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진준 목사와 정민영 선교사가 전한 참된 평강과 샬롬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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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3ㆍ 2025-05-09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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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2025 열린말씀 컨퍼런스에서 노진준 목사는 참된 평강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인정하는 데서, 정민영 선교사는 샬롬은 관계 회복과 확산에 있다고 강조하며, 교회는 이 평화를 세상 속에서 살아내야 한다고 전했다.
2025 열린 말씀 컨퍼런스가 평신도를 위한 신학 컨퍼런스로 5월 2일(금)부터 3일(토)까지 필라델피아 기쁨의교회에서 열렸다. "복음의 평강(THE GOSPEL PEACE)"이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이번 컨퍼런스는 초창기 멤버인 노진준 목사와 정민영 선교사도 강사로 섰다. 백전노장이 전하는 평강은 무엇일까?
노진준 목사, "참된 평강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인정하는 것"
노진준 목사(PCM 공동대표, 순회 설교자)는 로마서 5장 1-11절을 본문으로 '평강으로의 초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라는 주제의 메시지를 통해 현대인이 추구하는 행복과 성경이 말하는 평강의 차이를 깊이 있게 조명하며, 진정한 평화는 하나님의 주권적 다스림을 인정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전했다.
노 목사는 먼저 유발 하라리 교수의 행복론을 언급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하라리는 행복을 '객관적 조건과 주관적 기대감 사이의 상관관계'로 정의했는데, 이는 돈이 많다고 무조건 행복하거나, 반대로 돈이 없어도 마음만 편하면 행복하다는 양극단의 통념을 모두 비판하는 시각이다.
노 목사는 이러한 분석에 일견 동의하면서도, 하라리가 말하는 것은 '행복감'이지 진정한 '행 행복' 그 자체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행복감은 화학적 작용이나 심리 상태로도 느낄 수 있는 일시적 감정이지만, 그것이 곧 행복한 사람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
때로 종교가 객관적 조건에 대한 기대치를 낮춰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심리적 최면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최저 기대치에서 오는 위로감을 신앙의 성숙이나 진정한 행복으로 볼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이는 은혜를 잊는 상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성경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행복할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한다. 죽음과 심판이라는 궁극적 불행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행복감은 일시적일 뿐이며, 이는 절망적인 현실에서 잠시나마 만족을 얻으려는 몸부림과 같다고 노 목사는 설명했다. 이러한 인간에게 유일한 행복의 조건은 '생명'이다.
이 생명을 소유할 때 인간은 비로소 행복할 수 있으며, 성경은 이 상태를 '죄인됨'에서 회복된 '자녀됨'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의 자녀된 자는 현재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장차 누릴 영광 때문에 현재를 인내하며 살아갈 수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사도 바울이 말한 '하나님과의 화평'은 구원받았음을 의미하며, 이는 단순히 천국행 티켓을 얻는 개인적 만족을 넘어선다. 구원은 잃어버린 자녀의 신분 회복이자, 하나님의 주권 회복을 의미한다고 노 목사는 풀이했다. 천국은 개인적 쾌락의 극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되심을 찬양하는 곳이다.
우리가 천국을 고대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그 영광이 온전히 드러나는 것을 보기 위함이다. 바울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고 한 것은, 개인의 안위가 아닌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소망 안에서 즐거워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는 말은 고난을 당해도 웃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인정하고 자랑하겠다는 의미다. 진정한 신앙의 성숙은 하나님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는 절대적 의존의 고백에서 나온다고 노 목사는 말했다.
우리 삶의 평강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자기중심성과 비교의식이다. 노 목사는 자신이 날지 못하는 것에 불행을 느끼지 않는 이유는 아무도 날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비교 대상이 생길 때 불행감이 시작된다고 지적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인정한다면 부요함에 교만하거나 가난함에 불행해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는 고백이 진실하다면, 그것으로 우월감을 가져서는 안 되며, 교회가 부흥할 때뿐 아니라 어려울 때도 동일하게 고백되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결론적으로, 진정한 평화는 소유의 만족이 아닌, 하나님이 내 인생을 다스리신다는 사실에 대한 인정에서 비롯된다. 환난이 인내를, 인내가 연단을, 연단이 소망을 이룬다는 바울의 말처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확증된 그 소망을 붙들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것이 이 땅에서 누리는 평강이라고 노 목사는 전했다.
정민영 선교사, "샬롬의 누림과 확산, 모든 이와 화목하라"
정민영 선교사(선교 컨설턴트, 전 위클리프 국제 부대표)는 로마서 12장 14-21절을 중심으로 '평화의 누림, 확산: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라는 제목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샬롬은 개인적 평안을 넘어 공동체적이며, 이를 적극적으로 나누고 확산하는 사명이 교회에 있다고 강조했다.
정 선교사는 복음의 본질이 바로 ‘샬롬’에 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는 좋은 소식은 평화와 구원에 대한 것이며, 이는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통치를 통해 이루어진다. 성부께서 성자를 보내신 사명 역시 궁극적으로 땅에 평화를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었다.
그는 종려주일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을 환호했던 군중이 며칠 만에 돌변하여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사건을 언급하며, 우리가 추구하고 예배하는 평화가 과연 성경이 말하는 샬롬과 같은 것인지 질문을 던졌다. 단어는 같아도 그 의미를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샬롬은 개인의 내적 평안을 넘어선 관계적 개념이라고 정 선교사는 말했다. 로잔 운동 내부에서도 '평안'보다는 관계적 의미가 강한 '평화' 또는 '화해'로 샬롬을 이해하려는 고민이 있었다고 소개하며, 개인적인 영적 교제도 중요하지만 복음의 공공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순히 심리적 안정이나 '히로뽕 샬롬'과 같은 일시적 행복감을 추구하는 것은 종교가 아니어도 가능하며, C.S. 루이스 역시 평안을 위해 종교에 귀의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죄가 관계를 깨뜨렸기에 구원은 관계의 회복이며, 이것이 탕자의 비유가 보여주는 샬롬의 본질이라고 설명했다.
정 선교사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샬롬에 대한 이해를 언급하며, 기독교가 정치적 이념 대립으로 원수가 되는 현실을 비판했다. 교회가 핵무장과 같은 가이사의 방식으로 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으며, 진정한 샬롬은 정의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샬롬을 이루는 과정은 때로 아픔을 동반한다. 십자가가 그리스도의 사랑인 동시에 하나님의 정의의 구현이었던 것처럼, 진정한 치유와 회복에는 아픔을 직면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나님의 방식은 세상의 부국강병 논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그는 지적했다.
데이비드 보쉬의 '변화하는 선교'를 인용하며, 교회의 선교적 사명은 삼위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교는 단순히 종교 선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서 시작된 보편적 화해와 평화, 즉 샬롬을 이루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재정의했다.
교회는 세상 속에서 세상과 다른 가치를 드러내는 '대조 공동체'로 부름받았다. 세상을 지배하려는 '대체 사회'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실현하며 샬롬을 살아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이 바로 거룩의 의미라고 덧붙였다.
로마서 12장에 나타난 구체적인 삶의 지침들은 이러한 샬롬을 누리고 나누는 방법을 보여준다.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고, 우는 자와 함께 울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않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며 화목하라는 명령들이 그것이다.
특히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따르는 길이며,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 샬롬 공동체의 삶의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는 개인의 삶, 일터, 지역사회 등 모든 영역에서 실천되어야 할 원리라고 설명했다.
결론적으로 정 선교사는 그리스도인이 이미 받은 샬롬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나누고 확산시키는 사명적 존재임을 자각해야 한다고 했다. 원수 갚는 것을 주님께 맡기고, 원수가 주릴 때 먹이는 선한 행위를 통해 이 땅에 하나님의 평화를 일구는 신나는 여정을 걸어가기를 축복하며 말씀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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