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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교회 현상 연장선상에 사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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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7-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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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를 이해함에 있어서 잊지 말이야 하는 것은 통치의 개념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공간적인 영역으로 이해하기보다 하나님의 통치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 나라는 창조를 통해 세워졌고 또한 우주에 대한 섭리를 통해 확대되는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물론 이것은 구속적인 나라의 개념은 아닙니다. 구속적인 하나님 나라 개념은 이스라엘이라는 구체적 대상을 통해 신정통치(the theocracy)로 실현된 나라입니다. 신정통치의 하나님 나라는 구약의 관점에서 현재적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의 신정통치는 미래의 실체이기도 합니다. 이미 소유한 것을 미래의 것으로 바라보는 이른 바 종말론적인 나라이기도 합니다.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는 발전되어갈 나라가 아니라 새롭게 창조될 나라입니다. 인간에 의해서 발전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될 나라라고 했을 때 자칫 소홀히 하기 쉬운 것이 윤리입니다. 윤리란 마땅히 해야 할 그 무엇이기에 인간의 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윤리가 인간의 의무이기는 하지만 공로는 아닙니다.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가 하나님께서 새롭게 창조하실 나라라고 해서 인간의 윤리적 의무를 소홀히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윤리란 사랑의 실천인데, 사랑은 하나님 나라 통치의 가장 핵심적인 원리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 할 때 강조하는 정의도 결국은 사랑이기 때문에 세상 정부나 교회가 하는 모든 일은 사랑이 동기가 되어야 하고 사랑이 목적이 되어야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랑을 관념적이나 감성적으로 쉽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계시와 역사를 떠나서는 말할 수 없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 사랑은 역사적 현실에서 구현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계시를 모르거나 역사에 대한 깨어 있는 인식 없이는 사랑을 실천할 수 없습니다. 세상 정부나 교회는 다 함께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세상 정부는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를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세상 정부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를 깨우쳐 주어야 할 책임은 하나님 나라 백성에게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하나님의 통치에 잘 순종할 수 있도록 가르칠 뿐 아니라 본으로 제시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는 1차적인 길은 성경을 통해 주신 명시적 명령과 교훈을 따르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자연 질서와 국가의 법을 준수하는 것입니다. 성경 계시가 명시적으로 명하거나 가르치지 않는 것이라도 그 계시에 부합하는 사회적 약속이나 집단의 합의는 반드시 지켜야 하며 그 일에 교회는 본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계시의 명시적 명령과 가르침만 따르는 것이 아니고 교회가 속한 국가와 사회의 법과 질서를 지켜야 합니다. 교회가 민주주의 방법의 일부를 채용했다면 그것을 잘 준수해야 하고 국가의 이념과 법도 잘 지켜야 하는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곧 사랑의 실천이고 하나님의 통치에 복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나라의 법을 잘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표방하는 대한민국 안에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이론과 정책과 구호가 난무하는 것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학문적 토론의 장에서야 논의나 주장의 주제가 제한 받아서는 안 되지만 국가의 구체적 정책은 국가가 표방하는 체계를 벗어나면 안 됩니다. 그것을 위해서 법이 있는 것입니다. 법은 적용하는 것이지 해석하는 게 아닙니다. 모든 법은 해석이 필요 없을 만큼 명료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나라도 그렇게 완전한 법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불가피 하게 법을 해석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면 아무나 법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 재판소로 하여금 그 일을 할 수 있게 권한을 부여한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입법부인 국회나 검찰이나 언론이 헌법을 제각기 해석하여 자기의 주장을 정당화 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법을 제멋대로 해석하는 것이 엄청난 혼란의 에너지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 총체적 혼란은 안보의 위기 상황을 감지 할 수 없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의 혼란을 바라보며 내심 좋아할 사람은 적들입니다. 대한민국의 적은 북한만이 아닙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국제 관계에서는 우방도 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을 주적이라고 합니다. 대한민국의 안보와 경제는 어떤 우방도 책임져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를 초월하지만 국제 관계에서의 우방은 자국의 이익을 전제한 우방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미국의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자 가장 놀란 사람은 일본의 아베였을 것입니다. 트럼프 당선 때문에 아베는 세계에서 가장 다급한 사람의 민 낯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아베의 행보는 너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은 대한민국 사람들은 이러한 아베를 어떻게 생각할까 라는 점이었습니다. 아베는 모든 자존심을 다 내려놓고 오직 일본의 이익을 위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굴욕외교를 용감하게 해 냈습니다. 일본의 몇몇 언론이 아베의 굴욕외교를 비난했지만 아베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기는 급상승하였습니다. 일본인들은 굴욕외교를 하고 돌아 온 지도자에게 잘했다며 격려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아베처럼 미국에 와서 굴욕적인 외교를 했다면 대한민국 국민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그것은 모두의 상상에 맡깁니다. 자꾸만 한국인과 일본인의 국민의식 수준이 비교가 되어 속상합니다.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될수록 일본과도 잘 지내야 할 텐데 소녀상 때문에 일본과의 관계를 점점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일본이 과거에 우리에게 나쁜 짓 한 것에 대한 감정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녀상 때문에 일본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것은 미련하기 짝이 없는 어리석은 태도입니다. 한국인들은 일본을 욕할 게 아니라 도시락 싸 들고 일본 가서 배워야 할 점이 많습니다. 대한민국에는 아베 같은 지도자가 없을까요? 그런 지도자에게 격려의 갈채를 보낼 국민도 없는 걸까요?

 

머리는 비었고 가슴은 뜨거워 1+1을 어떤 이들은 100만이라고 주장하고 어떤 이들은 150만이라고 주장합니다. 현대의 시대정신은 객관적 사실을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습니다. 합법적인 탄핵 재판이라면 합법적 절차를 따라 객관적 증거를 토대로 이루어졌어야 할 텐데, 처음부터‘나는 박근혜가 싫다.’라는 촛불집회에 맞춰 탄핵재판이 진행되는 듯 하고, 지금은 대통령 탄핵뿐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체제까지 위협당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금 국회에 상정된 상법개정안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 반하는, 기업주의 경영권을 인정하지 않는 법안입니다. 이 법이 통과 될 경우 기업은 도산을 하거나 한국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이러한 상법개정안을 탄핵정국 혼란의 틈을 이용하여 통과시키려는 것은 매우 비겁하고 나쁜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탄핵 받을만한 죄를 지었다면 탄핵되어야 합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위협 받는 것에 비하면 대통령 탄핵은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탄핵이나 일반인의 사소한 범죄라도 죄형법정주의나 기소법정주의 원칙을 따라 기소와 재판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기소법정주의는 기소하기에 충분한 객관적인 혐의가 있을 때는 반드시 기소를 해야만 한다는 것으로 기소편의주의에 대응하는 용어입니다. 이번 국회의 탄핵 소추는 다분히 기소편의주의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죄형법정주의는 형벌이 증오나 보복 심이나 미움이나 여론에 의해 영향을 받지 못하게 하고 법률이 규정하고 있는 만큼만 벌을 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객관적 사실이나 법보다 각자가 어떻게 느끼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대정신에 많은 사람들이 함몰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자기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이런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너무나 쉽게 의로운 자가 죄인이 될 수도 있고 죄인이 의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법이 무시되고 전통 가치가 해체되는 현상의 사상적 배후에는 상대주의가 있고 그 상대주의 배후에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무신론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치나 교회가 다 같이 상대주의의 세례를 받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상대주의가 성경이나 법이나 어른의 권위는 물론 모든 보편 가치를 해체시켰기 때문에 내가 좋으면 옳고 내가 싫으면 나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회적 혼란은 점점 더 극심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이 같은 시대정신을 간파하고 대처해야 합니다. 법과 사회적 약속과 보편 가치를 지키는 일에 교회가 본이 되어야 하고 어른과 지도자를 존경해야 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면에서도 교회는 본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가치질서의 파괴가 교회와 사회에서 동시에 저질러지고 있습니다. 보편 가치를 부정하는 주범은 상대주의입니다. 상대주의는 모든 것을 상대화 하지만 상대주의 자체는 절대 상대화 하지 않는 교만과 모순을 범하고 있습니다. 절대 상대화 할 수 없는 분은 하나님 한번뿐입니다.

 

모든 문제의 궁극적 해결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지만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경건과 성숙된 국민의식으로 노력한다면 어느 정도는 혼란을 막을 수도 있고 개선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사려 깊은 성경적 분별력으로 혼란한 현실에 부화뇌동할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가치 질서 회복에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합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 3:1-5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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