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교회 말씀잔치 “하나님의 성품과 축복을 유통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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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ㆍ2020-03-02 23:49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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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장경철 목사 “계시적 칭찬과 겸손의 성품” 메시지 일부
찬양교회(허봉기 목사)는 2월 27일(목)부터 3월 1일(주일) 까지 “하나님의 성품과 축복을 유통하는 삶”라는 주제로 말씀잔치를 열었다. 강사 장경철 목사는 허봉기 목사와 장신대 동문으로 서울여대 기독교학과 교수로 있다.
28일(금) 저녁에는 잠언 31:28-31을 본문으로 “계시적 칭찬과 겸손의 성품”이라는 제목의 메시지를 전했다.
1.
‘칭찬 그것도 계시적 칭찬이라는 무슨 말인가?’라는 의문으로 메시지를 듣는 순간 깜짝 놀랄 칭찬을 들었다.
“형제님은 환영을 해주는 것을 잘하는 것 같아. 지난 주일예배때 주보를 나누어주었잖아. 형제에게 주보를 받으면 환영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어...”
장경철 교수가 예시한 교회내 칭찬이다. 우리 교회에는 어떤 칭찬이 오가는가? 혹시 칭찬보다 비판이 더 많지는 않은가?
장 교수는 “한국 사람은 칭찬을 잘하지 않는다. 그래도 칭찬에 인색하다는 표현은 잘하지 않는다”고 했다. 예를 들어 식당에서 여러 사람과 밥을 먹고 돈이 있는데 돈을 내지 않는 인색도 있지만, 지갑에 돈이 없는 경우도 있다는 것. 많은 한국인들은 마치 지갑에 돈이 없는 것처럼 칭찬이 없다. 어려서부터 칭찬을 받아본 경험이 적기 때문이다.
장 교수는 학교에서 학생 칭찬을 종종 하는데 학생들의 반응을 소개했다. 칭찬을 듣고 가장 이상적인 반응은 “감사합니다”라고 응답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학생들은 칭찬을 받으면 “아니다”라고 한다. 진짜 아닌 것이 아니라 칭찬을 별로 받아 본적이 없어서 당황스럽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어느 날에는 학생의 옷맵시를 칭찬했는데 학생의 응답은 “5천 원짜리인데요”였다. 옷의 가격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도 학생이 당황해서 내놓은 반응이었다.
장경철 교수는 칭찬을 3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 칭찬은 상대가 잘한 것이 있을 때 잘한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둘째, 상대의 좋은 점을 좋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상대를 차분히 관찰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셋째는 상대방에 있는 것을 있다고 언급해 주는 것이다.
장 교수는 “칭찬은 무작정 잘한다고 또는 좋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사실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잘하지 않는데 잘한다고 하는 것은 칭찬이 아니라 조작”이라고 경고한다.
2.
그러면 한 단계 더 나아가 계시적인 칭찬을 소개하는데 어떤 칭찬의 경지일까? 장경철 교수의 메시지를 한 번 따라가 보자.
만약 ‘대학가는 것을 잘하는 것이냐?’라고 물으면 잘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잘못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칭찬도 마찬가지이다. 잘못된 칭찬도 있고 잘하는 칭찬도 있고 탁월한 칭찬도 있다. 잘못된 칭찬은 조작적인 칭찬을 의미한다. 그것은 일시적 환심을 얻겠지만 신뢰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 잘 하는 칭찬은 사실적 칭찬인데 사실적 칭찬을 잘하는 것은 중요하다. 탁월한 칭찬인 계시적 칭찬은 아직은 잘못하지만 앞으로 잘 할 것이라고 미리 알려줘서 실제로 잘 하게 되는 지경으로 이끌어주는 칭찬이다.
우리가 살다보면 상대방의 잘못이 보이는 자리에 가게 될 때가 있다. 부모의 역할이란 자녀보다 더 성숙하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자녀의 허물이 보이고 또 안타깝게 느껴지는 자리에서 상의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때 할 수만 있다면 상대방이 잘못할 때 잘못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도 잘못하다는 것을 느끼도록 만들어주고 잘하는 쪽으로 몰아줄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마법중의 하나가 계시적 칭찬이라고 볼 수가 있다.
성경에 보면 계시적 칭찬을 매우 잘하고 있는 분이 계신다. 바로 예수님이시다.
시몬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나중에 베드로라고 불린 이 사람은 교회역사에서 아주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본래 아버지가 정해준 이름은 시몬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성품이 성숙한 편은 아니었던 것 같고 충동적인 점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시몬아 왜 이렇게 화를 내냐. 분위기가 안 좋아지는데 너 이래가지고 직분을 잘할 수 있겠냐?”라고 이렇게 말씀하시기 보다는 “너는 앞으로 반석과 같은 견고한 믿음의 사람이 되겠구나”라고 말씀하셨다. 지금은 아직 아니라는 것이다.
성경에 그런 이야기는 없지만, 시몬이 한마디 하면 분위기가 싸해지고 그러고 나면 자책하는 시간도 왔을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시몬아 너 이리와 봐라. 자기를 대하듯이 가까운 사람을 대해야 하는 게다. 상대가 잘못한 게 있어도 잘못까지 포함해서 품을 수 있어야지. 다른 사람이 실수를 할 때도 보듬어주는 사람이 되거라. 그러면 반석과 같은 일을 하게 될 거다. 혹시 너만 부담스럽지 않다면 이번 기회에 반석이라고 이름을 정하는 것이 어떻겠냐?”라고 하셨을 것이다. 성경을 잘 보면 처음에는 시몬으로 나오다가, 조금 지나면 시몬과 베드로 같이 나오고, 복음서를 지나면 주로 베드로라고 나온다.
저는 시몬의 의식 속에서 이렇게 본다. 어느 날 부터인가 사람들이 자기를 ‘바위’ ‘반석’ 이라고 불러주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나는 나를 포기한 적이 있는데 나의 미래의 모습을 봐주시고 나의 이름을 먼저 불러주신 분이 내 안에 계시고 나와 함께 계시고, 나는 기력이 쇠해서 사라질 수 있지만 주님의 은혜의 말씀은 내 생명보다 더 낫고, 나는 먼지처럼 사라질 수 있지만 나를 향한 이 은혜와 사랑은 영원하고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믿음이 확고하게 있었을 것 같다.
신앙이란 무엇일까? 하늘 아버지를 만나서 나를 향한 계시적 칭찬에 음성을 들으면서 조금씩 연습을 해서 다른 이들에게 건네다가 언젠가는 뼛속까지 하나님의 성품에 물들어가는 길을 걷는 것일 것이다.
3.
이번에는 ‘교만’과 ‘겸손’에 대한 메시지 내용이다.
교만은 참 특이한 죄이다. C.S, 루이스가 쓴 <순전한 기독교>라는 책이 있는데, 4부로 된 책의 3부 8장에 ‘가장 큰 죄’ 라는 내용에 상세한 설명이 되어 있다.
교만은 본성적으로 경쟁적으로 만든다. 나머지 대다수 것들은 우연히 경쟁적이지만 교만은 내가 다른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필요하지 않는 대상에 대해서 경쟁을 시작한다. 모든 사람들이 탐욕이나 이기심으로 돌리는 그런 죄들은 사실은 기저에 교만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겸손은 무엇인가? 겸손을 잘못 이해하면 "저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또는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겸손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책에 있는 서너 문장을 소개하겠다.
"우리가 혹시 겸손한 사람을 만난다면 그 사람은 ‘저야말로 부족한 사람이지요’ 라는 말만을 하는 느끼하고 역겨운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에게 무슨 말을 하든지 진지한 관심을 갖고 들어주는 쾌활하고 지적인 사람이라는 것이 우리가 그로부터 받는 인상의 전부일 것이다. 만일 그에 대해서 호감이 일지 않는다면 인생을 너무 쉽게 즐기는 것처럼 보이는데 우리가 약간 질투를 느꼈기 때문이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겸손을 의식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아예 자기 자신을 의식하지 않을 것이다."
책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내가 겸손한지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우정을 형성하는데 기여하는 사람인가 우정의 형성을 방해하는 사람인가에서 가장 잘 측정이 된다고 볼 수가 있다."
겸손이나 교만을 측정하는 방법이 하나있다. 교회 모임도 좋고 사랑방 모임도 좋고 가정의 모임도 좋다. 내가 그 모임에 들어갔을 때 합류를 했을 때를 기준으로 해서 내가 들어간 다음에 웃음꽃이 피고 우정이 활성화 된다면 당신은 겸손한 성품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하지만 당신이 그 모임을 떠난 다음부터 막 웃음꽃이 피기 시작하고 아이들이 환해지면 곤란하다.
예를 들면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아빠는 편안하게 잘 들어주신다고 자녀가 이야기를 하면 그 아버지는 겸손한 성품을 갖고 계신 분이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하든지 진지한 관심을 갖고 들어주는 쾌활하고 지적인 사람이라는 것이 겸손한 성품을 가진 사람의 인상의 전부일 것이다.
허봉기 목사님이랑 학교 다닐 때 이후로 이렇게 오랜 시간을 가진 적이 없었다. 허 목사님이랑 있으면 기분이 그냥 좋다. 어제 점심때 허 목사님이 해주신 말이 너무 좋았다. “다른 사람이 주연일 때 그 사람이 주연이 되도록 하는 것”라는 것이었다. 너무 구체적이었다. 상대가 “나는 파리에 다녀왔다”고 하면 “나도 파리에 다녀왔다”고 응답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냐. 좋았겠다”라고 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건네든지 진지한 관심을 갖고 들어주는 쾌활하고 지적인 사람이라는 것이 우리가 겸손한 사람으로부터 받는 인상의 전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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