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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길 목사 "환난 중에 큰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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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ㆍ2014-07-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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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길 목사(남서울은혜교회 원로목사)가 뉴욕과 뉴저지에서 집회를 했다. 이번에는 고린도 후서 1:3-10을 본문으로 "환난 중에 큰 위로"이라는 제목의 7월 5일(토) 아름다운교회 집회에 전한 말씀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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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하는 홍정길 목사

세월호 사건은 한국 국민들에게 이보다 더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충격적이었고, 그 고통은 지금도 진행중에 있습니다. 왜 이런 고난이 계속 될까요. 세월호 사건이 나던 날, 4월 16일 저는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있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전원 구출되었다는 자막을 보았는데, 외국인들과의 모임이라 다음날이 되어서야 배가 뒤집히고 그 안에 사람들이 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그들이 구조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비극이 될 줄 상상도 못했습니다. 배가 침몰되면서 서서히 죽어가는 현장을 우리는 지켜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직도 비극은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날씨는 좋은 날과 나쁜 날이 교차됩니다. 우리 인생도 날씨처럼 기쁨과 슬픔이 교차됩니다. 이런 고난과 슬픔을 어찌 견뎌야 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신앙인이기 때문에 믿지 않는 사람과 다른 기초위에 서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말과 계시지 않는다는 말 사이에는 도무지 말이 섞일 수 없을 만큼 완전히 다릅니다. 논지가 같이 만나는 지점이 없습니다.

비가올때 비를 대처하는 능력이 사람따라 다른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은 이 고난속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고 어떻게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어 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본문의 사도 바울은 환난을 당하는 자신의 인생 가운데서도 환난을 당하는 다른 믿음의 사람들에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지 가르치고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이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라는 3절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우리가 환난때 만나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일까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십니다. 무슨 하나님이십니까. 아들까지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내어주신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아들까지 내어주셨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제가 성경을 볼 때마다 너무 좋아하지만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말씀이 있습니다. 모리아 산정의 사건입니다. 그곳은 아무리해도 저는 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면 상상이 안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십니다. 번제로 드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좀 얄미우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네가 사랑하는 독자인 이삭'이라고까지 확인시키시면서 이삭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것을 순종했습니다. 순종하기 위해서 순종할 수 없는 조건을 뒤로 제낍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얼마든지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가 많습니다. 내가 달라고 한 아들도 아니었고, 준다고 하셨지만 아내는 믿을 수 없어 웃기까지 했던 하나님이 주신 아들이었습니다. 이 아이를 통해서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채워주신다고 약속하셨는데, 만약 이 아이를 번제로 드리게 되면 하나님의 약속이 무너지므로 난 순종할 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하나님 입장까지 고려해서 합리적인 이유를 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 순종은 그렇게 복잡하게 하지 않습니다. 논리적인 단계를 통해 설명되어 순종하는 진리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일을 뒤로하고 순종하기로 결심합니다. 순종할 적에 즉시 순종합니다. 순종은 언제나 하나님의 감동이 있을 때 즉시 해야지 연구한다면 순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내일가라 또는 모래가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신있게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납니다. 만약 사랑하는 아들을 떠나보낸다면 일각이라도 같이 있고 싶었을 겁니다. 조금이라도 연장하고 싶었을겁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기 위해서 논리적인 생각도 중지했을 뿐 아니라, 감정적인 골도 끊어버립니다. 우리가 미루다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순종하는 사람은 즉시 순종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그가 장작을 패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서필립 목사님은 이 장면을 이렇게 설교를 하셨습니다. "늙은 노족장 아브라함이 도끼로 장작을 내리칠 때마다 장작이 산산조각 났다. 그러나 죽을 자식을 눈 앞에 둔 그의 마음은 장작보다 더 많이 조각났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떠나기 전까지 아내와 의논하지 않습니다. 아내하고 의논하면 아들을 낳지 못해서 그토록 멸시를 받았던 사라가 받아들였을까요. 아마,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요. "나 죽이고 데려가세요." 저는 이럴 것 같습니다 "저 속없는 여자가 저러니 어떻합니까"하며 아내 탓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은 사흘 길입니다. 사흘 길을 걸어가게 하신 하나님을 볼 때마다 한국의 옛말이 생각납니다. '작심삼일.' 얼마나 많은 유혹과 상념이 있었을까요. 모리아 산정에 다 와서 하인들은 부릅니다. "내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예배를 지낸 다음 다시 올것이다." 나 같으면 하인들을 데려가서 단을 같이 만들고 장작을 쌓습니다. 사랑하는 이삭을 그 위에 눕혀 시퍼런 칼을 들어 이삭을 죽이려 했다면 노망이 들었다고 생각한 하인들이 양쪽에서 잡으면 이삭을 죽일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 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나야 드리려 했는데 저 무식한 종들이..." 이러면서 핑계를 댔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순종하는데 방해되는 것들을 하나하나 제거하면서 아들과 함께 산정으로 올라갑니다. 아들은 묻습니다. "다른 것은 다 있는데 왜 제물이 없습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준비하셨다고 답합니다. 아들을 묶습니다. 아들을 함껏 들어 올리면서 힘이 들었겠지만 자식을 죽여야 하는 애비의 마음보다는 무겁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을 향해 칼을 뽑습니다. 그 아들은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아버지에게 순종합니다. 순종이 순종을 낳는 이 놀라운 가정에 하나님은 축복하십니다. 참으로 복된 가정, 그래서 성경은 구약 성경에 가장 위대한 한 인생을 향한 축복을 선언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 이로라."

하나님 앞에 늘 목사로서 기도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내게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축복만 주신다면 오늘 이 시간에 내 목숨을 가져가도 좋습니다"라고 기도합니다. 우리 가정에 "홍순호 장로의 하나님, 홍정길 목사의 하나님, 우리 아이들의 하나님"이라는 신앙 터치만 있다면 우리 하나님 앞에 요구할 것이 없습니다.

자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

이제는 마지막 순종인 칼을 빼들어 아들의 심장을 찌르는 일만 남았습니다. 이 순종을 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했던 모든 순종은 무효가 되었겠지요. 순종할 때 끝까지 순종해야 합니다. 칼을 뽑아 심장을 내리치려합니다. 급한 것은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부르시며 천사를 통해 그 손을 붙잡으십니다. 렘브란트가 모리아산의 아브라함을 그렇게 그렸습니다. 허겁지겁하는 천사의 얼굴, 사랑하는 아들을 죽이려는 비장한 노족장의 얼굴, 그리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편안하게 있는 이삭의 모습 등 세가지 포인트가 강력하게 똑같이 눈에 들어 옵니다.

마지막 순간 우리 하나님은 이삭을 구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몇 천년 후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 십자가를 지고 갑니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죽는 것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결하시나 봅니다. 남의 아들 죽일 때에는 마지막에 구원의 손길을 펼치셨는데,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비명을 지릅니다. "아버지여,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거기서도 하나님께서 전능의 손을 펼치실 줄 알았는데 그 아들은 마침내 이렇게 외칩니다. "다 이루었다" 그리고 가시 면류관때문에 피가 범벅이 된 그 거룩한 얼굴이 심장을 향해서 욱하고 내려가더니 움직임이 없어집니다.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8장 56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이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왜 다윗이나 모세가 아닌 아브라함인가요. 그것은 자식을 죽일려고 한 아브라함만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십자가 고통에 내어 주시고 끝까지 가게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자비의 아버지이시며, 아버지는 자식을 향해서 긍율과 자비를 베풀고 용서합니다. 같은 죄를 짓고서도 또 용서 합니다. 이 분이 여러분이 믿는 아버지이시며, 내가 믿는 아버지 이십니다. 이 밤에 여러분이 용서를 구하시면 자비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너의 죄를 도말하였으니 너는 네게로 나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모든 위로의 하나님

하나님은 모든 위로, 어떤 처지, 어떤 경우,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위로하십니다. 저와 같이 사역했던 한 선교사님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40년 전쯤 이야기입니다. 그 분 자녀들은 집에서 가까운 교회에 나가고, 그 분만 우리교회에서 사역을 하셨습니다. 어느 주일날 잠을 자려는데 연락이 왔습니다. 그 전도사님 아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아이들만 다녔던 교회에서 여름 수양회를 갔는데 물에 들어갔다가 심장마비로...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 분을 위해 기도하는데 이런 기도가 나왔습니다. "이 가정을 위로하실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아들이 죽어보셨잖아요. 그 상심이 얼마나 큰지 이들을 위로할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했는데 부부가 방성대곡을 하며 울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로 일어나셨습니다.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나를 위해 베푸신 그 사랑의 위로로 일어나더라구요.

여러분, 우리가 당하는 환난과 고통은 우리로 하여금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나도록 합니다. 자세히 보면 환난 중에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을 보게 만듭니다. 어떤 자비보다 더 큰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를 만나게 됩니다. 환난당하는 그 때에 도무지 세상으로는 할 수 없는 위로로 반드시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환난은 우리로 하나님을 만나게 합니다.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책을 쓰신 안용준 목사님이라는 분이 제가 신학교를 다닐때 한국 교회사를 강의하셨는데 그 때 들었던 손양원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2천년 기독교 역사속에서 손양원 목사를 필적하는 목사를 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130년 짧은 우리의 기독교 역사였지만 하나님은 그 어른을 우리에게 주시고 허락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손 목사는 여순반란 사건으로 동인이와 동신 두 아들을 동시에 잃게 됩니다. 죽었다는 소식에 그냥 말없이 누우셨다고 합니다. 말없이 누워 간간이 신음소리만 흘러 나올 뿐 말을 안하시더랍니다. 그 때 김 전도사와 안 전도사님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안 목사댁 심방을 가야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망설였다고 합니다. 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난감했겠죠. 결국 심방을 가기로 결정하고 찾아가서 로마서 8장을 읽어 드렸는데 눈을 감고 누워계신 목사님은 그 말씀을 듣고 '아멘'을 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들의 주검을 눈으로 보신 후엔 '어찌 이런 일이'하시면서 우시더랍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따님이셨던 손동희 권사님이 눈물로 간증을 하며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당시 지리산 토벌대장인 송호림이란 사람이 오빠를 죽인 안재선을 잡아 와서 즉결 심판에 넘기려한다는 소식을 듣고 손 목사는 안재선을 구해 오라고 하셨답니다. 그리고 가족 전체의 반대를 무릅쓰고 양자를 삼겠다고 발표를 하셨답니다. 손동희 권사가 어떻게 저런 자를 오빠라고 부를 수 있느냐고 대들자, 안 목사는 "동희야, 안재선을 구한 것은 좋은 일이고 잘한 일이다. 그런데 안재선 때문에 죽은 학생의 숫자가 부지기수인데 그 아이를 밖으로 내어 보내면 맞아 죽지 않겠느냐. 우리가 살리기로 작정했으면 끝가지 가야 한다. 성경에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말라, 우상 앞에 절하지 말라고 해서 내가 일제시대에 목숨을 걸고 신사 참배를 반대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위해서 이다. 그리고 그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원수를 사랑하라고 명령하셨다. 같은 순종이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셨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처음에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말씀이 그의 마음속에 들어오자 그 말씀을 되새김 하면서 일어나서, 사랑하는 아들을 죽인 안재선을 양자로 삼는 그 놀라운 일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마흔 여덞의 생애를 찬란한 그리스도의 빛으로 살다 가신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손양원 목사님의 생애 속에 역사하셔서 그 고통 중에 가장 큰 위로로 모든 것을 뒤집어 놓으셨습니다.

안산동부교회 김영삼 장로님의 아들이 세월호 속에 갇혀서 하나님 나라에 갔습니다. 사건후 김영삼 장로는 이런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내 아들이 요나처럼 물속에서 다시 살아나도 좋고, 이 땅에 예수님 바로 믿고 가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이슬처럼 흘러가는 그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혼을 바라보고 무너져가는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마련하신 영원한 흔들리지 않는 도성을 바라보고 가는 것이야 말로 오늘 내게 주신 큰 위로이자 축복입니다."

아마 지금도 인터넷을 찾아보면 장로님의 신앙고백을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읽고 "아, 다르구나. 주님께서는 자식을 세월호 속에 묻어 놓고도 이런 엄청난 위로를 주시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위로의 하나님이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이 어쩌면 큰 고통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떤 환난 속에서도 우리의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진정한 위로와 복은 흘러갑니다

그 위로의 하나님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본문 4절을 보면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고통을 당해보지 않는 사람의 위로는 전혀 위로가 안됩니다. 제가 지금 세월호의 고통을 당한 가정을 향해서 하나님 믿고 위로받으시라고 하면 따귀를 맞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세월호 속에 있는 김영상 장로님의 위로는 큰 위로가 됩니다.

제가 복이 많은 목사입니다. 왜냐면 너무 좋은 성도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같이 했기 때문입니다. 그 분들 중 한분이 지금 우즈베키스탄에 선교사로 나가 있는 김영순 선교사입니다. 남편이 육군 대위였는데 연병장에서 돌다가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고 갔더니 이미 남편은 숨을 거둔 뒤였습니다. 심장마비 였습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일년 후 딸 승녕이를 성수대교 참사로 잃게 되었습니다. 사고 당일 아침, 새벽기도 때 김영순 집사와 승녕이가 같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날 9시쯤 아침을 먹으면서 TV에서 성수대교 사고 소식을 접했습니다. 사망자 명단에서 승녕이라는 이름을 보았습니다. 저는 혼자서 '동명이인이 있구나. 우리 승녕이는 아까 새벽기도에서 같이 기도해서 살았는가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학 졸업반인 승녕이는 교생실습차 강북의 어느 학교로 가던 중 그 버스가 성수대교에서 추락을 했던 겁니다. 새벽기도를 했던 승녕이 인줄 모르고 하루종일 볼일을 보고 집에 들어갔더니 승녕이가 사고를 당했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남편을 보낸 김영순 집사가 얼마나 슬퍼할까 걱정을 하고 갔는데 김 집사는 거기 모인 많은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있었습니다.

삼풍백화점 사고 후에는 많은 법적 소송이 끊이질 않았었죠. 하지만 성수대교 사건은 아무런 충돌이 없었음을 기억하시나요. 이 분이 피해자들의 가정들을 방문해서 위로를 하고 얼마나 많은 가정이 주님 앞으로 돌아왔는지 모릅니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은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그 비극속에서 김영순씨의 위로자이셨습니다. 그 확실한 위로는 그 위로로만 끝나지 않고 자기처럼 환난당하는 사람들을 위로케하는 놀라운 직책까지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 복의 특징은 하나님께로 내가 받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복을 주고 너로 복의 근원을 삼겠다'고 말씀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복을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어요. 진정한 축복은 그 다음입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복이 근원이 되어서 다른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예수믿는 축복의 특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와 명예를 축복으로 압니다.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받은 것들이 다른사람을 위하여 영광스럽게 쓰여질 때 그것이 진정한 축복입니다.

나는 돈 많은 사람을 부러워해 본 적이 없습니다. 워렌 버핏, 빌 게이츠를 부러워해 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그 사람들이 나를 부러워 할 리도 없겠지만 말입니다. 받는 것으로 끝난다면 그것은 저주입니다. 대한민국 재벌가들 중에 상속싸움을 안하는 집안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 때는 예수믿는 사람이나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나 동일했습니다. 참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어떤 재벌가의 부모님 추도식을 간 적이 있습니다. 오남매가 서로 눈을 맞추지 않더라구요. 박 터지게 싸우다가 같이 침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에게 귀한 것이 축복의 근원이 되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축복으로 전달 되는 것이 복된 일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당했던 환난들을 정리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는 죽어라고 '이것만 해결해 주신다면' 이라고 기도하다가 해결되면 감사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된 것 처럼 말입니다. 정리 하십시요. 나처럼 환난을 당한 사람들을 찾아가십시요. 놀라운 위로가 됩니다. 그것이 통로가 되어서 참으로 축복의 원천이신 주님 앞으로 그 영혼을 인도하는 놀라운 축복의 통로가 되시실 바랍니다.

고난은 하나님을 만나고 의지하게 한다.

마지막입니다. 이 환난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본문에 보면 우리가 아시아에서 환난 당하기를 너희가 알지 못함을 원치 아니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얼마나 심한 고생을 당하던지 살 소망까지 끊어져서 내가 내 마음에 사형 선고를 내릴 그 때에 참 의지이신 예수님을 만나 그 분을 의지하는 놀라움을 경험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고난은 우리 인생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게 합니다. 형통하신 분들은 조심하셔야 합니다. 천길 만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환난을 당하신 분들은 모든 소망이 끓어진 그 때야 말로 공부했던 하나님이 실제로 나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놀라운 믿음의 사람으로 내가 변모됩니다. 그래서 9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이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가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돈이 있다면 예수 믿기 힘듭니다. 제가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가능하면 소유를 하지 않으려 합니다. 만약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능력을 믿지 하나님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미국은 최신 전투기를 시험하려고 할때 베터랑 파일럿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베터랑 파일럿은 자신의 오랜 경험으로 자신이 하려고 노력하다 사고를 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초년 파일럿들은 오직 매뉴얼대로 한답니다.

시편 119장 67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자신의 힘으로 산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다 이루어 질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무너질 때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은 최대의 축복입니다. 71절에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해서 내가 주의 윤리를 배우게 되었다.' 그러므로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로 바꾸어지고 고난 당하는 것으로 주의 말씀을 배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떤 고난을 당할 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때마다 고린도 후서 1장 3절에서 10절까지 사도 바울을 통해서 고백하고 있는 그 살아있는 신앙이 우리 모두의 신앙이 되는 축복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고난마저 불행이 아닌 인생이라면 무엇이 불행하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이것이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주셔서 자신의 아들은 끝가지 가게 하시지만, 아브라함의 자식은 마지막 순간에 살려주신 하나님을 내가 믿기에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불행할 수가 없습니다. 불편할 수 있고, 아플 수도 있고, 슬플 수도 있지만 불행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내 연약이 무너질 때에도 한없이 위로하시는 자비의 아버지, 용서하시는 아버지 일뿐아니라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고난은 예측할 수 없지만 그때도 주께서는 당신의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자비의 아버지 하나님, 반드시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붙잡고 일어서십시요. 우리 자녀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자비의 아버지 하나님, 모든 환난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섬기는 축복을 허락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진 ⓒ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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