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장기 교수 "교회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삼각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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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15-02-28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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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성서원은 임장기 ATS 교수를 강사로 교회와 가정에 적용되는 "인간 감정의 삼각관계(Emotional Triangle)"라는 제목의 특강을 2월 23일(월) 오후 8시 열었다. 특강의 내용은 학술적인 내용이라기 보다는 가정과 교회에 바로 적용가능한 내용이었다. 가정과 교회는 구성원끼리의 관계를 통해 많은 문제들이 일어나는데, 그 문제들은 대개 비슷한 틀을 가지고 있다는 것. 교회문제가 왜 일어나는가. 사람간의 관계의 문제이다. 관계의 문제는 두 사람 사이에서 시작하며 두 사람간에 문제를 해결하거나 그래도 억울하면 하나님에게 호소하면 되지만 대부분 다른 사람을 문제에 끌여들여 감정의 삼각관계를 이루어 문제가 확대된다.
임장기 목사는 교회에서 흔히 일어나는 감정의 삼각관계를 설명하며 △장로 두 명이 갈등관계에 있고 담임목사를 각자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하는 경우 △새로운 담임목사가 부임하여 원로목사와 갈등을 일으키고 결국은 장로(당회)들이 그 관계에 개입하는 경우 △부목사가 설교를 너무 잘해 담임목사와 부목사 그리고 교인간의 묘한 긴장관계가 형성되는 경우 △두명의 부교역자간에 갈등이 있고 담임목사가 그 갈등에 개입하는 경우 △담임목사가 당회나 교인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교단에 도움을 청할때 일어나는 갈등의 경우 △새로 부임한 담임목사와 오래된 기존교인 그리고 담임목사 부임후 새로온 교인들과의 갈등이 일어나는 경우 등을 예시하며 그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다음은 강의 내용이다.
▲강의하는 임장기 ATS 교수
얼마전에 "미생"이라는 드라마가 크게 인기를 끌었다. 특별히 요즘 젊은이들이 취업을 못하는 것이 사회적인 이슈가 되나보니 그런 상황에 맞추어 미생 드라마에 큰 방향이 있었다. 소위 30대이하 젊은 세대가 미생세대이고, 영화 국제시장의 세대는 나이든 세대이다. 두세대간에 소통이 잘 안된다. 각자 자기 입장에서 말한다. 국제시장 세대는 젊은이들에게 "너희가 전쟁을 아느냐"고 말하면 젊은이들은 귀를 닫아 버린다. 미생세대는 아버지 세대에는 취직을 못해서 힘들어 한 적이 있는가를 반문한다. 교회안에도 양 세대가 있다. 이슈는 소통이다. 오늘 제가 나누고 싶은 것도 결국 소통의 문제이다. 성도들의 삶의 현장인 가정과 교회 사역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이슈이다.
▲감정의 삼각관계 도식
감정의 삼각관계(Emotional Triangle)
사람사이에는 갈등이 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갈등이 없는 것이지만 갈등은 필연적으로 생긴다. 갈등이 생기고 갈등을 해결하기를 반복한다. 빨리 해결할수록 성숙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은 두 사람이 대화를 통해 해결하면 가장 바람직한데 그렇게 안되고 다른 사람을 개입시키는 것을 '감정의 삼각관계(Emotional Triangle)'라고 정의한 것이다.
A와 B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둘중 하나는 '박해자(Persecuter)'로 핍박하는 사람이고, 핍박을 받는 '희생자(Victim)'도 생긴다. 그런데 두 사람간에 생기면 어떤 상황이 생기면 둘 사이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C라는 다른 사람을 끌어낸다. 주로 핍박당하는 희생자가 다른 사람을 끌어들여 불만을 나타낸다. 희생자가 다른 사람에게 박해자에 대해 불만을 표시해도 상관을 안하면 간단하다. 그런데 사람인지라 희생자의 불만을 듣고 감정적으로 클릭되어 반응을 보이면, 그 다른 사람은 '구조자(Rescuer)'가 되며 감정의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그런 매커니즘을 '감정의 삼각관계(Emotional Triangle)'라고 한다. 개인간에만이 아니라 집단간에도 이루어지고, 심지어는 나라와 민족사이에도 가능하다.
가정에서의 감정의 삼각관계
남편-아내-자녀간의 삼각관계가 있다. 가정에서 부부간의 문제에 자식을 끌여들인다. 부부싸움을 하면 상대적으로 약한 어머니가 장남을 붙잡고 하소연을 한다. 이럴때 아버지가 박해자이고 어머니가 희생자이고 어린 아들이 구조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부부-부부-시부모(장인/장모)간의 삼각관계가 있다. 가정에서 가장 많이 일어나는 감정의 삼각관계 갈등이다. 부모-자녀-자녀 삼각관계도 있다. 큰 아이가 작은 아이를 핍박하고 작은 아이는 힘이 없으니 부모에게 이른다. 전형적인 감정의 삼각관계이다. 조부모-부모-자녀간의 감정의 삼각관계도 있다. 자녀가 부모에게 박해를 받으면 할머니나 할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부모-부모-자녀간의 삼각관계도 있다. 부모중 한사람이 성장과정의 상처때문에 어느 자녀를 밀어내면 그 자녀는 다른 부모와 친밀해진다. 제가 잘아는 아버지가 두 자녀를 다 사랑하는데 이상하게 자녀간의 문제가 일어나면 막내편에 들게된다. 그 아버지의 가족관계가 2명의 남동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감을 잡았다. 그가 어릴때 동생들간의 갈등이 있으면 막내 동생의 편에 서서 막내 동생을 보호해 주었다. 성장과정 속에서 길러진 체험적인 감정의 삼각관계가 현재 자기가 구성된 자녀와의 관계속에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감정의 삼각관계는 돌아갈 가능성이 많다. 박해자-피해자-구조자 등 역할이 돌아가는 것이 안돌아가는 것보다 건강하다. 기능이 바뀌는 것이 그만큼 융통성이 있다는 것이다. 돌아가지 않는 경우는 세개의 꼭지점 가운데 하나가 중독인 경우이다. 중독은 사람이 아니니 위치가 안바뀐다. 기능이 돌아가는 것이 그래도 나은 편이며, 중독으로 감정의 삼각관계가 고정된 것은 더 안좋은 것이다. 삼각점의 하나를 차지하는 중독이 문제이다.
교회에서의 감정의 삼각관계
① 담임목사-장로-장로
장로 두 명이 갈등관계에 있고 담임목사를 각자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하는 경우에 담임목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두 장로중 어느 한 명이라도 잃으면 교회에 큰 피해가 온다. 문제는 한 명도 안잃으려 하다가 두 명을 다 잃는다. 아니면 목사가 쫓겨난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이지만 한인이민교회에 그런 경우가 굉장히 많다. 대형교회 보다 중소형교회에 그럴 가능성이 더 많은 편이다. 담임목사로서 어느 쪽 편도 들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담임목사들이 대처하는 경향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양쪽 편을 다 안들면 양쪽 모두에게 배척당한다. 목사님이 내 편을 안들었지만 저사람 편도 안들었기에 괜찮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 입장에서 자신의 편을 안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상대도 마찬가지이다. 다시 말하면 내 편을 안들었기에 목사님은 내 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년에 목사 수련회에서 이 문제를 이슈화 시켜서 토론했는데 결론은 담임목사는 모른척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는 참가 목회자의 발언이 있었다.)
그런데 모른척한다고 문제가 해결이 안된다. 그럴때는 교단이 아닌 3자가 개입하여 해결하는 것이 좋다. 교단은 권위기관이기에 교회문제에 교단이 개입하면 전부 피해의식을 느낀다. 교단말고 완전히 교회와 상관없는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다. 물론 그 사람은 권위가 있어야 하고, 인정받는 지역의 전문가 이어야 한다. 객관적으로 상담을 통해 갈등 당사자들의 감정을 식게만들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런 상황속에서 담임목사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감정의 삼각관계 안에 내재된 속성이 지금 현재 상황을 유지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도 삼각관계 안에 다른 것이 개입되면 삼각형의 에너지가 더 강해진다. 해결하려고 하면 할수록 문제가 더 깊어지고 꼬인다. 감정의 삼각관계의 꼭지점을 형성하고 있는 사람이 해결하려고 하면 문제가 더 심각해지지 절대로 해결이 안된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그 자체가 문제를 악화시킨다. 역설적으로 해결을 안하려고 하면 해결된다. 해결책은 각자의 입장에서 자기의 기능을 포기하면 해결이 된다.
② 담임목사-원로목사–당회
교회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담임목사-원로목사-당회의 관계이다. 교회내의 전형적인 감정의 삼각관계이다. 이 문제는 북미주 많은 한인이민교회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가장 전형적인 것은 남가주에 있는 동양선교교회이다. 계속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임동선 원로목사가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으며 존경을 받는 분인데 감정의 삼각관계속에 포함되어 헤어나오지 못한다. 담임목사가 새로 오면 원로목사와 당회하고 감정의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그래서 여러명의 담임목사가 교회에서 나왔다. 그 매커니즘은 똑 같다. 전형적인 감정의 삼각관계이다. 동양선교교회만 아니라 많은 한인교회에서 바로 이 문제가 발생했다.
감정의 삼각관계에서 박해자와 피해자가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돈다. 한 싯점에서 보면 새로 부임한 담임목사가 가해자이고 원로목사가 희생자이다. 젊은 목사가 평생 피땀흘려 일군 교회를 저렇게 목회하고 있다고 원로목사가 장로에게 이야기를 한다. 장로들은 원로목사와 수십년 정이 들어있다. 원로목사의 불평을 들어보니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담임목사가 지난번에 저런 행동을 했고, 설교할때 저런 표현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담임목사에 압박을 가하기 시작한다. 그때 장로와 당회는 구조자가 된다.
③ 담임목사–부교역자–교인들
담임목사가 부목사에게 주일예배 설교를 잘안시킨다. 만약 부목사가 너무 설교를 잘하게 된다면 담임목사와 부목사 그리고 교인간의 묘한 긴장관계가 형성된다. 그런 경우도 전형적인 감정적인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④ 담임목사–부교역자–부교역자
오래된 규모가 있는 백인 미국교회가 수십년간 계속하여 교회내에 문제가 있었다. 교회는 평안한 날이 없었다. 교회에서 고민하다가 심리학자인 풀러신학교 데이빗 옥스버그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다. 교수는 교회에 가서 두 달 동안 상주하면서 교회의 문제에 대해 조사했다. 사람들에게 질문을 통해 모든 사건들을 조사해 보니 그동안 일어났던 모든 교회의 사건속에 공통적으로 항상 포함되는 세사람을 발견했다. 담임목사, 부목사, 교회비서였다. 교수는 이들에게 뭔가 문제가 있구나 생각하고 세사람을 따로 상담했다.
상담을 통해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담임목사에게는 남동생과 여동생이 있고, 부목사에게는 위에 형이 있고 밑에 여동생있고, 비서는 위에 오빠 둘이 있었다. 세명의 갈등구조가 같은 것이다. 각각 다른 가족관계에서 자랐는데 교회에 와서 같은 셋팅속에서 풀타임으로 협력사업을 하는데 문제가 일어난다. 부목사가 비서를 자꾸 핍박한다. 그러면 비서가 심정적으로 큰 오빠격인 담임목사에게 가서 도움을 청한다. 비서에게는 부목사는 어린시절의 작은 오빠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담임목사는 어릴때 남동생에게 박해를 받는 여동생을 도와주는 심정으로 두사람의 문제에 개입을 한다. 어린시절에 감적적인 삼각관계를 해결해 본 경험이 없기에 사회생활에서 재현되는데도 해결이 안된다.
감정의 삼각관계속에 교인들도 많이 관계된다. 수많은 삼각관계가 형성되니 교회를 복잡하게 만들고 문제해결이 안된다. 해결방법은 어린시절에 해결안된 것을 지금이라도 해결해야 한다. 각자 형제간에 화해를 하면 교회에서도 이런 일들이 발생을 안한다. 어린 시절에 감정의 삼각관계를 해결해 본 경험이 없으니 사회생활에서 재현되는 것이다. 교회에서 직장에서 어릴때와 비슷한 상황이 형성되면 그 상황에 감정이 익숙해져 있으니 그대로 클릭하며 재현되는 것이다.
(목회자가 교인들을 상대로 성장기 가족의 삼각관계를 그려보라고 해서 교인을 파악해보는 것도 목회에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참가 목회자의 질문이 있었다.)
그러기 전에 목회자 자신이 자기의 지도를 먼저 그려서 자기속에 아직도 해결안된 것이 있는지를 먼저 발견해야 한다. 있다면 그것을 해결해야 한다. 아버지는 자상하지만 굉장히 권위주의적이었다. 그 권위에는 어느 자녀도 도전을 못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아버지에게 직언을 못한다. 그러면 권위의 손상을 입었다고 생각하고 아버지의 얼굴색이 변한다. 그것을 통해 저에게 익숙해 진 것은 권위의 자리에 있는 사람을 만나면 긴장한다. 더구나 그 사람이 권위로 나를 누르려고 하면 속에서 분노가 올라온다. 젊은 목사일때 교단의 어른들이 유교적인 권위로 누르려고 하면 견디지 못했다. 어느 순간에 깨닫은 것이 있다. 저도 목회를 하면서 영적권위와 조직권위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나서, 제가 그런 권위에 대해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으면서 어느 순간부터 좋은 방향으로 클릭이 된다. 가족에서 경험이 그대로 사회경험에서 재현된다.
⑤ 담임목사–당회(교인들)–교단
담임목사가 당회나 교인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교단에 도움을 청할때 감정의 삼각관계가 일어난다.
⑥ 담임목사–Old Timers–New Comers
진짜 중요한 것은 새로 부임한 담임목사-오래된 기존교인-담임목사 부임후 새로온 교인들과의 감정적인 삼각관계이다. 대개 새로 부임한 담임목사는 항상 새로운 교인들과 친하다. 새로운 교인은 새롭게 부임한 담임목사에게 호감을 가져 교회에 온 사람들이다. 새로 부임한 담임목사는 대개 교회를 개혁하려고 하는 성향을 가진다. 자기 스타일대로 차츰 목회를 꾸려나가겠다는 경향을 가지게 된다. 새로운 목회를 펼쳐나가려 보면 기존교인들은 견제세력이 된다. 반면 새교인들은 지지세력이 된다. 자연스럽게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한가지 기억해야 할 사실은 한인이민사회에 이민이 끓겼다. 이제 1세대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교회의 평균나이는 고령화되고 있다. 전에는 새로운 담임목사를 청빙할때 대개 40-45세 사이를 청빙했다. 그런데 문제는 교인들의 평균연령이 올라갔다. 젊은 담임목사가 부임하면 교인들과 세대차이때문에 문화적인 공감대가 형성이 안되고 긴장과 갈등이 생긴다. 제가 5년전부터 주장하는 것은 이제 50세 정도되는 담임목사를 청빙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뉴욕과 뉴저지에 있는 규모있는 여러 교회들이 바로 이런 상황때문에 갈등을 일으킨 것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담임목사를 청빙할때 이것을 고민해야 한다.
최선이라고 한다면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그리스도의 몸을 형성해 나가는 것이 정답인데 현실이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도저히 공존이 안되는 이질적인 두개의 그룹이 공존해 나가는 경우도 많다. 후배목사 한사람이 30대 젊은 나이에 처음 담임목사로 부임나갈때 조언을 부탁해서 두 가지를 조언한 적이 있다. 절대로 부임하고 6개월동안 주보와 교회 좌석 배치를 바꾸지 말라고 했다. 부임 몇달후 전화가 왔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알고보니 주보도 바꾸고 교회좌석도 바꾸었다. 젊은 목사가 혈기왕성하여 하나씩 바꾸면서 자신의 페이스대로 목회하겠다고 하는데 오래된 기존교인들과 부딪치는 것이다.
이후 계속 교인들과 갈등이 있었다. 객관적으로 볼때 양측은 공존하기가 힘들었다. 부임후 7년정도 지났을때 담임목사가 교회에서 쫓겨나게 되었을때 감독이 개입해서 두개로 교회를 나누었다. 이후 후배 목사는 편안하게 목회를 하고 있다. 결정론적이기는 하다. 인간은 약하고 죄인이기에 악하다. 그래서 자꾸 한계를 드러낸다. 최선이 안될때는 차선이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하나님 나라의 비전으로 보면 그것이 그것이다. 싸울 바에는 교회를 두개로 나누어 세우는 것이 더 낫다. 그렇다고 문제가 있을때 마다 교회를 나누라는 말씀은 아니다.
▲감정의 삼각관계 해법
감정의 삼각관계 해결책
가장 좋은 해결책은 삼각형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누가 나를 감정의 삼각관계에 집어넣으려고 할때 참여하지 않으면 된다.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누가 나에게 와서 저사람때문에 못살겠다고 불평할때 쿨하게 떨어져 있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아 그래"하고 반응하면 벌써 감정의 삼각관계속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면 다 불안해진다.
감정의 삼각관계가 형성되었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박해자(Persecuter)'는 '이해자(Understander)'로 바뀌면 된다. 상대에 불만이 있으니 공격하는 것이다. 불만대신에 상대방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렇게 이해하고 공격을 멈추는 순간에 감정의 삼각관계는 깨진다.
'희생자(Victim)'는 '공급자(Provider)'로 바뀌면 된다. 희생자가 박해자에게서 공격을 받는다는 것은 박해자가 뭔가 희생자에게 불만이 많은 것이다. 그러면 희생자는 박해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헤아려서 그것을 보충해주는 공급자 역할로 바꾸면 문제가 해결된다. 희생자는 구조자에게 하소연을 하지말고 박해자와의 일대일 관계속에서 박해자의 입장을 헤아려주면 감정의 삼각관계가 깨어진다.
마지막으로 '구조자(Rescuer)'는 희생자가 불평을 한다고 관여를 하면 안된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수록 감정의 삼각관계가 더 굳건하게 형성되기 때문에 절대로 희생자를 구하려 하지말고 박해자와 희생자를 화해시키기 위한 '전략가(Strategist)'로 바뀌어야 한다. 어느 한쪽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박해자와 희생자 양쪽에 대해 동일한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희생자의 한쪽의 편을 드는 순간에 감정의 삼각관계가 형성되니 관여를 하려고 하지말고 서로 화해시키기 위한 화해자가 되어야 한다.
성경에는 감정의 삼각관계의 많은 예가 나온다. 다윗-사울왕-이스라엘이 좋은 예이다. 다윗이 사울왕에게 박해를 당하면서도 이스라엘을 향하여 구조를 요청안했기에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합격점을 주시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다. 만약 다윗이 구조요청을 하면 사울왕을 쫓아낼수 있을 정도로 다윗은 막강한 인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구조요청을 안했다. 그 밖에도 성경안에 많은 예들이 있다. 야곱의 패밀리 안에서도, 압살롬의 반정사건도 감정의 삼각관계로 분석이 가능한 케이스이다. 가장 건강한 감정의 삼각관계는 삼자에게 하소연하지 말고 하나님께 하소연하라. 다윗이 그렇게 했다. 시편에 보면 다윗이 하나님께 하소연하는 내용들이 많다. 그것이 가장 건강한 감정의 삼각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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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9월 설립된 바울성서원은 2015년 봄 학기 강의가 오는 3월 2일(월) 오후 8시부터 10시까지 뉴저지 팰팍에 소재한 필그림하우스(256 Broad Ave. 2floor Palisades Park, NJ 07654)에서 속강된다. 총 10주의 강의로 진행되는 이번 봄학기에는 지난 학기에 이어 김동수교수의 '로마서' 강의(8-16장)로 진행될 예정이다. 수강 신청과 문의는 박근재 목사 (시나브로교회 201-647-7766)에게 하면 된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임장기 목사는 교회에서 흔히 일어나는 감정의 삼각관계를 설명하며 △장로 두 명이 갈등관계에 있고 담임목사를 각자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하는 경우 △새로운 담임목사가 부임하여 원로목사와 갈등을 일으키고 결국은 장로(당회)들이 그 관계에 개입하는 경우 △부목사가 설교를 너무 잘해 담임목사와 부목사 그리고 교인간의 묘한 긴장관계가 형성되는 경우 △두명의 부교역자간에 갈등이 있고 담임목사가 그 갈등에 개입하는 경우 △담임목사가 당회나 교인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교단에 도움을 청할때 일어나는 갈등의 경우 △새로 부임한 담임목사와 오래된 기존교인 그리고 담임목사 부임후 새로온 교인들과의 갈등이 일어나는 경우 등을 예시하며 그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다음은 강의 내용이다.
▲강의하는 임장기 ATS 교수
얼마전에 "미생"이라는 드라마가 크게 인기를 끌었다. 특별히 요즘 젊은이들이 취업을 못하는 것이 사회적인 이슈가 되나보니 그런 상황에 맞추어 미생 드라마에 큰 방향이 있었다. 소위 30대이하 젊은 세대가 미생세대이고, 영화 국제시장의 세대는 나이든 세대이다. 두세대간에 소통이 잘 안된다. 각자 자기 입장에서 말한다. 국제시장 세대는 젊은이들에게 "너희가 전쟁을 아느냐"고 말하면 젊은이들은 귀를 닫아 버린다. 미생세대는 아버지 세대에는 취직을 못해서 힘들어 한 적이 있는가를 반문한다. 교회안에도 양 세대가 있다. 이슈는 소통이다. 오늘 제가 나누고 싶은 것도 결국 소통의 문제이다. 성도들의 삶의 현장인 가정과 교회 사역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이슈이다.
▲감정의 삼각관계 도식
감정의 삼각관계(Emotional Triangle)
사람사이에는 갈등이 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갈등이 없는 것이지만 갈등은 필연적으로 생긴다. 갈등이 생기고 갈등을 해결하기를 반복한다. 빨리 해결할수록 성숙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은 두 사람이 대화를 통해 해결하면 가장 바람직한데 그렇게 안되고 다른 사람을 개입시키는 것을 '감정의 삼각관계(Emotional Triangle)'라고 정의한 것이다.
A와 B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둘중 하나는 '박해자(Persecuter)'로 핍박하는 사람이고, 핍박을 받는 '희생자(Victim)'도 생긴다. 그런데 두 사람간에 생기면 어떤 상황이 생기면 둘 사이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C라는 다른 사람을 끌어낸다. 주로 핍박당하는 희생자가 다른 사람을 끌어들여 불만을 나타낸다. 희생자가 다른 사람에게 박해자에 대해 불만을 표시해도 상관을 안하면 간단하다. 그런데 사람인지라 희생자의 불만을 듣고 감정적으로 클릭되어 반응을 보이면, 그 다른 사람은 '구조자(Rescuer)'가 되며 감정의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그런 매커니즘을 '감정의 삼각관계(Emotional Triangle)'라고 한다. 개인간에만이 아니라 집단간에도 이루어지고, 심지어는 나라와 민족사이에도 가능하다.
가정에서의 감정의 삼각관계
남편-아내-자녀간의 삼각관계가 있다. 가정에서 부부간의 문제에 자식을 끌여들인다. 부부싸움을 하면 상대적으로 약한 어머니가 장남을 붙잡고 하소연을 한다. 이럴때 아버지가 박해자이고 어머니가 희생자이고 어린 아들이 구조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부부-부부-시부모(장인/장모)간의 삼각관계가 있다. 가정에서 가장 많이 일어나는 감정의 삼각관계 갈등이다. 부모-자녀-자녀 삼각관계도 있다. 큰 아이가 작은 아이를 핍박하고 작은 아이는 힘이 없으니 부모에게 이른다. 전형적인 감정의 삼각관계이다. 조부모-부모-자녀간의 감정의 삼각관계도 있다. 자녀가 부모에게 박해를 받으면 할머니나 할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부모-부모-자녀간의 삼각관계도 있다. 부모중 한사람이 성장과정의 상처때문에 어느 자녀를 밀어내면 그 자녀는 다른 부모와 친밀해진다. 제가 잘아는 아버지가 두 자녀를 다 사랑하는데 이상하게 자녀간의 문제가 일어나면 막내편에 들게된다. 그 아버지의 가족관계가 2명의 남동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감을 잡았다. 그가 어릴때 동생들간의 갈등이 있으면 막내 동생의 편에 서서 막내 동생을 보호해 주었다. 성장과정 속에서 길러진 체험적인 감정의 삼각관계가 현재 자기가 구성된 자녀와의 관계속에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감정의 삼각관계는 돌아갈 가능성이 많다. 박해자-피해자-구조자 등 역할이 돌아가는 것이 안돌아가는 것보다 건강하다. 기능이 바뀌는 것이 그만큼 융통성이 있다는 것이다. 돌아가지 않는 경우는 세개의 꼭지점 가운데 하나가 중독인 경우이다. 중독은 사람이 아니니 위치가 안바뀐다. 기능이 돌아가는 것이 그래도 나은 편이며, 중독으로 감정의 삼각관계가 고정된 것은 더 안좋은 것이다. 삼각점의 하나를 차지하는 중독이 문제이다.
교회에서의 감정의 삼각관계
① 담임목사-장로-장로
장로 두 명이 갈등관계에 있고 담임목사를 각자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하는 경우에 담임목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두 장로중 어느 한 명이라도 잃으면 교회에 큰 피해가 온다. 문제는 한 명도 안잃으려 하다가 두 명을 다 잃는다. 아니면 목사가 쫓겨난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이지만 한인이민교회에 그런 경우가 굉장히 많다. 대형교회 보다 중소형교회에 그럴 가능성이 더 많은 편이다. 담임목사로서 어느 쪽 편도 들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담임목사들이 대처하는 경향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양쪽 편을 다 안들면 양쪽 모두에게 배척당한다. 목사님이 내 편을 안들었지만 저사람 편도 안들었기에 괜찮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 입장에서 자신의 편을 안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상대도 마찬가지이다. 다시 말하면 내 편을 안들었기에 목사님은 내 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년에 목사 수련회에서 이 문제를 이슈화 시켜서 토론했는데 결론은 담임목사는 모른척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는 참가 목회자의 발언이 있었다.)
그런데 모른척한다고 문제가 해결이 안된다. 그럴때는 교단이 아닌 3자가 개입하여 해결하는 것이 좋다. 교단은 권위기관이기에 교회문제에 교단이 개입하면 전부 피해의식을 느낀다. 교단말고 완전히 교회와 상관없는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다. 물론 그 사람은 권위가 있어야 하고, 인정받는 지역의 전문가 이어야 한다. 객관적으로 상담을 통해 갈등 당사자들의 감정을 식게만들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런 상황속에서 담임목사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감정의 삼각관계 안에 내재된 속성이 지금 현재 상황을 유지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도 삼각관계 안에 다른 것이 개입되면 삼각형의 에너지가 더 강해진다. 해결하려고 하면 할수록 문제가 더 깊어지고 꼬인다. 감정의 삼각관계의 꼭지점을 형성하고 있는 사람이 해결하려고 하면 문제가 더 심각해지지 절대로 해결이 안된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그 자체가 문제를 악화시킨다. 역설적으로 해결을 안하려고 하면 해결된다. 해결책은 각자의 입장에서 자기의 기능을 포기하면 해결이 된다.
② 담임목사-원로목사–당회
교회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담임목사-원로목사-당회의 관계이다. 교회내의 전형적인 감정의 삼각관계이다. 이 문제는 북미주 많은 한인이민교회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가장 전형적인 것은 남가주에 있는 동양선교교회이다. 계속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임동선 원로목사가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으며 존경을 받는 분인데 감정의 삼각관계속에 포함되어 헤어나오지 못한다. 담임목사가 새로 오면 원로목사와 당회하고 감정의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그래서 여러명의 담임목사가 교회에서 나왔다. 그 매커니즘은 똑 같다. 전형적인 감정의 삼각관계이다. 동양선교교회만 아니라 많은 한인교회에서 바로 이 문제가 발생했다.
감정의 삼각관계에서 박해자와 피해자가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돈다. 한 싯점에서 보면 새로 부임한 담임목사가 가해자이고 원로목사가 희생자이다. 젊은 목사가 평생 피땀흘려 일군 교회를 저렇게 목회하고 있다고 원로목사가 장로에게 이야기를 한다. 장로들은 원로목사와 수십년 정이 들어있다. 원로목사의 불평을 들어보니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담임목사가 지난번에 저런 행동을 했고, 설교할때 저런 표현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담임목사에 압박을 가하기 시작한다. 그때 장로와 당회는 구조자가 된다.
③ 담임목사–부교역자–교인들
담임목사가 부목사에게 주일예배 설교를 잘안시킨다. 만약 부목사가 너무 설교를 잘하게 된다면 담임목사와 부목사 그리고 교인간의 묘한 긴장관계가 형성된다. 그런 경우도 전형적인 감정적인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④ 담임목사–부교역자–부교역자
오래된 규모가 있는 백인 미국교회가 수십년간 계속하여 교회내에 문제가 있었다. 교회는 평안한 날이 없었다. 교회에서 고민하다가 심리학자인 풀러신학교 데이빗 옥스버그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다. 교수는 교회에 가서 두 달 동안 상주하면서 교회의 문제에 대해 조사했다. 사람들에게 질문을 통해 모든 사건들을 조사해 보니 그동안 일어났던 모든 교회의 사건속에 공통적으로 항상 포함되는 세사람을 발견했다. 담임목사, 부목사, 교회비서였다. 교수는 이들에게 뭔가 문제가 있구나 생각하고 세사람을 따로 상담했다.
상담을 통해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담임목사에게는 남동생과 여동생이 있고, 부목사에게는 위에 형이 있고 밑에 여동생있고, 비서는 위에 오빠 둘이 있었다. 세명의 갈등구조가 같은 것이다. 각각 다른 가족관계에서 자랐는데 교회에 와서 같은 셋팅속에서 풀타임으로 협력사업을 하는데 문제가 일어난다. 부목사가 비서를 자꾸 핍박한다. 그러면 비서가 심정적으로 큰 오빠격인 담임목사에게 가서 도움을 청한다. 비서에게는 부목사는 어린시절의 작은 오빠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담임목사는 어릴때 남동생에게 박해를 받는 여동생을 도와주는 심정으로 두사람의 문제에 개입을 한다. 어린시절에 감적적인 삼각관계를 해결해 본 경험이 없기에 사회생활에서 재현되는데도 해결이 안된다.
감정의 삼각관계속에 교인들도 많이 관계된다. 수많은 삼각관계가 형성되니 교회를 복잡하게 만들고 문제해결이 안된다. 해결방법은 어린시절에 해결안된 것을 지금이라도 해결해야 한다. 각자 형제간에 화해를 하면 교회에서도 이런 일들이 발생을 안한다. 어린 시절에 감정의 삼각관계를 해결해 본 경험이 없으니 사회생활에서 재현되는 것이다. 교회에서 직장에서 어릴때와 비슷한 상황이 형성되면 그 상황에 감정이 익숙해져 있으니 그대로 클릭하며 재현되는 것이다.
(목회자가 교인들을 상대로 성장기 가족의 삼각관계를 그려보라고 해서 교인을 파악해보는 것도 목회에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참가 목회자의 질문이 있었다.)
그러기 전에 목회자 자신이 자기의 지도를 먼저 그려서 자기속에 아직도 해결안된 것이 있는지를 먼저 발견해야 한다. 있다면 그것을 해결해야 한다. 아버지는 자상하지만 굉장히 권위주의적이었다. 그 권위에는 어느 자녀도 도전을 못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아버지에게 직언을 못한다. 그러면 권위의 손상을 입었다고 생각하고 아버지의 얼굴색이 변한다. 그것을 통해 저에게 익숙해 진 것은 권위의 자리에 있는 사람을 만나면 긴장한다. 더구나 그 사람이 권위로 나를 누르려고 하면 속에서 분노가 올라온다. 젊은 목사일때 교단의 어른들이 유교적인 권위로 누르려고 하면 견디지 못했다. 어느 순간에 깨닫은 것이 있다. 저도 목회를 하면서 영적권위와 조직권위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나서, 제가 그런 권위에 대해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으면서 어느 순간부터 좋은 방향으로 클릭이 된다. 가족에서 경험이 그대로 사회경험에서 재현된다.
⑤ 담임목사–당회(교인들)–교단
담임목사가 당회나 교인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교단에 도움을 청할때 감정의 삼각관계가 일어난다.
⑥ 담임목사–Old Timers–New Comers
진짜 중요한 것은 새로 부임한 담임목사-오래된 기존교인-담임목사 부임후 새로온 교인들과의 감정적인 삼각관계이다. 대개 새로 부임한 담임목사는 항상 새로운 교인들과 친하다. 새로운 교인은 새롭게 부임한 담임목사에게 호감을 가져 교회에 온 사람들이다. 새로 부임한 담임목사는 대개 교회를 개혁하려고 하는 성향을 가진다. 자기 스타일대로 차츰 목회를 꾸려나가겠다는 경향을 가지게 된다. 새로운 목회를 펼쳐나가려 보면 기존교인들은 견제세력이 된다. 반면 새교인들은 지지세력이 된다. 자연스럽게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한가지 기억해야 할 사실은 한인이민사회에 이민이 끓겼다. 이제 1세대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교회의 평균나이는 고령화되고 있다. 전에는 새로운 담임목사를 청빙할때 대개 40-45세 사이를 청빙했다. 그런데 문제는 교인들의 평균연령이 올라갔다. 젊은 담임목사가 부임하면 교인들과 세대차이때문에 문화적인 공감대가 형성이 안되고 긴장과 갈등이 생긴다. 제가 5년전부터 주장하는 것은 이제 50세 정도되는 담임목사를 청빙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뉴욕과 뉴저지에 있는 규모있는 여러 교회들이 바로 이런 상황때문에 갈등을 일으킨 것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담임목사를 청빙할때 이것을 고민해야 한다.
최선이라고 한다면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그리스도의 몸을 형성해 나가는 것이 정답인데 현실이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도저히 공존이 안되는 이질적인 두개의 그룹이 공존해 나가는 경우도 많다. 후배목사 한사람이 30대 젊은 나이에 처음 담임목사로 부임나갈때 조언을 부탁해서 두 가지를 조언한 적이 있다. 절대로 부임하고 6개월동안 주보와 교회 좌석 배치를 바꾸지 말라고 했다. 부임 몇달후 전화가 왔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알고보니 주보도 바꾸고 교회좌석도 바꾸었다. 젊은 목사가 혈기왕성하여 하나씩 바꾸면서 자신의 페이스대로 목회하겠다고 하는데 오래된 기존교인들과 부딪치는 것이다.
이후 계속 교인들과 갈등이 있었다. 객관적으로 볼때 양측은 공존하기가 힘들었다. 부임후 7년정도 지났을때 담임목사가 교회에서 쫓겨나게 되었을때 감독이 개입해서 두개로 교회를 나누었다. 이후 후배 목사는 편안하게 목회를 하고 있다. 결정론적이기는 하다. 인간은 약하고 죄인이기에 악하다. 그래서 자꾸 한계를 드러낸다. 최선이 안될때는 차선이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하나님 나라의 비전으로 보면 그것이 그것이다. 싸울 바에는 교회를 두개로 나누어 세우는 것이 더 낫다. 그렇다고 문제가 있을때 마다 교회를 나누라는 말씀은 아니다.
▲감정의 삼각관계 해법
감정의 삼각관계 해결책
가장 좋은 해결책은 삼각형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누가 나를 감정의 삼각관계에 집어넣으려고 할때 참여하지 않으면 된다.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누가 나에게 와서 저사람때문에 못살겠다고 불평할때 쿨하게 떨어져 있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아 그래"하고 반응하면 벌써 감정의 삼각관계속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면 다 불안해진다.
감정의 삼각관계가 형성되었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박해자(Persecuter)'는 '이해자(Understander)'로 바뀌면 된다. 상대에 불만이 있으니 공격하는 것이다. 불만대신에 상대방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렇게 이해하고 공격을 멈추는 순간에 감정의 삼각관계는 깨진다.
'희생자(Victim)'는 '공급자(Provider)'로 바뀌면 된다. 희생자가 박해자에게서 공격을 받는다는 것은 박해자가 뭔가 희생자에게 불만이 많은 것이다. 그러면 희생자는 박해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헤아려서 그것을 보충해주는 공급자 역할로 바꾸면 문제가 해결된다. 희생자는 구조자에게 하소연을 하지말고 박해자와의 일대일 관계속에서 박해자의 입장을 헤아려주면 감정의 삼각관계가 깨어진다.
마지막으로 '구조자(Rescuer)'는 희생자가 불평을 한다고 관여를 하면 안된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수록 감정의 삼각관계가 더 굳건하게 형성되기 때문에 절대로 희생자를 구하려 하지말고 박해자와 희생자를 화해시키기 위한 '전략가(Strategist)'로 바뀌어야 한다. 어느 한쪽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박해자와 희생자 양쪽에 대해 동일한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희생자의 한쪽의 편을 드는 순간에 감정의 삼각관계가 형성되니 관여를 하려고 하지말고 서로 화해시키기 위한 화해자가 되어야 한다.
성경에는 감정의 삼각관계의 많은 예가 나온다. 다윗-사울왕-이스라엘이 좋은 예이다. 다윗이 사울왕에게 박해를 당하면서도 이스라엘을 향하여 구조를 요청안했기에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합격점을 주시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다. 만약 다윗이 구조요청을 하면 사울왕을 쫓아낼수 있을 정도로 다윗은 막강한 인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구조요청을 안했다. 그 밖에도 성경안에 많은 예들이 있다. 야곱의 패밀리 안에서도, 압살롬의 반정사건도 감정의 삼각관계로 분석이 가능한 케이스이다. 가장 건강한 감정의 삼각관계는 삼자에게 하소연하지 말고 하나님께 하소연하라. 다윗이 그렇게 했다. 시편에 보면 다윗이 하나님께 하소연하는 내용들이 많다. 그것이 가장 건강한 감정의 삼각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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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9월 설립된 바울성서원은 2015년 봄 학기 강의가 오는 3월 2일(월) 오후 8시부터 10시까지 뉴저지 팰팍에 소재한 필그림하우스(256 Broad Ave. 2floor Palisades Park, NJ 07654)에서 속강된다. 총 10주의 강의로 진행되는 이번 봄학기에는 지난 학기에 이어 김동수교수의 '로마서' 강의(8-16장)로 진행될 예정이다. 수강 신청과 문의는 박근재 목사 (시나브로교회 201-647-7766)에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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