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랑장로교회, 류응렬 목사 초청 추계부흥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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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ㆍ2016-10-26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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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랑장로교회(정준성 목사)는 10월 26일(수)부터 28일(금)까지 3일간 추계부흥회를 열었다. “단 한번의 인생”이라는 주제로 열린 부흥회의 강사는 류응렬 목사. 류 목사는 정준성 목사가 주사랑교회 담임목사로 청빙받기 전 부목사로 사역했던 와싱톤중앙장로교회 담임목사이다. 류 목사는 총신대학교 신대원 교수로 있다 이원상 목사 후임으로 교회에 부임한지 4년이 되었다. 주사랑장로교회로서는 지난 3월말 정준성 목사가 부임한 후 첫 부흥집회이며, 류응렬 목사도 미국에서 인도하는 첫 부흥집회이다.
▲말씀을 전하는 류응렬 목사
첫날 집회의 설교는 정준성 목사가 류응렬 목사에게 특별히 부탁한 설교였다. 마치 불신자들을 초청하여 열리는 전도집회에서 하는 설교 같았다. 구원과 죄의 문제를 다루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이해하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하늘이 주는 기쁨에 대해서도 나누었다. 다음은 류응렬 목사가 사도행전 16:27-32를 본문으로 “한번뿐인 인생에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는 제목으로 한 설교내용의 일부이다.
1.
본문에 나오는 간수가 한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라는 누구나 한 번은 물어야 할 질문이다. 사도 바울이 간단하게 대답한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성경에서 짧은 한 구절이지만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한 구절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가 알던지 모르던지 또 인정하던지 안하던지 사람의 아들과 딸로 태어난 사람은 다 죄악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것을 모르고 살다가 인생이 끝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만이 아니다. 육신으로 태어난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면 반드시 심판이 있다고 주님이 말씀하셨다. 왜 심판이 있는가? 범죄한 인간이기에 죗값을 치루는 것이다.
죄가 무엇인가? 남들에게 나쁜 일을 하고 남들과 비교해서 더 많은 죄를 짓는 것도 물론 죄이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전혀 다른 것이다. 예수를 믿지 않는 선량한 착한 농부가 열심히 유기농 농사를 짓는 것은 죄인가 아닌가? 예수를 믿지 않는 학생이 열심히 공부해서 공부를 못하는 친구를 도와주는 것은 죄인가 아닌가? 죄이다.
죄라고 하기에는 너무 귀한 일인데 죄라고 해야 하나 생각을 드는 분도 있을 것이다. 죄가 무엇인가? 죄는 상대적으로 착한 일이 악한 일이 아니다. 죄라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것,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고 하지 않는 것, 우리가 하나님의 피조물인데도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 - 그 모든 것이 죄이다. 하나님을 향해서 동쪽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우리는 서쪽으로 가면서 최선을 다한다. 물론 최선을 다하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을 향해서 동쪽으로 가도록 지어졌는데, 끓임없이 서쪽 북쪽 남쪽으로 가는 것이다. 하나하나 행동은 아름답게 보일지 몰라도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 것이 죄라는 것이다.
인간이 태어나서 하나님을 처음부터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 죄 가운데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들은 한 번은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이 땅에서 만나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지만, 이 땅에서 안 믿게 되면 심판대에서 만나야 한다. 그래서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 우리가 물어야 한다. “주님,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습니까?” 아직 육신적으로 살아있을 때 질문을 해야 기회가 있는 것이다. 우리 가운데 누군가는 이 질문을 반드시 해야 한다.
교회를 다닌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가 목사라고 자동적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목사·장로·권사 직분이라고 해도 자동으로 죄의 문제나 구원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피 뭍은 십자가가 내 심장속에 새겨져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지만 아직까지 구원의 확신이 없다면 오늘밤 이 질문을 가지고 주님 앞에 서야 한다.
바울은 간수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고 죄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라’고 말한다. 간수는 무엇이라고 하는가? 간수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를 물어본다. 간수의 질문에 모든 사람들의 의문이 다 들어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만 구원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뭔가 남들보다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남들보다 좀 더 착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부족해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되어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예수님을 모를 수는 있어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파스칼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빈 방이 있다고 했다. 그 방은 세상의 것으로 채워지지 않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지어진 존재이기에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얻어야 비로소 편안할 수 있다고 했다. 하나님 앞에서 안식이 아니라면 세상의 아무리 화려한 것으로 채운다 할지라도 남들과 비교해서 상대적인 것을 누릴 뿐이다. 그래도 빈방은 채워지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으시기 때문이다.
2.
본문 마지막 구절에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라고 나온다. 이것이 구원의 감격이다. 간수 자신도 예수를 믿고 온 가족이 예수를 믿은 후에 가정에 거룩한 기쁨이 넘치게 된 것이다. 고국을 떠나 미국에서 살면서 여러분들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성공을 위해 또는 자녀들 잘 키우기 위해서 인가? 집안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행복과 감격이 있는가 아니면 그렇지 못한가? 세상에서 아무리 누리고 수확을 얻는다 해도 그것 때문에 진정한 행복이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다 안다. 간수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크게 기뻐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다가오는 하늘의 감격에 여러분의 심장이 뛰기를 축복한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풀려났지만 나중에 결국 감옥에서 순교를 당했다. 사람들은 바울을 보면서 걱정했다. 하지만 바울은 감옥에서 빌립보 성도들에게 “기뻐하라.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고 복음의 증인으로 살게 하시고 많은 사람을 믿게 하셨다. 다시 감옥에 오게 하셔서 감옥에서도 복음을 증거하게 하셨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라고 했다. 세상 사람들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하늘의 기쁨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누렸던 기쁨을 기억하는가.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잡혀 들어가 매질을 당하고 다시 예수님을 전하지 말라고 했을 때 “내가 본 예수 그리스도와 내가 피로 들은 복음을 어떻게 증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면서 복음때문에 매를 맞는 것을 감격스럽게 여기면서 기뻐했던 제자들. 이것이 구원받은 사람들이 누리는 거룩한 감격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없어진다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위에서 주는 놀라운 감격과 기쁨이다.
누가 저에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가장 확실한 증거가 무엇인가 묻는다면, 제가 첫째로 대답하고 싶은 것은 기쁨이다. 세상 모든 것이 다 날아가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영생을 선물로 받는 기쁨,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그 감격 - 이 거룩한 기쁨이 여러분의 심장속에 새겨지기를 축복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있다. 세상 끝나는 날 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을 붙잡고 아침에 잠에서 깨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하루와 저 태양, 그리고 두 끼라도 먹을 양식이 있다는 감격 때문에 기쁨으로 미소 짓고 겸손하지만 당당하게 발걸음 옮기는 여러분 되기를 바란다. 상황에 따라 기뻐하고 살아가면 어느정도 칭찬받을 사람이 된다. 그런데 상황에 관계없이 늘 감격과 기쁨이 넘쳐나면 사람들이 물어본다. 어떻게 그런 상황속에서 기뻐할 수 있는가? 그때 입을 열어서 내 안에 있는 그분을 소개해야 한다. “내 속에 예수님이 계시기에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있다. 교회에 함께 가서 이 예수님을 만나면 세상 누구도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기쁨이 있다. 남편이나 자녀도 줄 수 없는 기쁨이다.”
이 기쁨을 누리는 사람은 또 하나의 증거가 있다. 정말 이 기쁨을 아는 사람은, 참을 수 없는 감격이 있는 사람은 기쁨을 나누게 된다. 이 기쁨은 나눌수록 더 큰 기쁨이 된다. 예수를 만난 사람들, 바울이 왜 감옥에 잡혀와 있는가. 멀쩡하게 세상의 것들을 다 누리고 살 수 있는 바울인데 예수님을 만나서 거룩한 기쁨이 가슴에 채워지니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잡혀왔어도 찬송하고 기뻐한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그리스도인’라고 한다. 이 기쁨을 누리고 나누어 주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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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전하는 류응렬 목사
첫날 집회의 설교는 정준성 목사가 류응렬 목사에게 특별히 부탁한 설교였다. 마치 불신자들을 초청하여 열리는 전도집회에서 하는 설교 같았다. 구원과 죄의 문제를 다루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이해하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하늘이 주는 기쁨에 대해서도 나누었다. 다음은 류응렬 목사가 사도행전 16:27-32를 본문으로 “한번뿐인 인생에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는 제목으로 한 설교내용의 일부이다.
1.
본문에 나오는 간수가 한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라는 누구나 한 번은 물어야 할 질문이다. 사도 바울이 간단하게 대답한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성경에서 짧은 한 구절이지만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한 구절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가 알던지 모르던지 또 인정하던지 안하던지 사람의 아들과 딸로 태어난 사람은 다 죄악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것을 모르고 살다가 인생이 끝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만이 아니다. 육신으로 태어난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면 반드시 심판이 있다고 주님이 말씀하셨다. 왜 심판이 있는가? 범죄한 인간이기에 죗값을 치루는 것이다.
죄가 무엇인가? 남들에게 나쁜 일을 하고 남들과 비교해서 더 많은 죄를 짓는 것도 물론 죄이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전혀 다른 것이다. 예수를 믿지 않는 선량한 착한 농부가 열심히 유기농 농사를 짓는 것은 죄인가 아닌가? 예수를 믿지 않는 학생이 열심히 공부해서 공부를 못하는 친구를 도와주는 것은 죄인가 아닌가? 죄이다.
죄라고 하기에는 너무 귀한 일인데 죄라고 해야 하나 생각을 드는 분도 있을 것이다. 죄가 무엇인가? 죄는 상대적으로 착한 일이 악한 일이 아니다. 죄라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것,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고 하지 않는 것, 우리가 하나님의 피조물인데도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 - 그 모든 것이 죄이다. 하나님을 향해서 동쪽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우리는 서쪽으로 가면서 최선을 다한다. 물론 최선을 다하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을 향해서 동쪽으로 가도록 지어졌는데, 끓임없이 서쪽 북쪽 남쪽으로 가는 것이다. 하나하나 행동은 아름답게 보일지 몰라도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 것이 죄라는 것이다.
인간이 태어나서 하나님을 처음부터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 죄 가운데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들은 한 번은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이 땅에서 만나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지만, 이 땅에서 안 믿게 되면 심판대에서 만나야 한다. 그래서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 우리가 물어야 한다. “주님,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습니까?” 아직 육신적으로 살아있을 때 질문을 해야 기회가 있는 것이다. 우리 가운데 누군가는 이 질문을 반드시 해야 한다.
교회를 다닌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가 목사라고 자동적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목사·장로·권사 직분이라고 해도 자동으로 죄의 문제나 구원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피 뭍은 십자가가 내 심장속에 새겨져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지만 아직까지 구원의 확신이 없다면 오늘밤 이 질문을 가지고 주님 앞에 서야 한다.
바울은 간수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고 죄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라’고 말한다. 간수는 무엇이라고 하는가? 간수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를 물어본다. 간수의 질문에 모든 사람들의 의문이 다 들어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만 구원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뭔가 남들보다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남들보다 좀 더 착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부족해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되어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예수님을 모를 수는 있어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파스칼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빈 방이 있다고 했다. 그 방은 세상의 것으로 채워지지 않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지어진 존재이기에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얻어야 비로소 편안할 수 있다고 했다. 하나님 앞에서 안식이 아니라면 세상의 아무리 화려한 것으로 채운다 할지라도 남들과 비교해서 상대적인 것을 누릴 뿐이다. 그래도 빈방은 채워지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으시기 때문이다.
2.
본문 마지막 구절에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라고 나온다. 이것이 구원의 감격이다. 간수 자신도 예수를 믿고 온 가족이 예수를 믿은 후에 가정에 거룩한 기쁨이 넘치게 된 것이다. 고국을 떠나 미국에서 살면서 여러분들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성공을 위해 또는 자녀들 잘 키우기 위해서 인가? 집안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행복과 감격이 있는가 아니면 그렇지 못한가? 세상에서 아무리 누리고 수확을 얻는다 해도 그것 때문에 진정한 행복이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다 안다. 간수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크게 기뻐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다가오는 하늘의 감격에 여러분의 심장이 뛰기를 축복한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풀려났지만 나중에 결국 감옥에서 순교를 당했다. 사람들은 바울을 보면서 걱정했다. 하지만 바울은 감옥에서 빌립보 성도들에게 “기뻐하라.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고 복음의 증인으로 살게 하시고 많은 사람을 믿게 하셨다. 다시 감옥에 오게 하셔서 감옥에서도 복음을 증거하게 하셨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라고 했다. 세상 사람들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하늘의 기쁨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누렸던 기쁨을 기억하는가.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잡혀 들어가 매질을 당하고 다시 예수님을 전하지 말라고 했을 때 “내가 본 예수 그리스도와 내가 피로 들은 복음을 어떻게 증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면서 복음때문에 매를 맞는 것을 감격스럽게 여기면서 기뻐했던 제자들. 이것이 구원받은 사람들이 누리는 거룩한 감격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없어진다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위에서 주는 놀라운 감격과 기쁨이다.
누가 저에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가장 확실한 증거가 무엇인가 묻는다면, 제가 첫째로 대답하고 싶은 것은 기쁨이다. 세상 모든 것이 다 날아가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영생을 선물로 받는 기쁨,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그 감격 - 이 거룩한 기쁨이 여러분의 심장속에 새겨지기를 축복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있다. 세상 끝나는 날 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을 붙잡고 아침에 잠에서 깨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하루와 저 태양, 그리고 두 끼라도 먹을 양식이 있다는 감격 때문에 기쁨으로 미소 짓고 겸손하지만 당당하게 발걸음 옮기는 여러분 되기를 바란다. 상황에 따라 기뻐하고 살아가면 어느정도 칭찬받을 사람이 된다. 그런데 상황에 관계없이 늘 감격과 기쁨이 넘쳐나면 사람들이 물어본다. 어떻게 그런 상황속에서 기뻐할 수 있는가? 그때 입을 열어서 내 안에 있는 그분을 소개해야 한다. “내 속에 예수님이 계시기에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있다. 교회에 함께 가서 이 예수님을 만나면 세상 누구도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기쁨이 있다. 남편이나 자녀도 줄 수 없는 기쁨이다.”
이 기쁨을 누리는 사람은 또 하나의 증거가 있다. 정말 이 기쁨을 아는 사람은, 참을 수 없는 감격이 있는 사람은 기쁨을 나누게 된다. 이 기쁨은 나눌수록 더 큰 기쁨이 된다. 예수를 만난 사람들, 바울이 왜 감옥에 잡혀와 있는가. 멀쩡하게 세상의 것들을 다 누리고 살 수 있는 바울인데 예수님을 만나서 거룩한 기쁨이 가슴에 채워지니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잡혀왔어도 찬송하고 기뻐한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그리스도인’라고 한다. 이 기쁨을 누리고 나누어 주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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