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충식 목사 "하나님의 2가지 명령과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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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ㆍ2012-05-22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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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효신장로교회(문석호 목사)가 교회 창립 28주년을 맞아 20일 (주일)부터 22일(화)까지 ‘은혜로 새롭게! 사명으로 새롭게!’ 라는 슬로건으로 부흥 성회를 열고 있다. 부흥 강사는 현재 토론토 중앙교회 담임목사이자, Seed 캐나다 선교회 이사장인 유충식 목사이다.
문석호 목사는 이번 부흥회에 임하는 성도들을 향해 10분 먼저 와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할 것,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명을 기대하며 임할 것, 이웃들을 초청하여 은혜를 나눌 것, 성회의 시작과 끝을 감사와 칭찬으로 감쌀 것을 제안하며 실천해 주길 간곡히 부탁하기도 했다.
아래는 21일(월) 저녁 8시 ‘비전’ 이라는 제목으로 창세기 12장 1-3절 본문을 인용한 설교를 요약한 내용이다.
내가 사는 곳에 돼지 도살장이 있다. 그곳을 가보지는 못했지만 콩으로 돼지를 유인해 도살장으로 가도록 되어 있다고 들었다. 처음에는 넓은 통로가 조금씩 좁아지면서 한 마리씩 콩을 먹기 위해 돼지는 땅만 보고 열을 지어 가게 되어 있어 결국 한 마리씩 도살 기계를 향해 떨어져야만 하는 순간을 맞게 된다는 것이었다. 콩만을 위해서, 땅만 보고 죽음을 향해 열을 지어가는 모습을 연상하면서 지금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처음엔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멈추지 못해 달려가야만 하는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엔 '우연'이란 없다. 오늘을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내기 위해서는 '비전'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꿈과 비전이 없다면 이는 자기의 욕심만을 위해 사는 추한 모습이 드러날 뿐이다. ‘높이 나는 새는 강을 건너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는 말이 있다. 현실이 힘들고 어려워도 나를 통해 하나님이 이루시길 원한다는 성경적 비전이 있다면 우리는 오늘을 절제하며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다.
성경 본문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내는 이야기 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2가지의 명령과 2가지의 약속을 하셨다.
하나님의 2가지의 명령
”떠나라” 고 명령 하셨다. 그 나이가 되면 있던 꿈도 접어야 하는 시기에 아브라함에게 현재 주어진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그 자리를 떠나라고 명령을 하셨던 것이다. 평생 이루어 놓은 것을 버리고 떠나라는 명령을 순종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처럼 우리 모두가 가진 것을 몽땅 내 놓고 ‘아프리카 선교를 떠나길 원하시는 것일까?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길 원하시지 않는 것일까?’ 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불행이 아니라 기쁨의 시작이자, 하나님의 은혜를 위한 최소한의 준비였다. 만약 어떤 분이 기도 중에 아프리카로 가라 라는 명령을 들었다면 이는 그 분을 위해 가장 행복한 하나님의 선택임을 알아야 한다.
두 번째 명령은 “가라” 였다. 어디로 가라는 것인지 모른 채 떠나라고 하셨다 왜 하나님은 이런 어려운 선택을 강요하신 것일까? 아담과 하와 이후 하나님을 불신함으로 인해 모든 인생의 축복을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나만 믿고 따라 올 수 있는지’ 물으신 것이다. 아브라함 역시 처음부터 믿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긴 세월을 돌아 다니며 그는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에도 순종하며 분명 이삭을 다시 살리실 것을 믿는 믿음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한신대 학장을 지내신 정태기 교수가 미국 유학 시절 사냥을 즐기는 집사로부터 호랑이 고기를 대접하겠다는 초대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집사의 표현에 의하면 잘 훈련된 사냥개 두 마리만 있으면 호랑이 사냥도 어렵지 않았다고 경험담을 들려줬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사냥터에 도착해서 개를 풀어 놨는데 얼마 안 되어서 개에게서 사냥감을 포착했다는 다급한 신호를 받았다는 것이다. 사냥개는 의례히 주인과 교감하는 신호가 있다는 것이다. 가보니 호랑이가 나무 위에 올라가 있고 그 아래 개 두 마리가 호랑이를 향해 연신 짖어대고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 너무 놀라고 당황했지만 총을 쏘지 않으면 죽겠다는 심정으로 방아쇠를 당겼다는 것이다.
천하의 호랑이가 개에 쫒겨 나무에 매달리는 신세로 전락한 모양새는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에 집사는 그 상황을 전문가에게 설명하고 왜 호랑이가 나무에 올라가야만 했는지 알고 싶었다고 했다. 여러 조사 끝에 전문가는 호랑이는 자신을 보고 놀라지 않고 덤비는 개를 처음 봐서 당황했을 것이고, 개는 여지껏 경험으로 보아 일단 코너에 목표물을 몰기만 하면 주인이 짠하고 나타나서 방아쇠 하나로 모든 상황을 종결하는 주인에 대한 무한 신뢰가 그런 용기를 부여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다.
이 유사한 예는 다윗과 골리앗의 경우이다. 믿음이 있다는 것과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다르다. 사울이 믿음이 없었다고 생각하는가? 골리앗 정도의 강한 상대는 다윗이 믿음으로만 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미 와 있는 그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2가지 약속
하나님은 2가지 약속을 하셨다. 복을 주시겠다는 것과 큰 민족을 이루어 창대히 하시겠다는 약속이다.
자식이 없는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고 하셨다 이해되지 않는 약속을 하시면서 멈추지 않고 걸음을 옮기기만 하면 네게 복을 주려 준비하고 계신다는 약속이셨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복의 근원이 될 자 임을 약속하셨다. 아브라함으로부터 모든 복의 근원이 흐르게 되어 이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게 된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시게 된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씀이다. 자신이 복의 근원임을 깨닫기만 한다면, 자신에게 주신 음성으로 알아 듣기만 한다면, 나로 인해 내 가족이, 내가 속한 교회가, 내 민족이 복을 받고 복이 흐르는 통로가 될 것이다. 혹자는 ‘내가 무슨 복의 근원이냐’ 라고 의심을 하겠지만 자신이 복의 통로라고 꿈을 꾸기 시작하면 반드시 나를 통해 복이 흐르도록 하나님이 쓰신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요셉 때문에 보디발의 집이 무사하였고, 감옥이 평온하였으며, 애굽이 가뭄의 기근에서 살아 날 수 있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어린 시절 허약하여 주변의 염려를 한 몸에 받고 자랐는데, 중학교 2학년 때 할머니를 따라 기도원에 갔다가 큰 은혜를 받았다. 그 후부터 몸과 마음이 참 편안해 졌었던 기억이 있다. 은혜를 받은 뒤 사소하게 버스를 타더라도 그 버스 안을 둘러 보며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이 나로 인해 무사히 도착지까지 가겠구나 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내가 같이 탔으니까’ ‘내가 하나님의 복의 통로이니까’ 안전 여행은 나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기까지 했다
여러분을 통해서 뉴욕 땅이 복을 받고 복음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나의 기도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는 것을 믿어야 한다. 아브라함이 소돔성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다. ‘롯을 살려 주세요’라고 기원해도 되지만 그는 그 땅의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가슴을 마음에 담고 하나님을 내 가슴으로 끌어 안고 축복하며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길 기원한다.
캐나다에서 처음 목회를 시작했던 교회는 교회 내 갈등이 심해 30여명의 성도만 남아있던 어려운 상태의 교회였다 주변에 7개의 교회가 있었지만 서로 반목하던 상황이었고, 처음 교인들에게 복의 기원을 이야기 했지만 ‘복의 근원은 고사하고 하나님의 영광이나 가리지 말았으면 한다’는 교회는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물론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 지역이 영적인 지역이 되어가고 부흥이 되었으며 하나님의 역사가 교회를 통해 이루어져 감을 볼 수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나라는 미국이다. 왜 일까? 이는 엄청난 보급품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막강한 무기와 물질적 풍요가 뒷받침되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비전을 받는 자라면 우리는 무서울 게 없는 것이다. 보통 우리는 물질의 풍요와 건강을 위해 기도한다. 우리에게 물질의 풍요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물질의 풍요는 내게 해를 가져 오기 때문이다. 내게 건강이 허락되지 않았다면 건강에서 오는 자만이 나를 해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길 원하시며, 하나님의 마음을 품기를 기다리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비전을 가슴에 담고 자신의 삶을 이끈다면 우리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될 것을 확신한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문석호 목사는 이번 부흥회에 임하는 성도들을 향해 10분 먼저 와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할 것,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명을 기대하며 임할 것, 이웃들을 초청하여 은혜를 나눌 것, 성회의 시작과 끝을 감사와 칭찬으로 감쌀 것을 제안하며 실천해 주길 간곡히 부탁하기도 했다.
아래는 21일(월) 저녁 8시 ‘비전’ 이라는 제목으로 창세기 12장 1-3절 본문을 인용한 설교를 요약한 내용이다.
내가 사는 곳에 돼지 도살장이 있다. 그곳을 가보지는 못했지만 콩으로 돼지를 유인해 도살장으로 가도록 되어 있다고 들었다. 처음에는 넓은 통로가 조금씩 좁아지면서 한 마리씩 콩을 먹기 위해 돼지는 땅만 보고 열을 지어 가게 되어 있어 결국 한 마리씩 도살 기계를 향해 떨어져야만 하는 순간을 맞게 된다는 것이었다. 콩만을 위해서, 땅만 보고 죽음을 향해 열을 지어가는 모습을 연상하면서 지금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처음엔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멈추지 못해 달려가야만 하는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엔 '우연'이란 없다. 오늘을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내기 위해서는 '비전'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꿈과 비전이 없다면 이는 자기의 욕심만을 위해 사는 추한 모습이 드러날 뿐이다. ‘높이 나는 새는 강을 건너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는 말이 있다. 현실이 힘들고 어려워도 나를 통해 하나님이 이루시길 원한다는 성경적 비전이 있다면 우리는 오늘을 절제하며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다.
성경 본문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내는 이야기 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2가지의 명령과 2가지의 약속을 하셨다.
하나님의 2가지의 명령
”떠나라” 고 명령 하셨다. 그 나이가 되면 있던 꿈도 접어야 하는 시기에 아브라함에게 현재 주어진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그 자리를 떠나라고 명령을 하셨던 것이다. 평생 이루어 놓은 것을 버리고 떠나라는 명령을 순종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처럼 우리 모두가 가진 것을 몽땅 내 놓고 ‘아프리카 선교를 떠나길 원하시는 것일까?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길 원하시지 않는 것일까?’ 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불행이 아니라 기쁨의 시작이자, 하나님의 은혜를 위한 최소한의 준비였다. 만약 어떤 분이 기도 중에 아프리카로 가라 라는 명령을 들었다면 이는 그 분을 위해 가장 행복한 하나님의 선택임을 알아야 한다.
두 번째 명령은 “가라” 였다. 어디로 가라는 것인지 모른 채 떠나라고 하셨다 왜 하나님은 이런 어려운 선택을 강요하신 것일까? 아담과 하와 이후 하나님을 불신함으로 인해 모든 인생의 축복을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나만 믿고 따라 올 수 있는지’ 물으신 것이다. 아브라함 역시 처음부터 믿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긴 세월을 돌아 다니며 그는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에도 순종하며 분명 이삭을 다시 살리실 것을 믿는 믿음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한신대 학장을 지내신 정태기 교수가 미국 유학 시절 사냥을 즐기는 집사로부터 호랑이 고기를 대접하겠다는 초대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집사의 표현에 의하면 잘 훈련된 사냥개 두 마리만 있으면 호랑이 사냥도 어렵지 않았다고 경험담을 들려줬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사냥터에 도착해서 개를 풀어 놨는데 얼마 안 되어서 개에게서 사냥감을 포착했다는 다급한 신호를 받았다는 것이다. 사냥개는 의례히 주인과 교감하는 신호가 있다는 것이다. 가보니 호랑이가 나무 위에 올라가 있고 그 아래 개 두 마리가 호랑이를 향해 연신 짖어대고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 너무 놀라고 당황했지만 총을 쏘지 않으면 죽겠다는 심정으로 방아쇠를 당겼다는 것이다.
천하의 호랑이가 개에 쫒겨 나무에 매달리는 신세로 전락한 모양새는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에 집사는 그 상황을 전문가에게 설명하고 왜 호랑이가 나무에 올라가야만 했는지 알고 싶었다고 했다. 여러 조사 끝에 전문가는 호랑이는 자신을 보고 놀라지 않고 덤비는 개를 처음 봐서 당황했을 것이고, 개는 여지껏 경험으로 보아 일단 코너에 목표물을 몰기만 하면 주인이 짠하고 나타나서 방아쇠 하나로 모든 상황을 종결하는 주인에 대한 무한 신뢰가 그런 용기를 부여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다.
이 유사한 예는 다윗과 골리앗의 경우이다. 믿음이 있다는 것과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다르다. 사울이 믿음이 없었다고 생각하는가? 골리앗 정도의 강한 상대는 다윗이 믿음으로만 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미 와 있는 그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2가지 약속
하나님은 2가지 약속을 하셨다. 복을 주시겠다는 것과 큰 민족을 이루어 창대히 하시겠다는 약속이다.
자식이 없는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고 하셨다 이해되지 않는 약속을 하시면서 멈추지 않고 걸음을 옮기기만 하면 네게 복을 주려 준비하고 계신다는 약속이셨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복의 근원이 될 자 임을 약속하셨다. 아브라함으로부터 모든 복의 근원이 흐르게 되어 이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게 된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시게 된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씀이다. 자신이 복의 근원임을 깨닫기만 한다면, 자신에게 주신 음성으로 알아 듣기만 한다면, 나로 인해 내 가족이, 내가 속한 교회가, 내 민족이 복을 받고 복이 흐르는 통로가 될 것이다. 혹자는 ‘내가 무슨 복의 근원이냐’ 라고 의심을 하겠지만 자신이 복의 통로라고 꿈을 꾸기 시작하면 반드시 나를 통해 복이 흐르도록 하나님이 쓰신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요셉 때문에 보디발의 집이 무사하였고, 감옥이 평온하였으며, 애굽이 가뭄의 기근에서 살아 날 수 있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어린 시절 허약하여 주변의 염려를 한 몸에 받고 자랐는데, 중학교 2학년 때 할머니를 따라 기도원에 갔다가 큰 은혜를 받았다. 그 후부터 몸과 마음이 참 편안해 졌었던 기억이 있다. 은혜를 받은 뒤 사소하게 버스를 타더라도 그 버스 안을 둘러 보며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이 나로 인해 무사히 도착지까지 가겠구나 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내가 같이 탔으니까’ ‘내가 하나님의 복의 통로이니까’ 안전 여행은 나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기까지 했다
여러분을 통해서 뉴욕 땅이 복을 받고 복음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나의 기도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는 것을 믿어야 한다. 아브라함이 소돔성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다. ‘롯을 살려 주세요’라고 기원해도 되지만 그는 그 땅의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가슴을 마음에 담고 하나님을 내 가슴으로 끌어 안고 축복하며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길 기원한다.
캐나다에서 처음 목회를 시작했던 교회는 교회 내 갈등이 심해 30여명의 성도만 남아있던 어려운 상태의 교회였다 주변에 7개의 교회가 있었지만 서로 반목하던 상황이었고, 처음 교인들에게 복의 기원을 이야기 했지만 ‘복의 근원은 고사하고 하나님의 영광이나 가리지 말았으면 한다’는 교회는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물론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 지역이 영적인 지역이 되어가고 부흥이 되었으며 하나님의 역사가 교회를 통해 이루어져 감을 볼 수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나라는 미국이다. 왜 일까? 이는 엄청난 보급품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막강한 무기와 물질적 풍요가 뒷받침되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비전을 받는 자라면 우리는 무서울 게 없는 것이다. 보통 우리는 물질의 풍요와 건강을 위해 기도한다. 우리에게 물질의 풍요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물질의 풍요는 내게 해를 가져 오기 때문이다. 내게 건강이 허락되지 않았다면 건강에서 오는 자만이 나를 해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길 원하시며, 하나님의 마음을 품기를 기다리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비전을 가슴에 담고 자신의 삶을 이끈다면 우리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될 것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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