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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한진관 목사의 감동적인 간증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사시는 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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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3ㆍ 2025-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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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뉴욕한인여성목회자연합회 제9회기 시무예배 및 이취임식이 1월 26일 주일 퀸즈한인교회에서 열렸다. 제1부 예배에서 김홍석 목사(뉴욕늘기쁜교회)는 여호수아 4:9 말씀을 본문으로 "기념비적인 삶으로"라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 예배를 드리는 장소인 퀸즈한인교회를 개척한 고 한진관 목사의 목회 일화를 소개하여 큰 주목을 받았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69dbdb0dfbfe3f99ecd569ca8657278d_1738210126_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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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사는 한진관 목사 간증

목회의 본질, 내가 아닌 그리스도가 하시는 것

 

퀸즈한인교회를 개척하신 고 한진관 목사님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어 소개한다. 25년 전쯤, 집회에서 한 목사님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다. 당시, 뉴욕에서 손꼽히는 큰 교회의 담임 목사셨던 한 목사님은 많은 목사님들 앞에서 충격적인 고백을 하셨다.

 

"제가 목회를 정말 이제까지 잘못해 왔습니다."

 

그분의 간증은 당시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자신이 이제까지 '내'가 목회하는 방식, 즉 인간적인 열심과 방법으로 목회를 해왔음을 고백하셨다. 그리고 이제 깨달은 진리는 '내가 죽고 그리스도께서 목회하시는 목회'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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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목사님은 로마서 6장 6절의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말씀을 인용하며,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음을 선포하셨다. 그러나 아직도 완전히 죽지 못하여 잘못된 목회를 하고 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셨다.

 

그날 이후, 한 목사님의 설교는 완전히 달라졌다. 40개도 안 되는 단어로 설교를 하셨지만, 그 내용은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사시는 목회'라는 단 하나의 주제로 일관되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도 죽고,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목회하시는 목회를 해야 한다는 절절한 외침이 담겨 있었다.

 

한진관 목사님의 간증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다. 진정한 목회는 우리의 힘과 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죽고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목회, 그것이 바로 한 목사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참된 목회의 모습이다.

 

요단강과 길갈의 첫째와 둘째 기념비

기념비들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라

 

오늘날 우리는 여호수아서를 통해 요단강 한복판에 세운 기념비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각 지파에서 열두 명을 뽑아 요단강 한복판에 기념비를 세우라고 명령하셨다. 이는 단순한 기념물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며 완전히 죽고 새 생명을 얻었음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요단강은 죽음을 의미한다.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에 발을 디디자, 물이 멈추고 백성들이 마른 땅을 건넜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새 생명을 얻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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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는 요단강에서 가져온 열두 돌을 길갈에 세우라고 명받았다. 이 돌은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는 표징이었다. "우리가 요단강을 마른 땅같이 건너왔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남았다"는 고백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중요한 교훈을 준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그분의 은혜로 다시 살아났음을 기억하는 것이 기념비의 진정한 의미이다.

 

요단강의 물이 멈춘 기적은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한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물을 밟았을 때 물이 멈춘 것은 죽음이 물러간 것을 나타낸다. 이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해 우리가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음을 보여준다. 길갈에 세운 열두 돌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아난 삶을 기념하는 표징이다.

 

세번째 기념비는 기념비적인 삶: 그리스도를 위한 헌신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사는 기념비적인 신앙

 

세 번째 기념비는 우리의 삶 그 자체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사시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 삶은 단순히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한 삶이어야 한다. 여리고성을 점령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념비적인 삶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었다. 그들은 여호와의 사자가 함께하심을 믿고, 믿음으로 여리고성을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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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4장 9절에는 한 여인이 예수님께 향유를 붓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행위를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기억하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단순한 선행이 아니라, 복음의 본질을 담고 있는 행동이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렸다. 반면 제자들은 자신들을 위해 예수님을 따랐다. 이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의 헌신과 봉사는 정말 그리스도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위한 것인가?

 

제자들은 그녀를 비난했다. "이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를 도울 수 있었을 텐데, 낭비하는구나." 그러나 예수님은 그녀를 칭찬하셨다. 왜일까? 제자들은 자신을 위해 예수님을 따랐지만, 이 여인은 오직 예수님을 위해 헌신했다. 우리의 봉사와 헌신도 마찬가지이다. 나를 위한 헌신인지, 주님을 위한 헌신인지 점검해야 한다.

 

어떤 일이든 주님을 위하여, 주님께 드리는 것이 되어야 한다. 만약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의 비판으로 인해 낙심된다면, 그것은 나를 위한 봉사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온전히 주님을 위한 일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기념비적인 삶은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삶이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헌신할 때, 다른 사람의 평가나 인정을 기대하지 않아야 한다.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며, 그분을 위해 사는 것이 진정한 기념비적인 삶이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분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기념비적인 삶을 살아가길 소망한다.

 

우리의 삶이 기념비적인 삶이 되기를 바란다. 내가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 이것이야말로 참된 기념비적인 신앙이며,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헌신이다. 주님을 위하여, 주님께 드리는 연합회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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