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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은 사모 간증집회 "하나님은 살아계셔 역사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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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ㆍ2016-0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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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장영춘) 목사님의 목회를 내조하면서 하나님이 어떻게 당신의 피로 사신 교회를 세워나가시는가를 볼 수 있었다. 42년 전 어른 3명 어린이 4명으로 시작된 퀸즈장로교회가 재적 수천 명의 교회로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요한복음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주님의 말씀은 진리이다. 내가 죽고 희생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육신적으로 많은 것을 잃은 듯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역사하셨다. 심은 대로 거두시는 신실하신 하나님, 실수가 없으신 좋으신 하나님은 정성과 사랑을 심고, 땀과 눈물을 심고, 희생과 인내를 심었더니 수많은 영혼의 열매를 거두게 하셨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오늘이 있기까지 오랫동안 참아주시고 부족한 저희를 지금까지 사용해주신 좋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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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하는 장미은 사모

뉴욕새벽별장로교회(정기태 목사)가 2월 26일(목)부터 3일간 연 장미은 사모 초청 말씀간증집회에서 장 사모가 첫날 간증을 마치며 한 마무리이다. 장미은 사모는 퀸즈장로교회 장영춘 원로목사의 부인으로 사모의 역할을 감당했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동역자였다. 남편과 목회의 아픔을 같이 하며 고난을 통해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됐으며, 성령충만을 받고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사모의 역할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게 됐다. 현재는 동부개혁장로회신학교 교수로 후진들을 양성하고 있다. 다음은 간증내용이다.

1. 하나님을 만나다

불신가정에서 태어나 예수가 누구인지 모르고 성장했다. 15살때 <벤허>라는 영화를 보고 십자가에서 죽는 예수님에 대해 이상하게 마음이 끌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친구에게 교회 한 번 나가보자고 하고 처음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교회에 나가면서 목사님의 설교가 마치 저를 향해 하는 말씀으로 부딪쳐 왔다. 예배를 드리면서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깨닫기 시작했다. 교만하고 강팍했던 저는 말씀을 들을수록 죄짐이 누르기 시작하고 너무 괴로웠다. 너무 힘들어 차라리 교회를 안 나가고 싶었지만 교회에서 예배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오면 자연스럽게 성경을 들고 교회를 나갔다.

16살 되던 해, 다니던 교회에서 학생부 부흥회를 열었는데 마지막 날 새벽에 죄만 생각이 나서 눈물 흘리고 기도하는데 번개같이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주셨고 나는 이미 용서를 받았다는 생각이 번개같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죄에서 놓임을 받았다. 너무 기뻐서 벌떡 일어나 "나는 구원받았다. 천국갈 수 있어요" 하고 뛰며 소리 지르면서 울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집에 돌아오는데 만물이 새로워졌다. 무서운 죄의 고통과 지옥의 고통에서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기위해 내 생애를 드려야 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삶이 너무나 변했다. 나만 위해 살았던 제가 예수중심과 교회중심의 사람으로 변했다.

하지만 불신 아버지에게서 심하게 핍박을 당했고, 대학을 졸업하고 1969년 도피겸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대학시절 알게 된 목사님이 먼저 유학을 떠나 몸이 약한데도 웨이터로 일하며 너무 힘들게 일하는 것을 보고 공부를 포기하고 남편될 사람을 도와야 겠다고 다짐했다. 부모님에게 알리지 못하고 결혼했으며,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절연을 선포하는 아버지의 편지가 왔다. 둘째를 놓고 어머니가 미국에 오신 것을 계기로 조금씩 아버지와 소통하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아버지도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남편이 한국에 부흥회를 인도하러 나가면 "우리 사위, 한경직 목사보다 설교를 더 잘해"하면서 흡족해 하셨다.

2. 뉴저지한인교회 시절

남편이 박사과정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침례를 다시 받아야 한다고 학교에서 통보하자, 고민하던 남편은 뉴저지에서 제자들의 초청으로 뉴저지한인교회를 1972년 설립했다. 개척교회에서 받는 사례로 생활이 안 되어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살림하고 목사님의 목회를 도왔다. 주일에는 주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새 신자 오면 집에 초청하여 식사를 나누며 교제를 나누었다. 목사님은 주중에도 수시로 집에 교인들을 초청해서 식사를 대접했다.

너무 피곤하고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주중에 까지 교인들을 초대하는 것이 달갑지 않아서 화를 내기도 했다. 목사님을 도와 최선을 다한다고 노력했지만 진정한 기쁨이 넘쳐서 하지는 못했다. 분명히 주님은 사랑을 하고 있었지만 그들을 위해 피흘려주신 양떼들을 사랑하지는 못했다. 그들은 주는 것은 모르고 대접만 받으려 하고 도움만 받으려는 것 같이 보였다. 우리의 희생만 즐기는 것 같은 원망이 생겨났다.

3. 퀸즈장로교회 개척

1973년 뉴욕에 사는 성도의 부탁으로 퀸즈장로교회 첫 예배를 드렸으며, 1974년 2월 뉴저지한인교회를 사임하고 퀸즈장로교회를 공식적으로 설립했다. 당시 저의 나이 27살 때였다.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교회가 부흥했고 1년 만에 예배장소가 비좁아 옮길 정도였다. 저는 당시 비서나 전도사가 할 일을 했다. 교인명부와 출석부를 만들어 출석을 점검하고 교인의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했다. 심방 스케줄을 짜고 주보를 만들고 편지발송을 도왔다. 주일에는 친교와 청소 등의 역할을 담당했으며, 행사 때는 여전도 회원들과 부엌에서 시간을 보냈다. 남편은 새 교우가 나오면 주일에 집에 데려와 식사를 대접했으며, 20-30명 집에 초청하여 식사를 대접했다. 그럴 때면 비용이 적게 드는 냉면이나 비빕밥을 준비하여 대접했다. 남편은 집에 돈 백불도 없는데 건축을 위해 6천불 작정해 이를 위해 다시 1년간 일하기도 했다.

주일예배때에는 아이들을 돌볼 공간이 없어 우리 집을 사용했다. 당시 220불짜리 반지하 아파트를 사용했는데 비가 오면 물이 역류하며 난리가 났다. 나중에 교회에서 알고 예산을 잡아 다른 것으로 이사하려고 했으나 교회 건축이 끝날 때까지 이곳에 살자고 목사님이 반대하여 10년을 살게 되었다.

4. 시련을 통해 허락하신 성령충만

퀸즈장로교회가 급성장하면서 타교단 배경의 장로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첫 5년 동안 진통이 있었다. 교회는 분열의 상처 때문에 한동안 제자리에 있었다. 하나님은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 부부를 붙잡아 주셨다. 인간적으로 의지했던 모든 사람을 떠나게 하셨고 대신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살아계신 하나님만 의지하는 목회의 비법을 터득하게 하셨다. 목사님이 기도하러 떠나기 시작했다. 짐을 싸고 몇일씩 미국교회 수양관이나 기도원에서 가서 기도했다. 남편이 기도하러 떠나면 저도 몇일이나 금식하며 목사님이 담대한 믿음으로 모든 시험을 이기고 더 귀한 하나님의 종으로 사용하게 해 달라고 기도에 매달렸다.

저는 남편이 당하는 고통을 함께 하면서 남편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미웠다. 그들과 대면하는 것이 싫었으며, 마음이 없는 웃음의 띄고 인사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기도한다고 앉으면 눈물만 흘렀다. 사모의 길이 어렵고 험난한 것을 각오하고 주님을 위해서라면 순교제물이 되겠다고 그렇게 수없이 약속했지만, 막상 시험이 닥치니 인간의 힘으로는 모든 것이 불가능했다. 다른 사람은 직업이 싫으면 바꿀 수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오열이 터져 나왔다. 무엇보다 아무리 힘들어도 주님이 원하시는 사모의 길을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더욱 눈물이 났다.

연약한 상태의 저를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시고 좌절의 늪에서 건져주셨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괴로워하던 1976년 6월 어느 저녁, 책꽂이에 있던 책 하나의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다. 미국교회 사모의 간증책인데 사모가 성령충만을 받은 후에 사모의 일을 기쁨으로 감당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나도 성령충만 받아서 사모역할을 기쁨으로 감당해야겠다고 작정했다. 밤에 다 잠든 다음에 무릎을 꿇고 지난 모든 죄를 회개했다. 특히 목사님에게 불순종 한 것, 말썽부리는 교인들을 미워한 것, 자녀를 제대로 돌보지도 못하고 신경질 부린 것, 하나님께 믿음으로 모든 문제를 맡기기 보다는 염려한 것 등 모든 죄를 고백했다. 이제 사모의 일을 바로 감당하기 원하오니 십자가를 울면서 지지 않고 기쁨으로 질 수 있도록 성령충만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성령충만을 받지 못하고 사모의 일을 감당하기 보다는 차리리 죽는 것이 나으니 성령충만을 안 주시려면 생명을 거두어 가시라고 매달렸다.

책에 나오는 방법대로 목상하고 성경말씀을 아뢰면서 믿음으로 간구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고 성령충만 주신 것을 믿고 찬양하기 시작했다. 찬양할 때 갑자기 몸이 뜨거워지고 혀가 말리더니 감사가 터져 나왔다. 밤새도록 방언으로 기도하고 찬양했다. 내 영혼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다. 성령의 은사를 체험하고 가장 달라진 것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마음에 부어지면서 모든 사람이 사랑스러워졌다. 남편과 자녀들이 더 사랑스러워졌으며, 교인들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을 용서하는 마음이 생겼으며, 괴롭히는 사람을 위해 눈물로 기도할 수 있게 됐다.

5. 기도의 응답

교회는 안정되었고 다시 부흥하기 시작했다. 1983년에는 입당을 했다. 목사님의 목회를 돕기 위해 가장 힘쓴 부분은 기도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늘 기도가 부족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의 양을 채우지 못해 부끄럽다. 그러나 할 수만 있다면 최선을 다해 기도의 자리를 지키려고 애썼다. 건축을 하면서 연속금식기도의 자리가 비면 다 맡아서 기도를 감당했다. 목사님이 쓰러지기 전에는 화요일 마다 24시간 금식기도를 했다. 주일설교시간에 강대상 밑에 중보기도실에 만들어놓고 설교하는 목사님을 위해 기도했다. 25년간 수요일과 목요일에 성도들의 성경공부를 인도한 후 교회와 목사님과 성도들을 위해 뜨겁게 기도했다. 가장 신경을 쓴 것은 새벽기도 30분전에 미리 교회에 가서 교적부를 놓고 성도들을 위해 기도한 것이다. 은퇴 후에는 교인들의 전화번호부를 확대해서 새벽마다 기도하고 있다.

제가 사모로서 강조한 것은 목사님이 하나님의 일만 하도록 하는 것이다. 목사님이 교회, 신학교, 신문사 등의 1인 3역을 할 수 있도록 집안일에 신경을 안 쓰도록 노력했다. 한 번도 목사님에게 집안청소를 안 시켰다. 눈이 와도 내가 치웠다. 몸이 약한 목사님이 하나님의 일만 하도록 최선을 다했다. 모든 우편물 정리, 청구서와 체크북 정리, 아이들 교육 및 육아, 설교출간 원고 정리, 주보 설교요약 정리, 강의자료 준비, 축사 교정 등의 역할을 담당했다. 목사님이 예화를 찾으라고 하면 빨리 찾을 수 있도록 속독훈련도 했다. 1987년 동부개혁장로교신학교가 설립되고 1회 졸업생이 되었다. 훼이스신학교에서 이후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동부개혁장로회신학교에서 헬라어와 여전도사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동안 기도 해 왔던 4가지가 응답되었다. 첫째, 불신 부모들이 구원받도록 기도했는데 늦게 믿어 안수집사와 권사님이 되어 딸과 사위의 기도후원자가 되었다. 둘째, 목사님이 세계를 움직이는 신실하고 겸손한 하나님의 종이 되도록 수만 번 기도한 것을 응답해주셨다. 셋째, 퀸즈장로교회가 하나님을 기뻐하게 하는 아름답고 좋은 소문이 난 이민교회의 본이 되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했는데 응답해 주신 것을 믿는다. 넷째, 자녀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받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응답해 주셨다. 늘 교회 일만 하느라고 자녀들을 잘 돌보지 못했다. 하나님이 잘 양육하여 주시고 이를 간증할 수 있도록 하게 해달라고 기도해 왔는데 응답되었다. 기도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응답하신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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