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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행 목사 “400년 후 달라진 두 도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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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ㆍ2020-02-05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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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b15e48c6c94a29e591da868e38f377a_1580899630_01.jpg7b15e48c6c94a29e591da868e38f377a_1580899638_57.jpg<두 도시 이야기>는 영국의 챨스 디킨스가 1859년에 쓴 역사소설이다. 1789~1794년 프랑스 대혁명을 배경으로 프랑스의 파리와 영국의 런던 두 도시를 살아가는 군중의 이야기를 통해 혁명의 이면을 그려낸 작품이다. 오늘날까지도 최고의 명문 중 하나로 인구(⼈⼝)에 회자(膾炙)되는 그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최고의 시간이었고, 최악의 시간이었다. 지혜의 시대였고,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였고, 불신의 세기였다.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었고,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 모든 것이 있었고, 우리 앞에 아무 것도 없었다. 우리 모두 천국으로 가고 있었고, 우리 모두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요컨대 그 시대는 현재 시대와 아주 비슷해서........"

 

여기서 좋은 쪽은 런던을, 나쁜 쪽은 파리를 뜻한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마지막 대목이다. '그 시대'와 '현재 시대' 즉, 프랑스 혁명전후 시대와 디킨스가 살던 1850년대의 시대상이 비슷하다는 부분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누군가가 말하지 않았던가! 그렇다. 거의 비슷한 시기인 17세기 중반에 남다른 기독교 신앙위에서 함께 출발한 두 도시가 있었다. 그런데 얼추 400년이 흐른 지금 이들이 각각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를 살펴보면서 우리를 향해 소리치는 '돌들의 외침'(눅19:40)에 잠시 귀를 기울여 보았으면 한다.

 

I. 미국의 플리머스 마을 이야기

 

영국의 헨리 8세와 그의 딸 피의 메리(The Bloody Mary)의 종교적 억압을 견디다 못한 일군의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에 몸을 싣고 1620년 9월에 정든 조국과 마을을 떠난다. 출항 직전에 드려진 고별 예배에서 탁월한 청교도 지도자 존 로빈슨(John Robinson)은 에스라8:21,23을 본문으로 설교하면서 메이플라워호가 가는 길에 "평탄한 길"을 간구했다. 두 달 반의 항해 끝에 한겨울인 12월 21일에 미 동부 해안가 플리머스에 첫발을 디딘 청교도들은 신대륙에 성경에 기초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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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청교도들이 플리머스에 첫 발을 디뎠다고 전해지는 바위(Plymouth Rock)

 

그들이 미 대륙에 착상시킨 신앙적 DNA를 몇 가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청교도들은 모든 만물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다고 믿었다. 따라서 성(sacred)과 속(secular)을 엄격히 구별하지 않았다.

 

둘째, 청교도들은 모든 직업을 하나님의 부르심(calling)으로 이해하였다. 따라서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않았으며, 자신의 직업에 충실함(serve)이 곧 자신을 그 자리로 부르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service)로 여겼다. 한 마디로 그들은 ‘세상 속의 성자(Worldly Saints)'였다.

 

셋째, 그들에게 가정은 작은 교회였다. 따라서 가정예배가 거의 매일 드려졌으며, 아버지는 그 가정의 목회자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만 했다.

 

넷째,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여긴 까닭에 가는 곳마다 항상 예배당을 중심으로 마을을 형성하였다. 마치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생활할 때 성막을 중심으로 지파별로 질서정연하게 천막을 쳤듯이. 

 

다섯 째, 청교도들은 이성과 기독교 밖의 학문을 도외시했던 재세례파와 달리, 기독교외의 일반 학문들도 포용했다. 그래서 지성과 신앙을 겸비한 지도자 육성을 목표로 하버드(1636년), 예일(1701) 등 많은 대학들을 설립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청교도 정신은 10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제 2,3세대 청교도들은 그들의 부모들에 비해 덜 '종교적'이었고, 상업과 부의 팽창은 신앙적 무관심을 가져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계몽주의, 합리주의 사조의 발흥은 성경의 권위에 대한 신뢰를 서서히 무너뜨렸다.

 

이때 미 동부에서 조나단 에드워즈를 중심으로 제1차 대각성 운동이 있었고 그 뒤에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제2차 대각성 운동이 일어나지만 지도자들 간의 견해차이로 인해 교단들이 나뉘고, 안식교와 몰몬교 등 다양한 미국산 이단들이 출현하는 등 계속되는 도전과 어려움 앞에서 청교도 정신은 점차 퇴색되어가고 있었다.

 

오늘의 미국은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 미연방대법원은 1962/3년 공공학교에서 기도와 성경공부를 하는 것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결정했다.

-1973년에는 낙태를 허락했다.

-2008년에 캘리포니아 주 대법원이 동성애 결혼을 합법적이라고 결정했다.

-2015년 6월 26일 미 연방대법원은 동성결혼 합헌 판결문을 발표하였다.

-'이제 미국은 동성애의 합법화를 지나 낙태의 합법화 그리고 이제 마약의 합법화가 30개주 이상에서 추진되고 있다'(김호성 목사, ICM 대표).

-하버드대학은 지난 1642년 9월 26일에 제정된 <하버드 규칙과 수칙>에 기록돼 있는바 “삶과 공부의 목적은 하나님을 알고 또 영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다"라는 요한복음 17:3의 말씀에 기초한 규칙을 수정하여 기독교 뿌리를 제거하려는 시도가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그 일례로, 최근 하버드대학의 교가인 "Fair Harvard(아름다운 하버드)"에 있는 가사 중 "이 세상의 거짓에 흔들리지 말고 진리에 서서 청교도의 정신이 죽을 때까지 빛의 전령사와 사랑을 품은 자가 되라"는 내용에서 “진리”와 “빛”과 “청교도”가 빠진 새로운 가사를 만들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기독일보,2017.6.7)

 

고 빌리 그래함 목사는 생전에 어느 청년집회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미국이 지금 회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에게 나중에 사과하셔야 할지도 모른다". 오늘날 미국의 영적, 도덕적 타락 정도가 소돔과 고모라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는 심판하셨으면서도 미국을 이대로 관용하신다면 이는 하나님의 불공평하신 처사가 아닐 수 없다는 이야기다.  오늘날의 미국은 변했다. 변해도 너무 변한 것이다.

 

II. 독일의 오버아머가우 마을 이야기

 

그런가 하면 400년 가까이 신과의 약속을 변개치 않고 지켜오는 마을이 있어서 플리머스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독일 남부 바이에른 주 알프스 산자락에 위치한 오버아머가우(Oberammergau) 이야기다. 인구 5천명 밖에 되지 않는 이 작은 마을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것은 마을 사람들이 총동원되어 매 10년마다 공연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극(Passion Play) 때문이다.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구교와 신교 간의 30년 전쟁(1618-1648)으로 인해 흑사병이 전 유럽에 창궐하면서 이 마을에서도 1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살아남은 이들은 겁에 질려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던 중, 교회당에 모여 다음과 같이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옛적에 이집트 땅에 온역이 임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 땅을 지켜주신 것처럼, 우리 마을을 전염병으로부터 지켜주십시오. 그리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덕으로 알고 복음서의 수난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어 온 세상에 알리겠습니다." 그런데 그날이후 신기하게도 그 마을에서 더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고 흑사병에 걸린 사람들도 다 회복되었다. 이에 마을사람들은 그 이듬해(1634년) 성령강림절을 기해 마을사람들이 묻혀있는 들판에서 감격적인 첫 공연을 올려드렸다. 그때 이후로 이 마을 사람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을 제외하고는 매 10년마다 신과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켜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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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020년 5월 중순부터 10월 초순까지 제42차 수난극이 펼쳐질  공연장 모습(객석은 실내, 무대는 야외)

 

오래전 자신의 조상들이 신에게 한 약속을 그 후손들이 올곧게 이어간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두 세대만 지나도 후손들은 그 이전 세대가 경험한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설령 기억한다해도 '세대차이'라는 것이 있어서 조상들이 세워놓은 원칙을 얼마든지 자기들의 구미에 맞게 수정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이들은 그 이전세대들이 세운 원칙을 4년이 아닌 4세기 동안이나 고스란히 유지해 오고 있다. 이를테면 이 수난극 출연자는 반드시 이 마을 출신이어야 하며, 타 지역 출신이라면 적어도 20년 이상 이 마을에 거주한 자여야 한다든지, 남자들은 분장시 가발이나 가짜 수염은 결코 허락되지 않으며 따라서 '재의 수요일'부터 길러야 한다든지 등등...

 

“....그의 마음에서 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시15:4).

 

III. 나가는 글: 오늘도 계속되는 두 도시 이야기

 

금년 초 교우들과 함께 플리머스를 다녀오면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오버아머가우 마을이 불현듯 떠올랐다. 비슷한 시기에 비장한 기독교 정신으로 함께 출발했는데, 한 도시는 400년의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휘청거리고 있는 반면, 다른 한 도시는 같은 400년의 세월을 의연한 자세로 견뎌내어 아름다움과 감동을 날로 더해가고 있다.

 

1월 중순의 플리머스는 '미국이 시작된 곳' '청교도 상륙 400주년의 해'라는 문구가 무색할 정도로 찾는 이도 별로 없는 한물간 어촌의 분위기였다. 반대로 지구 저편의 작은 마을 오버아머가우는 '금년에 이 마을 수난극을 못보면 다음 공연까지 10년을 기다려야 합니다(If you  miss it this year, you have to wait another 10years!"라는 문구가 말해주듯이 온 세상 사람들이 죽기 전에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버킷리스트의 단골메뉴로 사랑받고 있다. 금년같이 공연이 있는 해에는 50만 명 이상의 관람객으로 붐빈다. 뿐만 아니라 비단 공연이 없는 9년 기간에도 이 마을에 흐르고 있는 감동적 이야기를 직접 느껴보고자 전 세계에서 몰려오는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한마디로 '작지만 큰 마을'이라고나 할까?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2:30)

 

두 도시 이야기는 오늘도 계속된다. 두 갈림길에서 우리는 과연 어느 길로 가야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의 선택이며, 동시에 시대와 역사 앞에 선 우리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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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알프스 산자락에 위치한 오버아머가우 마을 전경

 

허연행 목사(프라미스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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