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유 총장 “목숨까지도 내놓을 수 있는 급진적 제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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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2ㆍ2024-05-25 17:54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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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동산장로교회 5월 19일 주일강단에 김학유 목사가 섰다. 이풍삼 담임목사가 졸업한 모교인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인 김 목사는 학교를 이렇게 소개했다.
“44년 전에 박윤선 박사님이 한국교회 개혁을 위해서는 교역자를 개혁해야 된다. 목회자들을 개혁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 바른 말씀과 바른 인격을 갖춘 목회자들을 배출하자고 해서 44년 동안 그 한 가지 목적을 갖고 달려온 학교이다. 지금도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잘 훈련된 종들을 키워내는 일에 매진하고 있는 학교이다.”
김학유 총장은 누가복음 9장 57-62절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본문으로 “제자의 삶”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다.
김 총장은 가장 먼저 개신교 신뢰도가 꼴찌인 한국교회의 현실을 소개하고 “우리 성도들이 정말 주님의 참 제자가 될 수 있다면, 또 주님의 참제자가 되어서 그분의 길을 따라 걸을 수만 있다면, 한국교회 신뢰도는 다시 회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라며 본문을 통해서 어떻게 제자된 삶을 살아내야 하는지를 제시했으며, 특히 급진적인 제자의 삶을 살라고 부탁했다. 다음은 설교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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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요즘에 한국교회가 많은 사람들의 지탄의 대상이 된다. 늘 통계를 보면 불교, 로마카톨릭, 개신교를 비교해 보면 개신교가 항상 꼴찌를 했다. 지난 12년 동안 통계를 보면서 저는 굉장히 예민하게 이 통계를 분석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가장 신뢰하는 종교를 물으면 항상 불교가 1등을 란다. 카톨릭이 늘 2등을 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우리 개신교는 늘 3위에 위치하고 있다. 대충 통계를 보면 불교가 25~30% 정도, 카톨릭이 20~30% 사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개신교가 6-10% 사이의 신뢰도를 얻는다. 이 통계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어떻게 한국의 기독교가 이렇게 신뢰를 잃어버린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어떻게 하면 한국 기독교가 다시 회복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믿지 않는 자들에게 신뢰를 얻고 예수 그리스도가 소개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본다.
그러면서 한 가지 결론에 이르게 됐다. 우리 성도들이 정말 주님의 참 제자가 될 수 있다면, 또 주님의 참제자가 되어서 그분의 길을 따라 걸을 수만 있다면, 한국교회 신뢰도는 다시 회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제자된 삶을 살아내야 하는가를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다.
안전지대(Comfort Zone)로 부터 탈출하라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따르면서 편안하게 주님을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어느 학자가 ‘이지 빌리비즘(Easy Believism)’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편안한 믿음, 적당한 믿음, 타협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상태를 이렇게 말했다. 그분이 이 책에서 이런 말을 했다. "많은 그리스인들이 죽을 준비는 되어 있지만 살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천국에 갈 준비는 되어 있지만 이 땅에서 하루하루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를 구체적으로 고민하지 않고 살고 있다는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이분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안일한 지대(Comfort Zone)를 벗어나야 비로소 주님의 제자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다.
잘 아시는 존 스토트(John Sott) 박사님이 계시다. 10여년 전에 돌아가셨다. 이분이 유작으로는 <the radical disciple, 급진적 제자>라는 책이 있다. 한국 번역본에는 ‘제자도’라는 말로 번역을 했지만 본래는 ‘급진적인 제자’이다. 그러면서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처럼 되어야 된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을 하지만 그리스도 담지 않은 것에 대한 안타까운 표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서 8가지 주제로 이 책을 써내려간다.
첫째 등장하는 주제가 ‘Non-Conformity(불순응)’으로 닮지 않음이다. 세상을 닮지 말라, 세상 사람들의 가치를 닮지 말라, 세상 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지 말라라며 불순응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세속적인 문화를 따라 살아가고 있을 때, 우리 크리스천들은 문화를 거스리는 삶을 살아야 된다고 말한다. 이분은 소위 ‘역문화(Counter culture)’라는 말로 이러한 삶을 표현했다.
우리는 두 문화 속에서 살아간다. 세속 문화와 하나님 나라의 문화, 세속적인 가치와 영원한 가치, 세속적인 기준과 영원한 기준 사이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존 스토트 박사는 너희들이 정말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문화를 거스리고 세상을 닮지 않는 사람을 살아야 한다고 유언처럼 우리에게 말씀해주셨다.
1. 제자의 대가를 지불하라(누가복음 9:58)
그렇다. 여기 첫 번째 주제는 누가복음 9:58절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라는 말씀을 보면 아마 이 제자는 주님을 따르면서 무엇인가 얻기를 했을 것이다. 세상 종교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신을 동원하는 종교이다. 그렇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를 동원하는 종교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는 세상 종교와 전혀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영국에서 공부하면서 어느 독일 학자의 글을 읽었다. 그분은 한국 기독교를 무속적 기독교라고 평가하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굉장히 분개했다. 이분이 도대체 한국의 기독교를 어떻게 이해했기를 이렇게 한국기독교를 폄하할 수 있는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유교는 여러분이 아는대로 나의 건강을 위해서, 나의 성공을 위해서, 자녀의 성공을 위해서 신들을 동원하는 종교이다.
우리 안에도 사실은 그러한 모습들이 조금씩 남아 있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부르심을 요구하시는 삶을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욕심과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을 동원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을 해보았다.
예수님은 제자에게 나는 홈리스라고 선언하신다. 뉴욕 다운타운에 가면 홈리스들이 참 많이 있는 것을 보았다. 시카고 북부에서 공부할 때도 남부에 내려가면 정말 홈리스들이 많이 있었다. 예수님이 나는 집이 없다고 선언하신다. 무슨 말씀인가? 네가 나를 따르면서 부를 누리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네가 나를 따르면서 이 세상에서 성공하기를 원한다면 그것도 잘못된 생각이다. 나를 따르는 자는 집이 없다고 급진적인 말씀을 하고 계신다.
2. 삶의 우선권을 정하라(누가복음 9:60)
두 번째 주제가 등장한다. 누가복음 9:60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라고 말씀한다. 어떻게 인간으로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장사를 지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기본적인 도리조차 뒤로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고 하신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먼저’라는 단어라고 저는 생각한다. 우리는 당연히 먼저 가서 아버지를 장사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주님은 죽은 자들로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면서 복음을 전해라고 하신다. 다시 말하면 우선권을 어디에 두야 될 것인가를 이 제자에게 가르치시는 것이다. 개인의 일과 하나님 나라의 일이 상충될 때는 하나님의 일을 먼저 해야 된다고 주님이 가르쳐 주신다.
3. 하나님나라에 집중하라(누가복음 9:62)
세 번째 주제가 등장합니다. 누가복음 9: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이다. 하나님의 나라에 집중해야 된다. 여기서 역시 한 제자가 먼저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해 달라고 한다. 인간으로서 가족을 떠나게 될 때 작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당연히 해야 되는 일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서도 역시 중요한 단어가 ‘먼저’라는 단어이다. 무엇을 먼저 할 것이냐 어떤 일을 먼저 할 것이냐, 여기에 예수님께서 너희가 진정으로 집중해야 되는 일이 있는데 그 일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대해 나가는 것이라고 하신다. 주님은 이 제자 3명을 통해서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되는가를 급진적으로 가르쳐 주셨다.
4. 모든 소유를 포기할 각오를 하라(누가복음 14:33)
14장으로 건너가면 두 가지 교훈이 더 등장합니다. 누가복음 14:33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는 주님의 제자가 되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소유를 내려놓아야 된다고 말씀하고 계시다. 이 소유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인간이 살아하면서 가장 우리의 신앙을 위협하는 존재가 있다면 돈이며 물질이다.
산상수훈에서 등장하지만 예수님의 교훈을 통해서도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 돈은 항상 긴장 관계에 있다. 하나님을 따를 것이냐 돈을 따를 것이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소유를 다 내려놓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하신다. 여러분의 소유를 내려놓을 수 있을만큼 주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주님은 여러분의 소유를 다 달라고 하실 분은 아니다. 아마 여기 앉아 계신 분들 중에 평생 동안 자기 소유를 다 포기하라고 주님이 요구하실 대상은 한 분도 안 계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소유를 버리면서까지 주님을 따를 수 있는 마음의 자세, 태도(attitude)를 요구하시는 것이다. 어떤 자세로 우리가 주님을 따를 것인가, 어떤 과거로 주님을 따를 것인가, 필요하다면 소유라고 포기하고 따르겠다는 제자들이 되어야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5. 목숨까지 미워하라(누가복음 14:26~27)
누가복음 14:26~27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를 보면 한 단계 더 나가 이제는 목숨까지도 미워해야 된다고 하신다.
이 제자들의 삶을 보면 제자들의 그 훈련 단계가 점점 깊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지막 단계는 목숨까지 미워하는 단계이다. 부모 배우자 형제 자매 자기 목숨까지 미워해야 주님의 제자가 된다.
십자가를 지고 거리를 걷는 사람이 있다. 예루살렘에서 만약에 십자가를 지고 걷는 사람이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은 한두 시간 내 십자가의 형틀에서 곧 죽을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따를 때 이런 각오로 따르라는 것이다. 십자가를 지었다는 것은 언제든 주님이 원하시면 목숨까지도 내놓을 수 있는 자세를 이야기한다. 여러분 가운데 그런 제자들은 없을 것이다. 여러분 가운데 생명을 내놓을 만한 제자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여러분들에게 생명을 요구하시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목숨을 내어놓을 것처럼 그 정도로 나를 사랑하고 따라야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찰스 스터드와 윌리엄 보든의 삶
두 청년을 소개하려고 한다. 찰스 스터드(Charles Studd)는 WEC선교회의 설립자이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2,500명 정도 선교사들이 WEC를 통해 나가서 선교 사역을 하고 있다. 찰스 스터드는 50이 되었을 때에 “젊어서는 직업을 걸었고, 중국에서는 재산을 걸었고, 이제는 목숨을 걸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크리켓 선수로 유명한 선수였지만 무디 전도집회에서 도전을 받고 자기의 생을 주님께 드리기로 작정한다. 그의 자서전을 보면 부모와 의논하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왜 그랬을까? 거창고등학교 전영창 교장 선생님이 만들어놓은 계명 중에 직업을 선택할 때 내용이 있다. 직업을 선택할 때 어머니나 아내와 의논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머니와 아내는 너희들이 편안한 삶을 살기를 원할 것이라는 것이다.
찰스 스터드는 부모와 의논하지 않고 선교사가 됐고 선교지에 갔고 건강을 잃었고 자녀도 하나를 잃었다. 심한 천식을 결국 영국으로 돌아왔지만 다시 인도에서 영국인들이 목회자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인도를 향해서 갔다. 몇 년 사역을 하다가 역시 다시 건강이 악화돼서 영국으로 돌아왔다. 50이 다 되었고 건강도 좋지 않았는데 의사와 가족들의 만류에도 “저의 목숨은 하나님 손에 달려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아프리카로 떠나 하나님의 은혜로 18년 동안이나 그곳에서 건강하게 사역을 하셨다.
다른 청년 윌리엄 보든(William Borden)은 예일대학 출신이다. 그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나서, 자기 자신을 어떻게 하나님 앞에 드릴까 기도하기 시작한다. 예일대학에 조찬기도회를 시작했으며, 졸업하는 때에는 1,300명 학생 중에 천명이나 참가하는 커다란 집회가 되었다. 학교에 다니면서 구제단체를 만들어서 빈민촌에 가서 봉사를 하고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사역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선교사가 되기로 작정한다. 하지만 중국 서북부에 있는 위구르족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집트에 잠깐 들렸다가 골수염에 걸려서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난다.
그의 일기장에 이런 말이 기록돼 있었습니다. "Say No to Self, Yes to Jesus everytime, 너 자신에 대해서는 노라고 얘기해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예스라고 대답해라."
윌리엄 보든에게는 아마 수많은 유혹이 있었을 것이다. 1조가 넘는 아버지의 엄청난 재산, 자기의 확보된 미래, 안정된 삶, 안락한 삶, 모든 것이 준비된 청년이 선교지로 가기 위해서 고난의 길을 간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과 개인적인 꿈에 대해서는 ‘노’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르심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 ‘예스’라고 대답하며 평생을 살았다.
급진적인 제자의 삶을 살라
우리 한국교회가 제자도의 열정을 잃어버렸고 오히려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는 공동체로 전락해 버렸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입문에는 성공했는데 변화와 성숙에는 실패한 것 같다. 우리 자신이 변하고 우리 공동체를 변화시켜야 되는데 그럴만큼 실력이 없는 것 같다. 사회를 변혁시키는 변혁가가 살아야 되는 능력을 얻기 위해서는, 오늘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대로 살 각오를 해야 된다고 저는 생각한다.
스탠리 존스는 탁월한 선교사였다. 미국에서 파송되어 인도에 가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간디와 깊이 있는 교제를 자주 했다. 어느 날 스탠리 존스를 찾아온 간디가 이 말을 남겼다고 한다. “우선 기독교인들이 오늘부터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아가도록 하십시오. 예수는 정말 이상적이고 멋진 분입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그분을 전혀 닮지 않았습니다. 만약 기독교인들이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살았다면 우리 힌도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순간이 훨씬 빨리 찾아왔을 겁니다.”
여러분들이 잘아는 대로 간디는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 번 읽은 사람이다. 예수가 누군지 정말 정확히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당시의 서양인들을 향해서 당신들은 예수를 닮지 않았다, 예수 닮은 삶을 지금이라도 살아낸다면 아마 수많은 힌두교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오늘 예수님께서 급진적인 제자가 돼야 된다고 말씀하신다. 적당한 제자가 아니라 세상과 타협하는 제자가 아니라 목숨까지도 내놓을 수 있는 급진적 제자가 되라고 말씀하신다. 여러분 앞에 남은 생애를 주님을 사랑하며 급진적인 제자로 살아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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