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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목사 "종교개혁, 하루에 천 번 죽는 길을 택한 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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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ㆍ2017-11-2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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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루터나 칼빈은 사도나 성경 저자는 아니지만 개신교 역사에서 그들의 기여도를 아무도 함부로 폄하하지 못합니다. 그들도 불완전한 인간이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하신 일에 딴죽을 거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생뚱맞게 루터나 칼빈을 공격하는 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자들의 주장은 학문성이나 역사성이 결여되어 일반적으로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합니다. 문제는 루터나 칼빈 같이 위대한 종교개혁자들을 비난하는 자들이 아니라 그들의 명성에 무임승차하려는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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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생들이나 목회자들 중에도 무임승차 의식으로 처신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내가 다니던 신학교에도 존경 받는 몇몇 교수들 주변에는 그런 신학생들이 몰려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훌륭한 선생을 가까이 하고 싶은 학생의 마음이야 인지상정이지만 스승의 훌륭한 점을 배우고 따르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그런 분과 가까운 관계를 맺으려 애를 쓰는 모습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교계에서도 목사님들 중에 존경 받는 원로 지도자의 이름을 자주 거론하는 이들은 거의가 그분의 인격을 본받으려 하기보다는 그 명성에 편승하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처신하는 이들은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지만 존경 받는 분의 이름을 높이면서 그분이 받는 존경에 편승하고 싶은 심리의 지배를 받는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이 전에는 그런 이들을 심하게 비난하였지만 지금은 그럴 마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 역시 그런 분류에 속한 인간으로 그런 본심을 감추어왔기 때문입니다. 인간이란 누구나 별 수 없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저급한 인간적 속내를 어설프게 감추는 사람과 감쪽같이 감추는 차이가 있을 뿐인데 나는 비교적 감쪽같은 편입니다.

 

고려 말의 성리학자 우탁은 대쪽 같은 선비였습니다. 그가 감찰규정으로 있을 때 충선왕이 부왕 충렬왕의 후궁인 숙창원비와 밀통하자 흰옷에 도끼를 들고 거적을 메고 입궐하여 상소하였습니다. 어전 신하가 그 상소문을 펴들고 감히 읽지를 못하자 우탁이 “경은 그 죄를 아는가!”라고 소리치자 대신들이 어쩔 줄 몰라 하고 왕도 부끄러워하는 낯빛이었다고 합니다. 그 일로 왕의 노여움을 사 안동 지방에 은거하면서 평생 후학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였습니다. 그가 지은‘늙지 말려이고’라는 시조가 있습니다. <늙지 말려이고 다시 져머 보려타니/ 청춘이 날 소기고 백발이 거의로다/ 잇다감 곳밧찰 지날 제면 죄 지은 듯 하여라.> 왕의 비행을 극간하던 그였지만 ‘잇다감 곳밧찰 지날 제면’(이따금 꽃밭을 지날 때면)... 나이 늙어 백발이 되었어도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 탐심이 일어나는 것을 ‘죄 지은 듯하여라.’고 본심을 진솔하게 표현하였습니다. 비록 마음으로나마 탐심이 일어나는 것을 죄 지은 듯 느끼는 양심은 참으로 건강한 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양심은 병든 양심이고 아픔을 느끼는 양심은 건강한 양심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에 루터나 칼빈의 이름을 쉽게 입에 올리는 것에 우리는 양심에 아픔 같은 것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생각 합니다. 지난 번 글에서 내가 어쭙잖은 글을 쓰면서 루터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그의 명성에 편승하려는 속내는 없었는지 돌아보면서 생명을 담보하고 행동한 루터를 편안하게 앉아서 이야기 하는 것에 송구스런 마음이었는데, 이 번에도 우탁의 고백처럼 ‘죄 지은 듯하여라.’는 마음으로 칼빈에 대해 이야기 해 보려고 합니다.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고 하였습니다. 날마다 죽는 경험이란 어떤 것일지 나로서는 상상이 안 됩니다. 이것은 바울에게 있어서 자기 부인의 구체적 증거이며 고백입니다. 주님께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하셨는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는 자의 특징이 날마다 죽는 것입니다. 이 말을 뒤집으면 날마다 죽는 경험이 없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날마다 죽기는커녕 어쩌다 누구에게 한 번 이라도 무시를 당하면 가슴이 벌렁거리고 밤잠을 설치고..., 그러다 참지 못하고 화를 버럭 내는데, 날마다 죽는 바울은 나로서는 오르지 못할 나무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칼빈을 생각합니다. 제네바 시의회와 교회 지도자들은 칼빈의 개혁을 감당할 수 없자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반대하다가 결국 칼빈을 제네바에서 추방하였습니다. 칼빈을 추방한 제네바는 모든 게 엉망이 되어갔고 제네바의 사람들은 다시 칼빈을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칼빈을 추방시켰던 사람들이 그를 다시 초청하였을 때 칼빈은 “제네바로 돌아가는 것보다 하루에 천 번 죽는 게 낫겠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기록에는 “이 십자가를 지는 것보다 차라리 100번 이상이라도 다른 죽음의 고통을 당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라고 했다 합니다. 그의 이 말은 제네바에서의 개혁활동이 하루에 천 번 죽는 것이나 다른 방법으로 100번 이상 죽는 것보다 어려웠다는 것을 표현하려 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칼빈이지만 좀 과한 표현을 사용한 것 같습니다. 하루에 천 번 죽는다는 것은 날마다 죽는다고 한 바울보다 더 극심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날마다 죽는 경험은 하루에 한 번 죽는 경험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날마다’와 ‘천 번’을 비교하여 따지는 것은 의미 없는 일입니다. 바울이나 칼빈이 고백한 것은 인간으로서 견뎌내기 어려운 한계상황을 묘사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이나 칼빈은 날마다 그 같은 경험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길을 선택하여 걸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지 않는 자는 주님께 합당하지 않고 능히 주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아, 믿음의 길이여, 제자의 길이여, 개혁신앙의 길이여, 베드로처럼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제네바의 기독교 역사는 비교적 오래되었습니다. 주후 3세기부터 제네바에 그리스도인들이 활동하고 있었고, 6세기가 되었을 때 로마 가톨릭교회가 세워집니다. 중세 시대 내내 제네바는 로마 가톨릭교회가 군림하였지만 실제 모든 권력은 제네바 시 당국이 잡고 있었던 도시국가였습니다. 중세의 가톨릭교회와 사회의 부패와 부조리는 어디나 마찬가지였지만 제네바도 잦은 소요와 온갖 사행성 도박과, 쾌락적 사교춤, 음주벽 등 방탕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당시 제네바에는 500여 명의 성직자들이 있었지만 하나같이 타락하여 시민을 바른 신앙으로 인도하고 지도하는 게 아니라 그릇된 길로 내모는 형국이었습니다. 사제들의 유일한 관심은 면죄부를 팔아 돈을 챙기는 것이었습니다. 제네바 도시 곳곳에는 면죄부 선전 광고판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교회와 시 당국 어느 쪽이라고 할 것도 없이 시 전체는 타락과 도덕적 해이로 말이 아닌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네바는 스스로 그 상황을 돌이킬 수 있는 자생력이 없었습니다. 종교개혁전야는 어디나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표범이 얼룩 반점을 없앨 수 없듯이 제네바 시와 교회는 스스로 신앙의 타락과 도덕적 해이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시 당국자들이나 교회 지도자들은 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했다고 해도 오랜 관행처럼 된 신앙의 타락으로 얻는 이익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제네바에는 두 유형의 권력, 주교들이 장악하고 있는 종교적 권력과 정치적 권력인 시의회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기 때문에 개혁 같은 것에는 관심을 기우릴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누군가 개혁을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곧 모든 사람을 적으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제네바 시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개혁을 시작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루터가 교회의 면죄부 판매에 대한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한 것입니다. 루터의 개혁운동은 1525년부터 독일 상인들을 통해 곳곳으로 전파되기 시작하였고, 1533년이 되어 프랑스로부터 온 개혁자들에 의해 제네바 시민들이 참 신앙에 눈 뜨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일을 주도했던 개혁자들은 화렐(Guillaume Farel), 비레(Pierre Viret), 프로망(Antoine Froment) 같은 이들이었습니다. 참 복음의 빛이 비취기 시작하자 제네바는 소용돌이치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른 교회 역사에는 언제나 순기능과 역기능이 공존하였는데, 제네바에서도 개혁운동은 순수한 면과 이 기회에 정치적으로 로마 가톨릭교회의 세력으로부터 독립하여 독립적인 공화국을 세우려는 자들의 세력이 합세를 하였습니다. 

 

1536년에 시의회는 개혁주의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역사를 뒤돌아 볼 때 제네바는 칼빈에 의해 주도되는 개혁의 터전을 정치적으로 마련한 셈이었습니다. 1536년 우연히 제네바를 방문한 칼빈을 화렐이 알아 본 것입니다. 칼빈을 만나 함께 제네바 개혁을 제의한 화렐의 일화는 유명합니다. 칼빈이 화렐의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하였으나 화렐은 표호 하는 사자처럼 영적 권위로 칼빈을 압도하는 도전을 하였습니다. 후일 칼빈은 화렐의 제안을 ‘하나님이 하늘로부터 힘센 손을 뻗어 나를 붙잡는 것 같았다.’고 술회하였습니다. 칼빈은 화렐과 함께 교회 개혁을 단행해나갔습니다. 그러나 시의회와 시민들은 칼빈이 제시한 교리문답 교육, 월례 성찬, 반발하는 자들의 출교, 계율 실행을 위한 교회 내 법정 세우는 것 등에는 반대하였습니다. 그 일로 인한 갈등으로 결국 칼빈과 화렐은 1538년에 제네바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제네바를 떠난 칼빈은 3년 동안 스트라스부르크에 머물면서 기독교 명저 기독교 강요 라틴어 판과 프랑스어 판을 내게 됩니다. 기독교 강요 프랑스어 판은 근대 프랑스어에 지대한 영향은 미쳤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1541년 제네바 시가 칼빈을 다시 와 달라고 초청을 하게 하였습니다. 제네바 시로부터 초청장을 받은 칼빈은 제네바에 가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그 때의 심정을 ‘제네바로 돌아가는 것보다 차라리 하루 천 번 죽는 것이 낫겠다.’고 한 것입니다. 칼빈은 하루 천 번 죽는 것보다 어려운 일을 하러 제네바로 가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칼빈의 그 결단은 단순한 인간 칼빈의 결단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어떤 인간이 하루 천 번 죽는 것보다 어려운 길을 선택할 수 있을까요? 칼빈의 사상과 가르침을 종합하여 볼 때 그도 틀림없이 바울처럼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했을 것입니다. 하루 천 번 죽는 것보다 어려운 길은 인간이 선택한다고 해도 의도한 바를 이룰 확률은 희박합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그 일을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이루셨습니다. 한 인간, 칼빈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그 어떤 혁명도 견줄 수 없는 위대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칼빈으로 하여금 자신을 부인하고 하루에 천 번 죽는 것보다 어려운 길을 선택하게 하셨고 그 선택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하나님의 일도 성취하고 인간도 출세하는 길이 아닙니다. 겸손과 희생을 수단으로 하여 성공하는 길이 아닙니다. 완벽하게 죽는 것이 십자가의 길이고 구원의 길이며 생명의 길이고 개혁의 길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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