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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형 신학생 “엘살바도르에서 만난 예수그리스도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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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ㆍ2018-02-0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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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저는 선교 가고 싶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구실을 지어 안가고 싶습니다. 물심양면으로 여위도 없고... 나름 할 일이 너무 많고 그런 시간이 있다면 조용히 집에서 쉬고 싶습니다. 왜? 저까지 그 곳에 가야하나요?” 매일 밤 이렇게 기도한 내용입니다. 우연치 않게 주님을 체계적으로 더 알고자 해서 입학하여 배우는 과정에서 "복음 중심적 선교학" 시간에서 교수님이 신학을 배우는 학생이라면 생생한 그리스도의 복음 현장을 경험해야 되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일 년에 서너 번씩 선교를 떠났지만 항상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그렇게 지냈으며, 나의 기도 제목과는 무관하게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무거운 마음으로 교수님과 4명의 학생들은 1월 15일 부터 20일까지의 단기간 일정으로 새벽 4시에 여명을 헤집으며 엘살바드로로 향했다. 구름 위로 나는 비행기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며 많은 생각에 잠겼다. 한 달여 기간 동안 달고 지낸 기침으로 목도 아프고, 사는 일들의 숙제로 마음은 복잡하고 긴 한숨 속에 5시간의 비행으로 산 살바드로의 공항의 모습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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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하기 전 백과사전으로 알아 본 엘살바드로는 중미에서 가장 좁은 면적이지만 멕시코를 제외한 중미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보유한 국가로, 인구 조밀도가 중미 최고이지만 엘살바드로 인의 근면한 이미지로 중미의 일본이라 부른다고 했다. 좁은 국토에 산악 지형으로 이용 가능한 토지자원, 혹은 지하자원이 거의 없어 이용 가능한 토지 전부와 산까지 농업용으로 개간하고 있기 때문에 환경 파괴가 심각한 국가이며, 지진 및 화산활동이 활발한 곳으로 심각한 자연재해에도 종종 있으나 화산 인근의 화산재 토양이 농업에 적합한 비옥한 토지이기에 인구가 모여살 수밖에 없어, 주민의 불안한 생활이 계속된다고 했다.

 

엘살바드로 공화국으로 독립이후 내전과 군인들이 국민들을 박해하는 군사 독재가 이어지면서 정국이 줄곧 혼미한 상태이며, 오랫동안 독재와 내전을 거쳤기 때문에, 정국이 불안정한 국가의 이미지가 강하며, 정치의 근본적인 문제는 식민지 시대의 지배계층인 스페인계 소수 백인의 후손인 지주 계층이 토지를 절대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14가문" 이라 부르는 이들이 나라의 부와 권력을 사실상 틀어쥐고 있으며 당시 엘살바도르 군사 독재 정권은 소수의 군인 정치가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지주들이 권력과 부를 독점한 과두 정부였고, 대부분 지주 계급으로 구성된 과두 정부에 의해 많은 농민이 학살당하거나 난민이 되었다.

 

당시 엘살바드로 로마 카톨릭교회 지도자인 오스카르 로메로 대주교는 그를 지지한 사제들과 함께 군사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여 기독교인에게 "구원은 죽어서 피안의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닌, 억압받는 이들이 해방시키는 것이다"라고 설교하여 군사독재 정권을 비판해왔다고 한다. 국민의 절대 다수가 로마 카톨릭 교회 신자이며 문화적 영향력이 커서 주요 국경일도 로마 카톨릭 교회와 관계된 것이 많으며 국민들은 축구를 매우 좋아하며, 배구와 야구 등을 널리 즐기는 엘살바도르 사람들은 미국인들이 기억하는 이미지는 중남미 국가중 가장 착하고 선하며 근면 성실하다고 들었던 기억의 전부를 가슴에 안고 구름아래 엘살바도르가 나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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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봉오리가 굽이굽이, 산등성이 첩첩이 계곡으로 뻗어나고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보는 엘살바도르는 멋있었다. 미리 익혔던 국가의 이미지는 망각하고, 그저 하나님이 이 위에서 이렇게 내려다보시면 다 참으로 아름답겠구나! 저 세상 아랫일도 시간이 지나면 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우리 사는 일이 다 그렇게 보잘 것 없는 것 아닐까? 지혜서 시간에 배운 전도서가 한 구절이 생각났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니 모든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전에 있던 것도 다시 있을 것이며 이미 한 일도 다시 하게 될 것이니 세상에는 아무것도 새로운 것이 없다... 나는 그렇게 두고 온 나의 숙제를 잊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을 빠져나오는데 이곳이 한 국가의 공항이란 말인가? 하는 정도로 빈부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산 살바도르 공항에서 출발하여 우리 목적지인 마을 이름이 예수빌리지란 마을 까지 3시간 정도의 걸린다고 했다. 오후 2시반에서 공항에서 출발하여 공항을 빠져나오니 수레에다 영코코넛을 파는 상인들을 즐비하게 관광객을 맞이하려고 늘어섰다. 우리 자랄 때 시골 5일장처럼 그런 모습에 사람들. 그 곳에서 사역하고 계신 황영진 선교사님이 차에서 내려 사가지고 하나씩 안겨 주는 선교사님에 배려에 가는 길 바빠 토스트와 영코코넛을 빨대로 들이키며 중남미의 엘살바도르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도로를 달리면서 횡단보도를 볼 수 없었다. 선교사님 말에 의하여 국가에서 횡단보도를 설치할 수 있는 국비가 없다고 했다. 신호등 부대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국가의 가난, 길을 건너기 위해 양쪽을 살피고 있는 사람들, 사고가 나면 (?) 하찮은  목숨값... 사는 일 보다 더 힘든 가난이란 이름, 우리는 새벽에 출발해서 하루종일 온 도착지 호텔에서 여정을 풀고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내일 또 선교지까지 30-40분을 더 가야한다고 했다. 심해진 기침과 몸은 아프고 익숙하지 않은 낯선 음식, 긴 여행의 일정을 나를 긴장에서 풀어지게 하고 숙소에서 들어선 나는 당황했다. 처음 와 본 선교지의 호텔, 한국에서의 여인숙보다 못한 상황으로 정말 짜증이 최고점에 다다랐는데, 거의 이십 년째 해마다 두서너 군데씩 선교를 다니신다는 권사님이 내게 이렇게 말한다. “선교지 호텔이 다그렇지. 뭘 바라고 왔어요? 그래도 이건 정말 훌륭해요. 내가 다녀본 선교지에 비하면, 선교지 호텔은 다 무늬만 호텔이야.” 울상인 내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저는 호텔이라고 그래서 샴푸나 린스는 당연히 있는 줄 알고 그냥 왔다고 했더니 내 것 있으니 같이 쓰자고 하셨다. 샤워실은 물줄기도 시원찮고 배수도 잘 안되고 청결 또한 열악하고 살충제 냄새가 진동하여 잠을 들 수가 없었으며 스물스물 뭔가 기어들어 올 것 같은 침침하고 퀘퀘한 냄새가 났다. 어릴 적 방학이 되면 외가댁에 가서 머물고는 했는데 그 때 한 여름이면 한창 두엄 썩는 냄새가 코를 찌르고 각종 모기나 날파리 극성으로 쑥 불 놓던 그 안개가 떠올랐다. 그러나 이곳은 물조차 부족하며 6개월은 건조하고 6개월은 비가 자주 온다고 했다. 건조한 계절은 미세먼지와 살인적인 더위는 최악이라고 선교사님은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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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우린, 일찍 일어나 낯선 이국에 풍경과 마주했다. 산 중턱에 쯤 자리 잡은 호텔은 그냥 큰 저택 정도의 수준이었고 마주 바라보는 산 풍경이 아름다웠다. 뒷 뜰을 거닐며 바나나, 라임, 무화과, 각종 이국적인 과실수들이 있었고 대부분 자급자족하는 것 같았다. 이국적인 풍경에서 삶은 잠시 내려놓고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감탄하고 있었다. 구약시대의 삶은 어땠을까? 권사님의 일방적인 설명을 듣는 거지만 참 좋았다. 그리고 우리는 때가 되어 선교센타로 떠났다. 

 

우리 일행 선교팀이 선교센타에 도착해서 아침기도 드리고 선교사님 부부의 정성어린 한식으로 아침을 먹고, 각 가정으로 방문전도를 하는 것이었다. 모든 거의 물자가 귀하니 가축을 기르고 있었으며, 특히 닭, 개, 그리고 고양이 드물게는 사슴도 키우고 있었다. 내 어릴 적의 한 농가처럼 그런 풍경이었으나 이곳은 거의 국토가 첩첩이 산으로 되어있으니, 일제치하 식민지 시절 우리나라가 일본 군인을 피해 언덕으로 올라가 판자촌을 지었듯이 이곳도 등산 민족처럼 산으로 산으로 올라가야 되었다. 오르고 내리고 좁은 산길로 전도하며 보는 상황은 우리나라 70년대 청계천 판자촌을 연상케 했다.

 

생계가 막역한 사연, 특히 부모 없이 자라나는 아이들이 가슴이 아팠다. 돈 벌려간다며 미국에 불법으로 넘어간 부모, 어리기 때문에 데리고 갈 수 없어 할머니나 친척에게 맡겨진 아이들, 불법으로 넘어가다 총 맞아 한쪽 다리 절단했다는 사연, 제때에 의료시기를 놓쳐서 당하는 고통과 소외, 또한 잘못된 처방으로 벙어리와 귀먹어리가 된 루디라는 청년, 태어날 때부터 봉사가 된 까를로스 그의 소원은 병원에 가서 진찰해 보는 것이 소원이겠지요? 약간의 빛과 어둠만이 구별되는 상황이니 만약 미국에 살았다면 각종 검사에 상황을 많이 호전될 것이라는 안타까움, 이렇게 방문 전도하면서 우리 선교팀이 느끼는 것은 우리의 손길이 너무 턱없이 빈약하다는 느낌만 들었다.

 

이곳에 사람들의 고통은 너무 아파서 기어 들어간 울음의 소리를 잊어버리고 살아남기 위해서 고통을 망각하는 것 같다. 대부분 우리가 보낸 시선에 무표정하다. 희망도, 일도, 아무것도 없는 그 곳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라고는 미국에 가야 한다 것이 전부 인 것 같았다. 그래서 동양사람이지만 미국에서 왔다는 말에 더 관심이 있어 했다. 언젠가 가야될 것으로 생각해서 영어에 대한 열의가 깊었고 선교는 그렇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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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이 운영하는 교회도 참석했고, 또 갓 20대 청년 목사로 열정적인 기도와 찬양 등이 인상적이었으며, 권사님의 왜 우리가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야 되는지 영어로 설교할 때 통역을 하던 마이클 조차 눈물을 보였다. 현지인들도 진심으로 청중하듯이 메모하는 것을 보았다. 또 현지인이 원해서 시작 되어진 노천 기도회도 가보았다. 해가 갈수록 더해간 다는 청중들에게 목사님과 전도사님의 삶의 파노라마 속에 예수님 구원을 받은 간증을 했다. 노방이지만 주님에 대한 기도와 찬양이 누구보다 못하지 않겠는가? 예수님이 기뻐 받으실 줄로 믿는다. 

 

현지인으로 지식 계급층인 닥터 카를로스(이곳의 남자이름은 대부분이 카를로스가 많다고 함)는 동양인인 처음으로 마을 사람들을 안위와 형편을 살펴주는 선교사님의 감동이 되어서 일까? 처음의 부정적인 시각을 벗어버리고 친구가 되어서 서로 배려하며 격려하는 사이가 되었다며 선교사님의 친근감의 표시로 우리를 초대 해주셨다. 그가 근무하는 병원과 그리고 가정방문 치료과정을 엿볼 수 있었으며, 그의 친구의 별장이라는 호수속의 작은 섬에서 피크닉을 가졌다. 그의 친구들과 즐거운 한 때를 가지며 그 분에게 선교도 했다.

 

자기 부모의 카톨릭 종교와 부인의 기독교와의 사이에서 그냥 중립을 지키고 있다는 말에 시종일관 권사님이 진정한 크리스천이란 입장을 놓고 혼신을 다하시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분은 이 지역에서 지식인이며 이곳 사람들에게 신임과 존경을 받는 입장을 생각해서 더 전도에 전념하시는 것 같았다. 나도 또한 그런 권사님의 사역이 부러웠다.  또한 미국에서 20년간 불법체류 하다가 쫓겨간 마이클은 우리의 통역을 돕는 과정에서 그도 현지인으로 이제는 어엿한 그리스도인이 되어갈 조심을 엿보였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그도 이런 통역을 한 삼년차가 되니 이제는 그도 그리스도의 영이 서서히 깃들어져 가고 있었다.

 

그 옛날 많은 외국 선교사님들의 희생으로 오늘날 우리나라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으며, 또한 대한민국은 강한 나라로 성장했고 영적인 성장도 같이 해서 그 도움을 받던 우리가 이제 복음을 땅끝까지 전달하고자 바톤을 이어서 릴레이 중이다. 잊어버렸던 내 어릴 적 보았고 겪었던 가난이 이곳에서 되새김질 되었으며, 내가 다니고 있는 권오현 총장님(뉴욕 신학대학 및 신학대학원)의 말씀이 생각났다. 평생을 먹고 입는데 신경 안쓰고 오로지 하나님나라 복음만을 생각하고 살았다고 하신다. 미국에 오셔서도 미국 사람들조차 꺼리는 브롱스 할렘가에서 망설임이 없이 교회를 설립하셨으며, 이민신학을 목적으로 약 40년 가까이 지켜오신 학교 총장이란 직함은 빈껍데기에 불과하다면서 80이 넘으신 것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도 강행군으로 일주일 이틀씩 강의하신다. 

 

총장님의 목적은 단 한사람이라도 올바른 신학을 배우서 익힐 수 있다면, 믿음과 행함이 있는 일군을 만들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으시다며 아직까지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아닌 도시 빌딩 속에 기도원을 세우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 속으로 찾아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라도 쉽게 찾을 수 있는 마음의 쉼터 즉 기도원이 소망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런 총장님께도 인간적인 속내는 있으시다. 수업 중에 들은 인간적인 고백은 하나님 나라만을 생각하느냐고 자녀들의 바라보지 못한 점을 아쉬워했다. 지금은 그 자녀들이 어른이 되어서 사회의 일꾼으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지만 부모로서의 감정은 자녀가 성장하면서 넉넉하지 못하고 배려 받지 못한 상황을 자녀가 얼마나 비참했을까를 생각했을 때 미안한 감이 든다고 했다. 또한 아직도 그 열정은 사그라지지 않으셔서 그 옐살바드로에 뉴욕 신학대학 및 신학대학원의 분교가 생기려고 한다. 엘살바도르에 체계적이고 올바른 신앙관을 심어주고자 황영진 선교사님의 고군분투와 권오현 총장님의 바람이 이루어지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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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신명기 10:12-13),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전도서 12장)

 

안 오고자 발버둥 치던 전도사역. 그저 공부하는 것이 좋아서 했던 신학조차 하나님의 계획하심 이였을까? 반신불구로 태어난 여자아이를 둔 어머니의 깊은 슬픔 속에 우리 선교팀은 같이 안타까워하고 하나님께 함께 기도하며 소원을 간구하고 위로하며, 하늘 위에 소망과 기도의 힘을 들려준다. 간절히 함께 혼연일체로 기도한다. 하나님의 복음이 이곳에서 확장될 수 있도록 이 연약한 어미에게 기적을 보여달라고, 우리는 부자라서 이곳에 온 것이 아니고 다만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시간도 십일조 하는 마음으로 이곳에 온 것을 권사님은 강조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거짓 없이 성실히만 살면 되는 것이 크리스천의 삶이라 생각했다. 내가 꼭 복음을 전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 사람은 나보다 더 신앙적이고 믿음이 강하다고 생각했으며 나는 외면하기에 바빴다. 사는 일도 힘든데 내가 굳이 사서 고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이곳에 와서 내가 힘들게만 느꼈던 일상들이 그 들이 고통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노력을 하면 기회와 보상이 주어지는 사회에 있다는 것조차 축복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무리 이곳의 암울한 상황을 애기한 들 백문의 불여일견이라고 신앙인이라면 선교여행 한번 권하고 싶다. 당신이 얼마나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있는지 그리고 그 축복을 조금이라도 이 어려운 선교지에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면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 받으실까? 우리는 부지런히 복음이 없는 지역으로 전도를 해야하고 올바르고 온전한 하나님의 바른 복음을 위해 관심과 사랑의 씨앗을 계속 쉼없이 뿌려야 하지 않을까? 값없이 예수님은 당신의 보혈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지 않았는가? 먹고 마시는 지출 금액 십일조를 모아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선교를 해보길 권한다. 내가 그랬듯이 누군가가 할 것이라는 무관심 말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들과 잠시라도 사랑과 관심을 교환할 수 있게 되기를 이 모든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응원합니다. 아멘.

 

임지형 집사와

뉴욕신학 및 신학대학원의 ‘복음 중심적 선교학’ 수강 학생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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