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칠 목사 "설교와 잔소리를 구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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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12-04-16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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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밑에 백합" 4월 월례모임이 4월 15일(주일) 오후 5시30분 웨체스트은혜교회(김홍선 목사)에서 열렸다. "산 밑에 백합" 운동은 지난해 5월 원로 조정칠 목사(79세)가 목사와 성도를 대상으로 교만하여 산 위에 기어올라 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교만을 버리고 겸손을 되찾아 예수님이 계신 산밑으로 내려오라는 위치 바로찾기 운동이다.(홈페이지 lotv.org)
조정칠 목사의「목사의 죄」
조정칠 목사는 최근「목사의 죄」라는 저서를 낸 바 있다. 월례모임에서 책의 중요핵심에 대해 언급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교인이 잘되어야 목회를 잘한것이다, 그런데 목사는 자기가 잘되려 하고 감투를 얻어쓰고 교인앞에 나가서 자랑한다. 하지만 교인이 잘되는 것이 목자의 자랑이다, 목사가 잘되어 교인이 기뻐하는 것은 경사가 아니라 망조이다. 교인이 잘되어 목사가 기뻐하는 것이 교회의 축복이다."
또, 조 목사는 모임의 말씀을 통해 책에 대한 기대를 밝히며 "바른 자세로 바른 자리를 잡은 사람이 없으면 뒤숭숭하다. 자리가 흔들릴때 목사가 제자리에 앉아 이 시대와 사회를 콘트롤 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그 희망으로 '목사의 죄'라는 방석을 내려놓고 그 위에 앉아 '나는 죄인'이라는 자리를 마련하면 정말 교인들이 목사를 두려워 할 것이다. 너무 많이 와 버려 될까 안될까 걱정되지만 우리가 못하면 후배들이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조정칠 목사는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산에 올라 앉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산 밑에 백합" 운동의 의미를 전했다. 또 부활하신 예수님이 구멍이 뚷린 손을 보여주며 부활을 믿으라고 한 본문을 통해,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의 자세에 대해 언급하여 큰 감동을 주었다. 다음은 조정칠 목사의 말씀요약이다.
조정칠 목사의 "산 밑에 백합"
한국사람은 아주 중요시 하는 전통가운데 집을 지을때는 집터를 본다. 풍수지리학이 좋다 아니다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좋은 터가 있다. 사람은 자리를 잘잡아야 한다. 마태복음 5장을 열면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라는 훌륭한 그림 하나가 나온다.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 어디에 앉았을까. 그냥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중요한 하나님의 틀이 나온다. 자리를 누가 잡아 주었을까. 예수님 스스로 잡았다. 어떤 자리를 잡았을까. 가장 편한 자리나 좋은 자리가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배려하기 위해 예수님은 제일 낮은 쪽이든가 나쁜 쪽 자리를 선택했을 것이다.
내가 자리를 잘잡아야 여러분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이 자리를 잡게 하는 것이 '산밑에 백합'이다. 여러분도 자리를 잘잡아야 한다. 그 자리는 다른 사람에게 유익하게 자리를 잡아야 한다. 뉴욕에 유명한 공연이 열리면 자리를 잘 잡으려고 애를 쓴다. 자리를 잘잡아야 한다. 예수님이 앞서 자리를 잡으니 무리와 제자들이 몰려들었다. 처음 자리를 잘못 잡으면 앉는 사람이 불편해서 골탕을 먹는다. 자리선택은 예수님이 완벽하시다. 자리를 잘잡는 훈련을 계속해야 한다.
더 중요한 자리가 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송할때 어떤 동네에 가던지 가서 자리를 잡으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 자리를 잡는데 지혜를 주신다. 예수님은 부자집에 가라고 하지 않으셨다. 어느 집으로 들어가던지 반응이 좋아 환영하면 그곳에 머물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복을 빌어주고 저쪽에서 복을 받아들이면 그 자리가 있을 자리하 하셨다.
그 자리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돈도 지식도 아니다. 마음이 통하고 정서가 통하면 그 집을 잡는다. 복을 빌었을때 받아들이는 마음이 중요하다. 무엇을 할때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이번 한국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당이 여당을 심판하려했는데 역풍을 맞아 심판을 당했다. 마음을 못얻었기 때문이다. 마음을 못얻으면 표를 못얻는다.
우리도 마음을 얻는 그 자리에 있다. 마태복음 5장에 예수님이 자리를 잡으면 그 다음에 복잡하게 살지마라고 하신다. 먹고 사는 걱정을 안하면 걱정을 할 것이 없다. 이것이 예수님이 제자에게 주신 하나의 약조이다. 그런것을 볼때 자리를 잡을때도 다른 사람도 그와 같은 혜택을 받을수 있도록 산밑으로 가야 한다. 산밑에 있으면 기회가 많다. 산밑에 오면 땅이 여유가 있는데 산위로 올라가면 여유가 없다.
조정칠 목사의 "설교 이렇게 전하라"
목사는 설교자이고 무엇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장사할때 제시하는 것이 부족하면 장사를 못한다. 다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목사나 신앙인들은 부활이라는 주제를 제시해야 한다. 시대적인 감각을 배제하고 이 시대의 지도자가 될수 없다. 목사는 시대적인 센스를 정말 누구보다 가져야 한다. 그 이유는 교인들은 스마트폰과 티브등 시대물이 빠져있다. 우리는 과학혜택을 받아들이고 빠져있다. 교인들의 감각이 이 시대에 99% 빠져있는데 그들의 정서와 감각을 무시하고 복음이 전해지겠는가. 안된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선택을 하고 산다. 그런데 교회에 올때 교인들은 그런 것을 다 내려놓고 오는 것이 아니다. 머리로 교회를 선택하고, 같은 목사가 강단에서 설교해도 평가하고 체크한다. 목사들이 죽을 지경이다. 죽으라 설교를 준비했는데도 반응이 생각보다 너무 처진다거나 하면 죽고 싶다. 설교의 스트레스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꿀것이 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요구는 목사가 주는 것과 엄청난 갭이 있다. 목사는 최선을 다해 설교를 준비해도 교인들의 반응은 시끈둥하다. 교인들이 원하는 것은 다르다. 주고 싶은 쪽과 받는 쪽이 너무 다르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실것인가. 예수님의 제시를 보라. 예수님의 생에서 가장 멋있는 제시가 승천하시기 구멍난 손을 확인하라고 하시며 나를 믿으라고 했다. 예수님은 자신의 손을 제시했다. 그리고 아무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사실과 진실이 확인되었을때 아무말도 필요없다. 손에 난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보았다.
부활이란 무엇인가. 예수가 부활하여 살아나면 흉터가 없어져야 한다. 깨끗하게 나아야 부활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흉터와 구멍이 난 손이라는 문제에 있는 것을 가지고 왔다. 그것이 없어야 부활이다. 손에 난 구멍이란 하나의 물질이다. 예수님은 너희들이 왜 나를 몰라보느냐고 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은 물질을 내놓고 믿으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질을 내 놓고 나를 믿으라고 했다면, 우리도 합리적이고 과학적이고 사실적이고 진실한 확실한 물증을 내놓아야 한다. 예수님은 양 손이 구멍이 났다. 손가락을 넣어 보고 믿으라 하셨다. 예루살렘 군인들에게 손을 보이며 "너희들이 못박은 자리이다. 이래도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냐"라고 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외에는 아무도 안보여주었다. 이것이 복음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너무 모른다. 예수님은 로마군인이나 빌라도에게 가서 구멍난 손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것은 인간의 방법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만 보여주고 믿고 말하라고 하셨다. 다른 사람은 보지않고도 사도들이 말하는 바를 듣고 그것을 믿었다. 목사들이 증거하는 말씀은 직접 목격하고 확인하는 것 보다 증거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 목사는 그것을 가져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예수의 못자국이 선명하게 목사의 가슴과 머리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연설을 가지고 예수를 제시하려고 하니 안된다. 공격적으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성도들에게 내 신앙을 증거로 던지라는 말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부활이란 논리가 아니라 지식도 아니고 연설도 아니고 해설도 아니다. 목사는 부활을 증거하는 사람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증거인 구멍난 손이 우리 가슴 속에 있는 것이고 우리의 신앙속에 있다. 목사가 '예수의 손'이라고 하면 성도들이 눈물을 흘릴만큼 목사는 말씀 증거가 파급력이 있어야 한다. 목사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
목사는 설교하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자기가 확신하면 짧은 시간안에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면 된다. 설교하다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앞에 5-10분안에 설교를 끝내고 성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하겠다고 말하면 된다. 설교와 권면을 분리해서 하면 얼마나 재미있고 신날까. 성도들에게 잔소리 한다고 하고 하면 괜찮다. 설교와 잔소리를 믹서하니 잔소리 설교가 되고 목사가 힘들고 교인도 짜증이 난다. 그래서 새시대 말씀증거를 구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지도자로서 제대로 존경받고 대우받고 영향을 주려면 어떤 자리에 앉는지에 따라 영향이 간다. 어떤 자리인가. 산아래라는 자리는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좋은 자리이다. 기대하는 것은 자리를 찾기위해 많이 양보하라. 특히 제일 좋은것이 있으면 절제하라.
ⓒ 아멘넷 뉴스(USAamen.net)
조정칠 목사의「목사의 죄」
조정칠 목사는 최근「목사의 죄」라는 저서를 낸 바 있다. 월례모임에서 책의 중요핵심에 대해 언급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교인이 잘되어야 목회를 잘한것이다, 그런데 목사는 자기가 잘되려 하고 감투를 얻어쓰고 교인앞에 나가서 자랑한다. 하지만 교인이 잘되는 것이 목자의 자랑이다, 목사가 잘되어 교인이 기뻐하는 것은 경사가 아니라 망조이다. 교인이 잘되어 목사가 기뻐하는 것이 교회의 축복이다."
또, 조 목사는 모임의 말씀을 통해 책에 대한 기대를 밝히며 "바른 자세로 바른 자리를 잡은 사람이 없으면 뒤숭숭하다. 자리가 흔들릴때 목사가 제자리에 앉아 이 시대와 사회를 콘트롤 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그 희망으로 '목사의 죄'라는 방석을 내려놓고 그 위에 앉아 '나는 죄인'이라는 자리를 마련하면 정말 교인들이 목사를 두려워 할 것이다. 너무 많이 와 버려 될까 안될까 걱정되지만 우리가 못하면 후배들이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조정칠 목사는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산에 올라 앉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산 밑에 백합" 운동의 의미를 전했다. 또 부활하신 예수님이 구멍이 뚷린 손을 보여주며 부활을 믿으라고 한 본문을 통해,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의 자세에 대해 언급하여 큰 감동을 주었다. 다음은 조정칠 목사의 말씀요약이다.
조정칠 목사의 "산 밑에 백합"
한국사람은 아주 중요시 하는 전통가운데 집을 지을때는 집터를 본다. 풍수지리학이 좋다 아니다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좋은 터가 있다. 사람은 자리를 잘잡아야 한다. 마태복음 5장을 열면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라는 훌륭한 그림 하나가 나온다.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 어디에 앉았을까. 그냥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중요한 하나님의 틀이 나온다. 자리를 누가 잡아 주었을까. 예수님 스스로 잡았다. 어떤 자리를 잡았을까. 가장 편한 자리나 좋은 자리가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배려하기 위해 예수님은 제일 낮은 쪽이든가 나쁜 쪽 자리를 선택했을 것이다.
내가 자리를 잘잡아야 여러분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이 자리를 잡게 하는 것이 '산밑에 백합'이다. 여러분도 자리를 잘잡아야 한다. 그 자리는 다른 사람에게 유익하게 자리를 잡아야 한다. 뉴욕에 유명한 공연이 열리면 자리를 잘 잡으려고 애를 쓴다. 자리를 잘잡아야 한다. 예수님이 앞서 자리를 잡으니 무리와 제자들이 몰려들었다. 처음 자리를 잘못 잡으면 앉는 사람이 불편해서 골탕을 먹는다. 자리선택은 예수님이 완벽하시다. 자리를 잘잡는 훈련을 계속해야 한다.
더 중요한 자리가 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송할때 어떤 동네에 가던지 가서 자리를 잡으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 자리를 잡는데 지혜를 주신다. 예수님은 부자집에 가라고 하지 않으셨다. 어느 집으로 들어가던지 반응이 좋아 환영하면 그곳에 머물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복을 빌어주고 저쪽에서 복을 받아들이면 그 자리가 있을 자리하 하셨다.
그 자리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돈도 지식도 아니다. 마음이 통하고 정서가 통하면 그 집을 잡는다. 복을 빌었을때 받아들이는 마음이 중요하다. 무엇을 할때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이번 한국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당이 여당을 심판하려했는데 역풍을 맞아 심판을 당했다. 마음을 못얻었기 때문이다. 마음을 못얻으면 표를 못얻는다.
우리도 마음을 얻는 그 자리에 있다. 마태복음 5장에 예수님이 자리를 잡으면 그 다음에 복잡하게 살지마라고 하신다. 먹고 사는 걱정을 안하면 걱정을 할 것이 없다. 이것이 예수님이 제자에게 주신 하나의 약조이다. 그런것을 볼때 자리를 잡을때도 다른 사람도 그와 같은 혜택을 받을수 있도록 산밑으로 가야 한다. 산밑에 있으면 기회가 많다. 산밑에 오면 땅이 여유가 있는데 산위로 올라가면 여유가 없다.
조정칠 목사의 "설교 이렇게 전하라"
목사는 설교자이고 무엇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장사할때 제시하는 것이 부족하면 장사를 못한다. 다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목사나 신앙인들은 부활이라는 주제를 제시해야 한다. 시대적인 감각을 배제하고 이 시대의 지도자가 될수 없다. 목사는 시대적인 센스를 정말 누구보다 가져야 한다. 그 이유는 교인들은 스마트폰과 티브등 시대물이 빠져있다. 우리는 과학혜택을 받아들이고 빠져있다. 교인들의 감각이 이 시대에 99% 빠져있는데 그들의 정서와 감각을 무시하고 복음이 전해지겠는가. 안된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선택을 하고 산다. 그런데 교회에 올때 교인들은 그런 것을 다 내려놓고 오는 것이 아니다. 머리로 교회를 선택하고, 같은 목사가 강단에서 설교해도 평가하고 체크한다. 목사들이 죽을 지경이다. 죽으라 설교를 준비했는데도 반응이 생각보다 너무 처진다거나 하면 죽고 싶다. 설교의 스트레스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꿀것이 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요구는 목사가 주는 것과 엄청난 갭이 있다. 목사는 최선을 다해 설교를 준비해도 교인들의 반응은 시끈둥하다. 교인들이 원하는 것은 다르다. 주고 싶은 쪽과 받는 쪽이 너무 다르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실것인가. 예수님의 제시를 보라. 예수님의 생에서 가장 멋있는 제시가 승천하시기 구멍난 손을 확인하라고 하시며 나를 믿으라고 했다. 예수님은 자신의 손을 제시했다. 그리고 아무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사실과 진실이 확인되었을때 아무말도 필요없다. 손에 난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보았다.
부활이란 무엇인가. 예수가 부활하여 살아나면 흉터가 없어져야 한다. 깨끗하게 나아야 부활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흉터와 구멍이 난 손이라는 문제에 있는 것을 가지고 왔다. 그것이 없어야 부활이다. 손에 난 구멍이란 하나의 물질이다. 예수님은 너희들이 왜 나를 몰라보느냐고 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은 물질을 내놓고 믿으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질을 내 놓고 나를 믿으라고 했다면, 우리도 합리적이고 과학적이고 사실적이고 진실한 확실한 물증을 내놓아야 한다. 예수님은 양 손이 구멍이 났다. 손가락을 넣어 보고 믿으라 하셨다. 예루살렘 군인들에게 손을 보이며 "너희들이 못박은 자리이다. 이래도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냐"라고 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외에는 아무도 안보여주었다. 이것이 복음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너무 모른다. 예수님은 로마군인이나 빌라도에게 가서 구멍난 손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것은 인간의 방법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만 보여주고 믿고 말하라고 하셨다. 다른 사람은 보지않고도 사도들이 말하는 바를 듣고 그것을 믿었다. 목사들이 증거하는 말씀은 직접 목격하고 확인하는 것 보다 증거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 목사는 그것을 가져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예수의 못자국이 선명하게 목사의 가슴과 머리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연설을 가지고 예수를 제시하려고 하니 안된다. 공격적으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성도들에게 내 신앙을 증거로 던지라는 말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부활이란 논리가 아니라 지식도 아니고 연설도 아니고 해설도 아니다. 목사는 부활을 증거하는 사람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증거인 구멍난 손이 우리 가슴 속에 있는 것이고 우리의 신앙속에 있다. 목사가 '예수의 손'이라고 하면 성도들이 눈물을 흘릴만큼 목사는 말씀 증거가 파급력이 있어야 한다. 목사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
목사는 설교하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자기가 확신하면 짧은 시간안에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면 된다. 설교하다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앞에 5-10분안에 설교를 끝내고 성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하겠다고 말하면 된다. 설교와 권면을 분리해서 하면 얼마나 재미있고 신날까. 성도들에게 잔소리 한다고 하고 하면 괜찮다. 설교와 잔소리를 믹서하니 잔소리 설교가 되고 목사가 힘들고 교인도 짜증이 난다. 그래서 새시대 말씀증거를 구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지도자로서 제대로 존경받고 대우받고 영향을 주려면 어떤 자리에 앉는지에 따라 영향이 간다. 어떤 자리인가. 산아래라는 자리는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좋은 자리이다. 기대하는 것은 자리를 찾기위해 많이 양보하라. 특히 제일 좋은것이 있으면 절제하라.
ⓒ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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