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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파이퍼 “세포 하나도 하나님의 통제권을 벗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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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ㆍ2019-03-15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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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Paweł Czerwiński on Unsplash 

 

이 글을 쓰기 두 시간 전에, 한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 친구의 아들이 암 판정 소식을 듣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의료진은 할 일을 다했으나 기적이 없는 한, 그가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친구는 이미 암으로 다른 자식 한 명을 먼저 보낸 적이 있다. 나는 이 소식을 듣고 고통스러웠는데, 이는 모든 사람이 암 진단을 받고도 나처럼 일종의 유예 기간을 가지며 삶을 지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암과 만나게 된 과정에는 다소 아이러니한 측면이 있다. 먼저 전립선 암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조직 검사를 받은 날이 정확하게 서른일곱 번째 결혼기념일이었다. 그리고 암이 퍼진 부위를 제거하는 수술을 하게 된 날은 발렌타인데이였다. 이에 혹 당신이 웃을지도 모르겠지만, 암이 그리 즐거운 문제는 아니기에 나로서는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평범한 검사 후, 모든 것이 바뀌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우선 내 몸 속에 전립선의 길이가 늘어나면서 생긴 골치 아픈 문제를 수년 동안 다룬 끝에, 비뇨기과 의사는 가벼운 검사 하나를 해 보기로 했다. 그때 내 나이는 예순이었고, 개인적으로는 건강 상태가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는 몸 안에서 무엇이 자라고 있는지도 알지 못하면서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다니, 지금 돌이켜봐도 이상할 뿐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누군가가 “건강은 어떠세요?”라고 물어보면, 예전처럼 “좋습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에 “좋은 것 같아요”라는 식으로 대답한다. 그 의미는 이렇다. ‘실은 저도 잘 모릅니다. 하나님만 아시겠죠. 그저 몸 속에 치명적인 암 세포가 있을 수도 있고, 대동맥류는 내일이라도 파열될지 모르며, 다리에 있는 혈액 응고가 오늘밤에 흘러 내리면 자다가도 심각한 발작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그저 “좋습니다”라고 말하는 습관이 바뀌게 된 것이다.

 

그날 의사가 제안했던 평범한 검사가 마쳐졌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보기에는 변칙적인 문제가 있는 듯한데, 조직 검사를 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말을 멈추자, 내가 물었다. “그래요, 당신의 말에 따르지요. 그런데 언제 하면 좋을까요?” 이에 그가 대답했다. “지금요. 괜찮으시면요.”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가 말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자 의사는 다른 검사실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런 후에 가운을 입으라고 하며, 조직 검사를 위한 장비를 가져올 동안 나에게 기다리라고 했다. 의사는 그렇게 밖으로 나갔고, 나는 혼자 남겨졌다.

 

완벽한 타이밍에 주어진 선물

 

이런 순간이 되면,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가 생각날 수 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말을 가장 필요한 시간에 들려줄 수 있는 친구 말이다. 당시 나에게는 그 친구가 다름 아닌 사도 바울이었다. 나는 그의 글을 가슴 깊이 좋아했기에, 그중 두 구절을 마음속으로 떠올리게 되었다. 곧 등이 활짝 열려 있는 병원 가운을 입고, 발끝이 바닥에 잘 닿지 않는 검사실 의자에 앉아, 내가 알지도 못하는 다음 절차를 기다리는 중에 바로 이 메시지가 생각났던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살전 5:9-10).

 

이 구절은 절묘하게 주어진 선물이었다. 타이밍이 완벽했다. 그 내용 또한 완벽했다. 바울이 그날 아침에 이 말씀을 내게 전해 준 것이다. 물론 바꿔 말하면,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그 말씀을 묵상하도록 인도하셨다. 그분이 이 말씀을 내 마음속에 두어 암송하게 하신 것이다. 그렇게 검사실에서 떠올리게 하여 그 순간 나에게 주실 수 있는 가장 달콤한 선물로서 그 말씀을 믿음으로 음미하게 하셨다. 그 맛은 심지어 ‘네가 나으리라’라는 위로보다 더욱 달콤하게 느껴졌다.

 

하나님의 통제권을 벗어난 세포는 없다

 

그날 바울은 하나님이 나를 위해 사용하신 도구와 같았다. 그는 일종의 대변인이었으며, 나의 필요를 위해 파견된 특사였다. 나는 그 대사의 목소리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전달받았던 것이다. 그가 나의 상황에 꼭 맞게 전해 준 첫 번째 메시지는 이러했다.

 

‘네가 이제 경험하게 될 암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하나님의 노하심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야. 만일 암이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그 암이 하나님의 형벌은 아니라는 뜻이야.’

 

당시 이 메시지가 나한테 어떻게 다가왔을지는, 바울이 가진 흔들림 없는 확신 곧 누군가가 암에 걸릴지 그렇지 않을지의 여부조차 하나님의 완전한 통제 가운데 있다는 확신이 내 안에 전달되었을 때의 마음이 어떠했을지를 알지 못하는 한 설명하기가 어렵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 11:36).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라고 설명했다(엡 1:11).

 

따라서 바울이 나에게 ‘이 상황은 하나님의 노하심 때문에 일어나지 않았어’라고 전하는 메시지는 결코 ‘네 몸에 암이 있다면 그 암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지 않았어’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단연코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암을 가졌다면 그 상황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에 따라 일어났다고 이해해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구성하는 분자 하나까지도 다스리신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의 통제권을 벗어나서 제멋대로 활동하는 세포란 있을 수 없다.

 

결국 바울이 전달하는 ‘하나님의 노하심 때문이 아니야’라는 메시지는 (암에 걸렸든 그렇지 않았든 상관없이) ‘그분은 너를 벌하시고 있는 것이 아니야’라는 의미였다. 즉 암은 내 인생의 인과응보에 따라 주어진 형벌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따라서 나는 그 상황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목적을 가지고 계시며 그 목적은 나의 죄에 대한 형벌을 드러내는 데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했다. 오히려 그분의 자비를 드러내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그리하여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기로 하신 것이다. 이런 사실을 내가 어떻게 알았겠는가? 바울이 그에 대한 답변을 주었기 때문이다(이에 대해서는 네 번째 메시지를 소개할 때 설명하도록 하겠다).

 

깨어 있든지 자든지

 

내가 의사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바울이 전해 준 두 번째 메시지는 하나님의 노하심과 상반된 긍정적인 측면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곧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라고 할 때의 그 구원에 관한 메시지였다.

 

다시 말해, 내 인생에 주어질 수 있는 암조차도 하나님의 노하심이 아니라 구원에 이르는 길이 된다는 메시지였다. 이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아니었다. ‘조직 검사 후에 결국 암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날 거야. 너는 암으로부터 완전히 구원 받을 것이라고.’ 그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결코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바울이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그와 달리, 이제 곧 드러날 수도 있는 암으로 인해 내가 죽게 될 수 있다는 내용을 함축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구원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그는 이어서 그 점을 밝혀 주었다.

 

바로 세 번째 메시지를 통해 그는 내가 암으로 인한 죽음을 모면하게 되리라고 약속하시는 데 하나님의 뜻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오히려 “깨어 있든지 자든지”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메시지를 전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내가 살든지 죽든지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의미였다. 여기서 ‘잔다’라는 표현은 죽음 후에 예수님과 누리는 의식적인 교제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빌 1:23), 이 땅에서 죽은 그리스도인의 몸이 마치 자고 있는 상태처럼 보이지만 마지막 날에 이르면 (잠을 자다가 일어나듯이) 바로 그 죽음으로부터 깨어나게 되리라는 뜻임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고전 15:20).

 

당신은 이런 메시지가 가져다주는 위로가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암을 이겨내고 살아남게 되리라는 소식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런 소식은 나에게 그다지 큰 효과를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순간 나에게는 단지 암을 극복하며 몇 년을 지속하는 삶보다 훨씬 더 견고하며 지속적이고 흔들림 없는 위안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바울을 통해 전달받는 하나님의 뜻을 절실히 필요로 했다. ‘이는 하나님의 노하심 때문이 아니야. 오히려 너는 구원에 이를 텐데, 네가 살든지 죽든지 이는 변치 않을 사실이야.’

 

가장 중요한 사실

 

바울은 내가 첫 번째 메시지에서 던졌던 질문에 대해 놀라운 답변을 했는데, 바로 그 내용이 그의 네 번째 메시지였다. 그 질문은 ‘나는 어떻게 이 암이 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가’였다. 바울이 준 답변은 이것이다. ‘그리스도가 이미 너의 죄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이다.’ 암이 있든 그렇지 않든, 그로 인해 결국 죽게 되든 살게 되든, 바울은 그 구절을 통해 내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되리라고 하며 바로 그 “예수께서 [너]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말했다.

 

이 시점에서 나는 왜 바울이 (또 다른 서신에서) 이렇게 말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 15:3-4). 여기서 바울이 ‘먼저’ 전하였다는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소식이다. 이 내용이 왜 가장 중요했을까?

 

그 이유는 만일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면, 우리는 그 죄를 위해 죽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동일한 죄에 대해 형벌이 중복되는 오류(double jeopardy)가 발생한다. 그 오류를 막기 위해 그분이 오셨다. 즉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서 내가 받아야 했던 심판(요 3:36)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대신 받으신 것이다(롬 8:3). 그 결과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사람은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다]”(요 5:24).

 

바울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라고 말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나에게 정죄함이 없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정죄함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나에게 노하심이 없는 이유도 그리스도께서 노하심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바울은 내가 조직 검사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도 매우 분명하고도, 확고하게, 그리고 기쁨에 차서 이 메시지를 전해 주었던 것이다. ‘이 암은 하나님의 노하심 때문에 주어지지 않았어.’

 

인격적이고 친밀한 약속

 

바울이 나에게 전해 준 마지막 메시지는 인격적이고 친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는 ‘구원’이라는 표현을 통해 그가 결국 드러내고자 한 메시지이기도 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암으로 살든지 죽든지, 너는 그분과 함께 살게 될 거야. 모호하고 불분명한 상태로 영원히 남아서 살아가는 게 아니라, 매우 생생하게 깨어 있는 상태로 그분과 함께 살아가게 될 거야. 너를 위하여 죽으시고 다시 사신 그분과 함께 말이야.’ 여기서 우리는 적어도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한 가지는, 나와 함께 살아가는 이가 죽으실 수 없는 분이기에, 나 역시 영원히 살게 되리라는 사실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한 줄을 앎이로라”(롬 6:9). 다른 한 가지는, 나를 위해 죽으실 만큼 나를 사랑하신 분과 내가 영원히 함께 살게 되리라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매우 인격적이며 나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약속이 아닐 수 없다.

 

조직 검사를 한 다음날, 의사한테 전화가 왔다. “목사님, 암이 맞습니다. 다시 만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논의했으면 합니다.” 우리는 결국 전립선을 제거하는 방안을 선택했다. 그리고 7주 후인 발렌타인데이에 수술했다. 이 이야기가 바로 2006년에 있었던 일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 건강은 어떠할까? 물론, ‘좋은 것 같다.’

 

출처: www.desiringgod.org

원제: ‘No Maverick Cells in Me: My Deepest Hope During Cancer’ by John Piper

번역: 장성우

 

2005년 미국에서 시작되어 팀 켈러 목사와 존 파이퍼 목사 등이 이끄는 TGC(The Gospel Coalition; 복음연합)의 한국어 사이트(tgckorea.org)가 2018년 11월 오픈되어 성경적이고 복음적인 주제의 글과 동영상이 매일 새롭게 업로드 되고 있다. TGC코리아는 TGC는 물론 개혁주의 신앙을 전달하는 또 다른 인기 사이트인 Desiring God(존 파이퍼), Ligonier(R.C. 스프로울), 9 Marks(마크 데버), Unlimited Grace(브라이언 채플)의 수준 높은 자료들을 공식적으로 허락받아 한국에 소개하고 있다. 

 

ⓒ TGC코리아(https://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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