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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팬데믹에 어떻게 반응해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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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ㆍ 2020-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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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이목을 받지 못한 소외된 군중 사이에서 일어난 기독교 신앙이 어떻게 몇 세기만에 서구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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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Jacob Amson on Unsplash

 

이 질문은 로드니 스타크(Rodney Stark)가 쓴 책 ‘기독교의 발흥’(The Rise of Christianity: How Did the Obscure, Marginal, Jesus Movement Become the Dominant Religious Force in the Western World in a Few Centuries?)에 달린 부제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기독교의 성장 요인을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보는데, 그중 한 요인이 바로 전염병이다. 정말로 ‘세상의 이목을 받지 못한 소외된 군중 사이에서 일어난 기독교 신앙’이 어떻게 발흥하게 됐는지를 이해하려면, 전염병의 확산에 교회가 얼마나 눈에 띄게 대처해 왔는지를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나는 지난 역사에서 일어난 네 번의 팬데믹, 즉 세계적인 전염병 현상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면서, 어떻게 교회가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그 현상에 대처해 왔는지를 설명하려고 한다. 이 각각의 사례를 살펴볼 때 (혹시 현시대와 상황 속에 우리 스스로 적응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신앙을 통해 다시금 우리의 신앙이 새롭게 고양되는 변화가 있길 소망한다. 왜냐하면 저들이 용기 있게 희생을 감수하며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다가간 모습은 그야말로 그리스도의 모습을 방불케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실현하고자 하는 사랑도 바로 그와 같이 큰 희생을 요구한다. 더불어 우리 자신이 병을 옮기는 당사자가 될 수도 있는 이 시대엔 저들이 보여 준 지혜가 더욱 사려 깊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지난 역사를 살펴볼 때,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이끄셔서 바른 적용점을 찾을 수 있도록 도우시길 구한다. 동시에 우리 자신의 심령도 깨어나 믿음, 소망, 사랑을 추구하게 되길 바란다. 그리하여 작금의 팬데믹을 겪는 우리 모두가 세상의 시선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그 지혜를 올바로 발휘하게 되길 소망해 본다.

 

1.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디오니시우스(Dionysius)

 

주후 160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가 로마 제국을 통치하던 시절, 전염병이 발생했다(혹자는 이에 대해 천연두라고 추정한다). 약 15년간이나 지속된 그 병은 제국의 4분의 1 내지 3분의 1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스타크의 추정에 의하면, 당시 기독교 인구는 4만 5천 명 정도였고, 이는 전체 인구의 0.08퍼센트에 불과했다. 이 미약한 수치에도 불구하고, 전염병 확산에 대한 교회의 대처는 세상의 칭송과 커다란 호응을 얻어내었다.

 

당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였던 디오니시우스는 이러한 보고서를 남겼다.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 형제 중 대부분은 끝없는 사랑과 성실로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고 다른 이들만 생각하였다. 큰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들을 도맡아 온갖 필요를 돌보며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섬기다가 때론 저들과 함께 평온한 행복을 바라며 이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다름 아닌 이웃의 병환을 짊어지며 기꺼이 그 고통을 끌어안다 자기들까지 감염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형제가 그처럼 다른 이들을 간호하고 치료하다 환자들을 따라 죽거나 그들을 대신하여 죽음을 맞이했다.”

 

이렇듯 ‘타인을 살리기 위해 죽음을 끌어안는’ 모습은 그리스도와 흡사했는데, 이는 교회 밖에 있던 다른 이들과는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디오니시우스는 다음과 같이 글을 이어갔다.

 

“그런데 이교도의 모습은 완전 달랐다. 그들은 누군가 병들어 아프기 시작하면 멀리 떠났으며, 가장 가까운 친구로부터도 도망쳤다. 죽음을 맞이할지 몰라 어디에도 관여하지 않거나 누구와도 사귀려 하지 않았다. 이렇게 모든 방법을 동원해 주의를 기울였으나, 그들이 죽음을 피해 달아나기는 쉽지 않았다”(유세비우스 교회사 7권 22장 7-10절).

 

전염병은 죽음과 같은 인생의 귀로를 여실히 드러낸다. 또한 우리 모두가 죽음을 피할 수 없으며 약하고 덧없는 존재일 뿐임을 알려 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염병은 반문화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해 준다. 2세기 당시 교회도 그러한 모습을 세상에 보여 주며 저들의 칭찬을 얻고 그들로 하여금 회심케 만들었다. 이와 같은 모습이 한 세기 후에 다시 펼쳐지게 된다.

 

2. 카르타고의 주교 키프리안(Cyprian)

 

스타크의 추정에 의하면, 주 후 251년 기독교 인구는 120만 명에 조금 못 미쳤는데, 이는 제국 전체에서 1.9퍼센트 정도에 해당했다. 2세기 때와 비교하면 놀라운 성장이었지만, 여전히 교회는 제국의 마이너 그룹에 속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타깝게도 또 다른 전염병이 발생해 교회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그 전염병은 아마도 홍역이 아니었을까 추측되는데,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질병이었음에도 사망률은 한 세기 전과 마찬가지로 매우 높았다. 그래서 이탈리아의 여러 마을이 버려졌고, 어떤 마을은 영원히 발길이 끊어지기도 했다. 로마의 군대와 기간 시설은 전반적으로 쇠퇴했다. 바로 이 시련의 한복판에서 또 다시 그리스도인이 빛을 발하게 되었다.

 

카르타고의 주교 키프리안은 이렇게 기록했다.

 

“이 무섭고 치명적인 유행성 역병이 우리 가운데 정의로운 사람을 찾아내고 인간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드러내니 이 얼마나 시기적절하고 필요한 일인지 모른다. 건강한 사람이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이든, 동족 간에 마땅히 그래야 하듯 서로를 신실하게 사랑하는 일이든 [중략] 의사가 환자를 버리지 않고 돌보는 일이든 간에 말이다.”

 

전염병은 우리를 ‘수색한다’. 우리 안에 (자기만 보호하려는) 육신의 방식이 자리하고 있는지, 아니면 (자기를 희생하려는) 성령의 방식이 자리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3세기에 발생한 그 전염병은 교회 안에 있는 자들, 즉 성령에 이끌려 앞선 주인이 걸어가신 길을 기꺼이 따르려는 자들을 세상에 드러내었다.

 

그리스도인의 치사율은 일반인의 치사율보다 훨씬 낮았다(단지 10퍼센트 정도의 치사율을 보였다. ‘단지’라고 하기엔 그조차 안타까운 수치지만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에게 사랑을 베푸는 일이, 환자를 돌보는 자의 입장에서는 감염될 위험에 처하는 결과를 낳았고, 감염된 자의 입장에서는 생존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죽음에 노출시킴으로써 더 풍성한 생명을 누렸다. 전염병이 휩쓸고 지나갔지만, 그들은 더욱 강해졌다. 더욱 강력한 사회의 일원이 되어 더욱 많은 수가 생존했다. 그 회복력도 더 강했는데, 다름 아닌 죽음 앞에서도 확고한 소망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공동체로서도 더 강해져서 각자가 직면한 고통을 통해 서로에 대한 결속이 더욱 끈끈해졌다.

 

이처럼 세상의 이목을 받지 못한 소외된 운동으로 시작된 기독교가 어떻게 주 후 300년경에 이르러 6백만 명에 이를 정도로 성장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로드니 스타크는 전염병 확산이 그 주된 요인 중 하나였다는 답변을 제시한다.

 

3. 비텐베르크의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세기부터 흑사병이 유럽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불과 5년 만에 유럽 인구 절반이 사라졌고, 그중 도시 지역은 감염 상태가 더 심각해졌다. 이러한 역병은 이어지는 세기에도 반복적으로 발생했는데, 1527년 비텐베르크를 강타한 전염병도 거기에 포함되었다. 이에 수많은 자가 도망갔다. 그러나 루터와 당시 임신 중이던 그의 아내 카타리나는 남아서 아픈 자들을 돌보았다. 마태복음 25장 41-46절을 자신들의 지침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존중해야 한다. ‘내가 병들었을 때에 너희가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본문에 따르면, 우리는 서로에게 묶여 있어 누구도 고통 중에 있는 다른 사람을 버릴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 사람이 도움을 받고자 할 때 기꺼이 그를 돕고 거들어 줘야 할 책임을 안고 있다.”

 

루터는 도망가는 일이 용인되던 당시의 상황을 언급한다. 그는 자기 의를 추구하는 우리 모두의 성향을 알고 있었기에 스스로와 다른 결정을 내린다고 타인을 판단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다만 자신의 신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편지를 남겼다.

 

“이제 우리만 몇몇 집사들과 더불어 남았으나, 그리스도 역시 함께 계시므로 우리만 남았다고 해선 안 되겠지요. 저 옛 뱀, 살인자, 죄악의 장본인인 사탄과의 싸움에서 그리스도는 반드시 승리하실 거요. 그분의 발꿈치를 저가 얼마나 상하게 하였든 말이요. 다만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기를 바라며”(1527년 8월 19일 자 편지).

 

여기서 우리는 루터의 사고 속에 사탄과 그리스도가 얼마나 뚜렷이 대조되고 있는지 주목해야 한다. 사탄은 처음부터 살인자며(여기서 루터는 창세기 3장 15절을 염두에 두고 있다), 전염병 배후에 있는 자로 인식되고 있다.

 

그와 달리 그리스도는 훨씬 더 강력한 분으로, 훨씬 더 현재 상황 속에 깊이 관여하는 분으로 인식된다. 그분은 아픈 자들을 돌보는 이들 가운데 계시면서, 또한 아픈 자들 가운데도 계신다(마 25장). 또한 사탄과의 싸움에서 교회가 이겨 마침내 거머쥘 승리 가운데도 계신다. 그 승리에는 전염병에서 회복되는 일처럼 작은 의미의 ‘구원’ 사건까지도 포함된다. 이처럼 루터와 카타리나는 살아남아 그 극심한 시련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본을 보여 주었다.

 

4. 런던의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1850년대까지 런던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부유한 도시였으며 인구도 2백만 명을 넘었다. 그러다가 1854년에 콜레라가 발생하며 런던 시민들의 마음에 공포감이 조성되었다.

 

당시 스무 살밖에 되지 않던 찰스 스펄전은 뉴파크스트리트 교회(New Park Street Chapel)의 목사로 부름을 받아 영국의 수도로 가게 되었다. 훗날 그는 당시의 전염병이야말로 자기 자신과 런던이라는 도시를 알아갈 수 있는 중요한 모멘트가 되었다고 회고한다.

 

“우리의 마음이 민감하게 각성되는 때가 있다. 바로 죽음이 도처에 널려있을 때이다. 내가 처음으로 런던에 왔을 때, 얼마나 깊은 절망 속에서 사람들이 복음에 귀를 기울였는지 떠오른다. 콜레라가 무서울 정도로 기승을 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는 가볍게 조소하며 설교를 듣는 이가 거의 없었다.”

 

스펄전은 그 당시 죽음을 앞두고 있던 한 사람을 방문하게 된 이야기도 들려주는데, 그는 자신의 사역을 심히 반대하던 자였다고 한다.

 

“그 사람은 생전에 나를 늘 조롱하던 자였다. 더 격하게 표현하자면, 나에 대해 위선자라고 하며 공공연히 비난하고 다닌 자였다. 그러던 그가 죽음의 화살을 맞게 되자, 곧바로 나를 찾으며 상담해 주기를 요청해 왔다. 그때 그의 마음속에는 내가 하나님의 일꾼이었다는 사실에 대한 일말의 의심도 자리하지 못했다. 비록 입술로는 그 사실을 고백하진 않았더라도 말이다.”

 

세상의 기반은 늘 흔들리고 위태롭다. 하지만 그러한 위기는 종종, 인생의 진실을 드러내는 폭풍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스펄전은 당시 전염병이 수많은 이들을 휘몰아쳐 유일한 반석 되시는 그리스도를 찾아 도망치게 만드는 폭풍이라고 생각했다.

 

오늘 우리는 어떠한가

 

분명 이 시대는 이전과는 다르다. 그 차이가 있게 하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가령 현대식 병원이 등장하기 전에는 전문적으로 특화된 의료 시스템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또 앞선 세대는 환자를 돌보며 그 병이 어떻게 전염되는지에 관한 지식도 거의 갖추지 못했다. 환자를 돌보는 사람이, 심지어 아무 증상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병을 옮기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데도 말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우리가 사랑하려는 대상에게 병을 옮기기보다 차라리 자가 격리하는 편이 사랑을 실천하는 최선의 방법일 수도 있다. 이처럼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시대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사랑 자체가 여전히 우리가 추구할 최고의 목표임에는 틀림이 없다. 자기중심적인 육신의 소욕이 아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하는 사랑이라면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세상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음을 사람들에게 일깨워 줘야 한다. 우리의 육신은 연약하고, 세계 시장은 불확실하며, 우리는 모두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 줘야 한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만이 폭풍을 잠잠케 하실 수 있으며, 반드시 그렇게 하시리라는 믿음 가운데 유일한 반석 되시는 그분을 세상에 전파하며 영화롭게 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다가가며 진정한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아무쪼록 하나님이 이 시련의 때, 다시금 그리스도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시고 그 나라를 넓혀 가시기 위해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길 기도한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Responding to Pandemics: 4 Lessons from Church History by Glen Scrivener

번역: 장성우

 

2005년 미국에서 시작되어 팀 켈러 목사와 존 파이퍼 목사 등이 이끄는 TGC(The Gospel Coalition; 복음연합)의 한국어 사이트(tgckorea.org)가 2018년 11월 오픈되어 성경적이고 복음적인 주제의 글과 동영상이 매일 새롭게 업로드 되고 있다. TGC코리아는 TGC는 물론 개혁주의 신앙을 전달하는 또 다른 인기 사이트인 Desiring God(존 파이퍼), Ligonier(R.C. 스프로울), 9 Marks(마크 데버), Unlimited Grace(브라이언 채플)의 수준 높은 자료들을 공식적으로 허락받아 한국에 소개하고 있다. 

 

ⓒ TGC코리아(https://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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