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말 시리즈 ② 비판하는 말을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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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ㆍ2016-01-03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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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10월, 이철호 목사가 인도하는 부흥성회가 "입술의 열매로 복과 행복을 누리고 삽시다(잠언 18:20-21)"라는 주제로 뉴욕과 뉴저지에서 열렸다. 10월 2일부터 3일간은 뉴저지 필그림교회에서, 16일부터 3일간은 뉴욕만나교회에 열렸다. 강사 이철호 목사는 예장 합신 총회장을 역임했으며, 강성장로교회 담임목사로 33년동안 목회를 하고 있다.
이철호 목사는 성회를 통해 저주 받는 말, 축복을 받는 말, 행복을 주는 말, 불행을 주는 말에 대해 설교하며, 신앙생활을 할때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선포해 나갔다. 이 목사는 성경적인 근거와 함께 자신의 경험을 숨김없이 나누어 큰 도전을 주었다. 이 목사는 우리들은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을 하는데 ①판단하는 말 ②비방(비판)하는 말 ③대적하는(거스리는) 말 ④원망(불평)하는 말 등이 있다고 전했다. 신년에 사용하리라고 저장해 놓은 파일을 통해 4번에 걸쳐 신년 시리즈로 소개한다.
▲만나교회 성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이철호 목사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민수기 12:1)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민수기 12:8)
하나님께서 이집트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시는 것을 보면서, 4번째까지는 애굽의 술사들이 흉내를 냈는데, 그 다음부터는 흉내가 안된다. 일방적으로 애굽이 당한다. 당시 대제국이었던 애굽의 신은 최고의 신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그 신이 여지없이 여호와께 깨지고 있다. 이집트 원주민들과 이집트에 와 살고있던 여러나라 사람들은 끝내는 항복을 하고 출애굽을 시키는 것을 보면서 여호와 하나님이 진짜 신이고 최고의 신이라고 믿고 자신들도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애굽까지 따라나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광야에 들어가 광야생활을 하니 너무 고달팠다. 예수믿으면 좋겠다고 믿기 시작했는데, 금방 힘든 일이 생기면 하나님을 믿어도 안된다며 떨어지는 사람이 나오는 것 처럼 따라나온 사람들에게서 먼저 불만불평이 터졌다. 그 섞여있는 자들의 불만을 들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화뇌동해서 같이 원망불만을 터트렸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섞여있는 무리가운데 구스 여자, 즉 이집트 여자를 모세가 취했다는 것이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교회이다. 교회 지도자가 이방 여자를 취했다. 그러니 시대개념으로 보면 잘못했다. 그런데 아무도 이야기를 못한다. 모세는 하나님의 직접 계시를 받고 능력이 나타났기에, 뒤에서 불만불평은 터트리지만 누구도 대적하기 쉽지 않았다. 아무도 말을 못하니 미리암과 아론이 나섰다. 미리암은 모세의 누나이고, 아론은 모세의 형이다. 항상 주모자는 앞에 기록된 사람이다. 미리암이 나선것이다. 아론에게 "동생 모세가 잘못했는데 누군가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 지도자가 잘못했으면 누군가가 나서야 하는데 누가 나서나. 우리밖에 나설사람이 없지 않느냐"고 하자, 아론이 "맞아. 우리밖에 없다"고 했을 것이다. 아론은 동생밑에서 제사장 노릇을 하고 있었지만, 이때는 형으로서 누나로서 가서 잘못했다고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러면 보라. 잘못한 것을 잘못했다고 이야기를 한 것을 무슨 말이라고 하는가. 바른 말이다.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고 하는 말이 있다. 바른 말이다. 그런데 성경은 바른 말을 했다고 안하고 비방했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다음에 보니 누가 화를 냈는가. 비방을 받은 모세가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미리암에게 저주가 임하는데 문둥병에 걸렸다. 아론도 모세앞에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한다. 아론은 두 아들이 제사장으로 제사드리다가 잘못 제사드리다가 죽었다. 아론은 하나님앞에 망령된 것이 대적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을 아니 아론은 딱 엎드렸다. 중요한 것은 미리암은 여성 지도자이다. 출애굽기 15장에 홍해를 건너고 찬양할때 미리암은 맨앞에 찬양을 인도했던 여성 지도자였다. 그런데 이 사건이후에 미리암은 사라진다.
바른 말은 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왜 진노하시는가. 그것도 교회를 정화시키기 위해, 교회를 바르게 세우기 위해 총대를 맨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진노를 하신다. 앞에서 말씀드린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교회를 주관하는 이가 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오늘도 그분이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주권자임을 믿는가. 정말 믿는가. 하나님이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고 계시는데 왜 네가 나서는가 하시는 것이다. 심판해도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이다. 모세가 잘못했으면 하나님이 그에게 재난을 주신다는 것이다. 내가 나서서 개혁을 하겠다는 것은 성경적인 방법이 아니다.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마태복음 7:1)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마태복음 7:3-4)
주님께서 마태복음 7장에서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다. 비판은 남이 잘못한 것을 지적하는 것인데, 비판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리고 비판하지 말라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주님이 네 눈에는 들보가 들었다고 하신다. 기둥 하나가 들어있으니 앞이 잘 안보인다. 희끗보니 김집사 눈에 티가 보인다. 그래서 "김집사. 어떻게 눈에 티를 넣고 살아. 내가 빼줄께" 그럴 수가 있는데, 주님은 비유로 그럴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이유는 들보가 들어있어 제대로 안보이는, 가끔가다 살짝 보이는 그 눈을 가지고 김집사 눈의 작은 티를 뽑다가 눈알을 뽑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짓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주님은 오히려 네가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나는 죄수중의 괴수"라고 고백한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신다. 자기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다른 사람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겠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누구를 비판할 의로운 존재가 없다. 주님은 그 말씀을 하고 계신다. "너는 지금 들보와 같은 존재이다. 그런데 남의 티를 뽑겠다고 나서는가. 주제파악을 좀 하라. 너는 남을 판단하고 비방할 자격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엣날 재래식 화장실에는 구더기가 산다. 구더기들중에 시멘트 벽을 타고 올라오던 구더기가 아래에 있던 구더기를 보고 "어떻게 인생 그렇게 더럽게 살아"라고 말한다면, 그것을 보고 "너는 참 깨끗하니 어서 올라와라"라고 말할 것인가. 우리끼리 보면 좀 더 성화되고 안되고, 우리끼리 보면 좀 더 고상하고 안하고, 우리끼리 보면 좀 더 믿음이 있고 없지만 하나님이 보시면 다 죄인이다. 누가 누구한테 "인생 그렇게 살면 안된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너 자신을 알라는 것이다. 철학자의 말이 아니라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얼마나 죄인인지 보라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하루동안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 것을 영상화시켜서 주일예배후 상영한다고 하면 친구들을 초청할 수 있겠는가. 제가 하루동안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 것을 영상화시켜 주일예배후 상영한다면 저는 은퇴해야 한다. 만약 상영하려고 하면 결사반대할 것이다. 목사... 생각하는 것 추하다. 꼴사납게 굴면 무시하고 멸시할 때도 있고, 화가 나면 나도 모르게 저주가 나간다. 몇일전에 혼자 맨하탄에 있는 박물관에 가서 관람하고 왔는데, 백인여자들을 보면서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것으로 끝나는가. 저런 여자와 살면 어떨가를 생각하게 된다. 순간순간 무슨 생각을 안하는가. 주님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네 속이 썩어있다고 말씀하신다. 주님이 지금 그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이철호 목사는 성회를 통해 저주 받는 말, 축복을 받는 말, 행복을 주는 말, 불행을 주는 말에 대해 설교하며, 신앙생활을 할때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선포해 나갔다. 이 목사는 성경적인 근거와 함께 자신의 경험을 숨김없이 나누어 큰 도전을 주었다. 이 목사는 우리들은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을 하는데 ①판단하는 말 ②비방(비판)하는 말 ③대적하는(거스리는) 말 ④원망(불평)하는 말 등이 있다고 전했다. 신년에 사용하리라고 저장해 놓은 파일을 통해 4번에 걸쳐 신년 시리즈로 소개한다.
▲만나교회 성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이철호 목사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민수기 12:1)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민수기 12:8)
하나님께서 이집트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시는 것을 보면서, 4번째까지는 애굽의 술사들이 흉내를 냈는데, 그 다음부터는 흉내가 안된다. 일방적으로 애굽이 당한다. 당시 대제국이었던 애굽의 신은 최고의 신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그 신이 여지없이 여호와께 깨지고 있다. 이집트 원주민들과 이집트에 와 살고있던 여러나라 사람들은 끝내는 항복을 하고 출애굽을 시키는 것을 보면서 여호와 하나님이 진짜 신이고 최고의 신이라고 믿고 자신들도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애굽까지 따라나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광야에 들어가 광야생활을 하니 너무 고달팠다. 예수믿으면 좋겠다고 믿기 시작했는데, 금방 힘든 일이 생기면 하나님을 믿어도 안된다며 떨어지는 사람이 나오는 것 처럼 따라나온 사람들에게서 먼저 불만불평이 터졌다. 그 섞여있는 자들의 불만을 들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화뇌동해서 같이 원망불만을 터트렸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섞여있는 무리가운데 구스 여자, 즉 이집트 여자를 모세가 취했다는 것이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교회이다. 교회 지도자가 이방 여자를 취했다. 그러니 시대개념으로 보면 잘못했다. 그런데 아무도 이야기를 못한다. 모세는 하나님의 직접 계시를 받고 능력이 나타났기에, 뒤에서 불만불평은 터트리지만 누구도 대적하기 쉽지 않았다. 아무도 말을 못하니 미리암과 아론이 나섰다. 미리암은 모세의 누나이고, 아론은 모세의 형이다. 항상 주모자는 앞에 기록된 사람이다. 미리암이 나선것이다. 아론에게 "동생 모세가 잘못했는데 누군가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 지도자가 잘못했으면 누군가가 나서야 하는데 누가 나서나. 우리밖에 나설사람이 없지 않느냐"고 하자, 아론이 "맞아. 우리밖에 없다"고 했을 것이다. 아론은 동생밑에서 제사장 노릇을 하고 있었지만, 이때는 형으로서 누나로서 가서 잘못했다고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러면 보라. 잘못한 것을 잘못했다고 이야기를 한 것을 무슨 말이라고 하는가. 바른 말이다.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고 하는 말이 있다. 바른 말이다. 그런데 성경은 바른 말을 했다고 안하고 비방했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다음에 보니 누가 화를 냈는가. 비방을 받은 모세가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미리암에게 저주가 임하는데 문둥병에 걸렸다. 아론도 모세앞에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한다. 아론은 두 아들이 제사장으로 제사드리다가 잘못 제사드리다가 죽었다. 아론은 하나님앞에 망령된 것이 대적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을 아니 아론은 딱 엎드렸다. 중요한 것은 미리암은 여성 지도자이다. 출애굽기 15장에 홍해를 건너고 찬양할때 미리암은 맨앞에 찬양을 인도했던 여성 지도자였다. 그런데 이 사건이후에 미리암은 사라진다.
바른 말은 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왜 진노하시는가. 그것도 교회를 정화시키기 위해, 교회를 바르게 세우기 위해 총대를 맨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진노를 하신다. 앞에서 말씀드린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교회를 주관하는 이가 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오늘도 그분이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주권자임을 믿는가. 정말 믿는가. 하나님이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고 계시는데 왜 네가 나서는가 하시는 것이다. 심판해도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이다. 모세가 잘못했으면 하나님이 그에게 재난을 주신다는 것이다. 내가 나서서 개혁을 하겠다는 것은 성경적인 방법이 아니다.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마태복음 7:1)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마태복음 7:3-4)
주님께서 마태복음 7장에서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다. 비판은 남이 잘못한 것을 지적하는 것인데, 비판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리고 비판하지 말라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주님이 네 눈에는 들보가 들었다고 하신다. 기둥 하나가 들어있으니 앞이 잘 안보인다. 희끗보니 김집사 눈에 티가 보인다. 그래서 "김집사. 어떻게 눈에 티를 넣고 살아. 내가 빼줄께" 그럴 수가 있는데, 주님은 비유로 그럴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이유는 들보가 들어있어 제대로 안보이는, 가끔가다 살짝 보이는 그 눈을 가지고 김집사 눈의 작은 티를 뽑다가 눈알을 뽑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짓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주님은 오히려 네가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나는 죄수중의 괴수"라고 고백한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신다. 자기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다른 사람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겠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누구를 비판할 의로운 존재가 없다. 주님은 그 말씀을 하고 계신다. "너는 지금 들보와 같은 존재이다. 그런데 남의 티를 뽑겠다고 나서는가. 주제파악을 좀 하라. 너는 남을 판단하고 비방할 자격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엣날 재래식 화장실에는 구더기가 산다. 구더기들중에 시멘트 벽을 타고 올라오던 구더기가 아래에 있던 구더기를 보고 "어떻게 인생 그렇게 더럽게 살아"라고 말한다면, 그것을 보고 "너는 참 깨끗하니 어서 올라와라"라고 말할 것인가. 우리끼리 보면 좀 더 성화되고 안되고, 우리끼리 보면 좀 더 고상하고 안하고, 우리끼리 보면 좀 더 믿음이 있고 없지만 하나님이 보시면 다 죄인이다. 누가 누구한테 "인생 그렇게 살면 안된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너 자신을 알라는 것이다. 철학자의 말이 아니라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얼마나 죄인인지 보라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하루동안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 것을 영상화시켜서 주일예배후 상영한다고 하면 친구들을 초청할 수 있겠는가. 제가 하루동안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 것을 영상화시켜 주일예배후 상영한다면 저는 은퇴해야 한다. 만약 상영하려고 하면 결사반대할 것이다. 목사... 생각하는 것 추하다. 꼴사납게 굴면 무시하고 멸시할 때도 있고, 화가 나면 나도 모르게 저주가 나간다. 몇일전에 혼자 맨하탄에 있는 박물관에 가서 관람하고 왔는데, 백인여자들을 보면서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것으로 끝나는가. 저런 여자와 살면 어떨가를 생각하게 된다. 순간순간 무슨 생각을 안하는가. 주님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네 속이 썩어있다고 말씀하신다. 주님이 지금 그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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