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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PC 뉴욕동노회 수련회 “예배에 대한 신학적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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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ㆍ2019-08-28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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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KAPC) 뉴욕동노회(노회장 정준성 목사)는 36명의 목회자와 가족들이 참가한 가운데 8월 26일(월)부터 28일(수)까지 포코너 매너 리조트에서 목회자 수련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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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은 저녁예배후 공동체 게임을 통해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이어 이길호 목사(뉴욕성실장로교회)와 김동수 목사(바울신학원 원장)의 “예배에 대한 신학적 이슈”에 대한 패널 토론이 진행됐다. 둘째 날 저녁에는 이상만 목사의 사회로 목회적인 나눔의 시간을 가졌다. 나눔을 통해 과거 70년대의 목회적 토양과 현저하게 다른 척박한 오늘날 목회 현실에서 어떻게 실수를 최소화 하면서 바르게 교회다운 교회로 갈 수 있는지 여러 선배 목사들의 실수를 통한 경험담을 듣는 시간이었다.

 

다음은 김동수 목사(바울신학원 원장)가 “열린예배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제목으로 나눈 내용이다.

 

1. 예배란 무엇인가 

 

예배하다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샤카이고 헬라어로는 프로스쿠네오입니다. 창세기 22:5 절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러 모리아산으로 가서 그 사환에게 말하기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샤카는 복종하다 절하다의 뜻이 있습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드린 예배는 희생 제물을 바침으로써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희생 제물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게 하는 다리를 놓아주었습니다. 인간은 원죄로 인해 부정해져서 하나님 앞에서 나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희생제물을 바침으로써 죄를 씻고 의식적 정결을 갖춘 후에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백성들은 구름기둥으로 임재하신 하나님을 각기 장막문에 서서 경배했습니다 (출 33:10). 아직 제사법이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은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었습니다. 모세는 십계명과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법을 자세히 말씀했습니다. 그것은 속죄제사를 통해 자신과 공동체의 거룩함을 유지하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이방인들로부터 거룩하게 구별된 백성으로써 하나님께 올바로 예배를 드리도록 되어 있었습니다(출 19:56).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나 사울 같은 사람에게서 보듯이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만홀히 여겼습니다. 솔로몬은 이방신을 섬김으로써 징벌을 받았고 그 이후 많은 왕들과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났고 예배에 실패한 결과 그들은 바벨론 유수를 통해서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습니다.

 

바벨론 유수에서 돌아온 후 에스라와 느혜미아는 예배의 회복을 위해서 백성들을 가르쳤습니다. 이 시기에 역대상하 저자는 올바른 예배를 드리는 방법에 대해서 자세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레위인들이 제사에 관한 봉사를 맡게 했고, 언약궤를 레위인들에 의해서 옮기게 했으며, 음악을 레위인들이 담당하게 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되며 정성껏 예물을 드려야 하고 경배함과 옷을 찟음과 절기에 참여해야 하는 법규를 자세히 명시하고 있습니다. 예배는 형식적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 드려야 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상 28:9; 대하 19:9). 마음이란 단어가 구약에 850번 사용되고 있는데 역대상하에만 63번 사용되고 있습니다. 역대상하에 “온전한 마음” 혹은 “전심으로”라는 표현이 21 번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마음은 받지 않으시고 겸손하고 온전한 마음을 받으십니다. 역대상하 저자는 예배에 있어서 기도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기도 (대상 17:16-27; 29:10-19), 여호사밧의 기도 (대하 20:5-12), 히스기야의 기도 (대하 30:18-19)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은 바벨론 유수기의 선지자입니다. 그는 유대왕들이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경홀히한 것을 알았기 때문에 왕의 예배법을 46:2 절에 말씀합니다. “왕은 바깥 문 현관을 통하여 들어와서 문 벽 곁에 서고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번제와 감사제를 드릴 것이요 왕은 문통에서 경배한 후에 밖으로 나가고 그 문은 저녁까지 닫지 말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예배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 인류가 참여하게 되어있었습니다. 시편기자는 하나님께 대한 예배의 보편화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열방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경배”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시 22:27; 86:9; 102:22; 사 19:21, 23; 66:23).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시 29:2). 이는 예배를 드리는 태도가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시편 95:6 절은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라고 말씀함으로써 우리가 하나님께 완전히 겸손한 마음과 복종하는 자세로 나가야 함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또 우리는 거룩함의 영광으로 예배드려야 하며 하나님 앞에서 떪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시 96:9). 우리는 그의 발등상 앞에서 경배해야 합니다 (시 99:5; 132:7).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하게 예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는 것을 질책하셨습니다 (마태 15:9; 막 7:7).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를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찿으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신약시대의 예배 

 

신약시대의 예배는 유대회당에서 드린 예배 형식을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그것은 말씀을 읽고 설교자가 설교를 하는 것이 예배의 주요부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신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하신 것입니다. 바울도 가는곳마다 유대회당을 거점으로 복음을 전한 것도 이런 예배의 형식을 플렛폼으로 한 것입니다. 교회시대에 예배형식은 구약의 성전에서의 제사의식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는가에 따라 다릅니다. 그리스정교에서 예배는 성직자 중심의 예배입니다. 성도들은 예배시간에 제사의식과 같은 긴 의식을 서서 관람합니다. 평신도들은 예배의 참여자가 아니라 관람자들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카톨릭교회에서 예배도 성직자 중심의 의식이 주요부분을 차지하고 성도들은 수동적으로 의식에 참여합니다. 교인들은 성만찬의 잔에 참여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습니다. 종교개혁을 통해서 의식적 예배가 개혁되고 하나님의 말씀 선포가 예배의 중심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말씀이 선포되는 강대상이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흥운동을 통해서 회중교회가 생기게 되고 성직자와 회중의 구분이 약화되면서 회중이 예배에 참여하는 교회가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성직자가 예배의 인도자이지만 회중도 예배에 참여하는 부분이 늘어나는 방향으로 예배가 변화되어 왔습니다. 주일예배때에 집사도 성경봉독을 하며 또는 대표기도를 하며 심지어 설교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젊은이들의 예배에서는 말씀보다 경배와 찬양 시간이 더 늘어나는 변화가 있어왔습니다. 현대 진보교회들은 여자 안수를 허용하고 말씀의 권위가 약화되고 이와 함께 강대상의 신성함도 무시되고 있습니다. 음악과 영상과 퍼포먼스가 예배의 중심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예배는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시간이기보다 함께 노래하고 위로받는 프로그램이 되는 경향이 증가해 왔습니다. 

 

3. 열린예배 

 

열린예배는 회중을 예배에 적극 참여 시키자는 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성직자의 역활의 약화, 말씀선포의 약화, 성례 의식의 간소화, 음악과 찬양의 강화, 영상과 조명과 음향기기의 효율성 활용의 증대 등의 요소가 특징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헌신의 시간이 아니라 위로를 주는 시간으로 되었습니다. 예배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리고 거룩이 아니라 감동이 동기가 되었습니다. 

 

서울의 한 대형교회는 시카코의 윌로우크릭교회를 벤치마킹해서 열린예배를 실시해오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새신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주일날 강단에서 연극을 하고 댄스를 하고 대중가요를 부르게 합니다. 심지어 설교자가 강단에 자전거를 타고 올라와서 앞에 준비된 티테이블 앞에 앉아 대화를 하듯이 부드럽게 설교를 합니다. 개혁주의교단에 속해있는 팀켈러 목사도 선교적교회를 지지하면서 “선교적”이란 의미는 예배와 봉사와 훈련 등 모든 것을 지역의 불신자 사회와의 교류를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재구성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예배는 신자들과 불신자들을 다 포함하도록 해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설교자가 설교시간에 종족적 언어(tribal languages)를 사용해서 회중석에 앉아 있는 불신자에게 소외감이 들게 해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전문음악인이 찬양이나 특송을 맡게 해서 불신 방문자들이 계속 교회를 방문하도록 유인해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이머징교회(emerging church)운동도 예배에서 말씀과 가르침의 요소를 약화시키고 젊은이들이 즐겨듣는 음악을 부르게 함으로써 그들을 교회로 불러들이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문적인 음악이 연주되기 때문에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연주를 감상하고 앉아 있는 것이지 죄를 뉘우치고 참신자가 되지 못한 채 명목적인 신자로 머무르기 쉽습니다. 

 

4. 열린예배에 대한 비평 

 

열린예배는 회중중에 불신자들이 예배시에 편안하게 참여하고 그들에게 예배에의 관심을 일으키게 하고 궁극적으로 신자가 되게 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배와 전도를 혼동하는 착오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첫째,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서 거룩한 마음과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 분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불신자들의 관심을 이끌어내서 전도하기 위한 시간이 아닙니다. 전도를 위해서 예배의 경건의 기준을 낮추고 세상 문화를 도입해서 불신자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려한다면 예배는 그들이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그들의 외로움을 덜어주고 위로를 주는 모임 정도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회심을 경험하지 못하고 클럽활동을 하는 것처럼 교회활동을 하는 채 머물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의 멤버십을 늘리는데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교회는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단체로 전락하게 됩니다. 죠엘 오스틴 목사의 부인 빅토리아 오스틴은 예배시간에 예배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회중 당신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예배의 목적과 본질을 모르는 신성모독의 발언입니다. 예배에 불신자가 참여하고 믿음을 가지게 하는 것은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 예배의 경건함과 거룩함을 내던지고 그리스도중심의 말씀선포를 포기한다면 그것은 비성경적이며 적그리스도적인 것입니다. 주일 예배 때 아직 회심하지 않은 회중을 위해서 전통적인 영적인 찬송을 부르지 않고 세상노래를 부르며, 예배시간에 신앙고백을 하지 않고 성만찬을 베풀지 않는 예배에서 신자들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지 못하게 되고 성례를 통한 은혜 체험을 경험하지도 못하게 됩니다.

 

둘째, 불신자를 회심시키는 것은 감미로운 음악이나 드라마와 재미있는 이야기나 전문적인 연극이 아니라 그리스도중심의 설교를 통한 성령의 역사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0:17 절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말씀합니다. 이와 함께, 베드로의 사역에서 알 수 있듯이 베드로가 오순절에 그리스도중심의 설교를 통해서 하루에 삼천 명이 회심을 했습니다. 따라서 전도의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이지 그 이외의 문화적 장치가 아닙니다. 종교개혁때 캘빈과 루터 등 개혁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예배의 중심에 놓고 있었습니다. 웨슬리나 휫필드나 에드워드 등 부흥운동가들도 하나님의 말씀 선포를 예배의 중심요소로 생각했습니다. 

 

셋째, 신약시대 예배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완성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단번에 구속을 이루셨고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은 거룩한 씻음을 바탕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자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배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시간입니다. 예배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경배하고 말씀에 바탕을 두고 회개하며,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께 헌신을 재다짐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주일 예배시간은 연극을 보여주고 수요예배시간에 성경말씀을 배우게 하는 이분법은 예배의 목적과 본질을 모르는 발상에서 나온 형태입니다. 시카고의 윌로우크릭교회에서는 주일에는 구도자예배를 드리고 수요일에 소그룹을 통해서 말씀을 배우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알려진 바와 달랐다는 증언이 있습니다. 소구룹 성경공부는 매주 열리지 않았고 일 년에 총 14 =회 정도 모임이 있었습니다. 각 모임도 커피를 마시고 쿠키를 먹으며 담소를 즐기는 정도의 모임이었고 그것도 한 20 분이 지나면 한 두 사람씩 자리를 비우고 떠나는 영적으로 채워짐이 전혀 없는 공허한 시간들이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https://ca.thegospelcoalition.org/columns/ad-fontes/abandoned-seeker-church/ (June 27, 2019) 

 

넷째, 열린예배는 연극을 위해 무대장치와 토막극을 위한 대본과 연출, 조명, 음향 등 많은 장치를 필요로 합니다. 이를 위해 교인들이 봉사할 때 서투른 부분이 있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점점 전문인들을 고용하게 되고 그들은 영적인 의미와 상관없이 전문성에 바탕을 두고 일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교회에서 봉사의 일을 하면서 서로 사랑으로 하나되는 은혜를 체험하는 기회를 소멸시킵니다. 그리고 교회의 행정에는 평신도 봉사자들의 참여가 점점 배제되고 교역자들이 맡게 되고 교역자들은 영적인 사역보다는 행정이나 관리를 위한 스태프로 전락하게 됩니다.  

 

다섯째, 예배에서 전통적인 신학적 용어 즉 구속이나 언약 등 어려운 용어를 배제하고 불신자들이 편안히 들을 수 있는 용어로 대체해야 된다고 하는 것도 성경의 가르침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물론 어려운 신학적 용어를 사용할 때 설교자는 이를 설명하면서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배에 방문한 불신자들을 위해서 회개 구원 거룩 심판 등 용어를 완전히 배제해서 설교를 해야 된다는 것은 극단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그들”이라는 구분의 표현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비성경적입니다. 성경의 저자들은 중생한 신자들을 제사장의 나라요 거룩한 백성이요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바울도 중생한 신자들을 하나님의 양자들이라고 부릅니다. 예배는 본질적으로 신자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의 시간이며 불신자들은 방문자들로써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우리-그들”의 구분은 자연스러운 구분이며 불신 방문자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구분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여섯째, 그리고 어떤 특정한 그룹에 초점을 두는 것은 그 외의 그룹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윌로우크릭교회는 베이비붐세대와 그 자녀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그러면 노년세대는 누가 보살피겠습니까? 외국인들과 이민자 그룹은 누가 돌보겠습니까? 가난한 자들과 장애인 구룹은 누가 사랑하겠습니까? 그리스도의 교회는 남자나 여자나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종이나 상전이나 상관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자매로서 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 경배드리는 공동체입니다. 주님께서는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자들을 양무리로 불러들이셨지 사회의 어떤 특정한 그룹을 대상으로 전도하시지 않았습니다. 어떤 교회는 어떤 특정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초청해서 맞춤형 전도를 하고 그들이 교인이 되면 그들끼리의 소그룹을 만들어 주고 이에 속하게 해서 그들 간에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한 교제를 이어가게 합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 파당이 형성되게 하고 각종 직업인들을 구분해서 분리시키고 화합의 분위기를 박탈하고 위화감을 조장하여 교회에서 성도들이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를 초월하여 하나 되어야 됨을 저해할 수 있습니다.  

 

5. 열린예배의 문제는 말씀의 빈곤의 문제 

 

교회는 전도도 해야 하지만 동시에 기존 교인들을 교육하고 그들의 헌신을 불러일으키며 그들이 변화되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게 할 목적을 가집니다. 그러나 열린예배의 교회들은 교육보다는 불신자들을 즐겁게해서 그들이 멤버가 되게 하고 그들에게 소속감을 주어 사회적 만족을 얻게 하는데 관심을 둡니다. 그들을 회심시키고 말씀으로 변화시켜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써 사회에서 빛과 소금이 되게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예배를 불신자에 초점을 두는 것은 불가피하게 신자들을 영적으로 고갈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교회는 성도들을 가르쳐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을 해야 하는데 (엡 4:12), 열린예배의 교회들은 이 일들을 방치함으로써 결국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건강을 해치고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근본적으로 열린예배를 실행하는 교회들은 하나님 말씀 중심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불신자가 회심하게 되고 신자들도 영적으로 자라나 더욱 헌신하게 되는데 말씀이 가르쳐지지 않기 때문에 기존 신자들도 영적으로 고갈되고 그들의 신앙도 미지근해지며 명목적인 것으로 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이는 결국 잘못된 교회론에 바탕을 둔 결과이며 궁극적으로 잘못된 기독론과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시지 회중 안에 있는 불신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전도의 대상이지 예배의 목적이 되어서는 않됩니다. 

 

6. 열린예배의 폐해 

 

윌로우크릭 교회의 부교역자로 있었던 Paul Carter 목사는 자신이 이 교회에 5 년간 있는 동안 교회를 방문한 불신자가 열린예배를 통해서 예수님을 믿게 되고 소구룹에 참여해서 제자로 성장하게 된 단 한 사람도 보지 못했습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https://ca.thegospelcoalition.org/columns/ad-fontes/abandoned-seeker-church/ (June 27, 2019)) 

 

그대신 짧은 예배시간, 보다 감미로운 음악을 원하고, 간섭받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편안한 신앙생활을 원하는 다른 복음주의 교회로부터 수평이동한 많은 신자들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구도자 교회는 편안한 신앙생활을 원하는 명목적 신자들이 복음주의적 교회를 이탈하는 연착륙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증언이 사실이라면 열린예배 운동은 진정한 전도운동이나 경건주의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말씀 중심이 아니라 전문인 중심의 예배 봉사를 통해서 예배의 그리스도 중심의 경건은 사라지고 교회의 세속화와 교인의 수평이동을 부채질하고, 제자운동을 저해하고 성숙하고 온전한 신앙교육을 저하시키는 폐해를 내포합니다.  

 

7. 성경적 예배의 회복을 위하여 

 

교회에서 공예배는 기본적으로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된 신자들이 모여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경배하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은 불신자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그들을 즐겁게 해줘서 교인이 되게 만드는 시간이 아닙니다. 예배는 성직자가 인도해야 되며 성령 충만함이 인정된 사람들이 참여해야 됩니다. 예배의 목적은 불신자를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경배하는 것입니다 (빌 3:3). 예배순서의 중심은 음악이나 연극이나 드라마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이 시간에는 통회와 자복이 있어야 하고 신앙고백이 확인되어야 하고 성례가 베풀어져 하나님의 은혜가 회중에게 역사하게 해야됩니다. 예배를 위한 준비나 봉사는 전문인 중심으로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들이 참여함으로써 봉사의 기쁨을 맛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예배나 봉사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는데 있습니다.  

 

예배는 또 의식적인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 측면도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12:1 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예배는 그리스도인의 순종적 삶의 연장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는 삶을 살기 때문에 그 삶에 있어서 예배의 장과 그 밖의 영역의 구분이 없어져 있습니다. 자신의 일상적 삶에서 예배적 삶이 회중의 예배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입니다. 주일에 드리는 공예배는 거룩한 공회의 예배를 통해서 예수님의 임재를 성령을 통하여 경험하는 시간입니다. 따라서 예배는 신자들에게 은혜의 통로가 됩니다. 그것은 그들의 신앙의 확인과 성장을 위해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시간입니다. 예배는 그리스도를 통해 창조주 하나님께 영적 제사를 올리는 거룩하고 엄숙한 헌신의 시간입니다. 이 시간을 전도의 시간으로 계획하고 구성하는 것은 예배의 목적을 훼손하는 것이고 불신자들에 대한 복음의 증거 능력 자체를 잃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3 교회가 예배의 목적에 충실하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한다면 복음의 빛이 더 밝게 어두운 세상에 비치게 될 것입니다. 

 

“참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최선의 방법은 하나님 자신에 의해 제정되었고, 그분 자신이 계시하신 뜻에 의해 제한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의 망상이나 고안이나 사단의 지시에 따라 어떤 가견적 예배상 앞에 혹은 성경에 말씀하지 않은 방법으로 예배드리면 안 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1 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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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신교회, 나라와 민족 사랑을 위한 광복기념 축하 음악회 2016-08-14
이승만 박사 기념사업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건국사 세미나” 2016-08-13
황규복 장로 “왜 노 장로들이 다민족선교대회를 하는가?” 2016-08-10
염안섭 원장 “내가 경험한 동성애와 에이즈와의 관계는?” 2016-08-08
1.5세 이승한 목사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이유 댓글(2) 201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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