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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삼 목사 “하나님 중심 vs. 교회 중심” 시각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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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ㆍ2019-10-11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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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지도자들이 참가하는 선교적교회 컨퍼런스가 10월 7일부터 3일간 뉴저지 베다니교회에서 열렸다. 한국에서 온 김병삼 목사(만나교회)는 첫날 전체 컨퍼런스의 핵심이라고 할 만한 강의를 펼쳤는데 제목은 “In & Out"이었다. 

 

[관련 기사] 미주와 한국 리더들이 함께한 선교적교회 컨퍼런스

http://usaamen.net/bbs/board.php?bo_table=data&wr_id=9751

 

김병삼 목사 강의를 통해 “선교적교회의 4가지 원리”를 나누었다. 선교적교회로 가기위해 먼저 해야 할 4가지 사고의 패러다임 시프트를 강조했는데, 특히 교회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사고로 전환하라는 내용은 큰 도전을 주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시절 정무수석과 목회자들의 만남에 대한 일화를 들려주며 세상과는 다른 가치를 가진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 에클레시아 vs. 키르케

 

앤디 스탠리가 쓴 <Deep & Wide>에는 에클레시아 이야기를 한다. 키르케라는 교회가 있고, 에클레시아라는 교회가 있다. 에클레시아는 모임이라는 뜻이고, 키르케는 건물적인 교회를 이야기한다. 마태복음 16:16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시고 그 고백위에 교회를 세우셨다. 그 교회는 건물적인 교회가 아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시다. 굉장히 당연한 것 같은데 우리들이 그것을 실제 믿음으로 고백하느냐 고백하지 않느냐 하는 것에 따라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진다. 

 

앤디 스탠리는 우리교회가 에클레시아인가 키르케인가 자기 점검을 해보라고 했다. 1. 우리는 운동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냥 모이고 있는가 2. 우리는 지역사회에 가시적 변화를 이루어내고 있는가 아니면 그냥 예배를 수행하고 있는가 3. 우리는 사명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는가 아니면 이전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낡은 사역모델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는가 4. 우리는 예수께서 정말 세상의 소망이신 것처럼 자원을 배분하고 있는가 아니면 교회 문화의 타성에 이끌려 예산을 책정하는가?

 

선교적교회를 이야기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중 하나는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교회에 대한 생각들이다. 예배가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는 왜 예배하는가? 왜 모이고 있는가? 교회 안에서 헌금은 중요한데 왜 헌금을 하는가? 조금 더 본질적인 그런 질문들이 필요하다.

 

키르케에 대한 문제를 3가지 B를 통해 이야기한다. Building(건물), Bodies(교인수), Budget(재정) 이다. 키르케에서는 교회가 얼마나 큰 건물을 가지고 있는지 묻는다. 우리는 교회를 생각하면 자기도 모르게 떠오르는 것이 교회 건물이다. 특히 한국에서 목회자들이 모이면 흔히 묻는 것이 교인이 몇 명이며 본당이 몇 석이냐 하는 것이다. 대개 우리들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교회건물적인 키르케에 대한 부분이다. 또 재정이다. 교회를 정확히 파악하려면 1년 예산이 얼마인가를 알면 계산이 다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키르케에서는 교회건물이 어떤 건물인지가 중요하지만,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는 것이다. 

 

교회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교회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에 따라 교회모습이 보여진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이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여기 모인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얼마나 재정이 풍부한가가 아니라 이 재정이 어디에 사용되고 있는가?

 

저는 선교학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만나교회 목회를 지금처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나교회 담임이 되어서 목회를 하는데 선교학을 근거로 해서 교회를 생각했을 때 교회의 이상적인 재정 사용은 어떤 것인가,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가, 그리고 교회 건물이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은 저에게 중요한 문제이다. 교회가 에클레시아인지 키르케인지를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2. 하나님 중심 vs. 교회 중심

 

교회가 하나님 중심인지 교회 중심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부터 출발한다. “교회에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대상을 사랑하지 않는다.” 우리는 교회에서 주님에 대한 사랑을 굉장히 많이 고백한다. 그러나 정작 주님이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그렇게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우리끼리 주님을 사랑하지만 선교적교회로서 역할은 잘 감당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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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공부할 때 인상적인 분이 갈보리채플의 척 스미스 목사였다. 갈보리운동이 막 일어날 때 척 스미스 목사가 목회하던 사람들은 히피족들이었다. LA지역에서 머리를 길게 기르고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맨발로 다니는 히피족을 위해 선교했을 때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그래서 교회를 새로 짓고 카펫도 새로 깔았다. 새로 건물을 짓고 첫 주일에 교회 리더십들이 맨발로 들어오면 카펫이 더러워진다며 히피족들이 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척 스미스 목사는 카펫이 더러워진다고 교회의 문을 닫으려면 카펫을 다 걷으라고 했다. 

 

레너드 스윗이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제자중 하나가 교회 새로 짓고 준공예배를 하던 날, 사람들이 로비에서 리셉션을 했다. 그런데 예배드릴 시간이 다 되었는데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느라고 예배당에 안들어 왔다. 목사는 사람들이 다 들어 온 후에 강대상 카펫에 주스를 부었다. 우리가 교회가 더러워질까 들어오지 못한다면 교회를 일부러 더럽게 해서 모이는 공간을 만들겠다고 했다.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단순히 예배를 드리는 거룩한 공간으로 교회를 생각하는가 아니면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주님을 고백하는 장소로 생각하느냐 하는 것은 교회를 아주 다르게 만드는 차원이다. 교회중심적인 생각을 하면 교인들이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을 위해 시설들이 사용되는데, 교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는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교회건물은 굉장히 다르게 사용될 수 있다. 선교적교회에서는 교회건물에 대한 패러다임도 굉장히 많이 바뀔 수 있다.

 

우리교회 부목사가 어떤 교회에 갔더니 그 교회 청소년 교역자들이 “우리교회는 술담배를 하는 아이들이 하나도 없다”고 자랑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우리교회 부목사가 “이 교회는 모든 아이들이 은혜를 받아 이제 담배를 안하게 된 것인가 아니면 술담배를 하는 아이들이 나올 수 없는 교회를 만든 것인가?”라고 물었다. 

 

지난주에 길이 막혀 결혼주례 시간을 맞추지 못할까봐 지하철을 타고 주례를 다녀오는데 지하철 안에 어떤 청년들이 인사를 하고 인증샷도 같이 찍었다. 그런데 청년들이 입을 가리면서 죄송하다고 했다. 보니 술을 먹어 술냄새가 났다. 하지만 청년들과 해어지면서 제 마음은 굉장히 기뻤다. 우리교회 청년들이 술 먹고 저를 피해서 도망가지 않고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해서 감사했다. 저는 그것이 선교적교회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이 술 먹고 목사를 피해간다면 나는 그 아이들의 친구가 될 수 없는 목사일 것이다. 저는 옳고 그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을 한번 깨 보자는 것이다. 

 

2년 전에 페이스북에 쓴 글이 있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나가는데 뒤에 청년 하나가 서 있다가 저를 보더니 “목사님, 저는 살고 싶어요”하면서 기도를 해 달라고 했다. 저는 아무런 내용을 몰랐다. 청년을 위해 기도하고 가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 청년을 다시 만났다. 이 친구가 입에 손을 가리고 뒤에 숨어있었다. 술을 먹고 교회에 온 것이다. 나는 그 청년에게 “술 먹고 와도 괜찮아. 네가 와도 괜찮은 곳”이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언젠가부터 진짜 교회에 와야 할, 술을 먹고 죽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청년들과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오지 못한다. 교회가 교회중심이 되어서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하는 교회가 되었다. 교인들은 이래야 한다는 생각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막아버린 것이 아닌가? 

 

선교적교회가 되는 2번째 중요한 원리는 우리교회가 하나님 중심적인 교회인지 아니면 교회중심적인 교회인지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구조가운데 우리는 교회를 생각하기를 하나님이 교회를 만드셨고 교회는 세상을 위해서 일한다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사역을 하고 선교하는데 중심은 교회에 있다. 교회가 일을 한다. 그런데 선교적교회에서 패러다임은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셨고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 교회가 뛰어드는 것이다. 선교적교회에서는 교회가 존재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일하신다. 교회중심적 교회에서는 교회가 없으면 하나님의 일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교회역사가 그렇게 길지 않다. 하나님의 역사가운데 교회는 2천년 전 하나님의 일을 위해 세워진 공동체가 교회이다. 힘든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교회가 세워지기 전에도 하나님이 일하셨다면 교회가 없어도 하나님은 일하신다. 무서운 이야기인데 앞으로 교회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교회가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하나님은 다른 방법을 통해 일하실 것이다.

 

교회가 앞으로 존재해야 되는 이유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래서 선교중심의 패러다임에서는 교회가 자신을 드러내거나 잘난 척할 이유가 전혀 없다. 교회는 단지 하나님이 일하시는 세상가운데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것이다. 교회를 바라보는 조금 다른 시각이 필요한 것이고, 소위 우리가 이야기하는 교회우월주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에서 교회를 볼 필요가 있다.

 

3. 모이는 것 vs. 흩어지는 것

 

좋아하는 말인데, 본 회퍼는 "그리스도가 타자(他者)를 위한 존재이고, 그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도 타자를 위한 존재이며,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공동체도 타자를 위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라고 했다. 굉장히 본질적인 신학적인 선교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셨던 것처럼 교회도 어떻게 다른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교회는 모이는 것에서 출발하지만 흩어지는 교회를 향해 나가야 한다. 내 교회는 공교회로 넓혀져야 하고, 이 공교회는 세상으로 패러다임을 넓혀야 한다. 

 

교회가 모이는 교회에서 흩어진 교회가 되어야 된다는 명백한 증거가 2가지 있다. 물어보겠다. 교회는 모이는 것인가 흩어지는 것인가? 둘 다 맞다. 그런데 이유가 있다. 예수님이 군중들을 모으셨다. 최종적인 목적은 흩으시기 위해 모으셨다. 그런데 교회중심적인 사고의 오류는 교회목적을 사람을 모으는데 둔다는 것이다. 그래서 끓임없이 교회는  사람을 모으는 일을 한다. 무서운 일인데 하나님이 그런 교회를 버리신다. 흩어지지 않는 교회는 하나님이 흩으신다.

 

첫째 증거가 있다. 예수님의 사역은 아주 분명하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공관복음서를 보면 전반부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인간들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일을 하셨다. 성경을 보면 계속하여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닌다. 그런데 예수님이 제자의 도를 이야기하는 시점이 도래한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점점 떨어져 나가기 시작한다. 예수님은 필요를 가지고 사람들을 모으셨는데, 제자의 도를 말씀하시면서 사람들은 떨어져 나가기 시작한다. 그것은 예수님의 사역,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는 것은 사람을 모으는 일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신다. 만약 예수님의 사역에서 사람을 모으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제자의 도, 십자가의 도를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우리교회가 끓임없이 품어야 할 일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일인데 모이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되면 교회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선교적교회의 중요한 원리 중에 모이는 것과 흩어지는 것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둘째 명백한 증거가 있다. 초대교회 오순절 성경강림이후 예루살렘교회에 수많은 무리들이 모였다. 사도행전 2:41과 4:4를 보면 모두 8천이 모였는데 당시 예루살렘 인구가 8만으로 예상하니 짧은 시간 안에  예루살렘 인구의 10%가 예수를 믿었다. 놀라운 성장이다. 사도행전 6:7을 보면 이제는 수자가 나오지 않고 “더 심히 많아지고”라고 말하고 있다. 만약 오순절 사도행전의 역사와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신 이유가 예루살렘 교인들을 모으는 일었다면 이 일이 계속 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아는 놀라운 사건이 하나 일어나는데 사도행전 8:1-3을 보면 교회를 하나님이 흩어버리신다. 우리교회 창립기념일에 교인들에게 이런 협박을 했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흩어질까요 아니면  하나님께 맞고 흩어질 때까지 기다릴까요?” 우리 교인들에게 한 이야기이다. 분명한 것은 모여진 교회가 자발적으로 흩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이 흩으신다. 교회를 세우신 이유가 명백하기에 선교적교회라는 것은 굉장히 본질적인 물음이기도 하고, 모임과 흩어짐에 대해 분명히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이 교회를 흩으셨다. 그리고 흩어짐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졌다. 자발적으로 흩어지지 않으면 맞고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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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그랜트가 쓴 <Give and Take>를 보면 사람이 타인들과 상호작용하는 3가지 행동방식을 말한다. Taker, Matcher, Giver 이다. Taker로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고 한다. 교회에서도 늘 남들에게 도와달라고 해서 가져가는 사람들이 있다. Matcher는 이만큼 주었으니 이만큼 받는다는 것으로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에 속한다. 그런데 애덤 그랜트는 Giver는 받은 것과 상관없이 늘 주려고 하는 사람인데, 큰 성공을 이룬 사람들은 대부분 이 부류에 속한다고 말한다. 저는 교회는 Giver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보 같은데, 속는 것 같은데 교회가 Giver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이 교회를 사용하실 수 없으시다. 

 

한국교회 위기도 그렇게 생각한다. 장로 대통령이었던 이명박 대통령 정부 당시 정무수석이 목회자들을 만나 의견을 많이 물었다. 한번은 서울과 경기도 지역 대형교회 목사를 모아놓고 교회에 불편한 사항이나 대통령에 건의할 사항이 있으면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몇몇 목사가 교회가 이런 어려움과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교는 국가에서 돈을 많이 받는데 기독교는 장로 대통령이기에 많이 받지 못하고 역차별받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듣는 정무수석의 눈빛은 목회자들을 경멸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지금 대통령은 장로이고 교회는 참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데 또 달라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라. 우리들은 권력을 잡은 사람에게 교회목사가 되어서 많은 것을 얻어내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선교적교회를 생각하면 저는 요즘 많이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세상권력에 교회가 더 이상 뭔가 달라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조금 손해보면 어떨까? 한국상황에서 말하지면 불교에 좀 피해를 보고 가면 어떨까? 우리는 왜 그들이 이만큼 차지하니 우리도 그만큼 차지해야 한다고 싸울까? 세상이 교회를 어떻게 볼까? 교회공동체를 하나님에 속한 공동체로 볼 것인가 아니면 세상과 똑같은 가치를 가진 공동체로 볼 것인가? 교회의 힘은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는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가 세상과 똑같이 Taker나 Matcher가 되는 것이 아니라 Giver가 되어 선교적인 관점을 가지고 우리들이 내어놓는 일이 중요하지 않을까? 교회가 이것을 잃어버림으로 교회능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다.

 

4. 사역 vs. 삶

 

사역과 삶을 연결시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선교적교회가 된다는 것은 세상에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적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우리는 ‘선교적 삶’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선교적교회에서는 사역과 삶, 교회와 세상이 이분법적으로 나뉘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교회중심적인 교회에서는 사역과 삶, 교회와 세상이 구분된다.

 

2016년 호주 세계의료선교대회 강사로 참여했다. 당시 필립 린이라는 말레이시아 목사의 "9 to 5"라는 제목의 강의가 잊혀지지 않는다. 필립 린 목사는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 출석이 2천이 넘는 교회에서 목회를 했다. 이분이 의사이다. 교회의 7명의 사역자들도 직업이 있는 사람들이다. 교회가 부흥하니 기자가 린 목사에게 언제 전임 사역을 시작할 것인가를 물었다. 린이 대답하기를 “나는 지금 전임사역을 하고 있다. 나는 매일 9-5에 수많은 이슬람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함께 사역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선교중심적인 사고가 아니라 교회중심적인 사고에서 린 목사의 이야기는 이해가 안된다. 교회중심적 사고에서 전임사역은 교회 일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선교중심적 사고에서 전임사역은 우리들의 삶에서 일어난다. TGIF(Thank God It's Friday)가 아니라 TGIM(Thank God It's Monday)을 이야기하며 린 목사는 삶의 현장이 선교의 현장을 되도록 월요일을 주셨다고 감사해 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

 

선교적인 원리에서 사역과 삶은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윌리엄 딜은 “스스로 하는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주일 아침에 하는 일과 주중에 하는 일을 연결시키지 못한 채 일종의 이중생활을 이어가는 비극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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