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설교학자들이 말하는 설교표절의 문제와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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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17-08-16 13:49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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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설교학에 근거한 창의적 설교클리닉'이 뉴저지와 필라에 이어 8월 8일 뉴욕 세미나를 마지막으로 모든 일정을 마쳤다. 강사 김남중 교수(클레어몬트신학대학원 목회실천신학 조교수: 이중언어 박사과정 원장)는 북미전체와 유럽에서 예배를 가르치는 교수 450-500명이 회원으로 있는 북미예배학회(North American Academy of Liturgy)의 정회원으로서 이번 세미나에서 북미 교수들의 설교표절에 대한 의견들을 김 교수가 직접 만든 교재 안에 소개하였다. (북미예배학회 홈페이지: http://www.naal-liturgy.org)
드류신학대학원(Drew Theological School at Drew University, drew.edu/theological-school/) 예배와 설교학 교수인 Heather M. Elkins는 김남중 교수의 박사논문 지도 주임교수였으며, 최근에 설교 표절과 관련하여 대답으로 보낸 내용을 김 교수가 번역했다. 엘킨스(Elkins) 교수는 “설교자가 다른 설교자의 설교 원고를 지역 교회에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김 교수에게 답했으며 그 이유를 편지 안에서 자세히 설명하였다.
인디애나 주에 있는 크리스찬신학교에서 설교와 신약성서를 가르치는 Ronald J. Allen 교수는 김남중 교수의 드류대학교 동문으로 “A Code of Ethics for Preachers (설교자들을 위한 윤리강령)”에서 설교표절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김 교수가 이를 번역했다. Ronald J. Allen 교수는 그의 글에서 “나는 설교할 때, 내가 사용한 아이디어, 단락, 이야기, 일화, 혹은 다른 자료들이 명백하게 나로부터 오지 않고 분명한 출처가 있을 경우 청중들에게 그 출처를 밝힐 것입니다”라고 설교자가 하나님과 성경과 회중과 자기 자신 앞에서 선언 해야함을 언급하고 있다.
필라델피아에 있는 루터란신학교(LTSP) 학장이며 미네소타에 있는 마운트 올리벳 루터란교회 담임목사인 David Lose는 설교표절에 대해 “강단에서 일어나는 설교표절의 문제는 저작권법이나 재산권에 관한 것이 아니고 말씀의 효력에 관한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목회적 직무의 정직과 성실에 관한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해를 돕기위해 각 해석마다 김남중 교수는 설명을 추가했다.
▲출처: Heather M. Elkins가 올린 유투브 영상 캡처
Heather M. Elkins (드류신학대학원 예배학, 설교학 교수)
“설교가 자신의 것이 아닐 경우 반드시 그 설교의 출처를 공개해야”
“다른 설교자의 설교 원고를 지역 교회에서 사용하는 것이 가능”
어떤 설교의 역사라도 누군가의 설교를 빌리는 것(borrowing)은 받아들여지는 전통이었으며 오히려 그것이 신앙의 정통성을 보장하는 방법이었음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예를 들어, 어거스틴(Augustine)은 제롬(Jerome)의 설교원고를 대신 읽기도하고 듣기도 하였다. 어거스틴의 철학적 사유는 현재는 사라지고 없는 시세로(Cicero)가 쓴 글들을 기반으로 하였다. 어거스틴이 시세로의 글의 일부 만 참고하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어거스틴이 시세로의 글의 어느 정도를 정확하게 “빌려왔는지는(borrow)” 알려져 있지 않다.
그리고 어거스틴의 설교는 많은 교회 교부들에 의해 복사되고(copying) 전파되었다. 프란체스코 수사들은 교회가 직접 발행한 설교 모음집과 예화집을 사용하여 그대로 설교했다. 또 다른 예는 종교개혁 당시 성직자들이 허가받은 설교원고들만을 강단에서 읽도록 요청받았다는 사실이다. 이 말은 그들 자신에 의해 작성된 설교 원고가 아니라, 이미 교회 전통 안에서 승인받은 설교원고만을 읽도록 요구받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초기 연합감리교 그리고 현대 연합 감리교에서는 설교자들에게 존 웨슬리의 설교집을 그들의 신학 형성과 양육의 일부로 사용하도록 요청하기도 하였다.
복음주의 계열에서 유명한 피니(Finney), 무디(Moody), 빌리 선데이(Billy Sunday), 그리고 빌리 그레함(Billy Graham)의 설교들도 “대량 인쇄”되어 복음주의 계열 설교자들에게는 설교 사전처럼 사용되었다.
때때로 설교자들은 그들이 빌려오고 복사하고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다른 설교자들의 원고들을 자신들이 강단에서 사용하고 있음을 솔직하게 밝히고 인정했다. 때때로 설교자들은 자신들이 다른 이의 설교를 사용하고 있다는 언급조차 하지 않기도 하였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다른 이들의 설교 원고들이 존재해왔고 사용되어졌던 북미의 지역 신앙 공동체 안에서는 일반적인 기대가 있었다. 그 기대는 지역 교회 설교자 자신의 설교가 아니더라도, 다른 이의 설교 원고를 지역 교회 설교자가 그대로 읽어도 무방하다는 일반적인 기대를 말한다. 가장 가까운 예는 지역 교회에서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설교가 사용되는 방식이다. 신앙 공동체는 설교자의 왕(king)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킹 목사의 설교를 지역교회 강단에서 지역교회 목사의 음성을 통해 그대로 듣고 싶어 한다.
그런데 설교 표절이라는 문제가 대두되면서 이런 북미 교회의 강단 상황과 한국교회, 한인이민교회 강단 상황에 무슨 차이점이 있는 것일까? 자신의 설교가 아니면 자신의 설교가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설교자와 다른 이들의 설교는 지역 설교자로부터 들을 수 없다는 두 가지 걸림돌이 한국교회 강단에 있는 것 같다. 먼저 설교자는 어느 누구도 그 출처를 찾아낼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 그 어떤 내용이라도 복사하거나 빌려와서 마치 그것이 자기 설교인 것처럼 설교해서는 안된다. 설교자가 솔직하게 출처를 밝힌다면 그것은 문제가 안된다. 그리고 지역 교회가 설교자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는 한, 고전 설교를 읽고 전달하는 오래된 교회 전통을 되살릴 수 있다. (추가: 설교자가 반드시 자기가 작성한 원고의 설교만을 강단에서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설교도 강단에서 읽을 수 있는 것도 설교사역의 한 부분이라고 지역 교회가 이해하는 것이 설교자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지역교회가 아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누군가의 복음에 대한 증언과 경험을 훔쳐서(stealing) 마치 자신의 것으로 여겨서 전달하는 것이며, 그것은 범죄이다. 이런 좋은 소식들과 증언들은 이런 잘못된 형식을 통해 절대로 설교자가 설교자에 의해서 도난당하거나 도둑질이 되어서는 안된다.
새로운 설교학의 패러다임을 제공했던 프레드 크레독(Fred Craddock)은 바람직한 면에서 나에게 가장 좋은 예이다. 그는 설교에서 그가 사용한 이야기들과 자료들의 출처들을 반드시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교회의 강단에는 두 가지 숙제가 동시에 있을 것 같다. 설교자들은 교회 전통이 다른 이들의 설교를 자연스럽게 차용, 인용, 발췌, 복사해왔다는 것을 숙지하고 자신들이 하는 설교가 자신들의 것이 아닐 경우 반드시 그 설교의 출처를 청중들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설교자들에게 부탁하는 숙제이다.
또 하나의 숙제는 지역 교회 회중들이다. 지역 교회 회중들은 지역 교회 설교자들에게 그들의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설교만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초대 교부들의 설교, 종교 개혁가들의 설교, 교단 전통과 연결되어 있는 설교자들의 원본설교를 지역 교회 설교자들의 음성을 통해서 그대로 듣고 혹은 그런 설교의 일부를 인용, 복사, 차용, 발췌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새로운 형태의 강단 패러다임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지역 교회 회중들에게 부탁하는 숙제이다.
번역 후기: 설교 표절의 대안을 찾던 중, 나에게는 매우 신선한 제안으로 다가오는 논문주임교수님의 편지였다. 설교는 신학의 꽃이고 신앙의 꽃이다. 나는 설교와 예배에 꽃이 피기를 바란다. 초대 교부들의 설교, 종교개혁가들의 설교, 교단 전통과 연결되어있는 분들의 설교를 지역교회 설교자가 강단에서 읽을 수 있고, 지역 교회 회중들도 이러한 사역을 목회자의 설교 사역의 한 부분으로 이해한다면, 교회는 더 풍부한 기독교 전통의 신앙과 신학과 경험을 깊이 읽고 생각하고 토론하고 성장하고 성숙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숙제이기 때문에 미완성이고 여전히 진행형이다. 숙제를 풀어내는 고국과 한인-이민 지역 교회들과 설교자들이 있기를 기대하고 기도한다.
Ronald J. Allen 교수(크리스찬신학교 설교학, 신약성서신학 교수)
“설교자를 위한 윤리강령(설교표절 부분)”
- 나는 다른 특정한 시간과 장소 그리고 상황이 요청하는 새로운 주제와 방향에로의 재고 없이 한 때 사용하였던 내 자신의 설교원고를 똑같이 반복하지 않겠다. (추가: 자기 설교원고를 표절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는 청중들에게 이미 그 설교가 일차적으로 사용되었음을 알리고, 청중들의 상황과 설교자의 상황에 맞게 재구성되었음을 알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 나는 설교 준비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수 있도록 매일, 매 주 설교자로서 설교를 준비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만들 것이다.
- 나는 성서와 청중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겠지만, 좋은 설교를 준비하기 위하여 필요한 자료들도 성실하게 참고할 것이다. 관련 본문에 대한 다른 이들의 해석적 도움과 통찰력을 얻을 것이며 다른 설교자들의 설교 원고와 설교집도 읽어보는 것을 설교자의 일로 삼을 것이다. (추가: 고국과 한국 이민교회에서 이 부분이 설교자의 설교표절과 많이 연관되어 있다. 설교자가 기독교 고전과 주석집과 다른 설교자들의 설교 원고와 설교집을 참고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그 설교가 자기 자신의 독창적인 설교인 것처럼 출처를 밝히지 않고 참고자료도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표절’의 말뜻처럼 남의 지적 재산을 빼앗고 도둑질하게 되는 것이다. “설교 표절 시비에 휘말리지 않고 설교자가 다른 설교자의 설교 원고를 지역 교회에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과 응답은 설교 표절 대안의 가능성을 찾아가는 또 하나의 열쇠가 된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앞에서 좀 더 자세하게 서술하였다.)
- 나는 설교할 때, 내가 사용한 아이디어, 단락, 이야기, 일화, 혹은 다른 자료들이 명백하게 나로부터 오지 않고 분명한 출처가 있을 경우 청중들에게 그 출처를 밝힐 것이다. 나는 직접적으로 그 출처에 대해서 설교 원고에는 각주를 달 것이고, 내가 지금 말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서 주어진 생각이나 표현이라고 간접적으로 강단에서 알릴 것이다. (직접적인 예: 우리에게 잘 알려진 본회퍼 목사가 말한 것처럼, 간접적인 예: 제가 3주 전에 동일하게 말씀드린 것과 같이)
- 나는 성서와 전통 뿐만 아니라 설교하는 과정에서 나에게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 그들의 책들과 자료들을 내 설교 안으로 통합하는 것을 영광스럽게 여길 것이다. 나는 그러한 요소들이 마치 내 자신의 것인 양 표현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그런 자료들이 내 설교 안에서 그들 자신의 매우 독특한 소리를 내게 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 일 것이다.
David Lose(필라델피아 루터란신학교 학장)
“설교표절은 가장 중요한 설교자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강단에서 일어나는 설교표절의 문제는 저작권법이나 재산권에 관한 것이 아니고 말씀의 효력에 관한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목회적 직무의 정직과 성실에 관한 것입니다. 설교자로서 당신이 강단에 서서 당신 자신의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말을 전할 때, 그것은 본질적으로 원저자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설사 그렇더라도 말이죠. 그것은 본질적으로 당신이 당신들의 회중에게 거짓말을 하고, 당신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목회에 가장 필수적인 설교자의 신뢰를 무너뜨린다는 것입니다 (추가: 이것이 더 본질적인 것입니다).
당신 자신의 말이 완벽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그런 완벽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려는 노력은 매우 중요합니다. 오히려 당신이 설교 사역을 수행하는 정직과 성실성이 어떻게 회중들이 당신을 생각하고, 당신의 말과 당신이 전하는 복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더욱 영향을 미칩니다. 그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출처: http://www.workingpreacher.org/craft.aspx?m=4377&post=1478)
번역 후기
정직성과 성실성에 대해서는 북미 설교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부분이다. 영어로는 설교자가 갖추어야 할 Authenticity, Faithfulness, Honesty, Humility, and Integrity 와 관련되어있다. 설교표절은 결국 설교자가 하나님(God)을 속이고, 성서(Text)를 속이고, 회중(Congregation) 을 속이고, 자기자신(Oneself)의 정직성과 성실성을 속이는 결과로 귀결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내가 아는 몇 분의 북미 설교학자들로부터 들은 공통된 답변이었다. 예를 들어, 클레어몬트신학대학원에서 설교학을 가르치는 아프리칸-어메리칸 설교학 교수인 Lincoln Galloway 박사는 Humility, Collaboration, and Authenticity(Honesty)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모든 지식을 다 아는 체하며 속이는 것이 죄(Sin)입니다" 라고 강조하였다. 그의 말처럼 설교자의 직무가 정직함과 성실성에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한 직접성과 관련성(Immediacy and Relevancy)이 결여된 설교는 능력이 없다. 설교자들이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되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해야한다. 설교자가 끊임없이 공부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설교자가 자신의 설교를 실패한 설교(Failed Preaching)라고 여길 때, 그 설교가 가장 신실한 설교(Faithful Preaching)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마음가짐이 설교자가 지녀야 할 겸손함(Humility)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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