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요셉 목사는 왜 ‘텃밭’을 가꾸는 것이 ‘개혁’이라고 말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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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ㆍ2017-10-12 16:01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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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러싱제일교회(김정호 목사)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개혁의 역사에서 길을 찾는다”라는 주제로 3월부터 매월 연속 세미나를 열었다.
전반기는 역사적인 인물들에게 길을 물었으며 3월에는 조영준 목사가 마틴 루터, 4월에는 김중언 목사가 요한 웨슬리, 5월에는 이재준 목사가 조셉 웨슬리 매튜스, 6월에는 장철우 목사가 도산 안창호를 다루었다. 후반기는 동시대의 목소리를 들었으며 7월에는 유성준 목사가 세이비어교회 고든 코스비, 8월에는 여성 평신도를 대표하여 김명래 전도사가, 9월에는 2세들이, 종교개혁의 장이 열린 10월에는 차세대에게 길을 물었다.
10월 11일(수) 저녁에 열린 8강에서는 차세대 사역자 3명이 나와 발표했는데 김진우 목사(후러싱제일교회 청년), 전요셉 목사(헤켄섹 연합감리교회), 박형규 전도사(뉴욕한인교회) 등이다.
전요셉 목사가 담임하고 있는 헤켄섹 연합감리교회는 22개국이 넘는 곳에서 온 성도들을 섬기는 다민족 교회공동체이다. 전 목사는 엉뚱하게도 개혁을 오이와 고추를 기르는 텃밭에서 찾았다. 전 목사는 “제가 걸어온 길에서 경험한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이해와 생각들, 작은 움직임들이 누군가에겐 새롭게 느껴지는 것일 수 있고, 어쩌면 그것이 누군가에겐 ‘개혁’의 시작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은 움직임 하나, 발걸음 하나, 그것이 개혁이라는 생각했다”라고 소개했다.
기대한 것과 정말 전혀 다른 종류의 내용이었지만 전요셉 목사의 눈물과 진지한 발표 자세는 강의에 집중하게 했다. 강의가 끝난 후에는 맛난 된장국에서 싱싱한 호박을 건져 먹은 듯, 내년에는 뒷마당에서라도 텃밭을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발표내용이다.
한 달 전부터 오늘 여러분들과 무슨 주제로 말씀을 나눌까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어느 한 곳에도 마음을 두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서 진행하는 기획강좌 시간에, ‘과연 우리시대 교회의 개혁과제는 무엇일까’는 제 호흡과 내공을 훨씬 넘어서는 주제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가지 고민하다 결국 개혁이라는 단어의 무게에 눌려버려 생각이 전혀 흐르지 않았습니다. 또 무엇보다 한 연약한 인간으로, 남편으로 두 아이의 아빠로, 또 목회자로 매일 살아가면서도 제가 어디로 걷고 있는지 몰라 길을 잃은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들이 훨씬 많은 제가 과연 ‘우리 이 길로 한번 걸어가봅시다’ 라고 이야기 할 자격이 되는가란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 저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과연 개혁이란 것이 그렇게 거창한 담론일까” 묻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앞으로 교회가 활력을 되찾고 살아나기 위해서는 이렇게 걸어가야 된다고 속 시원한 이야기를 해준 이들이 주변에 몇이나 있었나 돌아보니, 딱히 떠오르는 사람들도 없었습니다. 또는 이렇게 가야한다고 확신 있게 말해 준 사람들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지고 수긍하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있었나 돌아보면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정답 없는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 실상 매한가지라면, 제가 걸어온 길에서 경험한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이해와 생각들, 작은 움직임들이 누군가에겐 새롭게 느껴지는 것일 수 있고, 어쩌면 그것이 누군가에겐 ‘개혁’의 시작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움직임 하나, 발걸음 하나, 그것이 개혁이라는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편해지고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고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런 이야기들을 나눴으면 합니다.
커뮤니티 텃밭 (Community Garden)
누군가 저에게 “앞으로 교회공동체 구성원들과 마음을 모아 일으켰으면 하는 운동이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첫 번째는 교회공동체와 커뮤니티 텃밭을 일궈보자고 이야기 할 것입니다. 참 뜬금없는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실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생각보다 공동체 텃밭을 통해서 구성원들과 얻을 수 있는 유익이 큽니다. 저는 2015년 7월에 남부뉴저지 연합감리교회 EM 사역자로 파송 받았습니다. 교회에 새로운 사역을 개척하고 시작하는 일에 시행착오가 참 많았습니다. 적은 인원의 청년들로 예배를 시작하고 인근의 대학캠퍼스에서 청년들을 데려오고 신앙 안에서 자랄 수 있도록 기도하고 돕는 일이 저에게는 무척이나 고달프고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언어적으로 부딪히는 한계, 헌신된 리더들을 세우는 일, 서로 마음을 모아 운동을 일으키는 일. 어느 것 하나 손에 잡히지 않아 답답한 순간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연회 지원금을 받아 새롭게 시작하는 사역인만큼 교회 안팎으로 부담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교회 장로님들이 대표기도 때마다 새롭게 시작한 EM 사역이 열매 맺게 해달라는 기도를 빼먹지 않으셨는데 그 기도를 들을 때마다 조바심이 났습니다.
사역을 시작하고 8개월이 지난 이듬해 초봄 새벽에 나와 기도하는데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사역에 열매를 맺는다는 건 무엇일까?” 진짜 무언가 심으면 자라고, 또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가. 진짜 그렇다면 움직이고 성장하는 것을 직접 보고 만져보고 경험해보고 싶다는 깊은 갈증에 사로잡혔습니다. “무언가를 진짜 심으면 열매가 자라는지 내 눈으로 봐야겠다”라는 일종의 말도 안되는 하나님을 향한 반항심, 오기가 발동하게 됩니다. 제가 신학교에 있을 때도 생태신학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수업도 많이 듣고, 인근 지역 농장에 가서 5불, 10불내고 텃밭 관련 수업도 들어 보긴 했지만 실제로 텃밭을 가꿔본 경험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용기내서 담임목사님께 새벽예배를 마치고 나오면서 “목사님, 교회 뒤뜰에 농사 좀 짓겠습니다” 말씀을 드렸습니다. 목사님도 제가 이것저것 하다 안되니까 살길을 찾는구나 싶으셨는지 ‘마음대로 해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달 목회협조위원회에서 허락을 받고 대책없이 텃밭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바쁘시고 경험이 없어서 돕지는 못하지만 권사님 한 분이 인근 수목장에서 유기농 흙은 선뜻 사 주시겠다고 했고 저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말씀들 하셨지만 처음에는 다들 아무 기대감도 없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텃밭을 가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교회에서 공동체와 같이 텃밭을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이 무엇일까요? 첫째, 가장 큰 유익은 신앙적 유익입니다. 텃밭을 가꾸는 행위와 경험 자체가 아주 영적인 체험입니다. 왜냐하면 식물이 자라는 원리 자체가 신앙이 자라는 원리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기다리고, 보살피고 가꾸고, 꽃이 피고, 열매 맺고, 수확하는 일들이 말씀이 우리 안에 심겨 믿음이 자라나는 과정에 대한 완벽한 프레젠테이션입니다. 저는 기독교 교육에서 텃밭만큼 좋은 프레젠테이션은 없다고 믿습니다.
아동부, 중고등부, 청년들, 장년에 이르기까지 모두 신앙의 원리라는 것을 너무 추상적으로 밖에 경험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연의 이치와 섭리와는 달리, 신앙이란 것이 마치 하루아침에, 아무런 수고 없이 그냥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뜨겁고 열광적인 기도와 예배 몇 번으로 우리의 신앙이 자랄 수 없습니다. 신앙이 자라는 건 좀 더 유기적인 과정입니다. 무언가 열매 맺는 과정엔 지난하고 잔잔한 기다림의 과정이 필수입니다.
저는 텃밭 농사를 하면서 심고 기다리고 자라고 거두는 이 모든 프로세스가 영성의 기본 원리와 동일하다는 것을 온 몸으로 배웠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아마 씨앗 심고 싹이 나고 자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냐고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막상 여러분이 씨앗을 들고 흙 앞에 서 보기 전에는 절대 모를 수 있습니다. 씨앗이 생각보다 너무 작고 초라해 보인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간혹 눈에 띄게 큰 씨앗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씨앗들은 너무 작습니다. 그 씨앗을 흙 속으로 밀어 넣을 때 생각보다 엄청난 믿음을 요구합니다. 그 까슬하고 단단하고 작은 씨앗들이 흙 속에 파묻혀 열을 내며 썩어 들어가 푸른 새싹들을 밀어 올리는 것을 처음 봤을 때,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습니다. 믿음은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하신 예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겨자씨만한 믿음 하나면 된다’ 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후로 텃밭은 가장 좋은 신앙교육 장소로 바뀌었습니다. 아이들 손으로 직접 씨앗을 심게 하고 꽃이 피고 열매가 자라는 것을 보게 하고, 직접 따서 먹게 했습니다. 주님의 약속의 말씀이 심고 품으면 진짜 열매를 맺는 것을 몸으로 경험하게 된 것 입니다. 공동체가 함께 텃밭을 가꾸고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영적인 흐름에 변화를 줄 수 있고, 영성의 색깔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됩니다. 흙에 손을 담그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난해지고 새로운 기도가 뿜어져 나올 수 있습니다.
두 번째 큰 유익은 사람에 대한 이해가 커지는 것입니다. 사람의 수고를 귀히 여기는 마음을 배양해주고, 사랑하는 대상의 대한 이해를 깊고 넓게 해줍니다. 햇볕과 비, 바람, 벌과 같이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하늘의 은혜가 절대적이지만 그것 만이 다가 아닙니다. 허리를 구부리고 손에 흙을 묻히고 땀방울이 맺히는 농부의 수고로움 없이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신앙이 자라고, 공동체가 든든히 서고 사역이 열매 맺는 일에는 하나님이 채워 주는 은혜와 사람의 수고가 다 필요합니다. ‘말’ 넘어 ‘몸’이 다가가 섬기고 수고하는 애씀이 필요함을 알게 됩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일.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하고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한 일이지만 앉아서 기도만 한다고 해서 어떤 사역이 열매 맺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인들의 신앙고백과 이해는 너무 관념적인 때가 많습니다. 뒤에 조금 더 다뤄보겠지만, 개인적 신앙과 공동체의 성장. 사역이 열매 맺는 일에는 몸이 다가가는 수고로움과 애씀, 사랑, 몸의 언어가 전제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이 생각보다 녹록치 않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삶에 어떤 열매가 맺혀 있다면 그건 반드시 누군가의 수고로움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저는 텃밭을 가꾸면서 공동체를 위해 크고 작은 일에 몸으로 섬기는 이들의 애씀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귀히 여기게 되었습니다. 시를 한편 읽어드리겠습니다.
의자 /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시인은 허리가 아픈 노모의 시선을 빌려 꽃도 열매도 인생이란 게 다름 아닌 ‘의자’ 위에 놓여있는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저는 오이와 토마토, 가지, 고추에 지지대를 세우면서 누군가의 삶을 지지하는 것(support)이 한 사람의 꿈이 열매 맺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시인의 시선을 빌리자면 그게 바로 누군가의 삶에 작은 의자 하나를 놓는 일이 되겠지요. 저와 여러분의 삶이 열매 맺도록 의자 하나 놓아 준 사람들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의 은혜는 결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의자를 기꺼이 내주며 수고한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전해진 것이죠.
공동체가 텃밭을 가꾸다 보면 하나님은 귀하고 사람은 천하게 대하는 신앙의 이중성을 극복할 수 있는 좋은 공동체 운동의 밑거름을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어찌 보면 교회가 개혁해야 하는 큰 과제는 이런 사람에 대한 이해가 결여 되어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교회가 지금도 온 세상이 의자로 보일 만큼 아픈 사람들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 교회는 사람에 대한 이해, 인간 아픔에 대한 이해의 최전방에 서있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 이민자보호교회, DACA를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일은 참 잘하시는 겁니다. 누군가의 삶이 열매 맺도록 ‘의자’놓는 사역을 계속해서 교회가 해야 됩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단순히 열심히만 하면 안됩니다. 몸으로 다가가 섬기고 사랑하는 일에도 열심을 넘어서 대상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텃밭 농사를 하면서 오이, 호박, 고추, 가지, 토마토, 상추, 깻잎, 브로콜리, 피망, 고구마, 옥수수까지 다양한 채소들을 재배했지만, 각각 나름의 수고와 이해가 필요합니다. 식물마다 웃거름을 줘야 하고, 지지대로 세워줘야 합니다. 곁 잎을 따주고 순치기 하는 것도 너무 중요합니다. 그 시기와 방법도 모두 제 각각 입니다. 팀켈러 목사가 ‘센터처치’라는 책 서문에서 성공적인 목회, 신실한 목회, 열매 맺는 목회에 대해 이야기 하는 부분에 저는 100%로 공감합니다. 팀켈러 목사는 신실한 목회가 열매 맺는 목회를 보장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정말 맞는 말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농사일을 해도 농작물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이웃, 공동체, 사람의 수고와 애씀. 이런 것들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절대 사역이 열매 맺을 수 없습니다.
저는 성도님들도 같이 한번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한 두 사람이 수고하고 열매를 보는 형태가 아니라 아동부 부터 장년까지 최대한 많은 분들이 동참하되 그 시작은 장년층 주도의 운동으로 시작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사명을 가지고 살아있는 신앙 교육의 장을 여는 운동의 초석이 되어주십시오. 씨를 뿌리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경험들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손에 흙을 묻히고 직접 심지 않으면 대상에 대한 애정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주님의 음성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 과정에서 누릴 수 있는 유익은 놓친 채 자칫 열매에만 관심을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첫 해 시작했던 교회 텃밭은 저희 교회 성도님들 신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텃밭을 가꾸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목도하며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첫해 꿈쩍도 하지 않던 분들이 이듬해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최대한 처음부터 많은 분들이 동참해서 경험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재배한 작물들로 음식을 만들어 같이 비빔밥도 만들어 드시면서 친교도 하시고 또 많은 양은 아니지만 직접 수확한 토마토로 파스타 소스나 수프를 만들어 판매한 기금으로 좋은 일에 작은 보탬이라도 될 수 있으면 또 다른 기쁨이겠죠. 플러싱 곳곳 돌보지 않는 땅마다 성도님들이 꽃씨를 들고 나가서 뿌리면서 기도를 심을 수 있다면 어떨까요? 아니면 버려진 공터를 저렴하게 매입해 교회 주도로 ‘커뮤니티 가든’을 만들어 성도들과 시민들에게 분양하고 교육할 수 있는 일을 해보면 어떨까요? 교회에서 배출하는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로 만들어 텃밭을 가꾼다면 어떨까요? 교회 옥상으로 오이와 상추를 따러 가는 이런 즐거운 상상을 해봅니다. 앞으로 생태, 환경문제, 바른 먹거리 등 교회가 일으켜야 하는 많은 운동들에 텃밭은 훌륭한 출발점이 됩니다.
여러분. 요즘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녀는 부모님 말을 잘 듣는 자녀들이 아니라고 합니다. 요즘 효자 효녀는 자신이 하고 싶은 꿈이 있는 자녀들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꿈꾸는 것이 어려운 세태를 반영하는 것이겠지요. 저는 경험도 많지 않고 아는 것도 많지 않은 풋내기 목사이지만, 아직 해보고 싶은 일들이 있습니다. 요즘 교단마다 도시목회(Urban Ministry)이야기 많이 하는데요, 제가 정책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저는 공동화 현상으로 게토화된 도심지역의 버려진 땅을 매입해서 커뮤니티 가든을 만들고 지역 주민들에게 분양해서 같이 작물을 재배하는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버려진 땅에 생명이 자라나고 또 그것을 같이 돌봄으로써 하나님과 사람 이해가 달라지고 분명히 사람들의 인식에 좋은 변화를 줄 수 있는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시의 색깔과 영성을 바꿀 수 있는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명을 심고 거두는 일은 사람의 마음 밭을 부드럽게 하고 소망을 갖게 하는 경험입니다. 사람들이 흙을 만지지 않기 시작하면서부터 몸과 마음이 병들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이런 운동을 일으키는 커뮤니티 가든 마당엔 북카페를 만들어 주중엔 글쓰기 교실과 다양한 강좌를 열어 사람들을 교육하고 주일엔 예배장소로 같이 모여 예배하고 교제하면 어떨까요? 저는 앞으로 이런 운동들을 해보고 싶습니다.
오늘 여러분들과 부족하게 나마 제가 나눈 이야기들은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혁은 운동이고 실재이기에 사람 공부가 참 중요합니다. 그 드러나는 형태가 어떤 모습이든지, 앞으로 교회개혁 운동의 방향은 사람들을 이해하고, 사람에게 다가가고, 말보다 몸이 가는 형태의 모습을 띠어야 할 거라고 믿습니다. 오늘 제 발표를 김기석 목사님의 책 “길은 사람에게로 향한다” 서문의 한 단락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몸이 따르지 않는 관념은 우리 삶을 더욱 창백하게 만들 뿐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몸을 매개로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열병 앓는 시몬의 장모를 손을 잡아 일으키고, 한센병 환자의 환부에 손을 대고, 앞 못 보는 사람의 눈을 어루만지셨습니다. 동료 인간들의 아픔에 대한 연민과 공감이 담긴 손길이야말로 살림의 손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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