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길 목사 "힘든 목회를 즐거운 목회로 바꾸는 방법"
페이지 정보
정보ㆍ2011-03-04 00:00관련링크
본문
뉴저지 필그림교회(양춘길 목사)는 2월28일(월)부터 2일간 설교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둘째날 오전 이연길 목사(한국 장로회 신학대학교 객원교수)는 여호수아 5장을 본문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돕는 분이신가"라는 도전적인 제목의 말씀을 전했다.
이야기식 설교의 전문가인 이연길 목사의 설교는 어떨까 궁금했다. 여호와의 군대장관을 만난 여호수아의 본문을 흥미롭게 이야기로 풀어내며, 하나님은 우리를 돕는 분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 생각의 전환을 통해 어떻게 힘든 목회를 즐거운 목회로 바꿀수 있을까?
다음은 설교내용이다.
달라스에서 목회를 마치고 신학교 강의하러 서울로 나갔다. 처음에 가서 3시간 강의를 하니 녹초가 된다. 4년동안 목회를 안하고 잘 지내니 자금은 하루에 6시간도 문제없다. 9시간까지도 가능하다. 목회가 이렇게 골병든다는 것을 알았다. 목회를 할때는 몰랐는데 목회는 정말 힘든 것이다. 목회를 하다보면 육신적으로도 정신적으로 피곤하고 많은 문제에 직면하고 잠을 못자는 밤도 많을 것이다.
그럴때 마다 목회자들은 "하나님 도와주세요,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 교회를 인도해 주세요, 내 목회를 축복해 주세요"라고 기도하게 된다. 그때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은 잘돕는데 나를 안돕는 것 같고,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하면 안도울때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때 마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이 우리를 돕는 분인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가 마주 보이는 길갈에 진을 쳤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어 지휘관인 여호수아가 답답했을것이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자기 혼자 여리고성 가까이 까지 갔겠는가.
28살에 군목으로 최전방 부대에 배치되었다. 당시에는 철책이 없어 가끔 교전이 벌어져 군인들이 죽기도 한다. 군목이니 총을 안가지고 다녔는데 총이 없이 최전방 GP를 다니려면 오싹했다. 여호수아도 혼자 여리고 적진 가운데 가니 두려웠을것이다. 그때 갑자기 여호수아 앞에 칼을 든 키가 큰 사람이 나타났으니 놀랐을 것이다.
대담한 여호수아는 나아가 누구편이냐고 물었다. 그런데 들려온 대답은 다 아니며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왔다고 했다. 말이 떨어지자 말자 여호아가 그 앞에 엎드린다. 다시 말하면 이 사람은 여호수아 군대를 도우러 온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돕는 분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왜 여호수아는 엎드렸나. 여호수아와 백성들은 요단강을 건너 사기가 충천하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내리신 명령은 할례를 받으라는 것이다. 할례를 받으면 전쟁을 해야 할 군사들이 적진에서 일주일간 누워있어야 했다. 그것은 무장해제를 말한다. 그말은 적군이 쳐들어와 죽이면 죽으라는 이야기이다. 여호수아와 그의 군대들은 아무런 반항없이 할례를 받았다.
위기가 지나가자 하나님께서는 유월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셨다. 유월절 기간중에는 전쟁을 할수 없다. 적들이 쳐들어 오면 당해야 하며 그냥 죽어야 한다. 성질이 급한 자는 미칠 지경이었다. 그런 하나님을 얼마나 믿어야 할까, 얼마나 하나님을 순종해야 할가 고민했을 것이다. 지금은 못하고 전쟁이 끝나고 하겠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여리고는 성이 두겹으로 된 강력한 군대이다. 위기의 순간이 다 지나고 여호수아도 이제는 하나님께서 인도하겠지 하는데 여전히 하나님은 침묵하신다. 오직 답답했으면 여호수아가 자기 혼자 여리고성으로 갔을까. 그때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나타났다. 여호수아는 처음 당황했지만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너를 위해 온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 왜 왔나. 여호수아는 그의 앞에 엎드려서 경배를 한다.
전방부대에 있을때 옆 연대가 북한군하고 전투가 벌어졌다. 포탄이 날아가는 큰 전투였다. 전투가 확전이 되었다면 다시 한번 전쟁이 일어날뻔했다. 우리부대는 바로 옆부대이니 긴장하여 전투준비를 했다. 그런데 사단장이 차를 타고 왔다. 그때 연대장이 사단장에게 나를 도와달라고 말하는가. 사단장이 오면 연대장은 사단장에게 지휘봉을 넘기고 사단장이 지휘관이 된다.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온 것은 이스라엘을 도우려고 온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이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여호수아는 알아들고 엎드렸다. 모든 지휘권을 그분에게 넘긴 것이다. 당신이 지휘관이고 나는 당신이 부하이며, 당신이 우리의 지휘관으로 인도해 달라는 것이다.
군대장관은 지휘명령을 내린다. 그리고 여리고성이 무너진다. 여호수아가 승리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군대장관의 전략이 승리한것이다. 단지 나를 돕는다는 사실과 나와 함께하며 지휘관이 된다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우리는 교인들에게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신다는 말을 잘 사용한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올바른 말인가.
큰아들집에 가면 며느리는 우리부부를 무서워 하지 않는다. 우리가 아들집에 도착하면 우리가 있는 동안 살림은 나에게, 부억은 아내에게 맡긴다. 패밀리라는 것이다. 개스도 넣고 그로서리도 많이 사준다. 아들의 가족들을 위해 돈을 사용해도, 그래도 내가 가장이구나 하여 기분이 좋다.
그렇게 살면서 계시를 받았다. 이것이 함께 사는 것이고 이것이 지휘관이다. 돕는 자라면 돈만 붙여주면 그만이다. 같이 사니 아이들은 우리만 가면 행복하다. 우리 둘만 오면 집이 풍성하다고 한다. 아들집에 가면 빈털털이로 돌아오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패밀리이고 가장이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돕는 분으로 계시기를 원치 않으신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돕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고 필요할때 도와달라고 하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와서 도와주시고 다시 가시는 분이신가. 그런것이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가. 아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함께 살기를 원하시고, 함께 목회를 하기를 원하시고, 여러분의 목회를 인도하시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목회는 내가 한다고 생각한다.
저도 40대 중반쯤 목회를 그만두려고 했다. 나름대로 잘한다고 했는데 교인들이 하나도 안변하니 답답하고 회의가 생겼다. 내가 교인에 사기를 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리 설교해도 설교한 것이 이루어지지 않고 교인들은 변화도 안되는데 설교를 할 이유가 없다고 고민했다. 그때 목회의 갈림길에 서있었다.
그런데 40대중반 여인이 투병을 하다가 마지막 희망으,로 신앙을 가지고자 교회에 나왔지만 너무 늦어 교회나온지 8개월만에 죽었다. 비가 오는 날 장지로 가는데 마음속에 하나님께 불평이 생겼다. "기도하면 병이 낫고 기도의 응답을 받아야 하는데 결국은 죽었지 않습니까. 설교가 무의미합니다."
하나님께 독백을 하다가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네가 전하는 말이 네것이냐, 아니면 내것이냐. 너는 전하기만 하라. 뒷책임은 내가 감당한다." 그 주신 말씀을 받고 그날 하관예배가 부흥회가 됐다. 놀랍게도 다음부터 설교를 하면 교인들이 변한다. 이혼하려는 가정이 화합하고, 사업실패한 교인들이 말씀을 붙들고 살아난다. 내가 변한것도 설교도 변한것도 아닌데 청중은 변화되기 시작했다.
본문의 사건은 이미 요단강은 건넜고 약속의 땅을 들어가기 중간의 사건이다. 다시 말하면 본문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의 땅을 어떻게 건널수 있는가 하는 비법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그 비법을 말로 가르쳐 주시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 주시는 것이다.
할례받고, 유월절을 지키고 기다리라고 하신다. 이때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을 얻는 방법을 여호수아에게 가르쳐 주신다. 할례가 무엇인가. 창세기 16-17장을 자세히 읽어보라. 아브라함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하갈을 얻어 이스마엘을 낳았을때 하나님은 분노하셨다. 창세기 16장 마지막과 17장 첫절사이의 기간, 13년간 하나님이 침묵을 지키셨다. 얼마나 화가 나셨으면.
그리고 할례를 하라고 하셨다. 할례의 의미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굳게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함을 몸에 새기라는 이야기이다. 하나님의 백성임을 기억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겠다는 것을 몸에 새기는 것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요구하신다. "네가 정말 내종이고, 내가 너의 하나님이냐. 이 관계가 분명하냐"라고 묻고 계신다.
"네가 정말 내종이라면 내가 하라는대로 순종하겠느냐" 라며 하나님이 물으시는 것이 바로 할례이다. 우리는 할례는 받지 않지만 할례받는 마음으로 약속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어떤 큰일을 당해도 "하나님 당신은 저의 지휘관이십니다.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하라시는대로 하겠다. 죽으라면 죽겠습니다"하는 이것이 바로 할례이다.
유월절은 지키라. 유월절은 해방의 기쁨을 축하하는 것이다. 어떤 처지에 있어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종으로 삼아주신 것을 감사하고 사는 것이다. 교인들이 힘들게 해도 상관없다. 하나님이 나를 종으로 불러주신 것에 감사할 뿐이다.
예수를 잘 믿는 길은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에 있다. 로마서 5장에 나와있다. 성도들이 말씀대로 살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여호와를 기뻐하지 않는데 문제가 있다. 정말 기뻐하는 사람은 정말 잘믿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즐거워하라는 말씀을 많이하신다.
신학교에서 강의하면서 학생들에게 목회만큼 재미있는 것은 없다고 하니 신학생들은 처음 듣는 말이라고 했다. 목회가 재미있는 것은 목회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안되면 말지" 그런경우가 많다.
교회가 흔들하고 무너질것 같은 경우 하나님께 기도한다. "교회는 하나님 당신 것이다. 교회의 문을 닫으면 나는 떠나면 되지만 하나님은 창피를 당하신다." 하나님은 그런 기도를 잘들어 주신다. 기울어질것 같지만 어느날 일어나 보니 문제가 깨끗해 진다. 손하나 안댔는데.
하나님은 할례를 받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지휘관으로 모시고 그분이 목회를 하게하라. 그리고 따르는 것이 내 목회이다. 하나님은 나를 따르라고 하신다. 그것이 약속의 땅을 얻는 비결임을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신것이다.
목회가 힘들고 어렵고 답답할때가 있다, 잠을 못잘때도 있다. 이세상에 인간이 해결할수 없는 문제가 있다. 그런데 그 문제를 하늘로 가지고 가면 해결 못할것이 없다. 놀라운 비결이다. 하나님께 올라가서 해결해서 이땅에 내려오면 해결못할 일이 없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것이 아니다. 우리와 함께 하신다. 문제를 주님앞에 넘겨드리면 다시 해결하여 돌려주신다.
목회는 쉽고 재미있다. 저는 특별히 교회성장을 위해 노력한적이 없다. 단지 원칙대로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목회가 망해도 이름없는 목사가 되어도 좋다며 원칙대로 살려고 했다. 성경을 연구한 결과대로 살려고 했다. 부흥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목회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해주신다.
나중에는 감당할수 없을 정도로 넘쳐 내힘으로 감당할수 없었다. 그래서 빨리 은퇴를 했는지 모른다. 여러분 정말 하나님은 나를 돕는자로 생각하고 평생 살아갈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과 함께 평생살면서 교회 목회 가정 모든일의 주인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도록 할것인가. 그것이 여러분의 인생을 판가름할것이다. 어떤길을 선택할것인가. 기도하자.
ⓒ 아멘넷 뉴스(USAamen.net)
이야기식 설교의 전문가인 이연길 목사의 설교는 어떨까 궁금했다. 여호와의 군대장관을 만난 여호수아의 본문을 흥미롭게 이야기로 풀어내며, 하나님은 우리를 돕는 분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 생각의 전환을 통해 어떻게 힘든 목회를 즐거운 목회로 바꿀수 있을까?
다음은 설교내용이다.
달라스에서 목회를 마치고 신학교 강의하러 서울로 나갔다. 처음에 가서 3시간 강의를 하니 녹초가 된다. 4년동안 목회를 안하고 잘 지내니 자금은 하루에 6시간도 문제없다. 9시간까지도 가능하다. 목회가 이렇게 골병든다는 것을 알았다. 목회를 할때는 몰랐는데 목회는 정말 힘든 것이다. 목회를 하다보면 육신적으로도 정신적으로 피곤하고 많은 문제에 직면하고 잠을 못자는 밤도 많을 것이다.
그럴때 마다 목회자들은 "하나님 도와주세요,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 교회를 인도해 주세요, 내 목회를 축복해 주세요"라고 기도하게 된다. 그때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은 잘돕는데 나를 안돕는 것 같고,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하면 안도울때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때 마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이 우리를 돕는 분인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가 마주 보이는 길갈에 진을 쳤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어 지휘관인 여호수아가 답답했을것이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자기 혼자 여리고성 가까이 까지 갔겠는가.
28살에 군목으로 최전방 부대에 배치되었다. 당시에는 철책이 없어 가끔 교전이 벌어져 군인들이 죽기도 한다. 군목이니 총을 안가지고 다녔는데 총이 없이 최전방 GP를 다니려면 오싹했다. 여호수아도 혼자 여리고 적진 가운데 가니 두려웠을것이다. 그때 갑자기 여호수아 앞에 칼을 든 키가 큰 사람이 나타났으니 놀랐을 것이다.
대담한 여호수아는 나아가 누구편이냐고 물었다. 그런데 들려온 대답은 다 아니며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왔다고 했다. 말이 떨어지자 말자 여호아가 그 앞에 엎드린다. 다시 말하면 이 사람은 여호수아 군대를 도우러 온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돕는 분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왜 여호수아는 엎드렸나. 여호수아와 백성들은 요단강을 건너 사기가 충천하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내리신 명령은 할례를 받으라는 것이다. 할례를 받으면 전쟁을 해야 할 군사들이 적진에서 일주일간 누워있어야 했다. 그것은 무장해제를 말한다. 그말은 적군이 쳐들어와 죽이면 죽으라는 이야기이다. 여호수아와 그의 군대들은 아무런 반항없이 할례를 받았다.
위기가 지나가자 하나님께서는 유월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셨다. 유월절 기간중에는 전쟁을 할수 없다. 적들이 쳐들어 오면 당해야 하며 그냥 죽어야 한다. 성질이 급한 자는 미칠 지경이었다. 그런 하나님을 얼마나 믿어야 할까, 얼마나 하나님을 순종해야 할가 고민했을 것이다. 지금은 못하고 전쟁이 끝나고 하겠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여리고는 성이 두겹으로 된 강력한 군대이다. 위기의 순간이 다 지나고 여호수아도 이제는 하나님께서 인도하겠지 하는데 여전히 하나님은 침묵하신다. 오직 답답했으면 여호수아가 자기 혼자 여리고성으로 갔을까. 그때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나타났다. 여호수아는 처음 당황했지만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너를 위해 온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 왜 왔나. 여호수아는 그의 앞에 엎드려서 경배를 한다.
전방부대에 있을때 옆 연대가 북한군하고 전투가 벌어졌다. 포탄이 날아가는 큰 전투였다. 전투가 확전이 되었다면 다시 한번 전쟁이 일어날뻔했다. 우리부대는 바로 옆부대이니 긴장하여 전투준비를 했다. 그런데 사단장이 차를 타고 왔다. 그때 연대장이 사단장에게 나를 도와달라고 말하는가. 사단장이 오면 연대장은 사단장에게 지휘봉을 넘기고 사단장이 지휘관이 된다.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온 것은 이스라엘을 도우려고 온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이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여호수아는 알아들고 엎드렸다. 모든 지휘권을 그분에게 넘긴 것이다. 당신이 지휘관이고 나는 당신이 부하이며, 당신이 우리의 지휘관으로 인도해 달라는 것이다.
군대장관은 지휘명령을 내린다. 그리고 여리고성이 무너진다. 여호수아가 승리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군대장관의 전략이 승리한것이다. 단지 나를 돕는다는 사실과 나와 함께하며 지휘관이 된다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우리는 교인들에게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신다는 말을 잘 사용한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올바른 말인가.
큰아들집에 가면 며느리는 우리부부를 무서워 하지 않는다. 우리가 아들집에 도착하면 우리가 있는 동안 살림은 나에게, 부억은 아내에게 맡긴다. 패밀리라는 것이다. 개스도 넣고 그로서리도 많이 사준다. 아들의 가족들을 위해 돈을 사용해도, 그래도 내가 가장이구나 하여 기분이 좋다.
그렇게 살면서 계시를 받았다. 이것이 함께 사는 것이고 이것이 지휘관이다. 돕는 자라면 돈만 붙여주면 그만이다. 같이 사니 아이들은 우리만 가면 행복하다. 우리 둘만 오면 집이 풍성하다고 한다. 아들집에 가면 빈털털이로 돌아오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패밀리이고 가장이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돕는 분으로 계시기를 원치 않으신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돕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고 필요할때 도와달라고 하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와서 도와주시고 다시 가시는 분이신가. 그런것이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가. 아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함께 살기를 원하시고, 함께 목회를 하기를 원하시고, 여러분의 목회를 인도하시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목회는 내가 한다고 생각한다.
저도 40대 중반쯤 목회를 그만두려고 했다. 나름대로 잘한다고 했는데 교인들이 하나도 안변하니 답답하고 회의가 생겼다. 내가 교인에 사기를 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리 설교해도 설교한 것이 이루어지지 않고 교인들은 변화도 안되는데 설교를 할 이유가 없다고 고민했다. 그때 목회의 갈림길에 서있었다.
그런데 40대중반 여인이 투병을 하다가 마지막 희망으,로 신앙을 가지고자 교회에 나왔지만 너무 늦어 교회나온지 8개월만에 죽었다. 비가 오는 날 장지로 가는데 마음속에 하나님께 불평이 생겼다. "기도하면 병이 낫고 기도의 응답을 받아야 하는데 결국은 죽었지 않습니까. 설교가 무의미합니다."
하나님께 독백을 하다가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네가 전하는 말이 네것이냐, 아니면 내것이냐. 너는 전하기만 하라. 뒷책임은 내가 감당한다." 그 주신 말씀을 받고 그날 하관예배가 부흥회가 됐다. 놀랍게도 다음부터 설교를 하면 교인들이 변한다. 이혼하려는 가정이 화합하고, 사업실패한 교인들이 말씀을 붙들고 살아난다. 내가 변한것도 설교도 변한것도 아닌데 청중은 변화되기 시작했다.
본문의 사건은 이미 요단강은 건넜고 약속의 땅을 들어가기 중간의 사건이다. 다시 말하면 본문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의 땅을 어떻게 건널수 있는가 하는 비법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그 비법을 말로 가르쳐 주시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 주시는 것이다.
할례받고, 유월절을 지키고 기다리라고 하신다. 이때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을 얻는 방법을 여호수아에게 가르쳐 주신다. 할례가 무엇인가. 창세기 16-17장을 자세히 읽어보라. 아브라함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하갈을 얻어 이스마엘을 낳았을때 하나님은 분노하셨다. 창세기 16장 마지막과 17장 첫절사이의 기간, 13년간 하나님이 침묵을 지키셨다. 얼마나 화가 나셨으면.
그리고 할례를 하라고 하셨다. 할례의 의미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굳게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함을 몸에 새기라는 이야기이다. 하나님의 백성임을 기억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겠다는 것을 몸에 새기는 것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요구하신다. "네가 정말 내종이고, 내가 너의 하나님이냐. 이 관계가 분명하냐"라고 묻고 계신다.
"네가 정말 내종이라면 내가 하라는대로 순종하겠느냐" 라며 하나님이 물으시는 것이 바로 할례이다. 우리는 할례는 받지 않지만 할례받는 마음으로 약속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어떤 큰일을 당해도 "하나님 당신은 저의 지휘관이십니다.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하라시는대로 하겠다. 죽으라면 죽겠습니다"하는 이것이 바로 할례이다.
유월절은 지키라. 유월절은 해방의 기쁨을 축하하는 것이다. 어떤 처지에 있어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종으로 삼아주신 것을 감사하고 사는 것이다. 교인들이 힘들게 해도 상관없다. 하나님이 나를 종으로 불러주신 것에 감사할 뿐이다.
예수를 잘 믿는 길은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에 있다. 로마서 5장에 나와있다. 성도들이 말씀대로 살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여호와를 기뻐하지 않는데 문제가 있다. 정말 기뻐하는 사람은 정말 잘믿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즐거워하라는 말씀을 많이하신다.
신학교에서 강의하면서 학생들에게 목회만큼 재미있는 것은 없다고 하니 신학생들은 처음 듣는 말이라고 했다. 목회가 재미있는 것은 목회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안되면 말지" 그런경우가 많다.
교회가 흔들하고 무너질것 같은 경우 하나님께 기도한다. "교회는 하나님 당신 것이다. 교회의 문을 닫으면 나는 떠나면 되지만 하나님은 창피를 당하신다." 하나님은 그런 기도를 잘들어 주신다. 기울어질것 같지만 어느날 일어나 보니 문제가 깨끗해 진다. 손하나 안댔는데.
하나님은 할례를 받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지휘관으로 모시고 그분이 목회를 하게하라. 그리고 따르는 것이 내 목회이다. 하나님은 나를 따르라고 하신다. 그것이 약속의 땅을 얻는 비결임을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신것이다.
목회가 힘들고 어렵고 답답할때가 있다, 잠을 못잘때도 있다. 이세상에 인간이 해결할수 없는 문제가 있다. 그런데 그 문제를 하늘로 가지고 가면 해결 못할것이 없다. 놀라운 비결이다. 하나님께 올라가서 해결해서 이땅에 내려오면 해결못할 일이 없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것이 아니다. 우리와 함께 하신다. 문제를 주님앞에 넘겨드리면 다시 해결하여 돌려주신다.
목회는 쉽고 재미있다. 저는 특별히 교회성장을 위해 노력한적이 없다. 단지 원칙대로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목회가 망해도 이름없는 목사가 되어도 좋다며 원칙대로 살려고 했다. 성경을 연구한 결과대로 살려고 했다. 부흥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목회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해주신다.
나중에는 감당할수 없을 정도로 넘쳐 내힘으로 감당할수 없었다. 그래서 빨리 은퇴를 했는지 모른다. 여러분 정말 하나님은 나를 돕는자로 생각하고 평생 살아갈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과 함께 평생살면서 교회 목회 가정 모든일의 주인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도록 할것인가. 그것이 여러분의 인생을 판가름할것이다. 어떤길을 선택할것인가. 기도하자.
ⓒ 아멘넷 뉴스(USAamen.net)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