 것을 보면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해석이 가능하다.
예수님은 스스로 가장 파워풀한 존재임을 알았지만 가장 약한 종의 형태를 취했으며, 가장 거룩한 존재임을 알았지만 가장 더러운 인간의 발을 씻겨주셨다. 높고 파워풀하고 큰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낮은 곳에 내려와 발을 씻겨주는 효과는 크다.
뉴욕 목사회 홈페이지를 보니 회장으로 취임한 김종덕 목사의 인사가 나왔다. 김종덕 목사는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 섬기겠으며, 소외된 목회자를 돌아보며 섬기겠다"고 말했다. 참으로 중요한 결단이다.
지역사회를 섬김으로서 교회를 향해 손가락질 하는 사람조차도 "우리지역에 교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교인들이 있어 세상은 소망이 있다" 라는 소리를 들으려면, 교회문화가 섬김의 문화로 세워저여 한다. 섬김의 문화로 변할려면 교회를 이끌어 가는 목사인 우리 리더들의 모임이 섬김의 자리로 바뀌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임기동안 소외된 목회자들를 섬기겠다고 한 것은 하나님이 귀하게 세우시고 담아주신 목사님들의 마음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목회를 하다가 뉴저지에 개척하고 조금씩 목회를 배워가는 과정에서 섬김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았다. 한가지 경험한 것은 진정으로 섬기기 위해서는 모든 상황속에서 나자신을 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그 상황의 중앙에 여전히 있으면 생각이 많이 복잡해 진다.
"사태가 이렇게 진행이 되면 나는 어떻게 되나?", "이런식으로 하면 내 자존심은 어떻게 되나", "내위치는? 사람이 나를 바라보는 눈은?" 이런 복잡한 생각이 든다. 하나님의 은혜로 나는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이 교회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생각을 바꾸고 바라보면 하나님의 세계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 상황속에도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을 조금씩 깨닫아 지기 시작한다. 내가 중앙에 자리잡을 때는 그것이 하나도 보이지 않더니 나를 빼놓고 다시 보니 하나님이 원하시고 펼쳐가시는 하나님의 세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진정 섬긴다는 것은 나를 실망시키는 일이 있더라도 끝까지 품는 것이고, 내가 낮은 종의 자리에 내려가도 하나님의 뜻을 펼쳐가는 것이다.
오랫전에 읽었던 글중에 김동길 교수 에세이집에 모략속에서 백의종군하다 죽은 이순신 장군을 바보라고 한 내용이 나온다. 똑똑한 현대인들, 계산 빠른 현대인들, 인본주의를 앞세우는 그들에게 참 하나님의 복음과 사랑을 전할수 있는 길은 어쩌면 바보같은 지도자가 되는 길 밖에 없다.
사람들이 어떻게 보든지, 자존심을 어떻게 되든지 예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묵묵히 낮아져서 섬기며 필요하다면 발까지 씻어주는 섬기는 리더십이 이시대에 가장 파워풀한 목회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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