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열 목사 ⑦ 다민족 다문화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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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ㆍ2019-05-01 07:04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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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열 목사(뉴욕리폼드신학대학 학장)는 다민족 선교를 한인이민교회 미래의 하나의 대안으로 보고 “이민교회의 위기 대처 및 극복 방안: 다민족선교”라는 주제로 글을 연재합니다.
[시리즈 기사]
① 다민족선교 - 이민교회 위기 대처 및 극복 방안
② 다민족선교 - 선교의 성경적 이해
③ 다민족선교 - 선교의 신학적 기초
④ 다민족선교 - 선교적 교회
⑤ 다민족선교에 대한 역사적 교훈
⑥ 다민족선교와 도시선교
II. 다민족 선교와 도시선교
B. 도시선교
2. 도시교회의 지도력과 제자도
a) 도시교회의 지도력
도시교회의 지도력은 사역을 감당할 도시상황과 밀접히 관련을 가지며 하나님의 소명에 따라 나누어 주시는 은사의 결과로 형성된다. 도시교회의 지도력은 도시성(urbanism)의 영향을 받게 되는데 지도력은 크게 두 가지의 측면에서 고려된다. 먼저는 현재 살고 있는 대도시의 다민족 교회 지도자의 측면이고 또 하나는 해외 선교지로의 파송을 목적으로 하는 지도자 선발의 측면에서다.
칸(Conn)은 도시의 상황을 고려할 때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종류의 지도자가 도시교회에 필요함을 주장하고 있다.
첫째, 이전해온 지도자(relocated leader)이다.
이 종류의 지도자는 농촌이나 교외 등 전혀 다른 환경과 문화 출신으로 도시 지역사회에 들어가는 사람들로 이들에게 있어서 도시는 낯선 장소이다. 일상의 생활도 낯설고 사역을 하기에도 거북하고 때때로 답답하다. 이들은 도시의 필요를 깨닫고 소명의식을 가지고 도시에 들어온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새로운 상황에 적응할 시간과 훈련이 필요하다. 이전해온 지도자들은 진정한 의미의 타문화 사역을 하는 사람들로 해외 선교사와 같지만 그들은 본국 상황과 훨씬 더 가까운 곳에서 사역을 한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둘째, 토착 지도자(indigenous leader)이다.
이들은 자신이 사역을 하고 있는 도시에서 자라난 그 도시의 특정한 문화에 속한 사람들이다. 토착 지도자들은 도시사역 훈련 여부와 상관없이 사회적 인종적으로 자신들이 사는 도시의 상황 속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도시 중심이든, 도심지 빈민가이건 상관이 없으며 인구가 밀집되어있거나 다문화적인 환경에서도 답답함을 느끼지 않는다.
여기서의 ‘토착의’(indigenous)란 말에 관하여 칸은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 진영에서 선교와 관련하여 그 말의 사용에 대한 많은 문제를 제기했음을 지적하며 가톨릭 신학자인 로버트 J. 슈라이터(Robert J. Schreiter)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슈라이터에 의하면 ‘토착의’라는 단어가 한때 특별한 의미로 사용된 때가 있었다. 즉 “대영제국에 속해 있던 지역에서 ‘토착의’라는 말은 식민지 정부에서 일하던 영국인들을 그 지역 출신의 지도자들로 대체하던 정책을 암시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선교에 있어서의 토착이란 말이 식민지 시대의 개념으로 이해됨을 경계할 필요가 있음을 알게 한다.
따라서 칸은 자신이 토착 지도자라고 말할 때의 그 의미를 부연설명하고 있는데 그에 의하면 토착 지도자란 어느 한 도시의 특정한 문화적 사회학적 분위기에서 자란 사람이어야 하며 심리적으로나 사회학적으로나 그런 상황을 자기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들은 도시를 자기 고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정착을 위해 극복해야 할 어떠한 장애물도 없다. 도시의 음악, 문화, 언어는 그들의 것이기에 그들은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를 잘 알고 있으며 그곳에서 의미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 자신이 그곳에서 경험한 것에 비추어 세상을 판단한다.
한편 도시 청소년 사역자인 웨인 L. 고든(Wayne L. Gorden)은 어떤 도시든지 토착지도자들이 이미 그 도시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는데 이는 타당하다.
“먼저 우리는 ‘지도자들이 이미 우리 지역사회에 있다’고 믿어야 한다. 이웃에 사는 젊은이들을 볼 때,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한 것처럼 그들의 유용성을 무시하지 말고,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그들을 보아야 한다. 우리는 주위 사람들을 우리보다 지역사회의 필요에 훨씬 더 민감한 통찰과 직관을 가진 지도자로 보아야 한다. 지도력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세상과는 달라야 한다.”
어떤 지역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자란 토박이가 후에 그곳의 지도자가 되었다면 장기적으로 사역하는데 있어서 매우 소중한 자산임이 틀림없다. 토박이 지도자는 그 지역의 사람들과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고 그곳의 상황에 맞도록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들의 필요를 이해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선교의 극대화를 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셋째, 다인종적 지도자(multi-ethnic leader)이다.
이들은 다인종적 환경에서 발견되는 유형으로 한 지역 교회에서 다른 지도자들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다. 예를 들면, 교회 인근에 대학교 캠퍼스가 있는 경우나 젊은 전문직업인들이 쉽게 출퇴근할 수 있는 거리에 거주하고 그들의 일상의 삶과 접촉하며 사역을 감당하는 사람들이다.
칸은 현실적으로 다인종적 지도자들이 제대로 활동하도록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다인종 지도자들은 대체로 도시사역에 대해 제대로 훈련받지 못하고 자신의 인종문화만 잘 아는 경우가 많으며 또한 그들 자신이 속한 종족집단을 돕고자 하는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서 도시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자주 있음을 지적한다.
다인종 지도자들에게 있어서 요구되는 중요한 사항들이 있다. 먼저는 보다 큰 틀에서 선교를 바라보아야 하고 동시에 특정종족집단을 향한 복음전도의 열정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 다민족 지도자들에게 있어서 자민족 중심주의는 금물이다.
한편 상황은 지도력에 있어서 많은 부분에 영향을 준다. 그러나 상황에 의한 요구조건이 채워진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장애물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도시사역 가운데 찾아오는 몇 가지의 스트레스 요인을 들 수 있다. 외로움, 영적개발의 부족, 균형 잡히지 않은 생활방식, 새로운 사역과 관련된 성찰의 필요성,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시험, 인간의 욕망에서 출발한 필요와 소원 등이다. 이러한 요인들은 지도자의 내부로부터 출발된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결국 지도력은 외적 상황의 조건 충족이 중요한 요소인 것이 분명하지만 지도력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다시 말하면 교회 지도력의 자격조건 가운데 많은 것이 다른 조직들의 경우와 비슷한 부분들이 있지만 어떤 조건들은 교회에만 해당하는 유일한 것들로서 곧 영적인 조건들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적인 가족인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전능하신 역사에 대한 신앙고백을 통해 성령께서 만들어 주신 크리스천 모임”이기 때문이다.
미네소타주 세인트 폴에 위치한 루터 신학교(Luther Seminary)의 선교학 교수인 크레이그 벤 겔더(Craig Van Gelder)는 지도자의 자격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은 크게 두 가지 범주에서 강조하고 있다고 말한다. 교회는 세상의 그 어떤 조직과도 성격이 다르다는 측면에서 볼 때 그의 주장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첫째, 교회의 지도자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인격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교회의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성령의 열매를 통해 자신의 인격의 성숙함을 증명해야 한다(갈 5:22,23). 이러한 열매들은 자신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타인을 위한 것으로 신자들과의 성숙한 관계를 발전시키는데 필요한 사회적 특성을 갖는 요소이다.
둘째, 성경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그 은사와 재능에 기초하여 선택될 것이라는 점을 가정하고 있다. 성령은 교회의 모든 사람들에게 영적인 은사를 나누어 주지만 특별히 어떤 은사들은 지도력과 직접적인 관련을 갖는다. 이러한 은사는 사람들을 자극하며 동기를 부여하고 능력을 나타낸다. 한편 어떤 지도자들은 지도자로서 섬길 수 있는 사람들을 분별하고 모집하고 훈련하며 시험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교회 공동체는 지도자로 선택된 사람들을 확인하는 일을 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 없이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들의 지도력을 스스로 취해서는 안 된다. 이는 교회의 지도자들은 세상의 조직을 이끄는 지도자들과는 전적으로 다른 기초에 근거하여 기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으로부터의 은사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교회에서 요구되는 지도력을 가질 수 없음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므로 도시교회의 지도력은 하나님께로 부터의 소명이 반드시 있어야하고 도시사역에 합당한 은사를 성령께서 나누어 주심으로 형성되어야 한다. 이러한 지도력의 특성은 지도자가 가지고 있는 직무나 권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수행할 도시교회 사역의 독특성과 그에 대한 책임에 있게 되는 것이다.
b) 도시교회의 제자도
도시교회 사역을 감당함에서 있어서 제자도의 본질은 도시성에 따른 문제들을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미 살펴본 대로 도시는 다양한 민족과 문화로 형성된 독특한 사회구조를 이루고 있다. 지도력에 대한 지적 이해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많은 장애물이 도처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장애물 극복의 성패는 제자도에 달려있다. 여기서의 제자도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며 그분을 믿는 것이며 그분을 자랑하는 것이며 그분께 헌신하는 것이다.
이러한 제자도는 지도력의 항목에서 살펴본 세 가지 지도자들, 즉 이전해온 지도자, 토착 지도자, 다인종 지도자들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요구되는 내용들이다. 토착 지도자들은 이전해온 지도자들이 겪는 문화적응의 어려움을 겪지 않아도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영성개발, 신학적 훈련, 상황화 등의 훈련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특별히 영적인 측면은 절대로 소홀히 다룰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아무리 문화적 이질감이 없는 토착 지도자라 할지라도 영적인 자격을 갖추지 못하면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칸이 홍콩에서 있었던 한 예를 소개하는 다음의 글은 영적 성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드러내준다.
“홍콩의 한 교회 개척자가 지역 주민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 식당에서 만난 한 고층 아파트 주민을 방문하고 난 후, 그는 마침내 복음을 전하고 성경공부를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발견하게 되었다. … 사람들은 대단히 호의적이었으며, 열린 마음으로 복음을 들었다. … (그들은) 전도하려는 열망으로 다른 사람들을 가정 성경공부에 초대하기 시작했다. …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 교회 개척자는 다른 곳에서도 사역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보다가, 현재의 사역을 1년 반 전에 주님을 영접한 최초의 회심자들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런데 새로운 지도자들이 가정 모임을 인도한지 석 달 후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참석자들이 줄어드는 것 같았다. 교회 개척자는 새로운 지도자가 사람들에게 모임에 반드시 나와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어떤 사람이 모임에 빠지면, … 그가 불같이 화가 나서 어떤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망신을 준 일도 있었다. 야단을 맞은 그 사람은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마침내 그 모임의 모든 구성원들이 떠나버렸으며, 고층 아파트에 교회를 세우려는 소망은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다.”
지도자들에게 있어서의 영적 성숙은 필수적 과제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경적인 지도자 양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영적으로 성숙한 지도자 양성에 힘을 써야한다. 이런 측면에서 신중한 지도자 선발이 중요하다. 물론 주님 자신이 지도자가 될 사람을 선택하시지만 교회는 주님이 선발하신 사람들을 확인해야 할 책임이 있으며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은 새로운 지도자들을 선발하실 때 기존의 성숙한 지도자들을 도구로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훈련시키는 일에도 교회를 사용하시기에 교회는 지도자들을 모집하고 훈련하는 하는 일에 더 큰 책임을 가져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칸(Conn)은 후보자 선발 시에 교회가 참고할 제자도에 필요한 네 가지의 중요한 요소를 제시해 준다.
첫째, 종이다.
종에게는 자신의 주장이 있을 수 없다. 그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충성뿐이다. 교회의 모든 사역자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흔히 신학자요 선교사로 불리는 바울 사도는 자신의 신분을 종으로 밝힌다(롬 1:1). 종(δοῦλος)이란 당시 헬라 사회에서 가장 비천한 노예(slave)를 가리키는 용어였다. 바울이 자신을 노예로 호칭한데는 적어도 두 가지의 사상을 함축하고 있다. 하나는 당시의 사회적 인식과 같은 ‘비천함’의 반영이고 또 하나는 구약에서 사용된 하나님의 종의 전통을 잇는 영광스러운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반영한다.
지도자로서의 자기인식은 대단이 중요하다.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에 따라 삶의 목표와 태도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종으로서의 자기인식은 교회사역의 모든 영역에서 빼놓을 수없는 요소이다.
칸은 자신을 낮추어 생각하는 지도자 후보는 장차 직면하게 될 수 있는 중대한 문제들을 피하게 된다고 하며 “지도자들은 그리스도가 지시하신 일을 하는 그분의 종이다. 그 들은 겸손하게 지시를 기다리며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있는 종이 되어야한다”고 말한다. 전적으로 옳은 말이다. 이러한 자세일 때 주님을 핑계한 자신의 야망을 꿈꾸지 않을 것이며 세상적인 힘이나 자신의 능력을 앞세우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도자는 다른 사람을 주관하거나 조종하지 않고 오히려 후원하고 높이는 일에 관심을 갖는다.
종의 특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세 중의 하나는 섬김이다. 신약에 나타나는 많은 봉사는 곧 섬김의 행위이다.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고, 집 없는 자에게 쉴 곳을 마련해 주는 것, 그리고 헐벗은 자에게 옷을 입혀 주며, 아픈 자와 갇힌 자를 방문하고 과부와 고아들을 돌보는 것 등, 이 모든 봉사는 섬김의 지도력을 보여주는 그리스도의 종의 모습이다. 제자도의 시작은 종으로서의 자기인식이다.
둘째, 청지기이다.
도시교회의 지도자는 청지기적 사명을 갖는다. 하나님이 계시하신 진리와 유대인과 이방인을 위한 구원의 놀라운 비밀을 맡아 종의 자세로 관리를 해야 한다. 고린도전서 4:1 말씀은 청지기의 자세가 무엇인가를 잘 가르쳐준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찌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하여 교회의 지도자에게 주어진 청지기적 사명에는 복음을 전할 책임과 의무가 있음을 가르쳐 준다. 더 나아가 지도자는 성경을 가르치고 복음을 지역사역에 적용하는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함을 권면한다.
죄와 억압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복음뿐임을 기억하며 사회적 혹은 영적으로 복음을 축소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특별히 개인주의적 선택의 권리가 극대화 되어있는 도시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전하는 일이야말로 청지기의 본질적 사명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셋째, 학생이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해지기 원하고 또한 훈련받기 원하는 사람을 지도자 후보로 선발할 필요가 있다. 훈련은 후보자가 되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 영적 성숙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역은 머릿속의 이론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상황을 떠난 사역은 이미 사역이 아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움직이는 도시의 현저한 특성은 도시교회의 지도자에게 늘 도전으로 다가온다. 빠른 도시변화에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가는 반드시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이다. 도시교회의 지도력 향상은 자신이 지도자인 동시에 또한 학생이란 인식이 없이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넷째, 도시 사역자로서의 특별소명이다.
교회의 모든 사역은 소명에 의한 것이다. 도시교회의 지도자에게 있어서 소명은 이미 살펴본 도시의 여러 특성에 비례한 만큼 그 중요성을 갖는다. 빠르게 변화하는 지역사회를 섬겨야하고, 다민족, 다문화의 복합적 상황에 적응해야 하며 서로 다른 사회적 혹은 경제적 계층의 사람들을 위해 사역을 하고 또 함께 사역을 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융통성도 가져야 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총체적인 사역이 필요한 곳이 바로 도시이다. 따라서 도시사역을 위한 특별 소명을 확인하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내용정리>
선교의 역사에서 위대한 세기로 불리는 19세기는 세계선교의 문을 활짝 열었다. 특히 19세기 말에 이르러 초교파적 많은 선교단체가 설립됨과 더불어 내지선교로의 복음전도의 확장을 경험했다. 특히 1903년 하와이 취업이민으로 공식적인 이주가 시작되면서 미국의 주요교단인 지금의 UMC와 PCUSA의 다민족선교에 불을 붙였고 그들의 관심과 선교의 열정은 마침내 하와이 한인감리교회와 나성 한인연합장로교회의 성공적인 태동을 가져왔으며 오늘의 미주한인교회의 발전에 주요한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제 이 시대에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다민족 다문화 선교이다. 미남침례교회의 선교전략인 ‘일군에서 일감으로의 전환’에 이어 국내의 ‘다민족선교’에로의 관심은 이 시대의 사회적 상황변화에 따른 적절한 전략이다. 지금은 온 땅의 모든 민족이 세계적 도시화 현상에 맞물려 있다. 특별히 대도시는 사회조직의 여러 특성에 따른 종합적 선교전략을 요구하며 모든 곳에서 모든 곳으로 갈 수 있는 다문화 시대를 열었다.
문화는 복음을 담는 그릇이다. 그릇은 본질이 아니며 받는 대상에 따른 상황화가 요구된다. 따라서 ‘문화와 상황화’ 연구는 자연스런 순서이며 필수적이다. 다음 장은 문화의 다양성 및 상황화의 한계 등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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