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샤프 선교사와 유관순, 그리고 한국 기독교 선교유적지 조성 > 뉴스

본문 바로가기


페이스 상패 해피바잉 이희상 로제 제이미


뉴스

앨리스 샤프 선교사와 유관순, 그리고 한국 기독교 선교유적지 조성

페이지 정보

교계ㆍ2018-08-24 10:34

본문

내년 2019년은 3.1 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래서 3.1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인 유관순에 대한 관심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우리들은 유관순에 대해 얼마나 많이 정확히 알고 있는가? 

 

지난 3월, 뉴욕타임스는 “유관순, 일제 통치에 저항한 한국 독립운동가(Yu Gwan-sun, a Korean Independence Activist Who Defied Japanese Rule)”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일제 식민통치에 반대하고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유관순을 소개했다.

 

1.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유관순은 1902년 12월 16일, 천안 근처에서 기독교 신자인 부모의 5명 자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유관순이 태어나고 3년이 지난 후 일본군이 한반도를 장악했으며 8년 뒤인 1910년 일본에 의해 강제병합되었다.

 

6e308b2fbace41f674fa30b26ca6f1a9_1535121224_74.jpg
▲뉴욕타임스 기사 캡처
 

유관순은 16세로 이화학당의 고등부 1학년 학생이던 1919년 3월 1일 급우들과 3.1 만세운동에 참가했으며, 5일에는 급우들과 서울 남대문에서 행진하다 일제 당국에 의해 구금되었지만 이화학당의 선교사들이 노력으로 풀려났다. 조선총독부는 3월 10일 모든 학교에 휴교령을 내리자, 유관순은 몰래 입수한 3.1 독립선언문 사본을 들고 자신의 고향인 천안으로 내려가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3.1 운동’을 전파하며 항의시위를 독려했다.

 

4월 1일에는 천안 아우내 장터에 만세운동을 위해 3천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일제 헌병대는 모인 사람들을 겨냥해 총을 쏘아 19명이 사망했는데 유관순은 무사했지만 사망자 중에 유관순의 부모도 있었다. 몇 주 동안 계속된 독립시위운동에서 7천명 이상이 일제에 의해 목숨을 잃었고, 유관순을 포함해 약 4만6000명은 투옥되었다. 유관순도 서울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었으며 감옥 내에서도 투쟁은 계속됐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유관순은 투옥 중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으깨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라고 써놓았다. 또한 “내 나라에 내 목숨을 바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이 이 소녀의 유일한 회한입니다”라는 발언도 남겼다.

 

지하 독방으로 이송된 후에도 독립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명한 유관순은 반복적으로 구타 및 고문을 당했으며, 그 후유증으로 1920년 9월 28일 옥중에서 사망했다. 그때 유관순의 나이 17세였다.

 

2.

 

뉴욕타임스는 “똑똑한 아이였던 유관순은 집 근처 감리교 교회를 다니면서 성경에 나오는 구절들을 쉽게 외웠다고 서울 소재 이화박물관 큐레이터들은 말했다. 미국 선교사 앨리스 해먼드 샤프는 유관순에게 교육을 더 받기 위해 이화학당에 다닐 것을 권장했는데 당시 그렇게 하는 한국 여성은 거의 없었다”고 보도했다.

 

바로 그 앨리스 해먼드 샤프(Alice H. Sharp, 한국명 사애리시) 선교사 기념사업회 뉴욕지회가 출범하고, 8월 17일 후러싱제일교회(김정호 목사)에서 설명회를 열었다. 

 

6e308b2fbace41f674fa30b26ca6f1a9_1535121244_57.jpg
 

기념사업회는 “한 인물이 태어나기까지 그 인물을 길러낸 귀한 스승이 있다. 유관순 열사에게는 현대교육과 기독교를 알게 해 준 스승이 있었는데 그녀가 엘리스 샤프 여선교사였다. 스승의 가르침은 하나님 안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기독교 사상이었고, 그 사상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독립만세를 주관하고 외치게 한 결과를 만들었다”라고 소개했다.

 

앨리스 샤프 선교사를 유관순의 양어머니로 소개하며 “특별히 어린 유관순을 충남 병천에서 데려다가 자신의 양녀로 삼아 영명학교에서 중등과정을 2년간 가르친 후 더 나은 교육을 받게 하기 위해서 자신이 일하던 이화학당에 교비 장학생으로 유학을 보내게 된다”라고 소개했다.

 

3.

 

앨리스 샤프 선교사는 1900년 조선에 파송을 받아 일제가 미국 선교사들을 추방하던 1939년까지 조선에서 사역했다. 일생을 조선을 바친 그녀가 조선을 떠날 때 68세의 노인이었다. 은퇴후 미국 LA지역 파사데나의 은퇴선교사 양로원에서 1972년 101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현재 파사데나 납골묘원에 안치되어 있다. 

 

기념사업회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앨리스 샤프 선교사는 1871년 캐나다 노봐스코시아에서 태어나 1897년 미국 북감리회 여선교회 해외선교부에서 설립한 뉴욕 브루클린에 위치한 ‘선교훈련센터 뉴욕지회’에 들어가서 선교사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1900년 미국 ‘북감리회 해외여선교회’ 소속으로 조선에 파송을 받았고, 서울에 와서 메리 스크랜튼 여선교사를 도와서 이화학당에서 교사로, 상동교회에서 주일학교와 순회전도자로 사역을 하였다. 1903년에 로버트 샤프 선교사와 결혼을 하였는데, 그는 미국 북감리회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을 받아 아펜젤러 목사를 도와서 배제학당과 정동교회에서 일하던 선교사였다. 두 사람은 1905년 공주로 내려와 선교기지로 공주 최초의 양옥집을 짓고 충청지역 최초의 근대적 학교인 영명학교를 설립하였고 여성들과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사업을 했다. 그러던 중 로버트 샤프 선교사는 노방전도를 하다가 장티푸스에 걸려서 1906년 3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공주 선교사 묘지에 묻히게 된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사망으로 방황하던 엘리스 샤프 선교사는 고난을 극복하고 일제가 미국 선교사들을 추방하던 1939년까지 충청지역의 여성들에게 복음과 교육을 위한 선교사역에 매진한다. 특별히 어린 유관순을 충남 병천에서 데려다가 자신의 양녀로 삼아 영명학교에서 중등과정을 2년간 가르친 후 더 나은 교육을 받게 하기 위해서 자신이 일하던 이화학당에 교비 장학생으로 유학을 보내게 된다. 엘리스 샤프 선교사는 당시 여성들을 가장 천시하던 충청지역을 순회하며 20개 여자학교들을 설립하였고, 교회들도 설립하여 여선교회 선교사역을 위해 활발한 사역을 펼쳐나갔다. 그녀는 청춘을 조선의 여성교육에 바쳤고 그 결과 한국의 많은 여성지도자들과 목회자들을 배출해 냈다.

 

4.

 

앨리스 샤프 선교사 기념사업회 뉴욕지회 설명회에는 뉴욕지회장 김성태 장로와 총무 김명래 사모 등 관계자와 함께 공주대학 전 총장이자 한국선교유적연구회 서만철 회장이 참가하여 백제문화유산을 유네스코 등재에 기여한 경험을 나누며 한국 기독교 선교유적의 세계 문화유산 등재 당위성을 설명했다.

 

6e308b2fbace41f674fa30b26ca6f1a9_1535121256_2.jpg
 

앨리스 샤프 선교사 기념사업회는 단지 앨리스 샤프 선교사를 기억하는 차원이 아니라 조선에 복음의 씨를 심은 선교사들의 희생과 헌신이 담긴 한국 선교유적지를 발굴하고 재조성하여 현장 신앙교육의 장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어려운 환경에서 전해진 귀한 기독교 복음이 오늘날 퇴색되는 것을 경계하고 차세대 기독교인들에게 도전과 소망의 신앙회복을 갖게 하며,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소망없는 사람들에게 굿뉴스인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앨리스 해먼드 샤프 선교사 기념사업회는 앞으로 선교유적지 조성을 위해 엘리스 샤프 여선교사 유해를 공주로 이전하여 남편 로버트 사프 선교사와 합장을 한 후 묘소를 만드는 일, 그리고 엘리스 샤프와 로버트 샤프 그리고 유관순 동상을 건립하고자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다. 또 한국의 기독교 선교유적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일을 추진하며, 뉴욕과 LA에 기념사업회를 설립하고 한인 청소년들을 선교유적지에 보내어 민족의 역사와 선교역사를 배우게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문의 mrkim81@gmail.com, 914-473-7401 (김명래 총무).

 

ⓒ 아멘넷 뉴스(USAamen.net)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을 쓰기 위해서는 회원가입이 필요합니다.

로제

뉴스 목록

Total 11,813건 311 페이지
뉴스 목록
기사제목 기사작성일
뉴저지 교협 총회, 회장 박상천 목사/부회장 이성일 목사 2012-09-24
NYTS 이원규 이사장 취임축하 및 장학기금 후원을 위한 동문모임 2012-09-24
송흥용 목사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교회안의 문제 해결" 2012-09-24
타드 존슨 교수 "100년간 세계 기독교의 동향" 2012-09-22
뉴욕전도협의회, 주순영 선교사 초청 연합전도부흥성회 2012-09-22
김홍도 목사와 세습비난 김동호 목사 동시 미국 방문 2012-09-21
송성모 목사 "교회세습 방지법과 카톨릭의 사제독신규정" 2012-09-20
뉴욕전도대학 현장실습 간증 왜 눈물의 바다가 되었나? 2012-09-20
ICM 대표 김호성 목사가 말하는 길(道)의 전도학 2012-09-19
뉴욕서노회, 든든한교회 4명의 출교 교인들을 정직으로 완화 2012-09-19
강기봉목사 "교회문제를 세상법정에 가져가면 자동제명하자" 2012-09-19
10차 세계 자살 예방의 날 기념 공개포럼 2012-09-16
뉴욕영광장로교회 창립 34주년 기념 감사예배 및 임직식 2012-09-16
청장년들을 위한 Fresh Anointing 2012 2012-09-16
해외한인장로회 뉴욕노회 마사야에서 제47회 정기노회 2012-09-14
김한요 목사, 뉴욕장로교회 청빙거절 2012-09-14
필라지역 복음화대회 뉴욕/뉴저지와 어떻게 다르나 2012-09-14
[인터뷰] 이승준 목사 "지금부터 시작이다" 2012-09-12
해외한인장로회 뉴저지노회 제47차 정기 노회 2012-09-12
순복음안디옥교회, 이영훈 목사 초청 성령충만 치료성회 2012-09-12
PCUSA 동부한미노회 이승준 목사 사임건 통과시켜 2012-09-11
유상열 목사가 유니온신학교 정현경 교수에게 하는 충고 댓글(2) 2012-09-11
미남침례회 뉴욕한인지방회 29회 정기총회 2012-09-11
문동환 목사 "바벨탑과 떠돌이" 출판기념회 2012-09-11
김한요 목사, 뉴욕장로교회에 안온다? 2012-09-10
게시물 검색



아멘넷의 시각게시물관리광고안내후원/연락ㆍ Copyright © USAamen.net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아멘넷(USAamen.net) - Since 2003 - 미주 한인이민교회를 미래를 위한
Flushing, New York, USA
카톡 아이디 : usaamen / USAamen@gmail.com / (917) 684-0562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