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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선희 목사 "목사의 경험이 좋은 설교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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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13-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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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목사회(회장 최예식 목사)는 곽선희 목사 초청 목회자 세미나를 4월 8일(월) 오전 10시 퀸즈중앙장로교회(안창의 목사)에서 열었다. 집회는 뉴욕교협, 장신동문회, NYTS 동문회가 후원을 했다. 곽 목사는 "설교와 현대 목회"라는 주제로 강의를 해 참가한 목회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세미나는 사회 송병기 목사(NYTS 한인동문회 회장), 환영사 최예식 목사(회장), 기도 전희수 목사(미주한인여성목회자협의회 부회장), 특송 뉴욕 남성목사합창단, 축사 NYTS 어빈 총장(통역 백창건 목사), 세미나, 광고 지인식 목사(NYTS 한인동문회 총무), 축도 박희소 목사(뉴욕교협 증경회장), 만찬기도 김용해 목사(뉴욕원로목사회 회장)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세미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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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를 인도하는 곽선희 목사

여러분들이 아는 대로 강의를 많이 하고 다니는 사람이다. 현대는 옛날과 달라서 함축성을 가져야 하기에 짧은 시간에 어떻게 하면 많은 것을 전달할수 있고 받을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강의를 하러 가면 프로파일을 먼저 말한다. 그 사람이 누군지 알고 들어야 제대로 들린다. 강의는 인격과 인격의 만남이다. 내가 말하는 말만 중요하다면 책을 보면 된다. 책보는 것과 강의가 다른것은 개인적인 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저사람이 누군가. 누구냐 하는 것을 아는 순간 그가 무엇을 했느냐 하는 대답이 나온다. 우리는 꺼구로 무엇을 했느냐만 자꾸 생각한다. 그러면 그가 누구인가를 잊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부득불 몇말씀만은 꼭 드리겠다. 왜냐하면 설교에 대해 강의를 하기 때문이다.

첫째, 설교를 50년동안 했다. 스폴전 목사는 일생동안 설교를 4천번했다고 자랑한다. 그분이 돌가가셔서 안계시지만 내가 가서 말할것이다. 나는 만번 설교를 했다. 주일마다 5번을 하고 새벽기도를 43년간 개근했다. 하루도 아파서 못한 날이 없다. 몸이 피곤할까봐 새벽기도를 안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 사람들은 좀 일찍 간다. 정말이다. 어떤 사람은 누가 새벽기도를 만들어서 잠도 못자게 하느냐고 했는데 그 사람은 뒤에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건강해야 새벽기도를 할 수 있지만, 새벽기도를 해야 건강할수 있다. 사람은 건강해야 일할수 있지만, 일을 해야 건강하다. 43년동안 새벽기도를 개근했다. 한번도 안뻐졌다. 요즘은 원로목사가 되어 미국에 왔다가 주일도 여기도 지키지만 전에는 미국에서 강의를 해도 금요일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주일에 설교했다. 그렇게 풀로 뛰었는데 오히려 그것이 건강에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50년을 설교했다.

둘째, 풀러신학교에 14년동안 강의를 했다. 강의는 박사과정에 있는 40-50명을 모아서 하는데 14년간 매년 인텐시브 코스를 한다. 올해에도 가게 된다. 강의는 내가 좋아하는 주제의 강의가 아니라 학교의 필요에 의해 "현대 설교"라는 과목을 해달라고 해서 하는 것이다. 강의는 아침 8시에서 시작하여 오후 4시반까지이다. 8학점짜리로 수강료가 비싸다. 그러니 시간을 30분만 까먹어도 불평이 들어온다. 굉장히 어려운 강의이다. 학생들은 호텔이나 기숙사에서 머물면서 일주일동안 하루종일 인텐시브로 하는 것이다. 열정이 아주 대단하다. 모여서 열심히 강의를 듣는 것을 보면 나도 신이 난다. 그런 강의를 14년동안 했고 그렇게 한 강의를 2시간에 하라는 것이 문제이다. 줄이고 줄여서 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말을 하고 싶다.

셋째, 소망교회를 11명을 가지고 가정에서 시작해서 40평짜리 상가를 빌려서 하다 늘리고 늘려서 6만명 교회까지 만들고 그리고 목회하다가 정상에서 은퇴했다. 목회자의 생애를 보면 목회가 올라가다가 내려갈때가 있다. 내려갈때에 은퇴하면 비참하다. 한참 올라갈때 그만두어야 한다. 최고로 올라가는 자리에서 그만두어야 한다.

자다가 생각해보아도 참 잘한것은 총회장을 안한것이다. 한국에서 총회장을 할때 교인이 줄다가 임기를 마치고 나면 아주 줄어든다. 총회장 했던 친구들은 총회장을 마치면 장로들이 언제 은퇴하나 하면서 쳐다본다고 한다. 총회장하느라 줄어든 교인들은 다시 올라가기가 힘들다. 다시 올라가지 못한다. 그러니 장로들이 언제까지 있을까 하고 바라 본다고 한다. 그래서 할수없이 사표를 낸다고 한다. 통계적으로 70세에 은퇴하는데 총회장 출신들은 65-68세에 은퇴한다고 한다. 교인이 줄기 때문이다. 다른 이야기는 다 쓸데없는 이야기이고 양심적으로 더 이상 버틸수 없어서 사표를 낸다.

그래서 내가 70까지 목회하려고 총회장을 안한것이다. 나에게는 목회가 중요하지 총회장이 중요하지 않다. 70세를 꽉 채우고 은퇴했다. 은퇴하는 그 시간이 가장 많은 교인들이 모이는 때 였다. 은퇴하는 그날 저녁예배까지 교인들이 꽉 찬가운데 설교를 했다. 은퇴한후 10년동안 한번도 소망교회에서 설교를 안하고 소망교회를 안간다.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니 꾸준히 목회하다 피크에서 은퇴하는 시간을 잘 정하라.

소망교회에서 창립기념일인 10월 첫 주일에 은퇴했다. 그리고 다음 주일 분당에다가 교회를 창립했다. 그쪽에서 은퇴하고 이쪽에서 창립예배를 보고 10년동안 지내고 있다. 분당교회는 8천명 모인다. 당회장은 내놓은 것이지만 설교는 연장한 것이다. 주일 오전 7시30분에 설교한다. 그 시간에 3천명이 모인다. 그 시간대로는 전국에서 가장 많이 모인다. 시간이 남으니 소공동에다 또 교회를 개척했다. 그곳은 한 천명이 모인다. 분당교회 설교를 마치고 소공동 교회에서 11시에 설교를 한다. 주일이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설교를 마치고 냉면을 사먹고 돌아오면 기가 막히다. 얼마나 좋은가. 만 10년동안 그렇게 했다. 은퇴하고 교회를 3개 세웠다. 다른 하나는 일산에다 세웠다.

50년동안 설교한 경험, 개척한 경험, 신학대에서 40여년 강의한 경험등 모든 경험을 다 합해서 2시간동안 전한다.

설교는 지식의 전달이 아니다.
교인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아야 한다


설교학을 많이 가르치다 보니 여러 책을 본다. 설교학 책에 이런 말이 있다. 어느날 목사가 설교하다 보니 앞에 앉아 있던 집사가 설교하는 도중에 일어서 나갔다. 목사는 아마 화장실에 가는가 보다 생각하고 설교를 했다. 그 집사가 설교가 끝날때쯤에 다시 들어왔다. 목사가 너무 궁금해서 악수할때 어디에 다녀왔느냐고 물었다. 그 집사는 이발하러 갔다 왔다고 했다. 그래서 목사가 놀라서 이유를 물어보니 집사는 "목사님, 내가 이 교회 절때 결석하는 사람이 아닌데 주보를 보니 본문과 제목이 몇달전에 한 것이다. 그래서 목사님이 무슨말을 할것인가 다 안다. 앉아서 조는 것 보다 시간도 넉넉하고 해서 이발소에 다녀 왔다"고 한다. 설교학 책에 나오는 이야기 이다.

설교가 자장가가 되었다. 교인 50%가 졸면 사표를 내라는 것이다. 당신이 사표를 내던지 그것이 교인에 대한 모독이다. 그러면 교인들이 설교를 듣다가 왜 졸게 되었는가.

우리는 교인들이 알게하면 되는 줄 안다. 그래서 많은 말을 자꾸한다. 하지만 교인들은 듣지 않는다. 듣게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알게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알게하려면 내가 교인들이 알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관심의 촛점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교인들의 관심은 '레'인데 내가 설교하는 관심은 '미'이면 영영 평행선을 걷는 것이다. 그래서 아는 것이 중요하다.

설교란 무엇인가. 설교는 지식의 전달이 아니다. 깨닫게 하고 느끼게 하고 감동하게 하고 헌신에 까지 가야 하는데 우리는 지식만 전하면 되는줄 안다. 그래서 많은 말만 하면 되는 줄 안다. 아니다. 공염불 하는 것이다. 완전히 빗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럴려면 내가 먼저 교인을 알아야 한다.

옛날에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당장 반대가 왔는데 요즘은 반대가 없다. 무슨 이야기인가. 옛날에는 영화좀 보라, 드라마를 보라, 소설을 보라, 그리고 베스트 셀러를 읽으라고 말하면 나보고 자유 신학자라고 욕하는 사람이 있었다. 정말로 욕을 먹었다. 교인들이 무엇을 보고 있으며, 영화가 어디로 가고 있고, 젊은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보라.

일년에 1만5천명이 자살을 한다. 왜 죽는가. 먹거리가 없어서 죽는 것이 아니다.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설교는 그것에 촛점을 맞추어야 한다. 왜 저들이 죽는가. 그런데 자살하려고 했다가 살아난 사람들을 모아놓고 세미나를 했다. 왜 죽으려고 했는가, 이제와서 생각은 어떤가를 물었는데 결론은 나만 몰랐다는 것이다. 신문에 대문짝하게 "나만 몰랐다"라는 제목이 났다. 나만 몰랐다는 것은 무엇인가.

부모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는줄 나만 몰랐다, 주위에서 나를 위해 걱정을 하는 분들이 이렇게 많다는것을 나만 몰랐다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이 안되어 고독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사랑의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느 어머니가 자녀를 사랑하지 않겟는가. 하지만 부모가 문제이다. 아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사랑이 빗나간것이다. 사랑이 독백이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문제이다.

목사의 설교도 교인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무엇을 위해 걱정하는지 많이 알아야 한다. 그것을 연구하는 것이다. 그것이 없으니 문제이다. 연구는 간단하다. 같이 동참해야 한다. 교인들과 함께 해야 한다. 그것이 아는 것이다. 교인들이 하는 것을 나도 해보고, 교인들이 좋아하는 것을 나도 좋아해 보는 것이다. 교인들이 좋아하는 드라마도 보아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시청율이 45%가 되는 드라마도 있다. 전국민의 45%이 보는데 이 드라마를 목사가 안보면 설교하면 되겟는가. 완전히 빗나가는 것이다.

교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같이 뭉게 돌아가면 된다. 우리집에는 전문가가 있다. 아내는 드라마 전문가이다. 눈이 나빠져 책도 못보고 오로지 드라마만 본다. 팔십 노인이 아내하고 무슨말을 하겠는가. 집에 들어서자 말자 그 드라마가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본다. 집사람이 신바람이 나서 말한다. 그러면 앉아 듣다가 졸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화가 된다.

가끔 설교할때 드라마에 대해 말하면 교인들은 내가 본줄 알고 목사님 바쁜데 어떻게 드라마를 보았는가를 묻는다. 그러면 우리집에 전문가가 있다고 대답해 준다. 이것을 알아야 한다. 정말 요즘 드라마가 심각하다. 어떤 드라마는 주제나 내용에 굉장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목사는 이런 문제에 대해 아마추어 이상의 비판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 그래야 설교를 할수가 있다.

그렇다고 드라마를 본 내용을 이야기하라는 것은 아니다. 교인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에서 부터 설교가 된다. 이 상황을 잘 분석하고 그중에 제일 중요한 문제에 촛점을 두어야 설교가 된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설교자의 어려움-교인의 집중력 문제

요즘에 재마있는 책이 나왔는데 "우리 목사님은 왜 설교를 못하는가"라는 책이다. 제목이 중요한 이야기이다. 심각하다. 그냥 설교를 잘한다 못한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을 제대로 읽어야 하는데 이 책의 주제는 현대인은 집중력이 없다는 것이다. 컴퓨터, 티브, 미디어, 영상 문화 때문에 집중력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도 스크린이 있지만 나는 좋아안한다. 영상문화에 취해서 이것 저것 보여주면 집에서 보면 되지 교회까지 와서 왜 보아야 하는가. 교회가 집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인격과 인격의 만남이다. 그 인격적인 만남을 스크린이 빼앗아가고 말았다.

티브를 볼때 집중하면 정신나간 사람이다. 원래 대충보는 것이다. 재미있는 티브 프로그램이 하나있었다. '풀하우스'라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인데 부부싸움의 이유를 연구했다. 부부싸움을 하는 이유중 첫째는 티브를 보다가 싸운다는 것이다. 아내가 드라마가 보다가 남편이 들어와서 드라마 스토리를 물어보면 부인이 삐딱하게 말하고 그것때문에 싸운다는 것이다. 티비를 제대로 보는 사람이 어디있는가. 어차피 반밖에 안보는 것이다. 엄성덤성, 어리벙벙하는 것이 바로 매스 미디어 문화이다. 집중은 없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이 그래서 공부를 못한다.

한 교수가 대학 들어갈 고3 아이들을 모아놓고 실험을 했다. 아이들에게 중요한 책을 한권을 주고 일주일 동안 다른책도 보지말고 티브도 보지말고 이 책만 읽으라고 했다. 그리고 독후감을 쓰게 했다. 그후 다른 책 한권을 가지고 다시 일주일을 집중하게 했다. 그렇게 했더니 애들이 모두 다 일류대에 들어갔다. 집중력의 회복이다. 요즘 아이들이 집중력이 없다. 스마트 기기들을 가지고 노는동안 다 어리벙벙이다. 하나도 제대로 아는 것은 없다. 아는 척은 하지만 멍청한것이다.

설교잘하는 비법-성경을 읽으라

그러면 중요한 것은 책에서는 나오는 우리 목사가 설교를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 목사는 성경도 어리벙벙이라는 것이다. 정말이다. 현대문화에 빠져서 성경을 제대로 안본다. 성경 하나는 먼저 집중력으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제가 젊은 사람들을 가르킬때 꼭 그런 이야기를 한다. 설교를 잘하려면 비결이 다른 것은 없다. 성경으로 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내가 듣지 못한 복음을 어떻게 전하겠는가.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와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경읽는 자세가 좋아야 한다. 자세부터 바꾸어야 한다. 그러니 잠못바람에 성경을 읽지말고 넥타이 매고 읽고, 세수하고 무릎을 꿇고 읽으라. 좀 더 잘하려면 전기불을 끄고 촛불을 켜고 읽으라. 그리고 설교하려고 준비하는 본문을 10-100번을 읽어라. 또 읽고 읽으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올것이다. 그 다음에 설교하라. 설교를 잘하려면 성경을 읽는 것이 먼저이다.

성경을 읽지도 않고 주석책이나 잡지나 티브만 본다면 벌써 빗나갔다. 성경하나만 읽으면 된다. 해마다 성경이 읽지만 금년에 예수님의 고난을 읽어가다가 일주일동안 새벽기도를 인도하면서 전에 없이 감동한 적이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과정을 누구나 다 안다. 이 모든 과정을 다 아시고 하시는 말씀이 귀한 말씀이다. 내가 왜 진작 "나는 아버지께로 가노라"이라는 말씀을 생각하지 못했는가. 잡다한 현실을 넘어서서 저만큼 가서 나는 아버지께로 가노라. 나는 그것을 몇백번 읽었다. "아버지께로 가노라" 이 얼마나 희안한 말씀인가. 사람들의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다. 누가 무슨말을 하면 어떤가. "나는 아버지께로 가노라"라는 말씀은 촛점이 분명하다. 이런 감동의 과정을 가지고 설교를 해야 된다.

해석을 하지 말고 적용을 하라

요새와서 "해석을 하지 말고 적용을 하라"는 말을 많이 한다. 젊은 목사에게 부탁한다. 주석을 보지말고 주석을 다 불지르라. 주석이 없어야 설교가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집 서재에는 주석책이 하나도 없다. 하기는 내 나이가 얼마인데 주석을 볼것인가. 주석을 볼때가 지났다. 50세가 넘었으면 주석을 보는 것을 그만두라. 초짜들이나 하는 것이다. 이제 나이든 목사는 주석을 볼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직통해야 한다.

칼빈이 어떻게 루터가 어떻고 하는데 그들이 어떻다고 하는가. 그들은 비행기도 못타본 사람들이다. 그들이 말한것이 무엇이 대단하다고 아직도 뒤지고 있는가. 칼빈과 루터를 안보아서 그런데 허망한 소리도 많이 했다. 현대세대에는 말도 안되는 소리가 많다. 하긴 500년전에 그만했으면 훌륭하다. 오늘날 우리가 그런것을 보고 있으면 되겠는가. 해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그대로 받고 오늘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하는 하는 적용이 바로 우리의 설교이다. 현대 설교의 성공은 적용에 달려있다.

설교잘한다고 소문난 목사님들의 설교를 보니 그들의 설교는 해석이 아니라 완전히 적용이다. 얼마나 중요한 말인가. 다시 말하면 설교할때 아가페냐 에로스냐 하는 식으로 설교를 안한다. 사랑이 무엇이냐 하면 소문난 설교자는 이렇게 설교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고전적인 것을 가지고 사랑을 파고 들었다. 아니다. 현대에서 사랑은 무엇인가. 얼마전에 잡지에 난 것인데 재미있다. 이것이 다 현대공부이다. 친구의 사랑을 믿어주는 것이고, 어머니의 사랑은 속아주는 것이라는 것이다.

알았는가. 속는 것이 사랑이다. 똑똑한 척 하지말라. 요새 젊은 어머니가 애들을 버리는 것이 너무 똑똑해서 버린다. 애들이 뭐라고 하면 "내가 너의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속을 줄 알아"라고 말한다. 그러면 애들이 어디로 가겠는다. 그런 가정의 아이들이 자살한다. 어머니의 사랑은 알고도 속아주는 것이다. 이것이 없다는 것이다. 사랑의 설교에서 적용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속아주는 것이다.

결혼주례를 할때 꼭 그 이야기를 한다. 나에게 주례부탁을 할때 다른 결혼식에서 들은 주례사대로 다시 해달라고 한다. 주례사에서 내가 하는 말중 재미있는 것은 "남편이 늦게 들어오면 왜 안들어오는가 걱정하지 말라. 남편이 어디로 샜는가 생각하지 말고 얼마나 배고플까 생각만 하라. 전화가 없으면 얼마나 바쁜가 생각하라. 얼마나 배고프고 피곤할까만 생각하라. 안돌아오면 내일오는가 보다 라고 생각하라"고 하면 신랑이 좋아한다.

또 "밤에 잘때 어던 경우든 남편의 핸드폰을 열어보지 말라. 한번 들키면 영원히 사랑받지 못한다. 아내가 나를 의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아내를 사랑하게 되겠는가. 잘못하면 생과부가 되는 것이다. 정신차려야 한다. 사랑은 믿는 것이다. 알고도 믿어주고, 모르고도 믿어주고, 알고도 속아주어야 사랑이지 똑똑한척 하지말라. 그러면 공중분해가 되고 마는 것이다"라고 한다. 사랑의 현대적인 적용이다.

예수님의 사랑에서도 그것이 나타난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때 지금은 모르지만 이후에는 알리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믿었다. 지금은 한심한 너희들이지만 다시 돌아와서 나중에는 나를 위해 순교하게 될것임을 믿고 계셨다. 지금은 모르지만 이후에는 알리라. 정말 예수님은 참 멋있는 분이시다. 이것이 현대적인 적용이다. 해석하지 말고 작용하라는 말은 아주 중요하다.

보이는 것이 많으면 듣는 것이 없다

알려야 한다. 그럴려면 내가 저들을 먼저 알아야 한다. 웃기는 이야기이지만 제가 신세계백화점 뒤에 있는 한맹교회에서 설교를 했다. 맹인들이 모인 교회에 가서 설교하다가 깜짝 놀란적이 있는데 교인들의 반응이 너무 좋다. 이럴수가 없다. 수십년 설교하면서 보는데 이분들은 조금 우서운 이야기를 하면 얼마나 소리를 내서 웃는지 설교를 중단해야 한다. 좀 슬픈 이야기를 하면 엉엉 우는 소리가 나기에 쉬었다가 해야 한다. 반응이 이렇게 좋을수 없다. 그래서 내가 은혜를 많이 받았다.

담임목사가 제자인데 내가 한평생 설교하지만 이렇게 반응이 좋은 교회가 기억이 없는데 어떻게 해서 이렇게 반응이 좋은가를 물어보았다. 제자 목사는 "간단합니다. 보이는 것이 없잖아요"라고 답했다. 너무 기가 막히다. 보이는 것이 많으면 듣는 것이 없다. 그래서 교회에서 보이지 말아야 한다. 제발 부탁이다. 교회에서 뭔가 써 붙여 놓는 것을 안하는 것이 좋다. 여기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 예루살렘 성전은 천정도 없다. 하늘 쳐다보고 예배한다. 그것을 알아야 한다. 아무것도 보이지 말아라. 보이는 것이 없어야 들리는 것이 있다. 보이는 것이 요새 너무 많다. 화면돌리고 뭘하고 난리를 치니 집중력이 없다. 목사도 집중력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설교를 못한다.

그것들이 바로 "우리 목사님은 왜 설교를 못하는가"라는 책의 주제이다. 성경 하나를 제대로 보지를 않았다. 그래놓고 설교가 되는가. 말씀드리는 것은 우리가 회개해야 한다. 어느 사이에 집중력을 잃어버려서 책을 보아도 겉돈다. 무엇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 깊이가 없다. 대충대충 이렇게 세월을 살아왔다. 그러니 이제는 집중할때이다. 내가 설교하는 대상을 연구해야 한다.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가, 근본적인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에 집중해야 한다. 그것에서 부터 생각을 해야 한다. 알게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결론으로 유도하고 결론을 맺지말라

두번째는 깨닫기이다.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은 다르다. 깨닫는 것을 히브리 원문적으로 보면 경험속의 인식이다. 내가 경험하지 못하면 아는 것도 아는 것이 아니다. 들어 두었다가 경험할때 이것이구나 하고 깨닫는 것이다. 순간순간 경험속에서만 알수가 있다. 너무 중요한 것이다.

우리 현대인들이 그만 영상문화에 빠지면서 실제 경험이 적어졌다. 아이들이 경험하는 것이 적어졌다. 그러니 아이들을 데리고 가까운 선교여행이나 봉사활동을 가면 아이들이 깜짝 놀란다. 한번 선교나 봉사하고 나서 아이가 완전히 다른 아이가 된다. 잠깐 가서 선교하고 봉사햇는데 다른 아이가 되는 것을 볼때 그 이유는 무엇인가. 못해보았던 것이다. 사랑을 받고 사랑을 준다는 것이 무엇인지 자기 몸에서 경험한적이 없다.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 복잡한 세상을 경험적인 가치라고 말한다. 지식적인 가치나 철학적 가치가 아니라 경험적 가치이다. 경험속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른에게 아이에게 말하든지 교인들에게 설교하든지 간에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반만 알고 반은 스스로 깨닫게 해야 한다.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현대설교는 결론으로 유도하고 결론을 맺지말라고 말한다. 결론을 교인들이 스스로 맺도록 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설명한다. 유명한 늑대와 소년이라는 동화가 있다. 아이가 사람들이 놀라게 하려고 늑대가 나왔다고 소리를 지르니 동네사람들이 무기를 가지고 나왔다. 다음날도 같이 거짓말을 했다. 삼일째 되는 날은 진짜 늑대가 나왔다. 애가 얼마나 무섭겠는가. 아무리 늑대가 나왔다고 소리를 쳐다 아무도 안온다. 여기에서 핵심을 찾아야 한다. "아무도 안왔습니다" 끝. 그것까지만 설교해야 한다.

만약에 "그러므로 거짓말을 하지말라"고 설교하면 교인들은 "내가 그럴줄 알았지" 한다. 제발 부탁이다. 목사님들의 설교가 여기까지만 하고 끝나면 교인들을 지성인으로 대접하는 것이다. 지성인들에게는 그것까지이다. 그 다음 부록을 달면 안된다. 잔소리가 달리면 안된다. 그러면 지성인에 대한 모독이다. 잔소리가 달리면 교인들은 "내가 알아서 할텐데"하고 불만을 가진다. 지성인을 상대로 하려면 그래야 한다. 그것까지만 딱 해야 한다. 나는 "목사님, 설교할때 5분은 더해야겠는데 왜 그것에서 끝나는가"라는 후배목사들의 질문을 수없이 들은 사람이다. 들을때마다 "너도 언젠가는 알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아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끝. 그리고 "기도합시다"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목사가 부록을 달면 부록이 길어지면 꼭 십일조로 간다. 성수주일 그리고 십일조로 가니 교인들이 지겹다고 가버리면 다시 교회에 안나온다. 현대인들을 지성인 대접을 해서 보내야 한다. 교인들은 자기들이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만 말하고 말을 하지 않고 감추어 놓아라.

연구해보면 예수님도 그러셨다. 예수님이 그많은 비유를 말씀하실때 해설을 하신 것은 둘밖에 없다. 씨뿌리는 자들의 비유를 말슴하실때 비유를 말씀하시고 끝이다. 예수님이 씨가 무엇인지 밭이 무엇인지 설명하신 일이 있는가. 이것이 예수님의 설교이다. 예수님의 설교를 현대적인 설교로 보면 단계가 높다. 이 말씀 끝에 얼마나 오해가 있는지 그것을 생각하지 않으셨다. 딱 말씀하고 끝내셨다. 정말 귀중한것이다. 깨닫는 것은 자기 경험속에서 아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 랍비와 친한편이다. 랍비들이 아주 단수가 높다. 우리 목사님들보다 인간미가 한수 높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아주 친한 척하고 만나면 내 입장에 맞추어 이야기를 한다. 나는 늘 랍비가 확실히 한수 위라는 것을 느낀다. 우리는 당장 무슨말을 하면 비판하려고 하는데 그들은 안그렇다. 받아들인다. 내가 무슨말을 하든지 받아들이면서 그 다음말을 하는데 반하게 된다. 그것이 우리가 랍비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랍비가 하는 말을 하나 소개한다. 자녀가 셋있는 부부가 이혼하려고 랍비에게 갔다. 그리고 이혼을 했다. 랍비는 한수높다는 것이 "이혼하지 말라"는등 무엇을 하라는 말을 안했다. 이혼하고 싶으면 헤어지라고 했다. 그리고 랍비는 "애가 3명인데 그러면 한사람은 둘을 가지고 한사람은 하나를 가져야 하는데 어떻게하죠. 서로가 둘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니 그렇다면 둘을 가져야죠. 그러면 빨리가서 하나 더 만드세요"라고 말했다.

어떤가. 한수높죠. 뭘 잘했네 못했네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읽으면서 랍비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 얼마나 멋있는가. 랍비는 높이 보고 있다. 깨달음이다. 우리의 현실 생활속에서 매일 매일 깨닫는데, 들은 말씀을 오늘 깨닫는다. 어제 듣고 오늘 깨닫는다. 이것을 잊지말아야 한다. 교회에서 아멘, 할렐루야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생활속에서 확인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 말씀이 열매를 맺는 것이고 효과를 내는 것이다. 그것이 중요하다.

목사의 경험이 좋은 설교를 만든다

깨닫는다. 그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깨달을수 있을까. 목사가 경험속에서 하는 설교만 교인들이 깨닫는다. 목사가 진리를 확실히 경험하고 스크린해서 그리고 설교를 해야 교인들이 깨닫지 책본것을 가지고 아무리 설교해도 깨닫는 법이 없다.

얼마전에 박사논문을 하나를 읽었는데 서울에 있는 만명이상이 되는 메가처치 담임목사들을 연구해서 프로파일을 분석해 놓았다. 프로파일을 쭉 보니 공통점이 하나있는데 만명이상되는 교회목사는 60%가 폐병환자이다. 폐병이라고 한번 앓아야 제대로 목사가 된다. 맹숭맹숭해서는 안된다. 오죽하면 하나님이 모세를 광야로 보내서 40년동안 고생하도록 하셨겠는가. 40년동안 광야생활을 통해 만드신 것이 바로 경험이다. 엄청난 경험이다. 이 경험이 전부 다음에 지도자상을 만들었다.

우리 교회 부목사 18명중에 한사람이 유달리 설교를 잘못한다고 소문이 났다. 이유는 미국에서 30년을 살아 한국말은 한국말인데 약간 빗나간다. 그래서 설교가 잘안된다. 본인도 참 답답해 한다. 의정부 가는데 보충대가 있다. 보충대에 일주일 있다가 자대에 배치되어 간다. 보충대에서 설교하는것이 굉장히 중요해서 우리교회와 자매결연이 되어서 자주갔다. 여기에서 예수믿겠다고 나오면 그 사람은 마지막 까지 예수믿는 사람이 된다. 문제는 다음날은 카톨릭 신부가 그 다음날에는 스님이 순서를 맡는다. 그래서 더욱 그 한시간의 설교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어느날 설교를 해야하는데 부목사들이 다 바빠서 설교를 못한다는 목사가 갔다. 그날 설교하고 나서 예수믿을 사람을 손들라고 하니 전부 다 손을 다 들었다. 이런 일은 한번도 없었다. 잘해야 60%였다. 부대장이 굉장한 기적이 나타났다고 나에게 전화를 했다. 신기해서 그 부목사를 불러 어떻게 이런 기적이 나타났는가를 물었더니 싱글 웃으면서 할 말이 없어서 옛날 경험한 이야기를 했다고 대답했다.

부목사는 서울대를 다니다 삼청교육대를 끌려갔다. 매를 맞고 죽을 고생을 하고 살아 나와서 한국이 싫어서 미국으로 왔다. 미국에서 30년을 살다가 목사가 되어 한국에 다시 나갔는데 어려움이 많었다. 그래서 그 부목사가 할말이 없어서 옛날에 삼청교육대 가서 고생한 이야기를 좀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모든 장병들이 다 예수믿겟다고 일어났다.

목사는 자신이 경험한것이 없으면 안된다. 깊이 생각하자. 하나님이 마음이 인색하신가. 왜 사도바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셨겠는가. 사도 바울이 3번이나 특별히 기도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가시를 남겨 놓으셨다. 그래야 설교가 되기 때문이다. 이 육체의 가시는 내가 아는 바로는 간질병이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쓰러졌는데 갈라디아서 4장을 추리하면 드라마가 나온다. 바울은 갈라디아교회에서 설교하다가 간질병으로 쓰러진다.

나는 간질병에 대해 특별하다. 중고등학교 다닐때 2년동안 짝이 간질병 환자였다. 내가 짝과 경험한 것과 연구하면서 책에서 본것과 같았다. 바울도 그랬을것이다. 설교하다 말고 소리지르며 쓰러진다. 갈라디아서 4장에서 사도바울이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라고 말한다. 너무너무 감사하다. 바로 이어진다.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 너무 좋고 너무 감사했다.

이런 모든 경험과 함께 선교가 이루어지고 설교가 되는 것이다. 특별히 여러분들이 잘아는 이야기이다. 사도 바울이 배를 타고 로마로 가는데 왜 배가 파손이 되는가. 왜 파손되어야 하는가. 그 배가 파손되는 사건속에서 바울의 위상이 올라간다. 그 위상이 로마까지 가서 대로마제국이 기독교국가로 바뀐다. 놀라운 역사이다. 이런것들은 어디서 오는가. 경험속에서 깨달음 속에서 온다. 바울은 선교하면서 깨닫고 그 깨달은 바를 전도받은 사람이 또 깨닫는다.

깨달음이라는 현실적인 가치 혹은 체험적인 가치속에서 복음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 지는 것이다. 목사는 가능한 경험을 많이해야 한다. 여행을 많이 하는 것이 좋다. 서양사람들은 그런것을 잘알아서 일주일에 2일을 여행시키는 교파가 있다. 2일은 집에 있지말고 나가서 이런저런 경험들을 많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험이 있어야 설교가 되지 책상머리에 앉아서 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히브리식이다. 히브리식은 체험이다. 체험속에서 이루어진다. 내 체험에서 설교가 된다.

김삼환 목사의 설교는 설교학적으로는 0점 그러나...

한국교회의 수수께기 중의 하나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한다. 김삼환 목사는 도대체 설교를 잘하는 것이 아닌데 왜 교회가 부흥되는줄 아무도 모른다. 김삼환 목사를 누가 책에 비판했는데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설교이다. 말하다가 시간되었으니 그만합시다 하고 그냥 끝내는데도 교회가 부흥된다.

다른것은 아니다. 김삼환 목사는 자기 경험속에서 이야기를 너무 재미있게 전한다. 방송에 김삼환 목사의 설교 나온것을 보고 만나면 두고두고 놀린다. 그러면 그만하자고 한다. 김삼환 목사가 어릴때 너무 가난하게 살아 한방에 8명의 식구가 살았다고 한다. 방안에 요강이 있는데 사람이 많아서 넘치곤 했다. 김삼환 목사는 말도 잘한다. 오줌을 누려면 수위조절을 해야 한다고 한다. 오줌이 얼마나 들어가 있는지 알아야 하기에 손가락을 넣어서 확인한다. 그것을 흉내내는데 기가 막히다. 그리고 여유가 있어야 요강에 오줌은 눈다.

그 이야기를 하면 우리 교인들이 껄덕 넘어간다. 하도 웃어서 5분동안 설교를 못한다. 교인들은 웃고 나서 은혜받았다고 한다. 그것이 은혜받는 것이다. 은혜받는 것은 한번 울고 세번 웃는 것이다. 가만히 보아라. 많이 웃으면 은혜받았다고 하고 또 눈물을 흘리면 은혜받았다고 한다. 그 다음에 무슨 말이냐고 하면 알바가 아니다. 그것이 은혜이다. 은혜를 지식으로 생각하지 말라. 은혜는 감동이다.

김삼환 목사의 설교는 아무리 들어보아도 설교가 아니다. 그런데 교회는 터지게 모인다. 그것을 알아야 한다. 신학생들이 건방지게 김삼환 목사의 설교가 시원찮는데 어떻게 교회가 부흥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러면 "그것을 알지 못하면 당신은 목회를 못한다. 알아야 한다"고 말해준다. 그것은 깨달음이다. 김삼환 목사님이 현실생활속에서 깨달은 것을 가지고 설교를 했다. 그리고 교인들의 경험하고 맞아떨어진다. 같은 경험이다. 그래서 되는 것이다. 경험과 경험속에서 이루어 지는 것이다. 경험 깨달음이라는 것은 체험적인 가치속에서 복음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2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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