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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페이지 정보

짐보 (96.♡.♡.163)2017-05-19 12:04

본문

데살로니가 교회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Hallowed be thy name.]

아멘 넷의 꿈, 두 번째

요엘 선지자의 예언과 꿈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이미 구원을 얻었으니
늙은이는 꿈을 꾸며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을
사도행전 2:16-18 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But this is that which was spoken by the prophet Joel;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And it shall come to pass in the last days, saith God,
I will pour out of my Spirit upon all flesh:
and your sons and your daughters shall prophesy,
and your young men shall see visions,
and your old men shall dream dreams: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And on my servants and on my handmaidens I will pour out in those days of my Spirit; and they shall prophesy:]

요엘의 예언처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스도의 고귀한 사랑으로 성도를 인 쳤으며,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으로
예수님과 성령님은 하나 되시어
성도들과 하나 되기를 원하셔서
하늘에서 뜻이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뜻이 이루어지는 하늘나라,
하늘나라 모형의 신앙의 공동체, 교회가 세워졌다.
그러나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간 자들은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산 교회’ 라
언성을 높이며,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며 교인은 각 지체라 한 몸이라
음성을 높이면서도
교인을 나누어 성직자와 평신도로 직분의 계급을 나누었고
복음을 선교의 의무로만 치장하여 복음이 오르지 선교인양
세상과 거룩한 교회의 땅의 건물로 나누어
스스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포기한
교회의 의무와 충성과 복종의 열심을 강요하지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세상을 나누고
만인을 위한 복음을 나눈 분리론자 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하면서
유유상종(類類相從) 같은 무리끼리인 분열론 자들이 되었고
그들이 현대판 바리새인이며 서기관들임은
똑같은 분리론자들이기 때문이다.
일말(一抹)의 신앙의 양심이 남았다면 자신과 주위를 돌아보라.
오늘날의 교회가 진정한 신앙의 공동체 하늘나라의 모형인가?

그러기에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물음,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물었을 때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누가복음17:21]
그 물음, 바리새인들의 물음은
그 물음은 오늘날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향하는
현대판 바리새인들의 물음이라
오늘날 교회가 천국의 모형이 되었는가?
서로 복음의 진리로 사랑하며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이며 삶으로 그리스도인의 본을 보이는 성도들인가?
예수님의 대답은 오늘도 똑 같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믿음은
믿음의 분량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꿈을 꿀 수 있어 그 분량이 힘이라서
온전한 힘을 소유한 자는 없지만 구원에 감사 하고 한마음이 되도록
같이 신앙생활이 하나 되도록 노력하고 인내하면
너의 굶주림이 나의 아픔이 되어 하나 되고
너의 궁핍이 나의 고통이 되어 나누어 하나 되는 공평은
공평한 하나님을 따르는 한 지체된 자녀의 의무이자
이것이 진정한 축복인 것은
하나 됨의 축복이 평안이며 감사라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하늘나라의 시작이며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복음의 역사이기에
오늘날 하늘나라의 상(賞)만을 바라보라 주장하는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간 자들은 진정한 하늘나라를 바라보지 못하기에
그들의 물음, 언제 하늘나라가 임하나이까?
언제 주께서 재림하시는가?
세상의 종말을 언급하면서
세상은 천국에 가기 위한 목적의 방편으로만 생각하는
종교적으로 굳어진 마음에 복음의 의(義)를 자신의 의(義)로 불의로 삼아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물으나
예수님의 대답은 똑 같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그래서 성도들은 성경을 통하여 장차 오실 예수님을 예언하고
장차 이루어질 하늘나라를 예언하며 하늘나라를 닮은 모형
신앙의 공동체를 이 땅에 이루는 꿈,
그리하여 하늘에서 이루어진 하늘나라가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복음,
모두가 하나 되는 복음,
그 구원의 온전한 성취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면서
“다 이루었다” 하신 말씀으로 이미 성취되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When Jesus therefore had received the vinegar,
he said, It is finished:
and he bowed his head, and gave up the ghost.
요한복음 19:30]

그러기에 성도는
구원의 온전한 성취를 이룬 자를 가리키며
그런 성도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꿈을 꾸며 이상을 바라보기에
오늘 날 성도라면 당연히 이루어질 온전한 하늘나라를 꿈꾸며
이 땅의 이상(理想), 그리스도의 나라를 만들려는 자들이다.

두 번째 꿈은
여기 게시판은 누구나 참석할 수 있어 아멘 넷의 꽃이라 할 수 있었는데
어느 모임이든 시작과 진행은 전통을 만들 듯이
게시판은 전통이 정립(定立)되는가 싶으면 분란이 일어 소란이 일어나고
잠잠해 지면 또 소동을 일으키는 사람이 등장하여 요란하고
관리자까지 두는 상황도 되었으나 인위적인 사람의 관리는 한계가 있어
참석자들이 모두 동참하여 적극적인 질서를 지키고 차례를 지켜
자체 정화하는 풍토의 장이 되어야 하는데 그 만한 진리로 질서를 지킬
능력이 있을까 회의가 든 적이 많았다.

진리는 질서라서
질서를 잃은 진리를 주장하면
이미 진리는 혼동이 되어 혼돈된 마음에는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기에 분란이 되어 진리로 하나가 되지 못한다.
어찌 보면 이곳이 세상의 한 면, 한 집단 같이 친분관계와 호감으로 좌지우지
휘두름을 보이며 직분을 내세워 자신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글을 볼 때마다
한숨을 쉰 적도 많아 도대체 믿음을 무엇이라 정의하기에
이 신앙의 장에서도 밴댕이 소갈딱지만도 못한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
수 없이 많았고 그 반면에 정의롭게 글을 쓰다 사라진 사람들도 많았다.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도 없기에 완벽한 공동체도 없지만
완벽하신 하나님의 자녀로 완벽함을 지향하고
완벽하신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세상의 빛이 되어 하나님의 공의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썩어지지 아니할 소금으로 세상의 정의를 세워야 하는데
굴절된 빛을 빛이라 하고
쓸모없는 소금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그리스도인이라 자청하는 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간 자들은 늘 요란하고 그런 자들의 모임은 자체 정화능력을 잃어
서로 분열하여 흩어지고 그런 구성원은 이미 세상에 동화하여
힘을 잃어 흔들리다 뿌리까지 뽑혀 진다.

이곳 게시판은 언제부터 인지 대부분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다.
(물론 참여 하지 않는 젊은이들도 있겠지만)
곧 은퇴 후 노인아파트로 가실 분, 은퇴 하신 분
한국으로 귀국을 예정 하신 분 등
대부분의 분들은 안정된 삶을 원하고 자녀들과 살기를 원치 않으시는 분들이라 은퇴의 삶에 소일거리를 찾고 보람된 일을 구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

본인도 일찍 조기 은퇴를 계획하였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아 어떻게 할까 궁리를 하다
도시와 좀 떨어진 동네에 공동으로 집을 장만하여
구입비는 경제적인 사정에 따라 참여자 형편대로 내고
같이 살면서 신앙 생활하는 공동체를 오래 동안 생각해 보았다.
중요한 것은 신앙인의 공동체인 만큼 새로운 초대교회의 형태가 되어
가능한 서로의 개인생활을 보장하면서 개인의 사정에 따라 여력을 다하여
공동체다운 공동체가 되려면
의사 형태는 공동모임으로 간단한 회칙이 필요하겠고 회칙과 탈퇴의 방식은
참석자들이 의논하여 만들고 지도자는 본인이 1년만 맡고 돌아가면서.
직분은 모두 형제자매로 특별한 직분은 없고 예배는 주일날 한 번
새벽예배 수요예배 없는 예배는 생활이 예배가 된 행동거지가 된 예배 등
더 구체적이 세부사항은 생략하더라도 참여자의 연세를 고려하면
장소는 치매 등 병치 례를 고려하면 양로원와 병원이 가까운 곳으로
농장 형태로 육체적인 노동과 가격이 싼 농장을 만든다면
정부의 혜택을 받아 세금을 면제받을 수 있고 거동이 불편한 분을 위해
방문 간병인이 가능한 시니어 프로그램을 갖춘 단체와 양로원, 병원과
의사 등으로 협력 및 조인할 수도 있고
아멘 넷과 연결하여 신앙의 장으로 연결고리도 될 수 있고
할 수 있는 일은 셀 수 없이 많은
수많은 가능성이 있다.

인생을 나그네라 한다.
나이가 들어 은퇴를 하게 된다면 더 현실감으로 다가와
성경의 나그네의 의미를 세월이 덧없음에 찾을 수 있겠지만
여기 게시판에서도 죄송하지만 세상에 온 순서는 있지만 떠날 순서 없이
다 떠나야 하고 오늘날 글을 쓰고 댓글 다는 분들의 이 모임도 소수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라 누가 먼저 떠날 수도 있기에,
글을 쓰고 댓글을 올리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글을 쓰는 것처럼
일상에서 말을 할 때도 하나님 앞에서 한다는 신앙을 가지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진실한 삶이 될 텐데,
이 글을 쓰면서도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고 부족한 자 인가
한숨을 쉬고 탄식을 할 때도 많아 겸손이 아니라 현실은
못났으므로 힘을 얻기 위하여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면서 낮아지면서
힘을 얻기에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예수님처럼 낮아져서 겸손한 자세가
되면 그때 성령님께서 인도하심으로 공급하는 힘을 받지만
그러한 자세의 전환만으로 힘을 얻는 한계, 그 한계는 뚜렷하다.
왜 그럴까.
왜 데살로니가 성도들처럼 되지 못할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고
현대교회가 갖는 가장 취약(脆弱)한
허영에 물든 믿음과 사치한 신앙이 맹점은
순수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깊이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를 알기 위하여 다시 성도들과 작별인사를 한 사도 바울을 보면
그가 얼마나 간절하게 당부하고 소망한
‘마음을 같이한 평안’
‘하나님의 자녀로의 평강’ 인지 알 수 있다.

평강은,
하나님은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시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 하라
모든 성도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Finally, brethren, farewell. Be perfect, be of good comfort,
be of one mind, live in peace;
and the God of love and peace shall be with you.
Greet one another with an holy kiss.
The grace of the Lord Jesus Christ, and the love of God,
and the communion of the Holy Ghost,
be with you all. Amen. 고린도 후서 13:11-13]

‘Finally, brethren, farewell.
끝으로 형제여 잘 지내길’
farewell, Fare you well,
잠시 떨어져 있을지라도 형제여 잘 있기를.
Be perfect, (성령님으로) 온전하며
be of good comfort, (성령님의)위로를 받으며
be of one mind,(한 성령님 같이) 한 마음으로
live in peace (성령님께서 주시는) 평안으로.
and the God of love and peace shall be with you,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형제들과 함께 하리니.
Greet one another with an holy kiss,
서로 거룩한 성령님 안에 한 가족으로 입맞춤으로 문안하라.
All the saints salute you, communion of the Holy Ghost, be with you all,
성령님과 교제로 모든 성도의 문안이, 모두 같은 형제들과 함께
성령님께서 형제들과 함께 하길.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마음이 하나 되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하나 된 신앙의 공동체가 되길 소망했다.

“끝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이 하나 되어 평안에 거하라”

내 꿈이 하나 된 온전한 신앙의 공동체에 속한
한 신앙인이 되고 싶었다.
모습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더라도
형제자매가 된 신앙의 공동체가 될 수 있다면,
그래야 온전한 성도가 된다고 성경은 이를 기록했고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러나 하나 되지 못하면 서로가 서로의 가시가 되어
능력을 잃고 성령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을 얻지 못해
서로가 가해자이며 피해자인 종교적인 현상은 계속되어
분리론자를 생성(生成)하고 믿음과 신앙이 분리된 찢어져 갈라지는
종교적인 분열이 된다.

다른 나그네의 의미는 자신을 낮추고 자신의 옛 모습을 버리고
소유라는 지적 물질적인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포기 할 수 있는 용기를
믿음이라 부를 수도 있지만 용기는 먼저 자신의 자신됨의 포기로
공급하시는 힘을 받는 능력이 됨은
믿음은 용기가 필수이며 성령님께서 용기를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자신’ 에서 ‘우리’ 라는 공동체가 되어
기도와 생활이 일체된 능력이 성령 충만 이라
신앙의 힘을 합치고 믿음이 어른 된 본을 보이는 은퇴 후의 생활
늙어도 신앙의 활동을 할 수 있는 수많은 일들과
꿈과 이상이 있겠으나 가능할까?
동참할 수 있는 순수함이 있을까?
오래 동안 생각해 왔고 이제 이곳에서 가능성은 멀어졌고 역량(力量)이 없음을 익히 알고 있기에 다른 신앙인의 모임에서 가능성을 스스로 타진해보았으나 힘든, 어쩌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굳이 생활의 공동체를 만들지 않아도 같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많으나 신앙이라는 의미 자체가 하나 되지 못하면 동력(動力)을 갖추지 못해 분열하여 종교적인 겉치레의 의식만 남기에
꿈을 꾸는 자, 이상을 보는 자는
성령님께서 영혼의 눈을 뜨게 하시기에
눈이 있는 자는
하나 되지 못하여 분열된 오늘날의 모습이 보인다.

복음의 역사상 수많은 교단으로 분열하고 또 각자 개 교회 파로
이렇게 분열된 교회가 언제 어디에 있었는가.
이렇게 교회가 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는가.
이 모습이 성경의 교회 모습이란 말인가.
이 모습을 일생을 통하여 보고 있다.
허물어지고 황폐하여진 신앙이란 공동체의 모습을
이런 모습을 보기가 역겨워 지겨워 왜 보여주시는지 원망할 때가 많았다.
그 모습은 예레미야가 본 모습, 슬픔이었다.
자신의 시대의 정치, 종교적 권세들에 저항했고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였고 멸망을 지켜보아야 했던
눈물의 선지자의 슬픔이
예레미야 애가(Lamentations of jeremiah) 가 되었다.
애가는 슬픔에 잠긴 재 추신서(P.S +s, PPS)로 히브리어로 ‘에카’ 는
‘어찌할꼬’ 로 본문의 시작하는 단어를 따랐으며 헬라어로 기록된 70인 역의
제목은 ‘큰 울음’ 탄식 시’를 의미하는 트레노이(threnoi)로
예루살렘의 몰락을 슬퍼하면서 동시에 생존자들을 비난하였고
또한 그들에게 가르침과 희망을 주었다.

글을 쓰면서,
이제 작별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허공을 치는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로 사랑을 말하나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어
이미 돌아누운 이 시대 신앙의 자화상...
슬프다.
하늘나라는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어디서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외식하는 자들이여
침에 젖은 혀로
함부로 주님의 피 삯으로 산 교회라 하지마라
현대판 바리새인들이여.
입술에 침이 마르기전
‘주여 주여 어서 오시옵소’ 하지마라
현대판 서기관들이여
회칠한 무덤들이여.

댓글목록

도봉옥님의 댓글

도봉옥 118.♡.♡.174

어떤 크리스챤이  처음부터 잘못된 마음을
먹었겠습니까  성령으로 시작하였으나
끝은 육신의 정욕으로 인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늘  깨어서 말씀을 부여잡고 자신의 영혼을
죄의 유혹으로 부터  지키는데  게으르지 말아야 할것입니다
얼마전 한국의 대형교회의 원조격인  여의도순복음교회 명예담임 목사인 조용기씨의
사건을 보면서 반면교사를  삼아야  할것입니다

짐보님의 댓글

짐보 96.♡.♡.163

즐거운 하와이 여행 되었습니까.

성령으로 시작하여 육으로 마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처음부터 가짜 성령의 사람들도 있음을 성경에 쓰여 있지요.
다음 글에 쓸 이야기 인데, 유다서 1장을 보면
거짓 교사들에 대하여 쓰여 있습니다.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하는 자 들” 이라 합니다.
육체를 더럽힌다는 의미는 육체를 가리켜 관능적이고 육욕적인 자들이면서 세속적인 물질적인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권위와 영광을 말하지만
실상은 가인의 길에 행하였고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합니다.
조용기 목사를 한국의 위대한 목사로 칭송하고 따른 수많은 자들,
그들이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간 자들입니다.
유다는 첫 장 1장에 거짓 교사를 언급하는 목적이 있으며
그런 자들은 분열하며 세상에 욕한 자라
성령이 없는 자, having not the Spirit. 라 합니다.

저는 한국과 해외의 대형교회가 사라지는 걸 예측합니다.
오래가지 못함을 알고 있습니다.
사라질 겁니다.
분열하고 육에 속해, 세상에 속해, 세상에 힘이 없어
서로 싸우고 욕심으로 편을 가르고 모두가 하나님의 편이라 우기지만
이미 그들은 세대와 세대를 연결해 주는 복음의 의를 버렸고
자기들이 천년만년 갈 것 같으나 스스로 분란을 일으켜 자멸해 갈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공의로 행해야 하는데
정직하지 못해서, 대형교회만이 아니라 크기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공의로 행하지 못해 망가져 가면서 흩어지고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정직만 했다면, 하나님 앞에서 언행을 하듯 했다면
엉터리 성령론으로 몰려간 자들,
순수한 믿음의 맛을 잃어버리고 잡탕 양념의 맛에 물들은 자들이
정의로울 순 없습니다.
이 모습이 신앙의 공동체의 모습인가...
그 길에서 돌아서지 못한 다면
외식을 멈추지 못한다면
대부분의 교회는 교회 간판만 남고
정의롭지 못하여 세상에 영향을 주는 힘이 없어
교인은 실망하여 떠나고
교인은 늙고 젊은이가 없어 힘이 없는 양로원 화 될 겁니다.
기도할 때입니다.
깨어 있는 자, 현실을 냉정히 바라보는 성령님의 사람들이
깨어 개혁하지 않는 다면,
살을 오려내는 아픔으로 철저히 돌아서지 못한다면
교회사의 역사에 비판의 대상이 될거고
복음의 역사에 오명을 남길 겁니다.
성령님으로 깨어있는 자들이 피 눈물로 기도할 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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