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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수도원수도회 제5회 사모수련회 ”기쁨의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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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ㆍ2019-05-21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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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수도원수도회는 5월 19일(주일)부터 21일(화)까지 드류신학교 교수이자 목사요 사모인 손엔젤라 목사를 강사로 초청하여 제5회 사모수련회를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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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교계적인 협조아래 매년 열리는 사모수련회에는 2015년에는 김선우 사모(두레교회 김진홍 원로목사 부인) 등 2인, 2016년은 김금화 교목(하버드대학교 교목) 등 4인, 2017년은 오제은 교수, 2018년은 정희승 사모(오스틴 늘푸른교회) 등이 강사로 참가했으며, 올해까지 총 78인의 사모들이 수련회에 참가했다.

 

그동안 “사모의 영성”, “사모의 소명과 존재감, 이민교회 사모의 역할론”, “상담자와 치유자로서의 목회자 사모”, “기도로 움직여라”라는 주제로 사모수련회가 열렸는데 올해 주제는 “기쁨의 영성”이다.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지만 사모라는 존재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기쁨”이 더욱 필요하다.

 

특히 강사 손엔젤라 교수는 2013년 <Spirituality of Joy: Moving Beyond Dread and Duties>를 출간했으며, 이 책은 이후 <기쁨의 영성>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됐다. 손 교수는 현재 드류신학교의 신대원 종교(상담) 심리학 부교수이며, 놀우드장로교회(손대권 목사) 사모이다. 5월 11일 드류신학교 졸업식에서 올해의 최우수 교수상을 받았다.

 

손엔젤라 교수는 “현재 교회외 기독교가 기울어가고 있는 이유 중 우리 삶 안에 그리고 신앙생활 안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기쁨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고 본다”라며 “우리가 기쁨의 영성을 지닐 때 우리는 만족함과 청명함과 지속성과 감사를 그 열매로 얻을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손 교수는 “내적치유와 기쁨의 영성”, “예수님과 기쁨”, “기쁨이야기 나누기”, “기쁨의 영성과 교회”라는 제목으로 3일간 강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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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들은 2박3일간의 수련회를 도심속의 기도원인 개신교수도원수도회에서 보내며 새벽 침묵의 행진 등 수도원의 프로그램을 따라하기도 했다. 특히 편안한 쉼과 특별한 섬김을 받았는데 My Way 사업장을 운영하는 성도는 통갈비구이와 랍스터로, 주섬김교회의 성도는 정성어린 도시락으로 사모들을 섬겼다.

 

한편 개회예배에서는 홍인석 목사(뉴저지교협 회장)가 설교를 했으며, 폐회예배에서는 수도원 원장 김창길 목사가 말씀을 전했다. 

 

다음은 손엔젤라 교수 강의 요약이다.

 

기쁨의 영성: 두려움과 책임을 넘어 

 

부모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한 명의 아들과 두 명의 딸, 이렇게 세 자녀로 구성된 한 가정은 매우 만족한 삶을 살고 있다. 아버지는 성공적인 사업가이며, 어머니는 가정주부로 요리를 잘 하며, 가정일을 잘 하고 있고, 아이들도 학교생활을 잘 하고 있다. 이러한 가족은 모든 가족들이 되고 싶어 하는 미국의 전형적인 가정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안정적인 삶과 학교에서 좋은 성취를 보이는 자녀들을 그들은 바라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 가정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아버지는, 비록 성공적이지만, 일하는 것을 남몰래 두려워하고, 어머니는 비록 효과적으로 일하지만, 항상 일을 끝내기 위해 분주하며, 아들은 어머니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한 일에 집착하고, 반면에 딸들은 항상 실수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결과적으로, 그 가정은 편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음에도, 인생에서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어떤 측면이 결핍되어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기쁨이다. 기쁨의 부재는 그들의 무관심에서 오는 무표정한 얼굴표정에서 가장 분명히 표현된다. 그들 삶을 지배하는 원칙은 기쁨 대신에 두려움과 의무일 수 있다. 비록 그들의 수행능력은 칭송받을 만큼 가치 있을지 몰라도, 종종 그들의 삶은 공허함으로 채워져 있어서 마치 비워져 있는 박스와 비슷할 수 있다.

 

불행하게도, 위의 가정과 유사하게, 우리 중 많은 가정들이 일반적으로 그들의 삶에서 기쁨을 영위하지 못한다. 이것은 내가 신학교 수업과, 워크숍, 그리고 학회 등과 같은 다양한 그룹 환경에서 실시했던 구두 조사에서도 분명히 드러났다. 예를 들어, 나는 성령으로 충만한 여성이라는 주제로 개최되었던, 미국 장로교의 교회 회의(synod)가 후원하여 해마다 열리는 한 여성 학회에서 주강사로서 성령의 열매인 기쁨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질문하면서 시작했다. 나는 네 그룹으로 여성들을 나눴고, 각 그룹이 한 질문에 대답하도록 요청했다. 나는 첫 번째 그룹에게는 어떤 말들을 가장 하고 싶어 하는지 이야기하도록 했다. 두 번째 그룹에게는 어떤 말들을 가장 하고 싶어 하지 않는지, 또는 어떤 말들이 가장 말하기 어려운 지를 토의하게 했다. 세 번째 그룹에게는 어떤 말들이 가장 듣고 싶은지를 논의하게 했고, 마지막으로, 네 번째 그룹에게는 어떤 말들이 가장 듣고 싶지 않으며 또는 가장 듣기 어려운 지를 토의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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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응답들은 대단히 일관성이 있었다. 그들이 가장 말하고 싶고 듣고 싶은 것은 말을 하는 사람으로서든 듣는 사람으로서든 간에, 기쁨을 가져오는 말들로, 감사, 축하, 사랑, 지지, 나눔, 유머, 사과, 격려의 말들이다. 가장 듣고 싶지 않거나 하고 싶지 않은 말은 기쁨을 감소시키고 억제시키는 말들이었다. 예를 들자면, 꾸짖는 말, 명령하는 말, 잘못을 지적하는 말, 거부하는 말, 부적절함을 지적하는 말, 비난하는 말,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 등이 바로 그런 말들이었다. 비록 이것이 뉴저지와 뉴욕 장로교의 특정 그룹에게 행해진 조사임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들은 다양한 그룹 배경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행해진 조사들과도 일치되는 것이었다. 이 간단한 조사는 기쁨을 바라지만 그것이 결핍된 우리 삶의 역설적 상황을 보여준다. 비록 우리는 우리 안에 기쁨을 불러일으키는 말들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듣기 원하고, 또 그들을 향한 우리의 기쁨을 표현하기를 원하지만, 우리는 기쁨의 말들을 표현하지도, 또 그 말들을 다른 이들로부터 듣지도 못하는 듯하다.

 

우리는 많은 말을 하고 또 들으며 산다. 너무 많은 말들이 우리의 입을 통해서 나가고 귀를 통해 들어오게 된다. 하지만, 너무 많은 말을 하고 듣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와 다른 이들에게 기쁨을 불러일으키는 말을 거의 하지 않거나 듣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우리가 반복적으로 말하고 듣게 되는 것은 감사와 지지, 또는 사과와 같은 말 대신에 명령과 요구, 또는 질책과 같은 말들일 때가 많다. 물론, 때때로 우리가 원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는 말을 듣거나 말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질문할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긍정적인 말들은 제쳐놓고 당장 해야 할 일이 뭔지를 그들에게 곧장 말해버린다면,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경시해서 그런 것은 아닌가? 아마도 더 직접적인 질문은 이런 것일 것 같다. 우리가 지지하고, 격려하고, 사과하고, 감사하는 말 대신에 요구하고, 거부하고, 비난하는 말을 곧바로 내뱉어 버리는 것은 우리가 기뻐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인가?

 

아마도 이것은 많은 이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크기의 두려움과 의무의 끝없는 순환과 같은 것들에 마주하면서 자신들이 갇혀 있다고 느끼는 중요한 이유일지 모른다. 심지어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문제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을 때가 많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대개 한 가정이 얼마나 기쁨으로 가득한지 보다 얼마나 부유한지에 관심을 가진다. 게다가, 교회와 사회 모두 이러한 상황 곧 우리 삶의 기쁨의 부재를 치료하기 위해 비효율적인 접근을 해왔다. 특별히, 기쁨의 영적 차원을 강조하는 교회의 노력은, 비록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었지만, 대개는 성령의 열매 중 기쁨을 2등급으로 간주하는 무언의 태도나 인간 조건에 대한 심리학적으로 세련된 이해의 부족으로 인해 일회성에 그칠 때가 많았다. 그러한 제한된 접근은 잘못된 믿음과 실천을 만들어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접근에서의 실수는 기쁨을 성령의 다른 열매와 비교하여 열등한 것으로 여길 때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은 기쁨을 충분히 발달시키지 못한 채 억압된 기쁨을 누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가 기뻐하며 살도록 사람들을 장려할 때, 기쁨의 완전한 표현이 기독교적이지 않다는 두려움으로 그것을 삼간다. 이러한 실수는 인간 상황을 진단하거나 치료방법을 제안할 때에도 잘 나타난다. 이런 접근이 갖는 근본적인 진단의 오류는 우리 삶의 기쁨 부재 원인을 욕망과 즐거움에 대한 부도덕한 쾌락주의적 성향에 돌리는 것이다. 제안된 치료 방법의 잘못은 기쁨을 요구하는 한 사람의 능력이 전적으로 그 사람의 의지력에 있다고 보는 가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잘못된 해결책은 사람들의 의지를 훈련시켜서, 욕망과 쾌락에는 아니오라고 말하고 기쁨에는 예라고 말하라고 간단히 충고한다. 이러한 해결책을 따르게 될 때, 우리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쾌락을 찾는 것을 그만두시오. 그리고 기쁨에 넘치도록 노력하세요.

 

이러한 널리 퍼진 잘못된 믿음과 오해, 그리고 불완전한 실천에 응답하여, 기쁨의 성서적인 그리고 심리학적인 이해를 살펴보며 기쁨의 영성의 필요성을 느끼며 발달시켰다. 특별히, 복음서를 살펴보며 산상수훈 설교를 재해석하고 예수의 삶을 되짚어 봄으로 하나님과 우리 괸계의 궁극적인 표현을 기쁨으로 졔시하고 아울러 하나님을 궁극적인 기쁨발견자로 소개한다; 그리고 하인즈 코헛의 자기 심리학의 통찰을 사용하며 우리 삶에서 기쁨을 누리는 우리의 능력이 성향으로서의 기쁨의 발달에 의존해 있음을 제안한다. 기쁨의 성향을 발달시키는 데 있어, 세 가지에 대해 논의가 필요하다: (1) 우리 안에 성향으로서의 기쁨이 개발되는 것은 기쁨발견자(joyfinders)라 부르는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2) 성향으로서의 기쁨의 개발이 이뤄지지 않으면 끊임없이 즐거움만 계속 찾으며 기쁨이 없는 삶을 살게 된다. (3) 성향으로서의 기쁨의 개발은 우리 내면의 자기 확신과 생명력을 촉진하게 된다. 

 

다시 말해, 우리를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의지력이 아니라 놀랍게도, 기쁨을 우리와 함께 공유하고자 하는 다른 이들의 의향이며 그것이 곳 성향으로서의 기쁨을 개발하도록 우리를 돕는다. 게다가 우리 삶에서 보이는 기쁨의 부재는 우리 사회에 보편적인 쾌락에 대한 몰두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성향으로서의 기쁨의 개발이 부재된 데 그 이유가 있다. 그러므로 기쁨 없는 공허함의 느낌이 우리 삶에 쾌락을 추구하는 강한 경향의 결과가 아니라 그러한 경향의 원인임을 주장한다. 다시 반복하자면, 기쁨의 이러한 부재는 쾌락에 대한 우리의 의존성이 가져온 결과가 아니라 그 원인이다; 우리의 쾌락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은 우리 삶에 기쁨의 부재가 그 원인이 아니라, 성향으로서의 기쁨의 부재가 갖고 있는 증상이다, 이러한 기쁨 없는 삶에 대한 성서적인 그리고 심리학적인 고찰은 이러한 상황의 치료책으로 기쁨에 대해 예라고 이야기하고 쾌락에 대해 아니오라고 간단히 이야기하는 것이 왜 부적절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반복적으로 기쁨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은 단순히 기쁨에 대해 긍정하고 쾌락에 대해 부정하는 이러한 사회적 치료 방안에 맞추어 살아가려 할 때 좌절하게 된다. 불가피하게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인데,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성향으로서의 기쁨이 부재하게 될 때, 그 사람은 기쁨을 긍정하고 쾌락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우리에게는 보다 더 적절한 접근이 필요한데,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성향으로서의 기쁨을 개발시키게 하는 것이다. 단순히 쾌락에 노예가 되지 말고 기쁨의 삶을 살라고 사람들에게 권면하는 대신에, 성향으로서의 기쁨이나 그들의 영혼 깊이에 확신감을 세우는 방식으로 그들은 돌봄을 받을 필요가 있다.

 

삶의 기쁨을 고찰하기 위해, 사람들을 두 부류들로 나눌 수 있느데, 그것은 기쁨발견자(joyfinders)와 기쁨거절자(joyrefusers)이다. 기쁨발견자는 기쁨이 개발된 성향으로 자리 잡고 있어 그 결과로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다. 게다가,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에 부여하신 가장 풍성한 수준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반면에, 기쁨거절자들은 삶의 기쁨을 경험하는 데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다. 기쁨거절자들이 의도적으로 기쁨을 경험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어린 시절 거절되고 억압된 기쁨의 경험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 어린 시절, 기쁨의 경험이 인정되지 못하고 대신에 좌절되고, 부인되고, 혹은 거절되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성향으로서의 기쁨의 개발이 결핍되어 있다. 그들 삶에서 기쁨을 발견할 능력이 부족하고, 그 결과로, 자연스럽게 그들은 기쁨거절자들이 된다. 이와 같은 사람들은 성향으로서의 기쁨을 발달시키지 못했기에 안전감과 확신감이 떨어진다. 그러므로 기쁨을 찾으려는 그들의 노력은 종종 삶의 안전감과 확신감을 가져다줄지 모르는 모든 조그만 것들을 모으는데 초점을 맞추게 된다. 기쁨거절자의 부류에 속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좀 더 이 그룹을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두 부류의 기쁨거절자로 나눌 수 있다. 나는 그들을 의무에 묶인 사람들 그리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불행하게도, 비록 우리가 처한 개별적인 상황이 어느 정도는 다르다고 하더라도,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우리 스스로를 이와 같은 부류에 속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기쁨발견자보다는 기쁨거부자가 더 많다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럼으로, 사회에서 가장 갈급한 것은 기쁨과 기쁨이 주는 삶의 생동감이다. 우리가 이 사회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기쁨거절자로 살아가면서 겪는 갈급함에 대해 기쁨의 영성은 필수적이다. 현재 교회와 기독교가 기울어가고 있는 이유 중 우리 삶 안에 그리고 신앙생활 안에 한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기쁨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라고 본다.  우리 모두가 기쁨발견자의 모습을 띄울 수 있도록 교회는 노력해야할 것이다  또한, 기쁨발견자 되는 과정의 중심에는 우리와 하나님 그리고 우리와 다른 이들관의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그리고, 우리가 기쁨의 영성을 지닐 때 우리는 마음의 만족함과 청명함, 지속성 그리고 감사를 그 열매로 얻을 수 있으며 기쁨의 영성은 우리를 다른 이들을 위한 기쁨발견자로 부른다. 

--기쁨의 영성: 두려움과 의무를 넘어 기쁨으로 향하는 길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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