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성 목사가 44년 목회 끝에 “나는 행복한 목회자”라고 말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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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ㆍ 2019-04-04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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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성 목사가 은퇴한다. 박 목사는 1983년 개척한 뉴욕한인제일교회 36주년을 치루고, 6월 30일 주일 오후 5시에 은퇴 및 담임목사 이취임예배를 드린다. 툭히 박 목사는 2016년에는 미주자치연회 감독에 취임하여 연회의 기틀을 다지고 2018년 10월에 2년 임기를 마쳤다.
아멘넷 기자는 은퇴하는 박효성 목사와 만나 인터뷰를 했다. 카리스마가 있는 감독의 모습이 아니라 인간적인 면에 푹 빠진 시간이었다. 박 목사는 기자에게 “나는 행복한 목회자”라고 기사제목을 정해 달라고 했다. 그런데 정말 행복해 보였다.
박효성 목사와 2시간여 대화를 통해 은퇴 준비와 후임 목회자 선정 과정, 은퇴후 계획, 목회란 무엇인가, 이민교회의 어려운 현실, 혈기왕성했던 목회초기 일화들, 행복한 이유들에 대해 나누었다.
▲박효성 목사 가족들. 뒷줄 서있는 부부가 큰 아들 박대용 목사 부부.
먼저 박 목사의 은퇴후 계획은 가족이었다. 박효성 목사는 “은퇴하면 새로운 무엇이 있겠지. 나를 위해 기다리는 것이 있을 것이다. 말만 떠들 필요 없고 두고 보자. 그런데 아내가 많이 아파서 당분간 좀 더 아내를 보살펴야 겠다는 생각이다. 목회하느라 가정을 너무 소홀히 했다. 아내(박희숙 사모)는 1977년 나보다 1년 먼저 미국에 간호사로 왔다. 하지만 이후 나중에 간호사 하러 미국 온 것이 아니라고 설득해서 다 내려놓고 사모로 집중했다”고 말했다.
박효성 목사의 두 아들은 감리교 목사이다. 박 목사는 “그리고 손주들이 30-40분 거리에 떨어져 사는데도 1달에 한 번 보기도 힘들다. 두 아들은 모두 기감(KMC)에서 안수를 받고 연합감리교(UMC)에서 목회하는 목사이다. 큰 아들 박대용 목사는 뉴저지 아콜라감리교회 EM 목사인데 7월부터 뉴저지 중부 미국교회 담임으로 간다. 1남 1녀를 두었다. 작은 아들 박대현 목사는 버지니아에서 한인 2~3세 교회에서 목회를 하며 1남 3녀를 두었다”고 소개했다.
박효성 목사와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했다.
은퇴를 앞두고 교회에 요구를 하지 말고
은퇴준비를 미리 하라
은퇴할 때도 목회자의 초심을 유지하고
행복하게 교회를 떠나라
목사들은 때가 되면 다 은퇴하는데, 은퇴할 때 보니 보통 시끄럽다. 오히려 작은 규모 교회는 그렇지 않은데 어느 정도 자립된 교회에서는 은퇴하는 목사의 초심이 흔들리는 것을 많이 보았다. 내가 은퇴하려고 하니 그런 생각이 들만도 하다. 은퇴후 생활이 쉽지 않다. 기감에서 44년 목회했는데 교단에서 300여불 받는다. 우리 부부가 정부로부터 SSA를 받고 살아가기 쉽지 않다. 이것은 정말 실질적인 문제이다.
은퇴를 앞두고 혼자 오랫동안 생각했다. 은퇴를 하더라도 교회와 좋은 관계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갑자기 은퇴하지 말고 미리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올해로 뉴욕한인제일교회에서 해수는 37년째이다. 7년 전에 은퇴를 앞두고 미리 집을 준비했다. 장로님들이 2베드룸 정도를 알아보라고 했다. 하지만 항상 교인이 원하는 것 보다 더 낮은 것을 이야기했다. 집이나 차나 사례비도 그랬다. 웨체스터는 비싸고 타판지 브릿지 건너 락크랜드는 같은 2베드룸이라도 5만불 정도 쌌다. 그리고 은퇴한 부부가 2베드룸은 필요없다고 생각해서 1베드룸 콘도를 구입하여 은퇴하기 전에 페이오프했다. 또 타던 차를 가져가기로 했으나 유지비가 많기에, 은퇴후 팔고 전기차로 바꾸어 줄여 갈 것이다. 그리고 목돈 받는 것 없이 매월 조금씩 받기로 했다.
말하고 싶은 것은 목사들은 은퇴준비를 잘하라는 것이다. 교회형편에 맞게 은퇴하여, 은퇴하며 교인들에게 실망시키지 않는 목사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은퇴준비를 미리 해 놓지 않고 갑자기 은퇴가 닥쳐서 무엇을 해달라고 하면 안된다. 목사는 교인들이 전과 같이 따라줄 것으로 알지만 새로 오는 목사에게 집중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미리 은퇴를 준비해야 한다. 미리 지혜롭게 은퇴를 준비하고 무리하게 교회에 요구하지 않고 행복하게 교회를 떠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올해 교회 표어는 “아름다운 동행”이다. 나가는 목사와도 아름다운 동행, 오는 목사와도 아름다운 동행을 하자는 것이다.
법적으로 은퇴연령이 없다면, 자신의 건강과 모든 것을 고려하여 적당할 때 은퇴해야 한다. 그 나이가 70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위에서는 무엇을 하라고 자꾸 이야기 하는데 70세는 은퇴할 나이이다. 더 할 수 있을 때 그만두는 것은 사실 힘들지만 아름답다. 그런데 우리 교단은 법적으로 은퇴연령을 만들어 놓았으니 복종하고 나가야 한다. 몇 년은 더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서운한 것은 사실이다. 한편으로는 좋을 때 은퇴하는 것이 좋다.
후임 목회자의 결정 과정-교회분열을 피해야
담임목회자가 은퇴하며 3명의 목회자를 추천
단지 설교를 잘한다고 청빙하면 안된다.
목사의 설교 한 번 듣고 담임목회자 정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열고 이야기하지만 일단 결정되면 한마음으로
은퇴하기 1년 전, 장로들이 후임자를 걱정했다. 장로교에는 청빙위원회를 조직하여 청빙하지만 우리 교단을 법이 다르다. 6명의 시무장로가 모였다. 목사를 청빙할 때, 한 사람이면 몰라도 5~6명이면 한 마음이 되기 힘들다. 더욱이 우리 교회는 자립교회이기에 서로 오려고 할 것이다. 장로에게 줄 서서 밀어달라고 하는 것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청빙위를 통하면 교회가 시끄러우니 나를 믿는다면 내가 담임목사 후보 3사람을 추천하고 택하라고 했다.
청빙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시작은 긍정적이지만 대부분은 부정적으로 끝난다. 특히 교회 장로가 여럿이면 교회가 갈라지는 요인이 된다. 오래있는 내가 교회를 물러나지만 장로들 못지않게 교회를 사랑하고 잘되기 원한다. 단지 설교를 잘한다고 청빙하면 안된다. 설교만 잘하는 것이 목회가 아니다. 장로들에게 나를 믿고 따라 달라고 했다. 그리고 10월에 감독 임기가 끝나고 11-12월 중에는 기도하며 3사람을 추천하고, 1월에 결정하자고 했다. 그리고 법에 따라 1월말이나 2월초에, 교단법에 따라 구역인사위원회에서 결정하자고 했다. 그러면 감리사가 와서 회무를 주관하여 통과해야 한다. 장로들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
고민하고 기도하며 3사람을 추천했다. 저는 3사람 중에 누가와도 행복하고 교회가 이상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저와 장로 6명 등 7명이 모여 3차례 모임을 가지고 결정하기로 했다. 장로들 중에는 그래도 교회에 와서 설교를 한 번은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반대했다. 목사의 설교 한 번 듣고 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래도 꼭 해야 한다면 3분 다 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1분으로 마음이 모아지면 그분만 오라고 하자고 했다.
나중에 송인규 목사 한 분으로 뜻이 모아지고 가부를 묻지 않고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그 목사가 왔을 때 누가 목사를 반대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마음을 열고 이야기하다가도 정해지면 한마음을 모으는 것이다. 그래서 송인규 목사로 마음이 모아지고 반대없이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그리고 설교를 듣기 위해 송 목사에게 연락을 했다.
송인규 목사의 진짜 목사다움
담임목사로 결정되기 전에 시험 설교 안하겠다
지금 성도들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다
교회를 든실하게 성장시킨 것 높은 점수 얻어
단독 후보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송인규 목사는 “고맙습니다. 오라고 해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교회에서 담임목사로 결정되기 전에 와서 설교하라면 안가겠다고 했다. 설교를 들어보고 정하는 자리에 안가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안 가는 이유는 뉴욕에 설교하러 갈 때 교인들이 왜 가느냐고 물으면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결정해주면 목회하는 교회를 정리해놓고 그 다음에 가겠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장로들에게 “진짜 목사 아니냐”고 했다. 가짜이면 설교하러 오라고 하면 난리를 했을 것이다. 다 되었는데 오라고 해도 안온다. 장로들도 더 흡족해 했다. 2월 첫 주에 감리사도 오고 인사구역회를 했다. 장로들과 결정과정을 소개하고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만장일치로 통과시켜 달라고 해서 그렇게 됐다. 송인규 목사는 5월에 자녀가 학교를 졸업하고 그리고 6월 초순에 예정된 교인들과 베들레헴과 선교여행을 마치고 부임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사하다보면 6월 중순이후로 오기에 7월부터 담임하는 것으로 하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이취임예배를 6월 30일에 드리게 되었다.
송인규 목사는 어디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는가? 추천한 3사람은 지역은 다르지만 한 이민교회에서 목회를 10년 이상 한 분들이다. 송인규 목사는 성경적인 목회와 특히 교회를 든실하게 성장시킨 분으로 부임후 교회성장에 대한 기대가 담아 장로들이 마음을 모은 것이다.
44년 목회를 통해 목회란 무엇인가?
교인들에게 사리사욕이 없다는 것을 인정받아야
장기목회는 진실과 겸손이 필요하다.
어떻게 목회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목회에 인내가 중요하다는데 인내도 레벨이 다 다르고 인내하는 조건이 다르다. 그리고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다. 내 경우는 그랬다고 이야기해야 한다.
목회가 무엇이라고 어떻게 해야 한다고 딱 말하기가 어렵다. 나는 목회를 하면서 잔머리를 굴린 적이 없다. 만 36년 동안 목회하면서 장로와 둘이 만나 교회에서 회의하는데 이렇게 발언 해 달라고 조율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목사가 진실하다 하는 것을 교인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그런 것은 단기간에 되는 것이 아니다. 저 목사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교인들에게 주는 것이다.
나는 나를 위해서는 사례를 안올렸다. 그러다 보니 교인들이 10년에 한 번 올릴까 하는 정도였다. 내가 받는 것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 다는 것을 교인들이 안다. 목회는 인간관계이다. 목회를 하다 교회를 떠나면 인간관계가 잘못된 경우도 많다. 목회는 인간관계가 좋아야 한다. 사람은 털면 냄새가 나기 마련인데, 그래도 저 목사는 희생하는 분이라는 것만 나올 수 있어야 한다. 자기는 손해보고 교인을 먼저 배려하는 분이라는 것을 교인들이 알면 목사가 크레딧이 있는 것이다.
하고자 해서 된 것은 아니라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목사가 하는 것이 자신을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해 성도들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위해 하는 일이라는 믿음이 있으니 교회에서 무엇을 결정하기 전에 교인들에게 설명하면 쉽게 받아들인다. 교인들에게 거짓없이 숨김없이 진실하게 이야기를 하면 된다. 진실은 다 통한다. 거짓은 언젠가 드러난다. 진실은 늘 같으며 뒤집어지는 것이 없다. 그래서 목회는 진실해야 한다. 어떤 목회자들은 한 목회지에 3-4년 있다가 다른데 가야 한다. 오래있지 못한다. 자기 입에서 나온 말들이 다 들통이 나기 때문이다.
모든 목회는 같지만 장기목회는 더욱 진실과 겸손이 필요하다. 아무리 장로와 목사 사이에서 목사가 영적 리더라 할지라도 교만하고 폼을 잡는다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장로를 장로로 인정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교회에서는 그렇지만 세상에 나오면 장로들 중에는 기업체 사장도 있고 정치가도 있는데 목사가 무조건 큰 소리만 치면 안된다.
36년 전과 다른 한인이민교회 현실
지금 한인이민교회는 가장 어려울 때
이민은 안오고 교인은 줄어드는데 목회자는 늘어나
기감 미주자치연회 미자립교회 70~80%
지금 한인이민교회는 가장 어려울 때이다. 어떤 면에서 나는 가장 행복할 때 목회를 했다. 지금 목회자들은 한인이민 역사상 가장 힘들 때 목회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민은 안오고 1세들은 세상을 떠나며 교인은 줄어드는데 목회자는 같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늘어나는 것은 현실이다. 이중언어하는 목회자들도 나오고 있다. 그리고 여러 부실한 신학교에서 배출한 목회자들이 목회에 나서고 있다. 30여년 전만해도 뉴욕에 한인신학교들이 많지 않았는데 지금은 많다. 한국에서 목회자가 되는 정통 코스를 받은 분들이 반드시 자격자들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미주에는 부실 신학교들이 많다보니 목회자의 질이 어떻게 보면 가장 나쁠 때이다. 한인 신학교에서 1년에 몇 명만 안수를 준다고 해도 미주 전체적으로 보면 많은 목회자들이 배출된다. 교인들은 한정되고 있고 목회자들이 많다보니 짤라내고 찢어가고 뺏어간다. 그리고 제가 개척 당시에는 뉴욕의 대형교회들이 몇 개 안되었다. 지금은 교인들이 잘 차려진 교회에 가지 작은 교회는 안간다. 교회가 작은 것도 서러운데 큰 교회에 뺏기고, 그런 것들이 지금 한인이민교계에 만연되어 있는 것 같다.
기감 미주자치연회의 통계에 의하면 소속된 350개 교회 중에 자립하는 교회는 불과 20~30%가 될까? 한국 기감에는 미자립교회의 개념을 교인수가 아니라 헌금을 중심으로 판정한다. 1년에 3천만 원 이하이면 미자립이다. 우리 계산으로 하면 3만 불이다. 1년에 교회 헌금수입이 3만 불이 안되면 미자립이다. 1년이 헌금이 3만 불이 안되는 교회가 그렇게 많은 것이다. 뉴욕의 교회 70~80%가 미자립이다. 1년 헌금이 3만 불이 안된다. 1주 헌금이 500불이 안되는 교회들이다. 교회들이 어렵다. 참 무엇이라 말하기 힘들다. 목사 자신부터 시작하여 교회의 기둥 같은 분들이 헌신해야 한다. 그것이 작은 교회들이 성장하는 방법이다.
지금은 진실한 목회를 외치지만
처음에는 사고치는 목사였다.
83년에 교회를 개척하고 3년후 교인총회에서 예산을 다루었는데 감리사는 목회자 사례비만 주로 지적한다. 감리사가 그것을 지적하면 잘 협력하겠다고 하라고 교인들에게 가르쳤다. 총회에서 감리사가 지적하자 어느 교인이 다들 먹고살기 힘든데 목회자 사례비만 올리라고 하느냐고 따졌다. 당시 저는 뜨거운 30대로 교협 체육대회에 참가하여 군대있을 때 배운 배구실력으로 3연승해서 우승기를 가져 올 때였다. 그렇게 가르쳤는데 엉망으로 만들었다.
다음 주일에 교회 각 기관장과 직분자들을 연초에 임명한지 3주 만에 모두 해임하겠다고 통보했다. 당시 그렇게 교회를 불질러 놓았다. 다음 주일에는 내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니 사례비를 반으로 자르겠다고 했다. 스스로 한 징계로 감봉이었다. 교회는 조용하다. 당시 김수환 추기경이 내 탓이라고 할 때였다. 두어 달 지나고 나서 내 탓이요 하면서 교인들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원대복귀를 시켰다.
물론 목회자가 그렇게 하면 안된다. 성경적인 믿음으로 한 것이 아니라 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젊은 혈기가 앞선 것이다. 정말 감사한 것은 목사가 그렇게 함에도 불구하고 정말 중요한 자리에 있던 교인들은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자리를 지킨 것이다.
몇 년 후에는 사표를 내기도 했다. 당시 교회가 브롱스에 있었다. 이민자들이 많이 유입되어 교회가 부흥했다. 하지만 브롱스가 이민자들이 잠시 있다 떠나는 장소였다. 미국에 도착하면 브롱스에 잠시 있다가 플러싱이나 뉴저지로 다 이사갔다. 그러다 보니 교인들이 1-2년 만에 다 교회를 떠났다. 그러면 다른 이민자들로 채워지고 했다. 그런 것에 실망하여 젊은 놈이 이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목회지를 옮기려고 생각했다. 당시 사람들이 뉴저지 팰팍으로 옮기는 추세였다. 마침 뉴저지에 있는 교회의 목사가 은퇴하며 저를 청빙하고자 했다. 그래서 다음 주에 교회에 가서 그만둔다고 사표를 냈다. 더 규모가 작은 교회로 간다고 하자 여러 가지 유언비어가 퍼졌다. 사실도 아닌 그런 내용들이 불명예스러웠고, 교회는 막 분열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래서 몇 주 후에 입장을 바꾸었다.
현재 예배당을 사고 1996년 창립 13주년 예배를 헌당예배로 드렸다. 교회가 부흥하고 예배당을 사용하던 미국교회에서 나가라 하니 95년 연말부터 교회를 찾았다. 당시 예배당이 있던 브롱스와 현재 테리타운은 다른 동네이다. 처음 예배당을 본지 3주 만에 예배당을 사기로 결정했다. 입당하기 전에 특별헌금과 건축헌금 모아둔 것으로 75만불을 모두 완불하고 입당했다. 은행에서 론을 하면 시간이 걸리는데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3주 만에 산 것이다.
“나는 행복한 목회자이다”
왜 행복한 목회자인가?
좋은 교인들에게 감사드린다.
한 교회에서 쫓겨나지 않고 36년을 목회한 것에 감사한다. 물론 나쁜 관계 속에서 버틸 수도 있겠지만 좋은 관계 속에 목회한 것이 행복했다. 목회초기 젊은 혈기로 문제를 일으켰는데도 인내하고 기다려 준 좋은 교인들을 만나서 감사하고 행복했다. 그리고 목회를 지금처럼 어려운 때가 아니라 가장 좋은 시절에 하여 행복했다.
식구들이 목회에 브레이크를 걸지 않고 한마음으로 같이하여 행복했다. 두 아들이 목회자가 된 것도 행복했다. 저 또한 목사였던 아버지가 제가 신학교를 간다고 하니 행복해 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목사로서 아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으니 목회하겠다고 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행복하다. 목회를 통해 힘들고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아들들이 목회하겠다고 했겠는가?
좋은 교인들에게 다시 감사드린다. 개척한 2가정이 지금도 교회에 있다. (뉴욕교계에 잘 알려진) 최재복 장로는 우리 교회가 브롱스에 있을 때 교회에 나와 세례를 받고 집사-권사-장로를 거쳐 은퇴했다. 한인이민교회에 이런 교인은 거의 없다. 최재복 장로는 지금 플러싱에 산지 20년이 넘어가는데 일주일에 4~5번 교회에 나온다. 주일예배와 수요예배는 물론이고 새벽예배도 나온다. 플러싱에서 테리타운에 있는 교회까지 오는 시간 그리고 기름값과 톨비를 생각하면 대단한 분이다. 그런 좋은 성도들과 같이 했으니 내가 행복한 것이다. 6명의 시무장로들도 다 30년 이상 같이 하신 분들로 제가 직접 장로로 임직한 분들이다. 나는 행복한 목사이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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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기님의 댓글
김원기두 아드님을 하나님의 제단에 바치고 지난 36년을 복음과 교회를 위해 살아오신 박 감독님과 함께 같은 시대를 산다는것도 큰 은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