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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석호 목사 ② 사도행전 세미나 “초대교회의 모습과 현대 교회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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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3ㆍ 2025-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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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15년 여간 목회를 하다가 2년여 전에 은퇴를 했던 문석호 목사가 사도행전 주해 및 교훈집 <그 도(道)의 사람들>을 출판했다.247192f483b5e7f5f91674dc8d9cea49_1738667968_1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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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석호 목사는 20여 년간 총신대학교에서 교수와 교목으로 섬기다가 뉴욕에 와 이민교회에서 15년간 목회하며 뉴욕 교협과 목사회의 회장을 역임했다. 뉴욕에서 목회 중에서도 12년간 고든콘웰신대원에서 책임교수, 지금은 아틀란타에 있는 아틀란타컴블랜드신학교에서 부총장으로 섬기면서 교육에 참여하면서도 저작활동에도 힘쓰고 있다.

 

문석호 목사 저서 출판기념 감사예배 및 세미나가 뉴욕한인교역자연합회가 주최한 가운데 1월 28일(화) 오전 뉴욕베데스다교회에서 열렸다. 다음은 두 번째 강의내용이다.

 

[아멘넷 관련기사] 

문석호 목사 ① 사도행전 주해 저서 출판기념 감사예배 및 세미나

문석호 목사 세미나 “사도바울이 뉴욕 플러싱에서 교회개척을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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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이해의 역사적 배경과 중요성

 

우리가 사도행전을 이해할 때 몇 가지 방향을 잡을 수 있다. 첫째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바라보는 신약성경의 일부로서의 사도행전이다. 물론 당시에는 ‘기록된 성경’이라는 말은 대개가 구약성경을 언급하는 것이긴 하지만(물론 당시에는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이 헬라어로 번역된 70인경을 사용하긴 했지만), 초기의 초대교회 때에도 70인 경 외에도 이미 바울사도의 일부의 글들이 당시에 회람되던 일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것은 예를 들어, 베드로가 자신이 쓴 글(베드로후서 3:15-16절)에서도 언급되어있다. 어쨌든 우리가 사도행전을 이해하고자 할 때에는 이러한 70인 경의 탄생배경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또는 ‘흩어진 유대인들’에 대한 역사적 상황을 이해할 때에야만 바울이 이방 땅을 곳곳마다 방문했을 때 그들과 조우하면서 발생했던 크고 작은 많은 사건들을 이해할 수가 있다.

 

바울과 흩어진 유대인들의 만남

 

사도행전을 이해하는 배경으로서의 역사적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바울이 가는 곳곳마다 ‘흩어진 유대인들’과의 만남에서 당하는 그 많은 어려움을 왜 당해야만 했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바울이 가는 곳곳마다 흩어진 유대인들을 주로 회당에서 만나게 되는데, 그 회당에 모인 유대인들이 왜 바울을 향하여 그토록 미워하고 증오하게 되었는지를 알고자 한다면, 그 역시 유대를 둘러싼 역사를 이해해야만 한다. 

 

다시 말하자면, 바벨론의 그 포악한 역사와 앗수르의 잔인한 침략, 그리고 이어지는 바사(페르시아)와 그리이스의 알렉산더 대왕, 그리고 이어지는 로마의 세계제패로 인해 변형되어가는 유럽의 역사를 이해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유대 땅에서 새롭게 개편되는 유대의 내부에서의 분열이나 그 흐름도 이해하게 된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의 활동무대와 상황은 자연스럽게 이해되면서, 사도행전 이해의 배경으로서의 당시의 역사와 마주하면서 이해하게 된다.

 

사도행전의 역사적 배경과 의미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가 그러한 배경까지를 일일이 언급하지는 않아도, 지금의 우리들로서는 그러한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지닌 사도행전을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흥미있고도 의미있는 이해가 된다. 바로 그러한 주변 나라들의 유대나라와의 역사적 긴장관계나 그 상황을 넉넉히 이해한다면, 그것은 사도행전을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길이 열리기도 한다. 물론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게 된다는 말까지도 포함해서 말이다. 또한 다른 면으로는, 로마가 세력을 확장하고 세계를 제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가 그리스문명과 그 배경을 그대로 승계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들에게는 상당히 의미있게 이해되어야 한다.

 

회당과 복음전도의 관계

 

사도행전의 주무대가 되기도 하면서,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파될 뿐만 아니라, 바울의 복음전도에 꾀나 걸림돌이 되기도 했던 회당에 대한 이해도 자연스레 하게 된다. 우리가 아는대로, 회당(Synagogue)에 대한 역사적 과거를 돌이켜본다는 것 만해도, 유대의 슬픈 역사를 뒤돌아볼 수 있다. 그런데, 유대 땅을 중심으로 하여 지나간 유대의 슬픈 역사를 바라보는 것과 더불어, 바빌로니아에서 그리스까지 이어진 이후, 로마가 다스리는 역사의 현장에서 일어난 유대의 문서들(두루마리로 된 히브리어의 구약성경)이 그리스시대에 당시의 세계적이면서도 문명화된 사람들이 익히 사용했던 헬라어로 번역되게 된 그 배경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 역시 매우 의미있는 사건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사용되었던 그 뜻깊은 언어들이 먼 옛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시대의 흐름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 역시 우리가 인문학적 배경을 연구해야만 하고, 또한 그것들을 이해해야만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더우기 무법과 야만의 시대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그 당시의 상황에서 로마가 만들어 시행했던 그 법과 제도의 틀에서 사도들이 제약을 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보호를 받기도하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성경이나 사도들의 행적을 연구하면서 당시의 주변상황을 이해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당시의 상황에서도 우리가 빼놓지 않아야 할 것들은 두루마리의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이 BC 2-3세기 경,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70인경이라는 이름으로 헬라어로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저 작은 약소국에 불과했던 유대나라와 그 종교가 문명의 이름으로 세계사의 현장에 나오게 된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는 것에 역시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의 알렉산드리아는 수리아의 안디옥과 로마와 더불어 3대도시에 해당될 만큼 이름난 곳이었기에, 그만큼 유대교에 대한 연구와 알림이 잘 이뤄지게 된 셈이다.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에 대한 이야기는 결코 작게 평가되어서는 안될 것이라 여겨진다.

 

더구나 비록 고난 받는 약소국의 민족들이 어떤 이유로든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아가면서(포로로 잡혀서 곳곳에 노예로 팔리든, 또는 살아남기 위해 유랑의 길을 따라 흩어져 살아갔던지 간에), 그들 특유의 씨를 뿌려가면서(그 씨가 생물학적인 의미의 후손의 개념이든, 또는 유대교나 그리스도교를 믿는 ‘믿음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든지 간에),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이 모든 상황들이 사도행전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에 대한 이해

 

사도행전의 저자에 대한 이야기 역시 우리가 흥미를 갖고 논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처음으로 사도행전을 대하는 사람은 누가라는 사람에 대해 의문을 품을 것이다. 누가는 누구인가? 성경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누가와 예수님과의 관계를 알 길이 없다! 제자도 아니고, 사도도 아닌데? 성경에는 그의 신앙고백도 보이지 않았는데도 그가 기록한 글이 정경화의 작업 중에서 이제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 성경에 들어가게 된 배경을 알게 되면서, 결국은 ‘아 이런 거로구나!’하는 생각과 감탄에 들어오면서, 하나님의 부르심과 일꾼들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이와 더불어, 그 당시에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만인들에게 임했고 성령도 제자들만의 소유에게서, 유대인들에게와 이방사람들에게, 그리고 온 만방에 임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 정경화의 작업 역시 그러한 관계 안에서 받아들이게 되는 것으로 이해가 되어야 한다. 누가복음이나 사도행전에 나타난 독특한 모습들이나 누가의 묘사한 내용들을 세밀하게 살펴본다면, 결국 그의 직업조차도 어렴풋이 알게 된다. 그런 것들은 이 책에서도 잠시 논하고 있다.

 

누가의 기록과 하나님의 구속사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가 보여준 가장 놀라운 기록은 그 모든 사건들을 세밀하게 기록하면서도, 그의 기록에는 몇가지 초점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들을 말하고자 하는데, 그 수많은 어려운 일들과 고난 속에서도 그리스의 십자가 사건을 중심축으로 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사’라는 측면에 대하여 바울의 활동이 맞춰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메시아를 통하여 자기의 백성을 구원한다는 그 핵심사상을 논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언약사상’에 기초하여 드러내게 한다는 것은 베드로의 설교에도 나타나지만, 가장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는 것은 스데반의 설교에서인데, 이곳을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기록한 누가의 언급이야말로 사도행전의 백미들 중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누가가 기록한 작품의 놀라운 면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언약사상이라는 것이 구약의 곳곳에 흐르는 줄기이지만, 그것을 그 당시에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기록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 우리들의 눈으로 구약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다 알게 되지만, 그 당시의 눈으로 그 모든 것을 다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수 밖에 없을 정도이다. 그 당시의 상황에서 그저 눈에 보이는 것들은 율법과 규례와 제사법 등이 전부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바울의 행적과 그의 말들을 이해하면서 기록한 누가의 글들 속에는 언약의 모습이 창세 때부터, 특별히 아브라함 때부터 자기네들이 가장 위대하게 여기는 족장들의 연계성이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 그게 핵심이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걸 보지 못하고 법과 규례들, 율법과 형식, 제사와 성전개념, 또는 날과 달, 절기 등에만 관심을 뒀기 때문에 메시야를 주목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모습들은 어쩌면 오늘 ‘신약 이후’라는 새로운 시대에 살고있는 우리들에게도 역시 그러한 것들에 집중하도록 하는 경향은 없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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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신앙 안에서의 참 자유와 해방

 

바울이 사도행전에서 말하고자 하는 ‘신앙 안에서의 참 자유와 해방’을 예수 안에서의 복음의 의미로 승화시키고 있는지에 대한 자문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에 대해서는 진지하고도 솔직한 자세가 현대의 목회자들에게와 현대의 신앙인들에게 요청된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혹시나 지금의 교회들이 이시대에서도 성도들에게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화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상실하게 하고, 바울 이전의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설교를 하거나 가르치는 일은 없는지를 정직한 마음으로 살펴보아야 하겠다.

 

초대교회의 모습과 현대 교회의 과제

 

사도행전의 초대교회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앞으로 현실로 다가올, 아니 이미 다가온 교회의 모습을 생각해 볼 때, 우리들은 많은 생각을 해야만 할 때가 왔다. 어찌보면, 지금까지 노력해왔거나 상상해왔던 교회들의 외적모습이 완벽하게 변화되거나 무너지는 외형적인 모습에서 절망하거나 탄식하는 어리석음은 없는지를 냉철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미 지나간 과거를 읊조리면서, ‘말세다!’라고 탄식 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그야말로 초대교회의 모습을 새롭게 형성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어쩌면 서구사회는 그러한 초대교회의 모습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전통적으로 내려왔던 거대한 규모의 건물과 왕성한 활동만을 외쳐대다가, 지금의 초라한 현실을 피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온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내부적으로는 성령의 활발한 사역과 신학의 변질이 가져온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의 그 가정 가정에서의 모임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교회가 정치적인 일에 앞장을 서오다가, 정치와 사회의 변혁을 깨닫지 못한 채, 그리고 과학적 학문의 변화로 인해 개별영혼들이 유린당하는 것을 외면하거나 축소시켜 이해한 나머지, 지금의 영적 소멸의 상태로 허물어져가는 지경까지 왔다는 말도 크게 과장된 말은 아니라고 하겠다.

 

사도 바울의 소명과 현대 교회의 사명

 

따라서 우리는 사도 바울의 그 철저한 소명과 그 소명에 따른 자비량의 정신과 함께 한 영혼 한 영혼을 향한 구원의 사역에 집중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에 왔다는 것을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사도행전을 통해서 배울 수 있고, 우리 모두가 대비해야만 하는 바, 오늘날 ‘후기 기독교 사회’로 진입한 시점에서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가장 소중한 교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세미나 내용 3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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