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덕 목사 "왜 유아세례는 하면서 지적 장애인 세례는 안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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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ㆍ2011-04-02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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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4월이 왜 따뜻한지 아는가. 장애인의 달을 맞이하여 하나님께서 장애인들을 향해 따뜻한 사랑을 전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남가주에 본부를 둔 조이장애선교회(대표 김홍덕 목사)는 퀸즈한인교회가 공동주최하여 제10차 장애사역 컨퍼런스를 3월 31일부터 퀸즈한인교회(이규섭 목사)에서 열었다.
'지적 장애인의 구원 문제와 장애선교'라는 주제로 열렸으며 △지적 장애인의 구원 어떻게 판단하나 △지적 장애인에게 세례를 베풀 근거는 △지적 장애인을 위한 성경공부 인도법 △장애 신학 특강 △장애선교를 위한 준비 △지적 장애인, 선교의 주체가 될 수 있나 △장애선교지 소개등으로 진행됐다.
조이장애선교회 설립자(?)는 김 목사의 딸 조이이다. 김홍덕 목사는 늦둥이 딸 조이가 다운증후군이라는 지적장애를 가진 것을 알고도 "장애를 가지고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후 놀라운 하나님의 기쁨이 임하여 딸의 이름을 '조이'라 지었다. 그리고 딸 조이의 이름을 따 2001년 '조이장애선교센타'를 설립했다.
지적장애인은 육체적인 장애인과는 다르다. 뇌성마비등으로 언어와 행동에 장애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잘아는 송명희 시인이 태어날때부터 뇌성마비로 지적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하지만 그녀는 불편한 몸에도 하루 5시간 이상의 기도와 삼십여번의 성경 통독으로 24권의 책과 100여곡의 찬양을 작사했다.
김홍덕 목사와 '지적 장애인의 구원 문제와 장애선교'라는 이번 컨퍼런스 주제에 대해 인터뷰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
컨퍼런스의 강의중 '지적 장애인의 구원 어떻게 판단하나', '지적 장애인에게 세례를 베풀 근거는'등은 주제가 도전적이다.
오늘날 교회가 지적장애인에게 세례를 주지 않는 이유가 비성경적이다. 지적장애인들은 하나님을 알수 있는 지식적인 인식능력이 없다는 것은 세상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아이큐는 세상에서 공부하는등에 사용하는 것이지, 구원과 영적성숙도를 측정하는 도구가 아니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장애를 이유도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서 배제했다는 암시를 주는 귀절은 없다. 하나님께서 장애인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다면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똑같이 구원의 반열에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장애를 이유로 구원에 배제를 안했다면 장애인도 구원의 반열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대표하는 교회에서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구원의 사람을 지적장애라는 이유로 배제를 한다면 교회는 직무유기이다. 그래서 지적장애 자녀를 가진 부모들이 가슴이 아프다. 부모들은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을 확신하는데, 지적장애 자녀들은 신앙을 고백할 능력이 없다고 교회에서 세례를 주지 않는 것 때문에 가슴이 아프다.
유아세례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이 주는데, 지적장애인에게 세례를 주는 것을 왜 꺼리는가. 성경적인 근거를 보더라도 지적장애인에게 세례를 안베풀 이유가 없다. 특별대우를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페어 플레이를 하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지적 장애인들을 교회밖으로 내몰았으니 제자리로 오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니 도전적이기는 하다.
▲김홍덕 목사 부인 김애림 사모
지적장애인들에 대한 한인교회들의 형편은 어떤가?
지적 장애인에게 세례를 주고 성찬하는 교회가 늘어나고 있다. 사랑의교회나 한빛지구촌교회에서도 그렇다. 퀸즈한인교회도 오는 부활절에 지적 장애인에게 세례를 배푸는 계기가 될것이다. 그동안 모르거나 계기가 없어서 못했는데, 이제는 지적장애인에게 세례를 오픈하는 교회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전통적인 교회들은 지적장애인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이해못하니 세례를 베풀지 못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지적장애인은 입으로 신앙을 고백못하니 어떻게 믿음을 증거하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런데 교회가 베푸는 세례는 구원받은 사람에게만 주는 구원증서가 아니다. 지상의 교회는 알곡과 가라지를 가릴 능력도 없으며, 하나님께서 그런 자격도 안주셨다. 초대교회 부터 속하여 신앙생활을 하기 원하는 사람들이 신앙공동체에 입문을 할때 환영하는 의미에서 세례를 주고 축하했다.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구원에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개신교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100%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장애인에게 세례를 주는 것은 너무 위험하지 않느냐고 말한다. 신앙에 대해 잘모르는데 어떻게 세례를 주느냐고 한다. 그렇다면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다 구원을 받는가. 많은 세례의 경우에 단지 문답서를 외우거나, 군대에서 합동세례를 받거나, 교회에서 세례를 받을때도 엉터리로 받은 사람이 많다. 지적장애인들보다 가짜들이 적다고 할수 없다.
지적장애인들은 구원받은 증표를 어떻게 나타내느냐는 질문도 있을수 있다. 믿음은 구원하심에 대한 반응이다. 반응은 고백을 통해 나오는데, 고백은 항상 소리를 통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마음이 생각이 입으로도 나오지만, 어떤 사람은 눈물로, 어떤 사람은 몸의 전율과 환희로도 나온다.
말을 하지 못하는 중증 장애인의 경우에 예배드리다 눈물을 흘리는등 주의 은혜를 체험하는 케이스를 너무 많이 본다. 지적장애자에게 모두 구원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몇년간 신앙생활을 같이 한 지적장애인에게 왜 의도적으로 배재하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신앙공동체는 함께 가는 조직체이다. 공평한 게임을 하자는 것이다.
지적 장애인들이 선교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말은 충격적이다.
그 내용을 보면 어메이징하다. 15년이상 지적장애인들을 데리고 선교를 다닌다. 선교지에는 보통사람은 못하는데 지적장애인이므로 역사가 일어나는 케이스가 많다. 예를 들어서 가주에서 2시간 걸리는 멕시코에 선교를 간다. 말잘하고 똑똑한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이 어떻게 선교를 할수 있겠느냐고 생각한다. 멕시코에 도착하니 완전히 180도가 바뀌어 그 똑똑한 사람들이 말을 못하는 장애인이 되어 버렸다.
생각이 달라져야 한다. 보통사람은 다른 문화에 가면 문화에 적응하려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지적장애인은 즉시 현지인을 친구로 만든다. 선교지에서 집회를 해도 비장애인들은 말이 안통한다고 자기끼리 시간을 보내도, 장애인들은 마을에 가서 전도지 나누어 주고 사람을 초대한다. 선교지에서 기도해줄때도 현지인들은 목사에 감동받는 것이 아니라 지적장애인 친구에게 은혜를 체험한다.
중국 청각장애인이 2천7백만명이나 된다. 대부분 지적장애를 겸한다. 중국에 가서 그들을 전도한다. 농아들은 수화를 사용하기에 쉽게 눈에 띈다. 그러면 특공대가 전도를 한다. 공안원이 보아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른다. 중국에서는 우리가 장애인이라고 부르는 농아는 마음껏 전도하고, 비장애인들이 농아가 된다. 장애인들은 동정이나 섬김의 대상을 넘어서 하나님의 나라의 선교에 사용이 될수 있다. 예수님도 장애인들과 가난한자와 파트너십으로 이방인 선교를 하셨다.
장애인단체 대표로서 여러 집회에 많이 나갈텐데, 장애인들에 대해 이것만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첫째, 장애는 죄때문에 생긴것은 아니다.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애인은 죄때문에 생긴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장애인 부모도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보지마라. 둘째, 장애인이 장애가 아니라 장애인을 장애로 만드는 사회와 교회가 장애이다.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틀린것이 아니라 다른것이다.
제가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땅에 오셔서 인간의 문화속에서 사역하셨다. 장애사역도 장애인들을 잘가르쳐 낫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들의 수준으로 가서 그들에게 예수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님이 어떻게 장애인들에게 구원계획을 하셨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장애인이 되었다고 해서 눈물을 흘릴것이 아니라 장애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려야 한다. 장애인이 되는 것도 서러운데 장애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못깨닫으면 되겠는가. 그래서 만약 장애가 있다면 장애를 통해 얻는 것도 있다는 것에 포인트를 맞추면 밝은 인생의 길이 그때 보이기 시작한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지적 장애인의 구원 문제와 장애선교'라는 주제로 열렸으며 △지적 장애인의 구원 어떻게 판단하나 △지적 장애인에게 세례를 베풀 근거는 △지적 장애인을 위한 성경공부 인도법 △장애 신학 특강 △장애선교를 위한 준비 △지적 장애인, 선교의 주체가 될 수 있나 △장애선교지 소개등으로 진행됐다.
조이장애선교회 설립자(?)는 김 목사의 딸 조이이다. 김홍덕 목사는 늦둥이 딸 조이가 다운증후군이라는 지적장애를 가진 것을 알고도 "장애를 가지고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후 놀라운 하나님의 기쁨이 임하여 딸의 이름을 '조이'라 지었다. 그리고 딸 조이의 이름을 따 2001년 '조이장애선교센타'를 설립했다.
지적장애인은 육체적인 장애인과는 다르다. 뇌성마비등으로 언어와 행동에 장애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잘아는 송명희 시인이 태어날때부터 뇌성마비로 지적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하지만 그녀는 불편한 몸에도 하루 5시간 이상의 기도와 삼십여번의 성경 통독으로 24권의 책과 100여곡의 찬양을 작사했다.
김홍덕 목사와 '지적 장애인의 구원 문제와 장애선교'라는 이번 컨퍼런스 주제에 대해 인터뷰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
컨퍼런스의 강의중 '지적 장애인의 구원 어떻게 판단하나', '지적 장애인에게 세례를 베풀 근거는'등은 주제가 도전적이다.
오늘날 교회가 지적장애인에게 세례를 주지 않는 이유가 비성경적이다. 지적장애인들은 하나님을 알수 있는 지식적인 인식능력이 없다는 것은 세상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아이큐는 세상에서 공부하는등에 사용하는 것이지, 구원과 영적성숙도를 측정하는 도구가 아니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장애를 이유도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서 배제했다는 암시를 주는 귀절은 없다. 하나님께서 장애인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다면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똑같이 구원의 반열에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장애를 이유로 구원에 배제를 안했다면 장애인도 구원의 반열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대표하는 교회에서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구원의 사람을 지적장애라는 이유로 배제를 한다면 교회는 직무유기이다. 그래서 지적장애 자녀를 가진 부모들이 가슴이 아프다. 부모들은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을 확신하는데, 지적장애 자녀들은 신앙을 고백할 능력이 없다고 교회에서 세례를 주지 않는 것 때문에 가슴이 아프다.
유아세례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이 주는데, 지적장애인에게 세례를 주는 것을 왜 꺼리는가. 성경적인 근거를 보더라도 지적장애인에게 세례를 안베풀 이유가 없다. 특별대우를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페어 플레이를 하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지적 장애인들을 교회밖으로 내몰았으니 제자리로 오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니 도전적이기는 하다.
▲김홍덕 목사 부인 김애림 사모
지적장애인들에 대한 한인교회들의 형편은 어떤가?
지적 장애인에게 세례를 주고 성찬하는 교회가 늘어나고 있다. 사랑의교회나 한빛지구촌교회에서도 그렇다. 퀸즈한인교회도 오는 부활절에 지적 장애인에게 세례를 배푸는 계기가 될것이다. 그동안 모르거나 계기가 없어서 못했는데, 이제는 지적장애인에게 세례를 오픈하는 교회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전통적인 교회들은 지적장애인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이해못하니 세례를 베풀지 못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지적장애인은 입으로 신앙을 고백못하니 어떻게 믿음을 증거하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런데 교회가 베푸는 세례는 구원받은 사람에게만 주는 구원증서가 아니다. 지상의 교회는 알곡과 가라지를 가릴 능력도 없으며, 하나님께서 그런 자격도 안주셨다. 초대교회 부터 속하여 신앙생활을 하기 원하는 사람들이 신앙공동체에 입문을 할때 환영하는 의미에서 세례를 주고 축하했다.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구원에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개신교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100%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장애인에게 세례를 주는 것은 너무 위험하지 않느냐고 말한다. 신앙에 대해 잘모르는데 어떻게 세례를 주느냐고 한다. 그렇다면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다 구원을 받는가. 많은 세례의 경우에 단지 문답서를 외우거나, 군대에서 합동세례를 받거나, 교회에서 세례를 받을때도 엉터리로 받은 사람이 많다. 지적장애인들보다 가짜들이 적다고 할수 없다.
지적장애인들은 구원받은 증표를 어떻게 나타내느냐는 질문도 있을수 있다. 믿음은 구원하심에 대한 반응이다. 반응은 고백을 통해 나오는데, 고백은 항상 소리를 통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마음이 생각이 입으로도 나오지만, 어떤 사람은 눈물로, 어떤 사람은 몸의 전율과 환희로도 나온다.
말을 하지 못하는 중증 장애인의 경우에 예배드리다 눈물을 흘리는등 주의 은혜를 체험하는 케이스를 너무 많이 본다. 지적장애자에게 모두 구원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몇년간 신앙생활을 같이 한 지적장애인에게 왜 의도적으로 배재하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신앙공동체는 함께 가는 조직체이다. 공평한 게임을 하자는 것이다.
지적 장애인들이 선교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말은 충격적이다.
그 내용을 보면 어메이징하다. 15년이상 지적장애인들을 데리고 선교를 다닌다. 선교지에는 보통사람은 못하는데 지적장애인이므로 역사가 일어나는 케이스가 많다. 예를 들어서 가주에서 2시간 걸리는 멕시코에 선교를 간다. 말잘하고 똑똑한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이 어떻게 선교를 할수 있겠느냐고 생각한다. 멕시코에 도착하니 완전히 180도가 바뀌어 그 똑똑한 사람들이 말을 못하는 장애인이 되어 버렸다.
생각이 달라져야 한다. 보통사람은 다른 문화에 가면 문화에 적응하려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지적장애인은 즉시 현지인을 친구로 만든다. 선교지에서 집회를 해도 비장애인들은 말이 안통한다고 자기끼리 시간을 보내도, 장애인들은 마을에 가서 전도지 나누어 주고 사람을 초대한다. 선교지에서 기도해줄때도 현지인들은 목사에 감동받는 것이 아니라 지적장애인 친구에게 은혜를 체험한다.
중국 청각장애인이 2천7백만명이나 된다. 대부분 지적장애를 겸한다. 중국에 가서 그들을 전도한다. 농아들은 수화를 사용하기에 쉽게 눈에 띈다. 그러면 특공대가 전도를 한다. 공안원이 보아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른다. 중국에서는 우리가 장애인이라고 부르는 농아는 마음껏 전도하고, 비장애인들이 농아가 된다. 장애인들은 동정이나 섬김의 대상을 넘어서 하나님의 나라의 선교에 사용이 될수 있다. 예수님도 장애인들과 가난한자와 파트너십으로 이방인 선교를 하셨다.
장애인단체 대표로서 여러 집회에 많이 나갈텐데, 장애인들에 대해 이것만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첫째, 장애는 죄때문에 생긴것은 아니다.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애인은 죄때문에 생긴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장애인 부모도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보지마라. 둘째, 장애인이 장애가 아니라 장애인을 장애로 만드는 사회와 교회가 장애이다.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틀린것이 아니라 다른것이다.
제가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땅에 오셔서 인간의 문화속에서 사역하셨다. 장애사역도 장애인들을 잘가르쳐 낫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들의 수준으로 가서 그들에게 예수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님이 어떻게 장애인들에게 구원계획을 하셨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장애인이 되었다고 해서 눈물을 흘릴것이 아니라 장애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려야 한다. 장애인이 되는 것도 서러운데 장애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못깨닫으면 되겠는가. 그래서 만약 장애가 있다면 장애를 통해 얻는 것도 있다는 것에 포인트를 맞추면 밝은 인생의 길이 그때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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