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저지 찬양교회 직분제 폐지 및 호칭은 형제/자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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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ㆍ2012-04-17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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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목회자의 초대교회로 돌아가기 위한 노력이 미주한인교계에 큰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뉴저지 찬양교회(허봉기 목사) 당회는 내년부터 당회에서 시무하는 장로를 제외한 모든 직분을 폐지하고, 교우들의 호칭을 '형제' 또는 '자매'로 통일하며 당회에서 시무하는 장로도 '형제'로 호칭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유아세례를 하는 뉴저지 찬양교회 허봉기 목사
그동안 한인교계에서 이와 같은 시도를 한 소규모 교회들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찬양교회는 세례교인만 1천명이 넘는 교회로 뉴저지 한인교계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는 교회이기에 그 파장이 큰 것이다. 허봉기 목사는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참된 교회를 위해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찬양교회의 시도는 교회내 문제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허봉기 목사가 목회하는 12년 동안 임직에 관해 아무런 잡음이 없었다. 찬양교회는 이미 장로임기제를 하고 있다. 장로는 공천위원회의 공천을 거쳐 공동의회에서 선출되어 3년을 시무하고 1년을 쉬고 다시 장로로 시무하려면 다시 공천을 받아서 역시 3년직으로 선출되며 최대 65세까지 시무할수 있다. 또 허봉기 목사는 65세 은퇴와 은퇴후 원로목사가 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태이다.
약간 다른 경우이지만 한국교계에서는 이재철 목사가 시무하는 100주년기념교회는 권력화 서열화 된 장로제도를 개혁하여 큰 파장을 일으켰다. 장로와 권사를 직분으로 보지 않고 호칭으로 보며 일정 나이가 되고, 교회출석 년 수 등 자격을 갖추면 장로와 권사로 호칭한다.
다음은 허봉기 목사가 관련발언을 한 지난 종려주일 설교전문이다. 허 목사는 갈라디아서 3장 26절 -28절을 본문으로 "예수 안에서 형제와 자매"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다. 설교에는 허봉기 목사가 왜 이런 시도를 하는지 잘 나타나 있다.
예수 안에서 형제와 자매
오늘은 종려주일 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한주간을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사람들은 마치 왕을 모시듯이 예수님을 맞이하였습니다. 예수님 같은 분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그럴만한 분이셨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예수님은 귀신을 쫒아내는 분이셨고, 거센 풍랑을 잠잠하게 하는 분이셨고, 물위를 걸으시고, 병든자를 고치시고, 보리떡 5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셨으며,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고, 죽은자를 살리셨던 예수님을 사람들은 자기들이 기다리는 메시아로 생각하였습니다. 그 분이야 말로 화려했던 다윗 왕조의 영광을 회복하실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의 속국 식민지 백성이었습니다. 가난하게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궁핍한 삶에 예수님이 등장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어마어마한 분이셨습니다. 그들이 당하는 어려운 문제들은 하나하나 다 풀어주실 수 있는 그런 분이셨던 것 입니다. 그런 분이 왕이 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절정에 다다를 때 마침내 예루살렘에 오신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이제 이분이 왕으로 등극하기 위해서 왕의 도성인 예루살렘에 오신 것이라고 생각했고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환영하였습니다.
꼼꼼히 성경을 읽어보면 참으로 눈물겨운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입성하실 때 새끼 나귀를 제공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벱바게에 사는 사람이었는데 벱바게나 베다니도 예수살렘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 예루살렘 성안에 살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마을이었습니다. 그 가난한 동네에서 키우던 나귀의 새끼를 예수님께 내 놓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외투를 예수님이 가시는 길에 깔았습니다.
상당히 인상적인 장면임이 분명합니다. 혹시 이스라엘을 여행하는 길이 있으면 알게 되겠지만 이스라엘은 상당히 건조하기 때문에 포장이 된 곳이라도 먼지가 많이 나는 지역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길에 밟고 지나가도록 외투를 깔았다는 것입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흔드는 모습이 장관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겉옷이 하나 밖에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한벌 옷도 낮에는 외출복으로, 밤에는 이불로 덮고 자는 형태였습니다. 그러므로 두벌 가진 사람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렇게 소중한 옷을 바닥에 깔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옷이 어떻게 한 벌 밖에 없냐' 라고 하겠지만 제가 자랄 때만 해도 '단벌신사'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저만 하더라도 (제가 결혼이 늦었지만) 후배들이 결혼을 하는데 결혼식에 입고 갈만 한 옷은 겨울 옷 밖에 없었습니다. 겨울 옷 밖에 없다고 누가 겨울에만 결혼을 하나요?
6월이 가까운 때 결혼을 하는 후배가 있었습니다. 별 수 없이 그 옷을 차려 입고 결혼식에 갔는데 거의 쪄 죽을 뻔한 기억이 있습니다. 불과 몇 십년 전만 해도 그렇게 '단벌신사'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제가 조금 더 가난하기는 했지만 어렵지 않게 그런 단어를 들을 수 있는 때 였습니다. 식민지 백성으로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옷이 한 벌 밖에 없었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 한벌 밖에 없는 옷을 예수님을 왕으로 맞이하기 위해서 먼지 풀석이는 길에 깔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노래하기를 "찬송하리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이렇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왕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다시 사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우리의 구주가 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처음 공적인 생활 3년 동안은 정말 사람들이 기대하는 일을 하셨다. 바람직한 생활이었던 것입니다. 병든 자를 고치고, 삶이 무너진 자들을 회복시키시고, 굶주린 자들을 먹이셨습니다. 3년 동안 사람들이 기대하는 일을 하셨을 동안은 재미있고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따라 다니면서 '이분이야 말로 왕이 되셔야 할 분'이라고 생각한 것이 너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예루살렘에 입성해서는 사람들의 그런 환호를 무시하고 예수님은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바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바라지 않는 그 일을 하셔야 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에 달리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신 뒤에 말씀하신대로 이 땅에 주님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 교회는 놀라운 내용을 가르치는 교회였습니다. 놀라운 내용을 믿는 곳이었습니다. 놀라운 내용을 실천하는 교회였던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하나이니라'
세례받고 예수안으로 들어가서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은 사람들은 그의 신분이 어떠하던지 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 때 당시 유대인이나 헬라인은 절대로 상종 할 수 없는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노예와 주인이 같이 어울릴 수 없는 세상이었고, 남자나 여자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러나 어울려 하나 될 수 없는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하나가 된다는 놀라운 메세지를 선언하고, 그대로 실천하는 능력있는 교회 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서로를 형제와 자매라고 불렀습니다.
신약성경의 가장 우똑한 인물 중의 한사람이었던 바울이 회심하는 장면들을 읽어 보면 대단히 인상적인 대목이 나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예수믿는 사람들을 박해 하는 것도 모자라서 박해를 피해 사방으로 흩어져 있는 사람들의 정보를 수집하던 중, 다메섹에 예수믿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사람들을 체포하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거의 다 가는 중에 예수님을 환상으로 만나서 회심하게 되는 중, 바울은 눈이 멀게 됩니다. 그 때 성령께서 아나니아라고 하는 다메섹에 있는 제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사울이라고 하는 자가 눈이 멀어 있을 것이다. 그를 안수하여 다시보게하라.'
여러분, 사울이라고 하는 이름은 그 당시에 그리스도인들은 듣기만 해도 치를 떨어야만 했던 이름이었습니다. 왔다는 이야기만 들어도 도망을 가야 할 판인데 찾아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옛날 그리스도인들은 대단했습니다. 성령이 '가라' 하시니까, '앞으로 그가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당할 자다' 라고 하시니, 그 말씀을 믿고 죽을 자리인줄 알고도 사울을 찾아가서 처음 건낸 말이 '형제, 사울아 내가 오던 길에서 만난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라' 라고 이야기를 했던 것입니다.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형제 사울'이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형제는 그리스도를 속칭하는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의 시민권자였던 바울은 뒤에 도망간 노예인 오네시모를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이 교회는 세상과 전혀 다른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 발을 씻은 것 같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라'고 하셨습니다. 서로 종 노릇을 해라는 말이 됩니다. 놀라운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너희가 스스로를 낮추면 내가 높이라라고 주님이 말씀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올라 가려 하는데 하나님의 교회는 내려가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찬양교회의 중대결정에 대한 언급 내용
여러분, 우리도 1세기의 교회 모습으로 회복하려 합니다. 이번에 당회가 놀라운 일을 결정했습니다. 원래는 오늘 드릴 말씀을 부활주일이 지나고 4월 15일에 하려 했는데, 종려주일에 하는 것이 시기에 적절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종려주일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기대하지 않는 일, 그러나 마침내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이 하실 수 있는 가장 좋은 그 일을 행하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을 받들기 힘들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확신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참된 교회를 위해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년 1월 부터 당회에서 시무하는 장로님들을 제외한 모든 직분을 폐지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호칭을 '형제' '자매'로 통일하기로 하였습니다." 당회에서 시무하시는 장로님들도 호칭은 '형제' '자매'로 부르기로 하였습니다. 자매님은 안 계시니까 당회에서 시무하시는 장로님들도 장로님이라 부르지 않고 '형제님'이라 부를 것입니다.
사실 이런 생각을 오래 전에 했었습니다. 5-6년 전에 당회에서 잠깐 거론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이게 너무 복잡하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 때는 직분까지는 생각을 못하고 호칭 문제만 다루었었는데 우리 정서에 연로하신 어른들을 형제님 자매님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연세가 드셨는데 젊은 사람들로 부터 '형제'라 호칭을 듣는 어른들도 힘드시지만 그렇게 부르는 젊은 사람들도 못지 않게 힘이 듭니다. 저도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것이 너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올랜도 비전교회 제 친구목사 교회는 아예 처음 목사로 부임해 갈 때 부터 이 정신을 살려서 '형제' '자매'라고 호칭을 정했는데, 그 교회도 연장자를 그렇게 부르는 것이 쉽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70세 이상은 '아버님'과 '어머님' 이렇게 했다는 것 아닙니까? 얼마나 정겨워요 '아버님' '어머님' 이렇게 말입니다. 고민한 결과죠. 그랬는데 그것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형제님이 세월이 흘러 아버님이 되었는데 교회가 이것을 모른다는 겁니다.
70세가 되신 분이 교회에 처음 오시면 당연히 '아버님' 그러지 않겠어요. 그랬더니 다른 형제님이 화가 나서 교회를 안 나오셨답니다. 알아보니까 "아니, 나이가 똑같은데 누구는 '아버님'이고, 누구는 '형제님'이냐." 이 분이 몇 년 사이에 형제님이 아버님이 되셨지만 그렇다고 해서 생일을 맞으실 때마다 "아무개 형제님은 몇 월 며칠 부로 아버님으로 승격 되셨습니다.' 이럴 수도 없고...
그러니까 이것이 너무 너무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때 당회에서 이야기 할 때에도 그럼 '성도님'으로 할까, '사도'라고 할까 완전히 별 생각을 다했는데 다 만만치 않았습니다. 지금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요번에 당회가 큰 결심을 한 것은 정말 예수님이 처음에 마음에 두셨던 이 세상에 처음 출현했던 놀라운 교회 모습을 얼만큼이라도 회복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호칭 문제 뿐만 아니라, 직분 문제 까지 묶어서 다루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것을 신앙적인 용어로 해석하면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형제' '자매'가 세상 용어라고 생각하면 너무 힘든 것입니다. '죄인'도 그렇습니다. 세상적인 용어로는 우리가 죄인이 아니잖아요. 우리가 따로 죄지은 것도 없고, 감옥 갈 일도 없고, 그러나 교회에 오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죄인'인데 마찬 가지로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피를 나눈 형제 자매 즉 신앙적인 용어로 형제와 자매라고 생각하면, 조금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2천년 전을 생각해 보세요. 노예와 주인이 같은 교회에서 한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서로를 형제라고 부렀던 것을 생각하면 21세기 찬양 교회에서 예수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피때문에 서로를 '형제'라고 부르고 서로를 '자매'라고 부르는 것이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 겠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문화가 다르기는 하지만 미국 교회는 다 직분을 부르지 않아요. '장로'가 되었다고 '장로'로 호칭하지 않고, '집사'가 되어도 '집사'라고 호칭하지 않습니다. 모두 이름을 부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름을 부르는 문화가 아니니까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유는 이민교회가 그렇지 않아도 힘이 모자라는 교회들인데 직분자를 뽑아 세울 때 마다 교회가 어려움을 겪는 문제 였습니다. 저는 동료 목사님에게 수도 없이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 동네에 있는 교회들도 그런 어려움을 겪는 교회가 적지 않습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자기가 장로 자격이 있는데 왜 안세우냐' 라고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데 '아무개가 장로하면 나도 장로 할 수 있지' 이렇게 생각하거든요. '아무개가 집사하는데, 내가 집사 못할 이유를 대봐라'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 교회는 12년 담임 목사로 목회를 하는 동안에 장로와 안수 지사를 뽑고 권사를 세우고 교회가 어지러워진 경우가 한번도 없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런 점에서 자랑 스런 교회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4년 전 부터 장로와 안수 집사를 선출 할 때 그냥 소리로 합니다. 4년 전에 그런 제안을 할 때 여러분들이 그것을 받아 주셨습니다. 뽑는 사람 수와 뽑고자 하는 사람의 수와 호부자의 수가 같을 때에는 3가지 방법으로 선출을 할 수 있도록 규례서가 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무기명 비밀 투표이고, 두번째는 거수이고, 세번째는 소리로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 시점에서 5년 전 통계를 여러분에게 제시 했습니다.
5년전 통계로 보면 공천위원회에서 공천을 받은 사람이 공동 의회에서 과반수만 얻으면 되는데 평균 반대율이 3.5% 였습니다. 50%만 얻으면 되는데 96.5%가 평균적으로 찬성표를 받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뭐 하러 이런 투표를 하고 있는 거냐'라고 교우들에게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은 우리 교회 규모만 되더라도 누가 누군지 잘모르기 때문에 그 사람을 지지하면서 투표하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더 크게는 공천 위원회의 활동을 여러분이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해마다 항상 투표용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때마다 여러분들이 돌아가자면 돌아가려고 준비했지만 4년이 지나도록 한번도 그런 요청이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장로 선출 할때 5분 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공천회에서 후보자 발표하고, "찬성하면 '예' 하세요." 그래서 그냥 장로가 되고 집사가 되고 5분 밖에 안결렸어요. 그렇긴 해도 여전히 우리 교회도 장로 뽑아 세우고 집사 선출하는 일이 어려운 일입니다.
참 충성 스런 분들이 많으세요. 근데 다 장로로 뽑을 수는 없잖아요. 안수 집사 하실만한 충성스런 분들이 참 많이 계세요. 구석 구석에서 목장을 지성으로 섬기고, 하나님의 교회와 일터에서 최선을 다해서 일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 중에서 몇 분만 안수집사로 뽑아 세우는 것이 너무 힘이 드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다 안수 집사를 시킬 수는 없는 일이 잖아요. 그래서 생각 한 것이 이 것입니다. 교우들이 모두 '형제' '자매'로 불리면 장로 집사 직분에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게 될것입니다.
제가 바라기는 우리 교회에서 가장 영예로운 직분은 '목자'가 되면 좋겠어요. 목자가 충분히 영예로운 이름입니다. 장로로 불리울 것도 아니고, 집사로 불리울 것도 아니고, 내가 하나님의 교회의 최일선에서 하나님께 사랑 받는 이들을 섬기는 이 직분이 최고로 영예로운 직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 결정을 보면서 우리 교회 교우들이 얼마나 수준이 있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들이 우리 교회는 이상한 교회라고 생각 하실 수도 있겠지만, 이런 제안을 했을 때 당회가 반대 없이 받았던 점도 감사드립니다.
지난 12년 목회를 돌아 보면 처음 담임 목사로 부임해서 2년 동안 일어났던 변화는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온지 한달이 안되어서 '금요 심야 기도회'를 한달에 한번하고 없애자고 했습니다. '수요예배'를 '수요 찬양기도예배'로 바꾸고 '금요 심야기도회'를 없앴어요. '금요 심야 기도회'는 한달에 한번 했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반 만에 '주일 새벽 기도'를 없앴어요. 그리고 '남 선교회'를 없앴습니다. 일년 있다가 '여 선교회'를 없앴습니다. 일년이 안되어서 그때 사랑방을 하기 위해서 '수요 예배'를 없앴어요. 그리고 '제직회'를 없앴어요. 그리고 제가 부임한지 한달 반 만에 건축을 논의하기 시작했어요.
변화가 말로 다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장로님들은 3년하고 1년 쉬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공천 위원회에서 공천을 받아 뽑히면 다시 3년을 시무하기로 했습니다. 장로님들은 65세 까지만 시무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장로님들이 65세 전에 그만 두셨습니다. '이렇게 일 할 사람들이 많은데 내가 당회에서 오래 일할 이유가 없다'고 다른 일은 나이들어도 하겠지만 당회 일은 그만 하시겠다는 분들이 여러분 계셨습니다.
참 좋은 교회입니다. 하지만 어떤 결정도 이번 결정 같지는 않았습니다. 올해도 서리 집사 직분을 없앴지요. 찬양대 3개 중에 2개를 없앴지요. 어떤 분은 그렇게 생각 하실 지 모르겠어요. 우리 목사님은 '없애는 게 취미 인가 보다' 또 어떤 분이 '목사님은 없애는게 은사인가 봐요' 그러셨는데 사실은 취미도 아니고 은사도 아니고 저도 힘이 듭니다.
해당되는 장로님이 앞에 계시는데 '65세 까지만 하세요' 그렇게 말하는 것 힘이 듭니다. 하지만 장로님들이 수용해 주셔서 제가 눈물만 안 흘렸지 너무 고맙게 생각합니다. 지난번에 찬양대 없앨 때에도 너무 아깝더라구요. 찬양대가 찬양하는 것을 보는데 '저렇게 잘하는 찬양대를 없애야 하나' 라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들었었어요. 다른 교회 같으면 뒤집어 져도 10번은 더 뒤집어 질 사안이죠. 그러데 교인들이 다 소화하시고 어려움을 다 격으셨습니다.
'또 분란을 일으키냐'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거예요 그런 분 들을 위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마음이 급해졌어요 어떤 분은 '조금 여유를 두고 하시면 좋겠습니다' 라고 하십니다. 제게 그 마음이 전달이 되요 어떤 분은 그런 말씀도 하셨어요 '저는 목사님이 우리 교회에서 명예롭게 은퇴하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교회 청빙위원회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저는 기운이 없어서 싸워가면서는 못합니다. 저는 아무리 좋은 일도 싸워 가면서 할 생각은 없거든요.' 그때 그런 말씀도 드렸어요. '저는 찬양 교회에서 은퇴하고 싶습니다.' 제가 올 때만 해도 찬양교회가 모든 목사님이 오고 싶어하는 매력적인 교회는 아니었거든요. 규모나 여러가지 면에서.
그러나 교우들이 미워하면 언제라도 떠나겠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제게 어떤 마음을 주셨는데 아무일도 안하고 이 정도의 교회에서 은퇴하는 것을 명예롭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혹 여러분 생각과 제 생각이 달라서 제 생각을 못 받고 '담임 목사를 바꿀때가 되었나 보다' 라고 해서 교회에서 쫒겨나는 일이 있다 해도 평생을 제가 그 말 했던 것을 영예롭게 생각하며 살것입니다.
왜 이렇게 변화를 서두르는가. 제가 생각해 보니까 얼마 안 남은 거예요 제가 목회 할 날이.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야성이 있었던 것 같아요. 굉장히 내성적이었습니다. 내성적이었는데 야성은 있었던 것 같고, 이것이 둘이서 결합이 안되어 이해가 안 되시겠지만 금호 국민학교를 다녔는데 굉장히 큰 학교 였습니다. 14반이 있었습니다. 한반에 거의 90명 이렇게 있었어요. 전교생이 만명이 넘었어요. 붐비는 학교 였지요.
5-6학년에는 거의 시험을 매일 봤는데, 중학교를 시험봐서 들어가던 시절이었으니까, 성적이 안되면 선생님이 손바닥을 때리고 그랬잖아요. 공부 못 한다고 공식적으로 때리는 일이 그때는 당연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무식한 일인지. 그런데 우리 담임 선생님은 조금 창의적이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시험 보고 나면 성적 순으로 자리를 쭉 앉혔어요. 그래서 누가 보더라도 개는 91등 인거예요. 이렇게 무식한 학교였습니다.
선생님은 참 좋은 분이셨는데 어느 날 선생님이 책상 오른쪽 위에 자기가 목표로 하는 점수를 쓰라는 거예요. 뭐라고 적어도 좋지만 써 있는 점수가 안되면 모자라는 만큼 손바닥을 맞아야 했습니다. 저는 되게 점수를 높이 적어 놓고 허구 헌날 터졌어요. 매일 시험을 봤는데.....
저는 한번도 그것이 시행되는 동안 점수를 조정 할 생각을 안했다는 것 아닙니까. 좋은 말로 하면 야성이 있었다는 이야기이죠. 그것이 제 목표 였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면 '공부를 되게 못했다'로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공부를 잘했습니다. 제 아내는 어디가서 그런 이야기 하지 말라고 하더라구요. 국민학교 때는 누구든지 공부를 다 잘하는 것이라구요. 저는 더러 전교에서 1등도 했어요.
저는 목회 말년에 야성이 다시 생긴 것을 대단히 영예롭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에게는 불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원래 '원로 목사는 안하겠다' 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원로 목사를 잘 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저는 목회 잘 하고 물러나서 교회를 망치고 싶은 생각이 없기 때문에, 원로 목사는 안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한국 거의 교단의 목회 은퇴 연령은 70세 입니다. 미국도 대부분의 목사 은퇴 연령은 70세 입니다. 그리고 UMC(미국 연합 감리교)는 은퇴 연령이 72세입니다. 그런데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미국 장로교 목사의 은퇴 연령은 없습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면 되게 겁이 나시죠. 제가 오래 목사를 하려고 한다면 여러분들이 공식적으로 쫒아내기 되게 힘드세요. 제가 큰 과실이 있기 전에는...
그런데 여러분이 걱정 안해도 좋은 것이 저는 이 교회에 오기 전 부터 그런생각이었습니다. 저는 소셜 시큐리티 연금을 풀로 받을때 그만 둔다. 그때는 65세에 받았습니다. 지금은 경제 형편이 안좋아져서 소셜 시큐리티 연금을 풀로 받는 나이는 66.2개월입니다. 그래서 66.2개월에 은퇴하려 했었습니다. 그런데 '사내가 돈 몇푼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냥 65세에 은퇴하기로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사실은 일찍 그만 두는 것을 조금 보류 했던 이유가 제 아내와 7살 차이가 납니다. 제가 가끔 아내를 생각하는 사람이잖아요. 더 할 생각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65세에 은퇴 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목회보다 더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그 전에라도 그만 둘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제가 찬양교회에서 일할 수 있는 기간이 7-8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7-8년 금방 지나 갑니다. 우리가 건물 짓고 입당한지 만 7년이 지났습니다. 얼마나 빠른지 모릅니다. 금방 지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제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저는 남은 목회기간 동안 '보다 더 교회 다운 교회'를 만들기 위해 힘쓰고 싶습니다. 이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 떨리는 일입니다.
최근에 제가 책을 읽었는데 김정훈이라는 문화 심리학자의 책 중에 재미 있는 챕터가 있었습니다. '설레는가? 그럼 살만 한 것다!' 저는 진짜 마음이 설레더라구요. 저는 이제까지 교회가 주는 밥을 먹고 점점 더 잘 살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밥을 먹는다고 이것을 하지는 않아요. 저는 목사를 하면서 목회 마지막에 이렇게 가슴 떨리고 설레는 일이 있다는 것이 너무 좋더라구요.
여러분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좋아하실 분이 계실 거예요. 여러분들도 설레 실지 모르겠어요. 여러분도 기뻐 하실지 모르겠어요. 제가 분명히 말씀들릴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이 기뻐하시는 그만큼 우리 교회는 좋은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이것을 부담스러워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해 해요. 어른들께는 정말 죄송한 마음이 있습니다. 어느 장로님이 그러시더라구요 '저는 목사님이 하시면 반대는 안하겠지만 너무 너무 힘들다'구요. 또 어떤 분은 '이거 해가지고 좋은 교회가 될 것 같지 않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확신합니다. 여러분이 힘들어 하시는 만큼, 부담스러워 하시는 것 만큼 우리 교회가 그만큼 좋은 교회가 될 것입니다.
평생에 주님이 좋아하시는 교회를 이루는 것을 그냥 한 목사의 소원이 아니라 우리 교회 전체 교우의 소원으로 여러분이 기도해 주셨으면 합니다. 어떤 교회에 좋은 영향을 주려고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직분자를 뽑아 세울때마다 어려움을 격는 교회들에게 '2천년 전에만 그런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니라, 21세기 그 척박하다고 하는 한인교회에도 어떻게 해서든지 주님의 뜻을 가까이 따르려고 하는 그런 교회가 있다' 라고 하는 좋은 예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 같이 기도해 주시길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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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아멘넷 기사후 허봉기 목사가 홈페이지에 올린 설명입니다.
직분과 호칭에 관한 질문들
우리 교회가 내년 1월부터, 당회에서 시무하는 장로를 제외한 모든 직분을 폐지하고 호칭을 형제 자매로 통일하는 것에 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1. 성경적인가?
안수집사와 권사 직분을 없애는 것이 성경적이라는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을 지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성경적이라는 말입니다. 한국교회, 특히 이민교회에는 직분과 호칭 문제로 진통을 앓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직분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주님이 기대하시는 일에 골몰하는 것이 건강한 교회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아직까지 임직을 둘러싼 문제가 없었지만, 보다 더 교회다운 교회를 위해 직분과 호칭 문제를 다루게 되었습니다.
2. 성경에 있는 장로와 집사 직분을 없애는 것은 성경을 거스르는 일이 아닌가?
초대교회에 있던 모든 직분이 지금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사도나 예언자는 현대 교회가 채택하는 직분이 아닙니다. 미국에서 가장 큰 교단인 침례교에는 장로가 없습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미국장로교 회원교회 중에 절반은 안수집사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번 결정 중에 장로에 대해서는 호칭을 없애는 것이지 직분을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장로교의 경우, 장로나 집사는 시무할 동안만 장로나 집사이고, 장로나 집사로 시무하는 중에도 장로나 집사를 호칭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결정은 성경에 위배되는 것도 아니고, 미국장로교의 법을 어기는 것도 아닙니다. 참고로, 스데반이나 빌립, 뵈뵈는 집사가 아닙니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유아세례를 하는 뉴저지 찬양교회 허봉기 목사
그동안 한인교계에서 이와 같은 시도를 한 소규모 교회들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찬양교회는 세례교인만 1천명이 넘는 교회로 뉴저지 한인교계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는 교회이기에 그 파장이 큰 것이다. 허봉기 목사는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참된 교회를 위해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찬양교회의 시도는 교회내 문제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허봉기 목사가 목회하는 12년 동안 임직에 관해 아무런 잡음이 없었다. 찬양교회는 이미 장로임기제를 하고 있다. 장로는 공천위원회의 공천을 거쳐 공동의회에서 선출되어 3년을 시무하고 1년을 쉬고 다시 장로로 시무하려면 다시 공천을 받아서 역시 3년직으로 선출되며 최대 65세까지 시무할수 있다. 또 허봉기 목사는 65세 은퇴와 은퇴후 원로목사가 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태이다.
약간 다른 경우이지만 한국교계에서는 이재철 목사가 시무하는 100주년기념교회는 권력화 서열화 된 장로제도를 개혁하여 큰 파장을 일으켰다. 장로와 권사를 직분으로 보지 않고 호칭으로 보며 일정 나이가 되고, 교회출석 년 수 등 자격을 갖추면 장로와 권사로 호칭한다.
다음은 허봉기 목사가 관련발언을 한 지난 종려주일 설교전문이다. 허 목사는 갈라디아서 3장 26절 -28절을 본문으로 "예수 안에서 형제와 자매"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다. 설교에는 허봉기 목사가 왜 이런 시도를 하는지 잘 나타나 있다.
예수 안에서 형제와 자매
오늘은 종려주일 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한주간을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사람들은 마치 왕을 모시듯이 예수님을 맞이하였습니다. 예수님 같은 분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그럴만한 분이셨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예수님은 귀신을 쫒아내는 분이셨고, 거센 풍랑을 잠잠하게 하는 분이셨고, 물위를 걸으시고, 병든자를 고치시고, 보리떡 5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셨으며,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고, 죽은자를 살리셨던 예수님을 사람들은 자기들이 기다리는 메시아로 생각하였습니다. 그 분이야 말로 화려했던 다윗 왕조의 영광을 회복하실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의 속국 식민지 백성이었습니다. 가난하게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궁핍한 삶에 예수님이 등장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어마어마한 분이셨습니다. 그들이 당하는 어려운 문제들은 하나하나 다 풀어주실 수 있는 그런 분이셨던 것 입니다. 그런 분이 왕이 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절정에 다다를 때 마침내 예루살렘에 오신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이제 이분이 왕으로 등극하기 위해서 왕의 도성인 예루살렘에 오신 것이라고 생각했고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환영하였습니다.
꼼꼼히 성경을 읽어보면 참으로 눈물겨운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입성하실 때 새끼 나귀를 제공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벱바게에 사는 사람이었는데 벱바게나 베다니도 예수살렘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 예루살렘 성안에 살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마을이었습니다. 그 가난한 동네에서 키우던 나귀의 새끼를 예수님께 내 놓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외투를 예수님이 가시는 길에 깔았습니다.
상당히 인상적인 장면임이 분명합니다. 혹시 이스라엘을 여행하는 길이 있으면 알게 되겠지만 이스라엘은 상당히 건조하기 때문에 포장이 된 곳이라도 먼지가 많이 나는 지역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길에 밟고 지나가도록 외투를 깔았다는 것입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흔드는 모습이 장관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겉옷이 하나 밖에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한벌 옷도 낮에는 외출복으로, 밤에는 이불로 덮고 자는 형태였습니다. 그러므로 두벌 가진 사람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렇게 소중한 옷을 바닥에 깔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옷이 어떻게 한 벌 밖에 없냐' 라고 하겠지만 제가 자랄 때만 해도 '단벌신사'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저만 하더라도 (제가 결혼이 늦었지만) 후배들이 결혼을 하는데 결혼식에 입고 갈만 한 옷은 겨울 옷 밖에 없었습니다. 겨울 옷 밖에 없다고 누가 겨울에만 결혼을 하나요?
6월이 가까운 때 결혼을 하는 후배가 있었습니다. 별 수 없이 그 옷을 차려 입고 결혼식에 갔는데 거의 쪄 죽을 뻔한 기억이 있습니다. 불과 몇 십년 전만 해도 그렇게 '단벌신사'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제가 조금 더 가난하기는 했지만 어렵지 않게 그런 단어를 들을 수 있는 때 였습니다. 식민지 백성으로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옷이 한 벌 밖에 없었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 한벌 밖에 없는 옷을 예수님을 왕으로 맞이하기 위해서 먼지 풀석이는 길에 깔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노래하기를 "찬송하리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이렇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왕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다시 사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우리의 구주가 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처음 공적인 생활 3년 동안은 정말 사람들이 기대하는 일을 하셨다. 바람직한 생활이었던 것입니다. 병든 자를 고치고, 삶이 무너진 자들을 회복시키시고, 굶주린 자들을 먹이셨습니다. 3년 동안 사람들이 기대하는 일을 하셨을 동안은 재미있고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따라 다니면서 '이분이야 말로 왕이 되셔야 할 분'이라고 생각한 것이 너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예루살렘에 입성해서는 사람들의 그런 환호를 무시하고 예수님은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바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바라지 않는 그 일을 하셔야 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에 달리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신 뒤에 말씀하신대로 이 땅에 주님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 교회는 놀라운 내용을 가르치는 교회였습니다. 놀라운 내용을 믿는 곳이었습니다. 놀라운 내용을 실천하는 교회였던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하나이니라'
세례받고 예수안으로 들어가서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은 사람들은 그의 신분이 어떠하던지 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 때 당시 유대인이나 헬라인은 절대로 상종 할 수 없는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노예와 주인이 같이 어울릴 수 없는 세상이었고, 남자나 여자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러나 어울려 하나 될 수 없는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하나가 된다는 놀라운 메세지를 선언하고, 그대로 실천하는 능력있는 교회 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서로를 형제와 자매라고 불렀습니다.
신약성경의 가장 우똑한 인물 중의 한사람이었던 바울이 회심하는 장면들을 읽어 보면 대단히 인상적인 대목이 나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예수믿는 사람들을 박해 하는 것도 모자라서 박해를 피해 사방으로 흩어져 있는 사람들의 정보를 수집하던 중, 다메섹에 예수믿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사람들을 체포하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거의 다 가는 중에 예수님을 환상으로 만나서 회심하게 되는 중, 바울은 눈이 멀게 됩니다. 그 때 성령께서 아나니아라고 하는 다메섹에 있는 제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사울이라고 하는 자가 눈이 멀어 있을 것이다. 그를 안수하여 다시보게하라.'
여러분, 사울이라고 하는 이름은 그 당시에 그리스도인들은 듣기만 해도 치를 떨어야만 했던 이름이었습니다. 왔다는 이야기만 들어도 도망을 가야 할 판인데 찾아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옛날 그리스도인들은 대단했습니다. 성령이 '가라' 하시니까, '앞으로 그가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당할 자다' 라고 하시니, 그 말씀을 믿고 죽을 자리인줄 알고도 사울을 찾아가서 처음 건낸 말이 '형제, 사울아 내가 오던 길에서 만난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라' 라고 이야기를 했던 것입니다.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형제 사울'이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형제는 그리스도를 속칭하는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의 시민권자였던 바울은 뒤에 도망간 노예인 오네시모를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이 교회는 세상과 전혀 다른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 발을 씻은 것 같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라'고 하셨습니다. 서로 종 노릇을 해라는 말이 됩니다. 놀라운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너희가 스스로를 낮추면 내가 높이라라고 주님이 말씀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올라 가려 하는데 하나님의 교회는 내려가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찬양교회의 중대결정에 대한 언급 내용
여러분, 우리도 1세기의 교회 모습으로 회복하려 합니다. 이번에 당회가 놀라운 일을 결정했습니다. 원래는 오늘 드릴 말씀을 부활주일이 지나고 4월 15일에 하려 했는데, 종려주일에 하는 것이 시기에 적절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종려주일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기대하지 않는 일, 그러나 마침내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이 하실 수 있는 가장 좋은 그 일을 행하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을 받들기 힘들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확신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참된 교회를 위해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년 1월 부터 당회에서 시무하는 장로님들을 제외한 모든 직분을 폐지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호칭을 '형제' '자매'로 통일하기로 하였습니다." 당회에서 시무하시는 장로님들도 호칭은 '형제' '자매'로 부르기로 하였습니다. 자매님은 안 계시니까 당회에서 시무하시는 장로님들도 장로님이라 부르지 않고 '형제님'이라 부를 것입니다.
사실 이런 생각을 오래 전에 했었습니다. 5-6년 전에 당회에서 잠깐 거론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이게 너무 복잡하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 때는 직분까지는 생각을 못하고 호칭 문제만 다루었었는데 우리 정서에 연로하신 어른들을 형제님 자매님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연세가 드셨는데 젊은 사람들로 부터 '형제'라 호칭을 듣는 어른들도 힘드시지만 그렇게 부르는 젊은 사람들도 못지 않게 힘이 듭니다. 저도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것이 너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올랜도 비전교회 제 친구목사 교회는 아예 처음 목사로 부임해 갈 때 부터 이 정신을 살려서 '형제' '자매'라고 호칭을 정했는데, 그 교회도 연장자를 그렇게 부르는 것이 쉽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70세 이상은 '아버님'과 '어머님' 이렇게 했다는 것 아닙니까? 얼마나 정겨워요 '아버님' '어머님' 이렇게 말입니다. 고민한 결과죠. 그랬는데 그것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형제님이 세월이 흘러 아버님이 되었는데 교회가 이것을 모른다는 겁니다.
70세가 되신 분이 교회에 처음 오시면 당연히 '아버님' 그러지 않겠어요. 그랬더니 다른 형제님이 화가 나서 교회를 안 나오셨답니다. 알아보니까 "아니, 나이가 똑같은데 누구는 '아버님'이고, 누구는 '형제님'이냐." 이 분이 몇 년 사이에 형제님이 아버님이 되셨지만 그렇다고 해서 생일을 맞으실 때마다 "아무개 형제님은 몇 월 며칠 부로 아버님으로 승격 되셨습니다.' 이럴 수도 없고...
그러니까 이것이 너무 너무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때 당회에서 이야기 할 때에도 그럼 '성도님'으로 할까, '사도'라고 할까 완전히 별 생각을 다했는데 다 만만치 않았습니다. 지금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요번에 당회가 큰 결심을 한 것은 정말 예수님이 처음에 마음에 두셨던 이 세상에 처음 출현했던 놀라운 교회 모습을 얼만큼이라도 회복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호칭 문제 뿐만 아니라, 직분 문제 까지 묶어서 다루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것을 신앙적인 용어로 해석하면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형제' '자매'가 세상 용어라고 생각하면 너무 힘든 것입니다. '죄인'도 그렇습니다. 세상적인 용어로는 우리가 죄인이 아니잖아요. 우리가 따로 죄지은 것도 없고, 감옥 갈 일도 없고, 그러나 교회에 오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죄인'인데 마찬 가지로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피를 나눈 형제 자매 즉 신앙적인 용어로 형제와 자매라고 생각하면, 조금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2천년 전을 생각해 보세요. 노예와 주인이 같은 교회에서 한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서로를 형제라고 부렀던 것을 생각하면 21세기 찬양 교회에서 예수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피때문에 서로를 '형제'라고 부르고 서로를 '자매'라고 부르는 것이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 겠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문화가 다르기는 하지만 미국 교회는 다 직분을 부르지 않아요. '장로'가 되었다고 '장로'로 호칭하지 않고, '집사'가 되어도 '집사'라고 호칭하지 않습니다. 모두 이름을 부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름을 부르는 문화가 아니니까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유는 이민교회가 그렇지 않아도 힘이 모자라는 교회들인데 직분자를 뽑아 세울 때 마다 교회가 어려움을 겪는 문제 였습니다. 저는 동료 목사님에게 수도 없이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 동네에 있는 교회들도 그런 어려움을 겪는 교회가 적지 않습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자기가 장로 자격이 있는데 왜 안세우냐' 라고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데 '아무개가 장로하면 나도 장로 할 수 있지' 이렇게 생각하거든요. '아무개가 집사하는데, 내가 집사 못할 이유를 대봐라'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 교회는 12년 담임 목사로 목회를 하는 동안에 장로와 안수 지사를 뽑고 권사를 세우고 교회가 어지러워진 경우가 한번도 없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런 점에서 자랑 스런 교회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4년 전 부터 장로와 안수 집사를 선출 할 때 그냥 소리로 합니다. 4년 전에 그런 제안을 할 때 여러분들이 그것을 받아 주셨습니다. 뽑는 사람 수와 뽑고자 하는 사람의 수와 호부자의 수가 같을 때에는 3가지 방법으로 선출을 할 수 있도록 규례서가 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무기명 비밀 투표이고, 두번째는 거수이고, 세번째는 소리로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 시점에서 5년 전 통계를 여러분에게 제시 했습니다.
5년전 통계로 보면 공천위원회에서 공천을 받은 사람이 공동 의회에서 과반수만 얻으면 되는데 평균 반대율이 3.5% 였습니다. 50%만 얻으면 되는데 96.5%가 평균적으로 찬성표를 받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뭐 하러 이런 투표를 하고 있는 거냐'라고 교우들에게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은 우리 교회 규모만 되더라도 누가 누군지 잘모르기 때문에 그 사람을 지지하면서 투표하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더 크게는 공천 위원회의 활동을 여러분이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해마다 항상 투표용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때마다 여러분들이 돌아가자면 돌아가려고 준비했지만 4년이 지나도록 한번도 그런 요청이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장로 선출 할때 5분 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공천회에서 후보자 발표하고, "찬성하면 '예' 하세요." 그래서 그냥 장로가 되고 집사가 되고 5분 밖에 안결렸어요. 그렇긴 해도 여전히 우리 교회도 장로 뽑아 세우고 집사 선출하는 일이 어려운 일입니다.
참 충성 스런 분들이 많으세요. 근데 다 장로로 뽑을 수는 없잖아요. 안수 집사 하실만한 충성스런 분들이 참 많이 계세요. 구석 구석에서 목장을 지성으로 섬기고, 하나님의 교회와 일터에서 최선을 다해서 일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 중에서 몇 분만 안수집사로 뽑아 세우는 것이 너무 힘이 드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다 안수 집사를 시킬 수는 없는 일이 잖아요. 그래서 생각 한 것이 이 것입니다. 교우들이 모두 '형제' '자매'로 불리면 장로 집사 직분에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게 될것입니다.
제가 바라기는 우리 교회에서 가장 영예로운 직분은 '목자'가 되면 좋겠어요. 목자가 충분히 영예로운 이름입니다. 장로로 불리울 것도 아니고, 집사로 불리울 것도 아니고, 내가 하나님의 교회의 최일선에서 하나님께 사랑 받는 이들을 섬기는 이 직분이 최고로 영예로운 직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 결정을 보면서 우리 교회 교우들이 얼마나 수준이 있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들이 우리 교회는 이상한 교회라고 생각 하실 수도 있겠지만, 이런 제안을 했을 때 당회가 반대 없이 받았던 점도 감사드립니다.
지난 12년 목회를 돌아 보면 처음 담임 목사로 부임해서 2년 동안 일어났던 변화는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온지 한달이 안되어서 '금요 심야 기도회'를 한달에 한번하고 없애자고 했습니다. '수요예배'를 '수요 찬양기도예배'로 바꾸고 '금요 심야기도회'를 없앴어요. '금요 심야 기도회'는 한달에 한번 했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반 만에 '주일 새벽 기도'를 없앴어요. 그리고 '남 선교회'를 없앴습니다. 일년 있다가 '여 선교회'를 없앴습니다. 일년이 안되어서 그때 사랑방을 하기 위해서 '수요 예배'를 없앴어요. 그리고 '제직회'를 없앴어요. 그리고 제가 부임한지 한달 반 만에 건축을 논의하기 시작했어요.
변화가 말로 다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장로님들은 3년하고 1년 쉬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공천 위원회에서 공천을 받아 뽑히면 다시 3년을 시무하기로 했습니다. 장로님들은 65세 까지만 시무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장로님들이 65세 전에 그만 두셨습니다. '이렇게 일 할 사람들이 많은데 내가 당회에서 오래 일할 이유가 없다'고 다른 일은 나이들어도 하겠지만 당회 일은 그만 하시겠다는 분들이 여러분 계셨습니다.
참 좋은 교회입니다. 하지만 어떤 결정도 이번 결정 같지는 않았습니다. 올해도 서리 집사 직분을 없앴지요. 찬양대 3개 중에 2개를 없앴지요. 어떤 분은 그렇게 생각 하실 지 모르겠어요. 우리 목사님은 '없애는 게 취미 인가 보다' 또 어떤 분이 '목사님은 없애는게 은사인가 봐요' 그러셨는데 사실은 취미도 아니고 은사도 아니고 저도 힘이 듭니다.
해당되는 장로님이 앞에 계시는데 '65세 까지만 하세요' 그렇게 말하는 것 힘이 듭니다. 하지만 장로님들이 수용해 주셔서 제가 눈물만 안 흘렸지 너무 고맙게 생각합니다. 지난번에 찬양대 없앨 때에도 너무 아깝더라구요. 찬양대가 찬양하는 것을 보는데 '저렇게 잘하는 찬양대를 없애야 하나' 라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들었었어요. 다른 교회 같으면 뒤집어 져도 10번은 더 뒤집어 질 사안이죠. 그러데 교인들이 다 소화하시고 어려움을 다 격으셨습니다.
'또 분란을 일으키냐'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거예요 그런 분 들을 위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마음이 급해졌어요 어떤 분은 '조금 여유를 두고 하시면 좋겠습니다' 라고 하십니다. 제게 그 마음이 전달이 되요 어떤 분은 그런 말씀도 하셨어요 '저는 목사님이 우리 교회에서 명예롭게 은퇴하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교회 청빙위원회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저는 기운이 없어서 싸워가면서는 못합니다. 저는 아무리 좋은 일도 싸워 가면서 할 생각은 없거든요.' 그때 그런 말씀도 드렸어요. '저는 찬양 교회에서 은퇴하고 싶습니다.' 제가 올 때만 해도 찬양교회가 모든 목사님이 오고 싶어하는 매력적인 교회는 아니었거든요. 규모나 여러가지 면에서.
그러나 교우들이 미워하면 언제라도 떠나겠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제게 어떤 마음을 주셨는데 아무일도 안하고 이 정도의 교회에서 은퇴하는 것을 명예롭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혹 여러분 생각과 제 생각이 달라서 제 생각을 못 받고 '담임 목사를 바꿀때가 되었나 보다' 라고 해서 교회에서 쫒겨나는 일이 있다 해도 평생을 제가 그 말 했던 것을 영예롭게 생각하며 살것입니다.
왜 이렇게 변화를 서두르는가. 제가 생각해 보니까 얼마 안 남은 거예요 제가 목회 할 날이.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야성이 있었던 것 같아요. 굉장히 내성적이었습니다. 내성적이었는데 야성은 있었던 것 같고, 이것이 둘이서 결합이 안되어 이해가 안 되시겠지만 금호 국민학교를 다녔는데 굉장히 큰 학교 였습니다. 14반이 있었습니다. 한반에 거의 90명 이렇게 있었어요. 전교생이 만명이 넘었어요. 붐비는 학교 였지요.
5-6학년에는 거의 시험을 매일 봤는데, 중학교를 시험봐서 들어가던 시절이었으니까, 성적이 안되면 선생님이 손바닥을 때리고 그랬잖아요. 공부 못 한다고 공식적으로 때리는 일이 그때는 당연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무식한 일인지. 그런데 우리 담임 선생님은 조금 창의적이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시험 보고 나면 성적 순으로 자리를 쭉 앉혔어요. 그래서 누가 보더라도 개는 91등 인거예요. 이렇게 무식한 학교였습니다.
선생님은 참 좋은 분이셨는데 어느 날 선생님이 책상 오른쪽 위에 자기가 목표로 하는 점수를 쓰라는 거예요. 뭐라고 적어도 좋지만 써 있는 점수가 안되면 모자라는 만큼 손바닥을 맞아야 했습니다. 저는 되게 점수를 높이 적어 놓고 허구 헌날 터졌어요. 매일 시험을 봤는데.....
저는 한번도 그것이 시행되는 동안 점수를 조정 할 생각을 안했다는 것 아닙니까. 좋은 말로 하면 야성이 있었다는 이야기이죠. 그것이 제 목표 였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면 '공부를 되게 못했다'로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공부를 잘했습니다. 제 아내는 어디가서 그런 이야기 하지 말라고 하더라구요. 국민학교 때는 누구든지 공부를 다 잘하는 것이라구요. 저는 더러 전교에서 1등도 했어요.
저는 목회 말년에 야성이 다시 생긴 것을 대단히 영예롭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에게는 불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원래 '원로 목사는 안하겠다' 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원로 목사를 잘 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저는 목회 잘 하고 물러나서 교회를 망치고 싶은 생각이 없기 때문에, 원로 목사는 안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한국 거의 교단의 목회 은퇴 연령은 70세 입니다. 미국도 대부분의 목사 은퇴 연령은 70세 입니다. 그리고 UMC(미국 연합 감리교)는 은퇴 연령이 72세입니다. 그런데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미국 장로교 목사의 은퇴 연령은 없습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면 되게 겁이 나시죠. 제가 오래 목사를 하려고 한다면 여러분들이 공식적으로 쫒아내기 되게 힘드세요. 제가 큰 과실이 있기 전에는...
그런데 여러분이 걱정 안해도 좋은 것이 저는 이 교회에 오기 전 부터 그런생각이었습니다. 저는 소셜 시큐리티 연금을 풀로 받을때 그만 둔다. 그때는 65세에 받았습니다. 지금은 경제 형편이 안좋아져서 소셜 시큐리티 연금을 풀로 받는 나이는 66.2개월입니다. 그래서 66.2개월에 은퇴하려 했었습니다. 그런데 '사내가 돈 몇푼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냥 65세에 은퇴하기로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사실은 일찍 그만 두는 것을 조금 보류 했던 이유가 제 아내와 7살 차이가 납니다. 제가 가끔 아내를 생각하는 사람이잖아요. 더 할 생각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65세에 은퇴 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목회보다 더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그 전에라도 그만 둘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제가 찬양교회에서 일할 수 있는 기간이 7-8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7-8년 금방 지나 갑니다. 우리가 건물 짓고 입당한지 만 7년이 지났습니다. 얼마나 빠른지 모릅니다. 금방 지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제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저는 남은 목회기간 동안 '보다 더 교회 다운 교회'를 만들기 위해 힘쓰고 싶습니다. 이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 떨리는 일입니다.
최근에 제가 책을 읽었는데 김정훈이라는 문화 심리학자의 책 중에 재미 있는 챕터가 있었습니다. '설레는가? 그럼 살만 한 것다!' 저는 진짜 마음이 설레더라구요. 저는 이제까지 교회가 주는 밥을 먹고 점점 더 잘 살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밥을 먹는다고 이것을 하지는 않아요. 저는 목사를 하면서 목회 마지막에 이렇게 가슴 떨리고 설레는 일이 있다는 것이 너무 좋더라구요.
여러분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좋아하실 분이 계실 거예요. 여러분들도 설레 실지 모르겠어요. 여러분도 기뻐 하실지 모르겠어요. 제가 분명히 말씀들릴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이 기뻐하시는 그만큼 우리 교회는 좋은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이것을 부담스러워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해 해요. 어른들께는 정말 죄송한 마음이 있습니다. 어느 장로님이 그러시더라구요 '저는 목사님이 하시면 반대는 안하겠지만 너무 너무 힘들다'구요. 또 어떤 분은 '이거 해가지고 좋은 교회가 될 것 같지 않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확신합니다. 여러분이 힘들어 하시는 만큼, 부담스러워 하시는 것 만큼 우리 교회가 그만큼 좋은 교회가 될 것입니다.
평생에 주님이 좋아하시는 교회를 이루는 것을 그냥 한 목사의 소원이 아니라 우리 교회 전체 교우의 소원으로 여러분이 기도해 주셨으면 합니다. 어떤 교회에 좋은 영향을 주려고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직분자를 뽑아 세울때마다 어려움을 격는 교회들에게 '2천년 전에만 그런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니라, 21세기 그 척박하다고 하는 한인교회에도 어떻게 해서든지 주님의 뜻을 가까이 따르려고 하는 그런 교회가 있다' 라고 하는 좋은 예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 같이 기도해 주시길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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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아멘넷 기사후 허봉기 목사가 홈페이지에 올린 설명입니다.
직분과 호칭에 관한 질문들
우리 교회가 내년 1월부터, 당회에서 시무하는 장로를 제외한 모든 직분을 폐지하고 호칭을 형제 자매로 통일하는 것에 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1. 성경적인가?
안수집사와 권사 직분을 없애는 것이 성경적이라는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을 지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성경적이라는 말입니다. 한국교회, 특히 이민교회에는 직분과 호칭 문제로 진통을 앓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직분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주님이 기대하시는 일에 골몰하는 것이 건강한 교회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아직까지 임직을 둘러싼 문제가 없었지만, 보다 더 교회다운 교회를 위해 직분과 호칭 문제를 다루게 되었습니다.
2. 성경에 있는 장로와 집사 직분을 없애는 것은 성경을 거스르는 일이 아닌가?
초대교회에 있던 모든 직분이 지금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사도나 예언자는 현대 교회가 채택하는 직분이 아닙니다. 미국에서 가장 큰 교단인 침례교에는 장로가 없습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미국장로교 회원교회 중에 절반은 안수집사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번 결정 중에 장로에 대해서는 호칭을 없애는 것이지 직분을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장로교의 경우, 장로나 집사는 시무할 동안만 장로나 집사이고, 장로나 집사로 시무하는 중에도 장로나 집사를 호칭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결정은 성경에 위배되는 것도 아니고, 미국장로교의 법을 어기는 것도 아닙니다. 참고로, 스데반이나 빌립, 뵈뵈는 집사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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