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성 목사 "교회해부학 #1-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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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ㆍ2014-03-24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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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장로교회(이승한 목사)는 3월 21일(금)부터 3일간 "하나님께로 돌아가자"라는 주제로 춘계말씀사경회를 열었다. 강사는 정대성 목사(콜로라도 뉴라이프선교교회). 정 목사는 성회 3일간 '교회해부학'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진단-치료-회복이라는 3단계의 말씀을 전했다. 정 목사가 해부를 위해 사용한 도구는 구약 아모스의 말씀이다.
정대성 목사는 위트있게 말씀을 진행했지만, 그 내용은 단호했다. 왜 '부흥회'가 아니라 '말씀사경회'인지 분명하게 나타났다. 의사가 환자를 진단했는데 병이 발견되었다. 정대성 의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환자를 위로하기 보다는, 병에 걸릴수 밖에 없는 생활 습관을 담대히 지적하고 그것을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날 정대성 목사는 아모스 3:9-15절을 본문으로 "교회해부학 #1-진단"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했다. 정 목사는 아모스가 이스라엘에게 던졌던 진단과 경고를 이 시대에도 똑 같이 적용했다. 이 시대의 아모스가 되어 질문들을 던졌다. "우리의 종교성 안에 하나님이 계신가, 우리의 예배안에 하나님이 계신가", "만약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의 교회속에 들어온다면 무엇이라고 말할것인가", "우리 안에 무엇이 담겨있는지 보라. 과연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신가."
▲뉴욕장로교회 이승한 목사
▲강사 정대성 목사
다음은 진단 내용이다.
아모서서가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오늘날과 굉장히 문화적 공유점을 형성하고 있다. 앗수르 같은 주변 강대국들이 내부적인 문제로 이스라엘을 통제하지 못했고 그때 이스라엘이 엄청난 부흥을 경험했다. 특별히 물질적인 부흥과 함께 종교성의 부흥이 일어났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영적이라고 생각했다.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많은 순례성지와 무수히 많은 성소들이 생겼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종교성은 매우 풍성하여 매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같았다. 형식도 그랬다. 종교성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안계신다. 미국 시사잡지는 내세를 믿는 미국인이 80%이며, 비기독교인중 내세를 믿는 사람이 74%이라고 보도했다. 이 시대는 당시 아모스 시대와 같이 종교적이고 영성적인 것에 대한 엄청난 선호가 생겼는데 우리가 진짜 던져야 되는 질문은 "하나님이 계신가"이다. 우리의 영성안에 하나님이 계신가, 우리의 종교성 안에 하나님이 계신가, 우리의 예배안에 하나님이 계신가, 우리의 찬양안에 하나님이 계신가.
아모스서를 보면 당시 사회의 특징은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자의 간격이 넓어졌으며, 엄청난 종교적인 타락이 일어났다. 종교성은 심화되었는데 삶의 윤리는 점점 헤이해져 갔다. 하나님께 예배를 한다고 하는데 종교성은 있는데 삶은 따라가지 못한다. 이런 시대가 과연 아모스 시대라고만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가 바로 그 시대가 아닌가.
말씀을 공부하는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을 기준으로 나를 바라보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를 바라보고, 하나님 말씀을 기준으로 한번 내가 속한 교회를 바라보자. 지금까지 쓰고있던 모든 안경을 벗고 성경의 안경을 쓰고 성경은 우리 교회와 우리 인생에 어떤 말씀을 주시는가. 말씀을 통해 여러분 가정을 향한, 개인을 향한,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시대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우리가 되기를 축복한다.
본문으로 들어가 보자. 아모스는 마치 의사가 병을 진단하듯이 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가 아주 세밀하게 실증하고 있다.
9. 아스돗의 궁궐들과 애굽 땅의 궁궐들에 선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사마리아 산들에 모여 그 성 중에서 얼마나 큰 요란함과 학대함이 있나 보라 하라
왜 아모스는 아스돗과 애굽 땅의 궁궐들을 불러모으고 있을까. 이 표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들에게 이스라엘 안에 얼마나 요란함과 학대함이 있는지 보라고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요란함이 무엇인가. 15절에 겨울 궁과 여름 궁이 나온다. 당시에 있는 자의 호화로움과 사치가 극에 달했다. 여름과 겨울에 거하는 궁이 따로 있어을 정도였다. 6장에 가면 그들이 얼마나 호화롭게 사는지 알수가 있다. 당시 사회의 극도의 사치함을 오만함을 보게된다. 당시 호화로운 궁전과 사치스러운 것으로 말하자면 아스돗과 애굽의 궁궐들도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것이라는 것이다. 당시 아스돗과 애굽의 궁궐은 호화로움과 사치로움의 극치이다. 그런데 그들이 보아도 놀랄일들이 이스라엘 땅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10. 자기 궁궐에서 포학과 겁탈을 쌓는 자들이 바른 일 행할 줄을 모르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에서 어떤 학대가 있었는가. 궁궐에서 포학과 겁탈을 일삼았다. 그것을 아스돗과 애굽에서 와서 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너희도 놀랄것이라는 것이다. 오늘 이 말씀을 근거해서 이렇게 묻고 싶다. 만약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의 삶속에 들어온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만약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들어온다면 무엇이라고 말할것인가. 혹이라도 우리의 포악함에 놀라지 않을까. 우리가 세상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는 쉽지만 과연 우리의 윤리는 삶의 현실속에서 교회안에서 세상에 비하여 낫다고 생각하는가. 혹시 그들이 들어와서 놀라지는 않을까.
오늘 3장에서 마음에 받아야 하는 가장 심각한 경고는 세상보다 거룩하다고 말하는 선민의 삶속을 들여다 보니 오히려 애굽과 아스돗이 놀랄 정도로 포악과 겁탈이 이루어 지고 있었다는 놀라운 경고의 말씀이다. 우리 교회에 들어와서 보았더니 과연 우리안에 존경과 예절과 서로를 향하는 마음의 배려함이 있는가. 아니면 '믿는 사람들이 더 지독하네' 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1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목자가 사자 입에서 양의 두 다리나 귀 조각을 건져냄과 같이 사마리아에서 침상 모서리에나 걸상의 방석에 앉은 이스라엘 자손도 건져냄을 입으리라
이스라엘이 제사장 된 나라로 선택하신 것은 그들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그들은 자신들을 왜 하나님이 불렀는가를 잊어버렸다. 하나님이 그들은 불러주셨다는 선민의식을 가지고 다른 민족을 비하했다. 제사장의 나라로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그 사명를 잊어버리고 자기끼리만 잘먹고 잘살고 포악하고 사치의 극치를 이루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게 된다.
우리들은 하나님이 심판주라는 것만 제대로 이해해도 우리의 삶을 잘살수 있다. 오늘 우리의 삶을 보시고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실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만 생각해도 우리의 삶이 합당해 질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오늘 아모스를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아야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안들어 이스라엘이 망했다는 차원이 아니다. 아모스는 오늘 이스라엘을 향하여 말씀하는데 유대왕을 먼저 등장시킨다. 이것은 이스라엘만을 위한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유대도 들어야 하는 말씀이고 우리들도 들어야 할 말씀인것을 믿는다.
먼저 가장 기억해야 할것은 우리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이다. 성도는 죄로부터 면역된자들이 아니다. 예수만 믿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요.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는 아직도 오늘 삶의 현실속에서 죄와 갈등하도록 되어 있다. 바울이 사역의 말년에 쓴 디모데서에서 "나는 죄인중의 괴수이다"라고 했다. 로마서 7장에서 내안에 성령의 법과 육신의 법이 늘 싸우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죄로부터 면역된 존재들이 아니다.
우리가 스스로 대단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다면 우리를 큰 오류로 이끌어 갈것이다. 스스로 정당화 시키려 생각한다면 나의 호화로운 생활과 압제함을 정당화하며 살아갈수 있다. 핑계없는 무덤은 없다. 아모스는 우리를 향하여 선포하고 있다. 너 자신을 알라. 너는 이스라엘과 같이 죄에 대한 유혹에 쉽게 빠질수 있고, 자신의 생각에 너무 쉽게 젖고 진리임을 믿고 살아갈수 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아모스는 우리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예수님을 보라. 사람을 보지마라." 하나님은 제가 필요해서 부르신것이 아니라 저에 연약함을 아시고 부르신것이다. 우리는 단지 들림받는 하나의 그릇이다. 금그릇인가 나무그릇인가 어떤 그릇이 중요한것이 아니다. 금그릇안에 똥이 담겨있으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지금 우리안에 과연 누가 담겨져 있는가. 오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그 질문을 하신다. "너희안에 무엇이 담겨있는지 보라. 너희안에 하나님이 계신가."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다. 여러분을 성전삼아서 하나님이 우리안에 계신다. 아모스는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깨어지라고 말하고 있다. 이 싯점에서 깨지라. 하나가 되어서 깨지는 것을 무서워 하지말라. 하나님은 우리를 놀랍게 하시는 분이다. 낮아지는 자를 높여주는 분, 목숨을 버리는 자를 살게하시는 분이시다.
우리의 가치를 보라. 우리는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뉴장은 그렇게 대단한 교회가 아니다. 다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인생의 주인이 되고 교회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이제부터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앞에 여러분 자신을 내려놓고, 여러분의 눈이 십자가를 향할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것이다. 그러나 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 다시 아모스 시대 이스라엘의 사람들이 살아야 했던 삶을 살아야 할지 모른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정대성 목사는 위트있게 말씀을 진행했지만, 그 내용은 단호했다. 왜 '부흥회'가 아니라 '말씀사경회'인지 분명하게 나타났다. 의사가 환자를 진단했는데 병이 발견되었다. 정대성 의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환자를 위로하기 보다는, 병에 걸릴수 밖에 없는 생활 습관을 담대히 지적하고 그것을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날 정대성 목사는 아모스 3:9-15절을 본문으로 "교회해부학 #1-진단"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했다. 정 목사는 아모스가 이스라엘에게 던졌던 진단과 경고를 이 시대에도 똑 같이 적용했다. 이 시대의 아모스가 되어 질문들을 던졌다. "우리의 종교성 안에 하나님이 계신가, 우리의 예배안에 하나님이 계신가", "만약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의 교회속에 들어온다면 무엇이라고 말할것인가", "우리 안에 무엇이 담겨있는지 보라. 과연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신가."
▲뉴욕장로교회 이승한 목사
▲강사 정대성 목사
다음은 진단 내용이다.
아모서서가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오늘날과 굉장히 문화적 공유점을 형성하고 있다. 앗수르 같은 주변 강대국들이 내부적인 문제로 이스라엘을 통제하지 못했고 그때 이스라엘이 엄청난 부흥을 경험했다. 특별히 물질적인 부흥과 함께 종교성의 부흥이 일어났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영적이라고 생각했다.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많은 순례성지와 무수히 많은 성소들이 생겼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종교성은 매우 풍성하여 매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같았다. 형식도 그랬다. 종교성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안계신다. 미국 시사잡지는 내세를 믿는 미국인이 80%이며, 비기독교인중 내세를 믿는 사람이 74%이라고 보도했다. 이 시대는 당시 아모스 시대와 같이 종교적이고 영성적인 것에 대한 엄청난 선호가 생겼는데 우리가 진짜 던져야 되는 질문은 "하나님이 계신가"이다. 우리의 영성안에 하나님이 계신가, 우리의 종교성 안에 하나님이 계신가, 우리의 예배안에 하나님이 계신가, 우리의 찬양안에 하나님이 계신가.
아모스서를 보면 당시 사회의 특징은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자의 간격이 넓어졌으며, 엄청난 종교적인 타락이 일어났다. 종교성은 심화되었는데 삶의 윤리는 점점 헤이해져 갔다. 하나님께 예배를 한다고 하는데 종교성은 있는데 삶은 따라가지 못한다. 이런 시대가 과연 아모스 시대라고만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가 바로 그 시대가 아닌가.
말씀을 공부하는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을 기준으로 나를 바라보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를 바라보고, 하나님 말씀을 기준으로 한번 내가 속한 교회를 바라보자. 지금까지 쓰고있던 모든 안경을 벗고 성경의 안경을 쓰고 성경은 우리 교회와 우리 인생에 어떤 말씀을 주시는가. 말씀을 통해 여러분 가정을 향한, 개인을 향한,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시대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우리가 되기를 축복한다.
본문으로 들어가 보자. 아모스는 마치 의사가 병을 진단하듯이 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가 아주 세밀하게 실증하고 있다.
9. 아스돗의 궁궐들과 애굽 땅의 궁궐들에 선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사마리아 산들에 모여 그 성 중에서 얼마나 큰 요란함과 학대함이 있나 보라 하라
왜 아모스는 아스돗과 애굽 땅의 궁궐들을 불러모으고 있을까. 이 표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들에게 이스라엘 안에 얼마나 요란함과 학대함이 있는지 보라고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요란함이 무엇인가. 15절에 겨울 궁과 여름 궁이 나온다. 당시에 있는 자의 호화로움과 사치가 극에 달했다. 여름과 겨울에 거하는 궁이 따로 있어을 정도였다. 6장에 가면 그들이 얼마나 호화롭게 사는지 알수가 있다. 당시 사회의 극도의 사치함을 오만함을 보게된다. 당시 호화로운 궁전과 사치스러운 것으로 말하자면 아스돗과 애굽의 궁궐들도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것이라는 것이다. 당시 아스돗과 애굽의 궁궐은 호화로움과 사치로움의 극치이다. 그런데 그들이 보아도 놀랄일들이 이스라엘 땅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10. 자기 궁궐에서 포학과 겁탈을 쌓는 자들이 바른 일 행할 줄을 모르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에서 어떤 학대가 있었는가. 궁궐에서 포학과 겁탈을 일삼았다. 그것을 아스돗과 애굽에서 와서 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너희도 놀랄것이라는 것이다. 오늘 이 말씀을 근거해서 이렇게 묻고 싶다. 만약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의 삶속에 들어온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만약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들어온다면 무엇이라고 말할것인가. 혹이라도 우리의 포악함에 놀라지 않을까. 우리가 세상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는 쉽지만 과연 우리의 윤리는 삶의 현실속에서 교회안에서 세상에 비하여 낫다고 생각하는가. 혹시 그들이 들어와서 놀라지는 않을까.
오늘 3장에서 마음에 받아야 하는 가장 심각한 경고는 세상보다 거룩하다고 말하는 선민의 삶속을 들여다 보니 오히려 애굽과 아스돗이 놀랄 정도로 포악과 겁탈이 이루어 지고 있었다는 놀라운 경고의 말씀이다. 우리 교회에 들어와서 보았더니 과연 우리안에 존경과 예절과 서로를 향하는 마음의 배려함이 있는가. 아니면 '믿는 사람들이 더 지독하네' 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1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목자가 사자 입에서 양의 두 다리나 귀 조각을 건져냄과 같이 사마리아에서 침상 모서리에나 걸상의 방석에 앉은 이스라엘 자손도 건져냄을 입으리라
이스라엘이 제사장 된 나라로 선택하신 것은 그들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그들은 자신들을 왜 하나님이 불렀는가를 잊어버렸다. 하나님이 그들은 불러주셨다는 선민의식을 가지고 다른 민족을 비하했다. 제사장의 나라로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그 사명를 잊어버리고 자기끼리만 잘먹고 잘살고 포악하고 사치의 극치를 이루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게 된다.
우리들은 하나님이 심판주라는 것만 제대로 이해해도 우리의 삶을 잘살수 있다. 오늘 우리의 삶을 보시고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실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만 생각해도 우리의 삶이 합당해 질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오늘 아모스를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아야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안들어 이스라엘이 망했다는 차원이 아니다. 아모스는 오늘 이스라엘을 향하여 말씀하는데 유대왕을 먼저 등장시킨다. 이것은 이스라엘만을 위한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유대도 들어야 하는 말씀이고 우리들도 들어야 할 말씀인것을 믿는다.
먼저 가장 기억해야 할것은 우리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이다. 성도는 죄로부터 면역된자들이 아니다. 예수만 믿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요.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는 아직도 오늘 삶의 현실속에서 죄와 갈등하도록 되어 있다. 바울이 사역의 말년에 쓴 디모데서에서 "나는 죄인중의 괴수이다"라고 했다. 로마서 7장에서 내안에 성령의 법과 육신의 법이 늘 싸우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죄로부터 면역된 존재들이 아니다.
우리가 스스로 대단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다면 우리를 큰 오류로 이끌어 갈것이다. 스스로 정당화 시키려 생각한다면 나의 호화로운 생활과 압제함을 정당화하며 살아갈수 있다. 핑계없는 무덤은 없다. 아모스는 우리를 향하여 선포하고 있다. 너 자신을 알라. 너는 이스라엘과 같이 죄에 대한 유혹에 쉽게 빠질수 있고, 자신의 생각에 너무 쉽게 젖고 진리임을 믿고 살아갈수 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아모스는 우리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예수님을 보라. 사람을 보지마라." 하나님은 제가 필요해서 부르신것이 아니라 저에 연약함을 아시고 부르신것이다. 우리는 단지 들림받는 하나의 그릇이다. 금그릇인가 나무그릇인가 어떤 그릇이 중요한것이 아니다. 금그릇안에 똥이 담겨있으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지금 우리안에 과연 누가 담겨져 있는가. 오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그 질문을 하신다. "너희안에 무엇이 담겨있는지 보라. 너희안에 하나님이 계신가."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다. 여러분을 성전삼아서 하나님이 우리안에 계신다. 아모스는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깨어지라고 말하고 있다. 이 싯점에서 깨지라. 하나가 되어서 깨지는 것을 무서워 하지말라. 하나님은 우리를 놀랍게 하시는 분이다. 낮아지는 자를 높여주는 분, 목숨을 버리는 자를 살게하시는 분이시다.
우리의 가치를 보라. 우리는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뉴장은 그렇게 대단한 교회가 아니다. 다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인생의 주인이 되고 교회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이제부터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앞에 여러분 자신을 내려놓고, 여러분의 눈이 십자가를 향할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것이다. 그러나 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 다시 아모스 시대 이스라엘의 사람들이 살아야 했던 삶을 살아야 할지 모른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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