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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복 목사 "위안을 찾지말고 진리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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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ㆍ2013-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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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랑장로교회(이길호 목사)는 4월 5일(금)부터 3일간 김영복 목사를 초청하여 추기성회를 열었다. 김 목사는 총신대학교 신대원을 졸업하고 25년간 의정부 사랑과 평화의 교회를 시무하고 있다. 한편 주사랑장로교회는 7일(주일) 오후 5시 장로, 권사, 안수집사 임직식을 연다.

김영복 목사는 5일(금) 오후 8시 20분에 열린 집회에서 마태복음 1장 21절을 본문으로 "예수 이름의 기업"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했다. 김 목사는 성경속의 인문학적인 요소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기를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다음은 말씀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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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하면서도 쉽게 듣기 힘든 내용의 말씀을 전한 강사 김영복 목사

왕이 백성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기위해 민정시찰을 나갔다. 한 가난한 집을 보고 마음이 아픈 왕은 가져온 금덩이를 놓고 돌아갔다. 몇달후 이제는 잘살겠지 기대하며 왕은 다시 그 집을 방문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놀란 왕은 신하에게 금덩어리를 찾으라고 시켰다. 그 가난한 집에서는 금덩어리의 가치를 모르고 빨래판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왕은 그 금덩어리를 가난한 옆집에 던져놓고 다시 궁으로 돌아왔다. 몇달후 다시 방문한 왕은 그 집이 잘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흐뭇해 했다. 먼저 사람은 금덩어리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는데, 나중의 사람은 금덩어리의 가치를 발견한 것이다. 보배를 보배로 알아본 것이다.

보배가 뭍혀있는 하나님의 말씀속에서 보배중의 보배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를 바란다. 말씀속에 감추어진 예수그리스도를 발견해야지 육신, 사람, 윤리, 철학, 심리, 월빙, 성공 이야기로 성경이 들려지기 시작하면 비슷하기는 하지만 아니다. 요한복음 5:39을 보면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라고 말한다. 성경의 여러곳에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씀한다고 되어있다.

제자들이 엠마오를 내려가다가 예수님을 만나서 대화하다가 나중에 보니 예수님인데 사라지셨다. 제자들은 "낮에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라고 말하고 있다. '뜨겁다' 본문의 뜻은 불탄다는 의미이다. 머리나 몸이 뜨거워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뜨거워야 한다. 가슴이 뜨거워지면 불붙게 된다. 성경을 풀어주신다는 것은 무엇일까. 예수님이 제자들과 엠마오에 내려가시면서 누가복음 24:27에는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라고 나와 있다.

모세와 선지자는 무엇인가. 예수님 당시에는 신약성경이 없었다. 그때에 모세와 선지자라고 하면 구약성경 전체를 말한다. 누가복음 24:44에는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글이라고 했다. 나는 예수님이시다. 분명히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지만, 성경 구석구석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씀한다고 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속에서 발견하지 못하면 안된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고, 윤리 도덕 경제 웰빙같은 것을 발견한다면 되겠는가. 오늘부터 성경에서 위안을 찾지말고 진리를 찾기 바란다. 위안을 받으려고 하지말고 주님을 받아들여야 한다.

창세기로 부터 구구절절이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안보인다면 우리 눈이 어두워졌다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3:14절에서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라고 말한다. 구약을 읽을때 수건으로 눈이 가리워져 안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눈이 보이게 되는 길을 바울이 말했는데 그리스도께 돌아가면 수건이 벗겨지리라 했다. 이 말씀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창세기 1:1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할때 태초에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는가. 눈이 가려져 있으면 안보인다. 태초에 하는데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는가 말할수도 있다. 하지만 보여야 된다. 보인다. 성경 구석구석에 그리고 히브리서 1:1(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라고 했다.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이란 성경에 보면 가지각색의 이야기가 다 나온다. 그런데 성경은 경제활동에 대해 가르쳐주는 경제학 서적이 아니다. 예수님에 대한 성경이다. 성경은 땅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영적인 이야기이며, 땅이 이야기가 아니라 하늘의 이야기이다. 육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영의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귀는 어디에 익숙해져 있는가. 우리는 성경을 볼때 가리워져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의 각양각색의 내용속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한다. 성경을 보면 분명히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이야기이지 어떻게 예수님의 이야기인가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몇군데는 찍어서 예수 이야기가 맞다고 한다. 신약은 오신 예수, 구약은 오실 예수만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오시기 전에 벌써 영의 세계에 계신다. 태초에 말씀에 계시니라는 창세기 태초보다 더 이전의 세계이다.

가난한 사람이 금을 금으로 알지못하고 빨래판으로 사용하듯이, 성경안에 무궁무진한 은혜와 능력과 구원과 축복과 사랑과 하늘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비밀이 가득히 들어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한다. 대신 성경을 윤리적 심리적 상담적 경제적 정치적 철학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면 성경은 무겁고 짜증나기만 하다. 성경속에 발견되지 않은 무궁무진한 비밀의 예수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같이 하며 업그레이된 신앙생활을 하기 바란다.

한번은 외국에 나가다가 스튜어디스에게 예수를 아는가를 물어보았다. 조금 있다 다시 찾아와서 예수라는 이름의 탑승객은 없다고 말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잘아는가. 성경속에 예수님을 정말로 보고있는가. 성경 구석구석에 나오는 예수님을 발견하기를 축복한다.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 1장 21절에서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라고 했다. 예수라는 이름이 구원자 이시라는 것이다. 세상에 여러가지 기업이 있으며 다른 상품을 생산한다. 예수라는 기업은 무슨 기업인가. 생명의 기업이고 구원의 기업이다. 죄를 사하는 능력의 기업이다. 천국으로 사람을 보낼수 있는 기업이다. 이 땅의 기업과 전혀 다르다.

예수라는 기업에서 생산되어 지는 제품이 생명이고 하늘의 은혜이고 능력이다. 그 이름으로 명하면 귀신이 떠나진다. 예수 그리스도도의 이름의 능력은 경제의 논리와 정치의 논리가 아니다. 죄로인해 병들고 연약한 영혼을 경제와 정치로 손댈수 없다. 심리학으로 다룰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는 죄문제가 해결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자이시며 굉장한 이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의 족보에 대해서 나온다. 예수님은 법적으로는 요셉의 혈통이지만 실제로는 하늘의 혈통이고 하나님의 족보이다. 예수님의 이름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얻고 구원을 얻는 엄청난 복이 있는 기업이다. 예수님의 기업은 귀신이 떠나가고 성령님을 모시는 기업이다. 질병이 치유되고 건강을 주는 기업이다. 불안이 떠나가고 평안을 누리는 기업이다. 절망을 짓밟고 소망을 주는 기업이다. 저주를 척결하고 축복을 받는 기업이다. 죄를 던지고 의의 옷을 입혀주는 기업이다.

우리는 그 기업의 상속자인데 그것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고 있다면 불행하다. 그렇게 믿고 교회생활을 하면 안된다. 교회는 세상보다는 더 교양이 있고 좀 더 나은 윤리와 도덕적인 곳인가. 아니다. 교회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을 주는 곳이다. 세상에서 맛볼수 없는 것을 맛보고, 세상에서 볼수 없는 것을 보는 곳이 교회이다. 세상에서는 윤리와 도덕을 이야기하지만 교회는 생명을 다루는 곳이고 죄사함을 주는 곳이고 구원을 주는 곳이기에 세상과는 전혀 다른 곳이다.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는 세리이다. 세무직원인 세리는 민족적으로 지탄받고 욕을 먹는 직업이었다. 일제시대의 일본의 앞잡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바리새인들이 기도할때 자기들은 세리같이 죄를 짓지 않았다고 기도했다. 그러한 세리 마태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감을 통해 성경을 기록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과 아브라함의 족보라고 되어있다. 그런데 다윗의 이름이 아브라함보다 먼저 나온다. 성경은 성령님의 의도적인 기록이다. 성령님의 감동으로 기록된것이다.

마태복음 1장에 하나님의 비밀,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이 등장한다. 1장은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과 아브라함의 계보로 태어난 것을 말한다. 아브라함이 조상인데 왜 다윗의 이름이 먼저 나오는가. 왜 다윗을 강조하는가. 마태복음은 왕의 복음이라고 부른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은 다윗이다. 사울은 폐위되었기에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히브리어로 다윗을 말하는 '다비드'는 아라비아 숫자로 464이다. 그러면 14가 된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가 14대이고, 다윗으로 부터 바빌론에 끌려갈때까지 14대이고, 바빌론에 끌려갈때 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 14대이다. 족보를 보면 '다윗다윗다윗'이라는 말이다. 마태복음 자체가 '왕왕왕'이라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왕의 족보 혈통을 타고 오신다는 말이다. 마가복음은 종의 복음, 누가복음은 인자의 복음, 요한복음은 독수리 복음이라는 별명을 붙힌다.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시다는 것을 기록했다. 왕앞에 안되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왕이시다. 죽은자도 살리신다.

요셉의 꿈과 예수 그리스도

창세기에서 요셉의 꿈을 자세히 보라.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구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리스도로 풀어야 한다.

요셉이 꿈을 꾸었는데 요셉이 묶은 단이 우뚝 일어서고, 형들의 단이 요셉의 단을 둘러서서 절을 했다. 원어를 보면 요셉의 단이 일어선다는 것은 스스로 일어나는 것이고, 형들의 단은 수동적으로 일어났다. 일어난 이유는 형들의 단들이 요셉의 단에게 절을 한다. 곡식이 짤려 단이 되었다는 것은 죽은 것이다. 예수님의 비유로 말씀하신 곡식이 있다. 씨를 부리는 비유이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곡식은 사람을 가르킨다. 알곡도 가라지도 있다. 요셉의 꿈에서 본 곡식단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볼수있는가. 요셉을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보는 것이다. 성경에 말을 해야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것이 아니다. 신학교에 귀가 따갑게 들은 것은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고 그림자이고 예표이고 오실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성경의 요셉 이야기를 읽으면서, 요셉은 고난을 참고 억울한 일을 견디고 인내심을 강해서 그리고 꿈과 비전을 놓지지 않아서 성공신화를 이룬 케이스이라고 말한다면 말이 되는 것 같다. 굉장히 매력이 있는 이야기 임이 틀립없다. 그런데 성경이 그런 경영학적이고 경제적으로 성공한 요셉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세상에는 성경보다 더 좋은 책이 많다. 성경은 땅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늘의 이야기이다. 육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영의 이야기이다. 구원의 이야기이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께 돌아가지 않으면 성경이 다 육신의 이야기로 들린다고 마태복음 15장에 하나님을 헛되게 섬기게 도니다고 예수님이 가르치신다. 성경을 가르치는 자가 육신으로 설명했기에 듣고 배운자도 육신적으로 이해를 하고 있어서 하나님을 헛되게 섬기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라. 성경의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나라의 이야기이고 영의 메세지이다. 육신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요셉이라면 곡신단은 사람을 말한다. 요셉을 말한다. 짤려진 곡식단은 죽은 것이다. 형제들도 다 짤렸다. 그런데 요셉의 곡신단대문에 일어났다. 스스로가 아니라 피동적으로 일어났다. 성경은 일점일획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변질되어 지거나 바뀔것이 없다. 한 단어도 성경은 우연이 없다.

지난 주일 부활주일이 지나갔다. 예수님은 짤리셨다. 그래서 죽음을 맞이하셨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드는 살아나시고 부활하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시고 그때부터 하나님은 카운트다운에 들어가셨다. 나로호 발사는 실패하지만 하나님은 일체 실수가 없으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자 부활을 카운트다운하시고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살아계셔서 지금도 여기 계신다. 요셉의 곡식단이 일어난 것은, 짤렸지만 일어난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고 있다. 그러니 그리스도로 돌아가야 수건이 벗겨진다.

형제들의 곡신단은 스스로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 말의 뜻은 우리들은 스스로 살아날수 없다.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안에 붙어있는 자와 속한 자는 다 살아나게 될 것이다. 예수님때문에 살아나는 것이다. 형제들의 곡식단은 요셉의 단 때문에 절을 하기 위해 일어났다.

하나님의 말씀의 영적인 의미를 잘 깨닫을때 영의 눈이 열리고 영의 귀가 밝아진다. 요셉의 꿈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요셉이 예수가 아니라 모형이다. 모형은 주인공이 오기전까지 보여주고 알려주는 연기를 하다가 실체가 오면 사라진다.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셉의 단이 일어난 것과 형제단이 일어난것이 부활이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가 다 부활하게 된다. 우리는 스스로 살아날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아나게 된다.

부활한 예수님이 엠마오로 가는 절망하는 제자들에게 성경을 풀어주시면서 심리학과 경영학과 철학으로 성경을 푸셨겠는가. 예를 들면 요셉의 곡식에 대하여 이럴 것이라고 자세히 풀어주셨다. 성경을 풀어주는 원리와 뜻을 잘 따라야 하는데 그리스도께 돌아가면 너의 눈에 수건이 풀어지겠다는 말은, 그리스도로 풀어야 성경이 풀린다는 말이다. 그리스도가 아니라 심리 경영 경제 정치 도덕 윤리 육신적으로 풀면 달콤하고 재미는 있겠지만 복음을 놓치게 될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의 복음을 주실때 어렵게 주셨겠는가. 쉽게 주셨다. 예수이름의 기업은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을 주는 것이다. 정치가 줄수 없고, 경제가 다룰수 없고, 심리가 손댈수 없고, 사회학이 만질수 없는 죄의 문제와 영혼의 문제를 다루고 천국을 주시는것이다. 이번 성회는 말씀 사경회이다. 성경에 대한 눈이 뚫려지는 행복과 축복이 있기 바란다.

위안을 찾지말고 진리를 찾아야 한다. 교회에 와서 진리를 찾아야 위안은 따라온다. 위로를 받으려고 말고 성령받아라. 예수님을 받아들여라. 복을 구하려 말고 북의 근원이신 주님을 구해야 한다. 찬송에 매료되지 말고 찬송받으시는 예수님께 매료되어야 한다. 예배에 빠지지말고 예배받으시는 하나님께 빠져야 한다. 기도에 매혹되지말고 기도받으시는 주님께 매혹되어야 한다. 그냥 기도를 오래한다고 좋은 기도가 아니라 기도받으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기도를 자기의 독백으로 한다면 불행하다. 찬송을 하는데 주님과 상관없는 찬송을 한다면 노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생명과 평안과 안전한 구원을 주시는 놀라운 은혜가 있다. 우리는 주님의 일을 한다고 미친듯이 일을 할수가 있다. 성경에도 마르다가 미친듯이 일을 하다가 동생 마리아에게 성질이 나서 주님께 불평을 했다. 주님의 일에 미쳐서 그 일을 맡기신 주님을 놓쳐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말씀의 광명을 찾아야 한다. 말씀의 영맥을 찾아야 한다. 성경 구석구석에 예수 그리스도가 등장할때 여기에도 있었구나 저기도 있었구나를 발견해야 한다. 그러니 아브라함이 있던 시대에도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하셨고 보여주셨음을 발견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다. 천하가 없어지기 전에 변함이 없다. 성경은 사랑의 이야기나 육신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요셉에 대한 내용을 풀때 아버지가 한 아들을 편애해서 형제들이 미워하게 되고, 부모가 편파적으로 사랑하면 안되고 자녀들을 골고루 사랑해야 한다고 푼다면 성경이 교육학인가.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주님의 복음을 놓치고 살았다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한다. 잃었던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라. 성경에 대한 매력을 가지고 유심히 들여다 보아야 한다.

아브라함의 잃어버린 60년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하란을 떠날때 75세라고 나온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아브라함을 낳을때 70세이라고 했다. 그러니 나이차이는 70세이다. 데라는 205세에 하란에서 죽었다. 사도행전 7:4에 스데반의 설교가 나오는데 아브라함이 하란에 살다가 아버지가 죽어 하란을 떠났다고 되어 있다. 데라와 아브라함과의 나이차이가 70세이라고 한다면 하란을 떠날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135세이다. 그런데 성경에는 75세라고 나온다. 그렇다면 60년이라고 하는 세월이 사라졌다.

사사기서에 보면 사사들의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그런데 열왕기상 6:1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지 480년되던 해에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런데 출애굽으로 부터 자세히 계산하고 맞추면 591년이라는 시간이 나온다. 그런데 성경에는 480년이라고 나와 111년이 사라졌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산 것이 사사시대이다. 자세히 보면 어느나라에 예속되고 그들을 섬기고 노예생활을 했던 시간이 111년이었다. 그 시간이 빠져있다.

실미도 영화를 보았을 것이다. 사형수를 풀어주고 대신 실미도로 보내 훈련을 시킨다. 법적으로는 사형이고 동사무소에 그 사람은 죽었다고 나오지만 실제로는 살았다. 하지만 살았으나 죽은 것이다. 아무리 공로를 세워도 이름이 안나타난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하고 훌륭한 일을 해도 사라진 사람들이다.

아브라함의 60년은 어디에 갔는가. 아브라함은 하란에서 가족들과 잘먹고 잘살았을 것이다. 그때의 일에 대해 성경에 전혀 기록이 없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시간이다. 하나님이 알아주시지 않는 시간이다. 사사시대에는 이방나라에 속국이 되어 노예생활을 한 세월을 빼 버렸다. 아브라함의 60년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하나님과 상관없는 세월이었다. 그런 시간은 지워버리고 없애버린다.

여러분들은 이정도면 예수님을 잘믿고 직분생활 잘했다고 생각하는가. 아브라함은 60년을 잃어 버렸다. 없어졌다. 성경은 실수가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쓴 책이다. 그래서 60년을 뺀 것은 의도적일 것이다. 성경은 구원과 예수 그리스도와 영의 비밀과 관련없는 것은 기록을 안한다. 예수님의 족보를 보아도 형제들이 29명이 되는데도 14로 짜른 것은 다윗을 강조한것이다. 숫자를 말해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성경은 바로 다윗 왕을 강조하고 예수는 왕이시고 하나님이심을 강조한 것이다. 온 인류의 생명과 존재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구원해주시는 왕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책이 마태복음이다.

마태는 세리의 생활을 하며 인생의 밑바닥을 살았던 더러운 자신도 불러주셔서 사용하신 은혜가 감사했다. 그래서 마태복음 첫 글자부터 다윗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순서를 바꾸어 놓았다. 마태가 다윗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한 것이다.

우리는 마태복음 1장 1절부터 왕되신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성경속에 너무나 많은 비밀과 하나님의 나라가 담겨있다. 내 나이가 몇인데 하나님이 유효하게 여기시는 세월은 과연 몇년일까 계산해 보기 바란다.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세월이 얼마나 될까. 아브라함도 60년을 지웠다. 실미도에 간 사람은 아무리 수고해도 훈장이 없다. 이름없는 사람의 수고이고 죽음이다. 주님이 기억하지 못하시고 불법을 행하는 자는 떠나라고 하신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헛수고일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속에 나를 발견해야 한다. 환경을 문제삼지 말고 내자신을 문제삼아야 한다. 내 생각을 문제삼아야 한다. 내 신앙생활을 좀 더 문제삼고 하나님앞에 서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아브라함을 통해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마태복음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해 세상의 어떤 기업의 이름이 아니라, 세상의 영광과 출세와 성공을 약속하는 기업이 아니라, 저 사망의 권세에서 우리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기업이고, 구원의 기업이고, 영혼을 살리는 기업이다. 다른 어던 이름으로도 안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으로는 될것이다. 너무 감사한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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