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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초대교회, 정인교 목사 초청 신년성회 / 코람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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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ㆍ2016-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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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초대교회(김승희 목사)는 매년 신년성회를 열고 있다. 2016년을 맞이하여 초대교회는 1일부터 3일간 정인교 목사(서울신학대학교 대학원장, 설교학 교수)를 강사로 초청하여 성회를 열었다. 정 목사는 첫날 저녁 창세기 50:19-21을 본문으로 "코람데오"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했다.

정인교 목사도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이민생활의 어려움을 경험한 목사이다. 정 목사는 이민자로서 그것도 노예에서 대제국의 총리가 된 요셉에 대한 설교를 통해 뉴욕의 한인성도들에게 신년의 교훈을 주기 원했다. 정인교 목사는 요셉은 노예에서 총리가 된 극적인 변화를 겪은 인물이지만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그의 삶은 항상 같은 것은 하나님의 앞에서 즉 코람데오의 삶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코람데오의 삶을 살기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께 민감해야 하며, 둘째는 자신에게 민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는가" 하는 신앙의 자세 그리고 삶의 자세를 신년의 교훈으로 뉴욕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선물했다. 다음은 설교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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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초대교회 김승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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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 정인교 목사(서울신학대학교 대학원장, 설교학 교수)

저는 1989년 군목생활을 마치고 바로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독일 교민을 대상으로 성경에 나오는 인물가운데 누구를 가장 존경하며 삶의 거울으로 살고 있는가를 물었는데 압도적인 대답이 '요셉'이었다. 같은 이방인의 처지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총리의 자리에 오른 요셉을 교민들이 생각할때 이 분이야 말고 가장 존경하고 삶의 규범으로 삼을 만한 분이라고 제대로 된 응답을 했구나 하는 것이 제가 살면서 충분히 동의가 되었다.

흔히 역사를 가르켜 신앙인들은 구속의 역사, 구원의 역사라는 표현을 쓴다. 하나님이 구원해 가시는 역사이다. 그 샘플을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사건으로 본다. 출애굽은 요셉이 노예로 팔려가서 애굽의 총리자리에 오르게 되고 자기 가족들을 초청해서 숫자가 늘어났다. 세월이 흐르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왕이 이스라엘 민족을 탄압하니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했고 하나님이 모세를 세워서 이들을 이끌어 내신 것이 출애굽이다. 이렇게 보았을때, 출애굽 사건에서 요셉이라는 인물을 가르켜 '구원의 다리'라고 이야기를 한다. 하나님이 그렇게 사용하셨다는 것이다.

창세기 50장을 보면 믿음의 조상하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뽑는다. 그런데 믿음의 조상가운데 두 번째로 거명되는 이삭과 관련해서는 창세기 50장가운데 25-27장 단 3장만 할애가 되어 있다. 요셉은 믿음의 조상에 들지 않지만 11장을 할애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이 많다는 것이다. 요셉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 것일까?

요셉을 통해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

오늘 본문말씀은 사실은 족장시대에 끝나는 것으로 이에 중요한 사건 하나 발생된다. 요셉의 아버지 야곱이 죽은 것이다. 이것은 요셉과 형제들에게 반대의 두가지 의미를 가진다. 요셉의 입장에서는 복수의 최대 장애물이 제거된 것이다. 요셉은 인간으로 당하지 못할 일을 형제들로 부터 당했다. 언젠가 한번 손을 보아야 하는데 아버지가 있어서 지금까지 그런 일을 못했는데 복수의 장애물이 사라진것이다. 반대로 형들의 입장에서는 생명줄이 끓어진것이다. 인간으로서는 해서는 안되는 일을 했는데, 그 대상이 지금 자기들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사람이 됐다. 지금까지는 아버지가 있어서 무탈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제는 믿을 곳이 아무데도 없다.

그러니 요셉의 형제들은 먼저 종들을 요셉에게 보내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형제들을 다 용서해주라는 유언을 했다고 했다. 거짓말이다. 왜 거짓말인지 알지 않는가. 49장을 보면 야곱이 죽기전에 자기 아들들을 불러놓고 일일히 모든 중요한 이야기를 다 유언으로 남겼는데,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직접 요셉에서 이야기 하지 않고 형제나 종에게 이야기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웃을 거짓말이다. 이번에는 형제들이 직접 요셉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빈다. 그 때에 야곱이 감동적인 이야기를 한다.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창세기 50:19-21)"

사실 본문을 보면 두개의 논리가 대립하고 있다. 하나는 우리가 너무나 잘아는 상식의 논리이다. 지금 사는 것이 중요하다. 살기위해 무릎을 꿇어야 하고 빌어야 한다. 정의니 뭐니 하는 것은 다 살고나서 일이라는 것이 상식의 논리이다. 할아버지 때도 있었고, 어버지 때도 있었고, 우리 때도 있었고, 자녀들에게 있을 상식의 논리이다. 이 상식의 논리가 아니라 전혀 알지못하는 또 하나의 논리를 요셉에 제공한다. "내가 누구인데 하나님을 대신하는가"라고 했는데, 상식의 논리로 보면 대신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그 논리를 버리고 오셉은 "하나님이 내게 베풀어주신 사랑 그것만 기억하고 판단은 하나님만 하신다. 내가 판단하지 못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이다. 나는 내가 받은 사랑만큼 당신들에게 베풀테니 염려하지 말라"라고 말한다.

그래서 자세히 본문을 보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살아갈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좋은 지침을 준다. 상황에 따라 나에게 힘이 있다고 하나님을 대신해서 그 힘을 행사하려고 하지 말고, 어떤 상황이 되던지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케어하고 품으면서 살라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감동적인 교훈을 준다. 이것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은혜가 되는 말씀이다.

신앙이란 무엇인가?

저는 이렇게 은혜로운 본문 말씀을 보면서 그런데 굉장히 커다란 신앙적인 어떤 갈등과 문제의식을 느낀다. 창세기 19-21절 말씀은 굉장히 은혜로운 말씀이다. 이것을 어떻게 보면 신앙을 말한다. 이 이야기를 했을때 요셉은 주마등 같이 흘러가는 과거를 회상했을 것이다. 상인들에게 팔려가는 요셉의 마음이 어땠을까. 다시 형제들을 본다면 복수하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그때는 만나면 복수하고 싶었는데 그런데 지나고 보면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이야기이다. 굉장히 은혜롭다. 신앙이라는 것은 결국은 해석의 문제이다. 그 때는 전혀알지 못했고 원망만 있었는데 지나고 보니 "아! 그래서 그러셨구나" 하고 다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다 좋다. 중요한 자세이다. 그런데 그때는 미칠것 같은데 지금은 더 미칠 것 같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때는 뺨이라도 때리고 싶었는데 지금은 만나면 완전히 산산조각을 내고 싶을 정도로 상황이 나빠질 수도 있다. 신앙이라는 것이 항상 끝이 좋아서 이렇게 되는 것일까? 생각해보라. 만약에 요셉이 국무총리가 아니었다면 형제들이 와서 무릎을 꿇었을까? 형식논리로 보면 맞다. 하나님이 악을 선으로 바꾸셨다는 형식논리에서 요셉을 국무총리로 만들어 주시는 것이 맞다. 그리고 우리 역사를 보면 실질적으로 하나님께서 변혁을 일으켜서 있을 수 없는 기적적인 사건들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지만은 않다.

어떤 분이 저에게 와서 신앙상담을 요청했다. 교회에 처음 나온 분이었다. 어떻게 교회에 나오게 되었는가를 물으니, 교회에 나오면 좋은 일만 생긴다고 해서 나왔다는 것이다. 참 제가 난감했다. 예수 믿으면 모든 것이 잘된다고 나도 이야기하고 싶다. 그런데 아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잘되게도 해주신다. 그런데 예수 믿는다고 모든 것이 잘되는 것이 아닌 것을 알지 않는가. 우리가 기도하는 내용중에는 놀랍게도 90% 이상이 예수 안믿는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한 것이다. 도대체 신앙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신앙인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잘 아는 것 처럼 예수님의 12제자가운데 1명빼고 11명이 어떻게 죽었는지 아는가? 도저히 입으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 그들은 우리보다 신앙이 없었던 것일까? 그들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신앙의 모범들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의 결과는 너무나 비참했다.

신앙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 믿는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본문의 은혜로운 말씀을 보면서 그런 갈등이 일어났다. 그 갈등이 일어나다 보니 요셉이 베푼 아주 감격스러운 용서도 진짜 용서한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2차세계대전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쉰들러리스트를 보면 사람이 어디까지 선하고 악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수용소장은 뼛속 깊이 증오가 가득한 사람이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그는 유태인만 보면 무조건 총질을 한다. 정말 성격파탄이다. 그에게 어느날 쉰들러가 이런 이야기한다. 진정한 힘이라는 것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힘과 권력을 가지고 있을때 그것을 가지고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이라는 것이다.

지금 그 논리를 보면 요셉은 형제들을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 요셉은 애굽제국의 국무총리이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할 것 같은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으니 마음으로는 용서가 안되어도 얼마든지 연기할 수 있다. "용서했다. 잊어버린지 언제인데 염려하지 마라." 요셉의 용서는 이런 가장된 용서가 아닌가 생각했다. 창세기 19-21절의 요셉의 고백을 보면서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신앙의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다 보니 이 사람의 용서까지도 제대로 마음에 와서 닿지 않았다. 그래서 이 문제를 풀어보려고 요셉과 관련된 창세기 11개의 장을 열심히 읽고 두 가지를 발견했다.

요셉의 특징 1: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적이 없다.

요셉은 하나님을 본 적이 없다. 하나님의 음성도 들은 적이 없다. 족장시대에 신이 나타나는 방법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음성을 들려주는 것이다. 요셉보다 훨씬 이후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도 하나님은 음성을 들려주셨다. 그런데 놀랍게도 요셉만큼은 단 한번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적이 없다. 모함으로 엄청난 시련에 빠져 감옥에 갇혔을 때 하나님은 침묵하셨다. 이민자로서 상상할 수 없는 국무총리에 올라 기뻐서 날뛸때에도 침묵하셨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것이 그런 것이다. 신년을 맞이하면서 특별히 한 해의 계획을 세우고 하나님의 뜻을 묻는데 솔직히 말하면 알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글로서 보여주시면 좋은데 그런것이 없다. 하나님 아버지라고 기도하며 외치는데도 한 번도 안나타나시고 한 번도 음성을 안들려 주신다.

기독교는 참으로 묘한 존재이다. 구약을 보면 자기가 섬기는 신의 형상을 그리거나 주물로 만든 후 죽이고 말았다. 무슨 이야기인가? 신의 형상을 만든다고 하는 것은 내 안에 있는 이해가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이라는 절대자이며 무한자가 인간이라고 하는 유한자 안에서 파악이 되면 이미 신이 아니다. 내가 신을 다 아면 내가 신보다 더 위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신이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안 가진, 섬기는 신의 형상을 안 가진 유일한 종교가 기독교이다. 실제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모른다. 하나님의 이름은 '야훼' 또는 '여호와'가 아니냐고 말한다. 하나님의 이름은 자음 4자가 남았지만 모음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그것에다 모음을 붙여서 '야훼'가 더 낫다 '여호와'가 더 낫다고 싸우고 있는 것이다. 몇년전에 바티칸에서 놀라운 결정을 했다. 하나님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이름의 자음들을 발음하지 않고 그대로 두기로 한 것이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소명을 받을 때 '당신의 이름을 무엇이라 할까' 물었을 때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셨다.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올바른 대답인가? 이스라엘인의 이름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포괄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모르는 것이 맞다. 그러니 우리가 아는 종교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이상하다. 이런면에서 보면 태고적 시대에 살았던 요셉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것이나 첨단 과학시대를 사는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 것과 같다. 놀랍게도 요셉은 한번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본 적이 없다.

요셉의 특징 2: 요셉은 어떤 상황속에서도 한결같았다.

또 하나 발견한 것은 요셉은 노예에서 재상이 되었다. 이것인 만델라 대통령이 20년동안 감옥이 있다가 대통령이 된 것과 다르고, 고 노무현 대통령이 고등학교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된 입지전적 인물이라는 것과 다르다. 기본적으로 히브리 민족은 민족이라는 것을 붙일지 못할 정도였으며 노예였다. 노예가 대 애굽제국의 국무총리가 되었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면 소설이다. 그 정도로 엄청난 인생을 산 인물이 요셉이다. 상황이 바끼면 삶이 바뀐다. 상황이 사람을 바꾸고 사람이 상황을 만든다. 놀랍게 그 상관관계 안에서 상황이 바뀌면 사람이 바뀌는 것을 많이 본다. 이런식으로 본다면 요셉은 여러번 바뀌어야 했다. 그러나 요셉의 삶을 보면 똑 같다.

노예로 있을때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했다. 눈 한번 감으면 편안한 인생이 펼쳐질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을수 없다고 도망간다. 국무총리의 자리에 올라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누구길래 하나님을 대신하는가 라고 말했다. 상황이 180도가 다른데 요셉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한결같다.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신학에서는 '신전의식'이라고 말한다. 오늘 설교제목이 '코람데오'이다. 코람데오는 라틴어이다. '코람'은 누구 앞에서 라는 뜻이고, 데오스는 하나님을 말한다. 즉 '코람데오'는 하나님 앞에서 라는 뜻이다. 요셉의 삶을 보면 상황은 극과 극이었지만 공통점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코람데오의 삶을 위해 1: 하나님께 민감해야

하나님 앞에서 살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일차적으로는 하나님에대해 민감해진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기도를 한다. 그런데 무엇을 놓고 기도하는가? 사업이 잘되게 해 달라고, 자녀들이 공부를 잘해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정상적이다. 하나님은 어떤 역할이신가? 단지 도우미이다. 하나님이 내 관심이 아니다. 하나님은 내 최고의 관심을 향한 단지 도우미이다. 무슨 일을 할때 내 이익이 먼저이다. 하나님을 많이 이야기하고 도와달라고 하지만 역시 옆에 있는 도우미일 뿐이다.

기독교 소설 가운데 베스트셀러중 하나가 찰스 먼로 셸던이 쓴 이다. 리치몬드 시에 맥스웰 목사가 토요일 설교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누가 문을 두들긴다. 나가보니 병색에 완연한 늙은 실직 페인트공이 일자리를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부탁을 들어줄 수 없어 돈을 주어 보내려고 했는데, 간증을 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다음 날 그는 간증하다 쓰러져 맥스웰 목사의 집으로 모셔졌다. 그리고 그는 계속 입에서 "예수라면 어떻게 할것인가"라고 주절하다가 죽기전에 "목사님, 예수님도 목사님 같았을 거예요. 고맙습니다"하고 죽었다. 장례식후 실직 페인트 공의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맥스웰 목사는 다음 주일 설교에서 우리가 모든 일을 할때 "예수라면 어떻게 할것인가"라는 질문부터 던져놓고 시작하자고 설교했다.

우리가 예수믿을때 하나님 앞에 산다는 것은 가장 궁극적으로 하나님에 대해 민감해지는 것이다. 오늘 설교를 통해, 여러분들이 1년을 계획하고 기도할때 "하나님,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 당신이라면 하시겠습니까"라고 물어야 한다. 하나님에 대해 민감해져야 한다.

코람데오의 삶을 위해 2: 자신에게 민감해야

하나님 앞에 산다는 것은 동시에 나 자신에 대해 민감해 지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아버지는 목회하다 2003년 은퇴하셨다. 아버지는 저희를 스파르타 식으로 키우셨다. 대학다닐 때까지 매를 드셨다. 아버지가 부흥회에 참석하기위해 집을 비우는 시간이 우리들에게는 가장 좋은 시간이었다. 나중에는 아버지가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장성해서 보니 아버지가 정말로 나에게 최고로 잘해주신 것이었다. 슈퍼마켓 주인 아저씨는 저를 때릴 이유가 없다. 책임지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공부할때 아버지는 시골교회에서 받은 사례비 대부분을 보내주셨다. 신년이 되면 기숙사에서 아버지께 전화하면 아버지는 전화를 통해 울며 축복기도를 해 주셨다. 이번 뉴욕에 와서 부흥회를 인도하시는 것을 아시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운영하시는 기도원 단 위에 이불을 펴놓고 주무시면서 기도하고 계신다. 평생 그렇게 살아오셨다. "아버지가 진짜 내 아버지이구나. 아버지는 상황마다 최고를 내게 주시는 분이구나. 내가 제대로 사람되라고 필요하니 채찍을 주시고, 내가 어렵다는 것을 아시니 당신이 쓸 돈을 지갑에다 채워주셨고, 영적으로 궁핍하다는 것을 아니 기도의 원군이 되어주시는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이 성장하면 하나님 아버지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내 뜻보다 그 분의 뜻이 정확하고 옳고 바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그 수준까지 가지 않으면 하나님을 내 기준에다 맞추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안되면 내가 하나님을 떠난다. 실제로 이 땅에 살면서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가? 괴테의 <파우스트>를 보면 파우스트는 이 땅의 부귀영화를 달라고 했는데 악마가 와서 네가 말하는 것을 다 들어주어 모든 부귀영화 다 누리게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조건이 있었다. 너의 영혼을 내게 달라고 했다. 파우스트는 그 조건을 수락한다.

오늘날 살아가면서 어려운 것은, 돈이라고 하는 것을 위해서 생명까지도 영혼까지도 파는 사람이 많다. 특히 자본주의 한복판인 뉴욕에서 그런일이 비일비재할 것이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에도 잘사는 것을 위해서라면 영혼까지도 파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10억을 줄테니 하나님을 떠나라고 하면 떠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요셉의 삶을 보면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살았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요셉은 특별한 사람이니 그렇지 우리같은 사람과 다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아니다. 요셉에 대해 창세기를 빼놓고 유일하게 다루고 있는 장이 시편 105편인데, 18절을 보면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라고 나온다. 감옥에 갇혔던 현장을 그대로 적고 있는데, 창세기에 보면 왕의 감옥에 갇혔을때에도 모든 일이 다 형통해서 잘되었다고 나오는데, 시편에 보면 구체적인 상황이 나온다. '몸'이라는 단어의 각주를 보면 '혼'이라고 해 놓았다. 히브리말로 '몸' 대신 '혼'을 넣어도 된다는 것이다. 혼이 쇠사슬에 매였다는 것이다. '매였다'라는 히브리어를 의역하면 '혼배백산했다', '넋이 나갔다'는 의미이다. 무슨 이야기인가. 요셉이 감옥에 갇혀서 환장을 했다는 것이다. 사슬에 채워져서 내가 왜 믿음을 지키고 믿음을 배교하지 않고 신앙대로 살려고 노력했는데 왜 나에게 이런일이 벌어졌는가 하면서 미치겠다고 한 것이다. 혼비백산했다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면 우리와 다르지 않고 같다.

그런데 결과가 달랐다. 그런 상황임에도 그는 끝까지 믿음을 지켰다.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사니 하나님이 생각할 수 없는 복을 주신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요셉은 하나님의 음성을 못들었다. 성경은 어떻게 이야기하는가.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시니 모든 일이 다 형통하더라' 라고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적고 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하나님이 같이 하시는 인생이구나,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형통하구나"라고 보이더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람을 사용하시는 방법은 다양하시다. 12제자들 처럼 특수한 목적으로 순교로 부르는 인생이 있다. 그리고 요셉처럼 하나님께서 믿음을 지키는 자에게 형통한 복으로 인도하시는 인생이 있다.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는가?

2016년 첫날을 맞아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있다. 2016년이 2015년 보다 세상의 환경적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보장은 아무데도 없다. 오히려 더 나빠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눈에 보이는 것,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안절부절하는데 우리는 상황보다 더 크신 하나님, 세상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앞에서 성실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앞에서 민감하자. 모든 일을 할 적에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는가' 하는 그 질문으로 시작하자. 하나님한테 민감한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형통한 길로 인도하실 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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