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흥용 목사 "미국교계 회의문화와 한인교계 회의문화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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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ㆍ2010-11-12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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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미국의 주류 교단의 하나인 RCA(Reformed Church in America)에 안수받았으며 지금도 같은 교단 속한 목회자입니다. 그리고 제가 하는 사역의 특성상 다른 한인 목사님들보다 좀더 가까이서 교단의 주요 흐름이나 교단적 색깔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들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 교단은 네덜란드 이민자들에 의해서 시작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한인 교회들이 배울만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회의문화'입니다. 크고 작은 각종 회의들을 어떻게 준비하고 예민한 문제들을 매끄럽게 이끌어 가고, 또 회의가 끝난후에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보면 저들에게 배울점이 참 많다고 느낍니다.
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인교회들에게 가장 큰 약점중의 하나가 미숙한 회의 진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단적인 예가 얼마 전에 있었던 2010년도 뉴욕교협의 정기총회의 회의진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교계와 세상 언론이 바로 이 회의의 진행방식에 매우 심한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회의의 안건이 문제가 된것이 아니고 회의진행이 문제가 된것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모인 공동체의 지도력의 수준이 어느정도 인지를 드러낸 부끄러운 일입니다.
회의진행의 역량은 목회자들에게 단순하게 배워도 되고 안배워도 되는 기술 (Skill) 정도로 여길 지엽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목회자들이 영적 지도자로써의 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핵심 문제중의 하나입니다. 사실 목회자나 영적 지도자들에게 회의를 능숙하게 진행하는 것은 성경을 깊이 아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매끄러운 회의진행이 까다롭고 긴장되는 회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완화해 주지만, 미숙하고 껄끄러운 회의진행은 별로 심각하게 문제되지 않는 것까지 심각한 문제로 만들어 목회를 어렵게 만들기도 하고, 회의 진행자의 지도자로써의 신뢰도 땅에 떨어 뜨리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능숙한 회의 진행을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지금까지 그들과의 경험과 훈련들을 통해서 원할한 회의를 위한 몇가지 원칙이 있음을 저 나름대로 정리해 봅니다.
1. 원칙있는 운용 (Principles)
모든 회의는 두가지를 기초로 해서 진행하게 됩니다.
첫째는 성문화된 법(Laws and Rules)입니다. 법을 이해하고 암기하고 있을 정도가 되어야 정확한 법 적용과 해석이 가능해 집니다. 회의를 진행하는 의장(President)과 기록하는 서기(Stated Clerk)은 물론이고 회의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이에 대한 중요성은 강조되어야 합니다.
저희 교단에서는 목회자 뿐만이 아니라 평신도 지도자들(최소한 Consistory Members)에게도 교단법을 가르치고 성문법 책자를 회의장에 가지고 나오도록 권합니다. 법을 모르면 무식한 말과 행동이 나오기 쉽습니다. 어떤 이가 법을 무시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면 당연히 법을 초월하거나 법을 무시하는 행동과 발언을 하게 됩니다. 이는 그 사람이 무지한 것이지 용감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 하나는 만국 통상회의 법(Robert’s Rules)에 기초한 회의진행 기법입니다. 회의를 진행하려면 어떤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그 원칙이란 것이 한국이나 미국 모두에서 인정받는 만국 통상회의 법입니다. 이에 대한 책들이 서점에 나와있으며, 정기적으로 개정되어 출판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많은 미국 목사님들은 이 만국 통상법에 관한 관련 서적들을 필독서의 하나로 취급한다는 점입니다. 이에 반해서 얼마나 많은 한인 목사님들이 이 부분에 대해서 공부하시는지 의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회의를 진행하는 방법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으니 의장이 내 방식대로 회의를 하고, 회의장에서는 여기 저기서 “법이요!”라고 소리치고, 고성이 쉽게 난무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2. 공정성(Fairness)과 평등성(Egalitarianism)
이 두가지는 의도적인 준비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이해만 하고 있어서는 큰 진전을 볼 수 없습니다. 회의를 진행하면서 민감할 수 있는 부분은 다음의 두가지 일 것 같습니다. 우선은 어떤 사람들이 회의에 참석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회의에 참석한 이들이 차별과 강요없이 공평하게 보장된 발언의 기회입니다. 이 두가지 요소가 함께 할 때 회의 참석자뿐만 아니라 회의에 참석치 않은 사람들까지 회의 결정사항들에 대한 신임과 정당성을 확보하게 해 주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교회의 회의를 진행하는 의장이 법을 무시하고 공정성과 평등성을 가볍게 여겨서 일방적으로 회의를 진행시킨다면 결정에 불만이 있는 측에 세상법정으로 끌고 가는 원인을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진행에 하자가 있다고 법원이 판단하게 되면 해당 결정사항은 당연히 결정 무효로 판결하고 상상 이상의 커다란 행정과 재정과 신뢰의 손해라는 댓가를 치루게 되게 됩니다. 회의 진행법의 숙지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3. 융통성과 은혜가 있는 진행 (Flexible and Gracious Process)
미국인들과 회의를 하다보면 조금은 딱딱한 분위기를 느낍니다. 원칙이 있고 정해진 과정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인 목사님들과 회의를 하다보면 “은혜롭게 회의를 진행합시다”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좋은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는 회의이니 웃음과 화목이 지배하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가지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리고 시끄럽고 싸움의 가능성이 있는 회의에는 누구가 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면에서는 회의의 은혜롭고 효과적 운영은 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린 경우가 많습니다. 당연한 이야기가 되지만 성문법에 분명하게 나와 있는 경우에는 철저하게 이를 적용을 해야하고 변형이나 변칙해석을 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성문법이 불확실하고 불분명하게 나와 있는 경우라면 선례나 다른 예들을 참조하게 됩니다. 이 때가 운영의 묘를 필요로 하고 융통성을 필요로 합니다.
발언권은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합니다. 의장이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반대의 말은 막아버리는 것을 좋은 회의진행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한인들같이 욱!하는 성질을 가진 분들이 많은 회의를 보면 바로 이 발언에 대한 융통성 부분에서 갈등과 불만이 많이 표출됩니다. 이런 갈등의 위험성을 줄이려면 발언권은 주되 발언시간은 제한을 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그리고 사안의 민감성에 따라서 안건토의 시간을 줄이거나 늘리는 것도 방법입니다.
한인 목사님들중에는 회의중 사람들의 발언권을 함부로 막는 경우들이 많은데 그 당장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보여도 이는 미봉책에 불과 합니다. 오히려 문제를 더욱 키우면 키웠지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이부분도 회의 진행자의 진행기술에 대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다양성속의 경쟁과 연합 (Competition and Unity in Diversity)
회의를 진행하다 보면 안건에 따라서 의견이 여러 편으로 갈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 몇 년동안 저희 교단은 여러가지 이슈들로 인해서 지역간 갈등이 매우 컸고, 안건 별로는 의견차를 가진 그룹끼리의 경쟁과 설전이 치열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교단은 1628년에 첫 교회가 미국 맨하튼에 설립된 이후 단 한번도 교단이 분열하지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와 목회자가 지역과 이슈에 대한 생각의 차이는 있어도 모두가 다 개혁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공감대와 자부심 때문입니다. 100년 좀 넘는 역사중에 수 많은 분열을 해온 한국교회들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부분입니다.
특히 임원선거의 경우 후보간의 경쟁도 치열합니다. 총회 기간동안 특정 수의 추천을 받은 후보자들이 먼저 정해지면 그들의 정견발표가 있게 되고 후보들의 지지세력간의 물밑 경쟁이 매우 치열하게 진행됩니다. 지역별로 모임이 선거전에 있기 때문에 후보자들의 선거운동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분명한 기독교 윤리와 원칙이 있습니다. 인기투표가 아닌 만큼 교단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직간접 참여와 공헌을 했는지를 봅니다. 제비뽑기로 후보자를 선택하지는 않지만 한국교계의 큰 문제로 수없이 지적되어 온 금전살포 문제는 아직까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회장 후보자가 표를 얻을 목적으로 회원들을 따로 접대하는 일, 금전살포, 혹은 이의 회비를 대납하는 등 일은 가능하지도 않고 상상조차 못합니다.
만약 후보중 누군가가 이런 비윤리적인 일을 한다면 법적인 책임과 함께 후보자격 자체도 취소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곧 뉴욕목사회 회장단 선거가 있다는데 후보간의 치열한 경쟁가운데서도 금전문제 만큼은 깨끗한 선거가 되어서 교회를 향한 사회의 윤리 기대치를 높이는 계기를 만들길 기대합니다.
5. 축제적인 분위기(Celebration)
모든 회의가 축제적일수는 없습니다만 최소한 총회나 교단적 중요 행사들의 특징을 볼때 이 부분이 필수입니다. 누가 고의로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할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만 지금까지 언론들을 통해서 보아 온 한국 목사님들의 회의에서는 그런 경우들이 있어 왔기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부분을 언급해 봅니다.
특히 선거에 관련해서는 후보간 경쟁과 후보지지 세력간의 경쟁이 아무리 치열해도 이는 인간의 이기적 계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따른 결정이 되어야 하기에 회의는 예배적이자 성례적이어야 하며 감사와 기쁨의 흥분이 함께하는 기회로 만드는 의도적 노력이 모든 이들에게 필요합니다.
6. 소통(Mutual Communication)과 투명성(Transparency)을 통한 상호 견제(Supportive Accountability)및 긴장관계(Healthy Boundary)의 유지
회의를 진행하다 보면 안건에 따라서 바로 결정을 못하고 토론을 거쳐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안에 따라서 다르지만 어떤 것은 몇 분만에 토론이 끝나지만 어떤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어떤 지역에서는 특정 안건으로 모인 특별회의중에 그 안건으로 투표 전에 한 시간 이상을 토론하고도 결정은 다음 회의로 미루는 것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도 원칙은 있습니다. 발언자들이 토론의 핵심내용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발언해야 하고, 지나치게 한 사람이 발언시간을 독점하지 않토록 해야 하고, 전체 발언시간을 조정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는 회의를 진행하는 의장의 일방적 진행을 막기도 하면서, 발언자의 일방적 시간 독식이나 영향력 행사 의도도 함께 막는 장치로서의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회의를 진행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회의가 끝난 후의 상황정리입니다. 회의 결정내용은 철저하게 공개되어야 하고, 관련 모든 이들이 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요즘에는 경비절감 차원에서 이메일로 보내거나 웹사이트에 올려 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질문이 있으면 서기의 경우에는 질문에 답을 성실히 해 줍니다.
정당한 절차를 통해서 결정된 사항들은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특히 회장선거의 경우 심각한 후유증이 염려 되기도 합니다만 아직까지 교단에서 이 문제로 후유증을 앓았다는 것을 본적이 없습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임원 선거에서 패한 분들은 이긴 분을 축하해 주는 넉넉한 마음이어야 하고, 이긴 분은 패한 분들을 감쌀 수 있어야 여유있는 마음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선거가 끝나면 경쟁에서 화합으로 돌아가야 하고,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건강한 관계와 견제가 있어야 겠습니다.
대개의 경우 회의 결과에 만족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지만 그래도 회의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를 가지고도 그 해당조직의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건강상태를 측정해 볼 수도 있습니다. 건강한 조직이라면 이의를 제의하는 사람들이나 그룹을 이단아로 배척하기 보다는 그들의 소수의견을 배려해 줍니다. 그리고 이들이 적절하고 올바른 과정을 거쳐서 항소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독선적이고 폐쇄적인 조직이라면 어떻게 하든지 힘으로 밀어 부쳐서 항소하는 것을 저지하려고만 할 것입니다. 언젠가 어떤 분이 모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에 불만을 품고 회의장에 드러 누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국회에서 단상으로 뛰어오르는 무식한 행동으로 해외 토픽에 오른 적도 있습니다. 이런 행동들은 조직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모든 이에게 지탄 받아 마땅한 모자라는 행동입니다. 그리고 특정인을 해하려고 고의로 거짓말을 지어서 퍼트리는 행위는 있어서는 안될 치졸한 짓입니다.
회의는 법과 원칙에 따라 진행해야 회의의 당위성이 성립되며, 그 회의의 결정된 사항들 또한 권위를 인정 받을 수 있습니다. 융통성과 합리적 해석은 법이 정한 테두리안에서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법을 무시한채 정치적 타협을 융통성이니 합리적이니 하는 말로 얼버무릴 수는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법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 동등한 참여와 발언의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차별이 없어야 겠습니다. 나와 다른 생각과 다양한 의견들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서로의 차이점에 대해서 보다 더 많이 열린 자세로 임해야 합니다.
진지하고 진실된 자세는 유지하되 마음의 넉넉함과 회의때문에 감사할 수 있는 부분들을 잘 살려내는 노력도 함께 필요합니다. 모든 회의는 그 결정과정에 있어서 충분한 쌍방 통행의 의사소통이 있어야 하고 그 후에 결정된 것에 대해서는 승복하고 따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 2010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저희 교단은 네덜란드 이민자들에 의해서 시작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한인 교회들이 배울만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회의문화'입니다. 크고 작은 각종 회의들을 어떻게 준비하고 예민한 문제들을 매끄럽게 이끌어 가고, 또 회의가 끝난후에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보면 저들에게 배울점이 참 많다고 느낍니다.
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인교회들에게 가장 큰 약점중의 하나가 미숙한 회의 진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단적인 예가 얼마 전에 있었던 2010년도 뉴욕교협의 정기총회의 회의진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교계와 세상 언론이 바로 이 회의의 진행방식에 매우 심한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회의의 안건이 문제가 된것이 아니고 회의진행이 문제가 된것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모인 공동체의 지도력의 수준이 어느정도 인지를 드러낸 부끄러운 일입니다.
회의진행의 역량은 목회자들에게 단순하게 배워도 되고 안배워도 되는 기술 (Skill) 정도로 여길 지엽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목회자들이 영적 지도자로써의 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핵심 문제중의 하나입니다. 사실 목회자나 영적 지도자들에게 회의를 능숙하게 진행하는 것은 성경을 깊이 아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매끄러운 회의진행이 까다롭고 긴장되는 회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완화해 주지만, 미숙하고 껄끄러운 회의진행은 별로 심각하게 문제되지 않는 것까지 심각한 문제로 만들어 목회를 어렵게 만들기도 하고, 회의 진행자의 지도자로써의 신뢰도 땅에 떨어 뜨리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능숙한 회의 진행을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지금까지 그들과의 경험과 훈련들을 통해서 원할한 회의를 위한 몇가지 원칙이 있음을 저 나름대로 정리해 봅니다.
1. 원칙있는 운용 (Principles)
모든 회의는 두가지를 기초로 해서 진행하게 됩니다.
첫째는 성문화된 법(Laws and Rules)입니다. 법을 이해하고 암기하고 있을 정도가 되어야 정확한 법 적용과 해석이 가능해 집니다. 회의를 진행하는 의장(President)과 기록하는 서기(Stated Clerk)은 물론이고 회의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이에 대한 중요성은 강조되어야 합니다.
저희 교단에서는 목회자 뿐만이 아니라 평신도 지도자들(최소한 Consistory Members)에게도 교단법을 가르치고 성문법 책자를 회의장에 가지고 나오도록 권합니다. 법을 모르면 무식한 말과 행동이 나오기 쉽습니다. 어떤 이가 법을 무시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면 당연히 법을 초월하거나 법을 무시하는 행동과 발언을 하게 됩니다. 이는 그 사람이 무지한 것이지 용감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 하나는 만국 통상회의 법(Robert’s Rules)에 기초한 회의진행 기법입니다. 회의를 진행하려면 어떤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그 원칙이란 것이 한국이나 미국 모두에서 인정받는 만국 통상회의 법입니다. 이에 대한 책들이 서점에 나와있으며, 정기적으로 개정되어 출판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많은 미국 목사님들은 이 만국 통상법에 관한 관련 서적들을 필독서의 하나로 취급한다는 점입니다. 이에 반해서 얼마나 많은 한인 목사님들이 이 부분에 대해서 공부하시는지 의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회의를 진행하는 방법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으니 의장이 내 방식대로 회의를 하고, 회의장에서는 여기 저기서 “법이요!”라고 소리치고, 고성이 쉽게 난무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2. 공정성(Fairness)과 평등성(Egalitarianism)
이 두가지는 의도적인 준비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이해만 하고 있어서는 큰 진전을 볼 수 없습니다. 회의를 진행하면서 민감할 수 있는 부분은 다음의 두가지 일 것 같습니다. 우선은 어떤 사람들이 회의에 참석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회의에 참석한 이들이 차별과 강요없이 공평하게 보장된 발언의 기회입니다. 이 두가지 요소가 함께 할 때 회의 참석자뿐만 아니라 회의에 참석치 않은 사람들까지 회의 결정사항들에 대한 신임과 정당성을 확보하게 해 주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교회의 회의를 진행하는 의장이 법을 무시하고 공정성과 평등성을 가볍게 여겨서 일방적으로 회의를 진행시킨다면 결정에 불만이 있는 측에 세상법정으로 끌고 가는 원인을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진행에 하자가 있다고 법원이 판단하게 되면 해당 결정사항은 당연히 결정 무효로 판결하고 상상 이상의 커다란 행정과 재정과 신뢰의 손해라는 댓가를 치루게 되게 됩니다. 회의 진행법의 숙지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3. 융통성과 은혜가 있는 진행 (Flexible and Gracious Process)
미국인들과 회의를 하다보면 조금은 딱딱한 분위기를 느낍니다. 원칙이 있고 정해진 과정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인 목사님들과 회의를 하다보면 “은혜롭게 회의를 진행합시다”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좋은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는 회의이니 웃음과 화목이 지배하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가지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리고 시끄럽고 싸움의 가능성이 있는 회의에는 누구가 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면에서는 회의의 은혜롭고 효과적 운영은 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린 경우가 많습니다. 당연한 이야기가 되지만 성문법에 분명하게 나와 있는 경우에는 철저하게 이를 적용을 해야하고 변형이나 변칙해석을 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성문법이 불확실하고 불분명하게 나와 있는 경우라면 선례나 다른 예들을 참조하게 됩니다. 이 때가 운영의 묘를 필요로 하고 융통성을 필요로 합니다.
발언권은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합니다. 의장이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반대의 말은 막아버리는 것을 좋은 회의진행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한인들같이 욱!하는 성질을 가진 분들이 많은 회의를 보면 바로 이 발언에 대한 융통성 부분에서 갈등과 불만이 많이 표출됩니다. 이런 갈등의 위험성을 줄이려면 발언권은 주되 발언시간은 제한을 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그리고 사안의 민감성에 따라서 안건토의 시간을 줄이거나 늘리는 것도 방법입니다.
한인 목사님들중에는 회의중 사람들의 발언권을 함부로 막는 경우들이 많은데 그 당장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보여도 이는 미봉책에 불과 합니다. 오히려 문제를 더욱 키우면 키웠지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이부분도 회의 진행자의 진행기술에 대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다양성속의 경쟁과 연합 (Competition and Unity in Diversity)
회의를 진행하다 보면 안건에 따라서 의견이 여러 편으로 갈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 몇 년동안 저희 교단은 여러가지 이슈들로 인해서 지역간 갈등이 매우 컸고, 안건 별로는 의견차를 가진 그룹끼리의 경쟁과 설전이 치열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교단은 1628년에 첫 교회가 미국 맨하튼에 설립된 이후 단 한번도 교단이 분열하지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와 목회자가 지역과 이슈에 대한 생각의 차이는 있어도 모두가 다 개혁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공감대와 자부심 때문입니다. 100년 좀 넘는 역사중에 수 많은 분열을 해온 한국교회들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부분입니다.
특히 임원선거의 경우 후보간의 경쟁도 치열합니다. 총회 기간동안 특정 수의 추천을 받은 후보자들이 먼저 정해지면 그들의 정견발표가 있게 되고 후보들의 지지세력간의 물밑 경쟁이 매우 치열하게 진행됩니다. 지역별로 모임이 선거전에 있기 때문에 후보자들의 선거운동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분명한 기독교 윤리와 원칙이 있습니다. 인기투표가 아닌 만큼 교단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직간접 참여와 공헌을 했는지를 봅니다. 제비뽑기로 후보자를 선택하지는 않지만 한국교계의 큰 문제로 수없이 지적되어 온 금전살포 문제는 아직까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회장 후보자가 표를 얻을 목적으로 회원들을 따로 접대하는 일, 금전살포, 혹은 이의 회비를 대납하는 등 일은 가능하지도 않고 상상조차 못합니다.
만약 후보중 누군가가 이런 비윤리적인 일을 한다면 법적인 책임과 함께 후보자격 자체도 취소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곧 뉴욕목사회 회장단 선거가 있다는데 후보간의 치열한 경쟁가운데서도 금전문제 만큼은 깨끗한 선거가 되어서 교회를 향한 사회의 윤리 기대치를 높이는 계기를 만들길 기대합니다.
5. 축제적인 분위기(Celebration)
모든 회의가 축제적일수는 없습니다만 최소한 총회나 교단적 중요 행사들의 특징을 볼때 이 부분이 필수입니다. 누가 고의로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할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만 지금까지 언론들을 통해서 보아 온 한국 목사님들의 회의에서는 그런 경우들이 있어 왔기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부분을 언급해 봅니다.
특히 선거에 관련해서는 후보간 경쟁과 후보지지 세력간의 경쟁이 아무리 치열해도 이는 인간의 이기적 계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따른 결정이 되어야 하기에 회의는 예배적이자 성례적이어야 하며 감사와 기쁨의 흥분이 함께하는 기회로 만드는 의도적 노력이 모든 이들에게 필요합니다.
6. 소통(Mutual Communication)과 투명성(Transparency)을 통한 상호 견제(Supportive Accountability)및 긴장관계(Healthy Boundary)의 유지
회의를 진행하다 보면 안건에 따라서 바로 결정을 못하고 토론을 거쳐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안에 따라서 다르지만 어떤 것은 몇 분만에 토론이 끝나지만 어떤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어떤 지역에서는 특정 안건으로 모인 특별회의중에 그 안건으로 투표 전에 한 시간 이상을 토론하고도 결정은 다음 회의로 미루는 것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도 원칙은 있습니다. 발언자들이 토론의 핵심내용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발언해야 하고, 지나치게 한 사람이 발언시간을 독점하지 않토록 해야 하고, 전체 발언시간을 조정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는 회의를 진행하는 의장의 일방적 진행을 막기도 하면서, 발언자의 일방적 시간 독식이나 영향력 행사 의도도 함께 막는 장치로서의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회의를 진행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회의가 끝난 후의 상황정리입니다. 회의 결정내용은 철저하게 공개되어야 하고, 관련 모든 이들이 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요즘에는 경비절감 차원에서 이메일로 보내거나 웹사이트에 올려 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질문이 있으면 서기의 경우에는 질문에 답을 성실히 해 줍니다.
정당한 절차를 통해서 결정된 사항들은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특히 회장선거의 경우 심각한 후유증이 염려 되기도 합니다만 아직까지 교단에서 이 문제로 후유증을 앓았다는 것을 본적이 없습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임원 선거에서 패한 분들은 이긴 분을 축하해 주는 넉넉한 마음이어야 하고, 이긴 분은 패한 분들을 감쌀 수 있어야 여유있는 마음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선거가 끝나면 경쟁에서 화합으로 돌아가야 하고,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건강한 관계와 견제가 있어야 겠습니다.
대개의 경우 회의 결과에 만족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지만 그래도 회의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를 가지고도 그 해당조직의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건강상태를 측정해 볼 수도 있습니다. 건강한 조직이라면 이의를 제의하는 사람들이나 그룹을 이단아로 배척하기 보다는 그들의 소수의견을 배려해 줍니다. 그리고 이들이 적절하고 올바른 과정을 거쳐서 항소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독선적이고 폐쇄적인 조직이라면 어떻게 하든지 힘으로 밀어 부쳐서 항소하는 것을 저지하려고만 할 것입니다. 언젠가 어떤 분이 모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에 불만을 품고 회의장에 드러 누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국회에서 단상으로 뛰어오르는 무식한 행동으로 해외 토픽에 오른 적도 있습니다. 이런 행동들은 조직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모든 이에게 지탄 받아 마땅한 모자라는 행동입니다. 그리고 특정인을 해하려고 고의로 거짓말을 지어서 퍼트리는 행위는 있어서는 안될 치졸한 짓입니다.
회의는 법과 원칙에 따라 진행해야 회의의 당위성이 성립되며, 그 회의의 결정된 사항들 또한 권위를 인정 받을 수 있습니다. 융통성과 합리적 해석은 법이 정한 테두리안에서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법을 무시한채 정치적 타협을 융통성이니 합리적이니 하는 말로 얼버무릴 수는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법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 동등한 참여와 발언의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차별이 없어야 겠습니다. 나와 다른 생각과 다양한 의견들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서로의 차이점에 대해서 보다 더 많이 열린 자세로 임해야 합니다.
진지하고 진실된 자세는 유지하되 마음의 넉넉함과 회의때문에 감사할 수 있는 부분들을 잘 살려내는 노력도 함께 필요합니다. 모든 회의는 그 결정과정에 있어서 충분한 쌍방 통행의 의사소통이 있어야 하고 그 후에 결정된 것에 대해서는 승복하고 따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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