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석호 목사 <사도행전 주해 및 교훈집> 출판, 1/28 뉴욕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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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1ㆍ2024-12-19 02:12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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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15년 여간 목회를 하다가 2년 전에 은퇴를 했던 문석호 목사가 <사도행전 주해 및 교훈집>을 출판했다. 문 목사는 뉴욕에서 교육과 선교를 중심으로 이민목회를 하면서도, 뉴욕 교협과 목사회의 회장으로 섬긴 바 있었다. 아멘넷은 저서를 출판한 문 목사와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 궁금했던 내용들을 질문하고 출판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1,200 페이지의 <사도행전 주해 및 교훈집>에는 문석호 목사의 땀이 묻어 있다. 문 목사는 ‘저자의 독백’을 통해 “뒤돌아보니, 성경을 내 눈으로 읽고 마음으로 받아들인지 57년 만에, 그동안 마음으로만 늘 품고 작정했던 성경 주해서를 책으로 내게 되었으니, 감사가 절로 나온다. 그동안 가르쳤던 총신대학교에서의 20년, 그리고 미국에서 15년간의 목회생활, 또한 고든-콘웰신학대학원에서의 지도교수로 약 10년에 걸쳐 강의하는 동안, ‘언젠가는 꼭 하리라!’고 마음을 먹었던 주해작업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한편 문석호 목사는 2025년 1월 28일 화요일 오전에 뉴욕에서 <사도행전 주해 및 교훈집>을 중심으로 세미나를 열기로 했다.(장소 미정)
Q: 목사님 오랜만입니다. 뉴욕에서 15 년간의 목회를 하시고는 멀리 가셔서도 글도 쓰고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계시다는 소식을 접하기는 했었지만, 늘 궁금했었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고 지금 살고 계시는 곳과 현재 활동하시는 것들에게 대해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예, 반갑습니다. 뉴욕에서만이 아니라 미국 전역에 잘 알려진 아멘넷과 이렇게 연결이 되어 소식을 나누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지난 2022년에 은퇴를 하고서, 그동안 15년 동안 나름대로 정성을 다하여 해왔던 뉴욕의 목회지를 떠나, 잠시 몇 달간 펜실베니아 주에 거하다가, 그해 가을에 이곳 조지아 주로 이사를 했습니다. 이곳에 있는 몇몇 지인들과 옛 제자분들께서 제가 은퇴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이곳으로 오기를 권했지요. 그래서 두 어번 방문해서 여기저기를 돌아본 후에, ‘여기로구나!’ 하는 마음으로 정착을 시도했지요.
또 실은 이리로 이사오기 전에, 잠시 머리도 식힐 겸하여 해외의 선교지를 방문하는 중에, 이곳의 신학교에서 연락이 와서, ‘이곳으로 오셔서 일해달라‘는 간절한 요청도 두어 곳이 있었기에. 결국 이곳으로 오게 되었지요.
그러니까 이곳으로 내려온지 2년여의 년의 시간이 벌써 지났네요. 그리고 실제로 이곳에 내려와보니, “이곳이 은퇴자들의 천국이라더니…소문이 괜한 것이 아니로구나.“ 라는 것을 실감하면서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물론 그 말은 사람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으나, 제게는 썩 어울리는 말이지요. 나이들수록 사람들과 병원을 가까이 둬야한다는 말이 있기는 하나, 저는 오히려 자연의 숲들을 가깝게 하라고 말하곤 하지요! 어차피 육신은 자연의 품으로 갈 것이니, 자연을 가깝게 ‘자연스럽게!’ 살아야 겠지요!
제가 이곳으로 내려오면서 마음 먹은 것이 몇가지 있었는데, 그 중에서 제일 큰 것이 있었지요. 그것은 제 평생에 걸쳐서 그동안 하고 싶기는 했으나 여건상 뒤로 미루어놓았던 ‘성경 주석작업’이었는데, 이곳이 워낙 조용하고 자연이 어울어진 평화스런 곳이기에, 도착하여 짐을 풀자마자 집을 도서관과 작은 개인 수도원으로 생각하면서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지요. ’상당한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성경주해 작업’이라는 것은 지난 날 학교에서 가르치던 교수시절이나 도시에서 목회로 분주할 때에는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었지요. 엄청난 집중력을 요하는 것이 성경주해 작업인데, 이곳의 주변과 생활조건이야말로 그 일을 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이 이미 만들어진 곳이지요! 얼마나 감사하면서 지내는지요.
이곳으로 내려올 때 부동산하시는 분에게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도심을 떠나 조용한 곳을 살펴보라고 부탁을 했는데, 실은 자세히도 모른 채 그 분의 안내로 정착을 하고보니, 제게는 안성맞춤의 곳이었습니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Duluth에서 약 1시간 정도 떨어진 시골 도시 “베들레헴“(Bethlehem)이라는 인구 만여명도 안되는 작은 도시의 외곽에 정착을 했기에 마음 먹은 일들이 가능했다고 여겨집니다. 제가 거주하는 조그마한 동네이름은 ”Noah’s Landing”이구요.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는, 비록 집은 작으나 집 앞뒤 1에이커 되는 곳에서, 집은 도서관 식으로 꾸미고, 뒷뜰은 산책의 장소로, 또한 작은 텃밭으로 만든 후부터는, 곧바로 주해작업에 착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로부터 지난 2년 간의 작업의 첫 결실로, <사도행전 주해 및 교훈집>의 출간을 보게된 것입니다.
원래는 2년간에 걸쳐 무려 1,8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하고도 세밀한 작업이었지요. 단권으로 내기는 너무 분량이 많아서 몇 권으로 나누어 내자는 권고도 있었지만, 차라리 내용을 좀 줄이더라도 단권으로 내자는 저의 주장에, 내용을 축소하여 전체를 1,200 페이지로 줄인 후에 이번에 나오게 된 것입니다.
Q: 그곳에 계시면서 그동안 해오셨던 다른 일들은 무엇이었나요? 신학대학원에서의 강의도 해오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주석작업 외에 해 오셨던 일도 잠시 소개해 주시지요.
A: 이곳에 내려오자마자 몇몇 목회자들과 연락이 닿아, 정기적인 모임을 갖곤 했지요. “Academia Paulus”(바울학당)라는 모임을 만들어 매주 한번씩 모임을 갖기도 했지요. 지금은 주해작업과 더불어, 제가 몸담고 있는 Atlanta Cumberland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원장 겸 부총장으로 신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힘쓰고 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일이란 신학교에서 정기적인 강의를 하고, 집중하여 글쓰는일이 중심이지요.간혹 초대받아서 설교를 행하고, 종종 목회자들의 모임에 나가서 말씀을 전하는 것들, 그리고 간혹 이곳을 방문하시는 분들과 함께 기독교의 위태로운 현실을 논하기도 하면서, 주로 ‘교회의 내일’에 대한 대화를 나누곤 하지요.
간혹 선교지에서 아틀란타를 방문하는 분들 중에 머물곳이 쉽지 않은 분들을 초대하기도 하지만, 워낙 한인들의 거주지와는 거리가 있어 미안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조용한 숲으로 둘러쌓인주변 가까운 곳에 있는 아름답고 커다란 호수공원이 있어서 자연 속에서 쉬면서 마음껏 산책과 사색을 즐기기를 원하는 분에게는 괜찮기는 하지요. 제게는 은퇴한 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최고의 축복으로, 자연을 마음껏 즐기면서 유유자적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집 주변의 숲을 걸으면서 여러가지 생각과 함께, 책을 펴낼 구상도 하고, 그동안 가깝게 하지 못했던 다양한 책들을 다시 한 번 소화해가면서도, 여전히 배우고, 그토록 듣고싶었으나 목사라는 이름때문에,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들 때문에 눈치를 보면서 들었던 어린시절의 갓종 동요들과 제가 좋아하는 노래들, 그리고 책들을 자유롭게 접하면서도…, 종종 땀도 흘리는 작은 농사를 통해 황토 냄새를 맡으며, 늘 노래하는 숲속의 새들의 소리를 듣는 것 등, 이 모든 것은 하늘이 내려준 축복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면서도 틈틈이 시간을 내어 선교지 방문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술작업을 중심에 두고 있지요.
Q: 그렇군요. 축하를 드립니다! 그런데 이번에 출판하셨다는 책 <사도행전 주해 및 교훈집>과 관련하여, 독자들을 위해 몇마디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선 첫번째로 사도행전 주해집을 내신 이유와 그 책의 특징들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조만간 있게 될 세미나에 참석 하실 분들을 위해서 몇 마디 말씀 좀 해 주십시오.
A: 물론 성경 66권이 모두 깊은 이해를 위한 주해의 대상이 되기는 합니다만, 제 머리 속에서 첫번째 주해서로 사도행전으로 택한 이유는, 그 책이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와 오늘의 우리들을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연결점이 된다는 생각에 있지요. 아시다시피, 신약에 있는 그 어떤 다른 책들 보다도 사도행전에는 히브리사람으로서 구약에 매우 정통했고, 불타는 열심으로 구약의 율법을 지키느라고 애쓴 나머지, 이에 어긋나는 “예수의 잔당들”을 없애버리려고 했던 사울(Saul)이 사도행전에 등장하고, 후에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는 사도로 거듭나는 과정을 통하여 ”구약 전체의 핵심이 그리스도”임을 강조하게 이르른 그 과정을 보여 준다는 의미에서 먼저 사도행전을 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서만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논할 바가 많습니다.
또 다른 동기가 있다면, 제가 목회를 끝내려는 시점에서 실은 곧바로 선교지로 향하기를 마음먹었으나, 여러가지 말도 안되는 우스꽝스런 일이 주변에서 누군가의 조작으로 생겼고, 여건상 험난한 외지로 간다는 일이 어렵다고 생각이 들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 홀로 선교지에 가서 일을 하느니(건강과 재정 등의 어려움이 예상되기도하고), 그동안 내 삶의 소원이었던 ‘성경주해에 대한 강렬한 의지’가 순간적으로 되살아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잠시 선교지에 머물고 있을 때에, 두어 곳에서 제게 연락이 와서 ‘후학들을 가르쳐달라‘는 요청을 받으면서 결국 이곳에서의 정착으로 결론을 내게 된 것이지요! 뒤돌아보면,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실감난 순간들이었지요! 결국 주님의 은혜라는 말 외에는 설명이 안되요!
그런데 이와 동시에, 책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제 속마음으로는 세계 곳곳에서 일하시는 선교사님들께 격려를 드리면서, 그분들도 바울의 행전을 누가가 기록했듯이, 스스로 ’현대판 사도행전을 쓰시라!‘고 격려해드리고 싶은 마음도 들어서 사도행전 주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책의 특징을 말씀해달라고 하셨는데, 다른 성경의 본문과는 달리, 사도행전은 복음이 세계 곳곳으로 전파되어가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엄청난 고난과 함께 등장하는 유서깊은 곳곳에 서려있는 정신세계의 장소들에서 복음을 대하는 그들의 모습을 더듬어 본다는 것은 의미가 있지요. 정말로 대단한 지혜와 확고한 신념과 성령의 함께 하심이 요구되었던 것이지요!
그 속에는 복음의 전개과정이 세계사의 흐름과 맥을 함께하는 역사적이면서도 오늘날 우리들에게 가르치는 교훈들이 넘쳐나고 있는데, 그러한 내용들은 책의 부피상 많은 것들을 줄이면서 본문을 중심으로 하여, 구약과 신약에서 맥을 찾아내어, ’복음의 의미’를 오늘날 우리들에게 ‘영‘(Spirit)과 ‘자유함’(Freedom)의 의미로 적용해야만 한다는 것에 집중을 했지요. 그런 뜻에서 역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것입니다.
과연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이 외친 “영과 자유함”이라는 ‘그 진정한 의미를 알고 있는가?‘ 라는 의문과 함께 말입니다. 그리고 주해의 본래적인 기초는 언어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의미를 통해 전체를 파악하는 것에 있기에, 이에 충실하고자 했지요.
Q: 목사님께서 ‘구약의 맥‘과 ‘영과 자유‘의 참 의미를 말씀하셨는데, 그 부분을 좀 더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A: 좋은 질문입니다. 외면적으로 볼때는 사도행전이 ‘사건들의 연속‘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요, 제가 행한 주해 역시 본문들을 중심으로 주해하고자 한 것은 맞습니다만, 실제로 누가가 기록한 것을 중심으로 오늘의 우리가 밝히고자 해야만 하는 핵심은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복음의 참 의미“가 무엇이며, 또한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핵심적으로 찾아야만 한다는 것이지요!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고 누려야 할 신앙의 자유함이라는 특권이 사람이 각자 가진 고유한 어떤 굴레 속에서 스스로를 억압한다거나, ’신자의 도리’라는 미명하에 ‘신앙의 자유함’을 왜곡하면서 ‘구약적인 굴레’를 마치 신앙의 척도로 강요하는 어리석은 설교자들로 인해 생겨나는 것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그중에 매우 작은 예로서, 예컨대, 말로는 ’만인제사장‘이라고 말은 하면서도, 마치 목회자가 자신만이 사람을 축복할 권한이 있는 듯이 ’축복권 운운‘한다거나, 어떤 행위는 ’목회자나 설교자만이 갖는 특권‘이 있다고 주장한다는 것은 올바른 처사가 아니라는 지적이지요. 마치 신약의 눈으로 구약을 보아야 하듯이, 역시 신약도 바울이 말한 ’영과 자유함‘의 눈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현재와 더 나아가, 폭넓게 말하자면, 그것은 심지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나 설교자들이 여전히 구약에 ’기록된 글들’과 신약에 ’기록된 글들’ 속에만 머물 뿐, 오늘의 변혁되어가는 현실들에는 눈감은 채, 바울이 핵심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신앙인의 참자유“라든지, “영의 인도함을 받는 성도의 특권“을 이해하거나 누리지 못한 채, 그저 ”기록된 과거의 문자“에 매이거나 ”과거의 역사적 사실들에 집중“하는 나머지, 오늘의 이 격변하는 시대성에 대해서는 거의 침묵하는 ”영적 게으름“에서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을 일으키게 된다는 지적을 하고싶은 마음이지요!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세가 요청되는 싯점이라고 말하고 싶지요!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제가 이 책에 제목에다가, ”영“(Spirit)과 ”자유“(Freed)로 살다간 ”그 도의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했는데, 실제로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신자들은 몰론이려니와 목회자들이나 설교자들의 마음 속에, 이 두 가지 핵심요소들이 깊숙이 밖혀있는지를 뒤돌아 보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목회자들은 ‘묵은 과거‘로서의 ’지난 이야기들‘만을 언급하거나 그 ’과거들‘에서 신앙의 본래성을 끄집어 내려고만 하지 말고, 격변의 시기를 맞이하는 지금과 ’다가올 미래의 현실‘을 상상해가면서, 기독교가 추구해야 하는 ‘미래를 향한 과제’가 무엇인지를 헤아려 나가야 할 줄 압니다.
Q: “깊은 이해가 필요한듯 하네요. 목사님께서는 성경을 주해함에 있어서 ‘인문학적 관점‘을 말씀해 주셨는데, 성경주해의 측면에서 인문학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한마디 해주신다면 뭐라고 말씀해주시겠나요?“
A: 엄밀하게 말하자면, 인간의 모든 의식적인 활동은 인문학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기나긴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심지어 종교적이거나 예술과 문화를 포함한 일체의 심미적인 것까지도 말입니다. 인간을 둘러싼 일체의 것들은 마치 ’거대한 정보의 저수지’라고도 하겠지요. 그런데 그 ’거대한 지적 체계의 저수지’를 아랑곳 하지 않은 채, 다만 성경에 기록된 역사나 글자에만 매몰되어 기나긴 역사의 무대를 무시한다거나, 거대한 삶의 지적체계를 못본척 한다든지, 또는 별것도 아닌 소소한 일들의 틈바구니에서 바쁘거나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서, 인류가 살아오면서 세워온 정신적인, 지적체계를 도외시하거나 이에 대하여 지적인 게으름을 정당화하고자 한다는 자세는 결국 기독교를 스스로 왜소화하여, ’게토화‘ 하거나, 또는 ’무당종교의 차원’으로 내려가게 만들어 결국에는 ’극단적인 자기들만의 종교‘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미 그러한 조짐은 일부의 기독교인들에게나 소위 ‘극단적 보수주의’를 내세우는 사람들 속에서 자리잡고 있다는 진단이 내려져 있지요.
그러므로, 인문학적 관점에서의 연구와 지적호기심은 목회자들에게는 끊임없이 충동되어 나와야 할 것입니다. 더구나 학문 제반의 내용들이 끊임없이 공감을 이루면서 교류되어야 하는 지금의 현실에서는 당연한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학문(이론적 학문이건, 실천적 학문이건 간에)에 대한 다양한 교류와 통합되어가는 분위기(소위 inter-disciplinary study)가 광범위하게 이뤄지면서, 심지어는 AI의 등장으로 모든 영역이 그 용괄로 안에서 처럼 melting down 되어가는 시대 속에서, 목회자들의 끊임없는 연구와 실천적인 실험정신이 요구된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에게는 비상한 자세가 요구된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Q: 목사님, 쉽게 이해되는 말씀은 아닌 것 같네요. 나머지는 만나뵙고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뉴욕에서는 1월 28일, 화요일 오전에 세미나가 있다는데, 혹시 다른 곳에서도 세미나를 계획하고 계시는지요? 시간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만간 뵙겠습니다.
A: 예, 출간에 따른 감사예배와 세미나는 한국에서는 종로 5가에 있는 백주년 기념회관(기독교 연합회관)에서 1월 14일(화) 오전에 있을 예정이고, 미국에서는 LA와 Washington에서도 1월 중에 “사도행전 주해 및 교훈집”의 발간을 빌미로 해서 열리기로 되어있습니다. 저의 주해서와는 비교할 수 없는 훌륭한 학자들의 주석서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마는, 이번 저의 주해서 발간을 빌미로 해서, 목회자님들과의 세미나를 통해 서로 주고 받는 나눔과 배움의 시간이 의미가 있다고 하겠지요! 아멘넷의 보람된 내일이 계속 전개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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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석호 목사는?
출처: <사도행전 주해 및 교훈집>
학문과 신앙에 대한 열정을 품은 그는 총신대학교(ChongShin Univ.)에서는 기독교 철학을, 연세대학교 대학원(Graduate School of Yondei Univ.)과 오하이오주 주립대 대학원(Graduate School of Bowling Green State Univ./MA과정)에서는 주로 현대 철학 분야 중에서도 과학철학의 방법론에 집 중 연구했다. 신학에 있어서 미국의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MA/MDiv/ThM/PhD 학위과정필)를 통해 변증학과 현대신학, 그리고 남아공(South Africa)에서는 조직신학과 현대신학을 공부하여 학위 (ThD)를 취득하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그는 한국교회와 한국사회가 상실해가 고 있는 ‘공동체성(共同體性)의 회복을 위한 연구’로 Fuller 신학대학원에서 학위(DMin)를 받기도 했다.
저자는 이러한 학위과정에만 만족하지 않았다. 신앙과 이성과 과학적 사고를 아우르는 깊이 있는 사유를 통해 ‘신적 은총인 자연’을 배경으로 인간사회가 관심을 두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성이 상실되고 파괴되어가는 현대의 문 명사회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관심과 책임’을 평생의 연구과제로 두었다. 학교에서 신학과 철학을 가르칠 때에는 ‘공동체적 영성’을 중심으로, 이민목회를 할 때에는 ‘기독교적 영성’으로, 또한 선교지에서의 활동에서는 ‘복음의 공동체성’ 을 향하는 것에 중심을 두기도 했다.
문 목사는 20여 년간 총신대학교에서 교수와 교목으로 섬기면서도 목회자 들을 위한 영성 프로그램(‘신앙과 지성’, ‘청교도 개혁주의 신앙연구회’)과 청소년을 위한 신앙훈련을 ‘요수산풍’이라는 영성공동체를 공주 근교 칠갑산 산자락 에 세워 정기적으로 섬겼다. 나아가 뉴욕의 이민교회에서 15년간 목회하는 중 에는 남미 선교지에 교회와 학교를 세우는 일과 중국의 조선족 목회자 교육에 힘쓰는 등, 목회와 선교의 현장에서도 그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섬기며 복음의 ‘영성적 측면과 실천적 삶’을 강조하면서 일해 왔다.
그는 뉴욕에서의 목회 중에서도 2년간 교회가 소속한 어스킨(Erskin)신학 대학원에서, 그리고 12년간 고든콘웰(Gordon-Conwell) 신학대학원에서 책임교수(Director and Professor)로 한인신학생들을 위한 교육에 힘쓴 바 있다. 저자는 지금도 아틀란타에 있는 Atlanta Cumberland Theological Seminary 에서 신학원장 겸 부총장으로 섬기면서, 또한 온-오프라인 강의를 통해 Washington Mission College and Seminary에서 박사원장으로도 교육에 참여하면서도 동시에 계속되는 저작활동에도 힘쓰고 있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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