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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인 설교를 위한 목회자들의 눈물어린 자기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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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12-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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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말씀 컨퍼런스' 10주년을 기념하고 정리하기 위한 포럼이 “우리가 당면한 시대적 과제”이라는 주제로 4월17일부터 19일까지 필라 기쁨의교회(박성일 목사)에서 열렸다. 포럼은 목회자를 대상으로 열렸으며 컨퍼런스는 성도들을 대상으로 열렸다.

포럼의 첫 주제토론 내용은 “Sola Scriptura-성경 중심의 설교가 무엇인가?”였다. 발제자는 한성윤 목사(나성남포교회)이고 사회자는 최정권 목사(첼튼햄장로교회)이다.

이 기사는 포럼의 첫 주제토론 “Sola Scriptura-성경 중심의 설교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한성윤 목사(나성남포교회)의 발제이후 진행된 토론이다. 발제후 토론을 통해 설교자인 목회자들이 얼마나 성경적인 설교를 위해 고민하고 있으며, 부딪치는 현실적인 여러가지 벽이 얼마나 큰 부담이고 아픔인지를 눈물로 보여주었다. 다음은 토론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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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 최정권 목사

발제내용은 설교할때 가장 부딪치는 것은 설교자 자신이고 설교자로서 설교를 할수있는 준비와 삶의 이슈를 말했다. 한 화가는 "나는 그림을 위해서 양심을 속이거나, 팔리는 그림을 그리려고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많은 설교자들이 청중을 의식하고 설교한다. 여기에서 미술가보다 못하다. 소설가 박경리가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는데 소설가를 지원하는 사람들에게 두가지를 말했다. 생명을 사랑하라 그리고 명예를 버려라. 예수를 모르는 박경리가 소설로 세상에 도전하겠다는 사람에게 한 말이다.

미술가들이 그림하나를 그리기위해 전 생애를 걸고 팔리는 그림을 그리지 않기위해 밥을 굶고 물감을 사는 절규가 있다. 설교자로서 우리는 과연 그런 각오를 하고 살아가는가. 성경적인 설교, 십자가를 보여주는 삶 모든것을 말하면 결국 문제는 설교자 자신이다. 비판을 스스로 해보아야 할 것이다. 설교자로서 자세에 대해 스스로에게 묻고 얼마나 타락했는가 혹은 부족한가에 대한 자기고백이 있어야 할것이다. 성경적인 설교를 위해 도전하고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송태권 목사가 먼저 자기비판을 하면 후배들이 도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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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근 목사(서울강남교회)

비판을 할 것이 너무 많다. 설교를 끝나고 내려오면 바로 서지 못할정도 이다. 정직한 느낌은 벌거벗고 강단을 내려오는 느낌이라 부끄러움이 앞선다. 자책감이 있으면서도 소명이라는 미명아래 설교를 해야만 되는 현실사이에 갈등이 있다.

제 설교에 특징은 적용이 없다. 내생활에 바람직한 생활의 내용이 없어서 적용을 못하고, 또 40분 설교하는데 적용하기에는 무리인 면도 있다. 설교자 가운데 어떤 함정에 빠져있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소비자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그래서 적용쪽에 많은 포커스와 시간을 할애한다. 그러다보니 성경을 해석할 시간이 부족하다. 적용의 또 하나의 위험성은 적용이 감동스럽고 파급효과가 크지만 교인들에게 원리화가 되는 것이다. 설교를 하고 교인들에게 적용과 예화가 많이 남는다. 발제에 동감하는 부분은 설교할때 교인들이 예수가 진실로 운명처럼 만나게 될때 정말 경천동지할 삶의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지 감동스러운 적용이나 예화로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자아비판을 한다면 역시 말씀을 대할때 실력의 한계를 느낀다는 좌절이 일차적인 비판이고. 객주를 쓴 소설가 김주영은 한 때 절필을 선언했다. 절필한 이유로 내 영혼이 말랐다고 표현했다. 나는 그 기사를 읽고 설교자로서 충격을 받았다. 나는 영혼의 샘이 마를때가 없느냐는 질문이다. 그런 경우가 많았지만 직업이니 설교를 했다. 소설가보다는 설교가가 더 정직해야 하는데 내 자신을 돌아볼때 설교자로 위선의 껍데기를 갈수록 벗어내야 한다.

20여년째 목회하는데 우리교회 청중들은 청년들도 많이 있어 어디다 설교의 포커스를 해야 할지 헷갈렸는데 이제 청년목회를 따로 한다. 한 책을 3년동안 주일에배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시험을 해보았다. 결국은 예화적용보다 더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가 청중들을 길게 묵직하게 삶의 자리로 끌어내고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20여년 같은 청중을 대상으로 목회하면서 확인했다. 설교의 영광스러움이 있지만 누가 물어도 결국은 설교의 중심은 성경이 아니라 성경의 중심은 예수그리스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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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인현 목사(뉴프론티어교회)

청년중심의 목회이니 설교뿐만 아니라 제자훈련을 직접 담당하고 심방과 상담을 해야 한다. 새벽 수요 주일예배등 설교를 많이 해야 하기에 돌아서면 설교준비를 한다. 영혼의 샘이 마른다는 말을 듣고 나도 절필을 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고민이었다. 많은 설교량을 소화해야 하면서 설교의 질이 떨어진다는 두려움도 생기고, 바르게 설교하는가 자신을 점검하기도 바쁘게 목회가 돌아간다는 것도 압력이 되었다. 기도하며서 하나님의 회복을 구했다.

설교는 처음 1-2년은 토요일 밤마다 밤을 샜다. 실력도 없고 시간이 다른데 많이 시간을 소비해 밤을 새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 2년은 원고를 읽다시피 했다. 원고를 밤새워 편집해서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하니 밤도 새기도 했다. 어쩌면 그때가 하나님앞에 바른 준비를 한 것 같다. 지금은 밤을 못새고 있는데 지금 돌아보면 하나님앞에 초심으로 설교를 준비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가능한 내말을 안하려고 노력하며 30분에 맞추려고 노력했다. 잔소리가 없고 간결하고 복음의 핵심이 더 많았은데, 최근에는 예화사용과 내 자랑이 많아졌다. 결국 예수가 남아야 하는데 많은 경우는 영상이 남는것이 아닌가 염려가 있다. 물론 소비적인 경향의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했으니 할 수 없었다는 핑계도 느끼게 된다.

어떻게 개혁주의적인 것을 젊은 감각적인 세대에 전달하여 변화시킬 것인가를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결국은 선배목사님들이 말하는대로 다음세대에게도 먹힌다는 확신이 있다. 결국 목회자 가슴에서 나오는 진정성, 목회자 자신이 복음으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젊은이들이 기가 막히게 안다. 그들은 그것을 본다. 처음에는 화려한 문장이나 감각적인 것으로 그들을 바꿀수 있지 않을가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세상이 너무 감각적이기에 교회와서라도 조미료가 없는 음식을 먹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았다. 교회도 세상처럼 조미료를 넣어 댕기는 것을 주려하니 못쫓아간다. 아예 복음, 원초적인 복음으로 교회에서만 들을수 있는 복음을 주는 것이 오히려 다음세대에게 더 진정한 복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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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성 목사(콜로라도뉴라이프선교교회)

성경이 무엇인가를 재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왜 전하는 자의 진정성이 중요한가. 왜 완벽하게 설교하지 못하는것에 대한 자책감을 가져야 하는가. 성경이 무엇인가. 부족하게 준비가 되었더라도 전하면 하나님의 말씀의 파워를 기대할수 있는가. 전하는자의 진정성과 체험성을 떠나서 말씀이 역사할수 있는 공간이 있나를 생각하면서 우리가 정의해야 하는 성경은 무엇인가.

성경이 하나의 칼처럼 세상의 모든 문제를 벨수 있는 책인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 바를 설명하고 싶었는데 과연 교인들에게 성경이 무엇을 말하지 않는가를 말한적이 있는가. 성경이 무엇을 말하지 않는가. 객관적인 지체로서의 성경의 파워를 믿는가. 아니면 아직도 성경을 전하는 자의 진정성이 있어야 하는가. 감동을 주려는 사람과 복음의 진정성을 가지고 전하려는 것과 질의 차이는 어디서 발견할수 있느냐 하는 질문이 생긴다.

매일 소설가가 아침에 일어나 4시간씩 소설을 쓰듯이 나도 설교를 쓴다. 그리고 그 내용을 설교라는 프레임속에 집어넣었을때 다음에 일어나는 역사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맡겨두자는 것이다. 감동을 일으키려고 하는 것과 설교자의 진정성을 호소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성경을 신실하게 전하면 그것에서 이벤트로서 예수사건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전하는자의 진정성보다 전해진 말씀에 능력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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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준 목사(LA한길교회)

우리는 절대적으로 성경이 권위를 믿는다고 하는데 오히려 그것이 함정이다. 성경의 권위를 믿는다고 말하지만 설교를 할때 우리의 해석을 절대화 시키는 면이 있다. 다른 이야기를 안하고 성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절대적이라고 말하지만 다 내 해석이 들어가 있다. 때로는 말씀에 대한 권위가 아니라 해석자의 귄위가 더많이 귄위화 되었다. 설교에 절대적인 귄위라고 하는 것은 예수밖에 없다. 설교하면서 내가 어떻게 살았는가 말해야 한다면 나는 설교못한다. 그렇지만 내가 구속한 가운데 하고 싶은 말이 예수이다. 예수를 증거하고 싶다면 내가 말하는것도 성경에 대해 말하지만 절대적이 않다는 것을 인정할때 비로서 성경의 절대성이 드러난다. 우리는 설교를 할때 우리의 해석을 절대화 시킴으로 성경의 권위를 떨어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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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산 목사(믿음으로사는교회)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있는가. 그리스도가 해주신 일이 대단함을 깨닫지 못하고 설교하면서도 믿지 못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설교하면서 내가 정말 믿고 있는지 립서비스만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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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일 목사(필라기쁨의교회)

열린 말씀 컨퍼런스가 10주년이다. 내 자신도 교회에서 14년재 목회하고 있는데 처음과 다르다. 처음에는 객관적인 그리스도의 대속의 복음과 그리스도 중심적인 성경해석의 각도가 있었으며 처음 설교를 듣는 사람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처음에는 설교방향이 성도들과 각도가 안맞는 것 같았지만 성도들이 익숙해지면서 설교가 편안해졌다.

10주년이 되면서 컨퍼런스에 참여하는 목사들이 성장지고 알려진 목회자가 되었으며 목회지안에서 평가를 받일수 있는 상황이 되어 메세지와 메신저의 차이가 벌어질수도 있게 됐다. 처음에는 잘모르는 메신저가 독특한 설교를 하니 따라왔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여러분들의 사역에 대해 잘안다. 성도들이 이제는 너무 잘알기에 말씀을 전하는데 위기감이 있다. 이제는 내면적인 것을 성도들에게 숨길수 없다.

예수그리스도의 메세지가 내 삶에 변화시키는가 하는 질문에 피해갈수 없다. 요즘은 그래서 강단에서 자신이 없다. 송 목사님이 말했듯이 사람을 만날수 없을 정도로 벌거벗은 모습이다. 자신감이 없고 힘이 든다. 한군데에서 오래 목회를 하면서 이것이 목회이구나 하는 느낌이 강하게 온다. 이 말들이 수긍이 가는 것이 아니라 너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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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요 목사(세리토스장로교회)

박성일 목사의 아픔을 같이 느끼고, 그 아픔을 공유하지 못하는 설교자가 이 가운데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설교자로 부르심을 받은 초창기에 많은 설교를 하는 가운데 처음에는 생명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복음하나면 충분한 말씀을 전할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복음을 더 잘전할까 소통의 문제로 투쟁을 하면서 초보 설교자로 전달에 신경을 많이 썼다. 사전도 많이 보고, 필요한 미디어도 사용했다. 그러다 어느정도 딜리버리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그런데 어떤때는 절필을 하고 싶지만 절필이 안된다. 설교를 안하고 싶은데 어떻게 안하나. 교회를 안나가고 싶은데 담임목사가 어떻게 교회를 안가는가. 오늘 설교를 죽어도 하고 싶지 않은 상황에서 절필해야 하는데 그래도 강단에 올라가야 하는 설교자는 힘들다. (눈물로 말을 잇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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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진 목사(필라사랑의교회)

예레미야는 23년간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백성에게 전했다. 백성들은 23년간 빈둥거리며 잠만 잤다고 나온다. 위로가 되라고 하는 말이다. 오페라 아리아에는 지금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있는데도 사람을 웃겨야 하는 광대가 화장하고 노래하는 장면이 나온다. 설교자로 비슷한 고민을 많이 하는데 오페라 아리아를 생각한다. 자신을 보면 설교자로서 절필하고 싶을때가 많다. 그런데 하나님이 의상을 입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세우신 모습으로 섰기에 부담이 된다.

예레미야의 심정을 가져보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않고 망할 백성에게 23년을 말씀을 전해야 하는 예레미야의 입장을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의 파워는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관점에서 파워풀한 것이 아니다. 이런 모임을 하면서도 우리도 모르는 히든 파워에 대해 독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망할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결과도 망한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선지자로 사용하신 것을 인정한다면 중요한것은 내적인 태도의 문제이다.

내가 이해하는 성경적인 설교라고 한다면 복음을 제대로 전하는 것이 성경적인 설교라 본다. 어떻게 예수가 우리를 구원하시고 주님이 어떻게 우리같은 죄인을 구원하셨는지에 대한 복음을 제대로 전하는것이 성경적인 설교라고 이해한다. 고민을 한번 던지고 듣고 싶다. 십자가는 구원받을때만 필요하고 지금은 십자가와 관계없이 아무렇게 살려고 하는 청중들에게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것이 과연 성경적인 설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이 창기나 세리에게는 구원의 복음을 말씀했지만 바리새인에게는 채찍질을 드는 것 같이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복음을 전달해야 하기보다는 채찍을 들어야 할 때가 더 많다는 생각과 고민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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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중 목사(잭슨빌벧엘장로교회)

설교에 대해 말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설교자가 단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선포하는 것이 설교자의 중요한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칼빈이 설교자는 설교를 자신에게 한다고 했는데 우리가 다 부족하고 인격적으로 삶의 모습에서 설교할 자격이 안된다. 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말씀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하는 것이다. 바른 해석이고 하나님의 말씀의 뜻인것을 확신하고 하나님앞에 부쓰럽지 않게 선포한다면 그것으로 설교자의 기본적인 소명에 응답하는 것이라 본다.

지난 주일 예화를 사용한것이지만 개그우먼 김미화가 어느 책에 보니 자기가 죽으면 묘비명을 '웃기고 자빠졌네' 라고 쓰겠다고 했다. 개그우먼으로 남을 웃기다고 죽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저는 목사로서 설교가 가장 중요한 책임이기에 '설교하고 자빠졌네'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내도 잘알겠지만 나는 말씀을 선포할 자격이 없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부르셨다면 그 소명에 감사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확신하고 최선을 다해 설교를 준비하여 선포하면 그것으로 소명에 응답하는 것이라 단순하게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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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헌석 목사(앤아버소망교회)

개인적으로 목회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릴때부터 목회자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방향을 잡았다. 아버지가 성도들 앞에는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친구 목사들끼리 사석에서 보면 설교내용과 정반대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목회자가 되면 말로하는 설교보다는 몸으로 하는 설교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실제 목회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런 적용이 많이 되었다.

주일설교에 촛점을 두기보다는 생활에 촛점을 두는 몸으로 메세지를 전하려 했다. 바닥에 떨어진 휴지를 한번 더 줍고 성도들에게 한번 더 따뜻한 말을 하고 그러다보니 교리보다는 삶의 위로나 격려쪽으로 많이 가는 설교를 하게 되었으며 목회에 적용이 되었다. 성도에게 전달되는 것은 말씀이 아니라 교훈이 전달되는 것을 보았다. 메세지의 내용도 중요하고 메진저도 중요하다. 성도들은 초장기에는 메세지의 내용을 듣지만 5-10년이 지나면 메신저를 보게되기에 같이 전달이 되어야 맞다고 본다.

주제가 소통의 문제이고 두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송태근 목사처럼 한 권을 가지고 주일설교를 3년동안 한다는것도 중요한 전달 소통의 방법이다. 목회자로서 일주일에 한번 설교하는데 과연 성도를 변화시킬수 있을까 했을때 아니다. 한번의 설교로 이들이 변화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도 목회자의 의도나 진정성이 주일설교에서 전달된다. 그런면에서 주일설교를 통한 소통의 방법이라고 보았다. 이국진 목사가 말한대로 성도들이 구원이후의 삶에 대해 전해 개념이나 중요성을 생각하지 않을때 어떻게 해야할것인가 하는 걱정이 있다.

우리교회는 주일설교도 하고 새벽설교도 하지만 매일 새벽예배를 드리고 나는 캠퍼스로 가서 오전 7시에 일출기도회를 한다. 40여분간 찬양하고 성경읽고 묵상하고 해석한후 각자의 묵상내용과 기도제목을 나눈다. 그리고 어제는 잘살았는가 점검하고 오늘은 어떻게 살것인가를 기도하고 묵상한다. 일주일에 5일을 같이 하면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변화되는 것을 보면서 소통의 문제는 주일설교에 춧점을 두기보다는 말씀을 삶에 함께 나누고 반복되게 나누고 삶과 연결하여 나누는 방법을 개발하지 않을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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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웅산 목사(한국 총신 신대원 조직신학 교수)

고린도전서 1장 21절을 보면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라고 나온다. 전도의 미련한 것이라 표현되어 있다. 번역이 '전도'라고 되어있는데 원래는 '설교'이다. 우리 성경만 '전도'라고 한다. 설교라고 하는 것이 미련한 방법이다. 특히 우리가 고린도전서 1장을 문맥에서 말하면 세상의 이치와 하나님의 지혜의 대비의 관점에서 볼때, 세상에서 보면 설교라는 것은 실패할수 없는 방법이다. 그렇기에 설교자들이 부딪치고 고민하게 된다. 자칫 자기에게 문제가 있는 쪽으로 포커스가 되는것은 잘못된 방향이다. 개혁주의적인 판단이 아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다루는 성경은 계시이다. 계시가 계시로 작용한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설교자가 계시를 계시대로 설교하면 작용한다면 것을 믿으면 설교자가 자유로울수 있다.

많은 경우 설교자의 실존이 텍스트가 되는 경우가 많다. 설교를 텍스트로 다룬다고 하면서 설교자의 의도가 텍스트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교인으로 하여금 동의하라고 하니 문제가 된다. 내 신학이 텍스트를 어떻게 읽느냐 하는것이 우리의 작업인데 그것이 개인적으로 달라지니 문제이다. 내가 이렇게 해석한다는 것을 교인들이 신뢰할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해석의 방법은 웨스스민스터 고백이다. 교인들이 우리 목사가 그것에 근거해서 성경을 해석한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설교는 문화이다. 오늘날 많은 설교자가 힘든것은 설교의 흐름, 문화속에 떠 내려가고 있다. 나혼자 이렇게 설교해서 승산이 없는 설교라는것이 알기에 너무나 부담이 된다. 설교의 문화를 이루기위해 혼자서 되는 일이 아니라 이러한 연합을 통해 설교의 운동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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