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위기 손영진 사모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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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ㆍ2014-01-09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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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에게 흐르는 눈물은 그리스도인들이 닦아 주어야 합니다. 지난 20년동안 한인이민교회 사모로 헌신했으며, 30년동안 찬양사역을 해 온 손영진 사모의 투병소식이 새해 전해졌습니다.
1월 8일 뉴욕충신교회에서 열린 RCA 뉴욕과 뉴저지 연합 신년하례에서 피아노 반주를 부탁받은 손영진 사모가 "안보이는데..."하는 혼자말을 기자는 들을수 있었습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인지 곧 밝혀졌습니다. 김종국 목사(새언약교회)는 손영진 사모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최근 교단에 들어온 뉴저지 할렐루야교회 정철웅 목사의 부인인 손영진 사모가 대상포진으로 오른쪽 눈에 실명위기에 있다는 것.
▲한인이민교회 사모이자 찬양사역자인 손영진 사모
김종국 목사는 1년전에 개척한 개척교회 사모의 어려움을 소개하고 돕자고 나섰습니다. 그 방법은 지난해 찬양사역 30주년을 맞이한 손영진 사모가 그동안 낸 찬양음반에서 정선한 찬양곡을 3개의 CD에 담은 30주년 콜렉션 CD「하나님의 시간」을 구입하는 것. 가격은 30불입니다.
김종국 목사는 현재 각막에 거의 덮인 대상포진은 미국에서는 치료가 힘들고 한국에서만 치료가 가능한 형편이라 손영진 사모가 1월말 치료차 한국에 들어가는데 30주년 CD를 구입하여 돕자는 것. 그것이 모든 치료비를 대신할수 없지만 기도와 정성들이 어려움을 겪는 당사자들에게는 큰 위로가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CD 구입은 체크에 구입할 CD 갯수에 맞는 가격과 'HIM MINISTRY'이라고 쓴 후 "'HIM MINISTRY, 403 Shawnee Indian Ct. Suwanee. GA30024"으로 보내면 됩니다. CD 우송비는 무료입니다. younggospel@gmail.com 으로 손영진 사모에게 위로와 격려의 이메일을 보낼수 있습니다.
손영진 사모는 한인이민교회의 사모입니다. 1983년 복음성가경연대회로 데뷔하고, 1984년 CCC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초청가수로 갔다가 의전담당이던 정철웅 목사와 처음 만났습니다. 정 목사의 적극적인 관심으로 1986년에 결혼하고 1993년 남편을 따라 미국에 온 후 미국에서도 계속 찬양사역을 해 왔습니다.
▲30주년 콜렉션 CD「하나님의 시간」
다음은 아멘넷과 손영진 사모와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어떻게 찬양을 시각하게 되었는가?
2013년은 찬양을 시작한지 30주년이었다. 1983년에 제2회 극동방송 복음성가경연대회에 참석해서 은상을 받았다. 대회에서 출전한 곡은 김석균 전도사가 작곡한 "어디서 들리는가"였다. 강릉에서 살고 있었는데, 서울에 있는 오빠가 강릉에 있는 학교를 다니면서 우리 교회에 출석한 것이다. 제가 매일 교회에서 기타치고 노래하는 것을 보고 복음성가 경연대회에 나가라고 추천했다. 그래서 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어릴때 부터 가수가 되고 싶은 것이 꿈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찬양을 통해 만나주셨다. 모태신앙이었지만 하나님을 못만났는데, 복음성가대회 예선에 같이 나온 양남규 시각장애인의 찬양을 듣고 그 자리에서 바뀌어졌다. 그가 "괴로울때 주님의 얼굴보라"라는 찬양을 하는데 두가지를 알게 하셨다. 음성이라고 말할수는 없고 깨닫아 지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시는구나', 그리고 '내 모습이 어떻하던지 나를 기억하고 계시는구나' 하는 두가지였다.
그 분의 찬양을 들으면서 많은 눈물이 나면서 저 분은 눈도 안보이고 불편한데 나보다 많은 것을 가진 것 처럼 느껴졌다. 그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는데 내 안에는 예수님이 안계셨다. 그래서 그분에 비해 나는 많은 것을 가진 것 같지만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 그때 깨닫아 졌다. 그 자리에서 어릴때부터 교회다니면서 들은 것은 있어서 "하나님, 평생을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될때까지 하나님만 찬양하겠다"고 기도했다. 그리고 찬양을 시작했다.
강릉에 있다가 서울로 올라와서 자취를 하면서 본격적인 찬양활동을 시작했다. 복음성가 경연대회를 주최한 극동방송에서 교회들을 연결시켜 주었다. 당시 한국교회 분위기가 개인적으로 부르기에는 힘이 들었다. 20대초의 여자가 혼자 기타들고 노래하는 것이 교회의 어른들 눈에는 안좋게 보여 무지 많이 교회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83년 극동방송 복음성가 경연대회 은상 수상이후, 84년부터 2년간 극동방송에서 '찬송교실'을 진행했다. 91년 월트디즈니의 만화영화 '인어공주'의 주인공 역을 노래했으며, 92년 한국 복음성가 대상을 수상했다. 94년 국제기아대책기구 홍보대사로 해외 순회 콘서트를 인도했으며, 세계를 돌며 한해 평균 50개 교회에서 찬양 및 집회를 인도했다. 2007년에는 다일공동체 천사병원 홍보대사로 활동했으며, 최근에는 황국명 목사와 최명자 사모와 함께 삼인삼색 콘서트를 인도하고 있다.
30년동안 찬양음반 몇 개를 냈는가? 이동원 목사는 "한국의 복음성가를 이끌어 가는 세 명의 여자 복음성가 가수중의 한 사람입니다. 깊은 영성에서 나오는 찬양, 맑고도 청하하게 전달되는 찬양 가사, 늘 듣고 싶은 목소리입니다"라고 손영진 사모의 찬양에 대해 평가하기도 했다.
지난 30년동안 앨범 9개를 냈다. 1988년 1집「옥합을 깨뜨려」, 1990년 2집「주님은 나의 방패」, 1993년 3집 「찬송가 모음」, 1995년 4집「사랑하는 이들에게」, 1999년 5집「My favorite songs」, 2000년 베스트 콜렉션, 2002년 7집 「O GOD, USE ME」, 2010년 8집 「정결」, 2013년 30주년 기념 콜렉션 「하나님의 시간」 등이다.
30년 찬양사역을 한 것에 비해 음반이 많지 않는 편이다. 보통 30년정도 활동하면 15-20개 정도 음반을 낸다. 미국에서 목회를 하니 십년에 한 번 음반을 낸적도 있고 많이 없다. 최근에 들어보니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은 1집이다. 가장 촌스럽고 부족할때인데 마음은 가장 순수하고 깨끗할때이다. 시간이 지나면 세련되어지고 최고의 시설과 연주자들이 음반작업에 참가했지만, 저에게 1집이 가장 은혜가 된다. "주님을 예배하는 자", "옥합을 깨뜨려", "상심한 내 마음속에서", "정결"등이 애착을 가지는 곡들이다.
이번 30주년 기념 콜렉션 「하나님의 시간」은 아들이 많이 도와주어서 낼수있었다. 83년부터 활동한 1-8집 찬양 CD를 다 가지고 다닐수는 없으니 하나로 묶었다. 1-8집에서 좋은 곡만 선곡해서 CD 하나에 14곡씩 넣어 3개를 하나의 묶음으로 준비했다. 아들이 어머니 찬양사역 30주년이라고 사진도 찍고 CD 표지를 디자인하고 내게 된 것이다.
현재 눈의 상태는 어떤가?
대상포진으로 3년반 전부터 눈에 문제가 생겼다. 2009년 전후로 친정 아버지,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도 돌아가셨기에 한국을 많이 왔다갔다 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루는데 친구들이 저의 눈이 이상하다고 했다. 긴장해서 잘몰랐는데 나도 이상했다. 잘 보이지가 않았다. 그 전에 대상포진이 몸으로 온 것은 알았지만 눈으로 온 것을 몰랐던 것이다.
1차 치료를 받으면서 조금 회복했는데 미국에 들어와서 쉽지 않는 이민목회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면역이 떨어지고 악화가 되었다. 지난해 한국에 나갔더니 이제는 방법이 없다고 할 정도였다. 오른쪽 눈은 거의 실명상태이고, 왼쪽은 정상이다. 그러다 보니 한쪽 눈이 혹사를 당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는 것이 각막이식 수술인데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치료 비용은 어떻게 되는가?
많은 사람들은 앞에서 찬양하면 부유한줄 안다. 사실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 처음 치료를 받을때 보험이 없기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비용이 들었다. 1월 23일 뉴저지를 떠나 LA를 거쳐 한국에 들어간다. 한국에서 6개월 이상 장기간 머물러야 하는데 작은 원룸이라도 얻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에서 황국명 목사와 최명자 사모등 3명이 다시 모여 집회도 한다. 많이 초청을 해 달라. 한국에서 오래있고 싶지 않다. 교회도 그렇고 사랑하는 딸도 6월이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데, 7월말로 돌아오는 비행기 표를 예약했지만 가능하면 빨리오고 싶다. 각막이식을 받기위해서 기다려야 하는데 1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수술과 체류기간과 비용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지난 30년을 돌아보면 감사할 것도 많겠고 보람있었던 것도 많을 것 같다.
남편과 이민 목회를 한지 20년이 되었다. 20년간 목회하면서 우리 부부는 한번도 제대로 쉰 적이 없다. 지난 20년 이민목회가 쉽지 않았다. 남편의 너무 늙어 버린 모습이 안타깝다. 전에는 목회하면서 무조건 뛰기만 했다. 몇번 어려움을 겪으면서 천천히 담담하게 걷자고 했다.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그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자고 했다.
찬양집회를 인도하면서 시설 좋은 곳에서 폼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도 없는 교회에 가서 찬양집회를 한 적이 많았다. 하나님이 저를 한국교회의 찬양 1세대로 부르신 것 처럼, 미국에서도 찬양 1세대의 역할을 하게 하신 것 같다. 다음 세대를 위해 땅을 파고 길을 내는 것이 1세대들의 역할이고, 박수를 받지는 못한다. 하나님께서 찬양 1세대로 부르신 것에 감사드린다.
지난 30년동안 하나님께 감사한 것이 너무 많다. 특히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사람이 CD를 통해 제가 부르는 찬양을 듣고 하나님 만나고 회심해서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때, 아픈 사람들이 제가 부르는 찬양을 듣고 치유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때, 요즘 힘이 없었는데 찬양을 듣고 힘내서 열심히 살고있다는 이야기를 들을때 감사드린다.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찬양을 통해 저를 위로하시고 저의 눈물을 닦아 주셨던 것 처럼, 저사람들을 저렇게 만져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때 가장 감사하고 보람있었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30주년 콜렉션 CD「하나님의 시간」
▲30주년 콜렉션 CD「하나님의 시간」- 사진을 클릭하면 큰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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