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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바울 선교사 "이슬람은 이단중 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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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ㆍ2008-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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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뉴욕교계에서 소개되어 이슬람에 대한 큰 경고를 이끌어낸 최바울 인터콥 본부장을 내년에도 만날수 있다. 내년 2월 7-8일은 순복음뉴욕교회의 선교집회를 인도하며 2월 10-11일에는 뉴욕목사회 주최 세미나를 인도한다. 다음은 최바울 선교사의 이슬람에 대한 현황과 경고가 담긴 글이다.

"이슬람 국제운동과 글로벌 지하드"

0. 머리말

9.11사태이후 세계는 종교갈등으로 곤두박질하고 있다. 4천년 전 예루살렘 믿음이 조상 아브라함의 가장에서 시작한 이삭과 이스마엘의 형제갈등이 역사적으로 증폭되고 또 증폭되어 급기야 지구적 갈등으로 팽창한 것이다. 따라서 9.11사태는 1948년 이스라엘 민족의 고토로의 복귀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계속되는 갈등이 서구 기독교세계와 이슬람 세계의 갈등을 심화시킴으로 나타난 결과로써 오랜 역사적 맥락에서 발달한 종말론적 지구 영적전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18세기 사우디아라비아 와하비 Wahabi, 리비아 사누시 Sanusi, 수단 마흐디 Mahdi 집단에서 시작된 이슬람근본주의 운동은 1900년대 이후 파키스탄 알 아프가니 Al Afghani, 무함마드 압두 Jihad, 라시드 리다 Rashid Rida 등에 의해 글로벌 이슬람국제운동으로 발달하였다. 이후 이집트의 알 반나에 의한 이슬람형제단과 진화된 하마스, 헤즈볼라, 알카에다, 그리고 파키스탄 마우두디의 자미 이슬라미와 진화된 탈레반 등 급진적 이슬람은 국제적으로 확산되었다. 1991년 이라크전쟁 이후 이슬람국제운동은 글로벌지하드 운동으로 급진하면서 급기야 9.11사태를 촉발시켰다. 그리고 온건이슬람은 영향력이 약화되고 급진적 무장 이슬람 전사그룹이 세계이슬람의 리더십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글로벌지하드의 기치를 높이고 있는 이슬람 세력은 하마스(팔레스타인), 아스바트 알 안사르(레바논), 헤즈볼라(레바논, 시아파 무장단체),  알 지하드(이집트), GIA(알제리, 모로코), GSPC(알제리), 안사르 이슬람(이라크), 타우히드 알 지하드(이라크), 알카에다(아라비아, 파키스탄), 무함마드의 군대(파키스탄, 인도), 라쉬카리 장비(LJ, 파키스탄), 제마 이슬라미야(인도네시아), IMU(우즈베키스탄) 등 글로벌 지하드를 전개하며 이슬람 무장세력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으며 현재 55개국에 네트워크가 가동되고 있다.

이란 호메이니 혁명이후 이슬람급진세력은 자신감을 확보하고 국제이슬람운동에 박차를 가했다. 그들은 지하드의 실천을 강조하면서 청년 무슬림들을 동원하고 있다. 현재 알카에다 여계 2만여 명이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자살폭탄을 자행할 준비가 되어 알카에다 지도부의 명령에 대기중이다.

이슬람 무장세력은 경쟁적으로 글로벌지하드에 헌신하고 있다. 1993년 알제리, 모로코의 GIA는 1993년 100여명의 유럽인을 살해하여 북아프리카 글로벌지하드의 리더십 자리를 확고히 했으며, 이집트 급진세력은 1997년 룩소 방문 외국인 관광객 58명을 참살하면서 명성을 떨쳤으며 알카에다는 9.11사태로 글로벌지하드의 리더십을 장악하며 승승 장구하고 있다. 제마 이슬람미야는 2002년 자카르타 호텔을 폭파하여 202명을 알라신의 이름으로 참살하였다.

그리고 지금 이슬람국제운동은 2005년을 기점으로 동아시아 한국으로 집중하고 있다. 현재 한국교회가 전세계에 파송한 선교사가 2만명 여명인데 반해 한국에 들어온 이슬람선교사는 2-3만 명에 달한다. 한국 내 이슬람세력은 진보연대나 전교조 등 한국 좌파세력과 공조하여 이슬람운동을 매우 성공적으로 전개해 나가고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 등 중동 석유부국은 해외 포교에 전력하고있다. 사우디아라바아가 사용하는 1주일 포교예산이 세계교회가 1년 동안 지출하는 해외선교비와 맞먹는다는 사실은 그 심각성을 잘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에는 서울대와 대전 KAIST에 학생들 중심의 이슬람 예배가 정기적으로 실시되고 있으며 이슬람은 국내 대학에 대대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슬람세력은 20년 내에 세계 칼리프제국 건설을 목표로 맹진하고 있다.

1. 이슬람저항운동과 종교부흥

1991년 사회주의 체제가 해체되는 과정을 바라보면서 자유진영에 속해있던 많은 사람들은 이제 자유진영이 지배하는 단일체제로서의 세계는 평화로울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 부풀어있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호언했던, 이른바 갈등과 반목의 역사의 종말을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국제관계를 바라보는 많은 전문가들은 이러한 낙관적 기대와는 다르게, 세계는 미국, 유럽연합, 브릭스 국가들 등 새로운 다수의 강자 중심으로 다원화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역사적 관점에서 이 사태를 주시하는 또 다른 연구자들은 이미 유일 초강대국으로 성장한 세계제국 미국에 대하여 새롭게 부상할 반대진영이 누가 될 것인가에 관심을 집중시켰다.  

한편 소련 해체이후 서방의 지도자 미국 입장에서 세계의 세력의 다극화를 방지되어야 하며 유일한 초강대국으로써 그 위치를 지키며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는 계속 지속되어야만 했다. 또한 미국은 미국의 주도력을 상실한 세계의 평화는 결코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무엘 헌팅턴(Samuel Huntington) 이 지적한 것처럼, 유구한 유교전통과 강력한 중화주의의 동양 최대의 제국 중국은 미국에게 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철저한 자유민주주의와 정교분리 위에 세워진 미국의 입장에서 이슬람 종교법 샤리아가 지배하는 세계 이슬람종교 공동체 건설을 목표로 하는 이슬람종교 세력 역시 도저히 타협하거나 협상할 수 없는 반문명적 저항세력이 아닐 수가 없다.

미국은 힘으로 반(反)문명 저항세력 이슬람을 제어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이슬람의 글로벌 저항운동은 오히려 폭발적인 세계이슬람 부흥을 촉진시키고 있다. 1978년 이란 호메이니의 종교혁명이나 1991년 걸프전쟁은 미국과 이슬람 종교집단과의 관계에 대한 이와 같은 우리의 막연한 인식을 보다 분명하게 해준다. 이란 지도자 호메이니는 당시의 초강대국 미국과 소련을 동시에 부정하면서 이슬람 종교혁명을 통한 반미, 반소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그 결과 이란은 비록 이란-이라크 중동전쟁에서는 패배했으나 이슬람종교는 전 세계에서 폭발적인 부흥을 경험하게 되었다.

세계지배 칼리프제국 건설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는 아라비아 반도 이슬람근본주의 집단들의 세계적 제국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이 오히려 갈수록 이슬람의 종교부흥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9.11 사태나 걸프전쟁에서 성전holy war, 즉 지하드Jihad를 내세우며 미군에 무력 대항했던 이라크의 알카에다는 군사적으로 미국에게 패배하였으나 정치적으로는 승리하였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알카에다는 조직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더욱 팽창시켰으며 이슬람 세계에서 리더십은 더욱 더 강화하였던 것이다.

9.11 사태 발발 직후 미국은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에 대한 무력 보복공격을 전격 감행하였다. 이러한 무력공격은 전 세계 이슬람의 글로벌 저항운동과 부흥운동에 불을 붙였다. 파키스탄에서 대규모 반미 시위가 일어났으며, 이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북인도 카슈미르, 팔레스타인, 이집트, 방글라데시, 나이지리아 등 전 세계 주요 이슬람 국가들 내에 대규모 반미 시위가 연이어 발발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미국 예일대 역사학자이며 미래학자인 폴 케네디Paul Kenedy의 경고는 절묘했다. 즉, 미국의 보복응징은 보복의 악순환으로 이어져, 건국 이래 미국이 누려온 본토의 평화에 종말을 고할 것이라는 것이다.

2001년 9.11 사태 직후 미국 정보기관은 알카에다Al Kaeda 조직이 전 세계 30개가 넘는 국가에 방대한 조직망을 가지고 있으며,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MB), 필리핀의 아부사야프, 소말리아의 알 이티하아드, 인도네시아의 제마 이슬라미(JI), 체첸 이슬람 반군 등 다른 이슬람 무장조직과 연계되어 있다고 발표하였다. 1991년 미국의 이라크침공과 사우디아라비아 미군기지 건설이후 이슬람 저항운동은 10년 동안 글로벌 이슬람 저항운동으로 급속히 발전한 것이다. 국제화된 이슬람 저항운동의 실상을 세계인이 목도하게 된 것이다. 이슬람 무장조직은 지금은 60여 개 국가로 확산되었다.

세계는 자유 공산 두 진영 간 사상의 대결에서 종교와 문명을 기축으로 하는 새로운 냉전New Cold War으로 전이된 것이다.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이러한 상황은 하나님의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4천 년 전 예루살렘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시작된 이삭과 이스마엘의 형제갈등이 지구적으로 팽창을 된 것이다. 즉, 이것은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리는 종말론적 현상인 것이다.

2. 서구문명의 한계와 포스트모던 글로벌 저항운동  

9.11 사태 이후 세계인이 목도한 바와 같이 급진 이슬람세력이 주도하는 반미 및 반서구 저항운동은 극단적이며 또한 국제적 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다. 비록 이들 급진세력은 그 수가 많지 않지만 이슬람 세계에 무시할 수 없는 리더십과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최근 이슬람권에서 나타나고 있는 반서구 저항운동의 양태가 과거 국제사회의 다른 유사한 저항적 정치운동 형태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작금의 이슬람권의 서구세력에 대한 저항운동은 과거 걸프사태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과 같은 특정 사안에 대한 국제적 이해관계만을 반영한 국지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것이다.

첫째는 서구에 대한 이슬람권의 글로벌 저항운동은 이슬람 출범이래 과거 역사 속에서 십자군 전쟁을 위시해서 끝없이 갈등해 오면서 형성된 고질적인 역사적 반목, 즉 역사적 경험에 따른 불신감과 적대감에 뿌리를 두고 있다. 둘째는 서구(기독교)문명과 이슬람문명이 둘 다 적어도 종교적 배경으로는 그 기초가 유일신 사상에 기초한 보편진리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격상 두 집단이 힌두교처럼 자국 영토 범주 내에 머물러 있지 않고 적어도 종교 이데올로기로는 전 세계에 대한 자기 종교 세력 확장, 즉 세계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편주의 이념을 가지고 세계화를 추구하는 두 진영 간 긴장과 경쟁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러한 점은 서구문명에 대한 무슬림 엘리트들의 일반적 인식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지난 2-3백여 년 동안 서구 진영에 의해서 주도된 근대화의 결과를 가까이서 보고 평가한 무슬림 엘리트들로서 그 결과에 대한 평가가 매우 부정적이고 확신적이다. 개발지상주의 및 성장지상주의에 입각한 서구적 근대화는 결국 지구적 환경파괴, 인간성 상실, 인간 소외 등으로 이어져 서구적 발전개념으로는 발전의 한계, 성장의 한계에 도달해 있다는 제로섬 성장 개념에 대한 세계 지성사회의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서구문명이 한계에 도달했다면 그 대안은 무엇인가? 1400년 동안 경쟁관계에 있던 또 하나의 보편문명으로써 세계화 및 세계적 확장을 추구하는 이슬람 문명에 대한 무슬림 지식집단의 기대는 우월감에 젖어있는 서구인들에게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따라서 서구에 대한 이슬람권의 저항운동은 물질문명에 대한 정신문명의 도전적 성격을 띠고 있다. 미국과 이슬람권의 갈등은 현재 진행되고 있고 또 장래에 있을지 모르는 미국과 중국 혹은 미국과 EU의 경쟁 또는 대립 관계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 되고 있다. 서구문명은 물질문명으로써 그 한계에 봉착해 있다.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암시하듯 근대성modernity은 그 한계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인본주의, 물질주의, 경제지상주의, 과학지상주의로 묘사되는 근대주의modernism는 인류공동체가 보편적으로 추구해야 할 진리가 아니고 하나의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바야흐로 세계는 이데올로기로써 모더니즘을 거부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의 새로운 시대를 구현해 가고 있는 것이다.

모더니즘이 ‘실증되지 않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퇴출시켜버린 영성은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매우 중요한 영역이 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대부분의 종교권에서 확산되는 종교적 근본주의 운동이 암시하듯 세계는 지성에 대한 영성의 반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비종교권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 종교권에서는 근본주의 운동으로 대변되는 이와 같은 새로운 물결은 이슬람근본주의 운동이 단순히 이슬람 종교에 국한되는 현상이 아니라 범지구적 포스트모더니즘 현상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한편 급진적 이슬람주의자들은 갈수록 더욱 더 증대되는 세계의 서구화, 즉 서구문명의 팽창과 서구세력의 패권주의에 직면하여 그 대응전략을 급진적 노선으로 전환하고 있다. 과거에는 밀려오는 서구세력에 대하여 이슬람 자기 개혁을 통해서 상대적 우위를 확보하려고 노려했던 온건 이슬람주의자들은 그 결실이 없게 되자 세력을 상실하게 되었으며 지난 반세기 동안 새로운 급진세력이 이슬람 부흥운동의 방향을 급진적 행동주의로 전환시키게 된 것이다. 이는 갈수록 범이슬람주의 운동 혹은 이슬람부흥운동이 종교근본주의 성격을 강화시켜 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지하드의 확대와 이슬람 글로벌화를 통하여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 무슬림의 봉기, 즉 지구적 인티파다(Intifada)를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확장되는 세계 자유시장경제 체제에 따른 무한경쟁의 확대와 이에 따른 빈익빈 부익부의 심화 및 세계 프롤레타리아 민중의 폭발적 증대, 그리고 과거에는 특수개념 혹은 예외개념으로 인식되었던 지하드가 점점 세계 무슬림들 사이에서 이슬람 종교의 보편원리로써 인식되어 갈 때, 세계 57개 이슬람 국가 내에 증대되는 프롤레타리아 무슬림 민중의 봉기는 갈수록 세계를 불안정하게 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의 증대는 저항과 폭력을 심화시킬 것이며 심리적 박탈감의 심화는 테러를 정당화시켜 나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테러는 증오심을 먹고 자라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미국은 힘의 논리를 앞세워 이슬람 저항운동에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장차 57개 이슬람 국가들뿐만 아니라 비서구권 전체의 심리적 저항을 받게 될 것이고, 이들을 통제하기 위한 비용은 눈 덩이처럼 불어날 것이고 미국 경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경제가 경쟁과 갈등의 주체라고 주장하며, 정치학자들은 이념과 현실정치를 강조한다. 그러나 내세에 기반을 둔 종교의 절대주의적 특성과 집단적 종교 감정은 정치 및 경제 논리를 초월한다. 현대 이슬람 세계에서는 더욱 더 그러하다. 자살공격하기 위해 수천 명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하마스(Hamas)나 수만 명이 대기 중인 알카에다 이슬람 무장그룹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는 별개 문제이다. 유의할 것은 9.11 사태를 주도한 대부분의 알카에다 요원들이 유럽의 명문대학에서 유학한 엘리트들이라는 사실과 이들은 배후에서 돕고 있는 사람들이 이슬람 지식인 및 학자들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는 자유주의적 견해를 가진 학자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 될 것이다.2)

대표적인 이슬람 근본주의 그룹인 이집트 하산 알 반나(Hasan al-Banna, 1906-1949)가 1927년에 창설한 무슬림 형제단과 인도의 저널리스트이며 이슬람신학자인 마우두디(Sayyid Abu 'l-Ala Mawdudi, 1903-1979)가 주도했던 자마아티 이슬라미 등 역시 그러하다. 현대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은 근대 서구 물질문명의 역사적 팽창에 따른 대응전략에서 나온 것으로 다분히 총체적 성격을 띠는 글로벌 저항운동 및 문화혁신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서구문명에 대한 대안운동 및 대항운동의 성격이 짙게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슬람세력과 서구세력의 갈등은 단순히 힘의 대결로서의 문명의 출동이기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세계관 대결의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3) 더불어 작금의 이슬람의 글로벌 저항운동은 포스트모던 현상과 맥락을 같이하는 문명사적 현상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리처드 릴리 전 미국 교육장관과 폴 사이먼 전 상원의원이 이끄는 미국의 저명 정치인들과 교육자들로 구성된 특별연구팀은 2003년 11월 8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미국의 외부 세계에 대한 무지가 미국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4) 1988년 서울 올림픽 기간에 세계 저명학자들이 참가한 인류평화에 관한 국제학술회의에서 터키 학자 보즈쿠르트 규벤치는 장래의 세계문제는 동양이 서양을 아는 것보다 서양이 동양을 알지 못한다는 데서 기인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3. 지하드와 종교테러리즘

아랍어로 성전聖戰, 지하드jihad는 "노력하다, 투쟁하다"라는 아랍어 동사 jihada에서 유래한 동명사이다. 지하드라는 아랍어 단어는 이슬람 이전에는 "투쟁, 노력"의 뜻이지만 이슬람 경전 쿠란에서는 "알라를 위한 투쟁, 알라의 길에서 투쟁(Jihad fi sabili Allah)"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쿠란에서 투쟁은 물리적 투쟁을 포함한다. 이슬람 종교의 콘텍스트에서는 넓은 의미로 악에 대하여 또는 이슬람종교 및 울레마umma(이슬람공동체)를 위해 투쟁하는 것을 의미한다. 더불어 지하드는 이슬람에서 불신자를 무슬림으로 개종시키는 노력과 이슬람종교의 부흥을 위해 노력하는 것 등도 포함되는 포괄적인 의미로 확대 적용되기도 한다. 이슬람법 샤리아(shari'ah)에서 지하드는 불신자(카피르 kafir)들에 대항하여 전개하는 무장 투쟁을 의미한다.

또한 지하드는 소(小)지하드와 대(大)지하드로 구분된다. 소지하드(the smaller jihad)는 칼을사용하는 지하드(jihad of the sword)이며 대지하드는 평화적 지하드를 의미한다. 최근에는 과거 유럽 기독교세력이 사용하던 십자군 전쟁(crusade)과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 현대 복음주의 기독교 교회들은 중세시대 유럽교회에서 사용하던 무력에 의한 십자군 전쟁의 개념을 비성서적인 것으로 부정하고 있다.

1)지하드의 기원

지하드의 기원은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무함마드는 상대적에 대하여 알라신의 이름으로 지하드, 즉 무력 투쟁을 끊임없이 전개하였다. 물론 무함마드의 이러한 무력투쟁은 7세기 당시 상황을 고려해본다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14-5세기까지도 서유럽뿐만 아니라 동유럽 기독교왕국들과 기독교 교회들 대부분은 침입하는 외세에 대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무력전쟁을 감행했었다. 뿐만 아니라 최근 근대에서도 영국 및 미국인들은 군일들을 전쟁터로 보낼 때 하나님의 이름으로 악에 대항하여 무력전쟁을 감행하는 하나님의 군대로 생각하곤 했었다. 이러한 전통은 지금도 미국인들에게 깊게 뿌리잡고 있어서, 9.11사태 직후 미국 부시 대통령은 서방기독교 세계를 향해 이슬람 테러집단을 향한 "십자군" 참여를 공개적으로 독려했다가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특히 무함마드의 입장에서 볼 때 당시 아라비아는 유목민 전통의 사회로써 부족 간에 끊임없는 무력 투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당시 아라비아 부족들 사이에서 부족 간 물리적 전쟁은 매우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한 부족집단에 속한 한 사람이 실수 혹은 의도적으로 다른 부족에 속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죽였다고 하자. 피해를 당한 부족은 피해자 또는 피해자가 속한 부족을 무력 공략하면서 보복을 감행한다. 그러면 보복을 당한 부족은 보복에 대하여 또 보복을 감행하게 된다. 이러한 방법으로 보복의 연쇄고리는 중단없이 계속된다. 세월이 지나면서 이러한 보복의 연쇄고리는 여러 부족 간 끝없는 보복의 무력 공격을 낳게 되면서 전쟁은 계속 된다. 그들은 휴전이 성립되지 않는다면 결코 보복성 무력 공략을 중단하지 않는다.

한편 외세의 공격을 무력으로 대응하는 것은 매우 합법적인 것이다. 또한 피해를 준 개인 혹은 집단에 대한 보복은 아라비아 전통법에서 매우 정상적인 것이다. 피해를 당하고서도 보복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비겁한 것이며 부당한 것이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말이 바로 이것을 두고 나온 말이다. 물론 이러한 전통은 구약시대에도 있었던 것으로 매우 오래된 전통이다. 아라비아 전통에서는 어린이, 여성, 늙은이 등 연약한 비무장인을 죽이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이러한 전통은 무함마드 이후 250년 경에 이슬람 종교의 지하드에서 그대로 차용되었으며 이 전통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아라비아 오랜 전통에 젖어있는 무함마드와 그의 동조자들이 문제해결의 방법으로 물리적 무력투쟁이나 무력공격에 호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한 손에 쿠란 한 손에 칼"이라는 말은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성전, 지하드가 단순히 아라비아 전통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쿠란Quran에서 수 차례 알라신의 명령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슬람 경전 쿠란과 순나에서 말하는 지하드는 물리적 무력 투쟁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화, 국제화된 현대사회에 있어서 이슬람종교의 한계를 노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개신교인들이 하나님의 절대적 가르침으로 믿는 신약성경에서는 물리적 무력을 통한 투쟁이나 전쟁을 허용하거나 묵인하는 그 어느 구절도 발견되지 않는다. 따라서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한 현대 기독교인들은 중세과 그 이전 유럽사회에서 경험했던 무력이 동원되는 십자군 전쟁을 비성서적이며 잘못된 것으로 쉽게 규정하고 그러한 가르침과 행위를 떨쳐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슬람종교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는데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체적으로 물리적인 지하드의 방법까지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그 대표적인 쿠란 구절들이다:

- "완전히 이슬람화될 때까지 성전(지하드)을 계속하되, (세상의) 모든 종교가 알라 신을 믿을 때까지니라. 만일 그들이(무슬림들이) 단념한다면 알라 신은 그들이 행하는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실 것이라(이러한 자, 즉 성전에 참여하지 않는 자를 알라 신은 보복할 것이다)(제8장 안팔 39절)."

- "금지된 달이 지나면 너희가(무슬림인들이) 발견한 카피르(불신자, 비이슬람인)들마다 살해하고...(제9장 타우바 5절)

- "믿는 자들이여! 너희 가까이 있는 캬피르들(불신자들)과 싸우고 그들 가운데 너희의 용맹스러움을 알게 하라(제9장 123절)"

- "믿는 자들이여, 사람을 죽일 경우 자유인에게는 자유인이, 종은 종이, 여성은 여성이 동등하게 하도록 하라(반이슬람교도를 살해하는 질서를 설명하고 있음)(제2장 바까라 178장)"

- "비록 너희가 싫어하는 것이지만, 싸움(성전)이 (알라 신에 의해) 명령되어 있도다. 그러나 너희가 싫어해서 너희에게 복이 있고 너희가 좋아해서 악이 되는 것이 있나니, 알라 신은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계시느니라(너희가 이해가 안 되어도 성전의 명령에는 순종하라)(제2장 216절)", 등.

-"만약 너희가 불신자를 만나면 그들의 목을 쳐라. 그리고 드디어 너희가 그들을 완전히 제압하면 그들을 단단히 묶어라. 그후 전쟁이 그 짐을 덜어 버릴 때까지 그들에게 관대함을 베풀던지 아니면 보상금을 받고 석방하라. 너희는 그렇게 하라." (제47장 4절)

2) 지하드의 개념의 변천

지하드는 무함마드 당시 이슬람공동체가 발전해 감에 따라 다양한 개념으로 발달하였다. 610년 무함마드가 이슬람공동체를 시작한 이후 632년 그가 사망할 때까지 지하드 개념은 무함마드 개인의 리더십 및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지하드에 대한 쿠란의 구절들은 헤즈라 2년(서기624년) 라마단17일에 발생한 바드르(Badr)전투 이후에 나오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전투의 전략적 필요에 따라 지하드가 도입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바드르 전투는 상대적인 꾸라이쉬 부족에 비해 무기와 군사의 수가 상대적으로 열세였지만 무함마드가 지하드를 활용함으로써 승리했던 무함마드 당시 대표적인 전투였다. 무함마드는 전쟁을 알라신이 명하신 성전, 즉 지하드로 탈바꿈 시킴으로써 전사들의 전쟁 참여를 독려하고 군사들의 사기를 높이는 전략을 구사했던 것이다. 이는 중세 유럽 십자군을 동원할 때 유럽 기독교 제국의 지도자들이 사용했던 방법과 유사한 것이다. 쿠란 제 8장 안팔(Anfal 전리품) 장은 바르르 전투와 연계된 장이다.

무함마드 사후에 지하드는 이슬람 제국의 보편적이고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이슬람공동체는 지하드를 통해서 끝없이 팽창 성장하였으며 이슬람 제국으로 발전하였다. 물리적 힘에 의존하는 지하드를 통한 이슬람 제국의 팽창은 중세 르네상스 이후 유럽 문명과 과학이 급속도로 발달함으로 이슬람 세계가 상대적으로 약화될 때까지 계속 되었다.

그러나 이후에 지하드의 개념은 종교적 및 정신적 지하드의 개념으로 또 다시 탈바꿈하여 적용되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우세한 위치에 있는 유럽 제국의 힘 앞에 이슬람 세계는 더 이상 무력을 통한 지하드에 호소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슬람 세계의 정치력 및 군사력 상실과 더불어 이슬람 지하드 개념과 관행 또한 변화되고 약화되어 간 것이다.

유럽 기독교제국의 성장과 발전 이후에 이슬람 세계가 지속해 온 물리적 투쟁과 군사력을 동원한 전투를 통한 이슬람공동체의 발전이라는 쿠란의 가르침에 근거한 전통적인 개념의 지하드는 이제 더 이상 적용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지하드의 동적 개념의 상실은 전투적 이슬람이 이슬람 부흥운동을 주도하던 20세기까지 계속 되었다.

1920-30년대에 서구 제국에 대항하는 비서구권 제3세계 민족 독립운동이 지구적으로 확산되어갈 때 이에 편승하여 이슬람 세계에서도 이슬람 국가들의 독립과 이슬람세계 연대를 부르짖는 이슬람 부흥운동이 세를 얻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슬람 학자들이 이슬람 부흥은 쿠란의 가르침과 샤리아(shariah 이슬람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근본주의 운동으로 시작하였다. 이러한 근본주의 운동은 정치적 투쟁으로서의 지하드로 발전하였다가 마침내 지하드의 원형대로의 부활, 즉 물리적 지하드에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제2차 대전 이후 파키스탄, 이집트, 팔레스타인, 리비아, 이란 등 이슬람 국가에서 나타난 정치적 이슬람(political Islam) 운동은 국가 정권 탈취를 통한 이슬람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였다. 지하드는 사회 정치 투쟁을 통해서 친서구적이면서 근대주의적인 세속적 국가 지도자들을 몰아냄으로써 이슬람 정권을 창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79년 9월 1일 이란에서 호메이니가 주도하는 이슬람 혁명이 성공함으로써 급진적 이슬람 혹은 전투적 이슬람은 글로벌 지하드 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란은 근본주의 이슬람을 수출하는 주도국으로 변모하였으며 이슬람세계의 정치적 및 종교적 리더십은 사우디 아라비아나 이집트에서 시아파 이란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를 친미국가로 규정하고 왕정 전복을 위해 무슬림 청년들과 전사들을 선동하는 방법으로 사우디 왕정을 위협하였다. 특히 원리주의 이슬람 국가 이란과 사회주의 이슬람을 지향하는 리비아는 쿠란에 왕정국가를 인정하지 않음을 지적하며 사우디 아라비아를 몰아 세우자 사우디 왕정은 곤혹스런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3) 무함마드와 지하드

AD 610년 무함마드가 이슬람공동체를 시작한 이후 이슬람공동체가 성립되어 갔지만 정작 무함마드의 고향 메카의 주민들은 신흥 종교인 무함마드 종교를 따르는 사람들과 무함마드를 거부하고 토착종교 전통을 고수하는 두 부류로 나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함마드의 행동방향은 이슬람을 거부하는 메카인들에 대한 대항논리에서 시작되었다.

메카인들의 극심한 반대와 핍박, 그리고 무함마드의 리더십 부재로 인한 내부의 다툼이 지속되면서 아직 조직적 세력을 형성하지 못한 초기 무함마드와 그의 원시적 이슬람공동체는 수많은 역경과 도전에 직면해 있었다. 그렇다고 메카의 토착세력을 제어할 힘도 없는 상황에서 무함마드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내부 결속을 강화함으로써 이제 막 시작한 이슬람공동체가 와해되는 것을 막는 일이었다. 따라서 무함마드 초기 지하드는 내부적 투쟁, 즉 정신적 및 영적 지하드에 집중되었다.

"알라신을 만나기를 원하는 자여, 알라의 정해진 시간은 반드시 도래한다. 알라신은 모든 것을 알고 들으신다. 투쟁하는 자, 실로 그는 자신을 위해 투쟁(jihad)하는 것이니, 알라는 세상의 모든 필요물을 아끼지 않으신다. 알라신은 믿고 옳바른 일을 하는 자들에게서 악을 내쫓아주시고 그들이 알고 있었던 가장 좋은 보상을 내려주실 것이다."(쿠란 29:5-7)

"그러니 불신자들에게 굴복하지 말고 이것(쿠란)으로 그들을 대항해서 최선의 강력한 투쟁(jihad)을 전개하라"(쿠란25:52)

무함마드는 늘 그랬듯이 필요할 때마다 <알라신의 계시>를 동원하고 활용하는 방법으로 구성원 무슬림들을 추스리고 다스리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이 구절에서 무함마드는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알라신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면서 알라신의 때가 반드시 임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악>을 몰아내시는 알라신의 능력과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보상을 줄 것을 양속하고 있다. 악은 사실상 자신을 거부하는 메카인들을 지칭하는 것이지만 초기에는 이들에 대한 지하드를 촉구하기보다는 오히려 은유적으로 상대적을 처리함으로써 무함마드는 승산없는 전투보다는 종교적 신앙에 호소하는 방법으로 내부 결속을 다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열세의 위치에 있었던 초기의 무함마드는 정치적 및 군사적 투쟁보다는 알라신이 무함마드 자신에게 수시로 내려준 계시(쿠란)에 대한 믿음 및 내적 확신을 통한 종교적 투쟁을 통해 공동체 강화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메카의 꾸라이쉬 부족와의 바드르 전투에서 승리하기 전에는 무함마드 세력이 상대적으로 약세에 있었기 때문에 종교적 및 영적 지하드에 호소했던 것이다.

이러한 무함마드의 전략은 20세기와 21세기에도 이슬람운동의 전략으로 계속 사용되고 있다. 어느 국가에서든지 초기 이슬람 종교세력은 상대적으로 열세에 있을 때에는 타종교와 동일한 종교로 위장하며 접근한다. 이때 무슬림들은 대개 이슬람을 평화의 종교, 민족종교로써 유대교나 사람 예수를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기독교와는 전혀 다른 올바른 참다운 종교,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개인의 신앙을 강조하며 정치성이 없는 순수한 종교, 기독교 등 기존 종교세력에 의해 핍박 받은 약자의 종교 등으로 위장하여 사람들에게 접근한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사회적 세력이 형성되면 민주주의를 내세워 자신들의 사회적 권리 및 사회적 입지 확보에 주력한다.

예를 들면 학교 등 공공장소에서 이슬람 복장에 대한 허용, 공공학교에서 이슬람식 교육을 받을 권리확보, 아랍어 공문서 사용권리 주장 등 이슬람종교의 사회적 및 정치적 자리매김을 위해 사회적 및 정치적 투쟁을 민주주의 논리에 호소하여 전개한다. 그러나 일단 어느 정도 세력을 형성한 이후에는 타도해야 할 상대적을 분명히 하는데, 그들의 첫 번째 투쟁의 대상은 이슬람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하는 지식인 및 언론인들에 대한 테러로 시작한다. 물론 이러한 테러는 지하드의 범주에 속한 것이다. 그리고 이후에는 이슬람 정당 설립과 더불어 이슬람 당을 인정하는 정당과 연합을 통해 정치적 세력을 확장해 간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동 이슬람 국가의 정부와 기업들로부터 활동자금은 거의 제한 없이 공급된다. 지하드를 전개하는 현대 무슬림 급진세력들은 상황에 따라 전략적으로 대응했던 무함마드의 선례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접근방법이 보편화 및 종교적 신념화 되었다.

4. 이슬람 국제운동과 한국교회

글로벌 지하드로서 이슬람국제운동은 계속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일시적인 국제정치적 현상이 아니요 보다 거시적이고 근본적인 문명사적 현상이요 영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현재 국민대다수가 무슬림으로 구성된 이슬람국가는 57개이다. 또한 이들 국가들은 국가 정체성 역시 이슬람에 두고 있다. 소위 <이슬람국가>를 제외한 국가들 역시 대부분 이슬람이 세력화 되어있다.

유럽은 이미 무슬림인구가 5%에 달한다. 복음적 크리스챤이 4%인 것에 비하면 역전된 것이다. 물론 유럽의 무슬림들은 백인들이 개종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중동 및 북부아프리카 등지에서 이주해온 노동자들이다. 무슬림 노동자들의 유럽 이주는 150년 전부터 계속되고 있으며 유럽인구의 5%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1994년 약 4천만 명이던 무슬림이 지금은 약 1억으로 늘어났다. 중동 산유국의 포교자금이 중국으로 유입되면서 이슬람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대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정교 국가인 러시아연방 약 3천만 명의 무슬림들이 있으며 연방 내 카프가즈 지역 공화국들은 대부분 이슬람공화국을 이루고 있다. 힌두교 국가인 인도 역시 북인도 중심으로 약 2억의 무슬림이 있으며 대표적인 불교국가인 태국은 불교가 상대적으로 쇠퇴하고 있는 가운데 이슬람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으며 특히 최근 남부 중심으로 이슬람이 부흥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대부분 이슬람 국가이며 유일하게 카톨릭이 지배적인 필리핀도 지난 30년 동안 민다나오 섬 중심의 이슬람 세력으로 인해 국가운영이 어려운 상태이다. 미국도 9.11 사태 이후 이슬람이 성장하면서 지금은 무슬림 인구가 1천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에서 이슬람이 사회적 세력을 형성하고 있지 않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아라비아 세계이슬람 연맹에서는 지난 2005년부터 이슬람 포교활동을 한국으로 집중하고 있다. 한국에 파견된 무슬림 선교사들 및 이들과 직간접 연계되어 국내에서 이슬람 포교활동을 하고 있는 외국인 무슬림 포교자는 약 2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이슬람 국가 대사관 직원들, 이주 노동자로 입국하여 노동하면서 국내 지역 교회가 운영하는 외국인 노동자 교회에서 활동하는 자들, 또한 대학생 신분으로 국내 대학에서 활동하는 무슬림들로 이루어 지구 있다.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등 이슬람국가 출신으로 외국인 노동자로 입국한 무슬림들은 주로 파키스탄에서 교육을 받고 사우디 아라비아 등 중동 산유국의 재정적 지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 에미레이트 등 중동국가 서울 소재 대사관에 종교 영사로 파견된 외교관들이 이들을 간접 지원하며 외교정치적 후견인 역할을 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교회에 침투한 무슬림 선교사들은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가장하고 먼저는 이슬람 국가에서 들어온 외국인들을 이슬람화 및 조직화함으로써 한국 내 토착화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한국 크리스챤 미혼 여성들에게 접근하여 결혼 전략을 통해 이슬람을 포교하고 있는데, 약 3천 여명의 한국인 자매들이 –주로 노처녀들- 파키스탄 등 무슬림 선교사들과 결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중동에 진출하는 한국기업들을 대상으로 중동국가들이 친이슬람 세력화를 도모하고 있으며 한국교계의 반발과 논란 속에 2008년 7월 중순 방영된 SBS 안티기독교 프로그램은 SBS 관련기업의 중동진출과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슬람국제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무슬림들은 엄밀하게 말하면 글로벌지하드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이슬람 테러가 발생하지 않는 한국 같은 상황에서는 국민들이 패권주의 미국에 의해 희생당하는 소수 저항 집단으로 취급하며 오히려 동정하기 쉬우나 사실 이슬람 급진세력들은 한 국가 장악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치밀하고 체계적인 단계별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한 국가 안에서 이슬람 테러가 발생하기 시작하면 그 나라는 이미 늦은 것이다. 이전에 엄청난 조직과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어서 테러가 테러를 낳는 연이은 무력 투쟁 혹은 무력저항운동은 모든 국민을 심각한 피로감에 빠지게 하고 국가의 총제적 부실과 붕괴를 좌초하기까지 계속되는 것이다.

이슬람급진세력은 알라 신의 이름으로 살생을 서슴지 않는다. 인도 출신 영국작가 살만 뤼시트가 1989년 내용 가운데 이슬람 경전 쿠란의 한 구절을 비판하는 소설을 출간했다가 지금까지 지하에서 지내고 있다. 이란 호메이니가 150만불 상금을 걸고 참살을 명령했으며 지금은 3천만 불의 상금이 걸려있다. 그를 죽이는 자는 이 상금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의 소설을 일본어로 번역한 일본인이 즉각 참살 당해 죽었다. 유럽 작가가 유럽에서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를 풍자하는 만화를 그렸다가 테러 위협에 시달리며 숨어살고 있다. 우리는 셀 수 없는 많은 지성인들이 예수님을 비방하고 심지어는 “사생아”라고 공공연히 주장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방송 신문에서 예수님을 폄하하는 글이 한국 및 미국 유럽에서 거의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오히려 세속적 지성인들이 기독교를 비판하는 일을 즐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슬람에 대해서는 한마디 비판하지 못한다. 그들은 그것이 그들에게 죽음을 의미하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기독교를 비방하는 글이나 방송에 대해 기독교인들이 비판하면 “언론의 자유”라는 명분으로 인권단체들이 벌떼처럼 일어나서 기독교를 비방하고 안티기독교 운동에 불을 붙인다. 그러나 불신자에 대한 참살을 서슴지 않게 명령하는 이슬람 종교를 비방하면 인권단체들은 물론이고 UN까지 나서서 반격을 가하는 것이 지금 실정이다. “원수도 사랑하라”는 기독교는 이 시대에 심각하게 역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은 한국교회를 전방위적으로 공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소위 <이단 때려잡기>에는 혈안이 되어 있으나 이단 중의 이단, 폭력과 살상을 서슴지 않는 이슬람 집단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무지하기 까지 하다. 9.11 사태 이후 세계환경은 급속히 변화되고 있다. 건국이래 지속해온 미국 본토의 평화는 끝났으며 유럽뿐만 아니라 4천 년의 역사적 뿌리를 가진 이삭과 이스마엘의 형제갈등은 지구 영적 전쟁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슬람 산유국의 막강한 자금의 지원을 받은 온건 이슬람의 공격적 포교활동과 급진 이슬람 집단의 글로벌 지하드는 상호 상승작용을 하며 지구촌에 이슬람 인구를 폭발적으로 증대 시키고 있다.

이제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다. 지금 한국에 약 10-15만 명의 무슬림이 있다. 한 국가에 이슬람이 1%만 되면 그 국가는 정상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가 지혜롭게 대응하지 않으면 앞으로 10-15년 내에 한국에도 수 천 개의 이슬람 사원에 주요 도시마다 곳곳에 세워지고 전국적으로 이슬람 테러가 득세하는 그런 처지로 전락할 수도 있다. 세계교회가 어려운 이 때에 한국교회와 해외 디아스포라 한인교회들이 먼저 깨어 일어나서 기도하며 오히려 이슬람권 선교에 더욱 더 헌신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힘써 잠시 수고할 때 머지 않아 백투예루살렘 Back to Jerusalem의 비전을 가지고 일어나는 1억 5천만 중국교회가 우리와 함께 마지막 역사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사60:1-6, 사49: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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