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자녀에게 단 한가지 목회나 신앙의 교훈을 전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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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17-04-15 19:3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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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목회한 목사에게는 누구나 목회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목회관이 있을 것이며, 마찬가지로 오래 신앙생활을 한 성도들은 신앙생활을 하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기자로서 많은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한마디라도 더 좋은 답을 이끌어 내기위해 아들에게 딸에게 단 한 가지를 전해 준다면 무엇을 말해주겠느냐고 묻곤 했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가장 귀한 것을 주지 않겠는가? 독자 여러분들은 자녀들에게 전할 목회의 가장 귀한 지침이나 신앙생활에서 가장 귀한 노하우는 무엇인가?
기독교대한감리회 직전 감독회장 전용재 목사가 지난 2월 27일(월) 가나안교회에서 열린 목회자 세미나에서 막 목사안수를 받은 아들 목사에게 가장 귀한 목회적 교훈을 나눈 일화를 전했다. 그리고 전 목사는 목사에게 중요한 3가지 관계 -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과의 관계, 환경과의 관계를 통해 어떻게 승리하는 하나님의 종이 될지 자신의 경험과 말씀을 통해 나누었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
목사는 어떤 사람일까? 여러 측면에서 생각하면 목사는 관계성의 존재로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았다.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관계적인 존재이다. 관계를 잘하면 귀한 목회자가 되는 것이고 관계를 잘못하면 실패한 목회자가 되고 자신에게도 실패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크게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과의 관계, 환경과의 관계에 대한 목회자의 자세에 대해 나누겠다.
1.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가 목회자에게 중요하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데 목회자들이 그것을 순간순간 잊어버린다. 정말 목회자로서 목회를 바르게 하려면 하나님과의 관계에 초점을 두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날마다 하나님과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해야 한다. 지극히 당연한데도 잊어버리는데 몇 가지 각도에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모델 삼는다던 아들이 목사가 된다고 1996년 감신대에 들어갔지만 데모하고 시대적인 혼란가운데 1년 만에 자퇴했다. 그런데 일반대학 국제경영학을 공부하고 군대에 다녀오더니 목회를 해보겠다고 하면서 어릴 때 살았던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UMC에서 목사가 되었다. 목사안수를 받은 후 2시간 운전을 하며 집으로 가는 도중 아버지로서 선배목사로서 이야기를 하나 해주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생겨 고민하다가 떠 오른 이야기를 해 주었다.
“너는 이제부터 진짜 하나님의 종이다. 너는 하나님의 종이니 앞으로 너의 진로, 어느 목회지로 갈지 또는 어떤 목회를 할지는 나와 의논은 하지만 결정은 나와 하면 안된다. 너는 아버지의 종이 아니고 하나님의 종이다. 하나님과 의논해서 해야 한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아들에게 해주었고 지금도 진로를 놓고 고민할 때 마다 아버지로서 조언은 하지만 최종결론은 하나님 앞에 여쭙고 의논하고 하나님의 결제를 받으라고 한다.
목회하면서 스트레스가 왜 없겠는가? 제가 1981년에 LA지역에서 한인교회를 개척했다. 한국에서 이미 신학을 공부하고 다시 미국에 와서 목회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마치고 다른 신학교에서 다시 박사과정을 공부하며 자신감 충만해 있을 때 였다. 개척멤버가 없어서 한인신문에서 작은 박스 광고를 내가 4식구와 개척을 했다. 당시 1천여 명이 출석하는 UMC 미국교회에서 장소 등 모든 것을 무료로 제공해 주었다. 그런데 주일만 되면 작아지는 자신을 느꼈다. 미국교회는 1천명 모여 예배드리는데 우리는 10명도 안되었다. 1년이 지나니 조바심이 나고 스트레스가 쌓였다.
나 같은 고학력자가 세상에 나가 택시기사를 해도 이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목회에 회의가 들었다. 이만한 학력과 경력을 갖추고 준비되어 개척하면 사람들이 몰려와야지 그렇지 못한 현실에 화도 나고 하나님에 대한 스트레스가 쌓이고 주일만 되면 위축이 되었다.
예배당에 밤에 들어가 무릎을 꿇었는데 처음에는 기도도 안나왔다. 이 큰 예배당을 다 차지는 못할망정 한 줄도 안차는 현실이 원망스러웠다. 이렇게 외롭고 처절하고 방황하며 위축되는데 “하나님 알기는 하세요” 원망하면서 눈물이 막난다. 참 많이 울었다. 예배당 장의자를 붙잡고 기도하면서 의자 하나에 한명만 앉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밤새 몸부림치며 그렇게 울었다. 그리고 그런 원망의 시간이 지나면 다음에 나오는 기도는 “하나님 아시나요”가 아니라 “하나님 아시죠”라는 기도였다. “저의 위축되고 아픈 마음을 하나님 아시죠”라고 기도하면서 사람은 몰라주어도 하나님은 아신다는 응답을 받으면 그때부터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용기가 생기고 희망이 생긴다.
그것이 주의 종이 가는 길이다. 목회를 하다보면 그런 외로움 말고 사람에게 겪는 배신은 참 아프다.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 당하는 경우 너무 힘들다. 공항에서 픽업하여 갈 데가 없다면 며칠씩 먹여주고 재워주고, 운전을 가르치고 취직도 시켜주고, 사회보장번호도 받아주고 은행도 오픈하는 것을 도와주었는데 떠나면서 그냥 떠나는 것도 아니라 돌을 던지고 떠난다. 그것이 스트레스이고 아픔이었다. 그런 것들이 계속 안에 남아있으면 벌써 쓰러졌을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풀었느냐 하면 하나님 앞에서 풀었다. 목회자는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 존재인 것은 사실인데 그 스트레스를 하나님 안에서 풀어야 한다. 그런 스트레스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풀면 응어리가 풀린다. 그래서 우리 목회자는 어쩔 수 없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제일 소중하게 여긴다. 하지만 목회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눈에 보이는 교인과의 관계나 환경과의 관계 같은 눈에 보이는 관계에 매달리다 보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상대적으로 약해진다.
뉴욕 퀸즈 뉴라이프교회에서 목회하는 피터 스카지로가 쓴 <정서적으로 건강한 영성>을 몇 일전에 읽었다. 피터는 목회자들이 너무 목회 사역에 치이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약해진다고 했다. 아무리 거룩하게 살고 목사로서 설교하고 이런 일에 매진해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약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는 항상 하나님과 자신과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주로 새벽기도로 표현하는데 그는 기도의 시간만이 아니라 대로는 묵상하는 시간이나 침묵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관계를 가지라고 한다. 이를 통해서 문제 있는 관계가 오히려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회복되면서 풀어진다고 말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이것은 끓임 없이 목회자들이 씨름해야 한다.
느헤미야는 목회자는 아니지만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러가서 많은 방해들이 있는데 환경을 극복하고 자기에게 준 사명을 감당하기위해 “그들의 죄를 용서하지 마시고, 그들의 죄를 못 본 체하지 마십시오. 그들이야말로 성을 쌓고 있는 우리 앞에서 주님을 모욕한 자들입니다”라고 기도했다. 느헤미야가 자기의 사역을 하면서 항상 사역의 지렛대가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해주셔야 하고, 자기에게 상처주고 방해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해결해 달라고 호소하는 하나님과의 관계속에 역사하시기를 바라는 것, 이것이 느헤미야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지극히 당연한 문제를 우리는 어떤 때는 놓치고 지나가고 있다.
목사에게 준 권위라고 생각하고 정치적인 상황을 놓고 자기 견해를 설교하고, 너무 강하게 이야기 하는 것이 목회자로서 부적절하다고 이야기하기 전에 과연 우리가 이런 문제를 놓고 하나님 앞에 얼마나 깊이 묵상하고 깊이 기도하고 있는가를 묻고 싶다. 교회에 부딪치는 문제,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문제, 교인들의 영적상황, 교인들에게서 겪고 있는 스트레스를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풀 수 있어야 한다. 저도 늘 그렇게 생각하지만 목사로서 내가 내 일을 할 때가 많다.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데 목사는 철저히 하나님의 종이라면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데, 우리가 하려고 하는 일이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인정하시고 지원하시는 일을 해야 하는데 안 그런 경우도 많다. 그것은 역시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이다.
옛날에 코람데오 운동이 있었다. 이것은 목회자들에게 기본적인 이야기인데 기본적인 것을 안다고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소흘해 질 수밖에 없는 상황과 환경을 넘어서 자꾸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려는 자세를 더 많이 가져야 한다. 목회자가 좀 더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성찰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하나님과의 깊은 묵상의 시간을 위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 피터 스카지로는 일의 분량보다 중요한 것은 잠시 멈추고 하나님의 채널에 얼마나 초점을 맞추는가 하는 것이라며 그것이 건강한 목회라고 말했다. 목사들이 일에 시달리다 보면 정서적으로 상처받고 각박해지는데 하나님 앞에 기도만 하면 영성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때는 쉼을 가지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감정적으로 건강해질 때 영성의 건강이 더해진다는 것이다.
교인들도 이런 건강하지 못한 영성을 가지고 있으면 오히려 믿음 좋은 권사가 목사에게 상처를 주고 배척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정서적으로 건강한 영성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조용한 시간들, 때로는 일을 좀 놓고 쉼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들을 찾아가야 한다는 말은 상당히 중요한 말이다. 이민목회가 얼마나 힘들고 스트레스가 많은가? 하나님과의 초점을 의식적으로 더 맞추려고 하는 노력을 통해 상처받은 마음이 회복되고 치유되는 그런 목회자가 될 때 건강한 목회를 할 수 있다.
2. 인간과의 관계
목사가 인간관계를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은 사모이다. 사모와의 인간관계가 잘되어야 한다. 옛날에는 사모와 불화하지만 목회는 나름대로 잘한 것 같은 목회자들이 더러 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힘들다. 근본적으로 피터 스카지로는 사모와 관계가 회복되면서 목회가 회복되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사모들은 참 기적적인 존재이다. 목회자는 목회와 신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목사가 되지만 그런 사모는 많지 않다. 그런 가운데 경제적인 사정가운데 목회를 놓고 교회 밖 직업을 가지는 사모들도 있지만, 사모가 거의 목회의 절반 이상 어떤 때는 목회의 80%는 사모가 한다. 장로교와 감리교가 다른 점은 일반적으로 장로교회 사모는 가정주부가 되기를 원하지만 감리교회는 사모는 목사의 동역자이다. 사모와의 관계가 중요해서 목회의 파트너가 되어 동역을 하고, 친구가 되고, 영적으로 때로는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사모가 균형을 맞추어 동역자, 동반자, 친구의 역할을 잘해야 목사들이 건강한 영성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렇지 못하면 겉으로는 건강한 영성의 소유자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진정한 의미의 영성은 세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자녀와의 관계에 대해 많이 회개했다. 목사는 바깥에 나가 남들은 구원하면서 내 가족은 구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건강한 목회자로 설려면 사모와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건강해야 한다.
교인관계에 대해서는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이라고 배웠다. 너무 가까이도 멀리도 관계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떤 때는 친족보다 더 가까워지는 것이 교인이다. 그렇다고 배를 맞부딪치면 꼭 문제가 온다. 그래서 너무 가까이 해도 안된다. 대신 목회자들끼리 영적으로 나눔을 할 수 있는 멘토링 그룹이 만들어지면 상당히 좋을 것이다. 목회자끼리 당을 짓는 것이 아니라 목회적인 신앙적인 영적인 문제를 가지고 대화할 수 있는 목회자 나눔 그룹이 있으면 참 좋을 것이다. 교인과는 그런 나눔이 잘 안된다. 불가근 불가원의 원리이다.
목회자는 교인을 말로는 섬긴다고 하는데 진짜 섬겨야 한다. 그레서 미국은 한국보다 좀 나은 것 같다. 한국교회 목사들은 말은 교회를 섬긴다고 하지만 군림을 많이 한다. 목사는 왕적인 권위 그리고 제사장적 권위를 높여 놓았는데 앞으로는 그런 구조가 많이 깨질 것이다. 이미 한국교회에서 그런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다. 민주화 시대이기에 교인들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어려운 상대라고 하는 마음이 늘 있어야 하고 진짜로 교인을 존중히 여기고 그러면서도 긍휼히 여겨야 한다. 교인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마음에서 부터 존중하고 마음에서 부터 섬기고 마음에서 부터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는 목자의 마음이 안에서 늘 넘쳐야 한다. 이런 마음이 식어지고 모자라면 목회의 균열이 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목사들이 목회하면서 교인들과 관계할 때 어떤 때는 교인들의 비위를 많이 맞춘다. 그렇게 하다 보면 교인들 뒤치다꺼리나 하고 비위 맞추는 목사가 된다. 어떤 때는 목사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하다. 그런 섬김의 모습이 되면 안된다. 교인들을 어떤 때는 측은히 여기고 보살펴야 하고 품어주어야 할 존재로 사랑하고 격려하고 섬기면서, 한편으로 그들을 끌어주고 가르쳐주어야 하는데 이것은 설교만 가지고 잘 안된다. 훈련하는 프로그램도 만들어야 한다. 말씀으로 훈련해야 한다. 단지 성경공부가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교인들이 어떤 신앙적인 변화들이 일어나도록 인도해야 한다. 교인들이 하나님 앞에 변화된 사람이 되도록 하는데 목회의 포커스를 두어야 한다.
요즘은 이민교회나 한국교회나 교인들의 요구를 듣지 않고 목회하기는 어렵다. 어떤 때는 교인들의 요구가 지극히 비성서적이다. 자기가 교회주인이다. 그것을 무조건 따라갈 수는 없지만 그것을 너무 외면하면 충돌이 일어난다. 교인들이 요구를 어디가지 들어주는가 하는 문제는 집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때로는 듣는 귀가 열리고 교인들의 의견을 수렴하면서도 영적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교회가 나갈 가장 중요한 길을 교인들과 같이 기도하고 묵상하며 답을 찾아나가는 새로운 목회의 방향을 만들지 않으면 앞으로 교회에서 민주적 요구에 대한 밀물 같은 요구들을 어떻게 감당해 나갈 수 있겠는가.
한국은 아직 덜하지만 미국에서 목사가 섬김을 받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미국에서 이민목회를 하는 분들은 한국목사와 비교하면서 그것에 갈등할 수 있다. 스스로 마음을 잘 정리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너무 목사들이 섬김을 받아서 변질되었다. 한국교회는 너무 목사들이 너무 많이 사례를 받아 변질되었다. 그것 때문에 너무 갈등하지 말라. 전에는 부흥회에 다니면서 우리교회는 이렇게 섬기는 교인이 왜 없는가 하는 갈등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지나갔고 그것은 바른 목회의 본질이 아니니 그런 방향의 유혹은 가급적 떨쳐버리고 하나님 앞에 목사가 자신을 잘 지켜나가면서 교인들과의 관계에서 승리할 수 있으면 좋겠다.
3. 환경과의 관계
목회를 하다보면 환경과 부딪치는 일이 많다. 미국에서 더군다나 개척목회하려면 넘어야 할 문제가 많다. 목사가 환경, 특히 물질의 문제를 겪으면서 사모가 일터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다. 그런데 환경을 극복하는 지혜도 하나님 안에서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교회밖에서 일을 하는가 안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교제하고 대화하고 묵상하면서 필요하다면 목회자도 나가 일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환경과의 관계 때문에 무조건 위축되거나 무조건 타협하거나 무조건 굴복해서는 목회자로서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환경의 문제도 하나님 앞에서 씨름해야 한다. 그것을 느헤미야에서 배워야 한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려 할 때 사람들이 반대하고 백성들이 반대했지만, 느헤미야는 먼저 그 문제를 가장 먼저 하나님 앞에서 풀었다. 그리고 목회자는 교인들에 끌려가면 안되고 끌고 가는 사람임을 잊어버리면 안된다. 무조건 교인들의 비위를 맞추고 뒷바라지를 하다보면 끌려가는 사람이 된다. 그러면 목회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린다. 목회자는 어려운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의연하면서 교인들을 끌고 앞으로 나갈 수 있어야 하고 반대를 막아낼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결론은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가정, 교인), 그리고 환경과의 관계 등 3가지 관계가 결국 수직적인 관계 안에서 다 풀어지고 열려지는 것이 목회이다. 그런 일에 더욱 더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수직적인 관계보다 환경이나 교인과의 관계 같은 수평적인 관계를 자꾸 집중하다보면 수직적인 관계를 놓쳐버리기에 수평적인 관계가 더 혼란해지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 목회이다. 3가지 관계를 잘하되 수직적인 관계가 축이 되어서 같이 움직여져야 한다.
환경문제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기도하면서 지혜를 받고 열어가야 한다. 부득이 교회밖에서 일을 해야 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런 것에 더 집중을 할 수 있어야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 아니겠는가? 그런 기본적인 자세를 가지고 목회를 하면 이제는 숫자나 업적으로 평가받기 보다는 10명이 모여도 그 안에 정말 교인들이 영적인 변화가 이루어지는, 10명속에서도 진정한 섬김과 나눔이 있는, 10명과 목사와의 관계에서 하나님이 개입하신다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근본적인 이야기이지만 그것이 중요하다. 방법보다는 근본적인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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