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성 목사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왜 가난하다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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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ㆍ2011-05-26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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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러싱제일교회(김중언 목사)는 유기성 목사(한국 선한목자교회)를 강사로 초청하여 "십자가의 능력, 십자가의 영광"이라는 주제로 5월 20일(금)부터 3일간 춘계부흥성회를 열었다.
유기성 목사는 교인들이 흔히 놓치기 쉬운 신앙의 핵심을 교훈적으로 설교하며 신앙의 본질에 대해 점검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유 목사는 첫날저녁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왜 행복하지 않다고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다음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왜 가난하다고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둘째날 새벽 "당신은 부유하십니까?(요한복음 7장 37-39절)"라는 제목이 설교내용이다.
정말 예수님을 잘믿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천국에 가게 된 구원받은 사람인지 점검해 보는 두번재 시간이다. 어제는 예수님을 믿고 내가 정말 행복해 졌는가를 점검했다. 건성으로 넘기면 안된다. 예수님을 믿고 행복하지 않으면 사람이나 환경때문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관계가 분명치 않은 것이다.
예수님을 믿었으니 부자가 되었나
두번째 점검할 내용은 내가 예수님을 믿었으니 부자가 되었나 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걸리는 분이 있을 것이다. 예수님을 믿었는데 부자는 아니며, 심지어는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예수님을 믿지만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했을때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받는 것과 같다. 예수를 믿었는데 부자가 아니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생긴것이다. 오늘 그 문제를 해결받기 바란다.
여러분안에 좀 혼란스러운 분이 있을 것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부자가 된다는 것을 선뜻 마음에 믿어지지 않는 분이 있을 것이다. 예수님을 믿어도 가난할수 있지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예수님이 분명히 오늘 말씀에서 이렇게 말하고 계신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믿는자는 '누구든지'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하신다. 주변에 그저 도와주는 정도가 아니라 생수의 강이 흘러 넘쳐서 주위사람을 풍성하게 해주는 사람에 대한 약속을 하셨다. 예수님을 믿는데 나만 예외라고 생각하는가. 예수님은 예외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것이 맞다면, 여러분은 주위사람에게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바로 그 사람이다. 그렇다고 믿어지는가. 주위사람에게 생수의 강이 넘치는 삶을 살고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역시 주님과의 관계를 점검해야 한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
많은 사람들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기준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다. 재산이 좀 많은 사람은 부자라고 생각하고, 재산이 없는 사람은 가난하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이 얼마나 예수믿는 사람에게 올바르지 못한 생각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고 정말 부자가 되었는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이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셨는가. 예수님을 믿고 부자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이라면 여러분의 아버지인 하나님이 가난하시다는 말이다. 하나님 아버지를 분명히 믿으면서 어떻게 가난하다고 하는가.
하나님이 얼마나 부자이신줄 아는가. 온 우주만물이 하나님의 것이다. 여러분은 바로 그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점에 대해 전혀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 본인이 분명히 하나님의 자녀라고 믿지만 본인이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모순이 있다. 그럼에도 그 모순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많이 가지고 있어야 부자이고 많이 가지지 않으면 가난하다는 기준으로 모든것을 판단하고 있다. 디모데전서 6장 7-10절 말씀을 보면 이런 기준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족하다는 것은 충분하고 만족하다는 뜻이다. 먹을것과 입을것이 있으면 족할줄 알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을 들으면 짜증날 사람도 있다. 자본주의 미국에서 살면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만족할줄 알라니 말도 안된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다. 하지만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여러분에 눈이 번쩍 뜨이는 귀절도 나온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이 안들었으면 좋을 말씀이며, 마음에 안든다고 할수도 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내용이다.
이어 마음에 드는 내용이 나온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성경이 말하는 부자와 가난한자의 기준은 우리의 생각과 많이 다르다. 분명히 성경은 많은 소유를 한 사람이 부자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난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특히 자본주의 본산인 미국에 사는 여러분은 성경적으로 분명한 사고를 가져야 한다.
서머나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
요한계시록을 보면 형편이 다른 7개 교회가 나온다. 서머나 교회는 세상적인 기준으로 가난한 교회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에 2장 9절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라며 부요한 자로 말씀하셨다. 주님 보시는 눈이 우리가 보는 눈과 다르다. 서머나 교회는 가난한 교회인데 예수님이 보기에 부자이다.
굉장히 부자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는 현대교회를 상징한다. 3장 17절(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에 보면 예수님의 눈에 보기에는 라오디게아 교회는 너무 가난했다. 이제 이 눈을 가져야 한다.
정말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자가 분명하려면 보는 눈이 분명해야 한다. 나는 부자이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복을 많이 주셨다고 하다가 하나님앞에 가보았더니 알지 못하는 자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세상사람이 보기에는 너무 가난한데 하나님앞에 갔더니 너무 부유한자인 경우가 있다.
이점에 대해 분명한 기준을 가져야 한다. 여러분은 가난한자인가 아니면 부유한자인가. 무슨 기준을 가지고 그럴수 판단할수 있느냐.
세상의 영, 가난의 영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었다면 부자라고 믿어야 당연하다.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주신다. 예수님을 믿은 즉시 부자이다. 고아원에 있는 어려운 아이가 부자집에 입양되면 즉시 부자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고 하는데도, 왜 지금 당장 부자가 되었다고 고백을 못하느냐.
가난의 영에 사로잡혀서 그렇다. 예수님을 믿고도 실제로 마음에 주인노롯을 하는 영은 가난의 영이기에 그렇다. 세상의 영이 바로 가난의 영이다.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 세상의 영을 여전히 잡고 있는 성도들이 문제이다. 세상의 영인 가난의 영은 하나님의 은혜를 전혀 모르게 하는 영이다.
고린도후서 4장 4절(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이 말씀에 해당하는지 모른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는 다니지만 마음에 세상의 영이 혼미하게 하고 있다. 여전히 가난의 영을 붙잡고 산다. 가난의 영은 내가 가진 것이 없어질까 두려워 하는 영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없어질까 근심걱정하는 사람이 가난의 영이 사로잡힌 사람이다.
돈이 많아도 그렇다. 세상의 부자에게 지금에 만족하느냐고 물어보라. 조금만 더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이것이 무엇인가. 겉으로는 부자이지만 실제는 가난하다. 조금 더 가지기를 원하고, 가지고는 있지만 없어지는 것이 두렵다. 끓임없이 더 가지려 한다.
서울 강남구 부자들이 사는 동네 주민들이 구청에 가서 데모를 했다. 동네에 장애인 학교가 들어오면 집값이 떨어질까 데모를 한 것이다. 그 동네의 집값은 한국에서 가장 비싸다. 장애인 학교가 혹시 들어와서 집값이 떨어진다 해도 부자이다.
진짜 부자라면 장애인 학교를 환영하고 무엇을 도와줄까를 물어보아야 한다. 집값이 떨어질까 걱정하는 것은 가난의 영이다. 돈이 많이 있어도 가진 것이 적어질까 두려워 한다. 마귀가 하는 전형적인 역사이다. 마귀는 절대로 풀어놓지 못하고, 자꾸 움켜잡고 두려워 한다. 가지고 있는 재산을 지키기 위해 담을 높이 쌓고 보안장치를 만들고 계속 두려워 한다.
생수의 강이 흐르는 영
성령님을 모신 사람은 반대이다. 내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쳐 남에게 흘러넘친다. 그것이 성령님의 역사이다. 성령님의 역사와 가난의 영은 전혀 다르다. 여러분들의 마음속에는 무슨 영이 역사하고 있는가.
다른 사람에게 많이 베풀어주고 더 많이 나누어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얼마를 가졌는지 상관없이 부자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축복이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시면서 부터 더이상 먹고 사는 것을 걱정안한다. 먹고 사는 것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부터 하나님 아버지가 계셔서 더이상 걱정을 안해도 된다. 하나님이 필요할때 주실것이다. 내가 이제부터 관심을 가지는 것은 나누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지만 아직도 성령으로 살지 않고 세상의 영을 붙잡고 사는 사람이 있다. 웅켜쥐는데만 관심이 있다. 교회에서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하나님앞에 헌금하는 일도 두려울수 있다. 교회에서 베풀고 나누자고 해도 인색할수도 있다. 그러면서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한다. 그가 어려우면 다른 사람은 죽을 지경이다.
서울의 어느 교회에 있을때 선배 부목사 한분이 심방을 다녀와서 놀라워 했다. 심방간 성도의 집은 호화주택으로 100평이 넘고, 운전기사 2명과 일하는 사람 3명이 일했다. 기도제목을 물으니 요즘에 너무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기도해 달라고 했다. 이것이 무엇인가. 가난의 영에 사로잡히면 그렇게 산다.
왜 가난의 영에 붙잡혀 사는가
왜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을 붙잡지 않고 가난의 영을 붙잡혀 사는가. 속고 있어서 그렇다. 성령님을 모시고 살려면 겁이 난다. 성령님은 자꾸 주라고 하신다. 성령님이 하라는대로 베풀고 헌금도 하면 망할것 같다.
그때 가난의 영이 우리의 마음을 솔깃하게 만든다. 마귀가 하자는대로 하면 부자가 될것 같다. 그래서 계속 움켜 잡는다. 성령님을 의지하고 정말 부자로 살려고 하면 죽을 것 같지만, 세상의 영을 따라 살면 부자가 될것 같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하고도 마귀를 붙잡고 있다. 본인이 마귀를 붙잡으니 마귀가 안떠난다.
고린도후서 5장17절(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는데도 우리의 마음은 예수님을 믿지 않을때와 여전히 똑같다. 거지가 마음에 들어있는 것이다.
어릴때 아버지가 전기구이 통닭을 한마리 사가지고 오셨다. 당시에는 황홀한 일이다. 4남매가 정신없이 먹고 있는데 어머니는 "천천히 먹어라. 뱃속에 거지가 들었니"라고 말씀했다. 무슨 뱃속에 거지가 들어있는가. 지금 생각하니 어떤 모습인가 상상이 된다.
실제로 뱃속에 거지가 들어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영이고 가난의 영이다. 움켜쥐려고만 한다. 졸부라는 표현이 있다. 졸부는 가지고 있는 것은 많은 부자인데 생각은 여전히 가난한 사람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은혜때문에 예수안에서 진짜 부자가 된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렇게 되었는지 분명하게 점검해 보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잠언 11장 24-26절(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곡식을 내놓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나 파는 자는 그의 머리에 복이 임하리라)
여기에 재미있는 표현이 있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 질것이다는 말이 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렇게 되는것이다. 어떤 사람이 풍족해지는가. 구제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어려운 일이 있을때 베풀고 헌금도 한다. 그런데 구제는 했지만 구제를 좋아하는 사람까지 되었나를 점검해보라. 미국이라는 사회는 구제하는 일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나라이다. 그러니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됐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이다. 많이 돕고 그것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라.
여러분은 구제가 좋은가. 힘을 다해 구제헌금을 했는데 다음 주일에 다시 구제헌금을 해야할일이 생겼다면 여러분 마음에 어떤 생각이 드는가. 구제를 좋아하는 사람,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모른다.
구제를 하기는 한다. 그렇지만 구제를 좋아하는 것은 정말 다른일이다. 내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시며, 이것이 진짜 믿어져서 내가 정말 부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말 구제가 기쁘다. 그러나 세상의 영에 사로 잡혀있으면 구제가 기쁜일이 될수 없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베푸는 일이 즐거운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명이라고 생각하는가. 오늘 하나님앞에 그 점에 대해 점검하라. 우리가 정말 진짜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일까요.
가난의 영에 사로잡힌 사람은 돈을 많이 가져도 가난하게 산다. 가진돈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할수도 없고 남을 도와줄수도 없다. 가난의 영으로 인해 두려우니까.
말은 주님의 교회라고 해놓고
교회에 부임해서 보니 교회가 재정적으로 굉장히 어려웠다. 8천평 예배당을 건축하다가 경제적인 어려움이 와서 전임목사가 사임하고 내가 부임을 했다. 전체 500억 공사인데 교회빚이 100억이 있었으며, 지불하지 못한 건축비도 60억이 있었다. 교인은 다 떠나고 5백명 정도 남았다.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공사를 마무리 하게 해주셨다. 그런데 은행빚이 250억가량 남았고, 매주 갚아야 할 이자만 4천만원이다. 담임으로서 보통 어려운일이 아니었다.
그때 어느 시골교회 목사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예배당을 건축하다가 재정문제로 중단했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우리도 힘들어 도와주기 힘들다고 하고, 다른교회를 알아보라고 전화를 끓었다. 그때 주님의 책망이 강하게 들렸다.
"너는 교회표어를 예수님이 이끄는 교회라고 정하지 않았느냐. 너는 내 망신을 다시키고 있구나." 예수님께서는 정말 그런 마음을 주셨다. 정신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내입에서 "우리도 힘들다" "도울 힘이 없다" "죽겠다"등 가난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으면서도, 교회를 예수님의 교회라고 고백을 했으면서도, 또 빚이 많은데도 봉헌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이 다같아주실것을 믿는다고 했으면서도 마음속에 여전히 두려움과 염려가 꽉차있었다.
그 시골교회 목사에게 다시 전화를 드리고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리고 사정을 이야기 하고 재정부에 남아있는 돈을 확인하여 일부라도 돕겠다고 말했다. 재정부에 알아보니 잔고가 천만원도 안되었다. 그중에 몇백만원을 보내드렸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그때부터 주님이 교회를 책임져 주시고 교회를 놀랍게 변화시켜 주셨다는 것이다. 교회를 부흥시켜 주시고 더 도울수 있게 해 주셨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위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교회의 빚에 많이 눌렸다. 기도하는 가운데 장로들과 의논하여 교우들이 십일조 헌금 감사헌금은 절대로 교회건축금 상환에 사용하지 말기로 했다. 일반헌금은 선교하고 구제하고 하는 일에 사용하고, 건축 목적헌금만 이자와 상환금을 위해 사용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장로들의 걱정이 태산같았다. 나는 헌금을 건축비 상환에만 사용하게 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는 전혀 될수가 없었다고 단호하게 말하니 동의를 해주었다.
이후 우리교회는 빚이 많아도 건축 목적헌금만 이자갚고 상환한다. 교인들이 우리교회와서 두가지를 놀란다. 이렇게 빚이 많은 줄을 몰랐다고 한다. 지금 190억 빚이 남아있다. 또 하나 놀라는 것은 빚이 많은데 일하는 것을 보면 빚이 없는 교회같다고 했다.
본당공사도 다 못했을때 은행에서 융자도 안해주려고 했다. 그때 일본에 있는 형제교회가 20억이 드는 예배당을 건축하는데 15억은 마련했지만 5억이 모자랐다. 문제는 이번달까지 잔금을 못치루면 15억도 날아갈 지경이 되었다.
기도하다가 100억이나 105억이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간단한 문제이다. 장로들과 만나 의논을 하니 일리가 있다고 동의했다. 그래서 전교인을 모아놓고 설명하고, 은행에서 5억 융자를 받아 일본의 예배당을 잘 마련했다.
그때는 정말 우리가 무슨 정신인가 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은행에서 본당공사를 할수 있는 모든 융자를 받을수 있었다. 그때 어떻게 이런일이 일어날수 있었을까 생각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되심을 정말 믿으니 그런 일이 일어났다.
하나님이 아버지라고 믿으면서 왜 마음을 가난하게 사는가. 왜 여전히 부족한 것이 많고 염려와 근심이 많은가. 여러분 안에 있는 성령 하나님으로 인해 이미 여러분은 생수의 강이 넘치는 그런 축복의 사람이 되었으므로 믿음으로 나가면 된다. 믿음의 문제이지 소유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끓임없니 많이 가져야 부자이고 없으면 가난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안에 오신 성령님은 우리가 이미 부자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 믿음으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흘러보냄을 기뻐하면 그때부터 주님은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기 시작하신다. 그런 놀라운 은혜를 누리고 받기를 축원한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유기성 목사는 교인들이 흔히 놓치기 쉬운 신앙의 핵심을 교훈적으로 설교하며 신앙의 본질에 대해 점검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유 목사는 첫날저녁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왜 행복하지 않다고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다음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왜 가난하다고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둘째날 새벽 "당신은 부유하십니까?(요한복음 7장 37-39절)"라는 제목이 설교내용이다.
정말 예수님을 잘믿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천국에 가게 된 구원받은 사람인지 점검해 보는 두번재 시간이다. 어제는 예수님을 믿고 내가 정말 행복해 졌는가를 점검했다. 건성으로 넘기면 안된다. 예수님을 믿고 행복하지 않으면 사람이나 환경때문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관계가 분명치 않은 것이다.
예수님을 믿었으니 부자가 되었나
두번째 점검할 내용은 내가 예수님을 믿었으니 부자가 되었나 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걸리는 분이 있을 것이다. 예수님을 믿었는데 부자는 아니며, 심지어는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예수님을 믿지만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했을때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받는 것과 같다. 예수를 믿었는데 부자가 아니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생긴것이다. 오늘 그 문제를 해결받기 바란다.
여러분안에 좀 혼란스러운 분이 있을 것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부자가 된다는 것을 선뜻 마음에 믿어지지 않는 분이 있을 것이다. 예수님을 믿어도 가난할수 있지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예수님이 분명히 오늘 말씀에서 이렇게 말하고 계신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믿는자는 '누구든지'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하신다. 주변에 그저 도와주는 정도가 아니라 생수의 강이 흘러 넘쳐서 주위사람을 풍성하게 해주는 사람에 대한 약속을 하셨다. 예수님을 믿는데 나만 예외라고 생각하는가. 예수님은 예외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것이 맞다면, 여러분은 주위사람에게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바로 그 사람이다. 그렇다고 믿어지는가. 주위사람에게 생수의 강이 넘치는 삶을 살고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역시 주님과의 관계를 점검해야 한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
많은 사람들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기준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다. 재산이 좀 많은 사람은 부자라고 생각하고, 재산이 없는 사람은 가난하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이 얼마나 예수믿는 사람에게 올바르지 못한 생각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고 정말 부자가 되었는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이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셨는가. 예수님을 믿고 부자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이라면 여러분의 아버지인 하나님이 가난하시다는 말이다. 하나님 아버지를 분명히 믿으면서 어떻게 가난하다고 하는가.
하나님이 얼마나 부자이신줄 아는가. 온 우주만물이 하나님의 것이다. 여러분은 바로 그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점에 대해 전혀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 본인이 분명히 하나님의 자녀라고 믿지만 본인이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모순이 있다. 그럼에도 그 모순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많이 가지고 있어야 부자이고 많이 가지지 않으면 가난하다는 기준으로 모든것을 판단하고 있다. 디모데전서 6장 7-10절 말씀을 보면 이런 기준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족하다는 것은 충분하고 만족하다는 뜻이다. 먹을것과 입을것이 있으면 족할줄 알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을 들으면 짜증날 사람도 있다. 자본주의 미국에서 살면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만족할줄 알라니 말도 안된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다. 하지만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여러분에 눈이 번쩍 뜨이는 귀절도 나온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이 안들었으면 좋을 말씀이며, 마음에 안든다고 할수도 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내용이다.
이어 마음에 드는 내용이 나온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성경이 말하는 부자와 가난한자의 기준은 우리의 생각과 많이 다르다. 분명히 성경은 많은 소유를 한 사람이 부자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난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특히 자본주의 본산인 미국에 사는 여러분은 성경적으로 분명한 사고를 가져야 한다.
서머나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
요한계시록을 보면 형편이 다른 7개 교회가 나온다. 서머나 교회는 세상적인 기준으로 가난한 교회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에 2장 9절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라며 부요한 자로 말씀하셨다. 주님 보시는 눈이 우리가 보는 눈과 다르다. 서머나 교회는 가난한 교회인데 예수님이 보기에 부자이다.
굉장히 부자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는 현대교회를 상징한다. 3장 17절(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에 보면 예수님의 눈에 보기에는 라오디게아 교회는 너무 가난했다. 이제 이 눈을 가져야 한다.
정말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자가 분명하려면 보는 눈이 분명해야 한다. 나는 부자이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복을 많이 주셨다고 하다가 하나님앞에 가보았더니 알지 못하는 자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세상사람이 보기에는 너무 가난한데 하나님앞에 갔더니 너무 부유한자인 경우가 있다.
이점에 대해 분명한 기준을 가져야 한다. 여러분은 가난한자인가 아니면 부유한자인가. 무슨 기준을 가지고 그럴수 판단할수 있느냐.
세상의 영, 가난의 영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었다면 부자라고 믿어야 당연하다.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주신다. 예수님을 믿은 즉시 부자이다. 고아원에 있는 어려운 아이가 부자집에 입양되면 즉시 부자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고 하는데도, 왜 지금 당장 부자가 되었다고 고백을 못하느냐.
가난의 영에 사로잡혀서 그렇다. 예수님을 믿고도 실제로 마음에 주인노롯을 하는 영은 가난의 영이기에 그렇다. 세상의 영이 바로 가난의 영이다.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 세상의 영을 여전히 잡고 있는 성도들이 문제이다. 세상의 영인 가난의 영은 하나님의 은혜를 전혀 모르게 하는 영이다.
고린도후서 4장 4절(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이 말씀에 해당하는지 모른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는 다니지만 마음에 세상의 영이 혼미하게 하고 있다. 여전히 가난의 영을 붙잡고 산다. 가난의 영은 내가 가진 것이 없어질까 두려워 하는 영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없어질까 근심걱정하는 사람이 가난의 영이 사로잡힌 사람이다.
돈이 많아도 그렇다. 세상의 부자에게 지금에 만족하느냐고 물어보라. 조금만 더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이것이 무엇인가. 겉으로는 부자이지만 실제는 가난하다. 조금 더 가지기를 원하고, 가지고는 있지만 없어지는 것이 두렵다. 끓임없이 더 가지려 한다.
서울 강남구 부자들이 사는 동네 주민들이 구청에 가서 데모를 했다. 동네에 장애인 학교가 들어오면 집값이 떨어질까 데모를 한 것이다. 그 동네의 집값은 한국에서 가장 비싸다. 장애인 학교가 혹시 들어와서 집값이 떨어진다 해도 부자이다.
진짜 부자라면 장애인 학교를 환영하고 무엇을 도와줄까를 물어보아야 한다. 집값이 떨어질까 걱정하는 것은 가난의 영이다. 돈이 많이 있어도 가진 것이 적어질까 두려워 한다. 마귀가 하는 전형적인 역사이다. 마귀는 절대로 풀어놓지 못하고, 자꾸 움켜잡고 두려워 한다. 가지고 있는 재산을 지키기 위해 담을 높이 쌓고 보안장치를 만들고 계속 두려워 한다.
생수의 강이 흐르는 영
성령님을 모신 사람은 반대이다. 내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쳐 남에게 흘러넘친다. 그것이 성령님의 역사이다. 성령님의 역사와 가난의 영은 전혀 다르다. 여러분들의 마음속에는 무슨 영이 역사하고 있는가.
다른 사람에게 많이 베풀어주고 더 많이 나누어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얼마를 가졌는지 상관없이 부자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축복이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시면서 부터 더이상 먹고 사는 것을 걱정안한다. 먹고 사는 것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부터 하나님 아버지가 계셔서 더이상 걱정을 안해도 된다. 하나님이 필요할때 주실것이다. 내가 이제부터 관심을 가지는 것은 나누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지만 아직도 성령으로 살지 않고 세상의 영을 붙잡고 사는 사람이 있다. 웅켜쥐는데만 관심이 있다. 교회에서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하나님앞에 헌금하는 일도 두려울수 있다. 교회에서 베풀고 나누자고 해도 인색할수도 있다. 그러면서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한다. 그가 어려우면 다른 사람은 죽을 지경이다.
서울의 어느 교회에 있을때 선배 부목사 한분이 심방을 다녀와서 놀라워 했다. 심방간 성도의 집은 호화주택으로 100평이 넘고, 운전기사 2명과 일하는 사람 3명이 일했다. 기도제목을 물으니 요즘에 너무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기도해 달라고 했다. 이것이 무엇인가. 가난의 영에 사로잡히면 그렇게 산다.
왜 가난의 영에 붙잡혀 사는가
왜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을 붙잡지 않고 가난의 영을 붙잡혀 사는가. 속고 있어서 그렇다. 성령님을 모시고 살려면 겁이 난다. 성령님은 자꾸 주라고 하신다. 성령님이 하라는대로 베풀고 헌금도 하면 망할것 같다.
그때 가난의 영이 우리의 마음을 솔깃하게 만든다. 마귀가 하자는대로 하면 부자가 될것 같다. 그래서 계속 움켜 잡는다. 성령님을 의지하고 정말 부자로 살려고 하면 죽을 것 같지만, 세상의 영을 따라 살면 부자가 될것 같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하고도 마귀를 붙잡고 있다. 본인이 마귀를 붙잡으니 마귀가 안떠난다.
고린도후서 5장17절(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는데도 우리의 마음은 예수님을 믿지 않을때와 여전히 똑같다. 거지가 마음에 들어있는 것이다.
어릴때 아버지가 전기구이 통닭을 한마리 사가지고 오셨다. 당시에는 황홀한 일이다. 4남매가 정신없이 먹고 있는데 어머니는 "천천히 먹어라. 뱃속에 거지가 들었니"라고 말씀했다. 무슨 뱃속에 거지가 들어있는가. 지금 생각하니 어떤 모습인가 상상이 된다.
실제로 뱃속에 거지가 들어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영이고 가난의 영이다. 움켜쥐려고만 한다. 졸부라는 표현이 있다. 졸부는 가지고 있는 것은 많은 부자인데 생각은 여전히 가난한 사람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은혜때문에 예수안에서 진짜 부자가 된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렇게 되었는지 분명하게 점검해 보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잠언 11장 24-26절(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곡식을 내놓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나 파는 자는 그의 머리에 복이 임하리라)
여기에 재미있는 표현이 있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 질것이다는 말이 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렇게 되는것이다. 어떤 사람이 풍족해지는가. 구제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어려운 일이 있을때 베풀고 헌금도 한다. 그런데 구제는 했지만 구제를 좋아하는 사람까지 되었나를 점검해보라. 미국이라는 사회는 구제하는 일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나라이다. 그러니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됐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이다. 많이 돕고 그것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라.
여러분은 구제가 좋은가. 힘을 다해 구제헌금을 했는데 다음 주일에 다시 구제헌금을 해야할일이 생겼다면 여러분 마음에 어떤 생각이 드는가. 구제를 좋아하는 사람,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모른다.
구제를 하기는 한다. 그렇지만 구제를 좋아하는 것은 정말 다른일이다. 내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시며, 이것이 진짜 믿어져서 내가 정말 부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말 구제가 기쁘다. 그러나 세상의 영에 사로 잡혀있으면 구제가 기쁜일이 될수 없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베푸는 일이 즐거운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명이라고 생각하는가. 오늘 하나님앞에 그 점에 대해 점검하라. 우리가 정말 진짜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일까요.
가난의 영에 사로잡힌 사람은 돈을 많이 가져도 가난하게 산다. 가진돈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할수도 없고 남을 도와줄수도 없다. 가난의 영으로 인해 두려우니까.
말은 주님의 교회라고 해놓고
교회에 부임해서 보니 교회가 재정적으로 굉장히 어려웠다. 8천평 예배당을 건축하다가 경제적인 어려움이 와서 전임목사가 사임하고 내가 부임을 했다. 전체 500억 공사인데 교회빚이 100억이 있었으며, 지불하지 못한 건축비도 60억이 있었다. 교인은 다 떠나고 5백명 정도 남았다.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공사를 마무리 하게 해주셨다. 그런데 은행빚이 250억가량 남았고, 매주 갚아야 할 이자만 4천만원이다. 담임으로서 보통 어려운일이 아니었다.
그때 어느 시골교회 목사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예배당을 건축하다가 재정문제로 중단했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우리도 힘들어 도와주기 힘들다고 하고, 다른교회를 알아보라고 전화를 끓었다. 그때 주님의 책망이 강하게 들렸다.
"너는 교회표어를 예수님이 이끄는 교회라고 정하지 않았느냐. 너는 내 망신을 다시키고 있구나." 예수님께서는 정말 그런 마음을 주셨다. 정신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내입에서 "우리도 힘들다" "도울 힘이 없다" "죽겠다"등 가난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으면서도, 교회를 예수님의 교회라고 고백을 했으면서도, 또 빚이 많은데도 봉헌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이 다같아주실것을 믿는다고 했으면서도 마음속에 여전히 두려움과 염려가 꽉차있었다.
그 시골교회 목사에게 다시 전화를 드리고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리고 사정을 이야기 하고 재정부에 남아있는 돈을 확인하여 일부라도 돕겠다고 말했다. 재정부에 알아보니 잔고가 천만원도 안되었다. 그중에 몇백만원을 보내드렸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그때부터 주님이 교회를 책임져 주시고 교회를 놀랍게 변화시켜 주셨다는 것이다. 교회를 부흥시켜 주시고 더 도울수 있게 해 주셨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위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교회의 빚에 많이 눌렸다. 기도하는 가운데 장로들과 의논하여 교우들이 십일조 헌금 감사헌금은 절대로 교회건축금 상환에 사용하지 말기로 했다. 일반헌금은 선교하고 구제하고 하는 일에 사용하고, 건축 목적헌금만 이자와 상환금을 위해 사용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장로들의 걱정이 태산같았다. 나는 헌금을 건축비 상환에만 사용하게 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는 전혀 될수가 없었다고 단호하게 말하니 동의를 해주었다.
이후 우리교회는 빚이 많아도 건축 목적헌금만 이자갚고 상환한다. 교인들이 우리교회와서 두가지를 놀란다. 이렇게 빚이 많은 줄을 몰랐다고 한다. 지금 190억 빚이 남아있다. 또 하나 놀라는 것은 빚이 많은데 일하는 것을 보면 빚이 없는 교회같다고 했다.
본당공사도 다 못했을때 은행에서 융자도 안해주려고 했다. 그때 일본에 있는 형제교회가 20억이 드는 예배당을 건축하는데 15억은 마련했지만 5억이 모자랐다. 문제는 이번달까지 잔금을 못치루면 15억도 날아갈 지경이 되었다.
기도하다가 100억이나 105억이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간단한 문제이다. 장로들과 만나 의논을 하니 일리가 있다고 동의했다. 그래서 전교인을 모아놓고 설명하고, 은행에서 5억 융자를 받아 일본의 예배당을 잘 마련했다.
그때는 정말 우리가 무슨 정신인가 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은행에서 본당공사를 할수 있는 모든 융자를 받을수 있었다. 그때 어떻게 이런일이 일어날수 있었을까 생각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되심을 정말 믿으니 그런 일이 일어났다.
하나님이 아버지라고 믿으면서 왜 마음을 가난하게 사는가. 왜 여전히 부족한 것이 많고 염려와 근심이 많은가. 여러분 안에 있는 성령 하나님으로 인해 이미 여러분은 생수의 강이 넘치는 그런 축복의 사람이 되었으므로 믿음으로 나가면 된다. 믿음의 문제이지 소유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끓임없니 많이 가져야 부자이고 없으면 가난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안에 오신 성령님은 우리가 이미 부자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 믿음으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흘러보냄을 기뻐하면 그때부터 주님은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기 시작하신다. 그런 놀라운 은혜를 누리고 받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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