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택 목사 “믿음은 암기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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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ㆍ2017-01-28 11:42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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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많은 집회에 참여하여 취재를 했지만 가장 인상에 남는 몇 개를 꼽으라면 12월 16일(금) 뉴욕어린양교회(박윤선 목사)에서 열렸던 장종택 목사 찬양집회도 반드시 들어갈 것이다. 장종택 목사는 ‘은혜로다’, ‘다윗처럼’, ‘생명과 바꾼’, ‘내 선한 목자 되신 주’, ‘내 삶 속에 주님 없었다면’ 등 찬양을 만든 찬양 사역자이다.
하지만 이날 집회는 찬양집회가 아니라 간증집회였다. 2005년 1월 ‘항NMDA수용성뇌염’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딸 온유가 입원하고 일어났던 고난과 하나님의 역사를 간증하는데 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그리고 말씀집회였다. 믿는다고 하지만 삶속에서는 전혀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지 않는, 삶의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이 세대를 질타했다. 집회는 거의 자정까지 길게 이어졌다.
1.
온유를 돌보며 중환자실에 죽음과 삶의 현장을 보게 되고 처절한 마음을 가졌다. 그때 깨닫은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었다. 하나님도 자신과 같은 마음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입장을 잘 생각을 안한다. 나도 그랬다. 하나님은 ‘갑’이신 분이시다.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소유하신 분이시기에 우리는 ‘을’이라고 생각하고 항상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의 입장이 아니라 내 이야기만 하고 내 처지와 내 절박함만 이야기했다. 제가 그랬다. 하지만 죽어가는 온유를 보면서 내 찢어지는 가슴에 붙잡고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죽이셨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얼마나 작은 별인지 아는가? 지구가 속해있는 은하계인 태양계는 2천억 개의 별이 모여서 조그마한 은하계를 만든다. 태양계에서 가장 큰 별은 지구를 비교하면 20만 배 크다. 하나님은 그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 사는 인간을 위해 자기 아들을 보내셨다.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은하계는 2백만 광년이 떨어진 안드로메다인데 2~4천억 개의 별이 있다. 그런 은하계가 수천 개 모이면 은하단이 된다. 그 안에 있는 지구가 얼마나 작은지 알겠는가.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인간에게 주셨고 그냥 주신 것도 아니다. 예수님은 온갖 수모를 당하시고 채찍에 맞아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을 당하셨다. 십자가에 달려서도 안죽으면 죽이는 방법이 정해져 있다. 밑에서 대각선으로 창을 찔러 심장을 관통하게 만든다. 그렇게 찔려 피와 물을 쏟으시는 것을 하나님이 보고 계셨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그런 아픔과 예수님의 찢어지는 심장을 통해서 여기에 앉아있는 것이다. 우리는 은혜라는 단어와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 천박하게 다루고 있다. 그래서 요한복음 3:16에 나오는 “이처럼”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절실히 깨닫았다.
2.
온유는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나를 보지 못했다. 그것을 보고 미칠 것 같은 안타까움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안타까움이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지 못하고 눈만 떠 있는 온유가 바로 저였다. 오늘 우리들은 세상을 열심히 살고 있는데 그런데 과연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고 있는가? 아니다.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거짓말과 불법을 저지를 때 하나님께서는 안된다고 그렇게 소리치시는데 그런 하나님을 뒤로하고 살아간다. 그런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들통이 나야 형통에 이른다.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잘 모르고 살아간다. 최근 한국에서 1만 명이 모이는 교회에서 집회하면서 이런 메시지를 전했다. 오늘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였는데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이 교회를 다닌다는 명목아래 그리스도인 것처럼 앉아있는 가짜가 많다고 했다. 솔직히 말해서 여러분들에게 살면서 스마트폰 보다 하나님이 덜 귀중하지 않는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가 어디에 있는가? 증거를 대라고 하면 말을 못한다. 그냥 교회를 다니면 구원을 받겠지 그렇게 알고 교회를 다닌다. 단지 들통이 안 나는 것이다. 우리들이 교회에 앉아 있는 모습은 진정한 우리들의 모습이 아니다. 교회에서는 웃으며 섬기지만 진실한 모습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 앉은 이 모습이 우리의 진짜 모습인 줄 안다.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하다.
내가 교회를 다닌다는 말을 안하면 세상도 내가 그리스도인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성경에 보면 열처녀 비유가 나온다. 어리석은 5처녀는 비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열 처녀 모두 예수님을 기다렸지만 어리석은 5처녀들은 준비를 못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자리에 앉아있다고 다 구원을 받은 것은 아니다. 특히 이민교회는 믿음보다 다른 목적으로 교회에 많이 온다. 오늘 여러분의 정체가 무엇인지 들통이 나야, 내가 거짓 그리스도인 것이 들통이 나야 다시 회심이 일어난다. 하나님이 아무리 불러도 사망의 잠을 자는 우리가 되어서는 안된다.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는 온유의 모습이 제 모습이었다.
▲어린양교회와 장종택 목사의 찬양
3.
달라스에서 13년을 살았다. 영주권이 나오고 한국에 나갔는데 10여년 만에 한국교회가 뭔가 이상해졌다. 제가 신학교에서 배운 것과 제가 추구했던 예배와 달랐다. 제가 배운 기독교 신앙은 예배당에서 고백했던 것이 삶에서도 여전히 이어지는 것이라고 배웠다. 삶의 예배를 배웠다. 그렇게 하려 노력했다. 그런데 10여년 만에 한국에 가니 예배당에서의 삶과 밖의 삶이 다른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이중적인 삶을 산다. 그래서 그때 ‘개독교’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목사를 보고 쓰레기에서 딴 ‘목레기’라는 말을 듣고 충격이 컸다. 한국 기독교가 이것이 뭐지 라는 놀라움이 있었다. 큰 캠프를 초청을 받아 갔는데 참가한 사람들이 막 뛰면서 예배했다. 1995년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미국에 왔는데 당시만 해도 한국은 찬양할 때 박수치면 순복음교회이었을 정도였다. 고신 합동 통합 등 장로교단들은 모두가 경건하고 조용한 예배를 드렸다. 12년 만에 가니 미국처럼 뛰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을 보고 감동했다. 그런데 감동이 짧게 끝났다. 열심히 찬양하던 아이들이 찬양이 끝나고 말씀을 전하기 위해 목사가 올라오니 3분의 2가 핸드폰을 꺼내 딴 짓을 하고 놀았다. 예배팀은 나가 안 들어왔다.
그런 것을 보고 미국에 다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기도했다. “하나님, 이것이 무엇입니까? 한국교회의 예배가 무엇입니까? 한국교회는 삶의 예배의 부흥이 아니라 어쩌면 종교행위의 부흥 혹은 예배음악의 부흥입니까? 그러면 제가 한국에 가겠습니다”라고 서원을 했다. 영주권도 버리고 한국에서 오라는데도 없었지만 친구에게 보증금 3백만 원을 빌려 동두촌에 방을 얻었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보냈다. 그때 온유가 태어났다. 곰팡이가 가득한 방에서 아이가 천식에 걸려 어려워했고 불치병도 걸렸다. 너무 하나님께 화가 나 이럴 수 없다고 울부짖었다.
4.
그때 깨달은 것은 믿음은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신천지와 다를 바 없다. 신천지는 일주일에 4-5번 교육받으러 가 성경비유를 배운다. 오전오후 공부하며 세뇌 당한다. 우리도 다를 바 없다. 주일에 가서 성경공부와 제자훈련할 때 세뇌 받는 것 아닌가. 암기하는 것 아닌가. 주일학교에서도 하나님이 이런 분이라고 암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천지보다 암기를 덜하고 세뇌를 덜 받는다. 열정이 그들과 비교가 안된다. 그런데 달라져야 할 것은 그들의 교주는 이만희이고 죽을 인생인데 우리는 우리를 만드신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그것이 삶에 드러나야 되는데 안 그러니 신천지와 비교하면 더 못한 것이다. 그냥 암기했던 것이다. 저도 그렇게 살았다. 그러니 화가 나는 것이다. 내가 배운 것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며, 하나님은 언제나 은혜가 풍성하시고 좋으신 분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이제 나를 힘들게 하는 하나님으로 다가왔다. 내가 배운 하나님과 다른 하나님으로 오신 것이다. 저는 이때까지 내가 만든 하나님을 생각한 것이다. 암기한 하나님.
5.
그래서 믿음은 암기하는 것이 아니구나. 삶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 닫았다. 그래서 터져 나오는 울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때 음성이 하나 들렸다. “너 이래도 나를 신뢰하느냐?” 그 소리가 내 가슴을 쾅 쳤다. 우리 집안은 4대째 예수를 믿은 집안이다. 늘 들었던 말이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합니다’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음성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너 이래도 나를 신뢰하느냐”라는 말씀을 들으면서도 온유의 처참한 모습을 보면 대답을 바로 하지 못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너무 쉽게 말했던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이 이렇게 두렵고 무거운 단어인데 함부로 내뱉은 내가 순간 부끄러워 답하기를 주저했다. 그 다음으로 들려온 음성은 “네가 한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지”라는 것이었다. 그동안 하나님께 많은 이야기를 했다. 찬송하며 ‘주 예수보다 귀한 것이 없다’고 고백했다. 설교를 들을 때 ‘아멘’으로 고백했다. 그러면서도 처참한 환경에 있는 딸을 보면서 믿음이 안간 것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까지 지었는데도 책임을 안지고 있었던 것이다.
▲장종택 목사의 눈물의 간증
6.
왜 세상은 우리 보고 개독교라고 하는지 아는가? 왜 목사를 보고 쓰레기라고 하는지 아는가? 세상은 우리가 교회에서 어떤 말을 하는지 안다. 그래서 “너희들은 교회가서 예배할 때 무엇이라고 하는가. 정직해야 한다고 순결하게 산다고 불법을 안 저지른다고 이웃을 사랑한다고 했는데 그렇게 말한 것들을 지키니. 왜 그렇게 한 말을 안 지키고 책임을 안지고 사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예수 믿는 사람이 더하고 자기유익을 위해 남을 짓밟는다. 교회에서 한 말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아 세상이 던진 말이 개독교이다. 아닌가? 예배당에서 그렇게 하나님께 고백한 다음에 예배당 떠나면 어떻게 하는가? 불법을 저지르지 않는가? 회계사 사무실 3년을 일하면서 수많은 크리스찬들이 거짓말하는 것을 보았다.
예배당에서 하나님께 고백한 말을 공수표를 던지듯이 던지고 내 마음대로 살지만 입으로는 주예수보다 더 귀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하나님을 절대가치로 두고 살겠다고 고백하지만 삶은 다른 절대가치 돈과 성공을 위해 살아간다. 그렇게 하나님을 무시하고 살았던 사망의 잠을 잤던 우리에게 하나님이 하고 싶었던 말씀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그런 마음을 주셨다. (중보기도에 대한 정종택 목사의 새로운 시각에 대한 기사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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