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희 선교사 "할렘선교 15년을 되돌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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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10-12-14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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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세월은 빠르게 지나간다. 15년을 되돌아 보면 내 입장에서는 부끄러운 것도 많지만 전적으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브니엘선교회 김명희 선교사
15년전 하나님께서 할렘으로 가라는 지시를 ‘오직 순종’이라는 단어로 모든 두려움을 꾹 삼키고, 어느 한인 목사님이 시무하시는(잠깐동안 시무) 작은 흑인 감리교회(Madison Ave. UMC)에 들어서게 되었다. 당시에 뉴욕에서 20년을 살았지만 애들만 키우던 가정주부로서 영어도 시원치 않았던 나로서 또 그 위험하다는 할렘에서 중년 아줌마가 나서서 도대체 어떻게 선교를 한다는 말인가?
어린이, 청소년 선교
2개월 정도 주일예배에 출석만 하다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반짝 켜졌던 아이디어는 그 교회를 중심으로 토요일에 어린이, 청소년 사역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흑인교회의 허락을 받고, 당시 갖 시작하던 큰 한인교회들의 EM(영어사역)의 목사님 몇분을 연락해 같이 할렘 애들을 상대로 어린이 사역을 하자고 회의를 열게 되었다. 근데 그날은 2월이었는데도 엄청난 눈보라가 치던 날이었다. 그런데도 고맙게도 뉴욕장로교회의 노진산 목사님, 베다니 감리교회의 엘리사 김 목사님, 웨체스터 장로교회의 리 킹 목사님들이 와주셨다.
그리고 4월부터 한 교회가 한주씩 담당하여 사역을 시작하기로 하였다. 난 어린이 사역 2주전부터 포스터를 만들어 주위의 가게나 아파트 Lobby에 붙이고, 전단지를 만들어 거리에서나 학교 앞에서 아이들에게 나눠 주었다. 드디어 사역 첫날, 뉴장의 노진산 목사님은 교회 밴 두 대에 18명의 청년들을 태우고 음악장비와 많은 양의 샌드위치를 만들어 가지고 할렘에 오셨다. 그런데 도대체 아이들이 안 나타나는거였다. 거리에서 만난 많은 애들이 온다고 약속했었는데.. 5명 정도의 교회측에서 광고 듣고 모였을 뿐이었다.
나는 2세 청년들에게 너무 챙피해서 전단지를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토요일 오전 11시의 할렘거리엔 사람들이 드물었다. 애들은 집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근처의 어린이 야구 연습장에서 구경하고 있는 애들을 달래서 5명을 데리고 들어 올 수 있었다. 첫날의 사역은 그렇게 힘들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은혜가 충만한 우리의 2세들은 숫자에 연연해 하지 않았다. 후에도 그런 것을 보니 그것은 우리 2세들의 (미국의) 문화인 것을 알았다.
나는 주중에는 전단지를 가지고 거리에 나가서 애들을 만났으나 할렘사람들의 특징은 약속에 대한 감각이 약하고, 포스터를 붙이자고 하면 쉽게 허락하나, 다음날 가보면 뜯어버리곤 했다. 이것은 그들이 마음이 약해서 쉽게 응하나 책임감 없이 곧 뜯어 버리는 성격이 형성되어 있는 면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어린이 사역엔 우리 2세들의 열정과 순수한 사랑으로 애들이 제법 모이게 되었다. 할렘엔 참으로 빈민지역으로서의 특징이 다 있었다. 한 집안의 애들의 성이 많이 다르고, 정상적인 가정은 10% 정도로, 편모나 할머니에게거 키워지거나 adoption, foster family들이 많았다. 영아 사망률도 제3세계 만큼이나 높고, 애들의 대화가 너희 엄마도 마약하니? 돈 $100.- 때문에 청소년들이 싸움이 일어나 살인하고.. 그리고 부모 중의 한명 정도 감옥에 있는 비율도 30% 이상이었다. 그러니 그 아이들의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심할까? 자극적인 할렘의 문화에 쪄든 애들에겐 복음도 들어 가기 힘들었다.
1년정도 애들 사역엔 부흥이 있었다. 그러나 흑인교인 리더들의 마음이 외부에서 와서 설치는 모습에 시기하는 마음이 들었나보다. 갑자기 회의를 하자고 나를 불러놓게 일방적으로 어린이 사역을 하는 비젼이 무엇이냐고 묻길래 이들을 장래 이 커뮤니티의 아름다운 크리스챤 리더로 키우는 것이라고 했더니, 그럴 필요 없다 자기들은 충분히 종교적이니 우리가 원하는 것은 댄스교실이나 음악, 미술교실을 원한다고 하였다. 불행하게도 당시 그 교회의 세력을 잡고 있는 가족은 믿음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많은 뉴욕의 감리교회가 상당히 자유주의 적이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리드할테니 나는 약간의 청년만 데리고 자기들 보조로 일하라고 하였다.
나는 복음을 전하는 일이 없이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당신들이 언젠가 나를 다시 필요로 하면 나를 다시 불러 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일방적으로 하루 아침에 모든 사역을 빼앗기고 말았다. (당시 태권도 사역도 하고 있었다.) 기가막힌 마음으로 금식을 하며 주님의 뜻을 묻고 있을 때 주님은 이 지역이 애들이 많아서 언젠가 다시 어린이 사역을 할 때 까지 이 교회를 떠나지 말라는 감동을 주셨다. 일을 다 뺏긴 상태에서 그 교회에 출석하는 것은 참으로 수치감을 느끼는 일이었다.
흑인 어린이들은 그들의 기대와 달리 우리 청년들을 더 원했다. 그래서 애들이 급격히 많이 줄었다. 나는 수요일 성경공부 사역에 음식을 준비하고 참석하는 일만 하며 그 교회에서 5년을 기다렸다. 이 기간동안 나의 자존심은 참으로 많이 깍였다. 그들은 5년 후 나를 다시 불러서 어린이, 청소년 사역을 다시 해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다시 시작한 어린이, 청소년 사역에 우리 딸 크리스티나가 디렉터로 10년 간 토요일도 못쉬며 힘들게 사역하고 있다. 처음엔 나의 간청으로 할 수 없이 그 어려운 짐을 맡은 어린 그에게 이것이 마음의 아픔도 되었었다.
Soup Kitchen 사역
어린이 사역이 없어진 그 때 주님은 내게 홈레스 사역을 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곧 연결되어 진 것이 124가의 Soul Saving Station Church에서 화요일에 홈레스 사역으로 점심을 대접하며 예배를 보는 일이었다. 그 교회는 50여년전 홈레스가 세운 교회로 그 창시자 이름을 따서 Billy Robert House of Hope 라는 이름의 홈레스 사역이 1주일에 4일 있었다.
처음에 몇 번 견습한 후 우리가 화요일을 맡아서 하겠다고 건의했더니,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 벌컥 화를 내며 우리가 30년을 해온 이 사역을 외부에서 끼여들어 하게 되어 고소당하는 일이 있으면 어떡하냐고 싫다고 하셨다. 그래서 내가 “나는 목사님이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안다. 기도해 보시고 답을 달라”고 했다. 그런데 오순절 교단인 이 교회의 홈레스 사역 간사들이 7명 다 기도한 결과 한결같이 하나님께서 나를 받아 들이라고 내가 큰 축복이 된다는 감동이 왔다고 해서 나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당시 어린이 사역을 10개월간 할 때, 얼굴만 알고 지내던 어느 권사님이 나를 찾었다. 그리고 홈레스 사역을 보시더니 같이 간사로 일하겠다고 하셨다. 후에 간증하시길 10월 부흥회 때 은혜를 너무 많이 받아서 교회에서 울며 12시 까지 혼자 회개기도 하고 있는데 스피커에서 나는 큰 음성으로 하나님께서 “할렘으로 가라. 김명희 선교사를 도와라. 거기 내가 구할 영혼이 많음이라.”고 하셨단다. 이 간증이 객관적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확실히 할렘으로 부르셨다는 것을 입증하게 되었다.
홈레스 사역의 처음엔 40-50명 정도 모여서 우리가 음식을 만들어 주곤 했는데, 한인교회들이 좋은 음식해오고 예배 프로그램도 좋고 했더니 점점 소문이 나서, 200명이 되더니 요새는 약 250명-300명 가량 찾아온다. 외로운 그들에겐 이 화요일이 하나의 잔치의 시간인 것 같다. 멀리서 2시간을 걸어 오는 사람도 있고, 이사를 가도 브르클린이나 브롱스에서 찾아오기도 한다.
복음은 능력이 있어서 음식을 먹기위해 온 그들이 이제는 복음을 받아 들이고 메시지를 열심히 듣기도 한다. 유태인이 개종해서 세례를 받은 일도 있었고, 마약이 끊겨 나가고 술이 끊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 중에 봉사자로 나서서 일하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이 사역은 뉴욕, 뉴져지의 여러교회가 참여해서 같이 동역선교로 해오고 있다. 우리의 한인교회들은 진정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한결같이 14년을 이 사역에 동참해 오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가장 낮은 이들 중에 계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다들 자존감이 낮고 상처 투성이며 인생에 실패한 그들은 얼마나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인가. 많은 한인교회들이 꾸준히 와서 사역하며 그들도 아웃리치로 이웃을 섬길 수 있고, 한흑간의 갈등 해결에도 좋고, 또한 복음을 미국에서 받은 우리가 미국에 베풀 수 있다는 감동도 되는 일석이조의 선교지가 할렘이라 할 수 있겠다.
브니엘 월요일, 목요일 중보기도 사역
여러 사람들이 뒤에서 기도해 주지만, 때에 따라 필요한 기도제목으로 할렘선교에 직접 기도로 힘이 되어 준 것은 월요일 목요일 중보기도 사역이었다. 월요일엔 성경공부하고 나서 중보기도하고, 목요일 밤엔 중보기도만 한다.
브니엘 회원들이 사명을 가지고 모여 말씀으로 변화되어 가고 또 변화된 만큼 능력의 기도를 해 주는 것이 얼마나 힘이 되고 기쁨이 되는지 모른다. 합심기도 하는 제목들이 응답이 되어 많은 간증들이 생긴다. 특히 자녀 문제로 기도할 때 많은 응답들을 받았다고 간증한다. 중보기도 시간엔 미국과 뉴욕과 대한민국과 예루살렘, 그리고 교포교회들 선교사님들, 브니엘 사역, Sunny Foundation 사역, 아픈 사람들, 회원들 기도를 한다.
특히 QT 나누기에서 은혜로 부서지고 변화되는 모습들은 서로가 주안에서 자라가고 싶은 도전을 주고 받게 된다. 하나님의 신부로 더 변화되어 가는 모습들이 귀하게 느껴진다.
재난보호기도 네트워크
할렘사역 할 때 비가 오게 되면 홈레스들이 오기 힘들고, 어린이들도 오기 힘들어 늘 열심히 하는 기도가 ‘사람들이 올 때는 비가 오지 않게 해주세요’ 하는 기도다. 그런데 하나님의 마음도 이런 소외된 사람들에게 있으신지 그런 기도가 응답이 잘되곤 했다.
그래서 몇 년전부터 뉴욕에 허리케인이 온다는 예보가 있으면, 제발 허리케인이 뉴욕을 비켜가게 해달라고 합심해서 기도하고 개인적으로 기도하면 몇 번 비켜가곤 했다. 그래서 지난 겨울엔 며칠 뉴욕에 폭설이 와서 (뉴욕재정이 약한데 한번 폭설로 하루 눈치우는 비용이 일천만불 든다는 기사를 봐서) 제발 눈이 변해 비가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데 당시는 기도응답이 없었는데, 며칠 후 또 눈이 3일간 내렸을 때, 뉴욕엔 이틀만 오고 하루는 엄청난 양의 비가 왔었다. 뉴져지, 뉴욕 북부, 심지어 뉴욕 남쪽에도 눈이 너무 와서 15만 가구가 정전이 되어 며칠 난방도 안되어 많은 가정이 고생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러나 뉴욕엔 문제가 없었다. 그때 이건 며칠전 우리가 열심히 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것을 알았다. 15년간 날씨에 대해 열심히 기도한 결과 우리에게 은사가 생긴 것을 알았다.
그래서 3월에 지구에 이상기후 현상이 난발하는 것을 아는 이상 우리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에 재난보호기도 네트워크를 창설하게 되었다.
뉴욕엔 퀸즈장로교회, 순복음뉴욕교회, 후러싱제일교회가 회원이 되어 재난예보시 연락해 주면 새벽기도에서 같이 기도하기로 했고, 뉴져지에는 필그림교회, 예수마을교회가 회원이 되었다. 또 각 선교사님들께 이메일해서 연락온 선교사님들 80명 가량이 같이 회원이 되었다. 그래서 선교지에서 피해연락이 오면 동시에 이메일해서 같이 기도하곤 한다. 지난 허리케인 “얼”이 온다고 했을 때도 같이 기도해서 허리케인 “얼”이 뉴욕을 비켜가는 응답을 얻었다. 그러나 예보도 없이 돌연히 들이 닥친 토네이도에 뉴욕은 큰 피해를 봤었다.
예보만 있으면 우리는 같이 기도할 수 있다.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인가.
세대간의 장벽 허물기 운동
초창기 할렘사역 할 때 어린이 사역을 도와주던 노진산 목사님, 대니 한 목사님들께 EM 목사님들 모임을 만들자고 했을 때 그분들의 반응은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모두 갖 시작한 목회에 집중하는라 그래서 인지.. 나는 영어권 사역자들이 서로 모여서 힘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서 15년 전부터 우리 브니엘에서 그 제목으로 기도해 왔다.
이제 15년의 기도가 있으니 그 일을 이뤄야겠다는 생각에 위의 목사님들께 연락했더니 모두들 감동을 받으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동안 할렘을 도우셨던 EM 목사님들 몇분께 연락을 해서 같이 5월에 모이게 되었다. 15년간 기도해 왔다는데 모두들 마음을 열어 주셨고 대니한 목사님을 회장으로 정민철 목사님, 노진산 목사님, 임이삭 목사님, 김유민 목사님, 마크 킴목사(우리 사위) 이렇게 key member로 구성해 EM 목사들로는 ‘Connections’ 라는 이름으로 구성했고, 나는 1세들을 상대로 하는 ‘세대간의 장벽 허물기 운동’을 하기로 했다.
우선 9월에 Connections에서 뉴욕, 뉴져지, 커네티컷, 3개주의 영어권 목사, 전도사들의 Banquet을 하기로 해서 처음이라 뉴욕지역엔 연락망도 없어서 우리가 새로 찾아 하느라 고생은 많았어도 그래도 40명 가량의 좋은 모임이 열리게 되었다. 이 모임의 열매로 서로 사귀어 강사로 초대하기도 하고 같이 그룹으로 만나기도 한다고 들었다. 시작이 반이라고 내년엔 더 좋은 모임이 되리라 여긴다. 이제 뉴욕지역 공동회장으로 정민철 목사님이 추대되었다.
이 모임은 1세는 경비(한 독지가의 도움으로)와 기도(많은 기도 후원자가 있음)로 돕고(우리가 처음엔 연락망도 도왔음), 2세는 실제적인 모임구성을 맡아서 진행한다는 취지로 1세와 2세의 좋은 teamwork의 본이 되는 모임이다. 아직 세대간의 화해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이 운동은 우리가 자녀에게 거는 비젼이 이루어져야 하는 필수적이고 중요한 사역이므로 앞으로 많은 기도와 또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위해 일어나야 한다고 본다.
여기까지 사역에 대한 소개와 간증을 하면서 솔직히 내 개인의 마음은 하나님께 한없이 죄송한 마음 뿐이다. 여러분의 기도를 많이 받고서도, 내가 최선을 다하지 못한 마음도 들고, 많은 것을 낭비하지 않았나 하는 마음도 들고, 또 선교사로서 여러 가지 신앙인격과 능력도 너무 부족하다는 마음 뿐이다. 그래서 간증하기가 괴로웠지만 앞으로 더 변화된 모습의 나를 바라보며 마음의 위안을 삼고 간증을 끝낸다.
15년의 기간 동안 하나님은 끊임없이 나를 연단하셨고 또 회복해 주셨다. 그 자상하신 손길은 정말 눈물겹다. 늘 기도해 주시고 물질로 후원해 주시고, 사랑으로 밀어주시고 여기까지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를 드리며... (김명희 선교사 연락처 penielmission@hanmail.net)
ⓒ 2010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브니엘선교회 김명희 선교사
15년전 하나님께서 할렘으로 가라는 지시를 ‘오직 순종’이라는 단어로 모든 두려움을 꾹 삼키고, 어느 한인 목사님이 시무하시는(잠깐동안 시무) 작은 흑인 감리교회(Madison Ave. UMC)에 들어서게 되었다. 당시에 뉴욕에서 20년을 살았지만 애들만 키우던 가정주부로서 영어도 시원치 않았던 나로서 또 그 위험하다는 할렘에서 중년 아줌마가 나서서 도대체 어떻게 선교를 한다는 말인가?
어린이, 청소년 선교
2개월 정도 주일예배에 출석만 하다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반짝 켜졌던 아이디어는 그 교회를 중심으로 토요일에 어린이, 청소년 사역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흑인교회의 허락을 받고, 당시 갖 시작하던 큰 한인교회들의 EM(영어사역)의 목사님 몇분을 연락해 같이 할렘 애들을 상대로 어린이 사역을 하자고 회의를 열게 되었다. 근데 그날은 2월이었는데도 엄청난 눈보라가 치던 날이었다. 그런데도 고맙게도 뉴욕장로교회의 노진산 목사님, 베다니 감리교회의 엘리사 김 목사님, 웨체스터 장로교회의 리 킹 목사님들이 와주셨다.
그리고 4월부터 한 교회가 한주씩 담당하여 사역을 시작하기로 하였다. 난 어린이 사역 2주전부터 포스터를 만들어 주위의 가게나 아파트 Lobby에 붙이고, 전단지를 만들어 거리에서나 학교 앞에서 아이들에게 나눠 주었다. 드디어 사역 첫날, 뉴장의 노진산 목사님은 교회 밴 두 대에 18명의 청년들을 태우고 음악장비와 많은 양의 샌드위치를 만들어 가지고 할렘에 오셨다. 그런데 도대체 아이들이 안 나타나는거였다. 거리에서 만난 많은 애들이 온다고 약속했었는데.. 5명 정도의 교회측에서 광고 듣고 모였을 뿐이었다.
나는 2세 청년들에게 너무 챙피해서 전단지를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토요일 오전 11시의 할렘거리엔 사람들이 드물었다. 애들은 집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근처의 어린이 야구 연습장에서 구경하고 있는 애들을 달래서 5명을 데리고 들어 올 수 있었다. 첫날의 사역은 그렇게 힘들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은혜가 충만한 우리의 2세들은 숫자에 연연해 하지 않았다. 후에도 그런 것을 보니 그것은 우리 2세들의 (미국의) 문화인 것을 알았다.
나는 주중에는 전단지를 가지고 거리에 나가서 애들을 만났으나 할렘사람들의 특징은 약속에 대한 감각이 약하고, 포스터를 붙이자고 하면 쉽게 허락하나, 다음날 가보면 뜯어버리곤 했다. 이것은 그들이 마음이 약해서 쉽게 응하나 책임감 없이 곧 뜯어 버리는 성격이 형성되어 있는 면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어린이 사역엔 우리 2세들의 열정과 순수한 사랑으로 애들이 제법 모이게 되었다. 할렘엔 참으로 빈민지역으로서의 특징이 다 있었다. 한 집안의 애들의 성이 많이 다르고, 정상적인 가정은 10% 정도로, 편모나 할머니에게거 키워지거나 adoption, foster family들이 많았다. 영아 사망률도 제3세계 만큼이나 높고, 애들의 대화가 너희 엄마도 마약하니? 돈 $100.- 때문에 청소년들이 싸움이 일어나 살인하고.. 그리고 부모 중의 한명 정도 감옥에 있는 비율도 30% 이상이었다. 그러니 그 아이들의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심할까? 자극적인 할렘의 문화에 쪄든 애들에겐 복음도 들어 가기 힘들었다.
1년정도 애들 사역엔 부흥이 있었다. 그러나 흑인교인 리더들의 마음이 외부에서 와서 설치는 모습에 시기하는 마음이 들었나보다. 갑자기 회의를 하자고 나를 불러놓게 일방적으로 어린이 사역을 하는 비젼이 무엇이냐고 묻길래 이들을 장래 이 커뮤니티의 아름다운 크리스챤 리더로 키우는 것이라고 했더니, 그럴 필요 없다 자기들은 충분히 종교적이니 우리가 원하는 것은 댄스교실이나 음악, 미술교실을 원한다고 하였다. 불행하게도 당시 그 교회의 세력을 잡고 있는 가족은 믿음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많은 뉴욕의 감리교회가 상당히 자유주의 적이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리드할테니 나는 약간의 청년만 데리고 자기들 보조로 일하라고 하였다.
나는 복음을 전하는 일이 없이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당신들이 언젠가 나를 다시 필요로 하면 나를 다시 불러 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일방적으로 하루 아침에 모든 사역을 빼앗기고 말았다. (당시 태권도 사역도 하고 있었다.) 기가막힌 마음으로 금식을 하며 주님의 뜻을 묻고 있을 때 주님은 이 지역이 애들이 많아서 언젠가 다시 어린이 사역을 할 때 까지 이 교회를 떠나지 말라는 감동을 주셨다. 일을 다 뺏긴 상태에서 그 교회에 출석하는 것은 참으로 수치감을 느끼는 일이었다.
흑인 어린이들은 그들의 기대와 달리 우리 청년들을 더 원했다. 그래서 애들이 급격히 많이 줄었다. 나는 수요일 성경공부 사역에 음식을 준비하고 참석하는 일만 하며 그 교회에서 5년을 기다렸다. 이 기간동안 나의 자존심은 참으로 많이 깍였다. 그들은 5년 후 나를 다시 불러서 어린이, 청소년 사역을 다시 해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다시 시작한 어린이, 청소년 사역에 우리 딸 크리스티나가 디렉터로 10년 간 토요일도 못쉬며 힘들게 사역하고 있다. 처음엔 나의 간청으로 할 수 없이 그 어려운 짐을 맡은 어린 그에게 이것이 마음의 아픔도 되었었다.
Soup Kitchen 사역
어린이 사역이 없어진 그 때 주님은 내게 홈레스 사역을 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곧 연결되어 진 것이 124가의 Soul Saving Station Church에서 화요일에 홈레스 사역으로 점심을 대접하며 예배를 보는 일이었다. 그 교회는 50여년전 홈레스가 세운 교회로 그 창시자 이름을 따서 Billy Robert House of Hope 라는 이름의 홈레스 사역이 1주일에 4일 있었다.
처음에 몇 번 견습한 후 우리가 화요일을 맡아서 하겠다고 건의했더니,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 벌컥 화를 내며 우리가 30년을 해온 이 사역을 외부에서 끼여들어 하게 되어 고소당하는 일이 있으면 어떡하냐고 싫다고 하셨다. 그래서 내가 “나는 목사님이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안다. 기도해 보시고 답을 달라”고 했다. 그런데 오순절 교단인 이 교회의 홈레스 사역 간사들이 7명 다 기도한 결과 한결같이 하나님께서 나를 받아 들이라고 내가 큰 축복이 된다는 감동이 왔다고 해서 나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당시 어린이 사역을 10개월간 할 때, 얼굴만 알고 지내던 어느 권사님이 나를 찾었다. 그리고 홈레스 사역을 보시더니 같이 간사로 일하겠다고 하셨다. 후에 간증하시길 10월 부흥회 때 은혜를 너무 많이 받아서 교회에서 울며 12시 까지 혼자 회개기도 하고 있는데 스피커에서 나는 큰 음성으로 하나님께서 “할렘으로 가라. 김명희 선교사를 도와라. 거기 내가 구할 영혼이 많음이라.”고 하셨단다. 이 간증이 객관적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확실히 할렘으로 부르셨다는 것을 입증하게 되었다.
홈레스 사역의 처음엔 40-50명 정도 모여서 우리가 음식을 만들어 주곤 했는데, 한인교회들이 좋은 음식해오고 예배 프로그램도 좋고 했더니 점점 소문이 나서, 200명이 되더니 요새는 약 250명-300명 가량 찾아온다. 외로운 그들에겐 이 화요일이 하나의 잔치의 시간인 것 같다. 멀리서 2시간을 걸어 오는 사람도 있고, 이사를 가도 브르클린이나 브롱스에서 찾아오기도 한다.
복음은 능력이 있어서 음식을 먹기위해 온 그들이 이제는 복음을 받아 들이고 메시지를 열심히 듣기도 한다. 유태인이 개종해서 세례를 받은 일도 있었고, 마약이 끊겨 나가고 술이 끊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 중에 봉사자로 나서서 일하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이 사역은 뉴욕, 뉴져지의 여러교회가 참여해서 같이 동역선교로 해오고 있다. 우리의 한인교회들은 진정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한결같이 14년을 이 사역에 동참해 오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가장 낮은 이들 중에 계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다들 자존감이 낮고 상처 투성이며 인생에 실패한 그들은 얼마나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인가. 많은 한인교회들이 꾸준히 와서 사역하며 그들도 아웃리치로 이웃을 섬길 수 있고, 한흑간의 갈등 해결에도 좋고, 또한 복음을 미국에서 받은 우리가 미국에 베풀 수 있다는 감동도 되는 일석이조의 선교지가 할렘이라 할 수 있겠다.
브니엘 월요일, 목요일 중보기도 사역
여러 사람들이 뒤에서 기도해 주지만, 때에 따라 필요한 기도제목으로 할렘선교에 직접 기도로 힘이 되어 준 것은 월요일 목요일 중보기도 사역이었다. 월요일엔 성경공부하고 나서 중보기도하고, 목요일 밤엔 중보기도만 한다.
브니엘 회원들이 사명을 가지고 모여 말씀으로 변화되어 가고 또 변화된 만큼 능력의 기도를 해 주는 것이 얼마나 힘이 되고 기쁨이 되는지 모른다. 합심기도 하는 제목들이 응답이 되어 많은 간증들이 생긴다. 특히 자녀 문제로 기도할 때 많은 응답들을 받았다고 간증한다. 중보기도 시간엔 미국과 뉴욕과 대한민국과 예루살렘, 그리고 교포교회들 선교사님들, 브니엘 사역, Sunny Foundation 사역, 아픈 사람들, 회원들 기도를 한다.
특히 QT 나누기에서 은혜로 부서지고 변화되는 모습들은 서로가 주안에서 자라가고 싶은 도전을 주고 받게 된다. 하나님의 신부로 더 변화되어 가는 모습들이 귀하게 느껴진다.
재난보호기도 네트워크
할렘사역 할 때 비가 오게 되면 홈레스들이 오기 힘들고, 어린이들도 오기 힘들어 늘 열심히 하는 기도가 ‘사람들이 올 때는 비가 오지 않게 해주세요’ 하는 기도다. 그런데 하나님의 마음도 이런 소외된 사람들에게 있으신지 그런 기도가 응답이 잘되곤 했다.
그래서 몇 년전부터 뉴욕에 허리케인이 온다는 예보가 있으면, 제발 허리케인이 뉴욕을 비켜가게 해달라고 합심해서 기도하고 개인적으로 기도하면 몇 번 비켜가곤 했다. 그래서 지난 겨울엔 며칠 뉴욕에 폭설이 와서 (뉴욕재정이 약한데 한번 폭설로 하루 눈치우는 비용이 일천만불 든다는 기사를 봐서) 제발 눈이 변해 비가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데 당시는 기도응답이 없었는데, 며칠 후 또 눈이 3일간 내렸을 때, 뉴욕엔 이틀만 오고 하루는 엄청난 양의 비가 왔었다. 뉴져지, 뉴욕 북부, 심지어 뉴욕 남쪽에도 눈이 너무 와서 15만 가구가 정전이 되어 며칠 난방도 안되어 많은 가정이 고생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러나 뉴욕엔 문제가 없었다. 그때 이건 며칠전 우리가 열심히 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것을 알았다. 15년간 날씨에 대해 열심히 기도한 결과 우리에게 은사가 생긴 것을 알았다.
그래서 3월에 지구에 이상기후 현상이 난발하는 것을 아는 이상 우리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에 재난보호기도 네트워크를 창설하게 되었다.
뉴욕엔 퀸즈장로교회, 순복음뉴욕교회, 후러싱제일교회가 회원이 되어 재난예보시 연락해 주면 새벽기도에서 같이 기도하기로 했고, 뉴져지에는 필그림교회, 예수마을교회가 회원이 되었다. 또 각 선교사님들께 이메일해서 연락온 선교사님들 80명 가량이 같이 회원이 되었다. 그래서 선교지에서 피해연락이 오면 동시에 이메일해서 같이 기도하곤 한다. 지난 허리케인 “얼”이 온다고 했을 때도 같이 기도해서 허리케인 “얼”이 뉴욕을 비켜가는 응답을 얻었다. 그러나 예보도 없이 돌연히 들이 닥친 토네이도에 뉴욕은 큰 피해를 봤었다.
예보만 있으면 우리는 같이 기도할 수 있다.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인가.
세대간의 장벽 허물기 운동
초창기 할렘사역 할 때 어린이 사역을 도와주던 노진산 목사님, 대니 한 목사님들께 EM 목사님들 모임을 만들자고 했을 때 그분들의 반응은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모두 갖 시작한 목회에 집중하는라 그래서 인지.. 나는 영어권 사역자들이 서로 모여서 힘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서 15년 전부터 우리 브니엘에서 그 제목으로 기도해 왔다.
이제 15년의 기도가 있으니 그 일을 이뤄야겠다는 생각에 위의 목사님들께 연락했더니 모두들 감동을 받으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동안 할렘을 도우셨던 EM 목사님들 몇분께 연락을 해서 같이 5월에 모이게 되었다. 15년간 기도해 왔다는데 모두들 마음을 열어 주셨고 대니한 목사님을 회장으로 정민철 목사님, 노진산 목사님, 임이삭 목사님, 김유민 목사님, 마크 킴목사(우리 사위) 이렇게 key member로 구성해 EM 목사들로는 ‘Connections’ 라는 이름으로 구성했고, 나는 1세들을 상대로 하는 ‘세대간의 장벽 허물기 운동’을 하기로 했다.
우선 9월에 Connections에서 뉴욕, 뉴져지, 커네티컷, 3개주의 영어권 목사, 전도사들의 Banquet을 하기로 해서 처음이라 뉴욕지역엔 연락망도 없어서 우리가 새로 찾아 하느라 고생은 많았어도 그래도 40명 가량의 좋은 모임이 열리게 되었다. 이 모임의 열매로 서로 사귀어 강사로 초대하기도 하고 같이 그룹으로 만나기도 한다고 들었다. 시작이 반이라고 내년엔 더 좋은 모임이 되리라 여긴다. 이제 뉴욕지역 공동회장으로 정민철 목사님이 추대되었다.
이 모임은 1세는 경비(한 독지가의 도움으로)와 기도(많은 기도 후원자가 있음)로 돕고(우리가 처음엔 연락망도 도왔음), 2세는 실제적인 모임구성을 맡아서 진행한다는 취지로 1세와 2세의 좋은 teamwork의 본이 되는 모임이다. 아직 세대간의 화해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이 운동은 우리가 자녀에게 거는 비젼이 이루어져야 하는 필수적이고 중요한 사역이므로 앞으로 많은 기도와 또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위해 일어나야 한다고 본다.
여기까지 사역에 대한 소개와 간증을 하면서 솔직히 내 개인의 마음은 하나님께 한없이 죄송한 마음 뿐이다. 여러분의 기도를 많이 받고서도, 내가 최선을 다하지 못한 마음도 들고, 많은 것을 낭비하지 않았나 하는 마음도 들고, 또 선교사로서 여러 가지 신앙인격과 능력도 너무 부족하다는 마음 뿐이다. 그래서 간증하기가 괴로웠지만 앞으로 더 변화된 모습의 나를 바라보며 마음의 위안을 삼고 간증을 끝낸다.
15년의 기간 동안 하나님은 끊임없이 나를 연단하셨고 또 회복해 주셨다. 그 자상하신 손길은 정말 눈물겹다. 늘 기도해 주시고 물질로 후원해 주시고, 사랑으로 밀어주시고 여기까지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를 드리며... (김명희 선교사 연락처 penielmissi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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