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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사무엘 마펫(한국명 마삼락) 박사 추모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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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15-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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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9일, 98세의 나이로 소천한 사무엘 마펫(한국명 마삼락) 박사의 추모예배가 2월 24일(화) 오후 7시 뉴저지 필그림교회에서 열렸다. 추모예배는 고인과 관련된 프린스톤신학교 한인동창회, 미국장로교 동부한미노회, 미국장로교 한인교회 전국총회, 해외한인장로회 등이 공동으로 주관했다. 한편 3월 12일(목) 오후 2시 프린스톤 소재 나소장로교회에서는 프린스톤신학교가 주최하는 추모예배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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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사무엘 마펫 박사(아멘넷 자료사진)

추모예배는 인도 양춘길 목사(필그림교회), 기도 김홍채 목사(해외한인장로회 뉴저지노회 노회장), 찬양 뉴저지목사합창단, 설교 쉐인 버그(Shane Berg) 박사(프린스톤신학교 부총장), 고인의 약력소개 조문길 목사(미국장로교 동부한미노회 사무총장), 조사 김득해 목사(직전 동부한미노회 사무총장), 영상상영, 인사 아이린(Eileen) 여사(사무엘 마펫 박사 부인), 헌금기도 문정선 목사, 축도 길웅남 목사의 순서로 진행됐다. 예배는 이중 언어로 진행됐으며 통역은 손디모데 박사(프린스톤신학교 아시안 어메리칸 프로그램 디렉터)가 담당했다.

고 사무엘 H. 마펫(한국명 마삼락) 박사를 말하기 전에 한국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그의 아버지 사무엘 A. 마펫(한국명 마포삼열) 선교사에 대해 알아야 한다. 마포삼열 선교사는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에서 1890년 한국 선교사로 파송을 받았다. 1901년 한국에 최초의 신학교인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교장에 취임했으며 길선주 목사 등 한국교회의 부흥을 이끈 인물들을 배출해 냈다. 또 장대현교회의 담임목사를 지냈다. 사무엘 H. 마펫 박사는 아버지가 선교사역을 하던 평양에서 1916년 태어났다. 마포삼열 선교사는 1936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다 한국을 떠나 1939년 미국에서 소천했으며, 오랜 시간이 지나 그의 유해는 2006년 한국으로 돌아와 뭍혔다.

조문길 목사는 고인의 약력을 소개했다. 사무엘 H. 마펫 박사는 한국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미국에 건너와서 휘튼 칼리지에서 최우등상을 받으며 졸업했다. 1942년에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목회학 학위를 받았다. 1947년 중국에서 가르치다가 1951년 공산당에 의해 추방당했다. 프린스톤 신학교에 돌아와 강의하다 한국으로 돌아가 1959년 장신대에서 강의를 시작하고 대학원장과 부총장을 역임했다. 1981년 아세아연합신학대학을 설립을 기여하고 초대 총장을 지냈다. 이후 1987년 은퇴할 때까지 프린스톤신학교에서 석좌교수직을 맡아 학생들을 가르쳤다. 은퇴 후에는 계속 연구하고 집필하며 1992년 <아시아의 기독교 역사>를 출판했다.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학교를 빛낸 동문상을 받았으며, 한국정부가 주는 국민훈장모란장을 1981년 수상했다.

고 사무엘 H 마펫 박사 부인인 아이린 사모는 인사를 통해 "남편은 한국사람을 정말 사랑했다. 어릴 때 남편은 한국인 유모의 젖을 먹고 자랐다. 남편의 심장은 한국인이다. 평양에서 성장하면서 남편의 마음에는 한국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늘 있었다. 한국 분들을 존경하고 진실로 사랑했다. 한국사람을 너무 사랑하기에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통한 한국인들의 어려움과 아픔이 그를 슬프게 했다"고 말했다. 또 남편이 약혼후 사모에게 가르쳤던 첫문장인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를 사용하여 그들이 평생동안 섬기고 사랑했던 한국인들에게 남편을 대신하여 "나는 당신들을 사랑합니다"라고 인사했다.

김득해 목사는 조사를 통해 사무엘 마펫 박사는 한국교회는 물론 아시아와 세계교회 역사에 지대한 공로를 끼쳤다고 강조했다. 이어 친분을 통해 옆에서 본 사무엘 마펫 박사를 기억했다. "첫째, 그는 선교사의 아들로 처음부터 선교에 사명을 가지고 일생을 바친 선교사였다. 둘째 그는 선교사일 뿐 아니라 유명한 신학자로 역작인 <아시아의 기독교 역사>를 냈다. 셋째, 교회와 신학교의 행정가로 장신대와 아세안연합신학대학교 등의 총장등 중요한 역할을 했다. 넷째, 선교사명의 메세지를 담는 훌륭한 설교자였다. 다섯째, 유머가 풍부한 분이었다. 여섯째, 인생을 청렴결백하게 살았을 뿐만 아니라 항상 사랑이 풍성한 분이었다."

프린스톤신학교 쉐인 버그 부총장은 고린도후서 5:16-21을 본문으로 "그리스도의 사신"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 "사무엘 마펫 박사의 삶과 업적을 기리면서 그분이야 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대사라고 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다. 그는 사랑하고 애착을 가졌던 한국과 한국사람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대사의 사명을 감당했다. 그의 한국교회와 한국인들을 위한 헌신과 복음사역은 감히 세상의 잣대로 정도를 가늠할 수는 없다. 지난 60년 긴시간 동안 부부가 보여준 아름다운 복음의 길을 우리는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는 많은 신앙의 열매와 아름다운 발자국을 남기시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아간 귀한 분이다"고 말씀을 증거했다.

그리고 말씀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도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잔이었다. 죽음을 우리가 피할수는 없지만 이것 보다 더 큰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영원한 삶에 대한 소망이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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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양춘길 목사(필그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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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김홍채 목사(해외한인장로회 뉴저지노회 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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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뉴저지목사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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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쉐인 버그(Shane Berg) 박사(프린스톤신학교 부총장)/통역 손디모데 박사

사무엘 마펫 박사의 삶과 업적을 기리면서 그분이야 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대사라고 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다. 사무엘 마펫 박사의 삶을 볼 때 학자로서 또는 목사로서의 자신의 커리어만을 추구했던 사람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다. 하나님의 복음과 화목을 위해 하나님이 불러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사라고 하는 것 외에는 그가 다른 것에 신경을 쓰고 사역하지 않았다. 사도 바울 처럼 그도 세계 어디로 가든지 복음의 화해와 회복을 위해 말씀을 전했다.

그가 그렇게 사랑하고 애착을 가졌던 한국과 한국사람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대사의 사명을 감당했다. 여러분도 잘아시듯이 그는 생애의 많은 부분들을 한국교회와 한국인들의 신앙향상을 위해 헌신했다. 그의 헌신과 복음을 위한 사역은 감히 세상의 잣대로 정도를 가름할 수는 없다. 여러분들 중에서도 그분과 관계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사무엘 마펫 박사는 중국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대사로 섬겼다. 그의 복음의 메세지는 공산당에게 위협이 되어 추방됐다. 사도 바울도 2천 년 전에 이러한 것들에 대해 익히 잘 알고 있었다.

프린스톤신학교 입장에서 보아도 학생을 가르치며 신학교에서 귀한 예수 그리스도 대사의 삶을 산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사무엘 마펫 박사는 20세기 프린스톤신학교에서 가장 귀하고 가장 존경받는 교수중 하나였다. 그분이 걸었던 헌신과 사역은 정평이 나있었고 인정을 받는 학자였다. 뿐만 아니라 목회자로서 학생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다. 많은 학생들이 그로부터 사랑받고 용기를 얻었다. 은퇴하신 후에도 기회가 있을때 마다 강의하고 설교하고 학생들을 돌보고 여전히 바쁜 삶을 살았다.

그는 비록 육신의 몸은 쇠하고 나이가 들었지만 모든 것을 담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를 지금까지 사로잡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이었다. 그 놀라운 사역에는 사모를 거론하지 않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부부가 복음사역을 위해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위해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두 분이 가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부부는 서로 사랑하면서 사역을 감당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지난 60년 긴시간동안 부부가 보여준 아름다운 복음의 길을 우리는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는 많은 신앙의 열매와 아름다운 발자국을 남기시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아간 귀한 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사도이자 대사로서 아름다운 생을 살아온 그도 죽임은 피할 수 없는 잔이었다. 하지만 죽음을 우리가 피할 수는 없지만 이것 보다 더 큰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영원한 삶에 대한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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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약력소개 조문길 목사(미국장로교 동부한미노회 사무총장)

소천한 사무엘 H. 마펫 박사의 한국이름은 '마삼락'이다. 그의 아버지는 사무엘 A. 마펫 목사로 한국 이름은 '마포삼열' 선교사이다. 사무엘 H 마펫 박사는 1916년에 평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마포삼열 목사가 1890년부터 한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는 가운데 태어났다. 사무엘 H 마펫은 한국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미국에 건너와서 휘튼 갈리지에서 최우등상을 받으며 졸업했다. 1942년에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목회학 학위를 받았고 첫번째 아내(Elizabeth Tarrant)와 결혼했다. 1945년에 예일대학교에서 종교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47년 중국에 가서 Yenching 대학교에서 가르치다가 1949년에는 Nanking 신학교로 자리를 옮긴 후 1951년 공산당에 의해 추방을 당했다. 프린스톤 신학교에 돌아와 1953년부터 1955년까지 강의를 했다. 그때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1955년 선교사로서 한국으로 돌아갔으며, 1956년 프린스톤신학교 학생이었던 Eileen Flower과 결혼했다. 1959년 장신대에서 강의를 시작했고, 1966-1970년 대학원장, 1970-1981년까지 부총장을 역임했다. 1981년 아세아연합신학대학을 설립에 일조하고 초대 총장을 지냈다. 이어 프린스톤 신학교 총장이었던 맥콜 박사가 강권하여 교수로 부임한 후 1987년 은퇴할 때까지 석좌교수직을 맡아 학생들을 가르쳤다. 은퇴한 후에는 계속 연구하고 집필했다. 1997년에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1주일간 북한 결핵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자신이 태어난 북한을 방문했다.

여러가지 일들을 많이 했지만 가장 중요한 일중 하나는 <아시아의 기독교 역사(His history of Christianity in Asia)>라는 제목의 책을 낸 것이다. 1992년에 발간됐으며 2005년 증보판이 나왔다. 그 책들은 선교를 위해 아시아 기독교 역사를 공부하는 사라들에게 필수적인 서적으로 알려졌다. 프린스톤 신학교는 1977년도에 사무엘 마펫 박사를 학교를 빛낸 동문상을 주었고, 20년뒤인 1997년에는 부인이 같은 상을 받았는데, 학교역사상 부부가 같이 상을 수상하기는 처음이었다. 또한 한국정부가 주는 국민훈장모란장을 1981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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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김득해 목사(직전 동부한미노회 사무총장)

사무엘 마펫 박사는 한국교회는 물론 아시아와 세계교회 역사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지대한 공로를 끼쳤다. 몇 가지로 간단하게 정리해 보자.

첫째, 그는 처음부터 선교에 사명을 가지고 일생을 바친 선교사였다. 1890년에 한국에 들어가 한국 최초의 신학교인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교장을 역임한 마포삼열 선교사의 3남으로 평양에서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대를 이어서 선교사의 꿈을 가지고 그 길을 걷게 되었다. 그는 중국에서 추방되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둘째, 그는 선교사일 뿐 아니라 유명한 신학자였다. <아시아의 기독교 역사>라는 저서는 신학교뿐만 아니라 일반 대학에서 교과서로 사용할 정도로 역작이다. 그는 신학자로서 교회사에 대한 많은 책을 복간했는데, 특별히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한국최초의 평양지도는 고귀한 자료로서 지금은 프린스톤신학교 도서관에 진열되어 있다.

셋째, 그는 선교사이고 신학자이지만 동시에 교회와 신학교의 행정가였다.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와 친분 관계로 한국교회 발전에 지대한 공로를 세웠다. 장신대 명예총장 더 나아가서는 아세아 모든 기독교인들을 위해 세워진 아세안연합신학대학교 설립에 심열을 기울이고 초대 학장을 지냈다. 넷째, 훌륭한 설교자였다. 그의 설교는 간단명료하지만 항상 선교사명의 메세지를 주는 명설교였다. 그래서 그를 초청하려면 일 년전에 초청해야 모실 수 있을 정도였다.

다섯째, 유머가 풍부한 분이었다. 예수님이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 여러가지 비유로 말씀하셨듯이 그는 임기웅변적인 유머를 가졌다. 저에게 고향을 물어 평양이라고 대답하니, 자기도 평양에서 태어났다고 하시면서 발음이 틀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평양이 아니라 피양"이라고 했다. 다른 기억나는 것은 80세 생신축하예배가 프린스톤한인교회에서 열릴 때이다. 제가 축사를 한 후에 답사중 이런 이야기를 했다. 성경에는 사무엘상과 사무엘하가 있는데, 사무엘상은 자신의 아버지이고 사무엘하는 자기라고 하면서, 저의 이름도 사무엘이지만 세 번째 사무엘은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고 농담을 했다.

여섯째, 인생을 청렴결백하게 살았을 뿐만 아니라 항상 사랑이 풍성하고 경천하신 분으로 유교적으로 말하면 그는 성인과 같은 분이었다. 손님이 찾아오면 아무리 바빠도 모든 일을 접고 최선을 다해 신경을 쓰셨다. 저와 아내에도 많은 사랑을 베풀어주시고, 아내가 투병중일 때도 저녁을 사주시기도 했다. 아내의 장례식에서도 와서 위로해주었다. 책을 내면서 서문을 부탁할 때 떨리는 손으로 서문을 쓰면서 사모님이 대필하셨다.


▲동영상 / 인사 아이린(Eileen) 여사(사무엘 마펫 박사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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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아이린(Eileen) 여사(사무엘 마펫 박사 부인)

남편의 추모예배에 참가해 주셔서 감사드린다. 말씀등 순서를 맡으신 분과 예배를 위해 수고하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단 한사람만을 위한 추모예배라기 보다는 예배중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신 것에 너무 감사하고 이것이 남편이 원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남편과의 일화를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하여 개인적인 비밀을 하나 말하겠다. 남편은 유머가 있고 장난기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같이 살기에 신나는 상대이다. 1955년 약혼을 하고 몇 달간 남편은 한국에 있고 저는 미국에 떨어져 있었다. 제가 한 교회에 기독교교육 디렉터로 일을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 사정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같이 이메일로 대화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몇달을 우편메일을 주고받았다. 남편은 한국에 먼저 가있으면서 저에게 한국에서 오기 전에 중요한 한국말을 배워서 와야 한다고 했다. 중요한 말이란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것이었다. 나중에 무슨 뜻인줄 알고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가 곤란했다. 1956년 한국에 들어와 연동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날부터 25년 동안 한국과 한국인들을 섬기면서 살았다.

남편은 한국사람을 정말 사랑했다. 어릴 때 남편은 한국인 유모의 젖을 먹고 자랐다. 남편의 심장은 한국인이다. 평양에서 성장하면서 남편의 마음에는 한국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늘 있었다. 한국분들을 존경하고 진실로 사랑했다. 한국사람을 너무 사랑하기에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통한 한국인들의 어려움과 아픔이 그를 슬프게 했다. 그래서 그는 한국으로 늘 돌아가기를 원했고 고향인 평양을 방문하기 원했다. 특별히 더 그러길 원했던 것은 복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기 원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한국분들을 사랑하고 존경한다. 그래서 남편이 오래전에 결혼하기 전에 가르쳐 주었던 어휘를 지금 다시 한 번 말씀드리려고 한다. "나는 당신들을 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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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기도 문정선 목사. 이날 헌금은 모두 사무엘 마펫 박사 부부의 장학금 펀드로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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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사무엘 마펫 박사 추모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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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도 길웅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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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의 교회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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