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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석 목사 ① 팬데믹의 회집 예배와 영상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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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21-06-26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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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교계의 한 단체 집회에서 주일과 안식일을 놓고 논란이 일어났다. 개인적으로 안식일을 믿는 목회자가 교회 광고에 ‘주일예배’ 대신에 ‘안식일예배’라고 적고, ‘주일’이 아니라 ‘일요일’이라고 호칭하자 많은 다른 회원들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또 주일성수는 팬데믹 기간 동안 비대면 온라인 영상예배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며, 팬데믹을 마치는 지금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멘넷은 개혁주의 신학자인 이윤석 목사(부르클린제일교회)에게 주일에 대한 관련 글을 부탁했고, 이 목사는 2주 만에 “다시 살펴보는 팬데믹의 예배, 일요일과 성수주일”라는 제목의 글을 보내왔다.

 

이 글을 3번에 나누어 소개한다. 먼저 “팬데믹의 회집 예배와 영상 예배”에서는 팬데믹 기간이 끝나도 여전히 영적 혼란 속에 있는 대면 예배와 비대면 예배에 대해 다루고 있다. 두 번째는 “주일인가? 일요일인가?”라는 제목으로 안식일에서 주일로 변화의 과정, 그리고 개혁주의자들과 청교도의 주일 개념에 대해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주일성수를 위한 원리적 제안”과 함께 결론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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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팬데믹의 회집 예배와 영상 예배

 

<들어가며>

 

이제 세상의 팬데믹 현상은 서서히 안정을 향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마음과 신앙은 오히려 팬데믹 전보다 영적인 팬데믹 속에서 혼란 중에 있는 것을 본다. 이에 필자는 이미 우리가 그 복됨과 귀중함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주일회집예배와 주일성수의 내용을 다시 확인해 보면서, 새로운 회복의 필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먼저 팬데믹이 몰고 온 지구촌의 풍속도에 있어서 먼저 주일예배의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을 조명할 필요가 있다.

 

1. 사랑의 대(對)사회적 적응의 범위

 

코로나 팬데믹은 많은 교회가 주일예배로 모이지 못하고 온라인 예배나 가정 예배를 드리게 되면서 예배 방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이런 변화로 인하여 우리의 신앙의 선진들이 생명처럼 여겨온 주일예배가 쉽게 포기되어 가는 현상을 보았다. 이제는 팬데믹과 함께 가는(with pandemic) 온라인 예배가 회집 예배를 대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계속 제시되고 있다.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많은 교회에서 주일모임을 자제하기로 결정할 때, 이웃과 사회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정신과 더불어 국가적이며 세계적인 재난을 다함께 극복하는 일에 교회가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려는 모범적인 의도가 깃들여 있었다. 그런데 지금 팬데믹이 거의 진정되는 상황에 이런 결정이 적용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런 생각을 가진 지도자들이 있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이것은 이웃 사랑 전에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할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배는 신앙생활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며 우리의 존재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가 전제되지 않은 사랑이 사랑일 수 있는가? 성경적인 사랑은 근본적인 믿음이 있고 믿음과 더불어 가는 사랑이어야 한다. 물론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것을 믿음이 없거나 대세에 편승하여 신앙을 타협하는 것으로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국가와 세계에 발맞추어 대응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팬데믹 속의 예배’로 예배가 팬데믹에 갇히게 할 것이 아니라, ‘예배 속의 팬데믹’으로 훨씬 광범위하고 최상의 복된 예배를 침범하는 작은 요소로서의 팬데믹으로 그 범위를 재설정하고 대처해야 한다. 이것은 먼저 주일예배와 모든 예배가 그만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선시되어야 하고 중요시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또 다시 주일예배와 팬데믹에 대해 성경적인 대처를 해야 하는 것은 계속될 수 있는 팬데믹에 대해 우리 교회가 이런 문제를 재점검하고, 주일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확고하게 하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 주일예배의 영상 대체화와 대응

 

최근 일부 리더들은 교회가 전근대적인 예배의 형태만을 주장하는데서 벗어나 함께 연대하며, 모든 것이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방식의 예배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록 교인들이 육체적으로 함께 하지 않고 대면하지 못해도 인터넷의 온라인을 통해 정서적이고 인격적인 관계가 지속될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공동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의 주장의 한 면을 예로 들자면,  대형교회에서 오랫동안 함께 신앙생활을 해도 서로 깊은 교감이 없이 피상적인 만남과 교제만 지속되었고, 큰 조직 속의 청중의 한 사람으로 모였다가 예배가 끝나면 군중 속의 이름 없는 얼굴로 각각 뿔뿔이 흩어졌던 것을 체험한 이들에게 가상공간(virtual space)은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는 장을 제공하는 유익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의 한계는 육체적으로 함께 하지 않고 온라인에서만 교제하는 것은 인격적인 실체에 접촉하지 못하는 가상적인 만남의 차원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온라인 공간에서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정서적인 교류가 존재할지라도 그것은 매우 제한적이고 부분적인 것으로, 육체가 배제된 인격적인 만남과 교제라는 것은 그 자체가 초대교회에서부터 지금까지 있어온 영지주의적(Gnosticism, Docetism, New Age Movement,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로 오심을 가현상으로 생각하는 이단적 사상과 운동) 이해를 전제하는 생각일 수 있다. 이렇게 영지주의적인 이단을 경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몸과 실재를 밝혀 실제적인 신앙생활을 하도록 했던 것은 사도 요한과 베드로와 바울이 성경을 썼던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몸은 우리 인격이 밖으로 나타나 대면하고 접촉하는 자아이며, 시간과 공간 속에서 우리의 몸이 함께하는 것이 진정한 인격적인 교제의 기초가 된다. 영상을 통해 결코 전달될 수 없는 영혼의 신비가 우리가 만나는 몸과 눈빛에서 흘러나오고, 서로의 몸의 언어를 전달하며 감정의 소리를 발하며 그 속에서 악수하고 포옹하며 함께 식탁을 나누면서 깊은 공감과 유대관계를 체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온라인 예배는 주의 몸된 교회의 공동체성을 상실한 팬데믹 시대의 부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지금 놀라운 현대문명의 이기를 누리고 있다. 첨단 미디어의 기능이 시시각각 발전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영상을 포함한 앞서가는 기술문명을 지혜롭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드리는 주일 예배에 대해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온라인 예배를 기뻐하실까?’ ‘그 예배에 성령께서 함께하실까?’ 라는 질문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보여주신 천상예배의 온전한 모범이 요한계시록 4장과 5장에 나온다. 이런 완전한 모범의 예배와 관계하여 우리가 드리는 현재와 미래의 예배는 이에 합당한 것인가? 팬데믹의 상황이 앞으로도 계속될 경우, 우리의 예배는 어떤 위치를 차지하며 어떤 원리에 입각해서 실행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첨단 미디어들을 통하여, 특별한 상황(출타, 입원, 응급환경)속에 예배에 참여하지 못하는 교인들을 위해 이런 문명의 수단들을 사용할 수 있으며, 이제는 교인들이 주중에 세상 속에 흩어져서도 서로 교제하며 결속할 수 있는 교제의 채널이 되어 우리의 교제의 범위를 확장시킬 수도 있다. 이런 문명의 긍정적이며 수많은 혜택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함께 모이기를 힘쓰되, 그 모임 안에서 예배드리며 성령의 인도를 따르며 주님이 받으시는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성경적 원칙이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에 힘쓰라”는 성경의 명확한 권면(히 10:24)보다, 편리주의에 빠져 모임을 폐하고 영상의 예배와 교제로 대체하는 것은 주님이 받으실 수 없는 불성실하고 진정성이 결여된 예배이며,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요 4:23,24).

 

3. 주일 회집 예배 필요성의 자각

 

팬데믹이 완화되어 다시 회집예배로 돌아오면서 많은 교인들이 한결같이 강조했던 말은 주일에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는 당연히 거듭난 그리스도의 본성으로서 팬데믹의 대체 예배는 그들에게 불안과 염려를 심화시켰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함께 모여야만 하는가?

 

간단하게 언급하자면 첫째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를 이루도록 부르셨고, 특별히 가족 공동체로 부르셨기 때문이다. 둘째는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임한 하나님 나라의 실재를 누리며 장차 완성될 그 나라를 소망하는 천국잔치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예배와 성찬에서 떡과 잔을 나누며 예수님의 생명과 은혜를 나누는 시간으로서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는 피할 수 없이 몸과 몸이 만나는 육체적인 접촉과 눈에 보이는 회집으로부터 출발한다. 

 

구약과 신약에서 그렇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근본적으로 공동체척인 존재로 부르셨고, 우리는 교회 공동체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는 필연적이며 실존적인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이다. 바울 사도에 따르면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접붙임 받는 것은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전 12:12-27). 그 몸의 한 지체가 되지 않는 한,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연결되고 결합하여 성장할 수 있는 길은 없다(엡 4:16).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와 분리되는 것은 마치 신체로부터 잘려나간 손발처럼 손상된 실존을 경험하는 것과 같다.

 

공동체예배는 우리가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며 체현하는 가장 중요한 장이다. 회집예배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사귐이라는 현실 속으로 들어감으로 그 복음의 진리에 의해 새롭게 형성된다는 명약관화한 성경적 원리가 재발될 수 있는 팬데믹 가운데서도 우리의 예배와 주일모임을 주도해가야 할 것이다.

 

4. 신약 성경이 말하는 회집예배의 절대성 인식

 

팬데믹을 통해 많은 지도자들은 회집예배의 절대성을 그 어느 때보다 더 깊이 인식해가고 있다. 신앙생활의 가장 기본적이며 근본적인 것으로 우리가 명확하게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주의 재림 때까지 모이기에 힘써야 하는 원리는 여전하다(히 10:24-25). 과거의 서구교회들이 직면한 여러 가지 위기 속에서 개인주의적   편리주의에 빠져 스스로 모이기를 폐함으로 교회는 죽어갔었다. 지금 다시 팬데믹으로 인해서 그런 위기가 교회를 침식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란 말에 대해 서신서에서 반복되어 강조되는 말씀에 대한 깊은 성찰과 강조가 다시 필요하며, 이것은 필수적으로 회복되어져야 할 실재적인 내용이다.

 

우리가 매 주 주일에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추구하는 성경적 습관과 성향을 우리 몸에 각인함으로 우리의 행동과 삶을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우리는 함께 지어져 간다(엡 2:20-22). 예배의 공간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하나님과 우리와 이웃으로 향하는 중심의 전환이 이루어지게 함으로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지게 하는 곳이다. 신앙생활의 모든 요소들과 성숙의 시작은 실제적인 만남 속에서 예배드리고 교제하는 가운데 이루어져 간다. 그리스도의 성품은 교제와 공동체의 토양에서 배양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모이는 이유는 함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 데까지 자라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함이며(엡 4:12-16), 이를 통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반영하며(빌 2:15), 하나님의 통치를 대리하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기능을 다하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는 새 성전을 지어가도록 우리를 부르셨다. 이를 위해 오신 성령은 우리 안에 계시며, 동시에 우리 사이에(마 18:20, in the midst of us) 계시는 분이시다. 혼자 고립된 가운데서나 가상의 공간 속에서 우리 사이에 계시는 성령의 충만한 임재와 역사하심을 체험하기 힘들다. 교제와 연합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하고 교제할 때 충만히 임재하셔서,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는 성전으로 지어져가게 한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으로 가득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에 강처럼 흘러가게 하는 성전이 되기 위해, 함께 모여 성령 안에서 예배하고 교제하기에 힘써야 한다. 우리가 예배로 모여 성령으로 충만한 성전을 체험해야 세상에 흩어져 그 은혜를 흘려보내는 역할도 제대로 감당할 수 있다. 이것은 모이는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예배와 교제와 양육을 통해 건강한 그리스도의 몸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임재와 활동을 구체화하는 주님의 몸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이는 교회 없이 흩어지는 교회가 있을 수 없다. 흩어지는 교회를 과도하게 강조함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경향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모임과 흩어짐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보내심에 대한 우리의 응답으로,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교회의 두 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모여서 행하는 예배와 교제, 성례, 봉사, 양육은 궁극적으로 교회 안에 정체된 신앙이 아니라 흩어지는 교회의 역동성과 미션을 지향한다. 이 모든 일이 특별히 주일에 함께 모임으로 시작하고 이루어지기 때문에, 후 팬데믹의 시기에도 여전히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회집예배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를 강조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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